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켄

2018. 1. 15. 03:28



저녁을 먹고 잠시 텔레비전을 보다가 소화에 도움을 주기 위해 밖으로 나가서 숙소에서 멀지 않은 신세카이(新世界) 주변을 구경하러 나갔다. 신세카이는 같은 한자를 쓰는 한국의 유통업체 신세계와는 전혀 관계가 없고, 이름과는 달리 새로운 세계와는 거리가 멀고 시간이 멈춘 듯한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유흥가, 환락가라고 할 수 있겠다.

높이 103미터라는 츠텐카쿠(通天閣)는 오랜 시간 오사카의 랜드마크의 역할을 해왔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 높은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높은' 장소라는 이유로 이 곳에 오는 사람들은 많이 줄어들었고, 그냥 오사카주유패스가 있으면 추가요금 없이 이용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사람들이 자주 찾게 되는 정도라 할 수 있고, 다른 이유로 이 동네를 찾는다면 뭐 그렇고 그런 곳이 있어서도 하나의 이유가 되겠고, 다른 곳에 비해서 숙박비가 저렴하다는 점, 동네야 허름하지만 쿠시카츠로 유명한 곳이라서가 아닐까 싶다.

면서 주변을 조망하는 전망대로서의 기능보다는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오사카주유패스' 라는 오사카시내의 여러 관광지를 무료로 입장할 수 있는 할인 패스를 구입해 잠시 들르는 정도가 되겠다. 1903년, 오사카는 토쿄와의 경쟁 끝에 만국박람회를 개최하게 되었는데, 파리의 만국 박람회에 등장했던 에펠탑을 모티브로 하여 철제 탑을 짓기로 했다고 하며, 남쪽은 뉴욕의 코니아일랜드, 북쪽은 파리를 모티브로 하여 개발하였다고. 그런데 이 건물은 1943년에 발생한 화재로 이 건물에 들어간 철근이 전쟁물자로 사용되었고, 1956년에 재건하여 현재의 건물이 완성되었다고 한다. 에펠탑이 모티브라고 하나 사실 이 건물을 보고 에펠탑이 떠오르지는 않는데, 일본의 전자회사 히타치에서 1957년부터 광고 계약을 맺고 있어 구조물에 히타치 로고와 '안심과 신뢰의 히타치그룹(安心と信頼の日立グループ)' 라는 광고문구가 적혀 있기도 하다. 이 츠텐카쿠에서 멀지 않은 곳에 신세카이라는 곳이 있다.[각주:1]



츠텐카쿠와 쟌쟌요코쵸, 스파월드 세계의 대욕장 등이 가까이에 있고, 길을 건너면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그런 곳도 있고, 뭐 그렇다. 이 동네는 마루한과 메가돈키호테가 새로 생긴 것 빼고는 그다지 많이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다. 전철은 예전에도 다녔고, 10년 넘게 지나서 이제는 오래된 열차들이 신형 열차로 바뀌기는 했지만 그 밖에 달라진 것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이 신세카이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빌리켄이라는 괴생명체의 동상이 있는데, 도깨비같이 생기기도 하고 슈렉과 같은 느낌이 나는데, 이것이 신격화되어 신사까지 만들어질 정도다. 빌리켄은 1908년 시카고 미술전람회에 출품된 미국 여성작가인 호스먼의 작품이라고 한다. 호스먼은 꿈속에서 특이한 모습을 한 신(?)을 만나게 되는데 잠에서 깨어 그 기억을 바탕으로 하여 만든 상이란다. 아무리 봐도 적당히 주물러 놓은 괴물 같은 느낌이라 신이라고 하니 그냥 그런가보다 하는데, 죽기살기로 덤벼서 이게 말이야 방귀야 따져봤자 뭐 남는 것도 없을 것 같고...


빌리켄 신사

워낙 별의별 신을 믿는 나라이기에 빌리켄에게 무언가 기원하고 비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지만, 위층에는 각종 음식들의 이름이 적힌 것을 보면 빌리켄을 앞세워 사람들을 끌어모으려는 의도가 있는 듯하다. 혹시 누군가 저기에 동전을 던져놓고 갈 수도 있겠지 싶다.


신사만 있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냥 가게 건물에도 빌리켄 동상이 붙어 있다.


이 동네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아무래도 쿠시카츠(串カツ)일 것 같다. 


복어 전문점 즈보라야가 있는데, 복어를 먹어본 적이 없어서... 이 곳에 본점이 있고, 도톤보리에 지점이 있다고 한다.


복어 가게는 일찌감치 문을 닫은 것 같다.


일본 제일의 쿠시카츠라는 요코즈나라는 곳이 있는데, 24시간 영업에 쿠시카츠 말고도 타코야키라든가 챵코나베, 사시미, 스시 등의 메뉴가 아주 다양한 것 같다. 조금 후 이 곳이 본관이고 별관이 옆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우.. 여기도 빌리켄..


요코즈나의 별관

시간을 정해놓고 먹는 타베호다이(食べ放題), 역시 시간을 정해놓고 마음껏 마시는 노미호다이(飲み放題)가 있단다. 실제로 먹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호다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곳은 아무래도 가격에 민감하고 많이 먹는 사람들을 타겟으로 하는 곳이라 할 수 있겠다. 이 동네에서 유명한 가게들은 꼬치튀김 대여섯 개에 천 엔 정도 하니, 가격만 보면 저렴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쿠시카츠는 기름기 많은 튀김 음식이라서 먹다보면 금방 물리고, 맥주 한 잔 함께 걸치면 배가 불러서 먹기 전에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실제로 사람들이 먹는 꼬치의 양이 많지 않아서 정해진 시간 내에 무한대라고 해도 많이 먹는 것이 쉽지는 않으니, 사람들을 끌어들이려는 마케팅 방식으로 보면 될 것 같다.


이 놈은 서 있는 빌리켄


늦은 시간인데 관광객들이 이제 슬슬 숙소로 돌아가는 모양이다.


삐에로 같은 옷을 입고 안경을 쓴 빌리켄이 있는 가게도 있고.


얘는 화이트 빌리켄이다. 비용을 아끼려고 누드로 만들었나 싶은데..

이제 츠텐카쿠가 있는 쪽으로 슬슬 걸어가본다.


쿠시카츠 다루마

쇼와 4년, 즉, 1929년에 창업한 곳으로 오사카 신세카이의 쿠시카츠 원조 가게라고 한다. 그 이름과 명성을 듣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은 곳인데, 이 곳이 어느 정도 잘 되다보니 다른 가게들도 하나둘 쿠시카츠를 팔면서 쟌쟌요코쵸(ジャンジャン横丁)라 불리는 이 동네의 명물이 되었다. 한국에서도 어느 지역에서 특정 음식을 찾는 사람이 늘어나면 그것을 따라서 다른 가게들도 같은 음식을 팔기 시작하면서 그 지역의 명물로 자리하게 되는데, 여기라고 다를 바가 없다. 배는 부르고, 기름기 가득한 튀김류는 먹고 싶지 않아서 그냥 사진 몇 장 찍고 다시 숙소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다루마는 이미 오사카에 10여 곳의 지점이 있고, 근교 도시인 히메지와 멀리 떨어진 토쿄의 긴자, 그리고 필리핀과 타이완에도 점포가 있다고...


저 못생긴 아저씨가 소스는 한 번만 찍으라고 한다. 이 말은 곧 소스를 한 번 찍은 뒤에 꼬치를 베어먹고 다시 찍으면 소스에 침이 섞이니 그러지 말라는 의미다. 다른 지역에서는 소스를 개인별로 제공하지만, 여기서는 스테인레스제 작은 수조 같은 통에 담아서 여러 사람들이 함께 사용한다. 그래서 먹는 사람들의 입에 들어간 것이 닿지 않도록 하기 위함인데, 일본이 한국보다 개인 위생에 대해서는 더 철저한 면이 있고,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침이 섞인 소스를 먹다보면 감기 같은 전염성 있는 병에 걸릴 수 있고, 병에 안 걸린다 하더라도 꺼림칙한 면이 있으니.. 이런 것에 대해 둔감한 한국인들은 종종 꼬치를 베어먹고 다시 소스를 찍다가 직원들에게 한 소리 듣기도 한다고.. 

다루마는 한국에도 지점을 낸 적이 있었다고 하는데, 가격이 비싸서인지 얼마 안 되어 사라졌다고 한다. 


럭키 빌리켄. 

행운의 빌리켄인가..


여기도 빌리켄...


신세계라고는 하는데 별로 새로운 것은 없는 세계라는 느낌이다. 24시간 영업한다는 일본 제일의 쿠시카츠가게는 불을 아주 환하게 밝히고 있다. 자기네가 최고라고 하는 것은 어디나 똑같은데, 이렇게 경쟁자들이 많은 곳에서 계속해서 장사를 할 정도라면 맛의 차이는 그다지 크지 않을 것 같다. 아무래도 원조라는 곳, 가장 유명한 곳에 사람들이 몰리게 되는 것일까.

 


샤워를 하고 믹스베리 음료로 영양보충을 하고 다음 날을 위해 잠을 청한다.

일어나면 교토에 가야 한다..

  1. 신세카이라는 이름과는 다른 분위기라는 모순적인 모습을 보게 되지만..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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