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반의 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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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다 마오는 왜 맨날 분할까?2013.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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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 미키 은퇴 발표2013.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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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소치 올림픽 일본 여자피겨 대표선수 확정. 안도 미키는 은퇴 시사2013.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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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다 마오는 왜 맨날 분할까?
아사다 마오, 트리플 악셀 또 실패... "분하다"
'입술 깨문' 아사다 "목표 반도 못해 분하다"
아사다 마오, 실수 잦았던 것에 대해 "분하다" 심경 밝혀
다른 뜻은 없는가 궁금해서 일본 웹을 찾아봤다.
찾아본 사이트는 http://thesaurus.weblio.jp/
日本語WordNet(類語) |
Weblio類語辞書 |
찾아보니 이런 말이다. 위에 있는 뜻을 보면 "무언가 했을 때 또는 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 후회, 아쉬움, 슬픔, 또는 상실감을 느끼는 것, 또는 나타내는 모양(모습)".
아래의 뜻은 "과거의 사건이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는 모양(모습)" 이렇게 보인다. 유사어를 보아도 우리가 유감이다, 아쉽다 등으로 번역하는 残念だ가 있고, お気の毒さま는 뭔가 잘못했을 때 사용하는 말. 申し訳ない는 사과의 표현이다. 그렇다면 선수가 자신의 기술을 실패해서 "분하다!" 라고 하는 경우는 얼마나 있을까. 자신이 갑자기 긴장해서 실수를 했다면 자책을 할 것이고, 주변 환경 때문에 평상시라면 별다른 어려움 없이 성공시킬 수 있는 기술을 실패했다면 적응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할 터인데..
아무리 아사다가 일본에서 국민적인 귀여움을 받고 밀어주는 선수라고 해도, 자기가 실수해놓고 "분하다"라고 한다면 여론이 좋을 리가 없다. 아사다의 사람 됨됨이를 잘 모르기에 100% 장담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아쉽다" 혹은 "(기술을 성공하지 못해서) 안타깝다" 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나 싶다. 그렇다면 왜 언론은 무조건적으로 "분하다"고 번역하는 것일까?
우선 네이버사전처럼 "분하다"가 대표적으로 나오기에 굳이 다른 뜻을 찾지 않고 "분하다" 라고 번역한다고 보여진다. 그런데 한국의 모든 언론사에서 일본어에 아주 능숙한 사람이 한두 사람이 아닐 터인데, 이런 것에 대해서 검토를 하지 않고 그냥 넘어갈 리는 없다. 아마도 "아쉽다", "안타깝다" 보다는 "분하다"가 아무래도 한국의 독자들에게는 더 눈에 들어오는 도발적인 제목이 되기에 클릭률을 높이기 위해 이 단어를 선택하는 것도 이유라고 추측해본다.
다음에는 아사다 마오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은데, 아직 아사다의 연령별로 나온 "아사다 마오" 책을 아직 다 구하지도 못하기도 했고, 자료 수집도 더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이번에는 이변을 일으킨 스즈키 아키코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쓰려고 한다. "2인자의 설움"과 거식증으로 인한 오랜 고통과 부진, 피겨 선수로는 환갑을 넘어 칠순의 나이에 최고의 시즌을 맞는 등 스토리가 많은 선수라서 재미있을 것 같다. 다만, 아무래도 스포트라이트에서 비껴나 있던 선수라서 자료수집이 만만치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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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 미키 은퇴 발표
안도 미키가 트위터를 통해서 은퇴에 대한 입장을 표명했다. 거창한 은퇴식도 아니고 조용히 자신의 SNS에 짧게 글을 남긴 것에 불과하지만 복귀 이후 짧은 시간 동안 보여준 의지와 열정은 그녀를 싫어하던 사람들까지도 호의적으로 바라보게 할 정도로 감동을 남겼다. 오히려 2년 넘게 운동을 쉬었고, 출산 후유증으로 체력적인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꿈"을 향하여 최선을 다하는, 그리고 "엄마로서 부끄럽지 않고 싶다"는 의지는 그녀를 응원하게 만들었다. 꿈을 향하여 시작한 7개월의 여정의 결과가 좋지 않게 끝나버렸지만 그녀는 부끄럽지 않게 은퇴할 수 있었다.
아래는 원문
今まで長い間私のスケートを好きになって下さって、どんな時も信じて待っていてくれた。 応援してくれた。 泣いたり笑ったり、時には悔しかったり!!! いろんな想いを一緒に歩んで下さった皆さんに出会えた事、応援して下さった事に感謝しています!!! 最後にまた現役選手としての道に導いて下さり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昨日が今までの選手生活で一番幸せな時間でした。会場に来てくださった、テレビの前から応援して下さった、海外から声援を送って下さった、同じ空の下で皆さんとあの瞬間を一緒に過ごせた事とても嬉しかったです!!! 本当に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またショーなどでお会い出来るのを楽しみに… 愛を込めて…夢の場所に行けなくてごめんなさい…
<어설픈 번역>
지금까지 긴 시간동안 저의 스케이팅을 좋아해주셔서, 어떤 때도 믿고 기다려 주었다. 응원해주었다. 울거나 웃거나, 때로는 억울하거나!!! 여러가지 생각을 함께 하며 걸어와주신 여러분을 만난 일, 응원해주신 일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에 또 현역선수로의 길을 이끌어주셔서 고마웠습니다. ♡ 어제가 지금까지의 선수생활에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회장에 와주신, 텔레비전 앞에서 응원해주신, 해외에서 성원을 보내주신, 같은 하늘 아래의 여러분과 그 시간을 함께 보냈던 일, 대단히 기뻤습니다!!! 정말로 고마웠습니다. ♡ 다음에 쇼 등에서 뵐 수 있기를 기대하며... 사랑을 포함해서... 꿈의 장소에 가지 못하게 되어 미안합니다...
해외의 팬들을 위한 영어로 된 버전도 있다.
Thank you very much to my great fans and supporters to cheers me and supported me, believing me, trust me always for a long time. I am happiest skater to have everyone like all of you!!! Yesterday was the best moment in my skating life . I was really happy to share the my last moment and my challenges with all of you!!! Thanks a lot and I'll see you on the ice soon in some shows;))) love you so much!!! Kiss <333
영어는 그다지 어렵지 않고 내용이 더 단순해서 번역하지 않겠음.
마지막에 올림픽에 가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미안하다는 사과로 대신하는 것을 보니 안타깝다. 미키는 쇼트프로그램에서 5위에 그치면서 역전 우승을 위해서 프리스케이팅의 프로그램 구성을 어렵게 할 수밖에 없었는데, 쇼트프로그램에서도 보였듯이 체력부터 긴 시간을 연기하기에 모자랐고, 이에 계속 점프를 실수하면서 7위로 내려앉고 말았다.
아래는 산스포에서 긁어온 안도 미키의 프리스케이팅 사진
마음이 짠하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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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소치 올림픽 일본 여자피겨 대표선수 확정. 안도 미키는 은퇴 시사
23일 끝난 제82회 전일본선수권대회는 스즈키 아키코가 역전 우승을 차지하며 막을 내렸다. 쇼트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했던 아사다 마오는 점프에서 넘어지며 3위로 내려앉고 말았다. 이와 함께 일본스케이트연맹은 소치 올림픽에 출전할 여자싱글 대표선수 3인을 선정했는데, 예상대로 아사다 마오, 스즈키 아키코, 그리고 무라카미 가나코였다. 현재의 모습만 보아서는 스즈키와 무라카미에 기대를 거는 것이 좋을텐데, 그래도 일본은 아사다를 에이스라고 밀겠지 싶다.
프리스케이팅 영상~
스즈키 아키코
무라카미 가나코
아사다 마오
미야하라 사토코
안도 미키
확실히 긴 공백기는 어찌할 수 없는가 보다. 점프에서도 실수가 잦았고, 스핀은 여전히..
그리고 이것은 일본 대표팀 선발 결과 발표.
남자 선수들은 관심없으니 설명은 생략.
비록 목표했던 바는 이루지 못햇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고 떠났다.
안녕~ 미키
건강하게 잘 살아.
아이에게 아버지는 꼭 찾아주고.
프리스케이팅이 열리기 전부터 화제가 되었던 것은 안도 미키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
본인도 이번 도전이 어렵다는 것을 감지한 모양이다.
쇼트프로그램은 상당히 잘했는데 경쟁자들이 만만치 않고
체력적, 기술적으로 아직 전성기와는 거리가 있음을 느꼈을테니..
(어설프게나마 번역을 해보면)
어제는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이하, 안도의 페이스북에서 인용합니다.
오늘이 딱 나의 선수로서의 마지막 스케이팅.
날아갈 수 있도록...
마음을 담아 탈 수 있도록...
다녀오겠습니다!!!
이렇게 선수로 돌아오는 선택을 이끌어 준 여러분의 응원에 감사!!
Today will may be my last skating as a competitor. I want to fly today!!! And I want to skate with my… http://t.co/EvcABRpeMb
— ♡MIKI_m_ANDO♡ (@M1K1_ANDO) 2013년 12월월 23일
미키가 트위터에 사진과 글을 남겨두었다.
트위터에 들어가면 아침에 찍은 듯한 풍경사진과 함께 그녀의 글이 있다.
아직 공식채점표는 나오지 않았고 여기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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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 미키 2013 전일본선수권대회 쇼트프로그램 5위! 1위는 아사다 마오
아사다 마오
무라카미 가나코
안도 미키
1위부터 5위까지의 채점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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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 엄마 안도 미키의 도전 - 2편 반복되는 고난과 마지막 도전
<2006-2007 부활>
3월에는 몬나 코치에게 점프에 대한 지도를 받았다. 미키가 피겨에 갓 입문하였을 무렵에 몬나 코치는 더블 악셀과 트리플 점프 등 점프의 기초를 가르쳐주었는데, 차차 나이가 들면서 다른 코치들에게 지도를 받으면서도 점프에 흔들릴 때는 몬나 코치를 찾아서 문제점을 찾고 개선하려는 노력을 하였다.
비록 올림픽에서 참담한 연기를 보였다고 하나 미키의 인기가 바로 식은 것은 아니었다. 의류업체 까르띠에의 이벤트에 참여하는가 하면, 도쿄에서 아이스쇼를 갖기도 했고, 졸업 후 고향인 나고야에서는 1일 경찰서장 행사에서 "비행방지 캠페인"에 나서기도 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도요타자동차에 입사하였고, 쥬쿄대에도 사회인 학생으로 입학하면서 어엿한 성인의 삶을 시작한다. 비록 "국민적 기대를 저버린 원죄"가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일본 피겨의 에이스였으며 간판스타였기에, 일부 언론의 편파 보도 및 악의성 보도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인기를 과시했다.
까르띠에 행사에 참여한 미키
한편 쥬쿄대에서는 도요타캠퍼스(아이치현에 위치한 도요타시에 위치. 도요타시는 나고야에서 약 30km 정도 떨어진 도시로, 이름처럼 자동차회사 도요타에서 시의 이름이 유래한 곳)에 미키와 아사다를 위한 전용 링크를 만들기로 했다는 계획을 공식 발표한다.
"안도 미키와 아사다 마오를 위한" 이런 경기장이 건설된다고 발표를 했음.
5월 14일에 사이타마 수퍼아레나에서 "저팬 오픈"이라는 친선 대회에서 아사다와 함께 출전하여 여자부 우승을 차지하는데, 미키는 104.56점으로 4위에 그쳤으나 125.72의 최고점을 받은 아사다의 활약이 빛났다. 그리고 일본스케이트연맹의 특별강화선수에 다시 지정되며, 6월 10일자 닛칸 스포츠의 기혼 남성 800명을 대상으로 한 "미혼이라면 결혼하고 싶은 스포츠 선수는?" 이란 주제의 설문조사에서 프리스타일 스키선수 우에무라 아이코에 이어 2위에 오르면서 인기가 아직 식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이어 여름에는 일본 각지에서 아이스쇼에 아사다 자매, 아라카와 등과 함께 참가하고, 한국에 와서 현대카드 수퍼매치 아이스쇼에 참여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보여준다.
2006 드림 온 아이스 페스티벌에 참가한 미키
아사다 자매와 미일피겨대항전에 참가하기도 하는데 왼쪽이 아사다 마오의 언니 아사다 마이(浅田舞)
마이가 미키와 동년배가 아니었더라면 어떤 결과를 낳았을까.
가장 큰 변화는 2006-2007시즌부터 코치를 문제의 그 사람, 니콜라이 모로조프로 바꾼 것. 모로조프는 기술적인 면 외에 안무와 표현력에 관한 부분에서 지도력을 인정받고 있는데, 과거에는 미셸 콴, 타라 리핀스키 등의 안무에도 참여했던 경력이 있다, 모로조프는 선수로서는 크게 빛을 보지 못하고 부상으로 은퇴한 후, 후일 아사다의 코치로 등장하는 "러시아의 대모" 타티아나 타라소바의 보조코치로 지도자로서 첫걸음을 내딛는다. 그러나 어느 정도 자신의 명성이 알려지자 타라소바와 결별하고 나와서 이미 수구리 후미에, 다카하시 다이스케 등을 지도했고, 아라카와가 예상치 못한 인생경기로 예상 밖의 금메달을 따는 모습을 옆에서 보았기에 그를 선택한 것이라 보인다.
새로운 시즌에서 미키는 첫 그랑프리대회인 스케이트 아메리카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기분좋게 시작한다. 반면 함께 출전한 아사다는 3위에 그친다.
2006 스케이트 아메리카 우승을 차지한 미키
2006 스케이트 아메리카 프리스케이팅 장면
3위 아사다가 오른쪽에 있다.
2008 세계선수권에서 부상으로 연기를 멈추고 기권하는 미키
미키의 2010년 밴쿠버올림픽 쇼트프로그램(프리스케이팅은 영상을 찾지 못해서 ㅠ.ㅠ)
미키는 쇼트와 프리에서 큰 실수 없이 경기를 마치기는 하지만, 모든 출전 선수들이 개인 최고 기록을 넘어 세계기록까지 세우는 깔끔한 연기를 펼치는 바람에 5위에 머무르고 만다. 일본은 에이스인 아사다가 쇼트에서 73.78이라는 고득점을 기록하며 두 대회 연속 금메달을 획득하는 꿈을 꾸게 되지만, 바로 다음에 나온 김연아가 78.50이라는 세계신기록을 세운데 이어, 이튿날에 열린 프리에서는 아사다보다 먼저 나와서 150.06의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사실상 확정지으면서 꿈을 접게 된다. 아사다는 트리플 악셀 3회 작렬을 앞세워 총점 205.50의 자신의 최고 점수로 분전했지만 2위에 만족해야 했다.
2010년 3월 토리노 세계선수권 프리스케이팅
3월에 토리노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는 4년 전의 악몽이 떠올라서였을까 쇼트에서 11위에 그치는 부진으로 프리에서 좋은 연기를 펼치고도 4위에 그치고 만다. 3위를 차지한 핀란드의 라우라 레피스토와는 불과 0.8점차였다.
김연아가 금메달 이후 선수 생활을 계속할 것인지 고민에 빠지며 휴업을 하고, 아사다가 올림픽 후유증과 약점으로 지적된 스핀과 스텝의 기본기를 다지느라 2010-2011시즌에서 존재감을 잃어버린 가운데, 미키는 '호랑이 없는 굴에 토끼가 왕' 이라고 베이징에서 열린 그랑프리 파이널을 제외한 나머지 그랑프리시리즈 두 대회와 전일본선수권, 4대륙선수권, 세계선수권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하며 적어도 이 시즌에서만큼은 피겨퀸이 된다.
<휴식. 그리고 들끓는 열애설>
그러나 2011-2012시즌을 앞두고 미키는 일본스케이트연맹을 통해 "코치, 관계자들과 상의한 결과, 2014년 소치올림픽을 목표로 하는데 있어 이번 시즌은 충전기간으로 삼겠다" 면서 시즌 불참을 선언하게 한다.그랑프리시리즈 불참을 선언한다. 시니어 데뷔 이후 가장 화려한 성적을 올리며 전성기를 누리는 와중에 갑자기 경기에 출전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공식적으로 밝혀진 바는 없지만, 일본 언론의 추측 혹은 보도에 따르면(대개 정보원은 피겨 관계자라고) 모로조프 코치와의 결별이 큰 충격을 주었다는 것이다. 모로조프는 이미 자신이 지도하던 선수와 두 차례의 공식적인 결혼을 한 바 있고, 이에 앞서 동갑내기 선수와 깊은 관계를 가졌던 전력이 있는지라 미키와 함께하는 시간 동안에도 두 사람의 관계가 일반적인 선수와 코치의 관계가 아니었다는 것이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다만 이에 대해 두 사람은 단 한 차례도 이러한 점을 시인하지 않았다). 여러 목격담에 의하면 미키가 역시 모로조프가 다른 여자 선수를 지도할 때마다 링크를 한쪽에서 지켜보고 있었다고 하는데, 그의 여성 편력이 화려한데다, 쭉쭉 잘 빠진 러시아 미녀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으니 신경이 쓰일 법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처음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열애설, 동거설 등을 퍼뜨렸던 언론이 속칭 "찌라시"인 일본의 가십 전문지들이고, 러시아에서도 악명 높은 타블로이드판 신문에서나 보도되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사실무근일 가능성도 없지 않지만,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도 있을 것이고 여러 이유에서 쉬쉬하며 보도하지 않는 것들도 많으니 그 중에서 몇 가지 신빙성이 있어 보이는 것들만 추려서 소개를 한다.
모스크바에서 열린 세계선수권 이후 미키와 모로조프의 결혼설이 터졌는데, 일본매체 주간 아사히는 역시 피겨 관계자의 말을 빌려 "작년 대회장에서 미키가 '이 사람과 결혼한다'며 미소를 띠고 있었고 가까운 친척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모로조프를 소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친척이 "미키가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좋은 것 아니냐"며 교제를 허락하고 있었다" 고 전했다. 모로조프 역시 미키와 함께 미키의 모친을 직접 만나는 등 두 사람의 관계는 결혼에 임박한 것으로 보였으나, 정작 당사자인 모로조프는 결혼에 대해서는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이미 여러 차례의 과거가 있는데다 미모를 자랑하는 많은 여자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었기에 자신을 속박하는 결혼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에 미키가 속앓이를 하다가 모로조프와의 관계를 청산하기로 마음먹었다는 것이 결별설의 요체.
5월 무렵에 미키와 모로조프가 결별을 했는데, 미키는 연인 사이는 끝이 나더라도 선수와 코치로서의 관계로는 계속 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모로조프가 인터뷰에서 밝힌 바로는(역시 출처가 찌라시이기에 신뢰도가 그다지 높지는 않지만) 이미 연인 사이가 끝나서 인간 관계가 파탄난 가운데, 제대로 코칭을 할 수 없어서 거절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 당시 미키는 올림픽 이후 계속 아마추어 선수 생활을 이어가면서 올림픽에 재도전할 것인지, 부담이 적은 프로 선수로 전향하여 아이스쇼를 주로 하면서 경쟁의 압박에서 벗어난 생활을 할 지 계속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 모로조프는 관심을 받을 수 없는 프로스케이터를 지도하는 것을 꺼렸고, 현역선수를 지도하면서 명성을 쌓고 싶은 바람이 있었기에 미키의 코치를 맡는 것도 거절했다고 전해진다.
미키와 난리 야스하루 (안도 미키 트위터)
이후 미키의 트위터에 남자 피겨스케이터 난리 야스하루(南里康晴)와 함께 찍은 사진들이 올라오면서 미키와 난리의 교제설이 새롭게 등장한다. 주간 여성지 세븐은 "모로조프와 헤어진 뒤 상심하던 미키가 난리와 만나게 되었다. 안도 미키와 난리 야스하루는 주니어 피겨선수 시절부터 사이가 좋았고 가족끼리도 친하다. 난리 야스하루가 올해 프로선수로 전향하면서 안도미키와 장래 문제 및 연애문제를 상담하며 가까워졌고 자연스럽게 연인사이로 이어졌다" 고 보도한다. 이에 미키와 난리의 열애설은 (역시 당사자들은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기정 사실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그리고 난리는 올해 초 미키가 낳은 딸의 친부로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꼽힌다.
인터뷰 기사에 실린 안도 미키
그렇게 한 시즌을 날린 미키는 2012-2013시즌에는 복귀를 준비하지만 결국 다시 불참을 선언하게 된다. 지난 시즌 불참 때문에 그랑프리시리즈 출전을 위해 ISU에 서약서까지 제출한 상태였지만, 코치를 구하지 못한 것이 결정적인 원인이었다고 한다. 닛칸스포츠의 단독 인터뷰에 따르면 미키는 모로조프에게 다시 코치 요청을 하였지만, 모로조프는 이에 응하지 않았고, 다른 코치를 선임하려고 했지만 모로조프만한 인물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이에 코치가 없는 상태에서 연습을 할 수밖에 없었고, 기술적인 면이나 정신적인 면에서 조정이 이루어지지 않아 경기를 치를 수 없는 상태라고 말한다. 내년 시즌, 즉 2013-2014시즌을 마지막 시즌으로 삼아 지금까지 응원해준 팬들을 위해 부끄럽지 않은 연기를 하고 싶은 희망을 밝힌다. ISU에 그랑프리 출전에 대한 서약서를 제출한 후, 부상 이외의 이유로 대회에 불참하는 경우 ISU주최의 국제 대회 출전 정지 등의 제재를 받게 되지만, 지금의 상태로는 팬들에게 실망을 주고 다른 선수들에게도 실례가 될 것이라면서, 국제대회가 아닌 국내의 소규모의 대회일지라도 괜찮다면서 팬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마지막 무대를 선보이겠다는 의지를 밝힌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한 시즌이 아닌 두 시즌 연속으로 피겨를 쉬는 것과 여전히 코치 선임에 대한 문제, 그리고 일본스케이트연맹과의 좋지 않은 관계 등으로 인해 사실상 현역 은퇴의 수순으로 받아들여졌고, 그녀에게 남아 있던 관심조차 다른 선수들로 향하게 된다.
<미혼모 스케이터의 도전>
올림픽 직후 극심한 슬럼프에 빠졌던 아사다는 미키가 불참을 선언한 두 시즌 동안 부활에 성공하며, 단연 일본 최고의 선수로 인정받게 된다. 그리고 꾸준히 5위 이내에 랭크되는 스즈키와, 1994년생 신예 무라카미 가나코(村上佳奈子)가 새로운 기대주로 떠오르면서, 아사다의 원톱 체제에 스즈키와 무라카미가 뒤를 받치는 체제로 바뀐다. 주목할 점이라면 여자 피겨선수라면 환갑을 지나 칠순이라고 할 수 있는 28살의 노장이라는 것.
피겨 선수들이 휴식기를 갖는 7월 충격적인 사건이 터졌으니, 미키의 출산 소식이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출산에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밝힐 수 없다는 것.
TV에 보도된 미키와 그녀의 딸 히마와리
언론과 대중은 이 결혼도 하지 않은 처자의 아이 아버지가 누구인가를 밝히는데 불을 켜고 달려들었는데, 두 사람이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었다. 미키와 연인 관계였던(혹은 그렇다고 여겨지던) 코치 모로조프와 그 이후 연인 관계로 알려진(혹은 그렇다고 여겨지던) 난리였다. 아이의 이름인 히마와리(向日葵)가 러시아의 국화라는 이유로 모로조프의 아이가 아닌가 의심을 받았는데, 이에 모로조프는 자신이 아버지가 아니라고 강력히 부인하였고, 나중에 가십성 보도에 능한 매체(속칭 찌라시)에 의하면 출산을 한 병원 관계자가 "혼혈은 아니었다" 고 말했다고 하여 난리에게 혐의가 있다고 여기는 듯하다.
사람들은 이제 아이까지 낳은 미키가 더이상 피겨선수로서 활약을 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이미 다른 선수들이 잘하고 있기에 그녀의 복귀를 기다리지도 않는 상황이라서 이렇게 미키의 피겨스케이터로서의 커리어가 끝나는 듯이 보였다. 출산이 알려지기 이전, 5월 30일 도쿄 요요기 국립경기장 특설아이스링크에서 열린 '아트 온 아이스 2013 재팬' 기자회견에서 안도 미키가 "새로운 시즌에는 선수로 빙판에 나서고 싶다" 면사 소치 올림픽에 도전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는 했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미적지근했다. 그러나 출산 사실을 알린 이후, 미키는 "피겨와 아이 모두 끌어안고 싶다. 올림픽까지 치른 뒤 명예롭게 은퇴할 것" 이라며 포부를 밝힌다. 그리고 나중에 밝혀진 사실인데 1월에 도요타자동차를 퇴사했다고. 도요타에서는 만류하였지만 자신과 관련된 이야기들로 인하여 회사에 누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단다.
복귀 이후 미키의 첫 대회는 독일에서 열린 네벨혼 트로피, ISU의 시즌 캘린더에 포함된 국제대회이기는 하지만 정상급 선수들이 출전하는 그랑프리시리즈보다 레벨이 낮은 대회. 과거 전성기의 미키라면 출전하지 않았을 대회이지만 그랑프리시리즈에 출전이 불가능한 상태이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대회 1주일 전에 발터 리조를 임시 코치로 선임하여 출전하였는데, 미키는 쇼트 2위, 프리 4위, 종합 2위에 입상한다. 출전하는 선수들이 대부분 어리거나 클래스가 낮기에 순위보다는 점수에 비중을 두어야 하는데 59.79/103.07/162.86 으로 평범한 점수였지만 일단 올림픽 출전을 위한 최소 기술점수는 넘기는데 성공한다. 2년의 공백기와 출산 후 복귀임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다고 할 수 있으나, 내용 면에서도 점프의 높이와 회전, 스케이팅 속도, 스핀의 질과 속도 등 모든 면에서 많이 모자라서 남은 기간 동안 기량을 끌어올릴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관동선수권 쇼트프로그램 영상
11월에 열린 동일본선수권에서는 상위 5명에게 전일본선수권 출전 자격이 주어진다. 그러나 미키는 쇼트에서 연속된 점프 실수와 스텝, 스핀에서도 모두 감점을 받으며 41.97로 출전 선수 26명 중 14위에 그친다. 소치 올림픽을 향한 꿈이 여기서 끝나는가 싶었지만, 다음날 프리에서 105.21점을 받아 1위를 차지하며, 종합 2위로 전일본선수권 출전권을 획득했다.
미키는 2주 후 오스트리아 그라츠에서 열린 아이스챌린지에 출전하여 56.78/94.12/150.90으로 2위를 차지한다. 쇼트에서는 선전했지만, 프리에서 점프 등에서 실수를 거푸 하면서 여전히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아이스챌린지 쇼트프로그램
아이스챌린지 프리스케이팅
그러던 미키가 복귀 이후 최고의 경기를 펼친 것이 2주 후, 김연아와 함께 출전한 골든스핀 오브 자그레브였다. 처음으로 쇼트에서 60점대를 기록했고, 프리에서도 110점을 넘겼다. 176.82의 합계 역시 150점 전후를 기록하던 것에 비해서 크게 나아진 모습.
이미 26세가 된 미키에게는 소치올림픽은 마지막 기회다. 딸에게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고 싶다는 미키, 과연 그 꿈을 이룰 수 있을지. 올림픽을 향한 마지막 도전이 여기에서 끝날 것인지, 아니면 생애 세 번째 올림픽에 나갈 수 있을지 오늘 그리고 내일 그녀의 운명을 가를 경기가 펼쳐진다. 그녀의 선전을 기대해본다.
전일본선수권 연습 중인 안도 미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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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 엄마 안도 미키의 도전 - 1편 피겨 신동에서 추락한 아이돌이 되기까지
얼마 전 김연아가 2013 골든 스핀 오브 자그레브 대회 여자 싱글에서 우승했다. 냉정히 말하자면 대회가 비중이 큰 대회가 아니어서 김연아가 출전하지 않았더라면 별로 관심조차 갖지 않았겠지만, '여왕의 귀환' 덕분에 생중계도 되고,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고 지켜보기도 했다. 일본 후쿠오카에서 열린 ISU 그랑프리 파이널과 시기가 겹친 덕분에 이 대회에 출전한 아사다 마오의 성적과 비교를 하기도 했는데, 참가 선수들의 수준도 차이가 있었지만 심사위원들의 면면도 다른 대회였기에 점수를 놓고 비교하는 것에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다.
이제 약 두 달 후에 소치 올림픽이 열리는데 여자 피겨 싱글 부문에서는 김연아와 아사다의 대결로 압축되는 분위기지만, 이 두 선수의 틈바구니에서 적지 않은 존재감을 과시해왔던 안도 미키에 대한 글을 하나 써볼까 한다. 피겨에 많은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안도 미키에 대해서 속속들이 아는 것도 아니지만 "아이에게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고 싶다" 면서 다시 스케이트화를 신고 빙판 위에서 연기를 펼치는 그녀의 말에 애잔함을 느끼며, 안도 미키의 굴곡진 피겨 인생을 잠시 살펴볼까 한다. 분량이 적지 않을 듯한 관계로 두 번에 나누어 글을 쓰려고 하는데 1편은 '피겨 신동에서 추락한 아이돌이 되기까지' 로 미키의 피겨 시작부터 토리노 올림픽 이후까지, 2편은 '반복되는 고난과 마지막 도전' 으로 주인공에서 멀어졌지만 꿋꿋이 버틴 선수 생활과 유종의 미를 꿈꾸는 현재의 모습을 담아볼까 한다. 자료를 수집하고 검토하고 순서대로 배열하다보니 아무래도 시간이 걸려서 미키에게는 운명의 시간이 될 전일본선수권(12월 22-23일)이 끝나기 전까지 글을 쓸 수 있을지 장담은 못하겠지만 가급적 빨리 마무리를 짓도록 노력하려고 한다.
그리고 이 사진 때문에 참 욕을 많이 먹었다지. (사진 : 안도 미키 트위터)
安藤美姫
안도 미키
생년월일 : 1987년 12월 18일(25세. 곧 26세가 된다)
출생지 : 아이치현 나고야시
신장 : 162cm
체중 : 47kg
출신교 : 쥬쿄대학부속 쥬코고등학교 - 쥬쿄대학 졸업
가족관계 : 어머니, 딸
애칭 : 미키티
김연아가 본격적으로 시니어 무대에 출전한 이래, 안도 미키는 일본에서 2인자로 여겨지는 선수. 2인자의 설움은 어디에든 있는 법이지만 안도 미키는 단지 2인자라서가 아닌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에서 저평가를 넘어서 지나칠 정도의 많은 안티 세력을 갖고 있기도 하다. 심지어 미키(美姫)라는 이름에서 姫라는 글자가 일본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재일한국인이 아닌가 하는 근거 없는 소문까지 나돌 정도. (미키라는 이름이 일본에서 흔한 이름이지만 한자로 쓰는 이름자는 美貴, 美喜, 美希, 美紀, 美樹 등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외모를 보면 아무리 보아도 일본인이다.
이런 멀쩡한 사진이 있음에도 구글링을 조금만 해보면 온갖 굴욕 사진을 찾을 수 있고, 악의적으로 합성한 사진도 적지 않다. (사진 : 마이니치)
어릴 적 사진 같은데 안티팬들이 자주 사용하는 사진 중의 하나.
국내 언론에서도 이와 관련된 사진을 기사로 낸 적이 있다.
심지어 이렇게 괴상망측하게 합성한 사진도 떠돌아다닌다.
이런 짓을 하면 즐거울까?
<피겨 신동의 유년기와 주니어시절>
친구를 따라 8세 때 스케이트에 입문하였는데,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를 잃고 만다. 당시 배우던 코치의 추천으로 몬나 유코(門奈裕子)코치에게 가르침을 받으면서 다음 해에 더블 악셀을, 그다음 해에는 트리플 살코와 트리플 토루프를 익힌다. 11세가 된 1998년, '아이치현 지사상 쟁탈 대회'라는 작은 대회에서 우승하며 자신감을 얻고 전국 무대에로 진출한다. 이어지는 1998-1999시즌에 전일본노비스선수권 B클래스에서 3위를 차지하고, 1999-2000시즌에는 다이에 OAC 컵 대회에서 우승, 노비스 선수권 A 클래스 우승하고, 12세가 되기를 며칠 앞두고 열린 전일본피겨스케이트주니어선수권에서 7위를 차지하며 피겨 신동으로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한다. 2000년부터는 요코하마의 사토 노부오(佐藤信夫) 코치에게 지도를 받으며, 3회전 러츠-3회전 루프를 익히고 노비스 선수권 2연패에 성공하고, 전일본피겨스케이트주니어선수권에서 3위에 입상한다. 당시 미키(일본인의 이름을 줄여서 부를 때 성을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여기서는 친숙하게 이름을 부르기로 함)의 나이는 만 13세가 되기 20일 정도 남겨둔 때였다. 그 밖에도 여러 대회에서 우승 혹은 상위권 입상의 호성적을 남기며 13세가 된 2001년 4월, 미키는 일본 스케이트 연맹 주니어 강화 선수로 선발된다. 이미 악셀을 제외한 3회전 점프 5종(러츠, 플립, 토루프, 루프, 살코)를 모두 익힌 재능을 눈여겨보고 기대주로 점찍은 것.
2001-2002시즌부터 미키는 놀라운 활약을 보여주는데, 2001년 9월 체코 오스트라바에서 열린 ISU 주니어그랑프리에서 쇼트 3위, 프리 1위, 종합 1위로 우승컵을 차지한데 이어 11월에는 스웨덴 말뫼에서 열린 ISU 주니어그랑프리에서는 쇼트, 프리, 종합 모두 1위를 차지하며 일본을 넘어 세계 무대에서도 통하는 기대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3주 후에 열린 전일본주니어선수권에서 쇼트, 프리, 종합 1위를 석권, 12월에는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쇼트 2위, 프리 1위, 종합 1위로 우승하며 출전한 그랑프리대회를 모두 우승으로 마감하는 괴력을 선보인다. 제70회 전일본피겨스케이트선수권대회에서는 3위를 차지하는데 1위는 미키보다 7살 연상의 와세다대학 소속 대학생이었던 수구리 후미에(村主章枝), 2위 역시 같은 와세다대학의 선수이자 2006년 토리노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6살 연상의 아라카와 시즈카(荒川静香)였다. 참고로 4위는 종종 국제 경기에서도 볼 수 있는 당시 16세의 스즈키 아키코(鈴木明子), 5위는 스즈키와 동갑내기 나카노 유카리(中野友加里)였다. 이 대회는 일본 전역에 TV로 중계되면서 미키가 전국적인 스타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된다. 2012년 2월, 전국 중학생 피겨선수권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3월에는 노르웨이 하마르에서 열린 ISU 주니어 피겨스케이팅챔피언십(세계 주니어선수권)에 출전하여 3위에 입상한다. 많은 기대가 부담이 되었던 것인지, 경기 전날 열이 오르는 등 컨디션 조절에 실패했다고 한다. 이 대회의 우승자는 한국계 입양아라는 미국의 앤 패트리스 맥도너, 2위는 나카노 유카리.
2002-2003시즌에는 미키의 전매특허이자 결국 선수생활 커리어에 있어 자신의 발목을 잡게 된 4회전 점프를 선보이게 된다. 우선 2002년 4월, 미키는 주니어만이 아닌 시니어 부문에서의 강화 선수로도 선발된다. 당시 14세 4개월의 나이라서 시니어 자격이 주어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연맹이 좋게 말하면 초유망주의 집중 관리에 나선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설레발을 친 것이다. 과거에도 주니어와 시니어 강화 선수로 중복 선정된 경우가 있다고 하나 최연소 케이스이며, 아직까지 이 기록을 깨는 선수는 없다고 한다. 미키는 이미 오래 전에 트리플 5종을 습득하고 트리플 악셀까지 익힌 상태여서 이 점프를 더 연마하여 성공률을 높이고 연기를 가다듬을 필요가 있었는데, 여기에 그치지 않고 더 강력한 점프를 익히게 된다. 이른바 4회전 점프, 쿼드러플 살코와 쿼드러플 루프를 익혔단다. 2002년 9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ISU주니어그랑프리에서 쇼트 3위, 프리 1위, 종합 1위로 우승을 차지한다. 시즌을 준비하면서 프리스케이팅에서 4회전 점프가 프로그램에 들어가 있었지만, 쇼트에서 3위에 머물러 부담감이 큰 탓에 프리에서 4회전 점프를 3회전으로 바꾸어 출전했고 클린 연기를 펼치며 역전 우승에 성공한다. 10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ISU주니어그랑프리에서는 쇼트 2위, 프리 1위, 종합 1위로 역시 우승. 이 대회에서는 과감하게 프리에서 쿼드러플 살코를 시도했지만 착지에 실패하였다. 그러나 이에 앞서 더블 악셀과 트리플 러츠-트리플 루프에 이어 트리플 플립을 성공시키며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11월에는 서일본 주니어 선수권과 전일본 주니어 선수권에서 전 부문 1위로 연속 우승을 차지한다. 12월에는 일본스케이트연맹의 요청에 따라 ISU 그랑프리 NHK 트로피에서 본대회가 아닌 홍보를 위해 전시성으로 나와서 쿼드러플 살코를 성공시키기도 했다.
NHK트로피 (번외)에서 쿼드 살코를 성공시킨 미키.
당시 프로그램 구성은 2A , 4S , CoSp , 3Lz +3 Lo , 3Lo , SpSq , CCoSp (소요 시간 : 3 분 15 초)
그러나 이런 행사에 참여한 부작용이었을까 곧이어 참가한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오타 유키나(太田由希奈)와 캐롤라인 코스트너(이탈리아)에게 밀려 3위에 그치고 만다. 이 대회의 유일한 수확이라면 여자 최초의 4회전 점프를 공인받은 것인데, 프리스케이팅에서 쿼드러플 살코를 성공시켜 여자 싱글 사상 최초이자 (현재까지는)최후의 4회전 점프를 인정받았다. 다음 주에 열린 전일본선수권에서는 전년보다 두 계단 하락한 5위에 그치고, 2003년에 체코 오스트라바에서 열린 ISU주니어챔피언쉽에서도 오타 유키나에게 밀려 전년보다 한 단계 상승한 2위를 차지하는데 만족하게 된다. 그러나 전무후무한 4회전 점프를 보여주면서 일약 전국적인 스타로 떠오르게 된다. 모닝구무스메의 후지모토 미키(藤本美貴)의 애칭이었던 "미키티(ミキティ)”가 안도 미키에게도 따라붙게 된다. (얘들 말고도 미키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에게 미키티라고 부르기도 하더라만..)
2003-2004시즌은 주니어 대회를 평정하고 시니어 대회에도 발을 내딛기 시작한 시기였다. 9월 멕시코시티, 10월 일본 오카야시에서 열린 ISU주니어그랑프리에서 우승을 차지한데 이어, 11월에 전일본주니어선수권에서 쿼드러플 살코를 앞세워 3연패를 달성한다. 12월에는 스웨덴 말뫼에서 열린 그랑프리 파이널까지 우승하며 2년 만에 정상의 자리에 오른데 이어, 전일본선수권마저 우승을 차지하며 시니어 대회에서 첫 우승(쇼트 2위, 프리 1위, 종합 1위)을 차지한다. 이 대회에서 프리스케이팅에서 쿼드러플 살코, 트리플 러츠-트리플 루프, 트리플 토루프-트리플 토 루프의 1쿼드 6트리플 구성을 완벽하게 성공시키며 절정에 오른 기량을 자랑한다. 2004년 3월에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ISU 주니어챔피언십에서 드디어 우승을 차지하고, 전일본선수권 우승자의 자격으로 참여한 ISU세계피겨챔피언십(세계선수권)에서 4위에 오른다. 이 대회의 우승자는 아라카와 시즈카, 2위는 샤샤 코헨(미국), 3위는 미셸 콴(미국).
주니어 그랑프리파이널 (2003.12)
전일본선수권대회 (2003.12)
세계선수권 (2004.3) 쇼트프로그램
세계선수권 (2004.3) 프리스케이팅
마샬스 세계 스케이팅 챌린지(2004.4) 프리스케이팅
세계선수권 이후 미국의 마샬스 세계 스케이팅 챌린지에도 출전하는데, 이 대회에서도 코헨, 아라카와, 콴에 이어서 4위를 차지한다. 경험이 일천한 미키가 두 대회 연속으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콴과 일본의 백전노장 아라카와, 그리고 미국의 최고 선수였던 코헨에 이은 4위라는 성적은 자신감을 가질 만큼 큰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본격적인 시니어무대 활약>
16세가 된 2004-2005시즌부터는 주니어 대회는 제쳐두고 시니어 대회에 출전하게 된다. 이미 경쟁자가 없는 주니어 대회에 참가하는 것은 시간 낭비에 불과한 것이나 다름없는데다 2006년에 토리노 올림픽이 열리기에 시니어 대회의 적응이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결과만 놓고 본다면 이 시즌에서 우승은 국내 대회인 전일본선수권이 유일했다.
그랑프리시리즈에 앞서 현지 적응 겸 경험을 위해 출전한 캠벨스 인터내셔널 클래식에서 콴, 아라카와, 코헨에 이어 4위를 차지한다. 그랑프리시리즈에서는 첫 대회였던 미국 피츠버그에서 열린 스케이트 아메리카에서 3위에 오른 것자국에서 열린 NHK 트로피에서 아라카와 시즈카에 이어 2위에 오른 것을 제외하면 메달권 입상에 실패하고 말았다. (세 번째로 참여한 그랑프리시리즈의 중국 대회에서는 4위에 그친다)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도 4위에 그쳤고, 전년도에 4위에 올랐던 세계선수권에서도 6위로 뒷걸음을 치고 만다. 그러나 시니어 무대에서의 첫 시즌이었음을 감안하면 선전했다고 볼 수 있는데, 특히 NHK 트로피의 프리스케이팅에서 자국민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이 컸다. 쇼트에서 1위였던 아라카와에 13.3점이나 뒤진 3위에 그쳤던 미키는 프리에서 119.46점을 기록하며 최고점을 기록하며 2위로 뛰어오르게 된다. 3회전 러츠-3회전 루프-2회전 토루프라는 최고 난이도의 3단 콤보를 성공시키며 GOE 15.2점을 기록했는데 이것은 여자 피겨에서 한 번의 점프에서 기록한 점수 중에서 최고점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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