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화면으로 중계되는 호주오픈 테니스 남자 4강 두 번째 경기를 지켜보기 위해서 페더레이션스퀘어로 돌아왔다. 전날 저녁에 열렸던 남자 준결승 1경기에서는 시드 배정을 받지 못했던 프랑스의 조 윌프레드 쏭가가 2번 시드의 라파엘 나달을 누르고 결승에 진출했고, 톱시드인 로저 페더러와 노박 조코비치의 경기가 열릴 예정이었다. 

로저 페더러의 아버지 로버트 페더러는 스위스인, 어머니가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인 탓에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를 모두 할 줄 안다고 한다. 가족끼리 대화할 때는 주로 독일어를 사용한다고 하며, 영어, 프랑스어도 상당한 수준이라고 한다. 역시 언어는 부모를 잘 만나는 것이 가장 좋고, 그 다음에는 본인의 재능과 노력이 좌우한다고 할 수 있겠다.

2006년의 페더러는 그랜드슬램의 모든 대회 결승에 올라서 프랑스오픈을 제외한 나머지 3개의 그랜드슬램에서 우승을 차지했다.[각주:1] 페더러가 유일하게 무릎을 꿇었던 대회는 '흙신' 라파엘 나달과 맞붙은 프랑스오픈 결승전이었다. 호주에서 가장 인기있는 선수는 로저 페더러인데, 어머니가 국적은 남아공이지만, 영국계 혈통을 가진 백인이라는 이유도 있는 것 같고, 악바리같이 달려드는 나달에 비해 점잖게 경기를 하는 페더러의 스타일을 선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페더러를 응원하게 된 것은 그의 치명적인 약점인 한 손 백핸드 스트로크 덕분이기도 한데, 최근에는 남자 선수들도 라켓을 두 손으로 잡고 치는 투핸드 백핸드 스트로크를 사용하는데, 원핸드 백핸드가 더 화려하고 치는 폼이 멋있게 나오기 때문에..


이렇게 광장에 앉아서 대형 스크린으로 중계되는 경기를 본다. 이런 대형 스포츠 이벤트의 경우에는 스폰서 기업들에 할당되는 티켓이 많아서 코트에서 가까운 좌석은 티켓판매점에 가도 쉽게 구하기 어렵다. 티켓텍(Ticketek)이라는 회사에서 판매를 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남자경기가 더 스피드가 있고 박진감이 넘치는데다 5세트 경기라서 경기 시간 역시 길기 때문에 저녁 세션은 이 경기 하나로 구성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페더레이션 스퀘어에 모여서 대형 스크린으로 중계되는 경기를 보고 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로드 레이버 아레나에서 경기가 펼쳐지고 있어서 그 곳에서 들리는 함성이 먼저 전해진다.

 

사진이 비뚤어졌는데 야간 촬영이라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고정을 하려다보니 이렇게 사진이 나왔다.

 

그래도 이 사진 하나는 건진 것 같다.

 

페더러는 1세트를 내준 뒤, 2세트에서도 힘없이 경기를 내주며 끌려가다가 3세트에 들어서서 간신히 리드를 잡았다. 페더러는 현재 스위스 출신 중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사람 아닐까 싶은데, 어디선가 스위스 출신 유명인 순위를 본 적이 있는데 페더러가 1위이고, 다른 사람들은 처음 접하는 이름이어서 뭐하는 사람들인지도 모르겠고,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스타니슬라브 바브린카가 순위권에 들지 않았을까도 싶다.

 

벼랑 끝에 선 페더러가 3세트에서 리드를 잡았다. 

그랜드슬램 남자 단식은 5세트까지 경기를 하므로 87년생인 조코비치가 체력적인 면에서 유리한 것도 있지만, 페더러의 경기 스타일은 테니스를 조금이라도 하거나 본 사람들이라면 코트를 넓게 쓰면서 상대를 계속 움직이게 하는 것이 아니고, 최대한 빨리 경기를 끝내고 체력 소진을 줄이려는 편이다. 


이 때만 해도 페더러가 3세트에서 반격을 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조코비치가 뒤지고 있던 12번째 게임을 역전하여 6:6 동점을 만들고 타이브레이크에서 페더러를 이기고 세트스코어 3:0의 완승을 거두었다. 조코비치는 이틀 후에 펼쳐진 결승전에서 프랑스의 조 알프레드 총가를 이기고 생애 첫 그랜드슬램 우승을 차지하였고, 이후 노쇠화가 진행된 페더러와 고질적인 부상으로 발목이 잡힌 나달을 대신하여 한동안 세계랭킹 1위에 오르게 되었다. 그 이후 한동안 부진을 겪기도 했지만, 아직 서른 살 밖에 되지 않아서 다시 세계랭킹 1위에 오를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고 할 수 있는데, 전성기의 폼을 찾을 수 있을 지는 잘 모르겠다.


대회 직후 알려진 사실이지만, 페더러는 감염성 단핵구증이라는 질환에 걸려 컨디션이 좋은 상태는 아니었다고 한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고 팔자려니 해야할 것 같다. 프로 스포츠 선수가 이런 핑계, 저런 핑계 대면서 부진한 이유를 말하는 것이 좋아보이지는 않고, 깔끔하게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면서 다음에 더 잘 하겠다고 하는 것이 상대 선수와 응원하는 팬들에 대한 예의일 것 같다.


호스텔로 돌아가야 한다. 낮에는 땡볕이 내리쬐지만, 습도가 높지 않아서 밤이 되면 쌀쌀해지고, 야라 강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이 더욱 춥게 느껴진다. 같은 방을 쓰는 사람들은 옥상에서 술을 마시느라 방은 비어 있어서 일단 씻은 뒤에 옥상에 올라가서 함께 술을 마시며 떠들다가 들어와서 잠을 잤다.

  1. 2005년에도 페더러는 프랑스오픈 준우승을 제외하고는 3개의 그랜드슬램에서 우승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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