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보기/9회말 투아웃

자타가 공인하는 현재 최고의 투수 류현진이 지난주 일요일 통산 22번째이자 한국 프로야구 역대 최연소(24세 2개월 25일, 종전 주형광의 24세 3개월 14일), 최단 경기(153경기, 종전 정민철의 180경기) 1000탈삼진 기록을 수립했다. 탈삼진 1000개가 얼마나 대단한 기록인지 피부에 와닿지 않을 수 있지만, 30년 역사의 한국 프로야구에서 활약했던 그 많은 투수들 중에서 류현진을 제외한 고작 21명밖에 이 고지에 오르지 못한 어려운 기록임이 분명하다. 류현진은 가장 어린 나이에 그리고 가장 짧은 5년 2개월 여라는 시간만에 이 기록을 달성했고, 1000개의 탈삼진은 더 많은 기록을 세우는 과정의 일부이지 종착점이 아니라는 것이다.


탈삼진 1000개의 기록을 달성한 2011년 6월 19일 류현진의 역투 ⓒ 연합뉴스


류현진과 함께 최고 투수로 꼽히는 김광현이 525개, 윤석민이 643개에 그치고 있어 동 시대의 비슷한 연령대의 투수들이 이 기록을 깨기 위해서는 적어도 2~3년은 걸려야 할 것이다. 이들이 최연소라든가 최단 경기와는 거리가 먼 것은 당연하다. 단지 탈삼진만이 아니고 이들은 류현진만큼 데뷔하자마자 강력한 포스나 꾸준한 건강 상태와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류현진은 시즌 중에 피로가 누적되어 선발 로테이션을 건너뛰거나 이미 팀이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후 등판을 하지 않은 적이 있지만, 한창 순위 다툼을 하는 와중에 부진으로 2군으로 내려가거나 부상으로 이탈해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꾸준함 역시 프로야구 선수가 지녀야 할 하나의 덕목이기에 류현진의 가치는 더 빛날 수 밖에 없다.


고졸 출신 선수들의 데뷔 5년간 성적표 (자료출처 : www.istat.co.kr)


류현진은 프로야구 역사상 성공했던 고졸 출신 에이스들과 데뷔 후 5년간의 성적 비교에서도 전혀 밀리는 바가 없다. 투수 분업화가 자리 잡은 최근의 투수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많은 이닝을 던졌으며, 데뷔 이후 시즌 중간이나 말에 열린 국제대회에는 빠짐없이 참가하면서 오프 시즌에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역사상, 그리고 동시대의 경쟁자들에 비해 강한 내구력과 꾸준함으로 리그를 지배하는 투수로 활약하고 있다.

이번 시즌 초반 류현진은 부진한 투구 내용으로 혹사와 피로 누적으로 인한 기량 저하를 의심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류현진은 데뷔 첫 해부터 풀타임 선발투수로 활약하면서 5년 동안 가장 많은 공을 던진 선수 중의 하나였다. 과거 장명부, 최동원 등이 말도 안되는 이닝을 소화하였지만(이들은 결국 혹사로 인해 선수 생활을 일찍 접게 된다) 프로야구에 선수 보호에 대한 개념이 없던 시절의 일이었으니 제외한다면 류현진의 팔에 무리가 왔다는 걱정을 해도 큰 무리는 없었다. 더구나 고등학교 때 수술을 받은 적이 있는 팔꿈치는 류현진이 부진하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늘 염려되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류현진은 자신을 둘러싼 온갖 이야기들을 비웃듯 다시 예전의 무서운 기량을 보여주며 가장 강력한 투수로 돌아왔다. "앞으로는 세게 던질 것" 이라고 공언했던 류현진은 120개를 넘게 던져도 시속 150km의 강속구를 뿌리며 막판까지 타자를 힘으로 압도하였다. 벌써 세 번째 완투를 하였고, 다승 공동 4위(7승), 평균자책 10위(3.83), 투구 이닝 2위(96.1이닝), 탈삼진 1위(103개)를 기록하고 있다. 이미 시즌 절반이 지난 상황이어서 작년과 같은 1점대의 평균자책을 기록하기는 어렵겠지만 지난 주에 보여주었던 모습이 이어진다면 3점대 초반 아래로 내릴 가능성이 높고, 선두와 1승 차이로 따라붙은 다승 부문의 타이틀도 노려볼 수 있게 되었다. 5년 동안 단 한 번밖에 놓치지 않았던 탈삼진은 이닝 당 1개 이상의 삼진을 잡아내는 페이스로 보아 올해도 부상과 같은 큰 변수가 없다면 가장 강력한 수상 후보다.

류현진은 완투형 투수가 거의 사라진 요즘 유일하게 혼자서 경기를 마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투수다. 고독한 황태자의 윤학길의 100완투를 깨기는 어렵겠지만 26번의 완투로 현역 투수 중 이 부문 최다를 달리고 있다. 완투를 하는 것이 투수 자신에게 좋은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지만, 완투를 할 수 있는 투수가 있다는 것은 팀에 상당한 도움이 된다. 5일 쉬고 나오는 선발 투수가 5회를 막기도 힘들어 초반에 강판되고, 불펜 위주로 마운드 운용을 하면서 불펜 투수들에 과부하가 걸리는 현대 프로야구의 추세에서 한 경기를 스스로 끝내면서 불펜에 휴식을 가져다주는 것은 정말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류현진의 다른 기록으로는 정규이닝 최다 탈삼진을 들 수 있다. 류현진은 작년 5월 11일 청주구장에서 LG를 맞아 9이닝 동안 17탈삼진을 기록하며 완투승을 거두었다. 한 경기 최다 탈삼진은 선동열 삼성 운영위원이 해태 시절 빙그레를 상대로 13이닝 동안 18개의 탈삼진을 기록한 것이지만, 연장까지 가지 않은 정규이닝에서의 최다 기록은 최동원(당시 롯데)과 선동열, 그리고 이대진(당시 해태)이 기록했던 16개가 최다였다. 비록 탈삼진은 투수를 평가하는 척도 중의 일부라고는 하지만 최동원과 선동열이라는 누구나 인정할 프로야구의 대투수들을 넘은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이 기록과 함께 선발 타자 전원 탈삼진과 매 이닝 탈삼진(개인 통산 두 번째)의 기록도 함께 세웠으니 잊지 못할 기억을 남긴 날이었다.

최동원과 선동열의 활약상에 대해 평가절하할 의도는 없지만 투수에 대한 평가는 활동하는 시기의 타자들의 실력 역시 중요한 변수 중의 하나다. 수가 많지 않지만 외국인 타자나 해외 리그 경험을 가진 타자도 있고, 전반적으로 과거에 비해 타자들의 힘과 기량이 나아진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적게는 2점대에서 평균적으로 3점대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던 80년대의 야구에 비해 한두 팀을 제외하고 대부분 4~5점대의 평균자책을 기록하는 것은 투수의 기량에 비해 타자의 기량 발전 속도가 빠른 것을 의미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5년 동안 2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고 있는 류현진의 성적을 단지 숫자상의 비교만으로 그들보다 못한 투수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류현진이 지금과 같이 좋은 투수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입단 당시 류현진이 보고 배울 수 있는 훌륭한 노장 투수들이 있었다는 점을 꼽는 사람들이 많다. 타고난 재능이 있더라도 갈고 닦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법이듯이 어떻게 자기 관리를 하는가에 따라서 선수의 실력은 달라지게 된다. 류현진이 돌풍을 일으키며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면서 조금은 나태해지려고 할 때, 송진우, 구대성과 정민철 등 삼촌뻘의 고참 선수들이 지적을 하면서 야구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스스로 "구대성·송진우 선배님을 닮고 싶다" 고 밝힌 바 있듯이 프로 투수로서의 롤 모델로 삼고, 이를 넘어 더 큰 선수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목표를 세운 것이 지금의 류현진이 있기까지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모두 은퇴하고 갑자기 꼴찌팀 에이스가 된 류현진의 어깨는 무거워졌다. 류현진이 아무리 LG를 상대로 맹위를 떨쳤다고는 하나 팀타율 최하위인 소속팀 한화 타선을 상대하지 않았다는 점은 투수로서는 불리한 조건이었다. 미안하지만 꼴찌팀들은 대부분 타격과 투수력을 비롯한 수비력이 모두 다른 팀에 미치지 못한다. 부족한 공격력은 점수를 못 내는 만큼 점수를 내주지 않기 위한 부담을, 부족한 계투진과 수비는 혼자서 모든 것을 다 책임지고 경기를 끌어나가야 한다는 부담을 안겨준다. 이런 점에서 류현진이 만약 계투진과 타력이 강했던 삼성이나 두산에서 뛰었더라면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지 않았을까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류현진은 작년에 가공할만한 위력을 보여주었다. 1점대 평균자책점과 29경기 연속 퀄리티스타트라는 괴물같은 기록을 세우며 그가 한국 최고의 투수라는 것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었다. 다른 해와 달리 전년도 시즌을 마친 후 포스트시즌이나 국제대회가 없어서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 있었던 것이 류현진이 작년에 좋은 활약을 할 수 있었던 원인 중의 하나가 아닌가도 싶다.

류현진에 대한 찬사는 다른 곳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는 내용이니만큼 여기서 마치도록 하고, 글의 제목처럼 류현진의 탈삼진 기록에 도움을 준 사람들을 찾아보자. 대부분의 전문가들도 기대하지 않았던 신인 투수를 과감히 선발로 기용하는 믿음을 보여주었던 김인식 전 한화 감독이나, 바닥을 치는 팀 성적에도 고생하는 에이스의 등판 일정을 조절해주려고 애썼던 한대화 감독, 그리고 한용덕, 이상군, 정민철 등 한화의 전현직 투수코치들과 트레이너 등 여러 사람들을 빼놓을 수 없다. 이러니저러니 말이 많아도 류현진의 공을 묵묵히 받아왔던 포수 신경현 역시 그 기록의 동반자이자 공로자로 인정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은 1000개의 탈삼진 중에서 어떤 타자가 그리고 어떤 팀이 가장 많이 삼진을 당해서 그 기록 달성을 도왔는지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단 하나의 탈삼진이라도 반드시 누군가는 타석에서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오는 공을 가만히 보거나 헛스윙으로 삼진을 당해야 기록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류현진의 탈삼진 기록에 가장 큰 공헌을 한 팀과 선수들을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자. 우선 팀을 살펴보면 누구나 쉽게 류현진에게 약했던, 그리고 류현진 뿐만이 아닌 좌완 투수에게 절대적으로 약했던 LG트윈스를 떠올릴 것이다. 실제로 류현진은 '표적 등판' 이라고 할 정도로 LG를 상대로 등판한 적이 많았다. 데뷔 이후 현재까지 류현진은 LG전에 모두 31번 선발 등판을 하여 232이닝을 던졌다. 다음으로 많이 등판한 팀은 26경기의 삼성인데, 경기 수는 고작 다섯 경기 차이지만 투구이닝에서 거의 60이닝이 차이가 나고, 2.25라는 평균자책점에서 보이듯이 LG에는 상당히 강했음을 알 수 있다.


류현진의 통산 팀별 상대기록 (자료출처 : www.istat.co.kr)


류현진은 LG를 상대로 240개의 탈삼진을 기록했는데, 1003개의 탈삼진 중에서 무려 23.9%에 이르는 수치다. 경기마다 평균 7이닝 이상을 소화하면서 경기 당 8개에 가까운 탈삼진을 차곡차곡 쌓았다. 9이닝당 탈삼진 부문에서도 9.31개로 9.21개의 SK를 제치고 LG가 선두를 달리고 있다. 류현진은 데뷔전이었던 2006년 4월 12일 잠실 LG전에서 7.1이닝 동안 탈삼진 10개를 기록하며 첫 승을 거두었고, 작년 5월 11일 청주구장에서 다시 LG를 상대로 9이닝 동안 17개의 탈삼진을 잡아내며 LG를 상대로 탈삼진과 관련된 많은 기록을 만들었다. LG는 전통적으로 좌타자가 많아서 좌완 투수에게 약한 점이 있지만, 타자들의 선구안이 좋지 않아 볼넷은 적게 고르고 삼진은 많이 당하는 편이어서 류현진의 밥이 되고 말았다. 어쨌든 류현진의 탈삼진 기록이 있기까지는 그 누구보다도 LG의 공헌이 컸으니, LG 3D TV 한 대 정도는 사야하지 않을까 싶다.

 

둘이 합쳐 40개의 삼진을 당한 조인성과 박용택. 전체 탈삼진의 4%가까이 차지한다. ⓒ OSEN


류현진에게 가장 많은 삼진을 당한 타자 역시 LG에 두 명이나 있는데, 다른 팀의 선수도 같은 개수의 삼진을 당한 것이 눈에 띈다. 그 선수는 바로 삼성의 조동찬이다. 조동찬은 LG의 박용택, 조인성과 함께 20개의 삼진을 당해 류현진의 탈삼진 기록에 가장 큰 공헌을 하였는데 박용택과 조인성이 나란히 79타석에 들어서며 타석 당 0.253개의 삼진을 기록했다면, 조동찬은 46타석밖에 들어서지 않아 타석 당 0.435개의 삼진을 기록하고 있다. 조동찬은 10번 이상 타석에 들어선 타자들의 삼진율에서도 상위권을 달리고 있다. 조인성은 작년 류현진이 17탈삼진의 기록을 세우던 때 4연타석 삼진을 당하며 호구라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러나 조인성이 처음부터 류현진에게 약한 타자는 아니었다. 2006년에는 단 한 차례의 삼진도 당하지 않고 .308의 상대 타율을 기록하는 등 오히려 류현진에게 강했지만, 류현진과 자주 승부하면서 자연스럽게 삼진의 숫자가 늘어나고 타율이 떨어지면서 류현진의 기록 달성에 큰 도움을 주었다. 다음으로 18개의 삼진을 당한 LG의 박경수, 17개를 당한 이대형(LG), 이대호, 강민호(이상 롯데), 16개를 당한 강봉규(삼성), 15개를 당한 박재홍(SK), 김상현(KIA) 등이 뒤를 따르고 있다. 지금은 경찰청에서 군복무 중인 LG의 박용근은 26타석에 들어서서 12번 삼진을 당하면서 무려 46.15%의 삼진율을 기록하는 등 류현진의 탈삼진 리스트에서 LG 타자들의 이름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류현진의 연속 경기 퀄리티스타트를 23경기에서 마감시켰던 기록브레이커 넥센의 강귀태는 류현진에게 .320의 높은 상대 타율과 27번 승부를 하여 단 두 번밖에 삼진을 당하지 않는 강한 면모를 보였다. 지금은 같은 팀에서 뛰고 있는 강동우와 이대수는 이전에 각각 14타석과 22타석씩 류현진을 상대하면서 한 차례씩밖에 삼진을 당하지 않았는데 이들이 한화로 오면서 류현진의 탈삼진 행진에 더 도움을 주었을 수도 있다.

류현진이 현재 단 4명만이 달성한 1500탈삼진을 넘어 송진우의 2048탈삼진을 넘어설 수 있을 지는 장담할 수 없다. 예기치 않은 부상이나 부진이 찾아올 수 있고, 꾸준하게 기량을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류현진은 연평균 180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면서 큰 기복 없는 활약을 해왔고,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유리하지 않아도 꿋꿋이 이겨내고 싸워왔다. 어쩌면 류현진이 기록을 세우는 과정에서 가장 큰 고비는 해외진출 여부에 달렸다고 해야 할 것이다. 올해 6년차인 류현진은 소속팀 한화가 해외 진출을 허락한다면 다음 시즌 후부터 늦더라도 FA 자격을 획득하는 2014년 시즌 후에는 해외 진출이 유력해보인다. 선수의 입장에서는 연봉과 같은 금전적 처우를 무시할 수 없거니와 새로운 무대에 도전하면서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싶은 것이 당연한 일이다. 안타깝게도 일본이나 미국으로 가는 순간 류현진이 한국프로야구에서 세우던 탈삼진 기록은 잠시 멈추어 있을 수밖에 없기에 류현진이 큰 무대에서 뛰는 모습을 보고 싶으면서도 아쉬움이 남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더 규모가 큰 일본과 미국으로 선수가 유출되는 것을 막을 수도 없고, 탈삼진만이 아닌 모든 누적 기록에 있어서 새로운 기록을 기대하는 것은 힘든 일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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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 김광삼에게 봄은 오는가  (0) 2011.04.23

어제 승리를 거둔 김광삼은 마운드에 오를 때마다 짠한 기분이 드는 투수다. 곱게 생긴 외모와는 달리 험하고도 험했던 그의 야구 인생 역정이 공을 던지는 순간순간 애잔함을 느끼게 한다.

2006년 팔꿈치 부상으로 수술을 하고 1년여의 재활기간을 거쳐 마운드에 올랐지만 예전과 같은 공을 던질 수 없었다. 수술 후 제대로 펴지지도 않는 팔로 던진 공은 힘이 없었다. 주변에서는 투수 김광삼에 대해서 더 이상 기대하지 않았다. 코칭스태프는 고등학교 때 보여주었던 타자로서의 재능을 살려 야수로 전업하기를 바랐다. 그는 장고 끝에 사랑하는 야구를 계속하기 위해 타자 전향이란 힘든 선택을 하였다.

그러나 타자로서의 제 2의 야구인생은 기대만큼 쉽지 않았다. 고교 시절의 강타자였을지언정 프로의 벽은 높았다. 입단 이후 몇 년 동안 하지 않았던 타격과 주루, 수비에 적응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쟁쟁한 LG의 외야수들의 틈바구니에서 경쟁의 기회도 얻기 힘들었다. 남몰래 방망이를 휘두르며 힘들게 연습했지만 외야수로서의 성공할 수 있을 지 알 수 없었다.

2009년 주루 도중에 입은 왼쪽 무릎 부상은 그의 야구 인생의 또 다른 전환점이 되었다. 어느덧 펴지지도 않던 팔이 회복되어 외야에서 강한 송구를 할 수 있었고, 다시 그가 마운드에 서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2년 동안의 타자 전환 과정이 힘들었던 만큼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다시 시작하기에는 적지 않은 나이, 그는 고민 끝에 다시 투수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고 여름부터 조용히 변신을 준비했다. 그동안 쓰지 않았던 근육을 단련하고, 오랜 시간 던지지 않았던 변화구를 가다듬는 연습을 하였다.

2010년 4월, 김광삼은 거의 3년 만에 마운드에 올랐다. 유망주 투수가 어느덧 30대의 고참 선수가 되어 있었고, 신인 시절 뿌리던 강속구도 평범해졌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1656일만의 승리를 거두었다. 그의 표정에는 만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다시 마운드에 선 기쁨과 그토록 갈구하던 승리의 환희, 그동안 길고도 힘들었던 재활과 준비 과정, 함께 걱정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왔던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 그는 승리 소감으로 묵묵히 기다려왔던 가족과 격려와 응원을 아끼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시즌 내내 100이닝만 던지면 좋겠다던 그의 소박한 바람 이상으로 다른 투수들이 줄줄이 퇴출과 부진으로 전력에서 이탈할 때 김광삼은 봉중근과 함께 무너진 선발 로테이션을 끝까지 지켰다.

2011년의 시작은 불투명했다. 심수창에게 4선발 자리를 내주며 개막 2주가 지나서야 처음 마운드에 오를 수 있었다. 봉중근이 돌아오면 둘 중 하나는 자리를 내주어야 하는 치열한 경쟁이 시작되었다. 작년의 활약이 올해의 활약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고, 언제라도 경쟁에서 지면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는 것이 냉혹한 프로의 세계다.

긴장과 부담 속에 첫 등판은 12년의 프로생활에서 한 번도 승리를 거두지 못한 롯데와의 경기였다. 타선이 초반에 점수를 냈지만, 2회에 무사 만루의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침착하게 1실점으로 위기를 막아내며 승리 투수가 되었다. 어제는 시즌 첫 완봉승을 거둔 트레비스와의 팽팽한 투수전에서 이기며 2승째를 따냈다. 84개의 공으로 7회까지(6.2이닝) 공을 던질 정도로 완벽에 가까운 투구였다.

어딘가 쫓기는 듯 하던 작년과 달리 마운드에서 한층 여유있는 그의 모습에서 자신감이 엿보인다. 이제 그를 볼 때 안타까움보다는 든든함이 느껴지는 선수로서의 활약을 기대한다. 파란만장했던 그의 야구 인생에도 따뜻한 봄날이 찾아오기를 소리쳐 응원해본다.

"올해는 10승 투수 합시다!"




역투하는 김광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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