여자부 4강전 첫 경기와 다음 경기 사이에 쉬는 시간이 생겨서 잠시 밖으로 나와서 로드 레이버 아레나 근처를 돌아다니다가 다시 들어왔다. 어느덧 점심 먹을 시간이 된데다 어제 밤부터 강제로 단식을 계속해왔으므로 뭐라도 먹어야겠는데 늘 돈이 발목을 잡는다. 5.5달러였던가 했던 핫도그로 적당히 끼니를 때우고 경기장 주변을 한 바퀴 슬슬 걸어서 돌아본 뒤 자리로 돌아왔다. 그런데 선수들이 경기를 할 때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데, 경기 전에 선수들이 몸을 풀 때나 쉬고 있을 때는 혼자서 할 일이 없다. 앉은 자리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 편하기는 하지만 말 한 마디 나눌 사람이 없으니 금방 지루해졌다. 영어가 짧아서 대화가 잘 되지 않았겠지만..


아나 이바노비치

이 때만 해도 이바노비치가 샤라포바와 함께 여자 테니스를 주름잡을 것으로 여겨졌으나, 실제로는 테니스 선수로서의 전성기가 짧았다. 2008년 프랑스오픈 우승 후 잠시 세계랭킹 1위에 오르기도 했지만, 한 달 후에 열린 윔블던부터 하락세를 보여 시드 배정조차 받지 못한 중국의 정제에게 덜미를 잡혀 일찌감치 탈락하는 등 들쑥날쑥한 성적을 내면서 랭킹이 떨어졌고, 테니스로 주목받는 것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반대로 가십이나 남자관계로 주목받는 경우가 늘어났는데, 잠깐 회복하는 듯하다가 다시 가라앉고, 작년에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와 결혼을 했다.


좌우로 폴짝폴짝 뛰고 있다. 공이 오는 방향으로 바로 움직일 수 있도록 긴장감 유지를 위해서일 것 같다.


모처럼 앞모습 사진을 찍을 기회였으나, 셔터스피드가 따라가지 못했다..


서브를 넣기 전.


예상 밖으로 한투코바의 일방적인 경기로 흘러가고 있다.


상대인 다니엘라 한투코바 

비록 단식에서 그랜드슬램 우승은 커녕 결승에도 올라간 적도 없고, 토너먼트 대회에서 얻은 트로피도 손에 꼽을 정도이기는 한데, 경기에 많이 참여하면서 포인트를 올려서 랭킹을 끌어올린 하드워커라고 해야겠다. 여기에 복식과 혼합복식도 출전하는 경우가 있으니 '질 보다는 양' 을 택한 것인지도. 한투코바 역시 예쁜 외모로 주목을 받아 실력에 비해서 조금 더 유명세를 얻은 면도 없지 않지만, 출신국가인 슬로바키아의 인구가 5백만 남짓에 불과하고, 테니스 스타일이 점잖아서 그런지 시끌벅적하게 소리를 질러대는 친구들보다는 인기가 떨어지는 편.


한투코바가 메이저 대회 단식에서 4강까지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첫 세트는 일방적으로 점수를 따내며 6-0으로 손쉽게 승리했으나, 2세트부터 본격적인 경기가 펼쳐졌다.

 

한투코바의 서브

사진의 질이 대단히 좋지 않아서 참 그렇다.
이것은 다 날씨가 좋지 않아 지붕을 닫은 것과 고물 카메라 탓이다.


카메라 셔터 스피드가 못 따라가서 한 번에 찍지는 못하고 각기 다른 서브 상황에서 찍은 사진을 연결해보았다. 하나의 연속되는 동작의 사진은 아니고, 


서브를 넣기 전 바닥을 보는 한투코바


서브 토스를 하고

 

강하게 서브를 때린다


이바노비치의 리턴


리턴에 실패했다..


득점에 성공한 한투코바는 즐거운 마음으로 볼보이로부터 공을 받았다.


서브를 위해 엔드라인 쪽으로 걸어감


서브에 들어가는 준비 동작


토스 후에 점프


공중에서 서브를 위해 백스윙


이바노비치의 강한 서브


서브 후 연속동작


저 스윙에 맞으면 골로 갈 것 같다.


착지

여기까지..


포핸드 스트로크


백핸드 스트로크를 날리는 이바노비치


그러나 이 게임 역시 이바노비치가 내주고 말았다.

1세트 마지막 게임은 한투코바의 서브게임.


이바노비치는 한 게임도 못 따고 세트를 내줄 위기에 처했다.


이바노비치는 1세트의 향방이 달린 여섯 번째 게임 역시 고전하는데..


이바노비치가 1세트에서 한 게임도 못 따고 퍼펙트로 지고 말았다. 토너먼트 대회 초기에나 나올 법한 일이 이런 그랜드슬램의 4강에서 나오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었다. 누가 뭐래도 한투코바가 이바노비치를 이기고 결승에 진출할 것 같았다.


이바노비치가 1세트를 0대 6의 치욕적인 점수로 내주고 코트체인지를 하고 있다.


경기 중간 잠시 쉬고 있는 이바노비치


한투코바도 쉬고 있다.

경기가 일방적인 한투코바의 승리로 끝날 것 같았는데 2세트에서는 접전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바노비치의 결정적인 브레이크로 6대 3으로 세트를 따내면서 마지막 세트로 이어지게 된다.


땀을 닦는 이바노비치


이바노비치가 포인트를 얻은 다음에 즐겨하는 세리머니 포즈


이바노비치의 득점 후에는 항상 저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지막 세트에서 한투코바는 4대 3으로 앞서고 있었다. 그러나 이바노비치는 연속으로 세 게임을 따내 마지막 세트에서 이기며 대역전승을 거두면서 결승에 진출하여 샤라포바와 맞붙게 되었다.


전광판에 나오는 한투코바의 표정


구입했던 티켓으로 로드 레이버 아레나에서 볼 수 있는 데이 세션 경기는 다 봐서 밖으로 나가야 한다. 남자 4강전 경기는 나이트 세션 경기라서 따로 티켓을 구입해야 하는데, 시간대도 시간대지만, 남자 경기가 더 박진감이 있어서 그런지 이 경기는 대부분의 좌석이 다 팔렸다. 취소하여 남은 좌석이 몇 개 있기는 하지만, 자리가 좋지 않은 편이고, 여러 경기를 볼 수 있는 데이 세션 입장권과는 달리 한 경기만 볼 수 있음에도 가격이 더 비싸서 사기는 부담스럽고. 그냥 밖에 나가서 페더레이션 스퀘어에서 앉아서 보거나 펍에 가서 텔레비전 중계를 보는 것이 더 낫다.


경기가 끝나고 이바노비치가 인터뷰를 준비하고 있다.


호주의 채널 7(Seven)에서 단독으로 호주오픈 테니스 경기 생중계를 한다. 뉴스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정규프로그램은 결방되고, 테니스 경기 중계를 하는데 대회 초반에는 톱랭커들의 경기가 프라임타임이 아닌 시간대에도 있기에 대부분을 테니스 중계에 시간을 할애한다. 토너먼트 대회의 특성상 대회가 진행될수록 생존하는 선수들이 적어지므로 이 채널의 저녁시간 프로그램을 즐겨 시청하는 사람들이라면 테니스가 원망스럽겠지만, 테니스 팬이라면 아주 반가운 일이다. 

 

기아자동차가 이 대회의 공식 스폰서라는 것은 이미 앞에서 언급했던 것 같은데..


세션이 끝났으니 사람들이 대부분 밖으로 나갔다. 한꺼번에 사람이 많이 몰리는 것을 피해 조금 기다렸다가 나간다. 이 시간에 나가봤자 사람들만 많고 바깥 날씨는 더우니.. 냉방시설이 있기는 하지만 별로 시원하지 않다고 한다. 반소매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와서 가만히 앉아서 경기를 보는 경우라면 조금 썰렁한 느낌이 들기는 하는데, 냉방을 가동해도 경기를 하는 선수들의 땀이 식지 않을 정도에 맞추어 할테니 냉기가 직접적으로 나오는 곳이 아니라면 많이 시원하거나 춥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고 한다.

 

로드 레이버 아레나의 천장


마거릿 코트 아레나

그라운드패스만 있으면 들어갈 수 있는 코트 중에서 가장 좋은 코트다. 이 경기장에는 남녀 단식 경기 중에서 중요도에 따라 로드 레이버 아레나와 하이센스 아레나에 배정된 경기 다음으로 높은 랭커의 선수 또는 인기 선수들의 경기가 배정된다. 이 시점에서는 이미 각 부문에서 4강전을 진행하고 있어서 이 경기장에서 그 경기들이 열리지는 않고, 주로 복식 경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누가 뭐래도 테니스에서는 남녀 단식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상금 역시 가장 많으며, 이 종목의 선수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기에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조금 전에 있던 로드 레이버 아레나와는 너무도 다른 분위기


메인 경기장인 로드 레이버 아레나에 경기가 있을 때는 저 전광판에 경기 중계 영상을 틀어준다.


메인 경기장인 로드 레이버 아레나

어차피 경기장 내에서 볼 수 있는 경기가 없어서 밖으로 나왔다.

피곤하니 잠시 호스텔로 돌아가야 할 것 같은데, 지금은 서두를 필요가 없으니 천천히 걸어서 시내를 구경하면서 가보도록 한다. 아침에 비싼 택시비를 내고 온 것이 아까운 생각이 드는데 처음이라 이런 시행착오를 겪는다고 위안을 삼는다.


최근 10년 동안 단식 우승자 사진을 전시해두었다.

안드레 애거시가 가장 눈에 먼저 띄었고..

 

1998년 우승자 마르티나 힝기스.


힝기스는 1997년에도 우승을 했었고, 이 때만 해도 샘프라스도 마지막 불꽃을 태우던 시절이었네.


우승 트로피 사진

 

멜번 파크(Melbourne Park)라 불리는 테니스 공원. 주요 경기는 돔형식으로 된 로드 레이버 아레나에서 열리고,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경기 또는 인기가 있는 경기는 하이센스 아레나에서 열린다. 이 때까지만 해도 하이센스 아레나가 아닌 보다폰 아레나(Vodafone Arena)라는 이름이었는데, 중국의 궐기로 하이센스가 급격히 성장하면서 다음 해부터는 네이밍 스폰서가 하이센스로 바뀌었다. 보다폰은 예전에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유니폼에 로고를 달 정도였으나, 역시 돈 전쟁에서 밀리면서 자리를 빼앗겼다.

 


보다폰 아레나


그라운드패스로는 들어갈 수 없는 2개의 유료 경기장이다. 대신 이 유료 경기장의 입장권을 사면 그라운드패스가 따라오게 되기에 자신이 구입한 경기장의 경기는 물론, 멜번 파크에 개방된 경기장에서 열린 다른 경기를 그냥 볼 수 있다. 이런 대회에 처음 와서 그라운드 패스가 무엇인지 몰랐는데..

멜번 시내는 물론 교외지역까지 연결하는 철도가 경기장 주변을 지나간다.

 

대회 막바지인지라 저녁에는 남자 단식 준결승 1경기가 열리는데, 이 경기가 로드 레이버 아레나의 나이트 세션이라서 데이 세션 티켓을 산 사람은 경기장에 들어갈 수 없어서 그냥 돌아간다. 데이 세션은 여러 경기가 있지만, 상대적으로 사람들의 관심이 적기 때문에, 남자부 준결승 경기 하나만 볼 수 있는 나이트 세션 티켓이 더 비싸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으니 이 경기는 백패커스로 돌아가서 텔레비전으로 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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