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저녁까지 잠을 이겨내려고 애쓰다가 늦게 잠들었더니 아니나다를까 늦게 일어났다. 모처럼의 꿀잠이지만, 기껏해야 닷새 밖에 되지 않는 시간을 막 쓰다니 아쉬움도 없지 않지만, 일단 살고 보는 것이 먼저다. 이틀 연박이라 체크아웃의 압박이 없었기에 다행이지 하루만 묵는 것이었다면 낭패를 볼 뻔했다. 프런트에서 체크아웃 시간이 되었다고 전화오고 허둥대느라 정신이 없었겠지.

로비에 내려갔을 때 호텔에서 무료로 제공하는(사실 이게 호텔 숙박비에 포함되어 있어 미리 지불한 금액이겠지만) 아침 식사 시간이 이미 끝난 뒤라서, 물 한 잔 마시고 커피 한 잔 종이컵에 따라서 방으로 올라와서 다시 침대 위에 엎어졌다. 잠시 뒹굴거리다 할 일은 해야 하니, 잘 켜지지 않는 넷북을 겨우 켜고 배송사에 보낼 상품 리스트 작성을 시작했다. 상품별로 원산지와 재질, 단가 등을 분류하고 개별 단가를 입력해야 하는데, 이상하게 납품수량이 맞지 않아서 여러 번 반복해서 점검한 끝에 일단 저장해 놓고 침대로 돌아가 누웠다.

너무 적막한 것 같아서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있는데, 전 일본 야구 선수 키요하라 카즈히로(清原和弘)가 각성제 복용으로 체포되었다는 뉴스가 나온다. 키요하라라는 이름을 알게 된 것은 만화 H2 덕분인데, 이 만화의 주인공인 쿠니미 히로와 타치바나 히데오의 실제 모델이 80년대 야구선수 쿠와타 마스미(桑田真澄)와 키요하라 카즈히로라는 이야기 때문. 일본 야구를 처음 방송으로 접한 91년의 한일수퍼게임 이후, 15년이 지나 이승엽이 요미우리에서 활약할 때나 TV중계를 볼 수 있었고, 그 이전에 일본에 진출해 활약했던 선동열, 이종범 등도 스포츠뉴스에서나 짧게 나올 뿐이었으니. 그리고 그 밖에 각종 사건사고 뉴스가 나오는데, 뭐 이 나라에도 이상한 녀석들이 많고 조용할 날은 없는 것 같다.


키요하라 용의자 체포에 대한 TBS뉴스23 캡쳐화면 (인터넷에서 캡쳐화면을 구해왔음)

일을 하다보니 세 시간 정도가 훌쩍 지나가서 어느새 점심 시간이 되었다. 어쩐지 배가 고프더라니. 어제 사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도시락을 하나 꺼내서 청소 중인 로비에 내려가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방으로 들고 와서 먹었다. 어제 점심부터 계속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있으니 기분이 참 별로다. 어디로 가야할 지도 모르겠고, 나가서 밥을 먹고 오기는 시간이 아깝기도 하니 그냥 이렇게 때운다.

먹고 나니 배가 부르고 다시 피곤이 몰려온다. 아예 넷북을 침대 위로 들고와서 저장해 둔 파일을 다시 확인한 후 이상이 없는 것 같아서 메일을 보낸 뒤 덮어두고, 잠시 휴식. 마음 같아서는 명절 기간에 조용한 곳에서 산책이나 하고 저녁이면 온천에나 다녀오면서 쉬고 싶은데, 그럴 상황도 아니고 설날 전날 밤에 돌아가서 이것저것 할 일이 많고, 여기서 처리해야 할 일도 있고 해서 머리가 복잡하다. 가만히 엎어져 있다보니 해가 짧은 겨울이 아니랄까봐 아직 일몰 시각까지는 조금 남았지만 해가 슬슬 서쪽으로 넘어가는 것이 보인다.

고작 4박 5일 일정에서 첫 날을 딱히 한 것 없이 이동에 시간을 다 보내고, 다음 날 반나절을 일하느라 다 보내고 엎어져 있다가 어느덧 오후 5시가 다 되어가니 이렇게 시간을 보내기는 아깝다 싶어 씻고 나갈 준비를 했다. 매년 몇 차례 일본을 드나들게 되면서, 소위 유명 관광지라는 곳들은 대부분 다 가보았고, 종종 (의도하지 않은) 현지인 코스프레를 하면서 외국인 티를 내지 않고 지내지만 엄연히 외국인 관광객 아니던가.

교토역 방향은 대충 알았으니, 어제 왔던 길 대신에 다른 길로 교토역 쪽으로 가기로 한다. 교토역 주변의 교토 시내는 바둑판처럼 설계가 되어 방향을 알면 어지간한 길치가 아니라면 찾기 쉬운 편이다. 길을 못 찾기로 유명한 나 같은 사람이야 몇 번 오간 끝에 겨우 익히게 되었지만, 교토 시내의 랜드마크라면 JR교토역이나 교토 타워를 꼽을 수 있겠는데, 이 두 건물의 사이에 동서로 펼쳐진 대로는 시오코지(塩小路)다. 이 시오코지에서 한 블럭 북쪽으로 가면 시치죠(七条), 남쪽인 교토역의 남쪽 반대편 출구로 가면 하치죠(八条)가 나온다. 하치죠 남쪽으로는 토지(東寺) 외에 도보권에 있는 관광지는 없고 대부분이 북쪽에 있다.

남북의 구분을 죠(条)로 한다면 동서의 구분은 조금 까다로운데, 주요 교차점을 중심으로 남북을 잇는 큰 길인 "~도리" 를 중심으로 구분하면 쉽다. 교토역 중앙 출구로 나와서 교토 타워 쪽으로 난 길은 카라스마도리(烏丸通)를 중심으로 서쪽으로 신마치도리(新町通り), 오미야도리(大宮通り), 호리카와도리(堀川通り) 등 남북방향으로 나 있는 길로 구분된다. 그래서 교토에 있는 어느 건물의 주소를 보았을 때, 교토부 교토시 무슨무슨구 다음에 ~죠와 ~도리로 대충 어느 방향에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교토 시내의 주요 관광지라면 금각사와 은각사로 잘 알려진 킨카쿠지(金閣寺)와 긴카쿠지(銀閣寺)절을 비롯 역시 청수사로도 잘 알려진 키요미즈데라(清水寺)와 니죠성(니죠죠.二条城)을 꼽을 수 있겠는데 겨울에는 대개 이런 곳들이 오후 4~5시에 문을 닫으며, 마지막 입장은 폐문 30분 전까지만 받아서 갈 곳은 딱히 없다. 교토 시내를 대중교통으로 돌아다니며 이런 관광지들을 둘러볼 계획이 있다면 이른 아침 출근시간부터 버스를 타고 열심히 돌아다녀야 많은 곳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다. 그나마 키요미즈데라는 늦게까지 문을 열지만, 그 시간에 가면 어두워서 눈에 보이는 것이 별로 없다.

아무래도 딱히 가려는 곳이 없으니, 자연스레 직업병이 도져서 교토역 앞 사거리 건너편에 있는 요도바시카메라 교토점에 갔다. 이곳은 특이하게도 요도바시카메라 멀티미디어 교토(ヨドバシカメラマルチメディア京都)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데, 요도바시 지점들이 카메라와 가전제품 등만 판매하는 것이 아닌지라 다른 요도바시카메라 다른 지점과의 차이는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별 관심없는 분야의 상품까지 뒤지고 다닐만큼 한가하지도 않으니, 여기저기 오락가락하면서 상품 트렌드를 살펴보는 정도. 그리고 요도바시에서 무료 와이파이를 잡아서 사용할 수 있으니 메일 확인도 하고.

아침을 굶고 아점으로 도시락을 먹은 것이 전부인지라 배는 고프고, 어느덧 저녁 시간이 되어서 일단 교토역으로 건너갔다. 언제나 그렇듯 맛집을 찾아놓고 꼭 거기에 가서 밥을 먹을 만큼 계획적이고 치밀한 성격이 아닌지라 지하철과 연결된 교토역 지하상가 포르타(PORTA,ポルタ) 식당가를 살펴보면서 무엇을 먹을지 찾아본다.

지하철 교토역에서는 교토시 와이파이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 음식점 정보나 찾아볼까 싶어 접속했더니, 운송사에서 납품할 상품을 발송하였는지 통보가 오지 않는다는 연락이 와 있다. 그 일 때문에 호텔 방 안에 갇혀 하루 절반을 날려먹었는데 짜증과 분노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설 연휴는 한국이나 중국 등의 동아시아권의 일부 국가만 쉬기에 그 기간 동안 국제화물은 이와 상관없이 운송이 진행되고, 납품처에 배송정보를 전달해야 하는데 이렇게 배송업체가 이렇게 배를 째고 있다니 환장할 노릇. 한국에 있는 동료에게 오늘이 연휴 전 마지막 영업일이라 연락이 되지 않으면 일이 꼬일 수 있으니 계속 연락을 시도해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배송정보를 알아내라고 길길이 날뛰었더니, 사태의 심각성을 느꼈는지 어떻게든 책임지고 연락하여 회신을 받아두겠다고 한다.

그제서야 겨우 성질을 가라앉히고 여기에 저녁을 먹으러 왔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린다. 식욕은 반감된 상태이지만 그래도 뭐라도 먹어두어야 밤중에 배가 고파 잠을 못자는 일을 막을 수 있으니. 한국요리집도 있고, 라멘 가게도 있고, 스시 가게도 있고, 여러 음식점들이 있는데, 교토라고 하면 역시 두부요리 아닌가 싶어서 이 곳으로 정했다.


먹고 나와서 찍은 사진이라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데, 들어갈 때는 사람이 없어서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쿄료리(京料理.교토요리) 만시게(萬重)라는 가게.

교토는 두부요리가 유명하니 두부가 들어가고 따끈한 음식을 먹고자 들어갔다. 일본 음식점 답게 따뜻한 녹차와 일회용 물수건인 오시보리(お絞り)가 나온다. 들어가기 전에 이미 가게 바깥에 있는 음식 모형을 보면서 무엇을 먹을지 결정을 했지만, 다시 메뉴판을 들여다보다가 마음을 바꾸지 않고 처음에 정했던 아야(綾)를 시켰다. 일본에 와서 식은 음식을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먹는 것이 아닌, 막 따뜻하게 조리한 음식을 처음 먹게 되는 순간이다. 한국에서도 정신없이 일하다보면 식당에 가기 귀찮고, 배달 음식은 거기서 거기인지라 편의점에서 도시락 사서 데워 먹고 그러는지라 식당에서 먹게 될 음식이 반갑다.


요정(料亭.요리집)의 맛 "시-타케콘부(椎茸昆布)" 를 기념품으로 광고하고 있다. 

시-타케(椎茸.표고버섯)과 콘부(昆布.다시마) 절임 음식인 듯하다.


기다린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음식이 나왔다.


밥그릇이 잘린 것 같아서 다시 찍었는데 두부가 잘림.


콩물에 두부, 버섯, 야채 등을 넣고 끓인 나베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확실하지 않지만, 유바는 없었던 것 같다.


끝장을 내버렸음


아야(綾). 실제 음식이 모형과 거의 비슷하게 나온 것 같다


가운데 있는 1,700엔(세전) 짜리 음식.

세금 포함하면 1,836엔이라는 이렇게 비싼 음식을 먹는 호사를 누리다니..

밥값하려면 열심히 일해야겠어요.


밥을 먹으니 배가 부르고, 배가 부르니 잠이 온다. 그래서 기분 좋게 잠을 자기 위해 열차를 타러 간다.



 잠꾸러기의 원포인트 가이드

<京料理 満重 (쿄료리 만시게)>

만시게라는 곳을 나중에 구글에서 찾아보니 포르타에 있는 점포는 분점이고, 본점은 니죠성 북쪽에 있다고.

포르타점은 교토역 지하에서 쉽게 찾을 수 있으니, 여기서는 가보지도 않은 본점에 대한 정보를.

주소 : 京都府京都市上京区大宮通上立売下る芝大宮町9-1

전화번호 : 075-441-2131 (11:30~19:30까지 입점)


뭐 이렇게 생겼다고 한다.

이 음식점의 홈페이지 주소는 http://www.kyoryori-manshige.co.jp

가격은 카이세키요리(会席料理) 위주의 파는 본점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점심 식사만 해도 4~5천엔 정도이고, 카이세키요리는 이보다 2~3배 더 비싼 고급 음식점으로 보인다. 이에 반해 주로 식사 위주의 포르타점은 대충 1,000~2,000엔 선에서 괜찮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 같으니 주머니가 풍족하지 않은 사람들은 여기를 먼저 들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잠이 오지 않습니다. 게임도 준비해야 하는데
가슴이 답답하고 제게는 참 혹독합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제가 팀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바로 알려드리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글로써
알려드릴수는 없지만 그래도 한번 써보려고 합니다. 이 글을 통해 저에 대한 논란의 많은 부분을 풀어질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프로 야구를 잘 아시는 분들은 이미 충분히 아실거라 생각됩니다만 모르는 분들을 위해서 다시 한번 간략하게 전력분석팀의 역할에
대해 정리해 보겠습니다.

캠프등 비시즌 기간에는 선수들의 훈련을 돕습니다. 연습 인원과 연습량이 시즌과는 다르기 때문에 부족한 일손을 아무래도 선수 출신이 대부분인 전력분석파트 도 함께 도와줍니다. 아직은 운영 규모가 크지 않은 국내구단 대부분이 비슷한 운영을 합니다. 

그리고 시즌을 준비하는 과정에 들어가면서 조금씩 본연의 전력분석 업무를 시작합니다.

야구계를 포함해서 의외로 전력분석 업무에 대해서 현실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고 모르는 분들이 계시더군요. 물론 이것은 각 팀의 담당파트의 경쟁력이 다르고 또 팀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이렇다라고 한마디로 정리해서 쉽게 말씀드리기가 어렵기는 합니다. 

하지만 제 스스로가 전력분석이라는 한 분야에서 20여년간을 종사하면서 얻은 전력분석에 대한 나름의 큰 정의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이 부분은 선진 야구인 미국과 일본의 시스템을 보고 듣고 공부하면서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

팀에서 전력분석파트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외부(타팀)의 정보와 내부(한화)의 정보를 폭넓고 깊게 다루며 이를 분석한 내용들을 기반으로 하여 경기에 대한 플랜을 만들어 팀과 선수들이 게임을 플어가야 하는 방향을 앞서 제시하는 겁니다. 

쉽고 간단히 일반적인 예를 들면 배터리들에 게는 상대타자들을 어떻게 상대할 것인지, 타자들에게는 어떻게 상대투수들을 공략할 것인지, 그리고 수비수들에게는 어떤 주의 사항들이 있는지 알려주고 그에 따라 해야 할 행동들을 숙지시키고 확인하는 것 입니다.

물론 당연스럽게도 분석팀의 게임에 대한 플랜은 게임 전의 플랜이고 경기에 들어가서는 경기 플랜을 중심으로 순간순간 달라지는 각 상황에 맞게 선수들과 담당 코칭스탭들이 판단하고 응용하여 움직이게 됩니다. 그리고 경기가 끝나면 결과에 대해 경기전 플랜과 게임중 실행과정에 대해 피드백을 하게 됩니다.

아마 여기까지만 읽으셨어도 제가 왜 팀 밖에 있는 야구계의 일부 관계자분들을 비롯 많은 분들에게 오해 아닌 오해의 시선을 받을 수 밖에 없는지 대략 감이 오실거라 생각합니다.

앞서 간단한 예로 들어 드렸지만 상대타자 공략에는 투수와 배터리코치, 상대투수 공략에는 타격코치와 주루코치, 또 수비와 관련해서는 수비코치와 각 역할이 겹쳐질 수 밖에는 없습니다. 이 미묘한 관계의 해법은 20년간을 해왔지만 평소 생각이 많고 말이 많지 않은 제 성격상 가장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경기 준비를 위해 주어진 시간은 서로에게 충분치 않고 중복된 얘기는 선수들에게 피로만 느끼게 할 뿐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불가피한 환경적인 요소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특별한 사항이 아니고서는 분석팀을 대표 창구로 선수들에게 이야기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 과정을 밖에서 잘 알지 못하고 볼 때 월권행위로 오해 받을 수 있고 그렇게 비춰질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작년 시즌에는 감독님을 포함 대부분의 스탭진이 1군 경기에 공백기가 있어서 부득불 앞에 나서는 일이 많게 되었습니다. 결국 팀 사정에 맞게 감독이 팀의 이익을 위해 도움이 된다고 판단해 지시를 하신 것 입니다. 

그 근거를 굳이 얘기하자면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2014시즌 128경기를 시즌 시작전 전부 봤습니다. 따라서 제 머릿속에는 남들이 갖지 못한 많은 정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2015시즌을 통해서도 상대팀에 대한 정보를 연전마다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 했습니다. 야구의 전부가 정보는 아니지만 분명 다른 팀이 가질수 없는 경쟁력을 가질수 있었다는 것에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단, 이것을 쓰고 안쓰고 또 어떻게 쓰는가 에 대한 것은 감독의 권한이고 팀 문화입니다. 제가 거쳐온 LG 11년간, SK 9년간은 당시 모셨던 감독님과 코치님들 그리고 구단 프런트의 도움을 받아 팀문화로 정착되었고 높은 성과를 올렸습니다. 사실 그것이 발단이 되어 각팀도 전력분석팀을 만들고 역할과 역량을 격상시키는 움직임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어쩌면 업계에서는 선구자 역할이 된 셈입니다. 

글의 요지에는 조금 벗어나지만 저는 비록 선수로서 야구는 다치고 못해서 일찍 접었지만 그후 한 길을 걸어왔고 국내에서는 가장 오래된 경력자이지 싶습니다. 

저에게는 전력분석 파트와 그에 속한 많은 후배들에게 보다 발전적인 비젼을 만들어 주어야 하는 책임과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더 나아가서는 프로야구 발전에도 분명히 도움이 되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걸어갈거고 또 걸어가고 싶습니다.

글이 길어지지만 논란의 중심이 되는 부분을 들어서 제 얘기를 조금 더 하겠습니다.

제가 캠프때 불펜에서 투수들의 공을 받거나 감독님의 지시로 선수들을 지도했다는 것에 대한 것 입니다.

먼저 제가 불펜에서 투수들의 공을 받고 있는 이유는 이미 SK시절 매스컴을 통해서 대략적인 내용이 밖으로 알려져서 알고 계신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하지만 조금더 자세히 얘기해 보겠습니다. 

우선 투수들의 공을 직접 받게 된 배경은 저는 아시다시피 현역시절 입스에 걸려 선수들의 훈련을 돕는 그 쉬운 베팅 볼을 던져주지 못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
생하는데 나만 편히 있을수도 없고 불편한 마음에 그래서 뭔가 도움을 줘야 한다는 마음으로 처음 받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무섭지 않냐고. 무섭습니다. 그리고 힘듭니다. 하지만 지금 위치와 나이의 저에겐 받고 안받고는 선택사항이겠지만 어린 시절 저에게는 야구단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선택이었습니다. 

그 선택은 당연하게 투수들의 공을 직접 받으면서 제가 선수들에게 이야기 해주는 분석의 질적인 부분도 향상되었습니다. (아직은 국내 현실이 상업성이 높은 미국과 달리 현대화 과학화에 뒤떨어집니다. 좀더 사정이 나아진다면 굳이 받지 않아도 다른 방법이 있다는 것도 압니다. 이렇듯 현실상의 문제도 있지만 저는 손으로 아픔으로 직접 느껴서 얻는 정보가 아직은 더 믿음이 가고 저보다 과학적인 환경 혜택에서 동떨어져 있는 선수들과 공감대 형성에 맞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시작된 불펜포수 역할은 제가 팀에 있으면 캠프때부터 시즌전까지 늘 제 역할의 한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실천해 왔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투수들의 공을 직접 받으면서 그 소감을 투수와 서로 이야기하고 이해하고 내 생각을 조언합니다. 또 다른 훈련일정이 많은 포수들에게 투수들의 현 상황을 알려 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제가 우리를 누구보다 자세히 알아가는 정보 수집의 과정입니다. 

아마도 이러한 부분이 제가 업계에서 인정받으며 지금껏 한 분야를 파고 들수 있게 해주었던 핵심요소 일 것 입니다. 

결국 글이 또 길어졌습니다. 마음이 급하고 답답한가 봅니다.

마지막으로 시즌 중에 제가 그라운드에서 선수들의 타격과 투수들을 지도하는 경우는 기본적으로 없습니다. 물론 제가 어릴 때 팀과 선수에 대한 열심이 지나쳤던 기억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새로운 팀문화인 한화에 와서는 무엇보다 신경 쓰고 주의하고 있는 부분 중에 하나가 바로 선수 지도의 부분입니다. 

그럼에도 매스컴을 통해 알려진 것들은 첫째는 이번 캠프 때처럼 어린 포수들의 1단계 기본(송구동작 관련)을 봐주라는 일시적인 감독님의 지시입니다.

솔직하게 감독의 아들이라는 부분을 떠나 전 팀의 일개 코치입니다. 저의 팀에서의 일거수 일투족이 왜 이렇게 주목을 받아야 하는건지 알 수 없습니다. 코치인 전 감독의 결정과 지시에 따라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혹여 잘못 움직이고 있다면 감독이하 수석코치 등 선배 코치님들께 주의를 들었고 그 잘못을 수정했습 니다, 이 사실은 누가 감독이어도 똑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역량에 대해서는 제 스스로가 야구는 비록 못했지만 프로야구판의 밑바닥부터 하나씩 배우며 기어 올라온 야구인으로서의 제 삶에 자신있고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저를 평가, 판단할 수는 없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감독이 팀의 사정과 형편 그리고 제 역량을 판단하고 역할과 그 영역을 결정하고 지시합니다. 그 자리에는 저를 포함 다른 코치들도 함께 합니다. 그리고 저는 주어진 제 역할과 임무에 대해 누구보다 충실히 해야 하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둘째는 캠프시 연습 인원과 연습량이 많아 일손이 딸려서 부족했던 스탭 인원의 보충 역할이었습니다. 가끔 펑고를 쳐주기도 하고 팀 수비훈련시 단순히 공을 굴려주는 역할도 했습니다. 또 지난해에는 선수 출신인 제가 뉴앙스가 애매한 기술적인 부분의 일본어 통역도 이전 경력도 있고 해서 일시적으로 한 적도 분명히 있습니다. 

저에게는 팀과 그 안의 선수가 최우선이라는 한가지 변하지 않는 원칙이 있습니다. 제가 여러 사태들에 대한 긴 글을 쓰는 이유도 같습니다.

따라서 저는 팀에서 제게 주어진 역할에 대해서는 제 능력 닿는 한 모든 열정과 최선의 힘을 다하려고 합니다. 피는 못 속인다고 저또한 일에 대한 열심과 열정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지지않는다 생각합니다. 집중하고 몰입합니다. 그 모습들을 잠깐 지켜보고 말하기를 조심하지 않는 이들에게 곱지않은 시선과 오해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도 나이를 드니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제게 최우선은 팀이고 그안의 선수들입니다. 조금이나마 팀과 선수들에게 도움이 되고 좋아질 수 있는 계기가 될수만 있다면 가지고 있는 내 모든 것을 다 털어낼 수 있는 각오와 신념을 가지고 팀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찌되었건 20여년간 프로야구계에 종사하면서 나름 희생과 열심을 다해 여기까지 왔는데 지금의 상황은 제게 너무도 혹독합니다. 살며 한번도 떠나지 않았던 내 삶의 터전을 떠나는 당찬 각오도 이제는 조금씩 용기를 잃어 갑니다.

그럼에도 이 긴 글을 쓰는 이유는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이제 겨우 시작인 팀과 선수들, 또 긴 부진을 벗어나려고 노력하고 애쓰는 모든 노력들을 외부의 잘못된
흔들기로 흔들리지 않기를 바라는 작은 바람에서 입니다.

프로는 결과에 대해 자유로울수 없습니다. 팬들에 기대에 부응하고 부끄럽지 않은 게임을 해야 합니다. 시작이 잘못된 것은 어딘가 잘못이 있었겠지요. 그러한 잘못에 대한 비평에 대해서는 겸허히 받아 들이고 더 큰 성장을 위한 거름을 삼겠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결과에 대해 단정 짓지 않아주셨으면 합니다. 진실된 가슴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팀의 일개 코치에 불과한 제가 많은 분들께 그리고 팀과 선수들에게 여러가지 심려와 불편을 드려서 다시한번 죄송스럽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먼저 한화 이글스를 사랑하시는 팬 여러분들의 큰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좋지 못한 결과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지금 이런 상황에서 염치 없지만 4/15일자 KBSN 알럽 베이스볼에 출연한 이용철 위원과 스포츠 동아 이경호 기자가 저와 팀에 관련된 있지 않는 허위 사실을 마치 사실처럼 방송을 통해 이야기 했습니다.


오늘 구단 측에서는 KBSN 알럽 베이스볼 제작팀과 출연진에게 정정, 사과 방송을 요구 했습니다. 방송사측도 이에 대해 1차적으로 내일 중계방송에서 사과 방송을 하기로 하였고 당시 출연진이 출연하는 다음주 금요일 알럽 베이스볼 시간에 당사자 또한 직접 정정, 사과 방송을 하기로 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겠지만 이번 일로 저와 팀에 대한 많은 부분들이 사실과 다르게 왜곡되었고 그 정도가 제가 참고 감당 하기에 이미 선을 넘어섰다고 생각되어 관련된 모든 문제에 대해서 법적 조치를 검토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저와 팀에 관련된 좋지 않은 루머와 왜곡된 사실들이 그밖에도 많이 있습니다. 하나 하나 풀어보고 싶은 심정으로 가득하지만 지금은 우선 이번 방송 내용과는 분명하게 다른 사실을 정리해서 알려드립니다.


2016시즌 캠프 시작부터 지금까지 저와 로저스는 서로 인사를 주고 받는 것 이외에는 야구와 관련 그 어떤 대화도 나누지 않았습니다. 


로저스가 불펜 피칭을 할 때 단 한번 그의 공을 받아보고 좋다 라고 혼자 느낀 적은 있습니다. 


하지만 방송의 내용처럼 메이저리그까지 경험한 투수에게 너의 수비가 이렇다 저렇다, 투구가 이렇다 저렇다 얘기할 팀 내 입장도 아니고 로저스 본인이 스스로 제게 물어보기 전에 그의 PLAY에 대해 내 생각과 의견을 얘기할 필요가 없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었습니다.


또 고치 캠프에서 저는 어린 포수들의 기본기 담당을 했기 때문에 투수조에서 훈련 중인 로저스 선수를 운동장에서 만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서로 훈련중에 통역을 통해 얘기를 하는 여유는 전혀 없었습니다.


이어진 오끼나와 캠프도 제가 본진보다 며칠 먼저 오끼나와로 넘어왔습니다. 이후 본진이 합류한 시점부터는 팀 훈련과 경기를 함께 하기 보다는 다른 팀 경기 분석을 집중적으로 맡아서 다른 구장들을 돌아다녔습니다. 고치 캠프보다 로저스 선수를 만나는 것이 더욱 어려웠던 환경이 바로 오끼나와 캠프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캠프가 종료하고 귀국 후 곧바로 서산에서 합숙, 재활이 시작된 로저스 선수와 매일 시범경기와 시즌을 치르고 있던 제가 어떻게 만날수 있었을까요. 단 한번도 만남을 가질수 없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 입니다.


팀이 이처럼 어렵고 힘들 때 뭐라도 도움이 되려고 노력해야 하는 시간들, 이렇게 긴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무슨 이유가 되었던 이유가 될 수 없고 한화 이글스를 사랑하시는 팬 여러분들께 현 상황으로 심려와 불편을 끼쳐드린 점 진심으로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고개숙여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교토의 관광지가 대부분 교토 시내 동쪽 방면에 위치해 있으나, 불행히도 이틀 밤을 보낼 호텔은 서쪽에 위치해 있고, 교토역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다지 관광하기에 좋은 곳은 아니었다. 그 사실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이유로 이 곳을 찾아온 뒤에 느껴지는 막막함이란 참. 예약하기 전에 호텔 주소를 구글 지도에서 검색해보았는데, 교토역에서는 도보로 대충 23분 정도 걸린다고 해서, 걸음이 빠른 편이니 20분 안에 오갈 수 있겠다 싶어서 예약을 했다. 교토역 앞 버스 정류장에서 호텔 근처까지 버스가 다닌다고 하지만 배차간격이 서울 시내버스와 같지 않아 뜸한 편이라 기다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 걸어가게 만든다.

구글 맵을 켜고 현재 위치에서 호텔까지 경로탐색을 하여 가는 길을 찾았다. 위치 정보는 굳이 와이파이가 켜진 상태가 아니더라도 사용자의 이동에 따라 위치가 파악되므로 지도에 나온 경로에서 벗어나지 않고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소요시간이 23분이라고 하였으나 거리는 1.9km라서 한 시간에 4km를 걷는 평균적인 속도로 걷는다면 23분에 간다는 것 - 구글 지도에서 도보 속도는 시속 5km를 기준으로 하는 것 같다 - 은 말이 되지 않는다. 초행길이고 짐까지 잔뜩 껴안고 있으니 그 시간에 가는 것은 무리라고 보이지만 이 멍청한 구글에 질 수는 없지. 열심히 걷는다. 중간중간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느라 시간을 보내면서 마음은 급해지고 낑낑거리면서 겨우 23분에 맞추어 호텔에 도착했다. 아이씨!

일단 체크인을 한 뒤 방에 들어가자마자 무엇이 문제인지 부팅에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는 넷북을 펼치고, 업무 상황을 파악하고, 일련의 지시를 해야 한다. 납품 건에 대해서 최종 검토 및 승인을 해야 한국에서 일이 진행되므로 쉴 틈없이 리스트를 보면서 종류와 수량을 확인하고, 운송사에도 해당 상품의 리스트를 전달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보낼 것이 있어서 교토역 앞 중앙우체국에서 사 온 봉투에 넣어서 호텔 가까이에 있는 우체통에 넣고 오니, 이미 어두워지고 거리는 한산하다. 아직 해가 짧은 2월인데다, 일본은 한국보다 해가 빨리 뜨는 만큼 지는 것도 빠르고, 한국처럼 늦게까지 영업하는 상점이 많지 않아서 거리가 금방 어두워진다.

저녁을 먹어야 하니 다시 먼 길을 걸어 교토역으로 간다. 그냥 방 안에 있는 것도 심심하고 하니 그냥 걸어다니다 보이는 음식점에 가기로. 타베로그라도 찾아보고 나올까 싶었지만, 언제부터 그렇게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서 움직였다고. 참고로 교토역 앞 지하철과 연결되는 지하 상가에는 교토시에서 운영하는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있어서 사용자 등록을 하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다만 이 와이파이가 잘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 그래도 어떻게 와이파이 연결이 되어서 한국에 있는 동료에게 연락해 일이 잘 마무리되었는지 확인하고, 무엇을 먹을까 고민을 하다가 일본에 왔으니 우선 초밥을 먹기로 한다. 토리아에즈 스시! 동일본대지진 이후 방사능 유출 이후 안전성에는 여전히 의문이 있는 것이 사실인데, 인체에 유해한 수준이 아니라고 말해도 그것이 전혀 해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유혹에 넘어가고 만다. 날 음식만 보면 침이 꿀꺽꿀꺽 넘어가는지라..

교토역 지하에 있는 식당가에 빈 자리가 없어서 이온몰 1층 코효 수퍼마켓에서 대충 저녁거리를 사서 호텔로 돌아왔다. 기다리기도 귀찮고 돌아다니고 싶어도 몸이 피곤하니, 일단 방에 들어가 눕고 싶은 생각이 먼저다.



토리아에즈 사시미부터 :)

아무래도 횟감만 먹는 것이다보니 초밥(니기리즈시)에 올라가는 횟감보다는 질이 좋고 신선하기에 더 비싸다.

위쪽에 있는 것은 미니로 판매하는 구운 고등어와 가리비 니기리즈시.



다음은 니기리즈시 모듬.

이름이 사카나야상노니기리모리아와세(魚屋さんのにぎり盛り合わせ). 생선가게의 니기리모음이란다.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먹는 초밥보다 커서 보통 사람들은 몇 개만 먹어도 배가 부르지만 잘 먹기 때문에 이 정도 쯤은 뭐..



밥 위에 횟감을 썰어서 얹어 놓은 치라시스시.

이렇게 대충 2인분 이상을 먹었다.

스시 전문점에서 먹었다면 아마 최소 4~5만원 정도 나왔겠지 싶지만 1/3정도 가격에 해결.


식비 절약 및 배고플 때 간식 대신 먹기 위해서 거지 근성을 발휘해서 도시락도 서너 개를 사다가 냉장고에 넣어둔다. 이 때만 해도 이 도시락 덕분에 굶지 않고 지내게 될 줄은 몰랐지만..

씻고 잠을 청하는데 피곤한데 잠은 잘 들지 않는 곤란한 상황에 이어지고 있다. 계속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다 간신히 잠들었는데 새벽 2시가 지나서였다.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이번 여정은 편안하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잠에서 덜깨다

2016. 3. 14. 02:59

1월 말부터 안 좋은 일이 있어서 잠을 못자서, 제 정신으로 가는 것이 아니었다. 이틀 밤을 새고 몇 시간 잠을 잔 뒤, 다시 이틀 밤을 새고 가는 것이라 이러다 탈이 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고, 항공사에 전화해서 항공편 변경을 해야하지 않나 심각하게 고민할 정도였다. 출발하는 당일도 새벽에 집에 가는 버스를 타고 들어간 뒤 세 시간 정도 후에 짐을 싸서 나와야 했다. 버스를 기다리는데 몸 상태가 좋지 않으니 추위가 느껴져서 돌아다니고 있는데 갑자기 어떤 제안을 할테니 들어주겠냐는 아가씨를 만나 당황했다. 내용인즉슨, 자신이 XX을 해줄테니 돈을 주지 않겠냐는 것인데, 놀랍기도 하면서 그래도 길거리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손 내미는 사람보다는 네가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춥고 졸리고 힘들어서 만사 귀찮아 죽겠는지라 거절을 했다.

두 시간 정도 거실에 쓰러져 있다가 도저히 버스를 타고 서울역에서 공항철도로 갈아탈 엄두가 나지 않아서 비싸더라도 공항버스를 타러 갔다. 이미 만신창이가 된 몸이 귀찮은 여정을 견딜 자신이 없었고, 공항철도를 타면 비용은 저렴하지만 갈아타는 번거로움에 시간도 많이 걸리니 일찍 도착해서 공항에서 여유있게 움직이는 것이 더 나을 듯 싶었다. 5시부터 6시까지는 20분 단위로 버스가 있는데, 5시 40분 버스를 탈 수도 있겠다 싶어서 가방을 메고 서둘러 정류장으로 뛰다 걷다를 반복하면서 갔다. 다행히 버스에 탔고, 뒤로 가는 것도 귀찮아서 맨 앞 좌석에 앉아서 갔다. 버스에 올라탄 지 얼마 되지 않아 잠이 들었는데, 옆에 앉은 아주머니의 짐이 많아 자꾸 가방 같은 것으로 쳐서 중간중간 잠에서 깼다. 일본에서 좋은 점을 꼽으라면 다른 사람과의 물리적 거리를 두고 신체적 접촉을 피하는 것을 손에 꼽는데, 평소 같았으면 그냥 넘어갈 만한 일도 내 몸이 피곤하니 짜증이 밀려온다. 그렇다고 새벽부터 아줌마에게 좋게 이야기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고, 싸가지 없는 젊은 놈이라는 말밖에 듣지 못할테니 참고 가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가다보니 인천공항에 7시 정도 되어 도착했다. 이른 시각임에도 공항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아침 이른 시각에 출발하면 도착 후에 시간 여유가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나 같은 경우는 일찍 나온다고 나와도 한계가 있고, 오히려 서두르다가 챙길 것을 두고 오거나 잃어버리는 일들이 생겨서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도착 후에 다른 도시 이동이 있고, 처리할 회사 일도 있고 해서 시간을 잘 활용하고, 사람이 많은 시간을 피해서 아침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아침에 출국해서 도착지에서 시간을 유용하게 쓰려는 사람이 많은데다, 2월 초라 학생들의 방학이라 그런지 어린 학생을 동반한 가족 단위의 여행객도 많아서인지 항공사 카운터나 출국장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30분 정도 걸려서 보안검색대를 통과하고 출국장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김포에서 출국하는 것이 편리하기는 하지만, 김포에서 나고야로 가는 항공편(제주항공)이 없어지기도 했고, 정시성이라든지 셔틀트레인을 타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 등의 이유로 인천에서 출발하는 아시아나항공의 항공편을 이용한다.

미리 주문했던 면세품(이라고 해도 내가 사는 것은 몇 천원 짜리 초콜릿 하나 뿐이고 지인들이 부탁한 주문품들이지만)을 수령하다보니 시간이 걸려서, 잠깐 라운지에 들러서 요기라도 할까 했는데 그럴 만큼의 시간 여유는 없어서 탑승구 근처로 가서 기다렸다. 사람이 북적이지 않는 구석 자리의 자리를 받기는 했는데, 막상 기내에 들어가니 빈 자리가 많지 않고, 앉을 자리 옆의 두 좌석에는 이미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통로 쪽에 앉은 사람은 일본 아저씨, 가운데에는 일본 아줌마(인 것 같은데 한국어도 잘 하는 분이라서 확신이 없다. 교포 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에게 양해를 구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승무원에게 입국신고서와 세관신고서를 받았는데, 적당히 좌석 주머니 사이에 넣어두고, 좌석벨트를 맨 후 잠에 들었다. 졸다 깨다 반복하다가 잠시 조금 깊게 잠이 들었는지 일어나보니 테이블이 펼쳐져 있고, 식사로 나온 샌드위치가 놓여 있었다. 아무래도 잠들어 있는 사이에 아주머니가 받아서 놓으신 모양.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려 했는데 다른 일을 하시는 것 같아 그냥 잘 먹었다. 잠이 부족할 때는 늘 몸에서 수분을 많이 요구하므로 우선 물을 뜯어서 마시고, 샌드위치를 먹은 뒤, 나중에 승무원에게 음료를 따로 시켜서 마셨다. 그래도 피곤함에서 오는 갈증은 어떻게 달래지지 않는다.

인천-나고야를 운항하는 아시아나 A321항공기는 작아도 모니터가 달려서 기내엔터테인먼트 서비스가 제공되지만, 정신을 못 차리고 있으니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냥 남은 거리가 얼마나 남았는지 보여주는 운항정보를 화면에 띄워놓고 간다. 정신을 차려보려고 애를 쓰지만 배가 조금 부르니 잠이 더 잘 온다. 다시 졸다 깨다를 반복하다보니 어느새 나고야에 다 와가는 듯하다.

생각보다 탑승객이 많기도 하거니와 촌각을 다툴만큼 일찍 나가야 하는 것도 아니어서 잃어버린 물건이 없는지 확인을 하고 천천히 짐을 챙겨 나왔다. 잠이 부족한 상태에서는 지갑이나 휴대폰 같은 것을 두고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기내에서 입국 신고서를 쓰지 않아서 심사장 앞에서 줄을 서면서 끄적끄적 쓴 뒤에 통과하고, 화장실에 갔다가 물도 마시고 정신을 조금이라도 차린 뒤 ATM을 찾아서 3만엔을 출금했다. 시간이 부족해서 미리 환전은 못했는데, 숙박비는 카드로 결제하고 식비와 교통비 등의 비용만 현금으로 결제하면 될 것 같다. 물론 그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 문제일 듯.

행선지가 나고야 시내의 호텔이었으면 공항버스를 탈 수도 있으나 어차피 나고야역으로 가는 것이라서 열차를 타고 간다. 츄부국제공항과 나고야역 사이를 잇는 메이테츠 특급을 타면 대충 35분, 전차량 지정석인 뮤스카이를 타면 28분 정도 걸린다. 촌각을 다투는 것이 아니니까 그냥 저렴한 특급열차를 탔다. 주의할 점은 뮤스카이는 전차량 지정석이어서 뮤(μ)티켓이라 불리는 특급권을 360엔을 따로 내고 구매해야 한다. 일부 지정석인 특급열차에서도 지정석칸은 특급권을 구매해야 하지만, 자유석칸은 운임만으로 이용할 수 있다. 메이테츠나고야역 앞의 매점에서 킨테츠레일패스를 살 수 있는데, 처음이 아닌지라 여권을 먼저 보여주고 만 엔짜리 지폐를 한 장 내면서 킨테츠레일패스를 사고 거스름돈을 받으니 대충 잔돈도 생겼다.

앉은 좌석이 두 자리씩 마주보는 형태로 되어 있는데 어떤 일본인 아가씨가 대각선으로 맞은 편 자리에 앉으면서 큰 짐가방으로 옆자리를 막아준 덕분에 편하게 나고야역까지 갈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자리가 비어 있는데도 앉지 못했다면 아가씨를 욕했겠지만. 나고야역에는 12시가 못 되어 도착했고, 킨테츠나고야역으로 가서 교토행 특급열차 지정석을 예약했다. 12시 30분 출발이고 야마토야기(大和八木)역에서 내려서 한 차례 환승을 해야하며 대충 두 시간 정도 걸리니까 금전적인 여유가 있다면 교토까지 신칸센을 타는 것이 가장 빠르고 갈아타지 않아도 된다. 킨켄샵이라 불리는 할인티켓을 파는 곳에서 조금 싼 티켓을 살 수도 있는데, 그것 역시 편도 가격이 5일간 사용할 수 있는 킨테츠레일패스보다 더 비싸니 가난해서 느리고 갈아타는 번거로움이 있는 열차를 탄다. 만약 교토-나고야 간의 소요시간이 10시간이 걸린다고 한다면 생각이 달라졌겠지만.. 어쨌든 자본주의사회라는 것이 이렇다.



메이테츠나고야역에 내렸다. 츄부공항에서는 메이테츠가 제일 빠르고 편하면서 싼 시내 이동수단이다.



메이테츠나고야역에서 나와서 킨테츠나고야역으로 간다.


메이테츠를 타고 갈 수 있는 곳은 토요하시, 이누야마, 미카와, 토요카와 등 아이치현 일대와 기후 정도. 쉽게 말해서 원하는 목적지인 교토까지는 갈 수 없다. 그래서 JR이나 킨테츠 둘 중 하나를 이용해야 간사이지역이라 일컬어지는 서쪽 방면의 도시로 갈 수 있다. 메이테츠나고야역과 킨테츠나고야역 사이에는 환승개찰구가 있어서 두 회사 승차권을 함께 넣고 나갈 수 있는데, 승차권형태의 킨테츠패스도 넣을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특급열차를 타려면 매표소에서 지정석을 받아야하니까 그냥 돌아서 갔다. 패스를 보여주며 특급권 신청서 한 장을 주고 교토까지 특급 열차를 예약하니 대충 20여 분 정도 시간이 남아서 메일 확인을 하려고 JR나고야역으로 갔다. JR나고야역을 비롯한 토카이도신칸센역에서는 무료 와이파이를 이용할 수 있어서 종종 이용하는데, 와이파이에그를 따로 빌려서 다니지 않기에 역과 편의점 등에서 가끔 메시지나 메일 확인을 하고 답장을 한다. 와이파이가 있으면 괜히 인터넷 서핑이나 할 것 같고, 가지고 다니기도 귀찮아서 빌리지 않는다. 그런데 와이파이로 메일 확인을 하고 킨테츠역으로 여유있게 돌아오기는 했는데, 점심으로 어떤 도시락을 먹을까 역내 편의점에서 고민을 거듭하다가 하나를 사고 열차를 타러 가는데, 갑자기 어떤 열차 하나가 문을 닫고 출발을 했다. 설마 그 열차가 타야할 열차인지 모르고 시계를 보니 12시 30분이었다. 아~ 이런..


메이테츠를 타고 갈 수 있는 곳은 토요하시, 이누야마, 미카와, 토요카와 등 아이치현 일대와 기후 정도. 쉽게 말해서 원하는 목적지인 교토까지는 갈 수 없다. 그래서 열차를 이용한다면 JR이나 킨테츠 둘 중 하나를 이용해야 간사이지역이라 일컬어지는 서쪽 방면의 도시로 갈 수 있다.

메이테츠나고야역과 킨테츠나고야역 사이에는 환승개찰구가 있어서 두 회사 승차권을 함께 넣고 나갈 수 있는데, 승차권형태의 킨테츠패스도 넣을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특급열차를 타려면 매표소에서 지정석을 받아야하니까 그냥 돌아서 갔다. 패스를 보여주며 특급권 신청서 한 장을 주고 교토까지 특급 열차를 예약하니 대충 20여 분 정도 시간이 남아서 메일 확인을 하려고 JR나고야역으로 갔다. JR나고야역을 비롯한 토카이도신칸센의 역 또는 규모가 있는 재래선 역에서는 무료 와이파이를 이용할 수 있어서 종종 이용하는데, 와이파이에그를 따로 빌려서 다니지 않기에 역과 편의점 등에서 가끔 메시지나 메일 확인을 하고 답장을 한다. 와이파이가 있으면 괜히 인터넷 서핑이나 할 것 같고, 가지고 다니다가 잃어버릴 것 같아서 빌리지 않는다. 그런데 와이파이로 메일 확인을 하고 킨테츠역으로 여유있게 돌아오기는 했는데, 점심으로 어떤 도시락을 먹을까 역내 편의점에서 고민을 거듭하다가 하나를 사고 열차를 타러 가는데, 갑자기 어떤 열차 하나가 문을 닫고 출발을 했다. 설마 그 열차가 타야할 열차인지 모르고 시계를 보니 12시 30분이었다. 아~ 이런..



이 열차를 타고 간다. 오사카난바까지 가는 같은 특급열차인데, 나고야역 기준으로 매시 정각에 출발하는 어반라이너가 츠, 츠루하시, 오사카우에혼마치에 정차하는 것과는 달리 정차역이 많아서 이걸 타고 오사카까지 갈 때는 속이 터진다. 그러나 교토나 가시하라진구마에 등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 열차를 타는 수밖에 없다. 이 열차는 킨테츠에서 여기저기 돌려먹는 그런 열차로, 찾아보니 12200계라고 하는 것 같은데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 열차 형번이나 기능상의 특징은 별 관심이 없고, 이 열차가 얼마나 원하는 곳까지 빨리 가느냐에만 관심이 있는지라.


오사카난바행

킨테츠의 특급열차는 자유석이 없어서 무조건 지정된 열차의 좌석에 앉아서 가야하므로 지정석권을 발권해준 역무원에게 가서 말을 했다. 어찌어찌하다보니 플랫폼을 잘 몰라서 다른 플랫폼에 있다가 열차를 못탔다고 말했다. 사실 행선지 안내에서 오사카방면이라는 글자만 보고 다른 플랫폼으로 간 것은 사실이고, 만약 제대로 갔더라면 열차를 탈 수는 있기는 했으니.. 그런데 재수없게도 그것은 한 시간 뒤에 출발하는 열차고, 타려던 열차는 다른 플랫폼에서 출발하는 것이었다는 것이 문제였지. 역무원이 보더니 특급권에 적힌 지정된 열차를 지우고 도장을 찍어준 뒤에 빈 좌석에 앉아서 가란다. 경험상 빈 좌석이 없는 최악의 상황은 아닐 것 같지만, 그래도 언제 주인이 나타날지 모르는 탓에 계속 긴장 상태로 가야할 것 같다. 이거 좋지 않은데..


야마토야기 도착 이전에 정차하는 역이 다섯이다.

킨테츠의 나고야-오사카 간의 메이한특급(名阪特急)열차는 시간대에 따라 운행하는 패턴이 다르다. 킨테츠의 메이한특급열차는 대개 시간당 2편이 편성되는데 매시 정각에 출발하는 열차는 어반라이너, 매시 30분에 출발하는 열차는 특별한 열차명 없이 그냥 특급열차로 운행을 한다. 나고야역과 오사카난바에서 매시 정각에 출발하는 어반라이너는 도중 츠(津), 츠루하시(鶴橋), 오사카우에혼마치(大阪上本町)역에만 정차한다. 아침 이른 시간대와 밤 늦은 시간대에는 한두 역이 추가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시간 단축을 위해 정차역을 줄여 운행하고 있으며, 중간에 교토나 카시하라진구마에 등의 다른 킨테츠 노선으로의 환승을 거의 고려하지 않고 나고야-오사카 사이의 수요만을 노리고 있다. 이에 반해 매시 30분에 출발하는 특급열차는 어반라이너가 정차하지 않는 역에 정차하며, 다른 노선의 특급열차와 연계되도록 시각표를 설정해두어서 같은 구간에서 소요시간이 긴 편이다. 킨테츠에서는 어반라이너에 더 많은 공을 들이고 있는 탓에 어반라이너로 운행하는 열차는 다른 특급열차들과는 달리 21000계 및 그 후속 모델의 어반라이너 전용 열차를 투입하고 있다. 소요시간은 어반라이너가 약 1시간 10분 정도 더 걸리지만, 도착지가 시내 중심부인 난바인 덕분에 신오사카역에서 오사카 남부로 갈 경우에는 다시 시내환승을 해야하는 불편함도 없고, 금액이 저렴하기 때문.

그런데 정차하는 역마다 언제 자리 주인이 나타날 지 모르니 긴장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게 열차 시간을 잘 확인하고 미리 준비를 했어야지, 누굴 탓하겠나. 며칠 동안 밤을 새고 나와서 이러고 있으니 잠이 쏟아질텐데 이거 참 걱정이 앞선다.


맨 뒷자리에 앉았는데, 자리 주인이 나타나서 맨 앞으로 옮기게 되었다. 아이씨~

조금 지나니 검표를 하는 차장 아저씨가 들어오셔서 이리이리해서 이렇게 여기에 앉아서 가게 되었다고 설명을 했더니, 괜찮으니까 앉아서 가라고 하신다. 그래도 중간 역에서 승객들이 탔을 때, 혹시라도 앉아 있는 좌석을 가진 사람이 오는 경우라면 비켜주어야 하고, 잠들어서 환승역인 야마토야기에서 내리지 못할 수도 있으니 긴장을 늦출 수는 없다.


일단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열차를 놓치게 만든 도시락을 꺼내서 먹기로 한다.


일본의 3대 소(고기)로 효고현의 고베규(神戸牛)와 함께 항상 꼽히는 미에현의 마츠사카규(松阪牛)로 만든 마츠사카 규메시 도시락. 다른 3대 쇠고기의 한 자리는 야마가타현의 요네자와규(米沢牛)와 시가현의 오미규(近江牛)가 꼽히는데, 평가하는 사람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그래서 일본 4대 쇠고기로 꼽기도 한단다. 문득 작년에 미에현의 츠에서 묵었을 때 마츠사카에서 소 품질 검사를 하는 장면을 텔레비전으로 본 장면이 생각이 났다. 할아버지가 연로해지자 손자인 고등학생이 가업을 이어받겠다면서 소를 끌고 나와서 품질 검사 준비를 하는 모습이었는데, 어린 친구지만 단순히 할 것이 없어서 그 일을 하는 것이 아니고 일에 열정과 책임을 가진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타이쇼(大正) 11년(1922년)에 개업한 마츠우라상점에서 만드는 도시락이란다. 거의 100년이 다 되어가는 전통이 있는 노포다. 스스로가 노포의 맛이라고 자랑할 정도이니 맛있겠지. 반숙 계란과 간단한 반찬과 불고기처럼 양념을 하여 익힌 쇠고기가 밥 위에 깔린 도시락이다.


맛있게 보인다. 맛있게 먹었다.


다행히 중간 정차역에서 사람들이 타고 내리기는 했지만, 내가 앉은 자리 주변에는 사람들이 오지 않아서 자리를 비켜주는 일은 없었다. 배가 부르니 잠이 오기는 하지만 자다가 환승을 못할까 싶어서 버티다 야마토야기에서 내려서 열차를 갈아탔다. 이 곳에서 열차를 갈아탄 것은 4년 정도 된 것 같은데, 환승이 복잡하지 않아서 문제없이 교토행 열차에 탔다. 빈 자리에 앉아서 차장에게 다시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열차를 타고 간다. 일부러 사람이 많지 않은 칸으로 갔는데, 그 열차는 흡연칸. 사람이 적은 것에는 다 이유가 있구나.그렇게 교토에 도착했다.

교토역은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있어서 구글 맵을 켜고 호텔까지의 경로를 검색해본다. 예약한 호텔까지는 1.9km정도, 도보로 23분 정도 걸린다고 한다. 버스를 타고 갈 수도 있으나, 이 도시에서는 버스라는 것이 서울 시내버스처럼 몇 분에 한 대 씩 오는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 빠르게 다니는 것도 아니어서 기다려서 버스를 타는 시간과 버스 안에서 보낼 시간을 생각하면 걸어가는 것과 별 차이가 없을 것 같다. 일단 역에서 가까운 우체국에 들러 선불 봉투를 몇 장 사고, 지도 화면에서 나오는 경로를 따라 가면 큰 어려움 없이 길을 찾을 수 있었다. 교토의 도시 구조가 길 찾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은 이유도 한 몫을 했지만..

17. 아마루베 철교

2015. 2. 21. 01:46

시간이 많지는 않았지만 아마루베역에 내린 것은 특별히 역 근처의 명소를 찾아가기 위한 것은 아니고 그냥 아마루베역 구경을 하기 위해서였다. 철도를 정말로 좋아하는 분들의 여행기를 보면서 아마루베역에 얼마 전까지 역사가 오래된 아마루베 철교가 있었고, 이 철교 위를 지나던 열차가 강풍으로 인해 다리 밑으로 추락하면서 인명 사고가 발생했으며, 이후 그 철교가 철거되었고, 새로운 교량이 건설되었다는 사실을 접하게 되었다. 인터넷에서 본 사진으로는 새 교량이 깔끔한 모습이기는 하지만, 예전의 철교의 모습이 더 정감어린 것이 아쉽기도. 기노사키온천에서 카스미까지, 그리고 카스미에서 아마루베까지 오는 과정에서 보이듯이 산악지대가 해안선에 접한 접근성이 좋지 않은 지형에 그렇다고 내세울만한 관광지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1~2시간에 한 대 정도 밖에 열차가 없고, 그것도 운전사 혼자 운행하는 원맨열차가 돌아다니는 곳이다.

지금은 철거된 예전의 아마루베철교.
(사진의 출처는 : 위키피디아 일본어)
저 위로 열차가 지나다녔다고 한다.

아마루베 철교는 약 100여년 전인 1912년에 3년 여 간의 공사 기간을 거쳐 건설된 교량이라고 한다. 산인혼센(山陰本線.산인본선)의 미개통 구간이었던 와다야마-요나고 구간을 건설시 이 지역의 산악 지형을 뚫고 선로를 건설하자니 당시의 기술로는 어려운 터널 굴착을 피하기 위하여 우회하여 교량을 짓기로 하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노사키온천에서 출발해서 아마루베역까지 오는 동안 산악, 터널 구간이 대부분이었다.

아마루베철교 열차 추락 사고에 대해 잠시 살펴보자면, 1986년 12월 28일 오후 1시 경에 카스미에서 하마사카(浜坂)로 가던 특급열차 미야비가 동해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밀려 교량 아래로 추락했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으로 회송 중인 빈 열차여서 차내에는 운전사와 차장, 그리고 차내 판매원만 타고 있어서 대형 참사는 모면할 수 있었지만, 열차가 교량 아래에 있던 공장을 덮치면서 공장 직원 5명과 차장이 사망하고, 차내 판매원 3명과 공장 직원 3명이 크게 다쳤다고 한다. 열차가 탈선한 적은 몇 번 있었지만, 교량 아래로 추락한 것은 거의 100년 만의 일이라서 상당히 큰 충격이었다고.

이후 사고 수습을 하고 교량을 보수하여 운행은 재개하였지만, 오래된 교량의 노후화가 심하여 안전상의 문제가 대두되었고, 지속적인 보수에 들어가는 비용 역시 만만치 않아서 거의 100년 가까운 역사를 이어오던 아마루베 철교를 철거하고 새로운 교량을 건설하기로 하였단다. 경영합리화를 위해서는 폐선을 결정하고 해당 구간을 버스와 같은 교통수단으로 대체할 수 있었음에도 새로 지은 것을 보면 역사를 중요시하는 것 같다.(실제로 아마루베 철교 철거 후 새로 건설하는 동안 버스를 이용한 대체수송을 실시했다고 한다) 가끔 역사를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왜곡하는 것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자신들의 역사에 대해서 중요시하고 지키고 간직하려는 노력은 우리도 본받아야 할 부분이 아닌지.

카스미역에서 열차시각표를 확인하기는 했지만, 당장 탈 열차의 시각만 보고 아마루베역에서 내린 뒤 돌아오거나 하마사카로 가는 다음 열차 시각을 적어오지 않고 급히 열차를 타버린 것이 문제였다. 뒤늦게 아마루베역에 내린 다음에 역에 있는 시각표를 보니 카스미로 돌아가는 다음 열차는 한 시간 후에 도착할 예정인지라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 지 막막해졌다. 이런 외진 곳에서는 열차가 한 시간에 한 대 꼴로 다니고 재수없으면 두 시간이라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계획 없이 가다보니 이런 실수를 하게 된다.


이 철로는 열차추락사고 이전에 있던 그 철로의 일부를 보존하여 과거의 역사를 남겨둔 것인데, 비극적인 사건을 기억하고 추모하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한 것은 인상깊다. 그래서인지 아마루베역에 내린 사람들은 열차가 떠나자마자 이 주변에서 사진을 찍고 정신없더니 일부는 아마루베 철교와 동네를 한 바퀴 둘러보려는지 아래로 내려간다. 

평소 같았으면 고민없이 그 사람들의 뒤를 따라서 구경을 하고 돌아왔겠지만, 여행 막바지의 피곤함이 발길을 돌려세웠다. 상행 다음 열차의 도착 시간까지는 꽤 여유가 있었지만, 태풍이 오고 있다는 소식과 일요일 오후 상행 열차의 혼잡함이 예상되기도 해서 그냥 포기했다. 역시 철덕과는 거리가 멀다. 하~

다음 날 귀국 예정인지라 돌아가는 열차 시각에 신경쓰이고, 며칠 동안 계속 열차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서 그런지 몸도 뻣뻣하게 굳은 것 같아서 맨손 체조를 하다가 사진을 찍으려고 몰려있는 사람들 사이를 설렁설렁 돌아다니며 다음 열차가 오기를 기다렸다. 시각표를 살펴보니 돌아갈 방향의 상행 열차가 아닌 하행 열차가 먼저 온다는 것이 함정이지만.

과거 철로 및 교량의 일부를 남겨두어 이렇게 기념공원처럼 만들어두었다.

일본의 역사 왜곡은 문제이지만, 역사 보존 및 사고 현장에 대한 보존을 통해 희생자 추모 및 재발 방지의 노력은 높이 살 만하다.

날이 좋았으면 저 아래 방파제 쪽으로 내려가서 바다 구경을 하고 싶었지만

귀찮아서 그냥 사진만 찍고 끝.

배수구를 통해서 아래를 보니 아찔한 높이다.

전망시설의 관람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까지.
일본답게 주의사항이 상세히 적혀 있다.

사진에 보이는 선로는 새 선로 이전 추락 사고가 났던 아마루베 철교에 있던 구 선로이고, 사진 중앙에 있는 플랫폼 왼쪽(콘크리트 벽과 플랫폼 사이)의 선로로 열차가 운행하고 있다. 비바람에 의해 산이 무너질 수 있으니 붕괴를 방지하기 위해 콘크리트로 축벽을 쌓아둔 모양이다.

카스미 방향으로 가는 상행 열차였으면 좋겠지만, 반대로 하마사카까지 가는 하행 열차가 먼저 온다. 평소에 이용하는 사람이 많은 역이 아닌지라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한 의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마냥 밖에서 서서 기다리기도 그렇고 해서 하마사카행 열차를 기다린다.

아마루베역에서 요로이(鎧)역으로 보통열차를 타고 가서, 요로이역에서 구경을 하고 보통열차를 타고 아마루베역으로 돌아오는 모델 코스 시각표를 알려주고 있다. 열차를 타고 아마루베에서 요로이에 다녀오면서 경치를 감상하라는 취지인데, 열차 운행횟수가 많지 않은 지역이라서 하루 3회 왕복이 가능하단다. 시간이 많아서 역에서 한두 시간 기다릴 여유가 있다면 상관없겠지만.. 세 번째는 아마루베에서 카스미까지 오가는 오가면서 경치 감상을 하라는 것이네. (현재시점에서는 열차 시각표가 변경되었을 수 있으니 미리 검색이 필요할 것 같다)

'아마루베 철교 공중역(餘部鉄橋空の駅)' 이라고 써있다. 여기서 내린 사람들은 죄다 이 역 혹은 아마루베 철교 및 경치를 구경하려고 내렸다.

역사가 깊은 역이지만 불의의 사고로 새로 역을 정비하면서 신식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다. 목이 타서 계속 물을 마신 탓에 잠시 이 곳에 들어가 생리적 현상을 해결한다. 계속 역 아래로 내려가서 아마루베 철교를 구경하고 바닷바람이나 쐬고 올까 고민을 하다가 결국에는 무리하지 않기로 한다. 귀국이 다음 날인데 그동안 많이 걸었으니 몸 조심을 해야지 싶고..

그리고 기다리던 카스미행 보통열차가 기름타는 냄새를 풀풀 풍기며 들어온다.

기노사키 온천에서 하마사카까지 오가는 원맨열차다. 도중 역무원이 상주하는 유인역이 거의 없으니 대부분의 역에서 정차할 때마다 기관사가 운임징수까지 하는 그런 시스템. 한국이야 지하철이 있는 대도시권을 제외하면 이런 완행열차가 없으니 마땅히 비유할 것이 없지만, 일본에서는 통근, 통학용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손실을 감수하고서라도 열차를 운행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바로 다음 역인 쿠타니역은 아주 황량하다.

오래된 열차라서 천장 위에 선풍기가 있다.
오래 전 서울지하철1호선, 당시에는 국철이라 불리던 경인선 전동차에서 선풍기를 볼 수 있었는데..

열차를 부분적으로 리모델링하였지만, 좌석은 예전 그대로라서 허리에 매우 좋지 않은 모양새. 
당연히 편하지는 않으나 짧은 거리를 탄다면 괜찮겠지.
아마루베에서 하마사카까지는 고작 역 두 개 뿐이지만, 역간 거리가 길어서 대충 15분 정도 걸린다. 

하마사카역에 도착 후 돌아갈 열차가 대기 중인 플랫폼으로 왔다.
역시 세월의 흐름을 간직한 떵차!
잠깐 시간이 있지만 역을 나갔다 오기에는 모자란 듯하고, 그냥 플랫폼에서 얼쩡거리며 사진이나 찍기로.

하마사카에서 산인혼센을 타고 대충 40~50분 정도 더 가면 돗토리역이라, 따로 요금을 지불하더라도 돗토리에 가려고 했는데, 태풍이 온다고 해서 계획은 완전히 바뀌었다. 태풍이 간사이지역을 덮칠 것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교통편이 끊길 수 있으니 공항에서 먼 곳으로 가는 것은 위험한 일이니 다시 돌아가는 열차를 타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지루한 여정을 시작하기로.

심심해서 역 사진이나 찍고.
아~ 포켓와이파이라도 빌려서 들고 다니면서 써야 하나.

하마사카까지 타고 왔던 열차는 돗토리행 열차로 변신.
아직까지 돗토리는 미정복지역인데..


연명개조를 하였다지만 세월의 흐름이 곳곳에 묻어나는 떵차.

역에 명소를 소개하는 간판이 있는데 안타깝게도 시간이 없어서 돌아가야 한단다.

자~ 이제부터 산인혼센을 타고 상경하는 길고 긴 여정이 남았구나.

기노사키온센역에서 탈 열차는 카스미행 보통열차. 두 시 넘어서 도착을 해서 온천을 여유있게 즐기려면 이동하는 것은 무리였지만, 그래도 가지고 있는 패스의 이용범위가 여기까지가 아니고 하마사카(浜坂)까지여서 한 번 가보고 싶어졌다. 조금 일찍 출발했더라면 온천도 하고, 카스미, 하마사카를 조금 여유있게 둘러볼 수도 있는데, 밤이면 숙소에 들어가 TV를 보면서 일본어공부를 한다거나 야식을 먹으면서 일을 하는 경우가 있어서 새벽녘에 잠들어 8시가 넘어 눈을 떠서 이불 속에서 뒹굴고 있다가 나오는지라 10시 전후에 출발을 하고 목적지에 늦게 도착하는 악순환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왼쪽은 상행(교토) 방면이고 오른쪽이 하행(하마사카) 방면이다. 기노사키온천에도 로프웨이가 있어서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는데 작년 초에 갔을 때 돈이 없어서 로프웨이를 못탔다. 이번에는 시간이 없었고..

탈 열차는 카스미(香住)까지 가는 보통열차. 흔히 완만렛샤(ワンマン列車)라고 하는 운전사가 차장 역할까지 다 하면서 운행하는 열차가 들어올 예정이다. 인구가 적은 시골 지역에는 무인역이 많아 요금 징수가 어렵기 때문에, 기관사가 그 역할까지 한다. 전광판에 선두차량부터 하차해달라는(先頭車両から降車)는 것도 운전사에게 운임을 지불하라는 이야기다.

열차는 두 량짜리 열차. 외관은 꽤 오래된 열차였는데 내부는 현대화 공사를 하여 신형차량처럼 잘 개조를 해놓았다. 역시 타는 사람은 거의 없다. 차창에 보이는 서양인 아저씨 하나와 나와 단 둘이 승차. 그런데 이 아저씨는 다음 역인 타케노(竹野)에서 내리더라. 그럼 이 칸에는 혼자란 이야기네.

이 열차가 달리는 산인혼센(山陰本線). 도호쿠혼센(東北本線)이 도호쿠신칸센 신아오모리 연장 이후 일부 구간을 지역 철도 회사에 운영을 넘긴 후 일본의 재래선 노선 중에서는 가장 긴 노선이 되었다. 일본에 여러 번 다녀오면서 어지간히 이름이 알려진 동네는 가보았지만, 기노사키온천 이후 산인혼센 구간을 가보는 것은 처음. 그래서인지 차창 밖의 경치를 유심히 보게 된다. 사실 이 노선이 다니는 지역은 인구밀도가 높지 않은 곳인데다, 산인혼센이 지나가는 곳 중에서 그나마 알려진 돗토리가 있는 돗토리현이나 마츠에, 이즈모가 있는 시마네현은 일본에서도 가장 인구가 적은 현 1,2위를 다투는 곳인데다, 효고현 북쪽 역시 인구가 적은 곳이라 열차 운행도 뜸하고 달리는 열차도 썰렁하기 그지없다. 거기에 태풍이 온다고 하니 이 지역으로 여행을 계획했던 사람들도 대부분 취소를 했다고.

도시 생활에 익숙해진 사람으로서 이런 시골에서 생활하라고 한다면 어렵겠지만, 나중에 이런 곳에서 조용히 지내는 것을 꿈꾸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친구들은 요즘에 시골에서 생활하려는 사람이 어디 있냐며 늙은이 같은 소리를 한다고 그러니까 여자친구가 없는 거라고들 한다. 난 그저 삭막한 도시에서 벗어나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지내고 싶을 뿐이라고.

사츠(佐津)역이다. 다케노역에 정차했을 때는 사진을 못 찍었는데, 그냥 찍어봤다. 역시 무인역으로 운전사가 승객 관리 업무를 전담하게 된다.

산인혼센 복선 전철화를 추진하자고 하는데, 복선화가 되면 양방향 열차 운행 속도가 빨라지고, 열차 교행을 하지 않아도 되니 열차 편성 역시 늘어날 수 있을테고, 전선을 설치하면 열차 운행비용이 감소하겠지. 그런데 이 노선을 이용하는 수요가 중요한 것인데, 복선화를 한다면 새로이 선로를 깔아야 하고, 전선을 설치하는 비용을 회수할 수 있을 만큼의 수요가 증가할 것인지는 의문이다. 이 지역 주민으로서는 갈수록 사람들이 도회지로 빠져나가고, 지역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노인들만 거주하게 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치 않다.

시바야마(柴山)역. 열차가 출발하고 사진을 찍었더니 흔들려버렸다. 다음 역은 열차의 종착역인 카스미. 무인역이라 잡초가 무성하고 역명판을 받치는 기둥에 녹이 슨 것이 관리가 잘 되지 않았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역시 이 동네도 일본에서는 니혼카이(日本海)라 부르는 동해에 접한 곳인데, 몇몇 민숙 여관이 있는 듯하다. 

조금 더 가니 약간은 규모가 있는 마을이 나오는데 아마도 이 열차의 종착역인 카스미에 곧 도착할 것 같다. 카스미는 카스미가니(香住ガニ.카스미 게)로 유명한 동네로 겨울철이면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 한다. 맛있는 게요리를 먹고, 온천을 즐기고 가는 1박 2일 여행 상품이 인기라고. JR에서도 동절기에는 오사카에서 출발해서 카스미 또는 하마사카까지 운행하는 카니카니하마카제(かにカニはまかぜ)열차를 운행한다. 이 열차 탑승객은 대개 왕복 열차 승차권과 게요리 식사가 제공되는 온천 근처의 숙소에서의 하루 숙박이 포함된 여행 상품을 통해 관광을 하고 돌아간다고. 예전에 멋모르고 기노사키온천에서 오사카로 돌아가려고 이 열차를 탔었는데, 전 좌석이 지정석에 만석이라서 다음 역인 토요오카에서 재빨리 내렸던 기억이 있다. 계속 그 열차를 타고 있었다면, 차장이 검표를 하다가 나에게 지정석 특급권 요금을 징수했을 것이야.


지금까지 지나왔던 곳에 비해서는 제법 큰 동네라는 느낌이 온다.

카스미역에 내렸다. 키하 47계의 오래된 열차다.

그래도 내부는 리모델링을 한데다 이용승객도 많지 않아서 상당히 깔끔하다. 역시 JR니시니혼의 차량 재활용실력은 뛰어나다.

열차가 여기까지만 운행을 하니 잠시 역 바깥으로 나가서 다음 열차 시각을 알아보고 동네 한 바퀴 돌아보기로 한다. 저 지오파크와 바다의 문화관을 오가기에는 시간이 없어요.

반대편에는 토요오카행 쾌속열차가 정차해 있다. 이 열차를 타면 기노사키온천까지 빨리 돌아갈 수 있으나, 여기까지 온 의미가 없어지므로 아쉽지만 패스하기로 한다. 이 열차 역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차량이다.

카스미역은 역무원이 있는 유인역이라서 역무원 아저씨에게 품 안에 있던 패스를 보여주고 역 바깥으로 나왔다. 역시나 이 역의 상징은 게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다. 태풍만 아니었더라면 이 날은 기노사키온천에서 온천을 즐기고 여기에서 하룻밤 묵으면서 게를 먹으려고 했는데 조금은 아쉽다. 그 아쉬움보다 당장 할 일이 없다는 것이 참 괴롭다. 다시 역으로 돌아가 열차 시각표를 뒤적이는데 하마사카까지 가는 열차 시각이 많이 남아서 절망에 빠지려는 찰나, 역 개찰구 앞에 달린 LCD모니터에서 임시쾌속 산인카이간지오라이너(山陰海岸ジオライナー.산인해안지오라이너)열차가 15시 9분에 카스미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다시 패스를 보여주고 안으로 들어가 지하도를 지나 건너편 플랫폼으로 갔다.

차량 전체에 새로이 도색을 한 신형 차량인 듯 싶다. 썩은 차량 재생만 하는 줄 알았던 JR니시니혼도 이런 신형 열차를 투입하고 있구나 싶다. 산인카이간지오라이너는 주말과 공휴일에만 운행하는 임시열차로 토요오카에서 돗토리까지 꽤 먼 거리를 운행하는 열차다. 이름처럼 산인해안을 따라 달리면서 자연을 감상하는 열차인데, 패스의 유효구간이 하마사카까지이니 거기까지만 갔다가 돌아오면 되는데, 문제는 하마사카에 가기 전에 내릴 역이 있다는 것.

신형 열차답게 내부도 깔끔하고 장거리 운행을 하는 열차인지라 화장실도 있다.

열차의 랩핑 역시 잘 되어 있는데..

문제는 이 열차를 타고 끝까지 갈 수 없다는 것이겠지.

내부에도 이 열차가 다니는 지역의 특색을 보여주는 사진들로 랩핑을 해놓았다. 저 샌드보드 타는 사진은 사구로 유명한 돗토리일테고..

이 열차를 타면서 저 광경들을 다 볼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물어볼걸 그랬나 싶다.

다행히 구름이 걷히고 파란 하늘이 보이는가도 싶은데..

열차는 텅텅 비었다. 태풍의 여파인가. 계속 주변 안내방송을 하는 승무원 민망하게시리.

바다가 보인다.

그리고 내가 내릴 곳인 장소에 거의 다 왔다.

바로 이 역이다.

열차 앞 칸에 타고 있던 사람들도 여기서 많이 내리고, 역에 있던 사람들은 이 열차를 탄다.

사진 실력이 형편없어서 죄송합니다.

돗토리행 인증샷.

승무원 인증샷. 이 열차에는 운전사 외의 승무원이 둘인데, 아마도 이 여자 승무원이 짬이 덜 되는지 차내 안내방송은 물론 문 닫는 것도 다 맡아서 하고 있다. 나머지 한 명 남자 승무원은 보이지 않네.

열차는 문을 닫고 떠나간다. 가지 말라고 소리치고 싶었으나 그런다고 가지 않을 열차도 아니고..

아직 가지 않는 것은 붙잡으면 문 열어주려는 것인가. 얼른 가라!

그렇습니다. 이 역은 아마루베역입니다.


 잠꾸러기의 여행노트

<임시 쾌속열차 산인카이간지오라이너(山陰海岸ジオライナー)>

토요오카(豊岡)-돗토리(鳥取)를 오가는 임시 쾌속열차. 토요일, 일요일과 슈쿠지츠(祝日.축일)라고 부르는 한국으로 따지면 공휴일에만 왕복 1편성 운행하며, 2월 28일까지 운행이 예정되어 있다. 하행은 오후에, 상행은 오전에 있으므로 시간을 잘 맞추어야 한다. 토요오카-돗토리 구간을 약 두 시간 정도 걸려서 운행하며, 주요 역에만 정차하는 쾌속열차다. 차내 안내방송이 있어서 별도의 가이드 없이 여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일본어로만 방송을 해서 일본어를 모르면 아무 소용이 없다.열차시각표는 첨부파일을 참조(일본어 문서).

saningeoliner.pdf


15. 기노사키온천 가는 길

2014. 11. 19. 05:28


12일 일요일은 3연휴의 두번째 날로 관광업계에서 바라는 황금연휴 기간인데, 태풍이 정말 오고야 말았다. 가을에 태풍이 오다니.. 악! 오사카를 비롯한 긴키 지역은 태풍의 영향권에 아직 접어든 상태는 아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예정했던 여행 계획을 취소하면서 8,9,10일 숙박을 예약하고 11일 밤은 미처 예약을 못하고 12일만 간신히 길 건너에 있는 역시 싸구려 호텔에 예약을 한 상태였다. 그것도 일본 사이트가 아닌 아고다에 있던 마지막 간신히 하나를 예약했다. 11일에는 어떻게 할 지 도착한 이후부터 계속 고민을 하다가 그나마 사람이 없는 역시 기타킨키의 하마사카나 카스미에서 하룻밤 묵고 돗토리에 들렀다 올 생각도 했는데, 미리 예약했던 사람들이 취소를 한 바람에 운 좋게 하루를 묵던 곳에서 더 있을 수 있었고, 귀국 전날인 12일만 같은 동네의 길 건너편에서 하루 묵고 집으로 가는 계획이 완성되어 있었다. 덕분에 11일은 카스미에 가서 유명한 카스미가니(香住ガニ.카스미 게)를 먹으려던 계획을 대신해 아마노하시다테에 다녀오고, 12일에 기노사키온천에 다녀오는 힐링 여행 일정으로 바꾸었다. 인터넷으로 예약만 해놓은 상태였다면 12일 역시 같은 곳에서 하루 더 묵을 수 있었는데, 아고다에서 예약을 하고 결제까지 해버린 뒤여서 취소할 수도 없고, 조금 귀찮은 상황을 감수하는 수밖에. 오사카의 싸구려 호텔보다 카스미의 민숙이 더 비싼지라 돈이 부족했던 상황에서 오히려 잘 되었다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 어쩔 수 없이 인터넷카페를 전전해야 하는 상황을 피할 수 있어서 다행이기는 하지만 아쉬운 마음도 들고.

날이 맑았던 어제와는 달리 비가 내리지는 않지만 구름이 낀 날씨여서 몸도 찌뿌둥한 것이 아침이 상쾌하지 않다. 낮에는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지만, 밤에 들어가서는 넷북을 열고 회사 일을 살펴야 하는지라 잠이 부족하기도 하고, 이틀 연속으로 많이 걷고 열차에 오래 앉아 있었더니 적지 않은 피로가 쌓인 듯한 느낌. 어른들 말씀처럼 하루하루가 다르다는 느낌은 아니지만 피로 회복이 늦어지는 것은 사실인 듯하다.


오사카칸조센을 타고 텐노지역에 도착.

역시 시작은 텐노지역으로 가서 특급 하루카를 타는 것이다. 산인혼센(山陰本線)의 시작이 교토니까 교토까지 가는거다. 특급열차를 타도 기노사키온천까지밖에 못 가기는 하지만 온천은 즐거우니까. 이 때만 해도 마음이 바뀔 지는 몰랐는데..


건너편에 반대방향으로 가는 소토마와리(外回り.한국식으로는 외선) 열차가 역시 정차중이다.


일요일이라고 철덕 아저씨가 커다란 렌즈가 달린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고 있다. 부럽다~ 카메라가.

자주 오면서도 그냥 지나쳤던 역 명판이나 찍어본다.

동일본대지진 이후 오사카에 자주 가는 편이지만 초심자라면 복잡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노선들이다.

위에 있는 야마토지카이소쿠(大和路快速)는 오사카-나라 방면, 키슈지카이소쿠(紀州路快速)는 오사카-와카야마 방면의 열차, JR난바에 가는 보통열차는 아마도 나라 쪽에서 오는 열차겠지. 들어오는 열차도 가지각색이지만 타는 곳이 열차에 따라 달라지니까 헤매기 쉽다. 대충 구분은 할 수 있는데 정신을 놓고 있다가 종종 실수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열차들은 내가 탈 열차가 아니라는 말씀.

특급 하루카를 탈거다. 키슈지쾌속열차가 늦어서 특급열차도 지연되나 싶었는데 그렇지는 않은 모양.
야! 그런데 5분이나 늦었는데 출발하지 않고 있잖아.

갑자기 4분 지연으로 말을 바꾸고 있다. 5분이라고!!

하루카는 제 시간에 왔습니다!!! 이래서 비싼 돈을 주고 특급열차를 타는가 BoA요.

신오사카역. 태풍 19호 접근에 따른 안내를 하는데.. 모르겠다!!

다음은 교토.

산토리 교토 공장을 지난다.

밤이 되면 여기에 열차 수십 대가 들어오겠지.

드디어 낡은 밥통열차가 걸렸구나.

시간이 약 18분 정도 남아 있어서 일단 역에서 늦은 아침 식사를 해결하기로 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어. 교토역 30번, 31번 승차홈 사이에 우동과 소바를 파는 가게가 있는데 지난밤에 이 앞에서 저녁을 먹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동전이 부족해서 그냥 오사카로 갔는데, 이번에는 부족한 동전 대신 잔액이 조금 남아 있는 스이카로 결제를 했다. 지난달에 삿포로에서 3,000엔 충전해서 공항에 가고, 과자를 산 후에 조금 남은 잔액이 있었다.


카츠카레동과 미니우동 세트.

맛은 뭐 잘 모르겠다. 먹을 만한 그런 정도랄까.

원래 음식 가지고 장난치는 것 별로 안 좋아해서 카레돈까스 같은 것은 잘 안 먹는데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음.

이것은 심플한 우동.

먹고 나면 잠이 잘 올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간밤에 규동으로도 부족해서 마트에서 니기리즈시 12개짜리와 삿포로 맥주를 사서 잘 먹었는데 그래도 배가 고팠는지 순식간에 뚝딱하고 열차를 타러 간다. 아직 2분 정도 남은 것 같다. 먹는데 10분 정도 걸린 모양이네.

출발을 앞두고 차장이 문을 닫을 준비를 하고 있다.


열차는 확실히 별로다. 특히 화장실은 여자라면 참 불편하게 생겼다.

니조역 지나고 나니까 그 다음에는 그냥 산이다.

왠지 진행방향 오른쪽에 앉고 싶어졌다.

차장이 아직 검표를 안 해서 카메오카(亀岡)역에서부터 앞 칸으로 이동해서 오른쪽 좌석에 착석. 여기는 소노베(園部)역.

졸다보니 어느새 복지산(福知山. 일본식 발음은 후쿠치야마)역. 여기를 다시 오다니..

반대쪽에 소학교 저학년 정도로 보이는 어린 아이와 할아버지가 함께 열차를 타고 후쿠치야마역에서 내리는데 승차권인지 특급권인지는 모르겠는데 둘 중 하나를 잃어버린 모양. 차장이 검표까지 했으니 두 장을 모두 가지고 있었을 텐데 화장실이나 어디 좌석 틈바구니로 흘려버린 모양. 결국 못 찾고 내렸는데 요금을 더 내지는 않았는지 모르겠다. 열차를 타면 표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저 코노토리는 어제 내가 아마노하시다테에 갈 때 탔던 그 열차다. 그리고 지금 탄 열차는 그 때 보았던 기노사키 열차고.


후쿠치야마에서 토요오카까지는 JR의 산인혼센과 KTR의 미야즈센이 있는데 열차 시간이 띄엄띄엄한 것도 있겠지만 KTR의 역은 황량하기 이를 데 없다. 이래서야 망하지 않고 배기겠느냐 싶은 생각이 든다.

후쿠치야마부터 계속 단선이기 때문에 역에서 교행을 하느라 열차가 서 있다. 역시 특급열차가 우선이겠지.

눈에 보이는 것은 산과 들판.

토요오카역. 저 열차는 빨간 색인 것을 보건대 KTR에서 요즘 홍보하는 탄고 아카마츠 열차인 것 같다.

신오사카발 기노사키온천행 특급열차의 이름 코노토리는 '황새'라는 뜻인데, 토요오카를 지나서 마루야마가와를 지나다 종종 황새를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날은 황새가 보이지 아니한다. 황새는 국제적으로 멸종 위기에 처한 귀한 새로 토요오카시에서는 이 황새 복원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런 노력 덕분인지 종종 황새들이 보이기도 하고 열차 이름도 황새라고 지은 것 같다.

키타킨키 빅X 네트워크를 여기서도 홍보를 하고 있다. 좀 안쓰럽기도 한데..

주말이나 연휴 기간에는 코노토리나 기노사키 열차의 자유석이 바글바글해서 빈 자리가 별로 없는데 태풍 앞에서 모든 것이 무너지고 말았다. 기노사키온천까지 가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자리가 텅텅 빈 채로 간다.

종점인 기노사키온천에 도착.

기노사키온천은 오사카, 교토에서 세 시간 정도 걸리는 가깝다고 할 수 없는 거리에 있는데(비싸기는 하지만 신칸센을 타면 두 시간 반에 도쿄나 후쿠오카에 갈 수도 있으니), 유서깊은 온천인지라 외국인보다 현지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그러나.. 태풍 때문에 썰렁하다.


타고 온 열차는 이제 코노토리로 이름을 바꾸고 신오사카로 간단다.

온천욕을 즐기고 나오면 시간이 남을 것 같으니 카스미까지 갔다가 온 다음에 온천을 하고 돌아가기로 한다. 기노사키온천에 처음 오는 것이 아니라서 온천가를 돌아보며 구경할 필요는 없고 소토유 한두 군데 들어가서 몸만 담그고 나오면 되는지라. 돌아오는 열차 시간이 조금 애매하기는 한데 18시 18분에 신오사카 행 코노토리 마지막 열차가 있으니 오후 4시 즈음해서 이 곳에 돌아오면 될 것 같다. 정신을 어디에 팔아먹고 다니는지 매표소에서 열차 시각표 확인하고 나오다가 투명한 유리창벽에 들이박았다. 터벅터벅 걸었으니 다행이지 서둘러 달리기라도 했으면 대형참사가 벌어질 뻔했네. 안에 있던 역무원들이 볼까 싶어 서둘러 도망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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