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여행/2008 멜번 다이어리

대형 화면으로 중계되는 호주오픈 테니스 남자 4강 두 번째 경기를 지켜보기 위해서 페더레이션스퀘어로 돌아왔다. 전날 저녁에 열렸던 남자 준결승 1경기에서는 시드 배정을 받지 못했던 프랑스의 조 윌프레드 쏭가가 2번 시드의 라파엘 나달을 누르고 결승에 진출했고, 톱시드인 로저 페더러와 노박 조코비치의 경기가 열릴 예정이었다. 

로저 페더러의 아버지 로버트 페더러는 스위스인, 어머니가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인 탓에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를 모두 할 줄 안다고 한다. 가족끼리 대화할 때는 주로 독일어를 사용한다고 하며, 영어, 프랑스어도 상당한 수준이라고 한다. 역시 언어는 부모를 잘 만나는 것이 가장 좋고, 그 다음에는 본인의 재능과 노력이 좌우한다고 할 수 있겠다.

2006년의 페더러는 그랜드슬램의 모든 대회 결승에 올라서 프랑스오픈을 제외한 나머지 3개의 그랜드슬램에서 우승을 차지했다.[각주:1] 페더러가 유일하게 무릎을 꿇었던 대회는 '흙신' 라파엘 나달과 맞붙은 프랑스오픈 결승전이었다. 호주에서 가장 인기있는 선수는 로저 페더러인데, 어머니가 국적은 남아공이지만, 영국계 혈통을 가진 백인이라는 이유도 있는 것 같고, 악바리같이 달려드는 나달에 비해 점잖게 경기를 하는 페더러의 스타일을 선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페더러를 응원하게 된 것은 그의 치명적인 약점인 한 손 백핸드 스트로크 덕분이기도 한데, 최근에는 남자 선수들도 라켓을 두 손으로 잡고 치는 투핸드 백핸드 스트로크를 사용하는데, 원핸드 백핸드가 더 화려하고 치는 폼이 멋있게 나오기 때문에..


이렇게 광장에 앉아서 대형 스크린으로 중계되는 경기를 본다. 이런 대형 스포츠 이벤트의 경우에는 스폰서 기업들에 할당되는 티켓이 많아서 코트에서 가까운 좌석은 티켓판매점에 가도 쉽게 구하기 어렵다. 티켓텍(Ticketek)이라는 회사에서 판매를 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남자경기가 더 스피드가 있고 박진감이 넘치는데다 5세트 경기라서 경기 시간 역시 길기 때문에 저녁 세션은 이 경기 하나로 구성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페더레이션 스퀘어에 모여서 대형 스크린으로 중계되는 경기를 보고 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로드 레이버 아레나에서 경기가 펼쳐지고 있어서 그 곳에서 들리는 함성이 먼저 전해진다.

 

사진이 비뚤어졌는데 야간 촬영이라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고정을 하려다보니 이렇게 사진이 나왔다.

 

그래도 이 사진 하나는 건진 것 같다.

 

페더러는 1세트를 내준 뒤, 2세트에서도 힘없이 경기를 내주며 끌려가다가 3세트에 들어서서 간신히 리드를 잡았다. 페더러는 현재 스위스 출신 중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사람 아닐까 싶은데, 어디선가 스위스 출신 유명인 순위를 본 적이 있는데 페더러가 1위이고, 다른 사람들은 처음 접하는 이름이어서 뭐하는 사람들인지도 모르겠고,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스타니슬라브 바브린카가 순위권에 들지 않았을까도 싶다.

 

벼랑 끝에 선 페더러가 3세트에서 리드를 잡았다. 

그랜드슬램 남자 단식은 5세트까지 경기를 하므로 87년생인 조코비치가 체력적인 면에서 유리한 것도 있지만, 페더러의 경기 스타일은 테니스를 조금이라도 하거나 본 사람들이라면 코트를 넓게 쓰면서 상대를 계속 움직이게 하는 것이 아니고, 최대한 빨리 경기를 끝내고 체력 소진을 줄이려는 편이다. 


이 때만 해도 페더러가 3세트에서 반격을 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조코비치가 뒤지고 있던 12번째 게임을 역전하여 6:6 동점을 만들고 타이브레이크에서 페더러를 이기고 세트스코어 3:0의 완승을 거두었다. 조코비치는 이틀 후에 펼쳐진 결승전에서 프랑스의 조 알프레드 총가를 이기고 생애 첫 그랜드슬램 우승을 차지하였고, 이후 노쇠화가 진행된 페더러와 고질적인 부상으로 발목이 잡힌 나달을 대신하여 한동안 세계랭킹 1위에 오르게 되었다. 그 이후 한동안 부진을 겪기도 했지만, 아직 서른 살 밖에 되지 않아서 다시 세계랭킹 1위에 오를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고 할 수 있는데, 전성기의 폼을 찾을 수 있을 지는 잘 모르겠다.


대회 직후 알려진 사실이지만, 페더러는 감염성 단핵구증이라는 질환에 걸려 컨디션이 좋은 상태는 아니었다고 한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고 팔자려니 해야할 것 같다. 프로 스포츠 선수가 이런 핑계, 저런 핑계 대면서 부진한 이유를 말하는 것이 좋아보이지는 않고, 깔끔하게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면서 다음에 더 잘 하겠다고 하는 것이 상대 선수와 응원하는 팬들에 대한 예의일 것 같다.


호스텔로 돌아가야 한다. 낮에는 땡볕이 내리쬐지만, 습도가 높지 않아서 밤이 되면 쌀쌀해지고, 야라 강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이 더욱 춥게 느껴진다. 같은 방을 쓰는 사람들은 옥상에서 술을 마시느라 방은 비어 있어서 일단 씻은 뒤에 옥상에 올라가서 함께 술을 마시며 떠들다가 들어와서 잠을 잤다.

  1. 2005년에도 페더러는 프랑스오픈 준우승을 제외하고는 3개의 그랜드슬램에서 우승했다. [본문으로]

호주는 남반구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과의 시차는 크지 않지만, 1~2월에는 낮이 길어짐에 따라 활동시간이 길어진다. 멜번은 호주에서도 남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해가 일찍 뜨고 일찍 지는 덕분에 오후 8시까지는 조명이 없이도 야외활동에 큰 무리가 없다. 여기에는 Daylight Saving Time(일광절약시간제)이라는 우리에게는 서머타임이라는 이름으로 더 친숙한 시간변동제도의 영향이 있는데 10월 1일부터 익년 4월 1일까지 시드니가 위치한 뉴사우스웨일즈와 멜번이 위치한 빅토리아, 그리고 타즈마니아는 한 시간이 더 빨라지게 된다. 그래서 이 기간 동안에는 한국과의 시차는 2시간이 된다. 이 시기보다 2년 후에 머물렀던 애들레이드가 있는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주는 평소에는 한국보다 30분 빠르고, 일광절약시간제가 실시될 때는 1시간 30분이 빠르다. 호주오픈이 열리는 이 시기는 당연히 일광절약시간제가 실시되고 있어서 오후 8시 전후까지 날이 밝다.


시내 구간을 무료로 탈 수 있는 시티 서클 트램이다.


멜번에는 트램마다 광고를 달고 다니는 경우가 많다.

호주오픈 테니스가 열리는 기간 막바지에 오스트레일리아 데이(Australia Day)라는 호주의 중요한 국경일이 있다. 매년 1월 26일을 오스트레일리아 데이라고 하여 기념행사를 하는데, 한국식으로는 '호주의 날' 정도 되겠다. 당연히 국경일로 공휴일이며, 호주 전역에서 여러가지 축하 및 기념 행사가 열린다. 시기상 대개 호주오픈 테니스 대회의 막바지, 가장 관심이 가는 4강 또는 결승전이 열릴 때쯤과 겹친다.

 

경찰 언니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옆에는 친구들인가..

굉장히 자유로운 모습이다.

 

페더레이션 스퀘어

호주오픈이 열리는 시기에는 이 곳에서 스크린을 통해 경기를 볼 수 있고, 채널 7에서 거의 대부분의 호주오픈 경기를 생중계로 보여준다.


건너편에는 플린더스 스트리트 역이 있다.
앞의 글에서 한 번 언급했던 것 같은데,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 의 일부 장면이 이 도시를 배경으로 등장했다.

 

호주에도 SBS라는 방송국이 있다. 한국의 SBS와는 관계는 없는 곳이고, 호주가 다인종 국가가 되다보니 이런 소수인종 사람들의 호주 정착에 도움을 위해 만들어진 채널이라고 한다. 다양한 국가의 방송을 보여주며, 종종 한국의 프로그램도 이 채널을 통해 방송되기도 한다고. 나는 새벽 시간에 가끔 UEFA챔피언스리그 축구를 본 것 같기도 하다. 호주는 AFL이라 불리는 오스트레일리안 풋볼 리그가 있는데, 얘네들이 풋볼이라고 부르는 이 경기는 미식축구와 비슷하면서도 뭔가 다른 것이 있는 정말 호주에서만 볼 수 있는 경기다. 한국에서 종종 NFL경기를 보기도 했지만, AFL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경기 규칙도 잘 모르겠고, 별 재미도 없고 해서 거의 안 보았다. 호주의 영어가 영국식 영어라고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은 것의 예로 football이라는 단어를 들 수 있는데, 이 나라에서 football은 AFL을 의미하지, 4년에 한 번 월드컵이 열리는 FIFA주관의 그 11명이 뛰는 경기를 말하지 않고, soccer라고 한다. 그럼에도 다른 많은 부분에서는 영국식 영어 및 문화, 제도의 잔재가 많이 남아있지만, 미국의 영향도 상당히 많이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발음이 영국식도 아니고 그렇다고 미국식인 것도 아니고 적당히 잡종이 된 것 같기도 하고..

야라강(Yarra River)

호주오픈에서 우승한 선수들이 종종 이 강에 뛰어드는 세레모니를 펼치기도 한다. 가뜩이나 더운 멜번의 날씨에 누구라도 강에 뛰어들고 싶겠지만, 이 강의 깊이가 평균 10~15m 정도 된다고 한다.

테니스 경기 일정이 저녁에 남자단식 준결승 경기가 있기는 한데, 남자경기 가격이 더 비싸기도 하고, 그나마 가격 면에서 저렴한 구역의 자리는 빈 자리가 없어서 그냥 페더레이션 스퀘어에 앉아서 대형 화면으로 봐야할 것 같다. 그렇다고 비싸게 팔리는 입장권을 구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니. 대회 초반의 1라운드 경기는 저렴한 편에 속하지만, 시드 배정을 받은 톱랭커의 경기는 진작에 매진이 되었고, 학생비자를 가지고 있는 입장이 아니어서 출석률을 신경쓸 필요조차 없지만, 기껏 수업료를 내고 영어를 배운다고 하고 있기에 수업은 최대한 빠지지 않으려고 일정을 계획해서 여자 준결승 세션 하나만 구입을 했고, 오가는 것도 늦은 밤과 이른 아침 비행기로 예약을 했는데 토너먼트 대회에서 용케 샤라포바의 경기를 보게 된 것은 행운이었고..

지난 밤에 유럽 출신의 젊은 친구들과 옥상에서 술을 마시면서 놀고, 아침에는 네덜란드와 다른 유럽에서 온 녀석들을 따라서 보타닉 가든에 갔다. 쟤네들은 햇빛이 쨍쨍한 날씨에도 피부가 잘 타지 않는데, 나의 귀하디 귀하신 살갗은 이 정도의 햇빛에 노출되면 금방 벗겨지는지라 전신에 썬크림을 바르고 밖으로 나갔다.


흔히 네덜란드 사람들을 더치(Dutch)라고 부르는데, 프랑스나 영국 출신의 사람들보다는 상당히 개방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것 같다. 프랑스인들은 콧대가 높고, 인종차별하는 것이 눈에 보이고, 더치들은 티를 내지 않아서인 것도 있겠지만,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더 유연한 사고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도 싶다. 잠깐 본 것으로 판단하기는 어려운 것이겠지만..


그래도 멜번이라면 호주에서 시드니 다음가는 대도시인데 이렇게 한가롭다. 호주에서는 지역(주)에 따라서 12월 중순부터 크리스마스 및 연말연시를 포함한 하계 방학에 들어가는데, 계절이 정반대라 그렇지,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회사들은 북반구의 북미와 서유럽처럼 크리스마스 전후부터 연초까지 긴 연휴를 보내는 곳이 많다. 호주가 있는 오세아니아 지역에서는 호주와 뉴질랜드 말고는 국제사회에서의 정치적, 경제적 영향력이 미약하고, 그렇다고 반도의 어느 나라처럼 핵을 앞세운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얼레.. 사진이 흔들렸네..

 

이런 동상도 있다.


이런 한가로운 일상을 아시아권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덕분에 호주에서의 여유로운 생활을 즐기고자 이민을 가는 사람들도 많은데, 어린 시절부터 그 여유로움을 누리며 자라온 사람들과, 계속해서 학교와 회사 등에서 치열하게 버텨온 사람들의 모습이 같을 수는 없을 터.


멜번의 스카이라인을 만드는 건물들. 금융, 회계업체들이 대부분인 듯하다. 호주에는 제조업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한데, 그나마 식품, 그것도 육류나 유제품 가공업체들이 조금 규모가 있다 뿐이지, 공산품을 만드는 업체는 거의 없다. UGG부츠가 그나마 유명한가..


조정인가 카누인가..


호주의 한 가지 문제로는 복지가 좋은 편이어서 사람들이 굳이 공부나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라는데, 그래서 여전히 고급 인력들을 해외에서 수혈하고 있다. 중국과 한국 등에서 회계학을 전공하여 회계사가 되거나, IT관련학과를 졸업하여 영주권을 취득하려는 경우가 많은데, 북미보다는 아무래도 호주나 뉴질랜드 쪽의 문호가 넓고 인재 부족이 심해서 더 많은 기회가 있고, 정착하기 쉬운 편이라고 한다. 나는 애초에 이 곳에 거주할 생각은 거의 없었지만..


함께 보타닉 가든에 간 일행. 이름을 잊어버렸다..

 

햇빛이 쨍쨍해서 썬크림을 바르지 않으면 화상을 입을 정도라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굉장히 한가롭다.

 

스티븐이라는 네덜란드에서 왔다는 청년. 얘들이 더 늙어보이기는 하지만, 대학을 몇 년 다녔고, 중간에 휴학도 하고, 군복무도 했기에 실제로는 내가 최소 서너 살 이상 많은 연장자가 되겠다. 그러나 이들과는 그런 것을 따질 필요가 없다. 그냥 이름 부르고 존댓말이 없는 영어로 몇 마디씩 주고 받으면서 이야기를 하면 끝이다. 얘네들은 이렇게 햇빛에 몸을 노출해도 별 탈 없다는 것이 그저 부럽다.

 

새들도 편하게 쉬고 있다.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시간.


결혼식도 열리고 있다.

여기의 결혼식은 한국에서처럼 보여주기 위한 행사가 아니다. 신랑, 신부가 정말 자신들의 결혼을 축하해 줄 가족과 가까운 지인들만 불러서 소박하게 결혼식을 한다. 한국의 결혼식은 신랑, 신부의 부모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한 자리가 되어 축의금을 얼마나 해야 하는가 고민을 해야하는데, 사람 수는 적지만 정말 모두 즐겁게 이 결혼을 축복하고 즐기는 모습이라 부럽다.


혹시 모를 돌발 사태에 대비한 경호원도 있는데, 이 나라에서는 술 마시고 깽판 치는 녀석들이 많아서 그런지경호원을 쉽게 볼 수 있다. 한국에서는 자녀의 결혼이 부모의 행사인데 반해, 축하하러 온 부모를 제외하면 신랑, 신부와 가까운 사람들을 불러서 결혼식을 한다고 한다.


작지만 실속있는 결혼식 같다. 한국에서라면 축하하는 마음은 별로 없지만 나중에 돌려받을 생각하고 축의금 보내려고 가는 경우도 많을텐데..

 

이렇게 편하게 앉아서 독서를 즐기기도 하고

 

중년 부부도 조용히 데이트를 하고 있다. 이런 모습 참 부럽다.


일행들과 함께 다시 야라강을 건너서 북쪽으로 간다. 나는 저녁 때 페더레이션 스퀘어에서 테니스 경기를 보려고 하는데, 이 친구들은 백패커스로 돌아가서 옥상에서 술을 마신다고 한다. '파티' 라고 하는데, 파티라는 것이 특별할 때만 하는 것이 아니고 일상적으로 모여서 마시고 먹고 떠들면서 노는 것을 파티라 칭한다.


가는 길에는 구름이 끼어서 햇빛을 가려주니 시원하다. 바다가 멀지 않지만 건조한 기후라서 한국의 여름처럼 덥고 습한 날씨가 아니어서 햇빛만 피하면 지내기에 큰 어려움은 없다. 멜번은 1월에 낮 최고 기온이 섭씨 35도 전후를 기록하는데, 호주에서도 꽤 높은 편에 속한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호주의 날씨가 더워지고, 가뭄과 홍수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고.


플린더스 스트리트역

멜번을 대표하는 건축물 중의 하나. 1854년에 건축되었다는 역사 깊은 건물이다. 아마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하다' 에서 나왔던 것 같은데.. 이 드라마가 방송되기 얼마 전에 입대하여 자대배치를 받은 이등병이었던데다, 전입 후에 여러가지 일들이 일어나면서 드라마를 보기는 커녕 잠잘 시간도 없었고, 여기에 갔을 때는 그 드라마 자체를 잊고 있었다. 그저 테니스와 그레이트 오션로드를 보기 위해서 갔기 때문에.

멜번 시내에는 여러 철도역이 있는데, 철도노선이 여러 개인데다가 운영하는 회사가 다르기도 해서 외부에서 처음 찾아오는 사람들은 헤매기 쉽다. 플린더스 스트리트역은 주로 멜번 근교의 지역으로 이어지는 열차를 타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브리즈번에서는 몇 번 열차를 타보기는 했지만 영 분위기가 별로인데, 멜번에서는 열차를 타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으나 그다지 좋지는 않을 것 같다. 사실 땅이 워낙 넓은 나라인지라, 교외에 사는 어지간한 사람들은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어서 집도 없고, 차도 없는 사람들만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함께 왔던 네덜란드인들은 백패커스로 돌아간다고 하는데, 나는 잠시 야라강 주변 야경 사진을 찍고, 페더레이션 스퀘어에서 남자 단식 준결승전을 보기 위해 남을 생각이어서, 밤에 호스텔에서 보자고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여자부 4강전 첫 경기와 다음 경기 사이에 쉬는 시간이 생겨서 잠시 밖으로 나와서 로드 레이버 아레나 근처를 돌아다니다가 다시 들어왔다. 어느덧 점심 먹을 시간이 된데다 어제 밤부터 강제로 단식을 계속해왔으므로 뭐라도 먹어야겠는데 늘 돈이 발목을 잡는다. 5.5달러였던가 했던 핫도그로 적당히 끼니를 때우고 경기장 주변을 한 바퀴 슬슬 걸어서 돌아본 뒤 자리로 돌아왔다. 그런데 선수들이 경기를 할 때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데, 경기 전에 선수들이 몸을 풀 때나 쉬고 있을 때는 혼자서 할 일이 없다. 앉은 자리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 편하기는 하지만 말 한 마디 나눌 사람이 없으니 금방 지루해졌다. 영어가 짧아서 대화가 잘 되지 않았겠지만..


아나 이바노비치

이 때만 해도 이바노비치가 샤라포바와 함께 여자 테니스를 주름잡을 것으로 여겨졌으나, 실제로는 테니스 선수로서의 전성기가 짧았다. 2008년 프랑스오픈 우승 후 잠시 세계랭킹 1위에 오르기도 했지만, 한 달 후에 열린 윔블던부터 하락세를 보여 시드 배정조차 받지 못한 중국의 정제에게 덜미를 잡혀 일찌감치 탈락하는 등 들쑥날쑥한 성적을 내면서 랭킹이 떨어졌고, 테니스로 주목받는 것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반대로 가십이나 남자관계로 주목받는 경우가 늘어났는데, 잠깐 회복하는 듯하다가 다시 가라앉고, 작년에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와 결혼을 했다.


좌우로 폴짝폴짝 뛰고 있다. 공이 오는 방향으로 바로 움직일 수 있도록 긴장감 유지를 위해서일 것 같다.


모처럼 앞모습 사진을 찍을 기회였으나, 셔터스피드가 따라가지 못했다..


서브를 넣기 전.


예상 밖으로 한투코바의 일방적인 경기로 흘러가고 있다.


상대인 다니엘라 한투코바 

비록 단식에서 그랜드슬램 우승은 커녕 결승에도 올라간 적도 없고, 토너먼트 대회에서 얻은 트로피도 손에 꼽을 정도이기는 한데, 경기에 많이 참여하면서 포인트를 올려서 랭킹을 끌어올린 하드워커라고 해야겠다. 여기에 복식과 혼합복식도 출전하는 경우가 있으니 '질 보다는 양' 을 택한 것인지도. 한투코바 역시 예쁜 외모로 주목을 받아 실력에 비해서 조금 더 유명세를 얻은 면도 없지 않지만, 출신국가인 슬로바키아의 인구가 5백만 남짓에 불과하고, 테니스 스타일이 점잖아서 그런지 시끌벅적하게 소리를 질러대는 친구들보다는 인기가 떨어지는 편.


한투코바가 메이저 대회 단식에서 4강까지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첫 세트는 일방적으로 점수를 따내며 6-0으로 손쉽게 승리했으나, 2세트부터 본격적인 경기가 펼쳐졌다.

 

한투코바의 서브

사진의 질이 대단히 좋지 않아서 참 그렇다.
이것은 다 날씨가 좋지 않아 지붕을 닫은 것과 고물 카메라 탓이다.


카메라 셔터 스피드가 못 따라가서 한 번에 찍지는 못하고 각기 다른 서브 상황에서 찍은 사진을 연결해보았다. 하나의 연속되는 동작의 사진은 아니고, 


서브를 넣기 전 바닥을 보는 한투코바


서브 토스를 하고

 

강하게 서브를 때린다


이바노비치의 리턴


리턴에 실패했다..


득점에 성공한 한투코바는 즐거운 마음으로 볼보이로부터 공을 받았다.


서브를 위해 엔드라인 쪽으로 걸어감


서브에 들어가는 준비 동작


토스 후에 점프


공중에서 서브를 위해 백스윙


이바노비치의 강한 서브


서브 후 연속동작


저 스윙에 맞으면 골로 갈 것 같다.


착지

여기까지..


포핸드 스트로크


백핸드 스트로크를 날리는 이바노비치


그러나 이 게임 역시 이바노비치가 내주고 말았다.

1세트 마지막 게임은 한투코바의 서브게임.


이바노비치는 한 게임도 못 따고 세트를 내줄 위기에 처했다.


이바노비치는 1세트의 향방이 달린 여섯 번째 게임 역시 고전하는데..


이바노비치가 1세트에서 한 게임도 못 따고 퍼펙트로 지고 말았다. 토너먼트 대회 초기에나 나올 법한 일이 이런 그랜드슬램의 4강에서 나오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었다. 누가 뭐래도 한투코바가 이바노비치를 이기고 결승에 진출할 것 같았다.


이바노비치가 1세트를 0대 6의 치욕적인 점수로 내주고 코트체인지를 하고 있다.


경기 중간 잠시 쉬고 있는 이바노비치


한투코바도 쉬고 있다.

경기가 일방적인 한투코바의 승리로 끝날 것 같았는데 2세트에서는 접전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바노비치의 결정적인 브레이크로 6대 3으로 세트를 따내면서 마지막 세트로 이어지게 된다.


땀을 닦는 이바노비치


이바노비치가 포인트를 얻은 다음에 즐겨하는 세리머니 포즈


이바노비치의 득점 후에는 항상 저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지막 세트에서 한투코바는 4대 3으로 앞서고 있었다. 그러나 이바노비치는 연속으로 세 게임을 따내 마지막 세트에서 이기며 대역전승을 거두면서 결승에 진출하여 샤라포바와 맞붙게 되었다.


전광판에 나오는 한투코바의 표정


구입했던 티켓으로 로드 레이버 아레나에서 볼 수 있는 데이 세션 경기는 다 봐서 밖으로 나가야 한다. 남자 4강전 경기는 나이트 세션 경기라서 따로 티켓을 구입해야 하는데, 시간대도 시간대지만, 남자 경기가 더 박진감이 있어서 그런지 이 경기는 대부분의 좌석이 다 팔렸다. 취소하여 남은 좌석이 몇 개 있기는 하지만, 자리가 좋지 않은 편이고, 여러 경기를 볼 수 있는 데이 세션 입장권과는 달리 한 경기만 볼 수 있음에도 가격이 더 비싸서 사기는 부담스럽고. 그냥 밖에 나가서 페더레이션 스퀘어에서 앉아서 보거나 펍에 가서 텔레비전 중계를 보는 것이 더 낫다.


경기가 끝나고 이바노비치가 인터뷰를 준비하고 있다.


호주의 채널 7(Seven)에서 단독으로 호주오픈 테니스 경기 생중계를 한다. 뉴스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정규프로그램은 결방되고, 테니스 경기 중계를 하는데 대회 초반에는 톱랭커들의 경기가 프라임타임이 아닌 시간대에도 있기에 대부분을 테니스 중계에 시간을 할애한다. 토너먼트 대회의 특성상 대회가 진행될수록 생존하는 선수들이 적어지므로 이 채널의 저녁시간 프로그램을 즐겨 시청하는 사람들이라면 테니스가 원망스럽겠지만, 테니스 팬이라면 아주 반가운 일이다. 

 

기아자동차가 이 대회의 공식 스폰서라는 것은 이미 앞에서 언급했던 것 같은데..


세션이 끝났으니 사람들이 대부분 밖으로 나갔다. 한꺼번에 사람이 많이 몰리는 것을 피해 조금 기다렸다가 나간다. 이 시간에 나가봤자 사람들만 많고 바깥 날씨는 더우니.. 냉방시설이 있기는 하지만 별로 시원하지 않다고 한다. 반소매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와서 가만히 앉아서 경기를 보는 경우라면 조금 썰렁한 느낌이 들기는 하는데, 냉방을 가동해도 경기를 하는 선수들의 땀이 식지 않을 정도에 맞추어 할테니 냉기가 직접적으로 나오는 곳이 아니라면 많이 시원하거나 춥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고 한다.

 

로드 레이버 아레나의 천장


마거릿 코트 아레나

그라운드패스만 있으면 들어갈 수 있는 코트 중에서 가장 좋은 코트다. 이 경기장에는 남녀 단식 경기 중에서 중요도에 따라 로드 레이버 아레나와 하이센스 아레나에 배정된 경기 다음으로 높은 랭커의 선수 또는 인기 선수들의 경기가 배정된다. 이 시점에서는 이미 각 부문에서 4강전을 진행하고 있어서 이 경기장에서 그 경기들이 열리지는 않고, 주로 복식 경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누가 뭐래도 테니스에서는 남녀 단식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상금 역시 가장 많으며, 이 종목의 선수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기에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조금 전에 있던 로드 레이버 아레나와는 너무도 다른 분위기


메인 경기장인 로드 레이버 아레나에 경기가 있을 때는 저 전광판에 경기 중계 영상을 틀어준다.


메인 경기장인 로드 레이버 아레나

어차피 경기장 내에서 볼 수 있는 경기가 없어서 밖으로 나왔다.

피곤하니 잠시 호스텔로 돌아가야 할 것 같은데, 지금은 서두를 필요가 없으니 천천히 걸어서 시내를 구경하면서 가보도록 한다. 아침에 비싼 택시비를 내고 온 것이 아까운 생각이 드는데 처음이라 이런 시행착오를 겪는다고 위안을 삼는다.


최근 10년 동안 단식 우승자 사진을 전시해두었다.

안드레 애거시가 가장 눈에 먼저 띄었고..

 

1998년 우승자 마르티나 힝기스.


힝기스는 1997년에도 우승을 했었고, 이 때만 해도 샘프라스도 마지막 불꽃을 태우던 시절이었네.


우승 트로피 사진

 

멜번 파크(Melbourne Park)라 불리는 테니스 공원. 주요 경기는 돔형식으로 된 로드 레이버 아레나에서 열리고,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경기 또는 인기가 있는 경기는 하이센스 아레나에서 열린다. 이 때까지만 해도 하이센스 아레나가 아닌 보다폰 아레나(Vodafone Arena)라는 이름이었는데, 중국의 궐기로 하이센스가 급격히 성장하면서 다음 해부터는 네이밍 스폰서가 하이센스로 바뀌었다. 보다폰은 예전에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유니폼에 로고를 달 정도였으나, 역시 돈 전쟁에서 밀리면서 자리를 빼앗겼다.

 


보다폰 아레나


그라운드패스로는 들어갈 수 없는 2개의 유료 경기장이다. 대신 이 유료 경기장의 입장권을 사면 그라운드패스가 따라오게 되기에 자신이 구입한 경기장의 경기는 물론, 멜번 파크에 개방된 경기장에서 열린 다른 경기를 그냥 볼 수 있다. 이런 대회에 처음 와서 그라운드 패스가 무엇인지 몰랐는데..

멜번 시내는 물론 교외지역까지 연결하는 철도가 경기장 주변을 지나간다.

 

대회 막바지인지라 저녁에는 남자 단식 준결승 1경기가 열리는데, 이 경기가 로드 레이버 아레나의 나이트 세션이라서 데이 세션 티켓을 산 사람은 경기장에 들어갈 수 없어서 그냥 돌아간다. 데이 세션은 여러 경기가 있지만, 상대적으로 사람들의 관심이 적기 때문에, 남자부 준결승 경기 하나만 볼 수 있는 나이트 세션 티켓이 더 비싸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으니 이 경기는 백패커스로 돌아가서 텔레비전으로 봐야 할 것 같다.

경기에 앞서서 두 선수가 몸을 풀기 시작했다. 우선 서로 공을 주고 받으면서 슬슬 시동을 걸기 시작하는데, 이 경기에서 샤라포바에게 관심이 있지, 얀코비치는 처음부터 신경쓰지 않았기 때문에 사진은 주로일방적으로 샤라포바를 중심으로 찍었다. 그런데 흐린 날씨로 간간히 빗방울이 떨어지는 상황이라 지붕을 닫은 경기장 내에서 사진을 찍으니 셔터스피드가 선수들의 빠른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해서 사진이 많이 흔들린 것도 있다. 그나마 쓸만하다 싶은 것만 골랐는데도 만족스럽지 못하다.


샤라포바의 왼손에 공이 쥐어져 있다.


그리고 이 공을 쳐서 얀코비치와 서로 주고 받는다. 워밍업을 할 때는 서로 받기 쉬운 코스로 공을 치는 것이 예의이고, 한 쪽 방향만 고집하지 않고 포핸드, 백핸드 번갈아가면서 공을 보내준다. 


샤라포바의 백핸드

카메라가 고물딱지라서 사진이 이 모양이다..


서브를 넣는 샤라포바. 어이구 길다..


서브 연습을 할 때는 서로 번갈아가면서 상대방이 없는 쪽으로 공을 치는 것이 예의다.


입장권을 늦게 예매해서인지 중간 정도의 좌석인데 거리가 꽤 멀어서 사진 찍기에는 좋지 않았다. 전 좌석이 지정석이어서 다른 곳으로 옮길 수는 없는데, 예매할 때 빈 좌석이 많지 않았던 것을 생각해보면, 좋은 위치의 좌석들은 기업용으로 판매가 되었거나 여러 스폰서 업체들에 제공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 기간 중 호주의 TV채널 7에서 대부분의 경기를 생중계하고, 멜번의 페더레이션 스퀘어에서는 대형 스크린에 중계방송 영상을 생중계하고 있다. 돈 없으면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멜번 파크와 야라강을 사이에 두고 있는 페더레이션 스퀘어 바닥에 앉아서 경기를 지켜볼 수 있다.


선수들은 양쪽에서 서로 빈 곳을 향해서 서브를 하면서 몸을 풀었다.


덩치가 크다보니 더 역동적으로 보이는 샤라포바

샤라포바의 공식 프로필 상의 신장은 약 188cm, 6피트 2인치인데, 실제로는 190cm를 넘는다는 것이 중론. 남자친구들과 서 있는 사진을 보면 아무래도 여자다보니 키를 실제보다 줄여서 표기한다는 것인데, 샤라포바의 라이벌인 서리나 윌리엄스가 175cm, 비너스 윌리엄스가 180cm인데, 이들과 비교하면 공식 신장보다 더 클 것이라고.


공을 주우러 가는 샤라포바


볼보이가 공을 들어보이며 샤라포바에게 신호를 하고 있다.


심판이 두 선수를 불러모으고 경기 시작을 준비한다.


이제 워밍업도 끝났고, 경기 시작을 준비한다.


워밍업할 때와는 반대로 샤라포바가 왼쪽에 얀코비치가 오른쪽에서 경기를 한다. 여기서 왼쪽, 오른쪽은 내가 앉은 좌석 기준. 세상이 내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이 경기장에 처음 왔는데 어디가 어딘지 알 리가 없으니.. 얀코비치의 서브로 시작을 하는데, 샤라포바가 잠시 기다려달라는 신호를 하고 있다.


샤라포바가 백핸드로 받아내고 있다. 스포츠 모드인데도 카메라가 구려서 사진이 이 모양이다..


샤라포바가 점수를 얻었고, 왼손 주먹을 불끈 쥐는 특유의 세레모니가 나온다.


서브를 기다리는 샤라포바


백핸드


샤라포바는 자신만의 독특한 서브 루틴이 있다. 

① 공을 받아서 왼손으로 바닥에 튀긴 후 

② 튀어오르는 공을 라켓으로 다섯 번 바닥에 튀긴 뒤 

③ 왼손으로 공을 잡고 

④ 왼쪽 귓가와 오른쪽 귓가의 머리카락을 매만지고 

⑤ 공을 바닥에 두 번 튀긴 뒤 

⑥ 상대방을 잠시 주시한 뒤 서브를 한다. 


② 라켓으로 공을 바닥에 튀기는 모습


③④ 왼손으로 공을 잡고 양쪽 머리를 매만지는 모습


⑤ 왼손으로 공을 잡아 바닥에 2번 튀긴 뒤


⑥-1 공을 잡고 상대방을 주시하고


⑥-2 서브 토스 직전


⑥-3 서브 토스에 들어감


⑥-4 서브에 들어간다


⑥-5 토스 후 스윙


⑥-6 착지 직전

그 다음 서브 장면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라 생략..



한 번이라도 그 루틴을 따르지 않는 경우가 있는지 유심히 봤는데 저러는 것이 몸에 배인 것 같다. 이 서브가 잘 들어가는 날은 경기가 잘 풀리는데, 언제나 자기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어서 서브가 잘 안 들어가서 경기를 망치는 날도 있다. 샤라포바의 가장 큰 천적은 서리나 윌리엄스인데, 데뷔 초기인 2004년에 윔블던 단식 결승과 BNP파리바 WTA 챔피언스 파이널 스테이지에서 이긴 것이 전부이고, 이후에는 만나는대로 족족 박살나고 있다. 테니스 경기에서 서브의 중요성이 큰데 어깨 부상 이후 서브에 약점을 갖게 된 것도 하나의 이유일 듯.

이 경기에서도 샤라포바와 서리나의 대결이 이루어질 뻔하였으나, 8강에서 얀코비치에게 덜미를 잡히며 떨어지고 말았다. 만약 서리나가 올라왔더라면 경기 결과가 달라졌을 수도 있었겠지만, 하늘은 샤라포바에게 행운을 주었다.


무슨 심령사진 같지만 그걸 의도한 것은 아니다..


경기 끝나고 주관방송사인 채널7과 인터뷰하는 모습

결승전에서는 패자 역시 인터뷰를 하기는 하지만, 그 외의 경기에서는 인터뷰는 승자만 한다. 


유튜브에 이 경기 영상(공식영상은 아니고)이 있어서 링크를 걸어두었다.

저작권 문제로 인해 언제 사라질 지는 모르겠다.


처음에 예매할 때는 이 경기만 보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여자 준결승전 이바노비치와 한투호바의 제 2경기 역시 데이 세션에 포함되어 있어서 볼 수 있다고 해서 다음 경기 역시 보기로 한다. 하루 종일을 테니스를 보면서 보내게 되었지만, 지난 밤에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서 돌아다닐 힘도 없고 앉아서 테니스나 보면서 시간을 보내며 한량 놀이를 하기로 한다.


비행기 앞 좌석 뒤에 작은 텔레비전이 붙어 있는데 테니스 경기 중계방송을 하고 있었다. 보면서 갈 수 있겠다 싶었는데 갑자기 광고 화면이 뜨더니 돈을 내고 시청해야 한단다. 1달러 정도면 기꺼이 감수할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비쌌다. 저가 항공사에 속하는 버진 블루는 화장실을 제외한 모든 서비스는 유료다. 당연히 기내식도 제공되지 않고 승무원들이 카트를 끌고 다니며 음료와 스낵류를 판매하는데 시중의 마트에서 판매하는 것보다는 조금 비싸다. 호주에서 유일하게 기내 서비스가 무료인 항공사는 콴타스 뿐이다.

출발은 늦었는데 얼마 늦지 않고 도착했다. 조금 천천히 갈 것이지 전속력으로 달리다니 조종사들의 퇴근 본능이 발동했나보다. 에잇, 당신들은 집에 가거나 호텔에서 묵겠지만 나는 공항에서 뒹굴어야 한다고! 그렇다고 기내에서 난동을 부릴 수도 없고(당연히 기내에서 난동을 부리면 형사 처벌을 받는다), 조용히 마리 선생님이 주신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원서를 읽으며 갔다. 생소한 내용이 아니면 적당히 이해는 하는데 읽는 속도가 느려 한 장 넘어가는데 30분씩 걸렸다.

이미 시간이 12시를 넘어섰기에 공항의 모든 상점은 문을 닫았고, 모두 재빨리 밖으로 나가서 시내로 향하는 교통편을 찾으러 다니기 바빴다. 단 한 번도 공항에 내렸을 때 누군가 마중하러 나온 적이 없었지만 이 때만큼은 갈 곳이 없다는 사실에 참 서글퍼졌다. 멜번 공항에서는 매 시간 시내로 들어가는 셔틀 버스가 있지만, 셔틀 버스 비용과 하루 묵을 숙박비라도 아껴야 하는 상황이어서 그냥 공항 주변을 맴돌았다. 멜번 공항에는 터미널이 4개가 있는데 각 터미널에 순서대로 숫자를 붙여 T1, T2, T3, T4라고 부른다. T1은 콴타스와 젯스타가 사용하는 국내선, T3는 버진 블루와 기타 지역 항공사의 호주 국내선, T4는 멜번을 허브로 삼는 타이거 항공의 국내선, 그리고 T2는 국제공항이다. (2008년 시점이므로 현재는 조금 달라졌을 수도 있음을 유의하시기를 바람)

마땅히 할 일이 없어서 국제공항 터미널로 건너갔다. 국제공항은 새벽까지도 비행기의 출도착이 있어서 계속 사람들이 오가는지라 비행기가 도착할 때쯤 되면 주변이 시끄러워졌다. 관광안내소에는 중년의 아주머니가 늦게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영어가 된다면 여기서 숙박과 교통을 예약해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공항에 도착해서 몇 시간 보내고 아침에 호스텔의 픽업 버스를 타고 들어가고, 돌아가는 비행기 역시 전날 밤에 공항에서 노숙 계획이라 6박 7일의 여정이지만 숙소는 단 4박만을 예약했다. 다행히도 텔레비전이 있어서 은근슬쩍 가서 테니스 중계를 보았다. 호주오픈은 메인 코트인 로드 레이버 아레나(Rod Laver Arena)의 경기 일정을 빡빡하게 잡는 편이어서 마지막에 경기가 있는 선수들은 밤을 새워 경기하는 일이 종종 있다. 3라운드에서 로저 페더러와 얀코 팁세라비치가 4시간 27분 동안 경기를 하면서 일정이 지연되어 휴잇과 바그다티스는 밤 11시 52분에 경기를 시작해서 새벽 4시 34분까지 경기를 벌이기도 했다. 경기를 자정이 다 되어 시작한 것도 불운인데, 풀세트 접전을 펼치기까지 했으니 얼마나 피곤했을까. 어쨌든 밤새 따로 할 일도 없고 공항에 사람들이 다 빠져나가고 조용해질 때까지 기다리면서 잠시 인터넷이나 할까 기웃거리고 있는데 1달러짜리 동전 하나를 주웠다. 의외로 호주에서는 땅을 보고 다니다보면 동전을 줍는 경우가 많다. 경비가 빠듯한 여정이니 작지만 여행 경비에 보태기로. 

멜번은 하루에 사계절을 모두 경험할 수 있다고 할 정도로 날씨가 변덕스럽다. 아침과 저녁은 선선하지만 낮에는 아주 덥다가 종종 비가 내리기도 하고, 밤이 되면 서늘해져서 춥다고 느껴질 정도다. 남반구의 호주는 계절이 한국과 정반대인지라 1월이면 한여름에 해당하여 낮에는 기온이 섭씨 35도 이상 올라가는데, 밤이 되면 15도 정도로 기온이 뚝 떨어져 일교차가 심해 감기 걸리기도 쉽다.


침낭을 뒤집어 쓰고 자고 있는 사람도 있고 공항에서 노숙하는 사람들이 없지는 않다. 혼자 외딴 곳에 있는 것보다는 생판 모르는 사람이라도 옆에서 자는 것이 나을 듯해서 옆에 자리를 잡았다. 모자를 벗고 얼굴을 가리고 누워서 웅크린 채잠을 청했다. 쉽게 잠이 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밤에 잠을 자두어야 일어나서 힘차게 움직일 수 있으니 어느 순간 잠이 들었는데 추위 때문에 잠에서 깼다. 열량 보충을 위해 먹다 남겨둔 과자를 꺼내서 다 먹었지만 잠을 자면서 체온이 내려갔는지 몸이 덜덜 떨렸다. 긴팔 옷이라면 트랙 수트 하나 가지고 온 것이 전부인데 반팔 티셔츠 위에 하나 걸친다고 추위가 해결될 리 없었다.


저 베개 대신 쓸만한 배낭과 침낭이 얼마나 부럽던지..


잠꾸러기인데 잠이 오지 않을 리는 없지만 밤이 되자 날이 쌀쌀해지면서 추위가 느껴져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짐을 줄이기 위해서 반소매 셔츠와 바지만 가지고 와서 위에 덧입을 옷도 없고, 누워 있다가 잠깐 잠이 들었다가도 곧 추워서 금방 깨서 옆에 있는 국제선 터미널에 다녀오면서 대한항공이 멜버른에도 취항한다는 소식도 접하고, 다시 원래 있던 장소로 돌아와 잠을 청하다 깨기를 반복하면서 날이 밝아지는 것을 보았다. 


북반구의 겨울은 남반구의 여름인지라 해가 일찍 뜬다. 추워서 사진이 흔들렸다.


비록 공항에서 노숙을 한 거지이기는 하지만 너무 거지 티를 내는 것은 좋지 않으니 화장실에 가서 얼굴을 씻고 머리를 매만진 뒤 공중 전화 앞에서 서성거렸다. 사람 얼굴을 보고 대화하는 것은 큰 어려움이 없지만, 여전히 영어가 익숙치 않아서 전화로만 이야기하는 것은 두려움이 남아 있었다. 어떻게 말을 해야할 지 생각하며 연습을 해보다가 백패커스의 수신자 부담 전화번호로 다이얼을 돌렸다. 좀 이른 시간인 것 같지만 도착했으니 데리러 오라고. 그랬더니 9시에 픽업 버스가 갈 것이니 기다리고 있으라면서 버스가 가는 위치를 알려주었다. 호주에서 지내면서 한동안 백패커스에 묵었던 것은 숙박비를 절약하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계속 영어를 사용하는 환경에 자신을 노출시키기 위함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전화로 대화하는 것도 큰 두려움 없이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기뻤다.


나도 공식 교통수단을 이용하고 싶은데..

 

참새도 추운지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침낭에서 번데기 놀이를 하는 이들은 잘도 자고 있다. 부럽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늘어나고 시끌시끌해졌고, 추위가 가시기 시작했다.


벤치에 앉아 있다가 공항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혹시 몰라서 미리 나가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정말로 9시가 되자 백팩커스에서 보낸 승합차가 도착했다. 예약한 백패커스에서 온 것이 맞냐고 물어보니 맞다고 하여 차에 올라타고 백패커스 유니폼을 입은 기사와 몇 마디 주고 받았다. 바로 출발할 줄 알았더니 세 명 더 기다렸다가 가야한다며 차 안에서 쉬고 있으란다. 이미 9시간을 기다렸는데 못 기다릴 이유 또한 없어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사이에 세 명의 배낭족이 다가왔고 드디어 공항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그런데 운전하는 친구가 시내에 들어서서는 바로 가지 않고 주변의 공원이니 구경할 곳을 돌면서 멜번에 대해서 열심히 안내를 시작했다. 여행자들에게 이런 서비스는 참 반갑고 고마운 일이지만, 얼른 체크인을 하고 테니스를 보러 가야 하기에 그의 설명이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아침 시간의 백패커스는 늘 분주하다. 규모가 클수록 그리고 찾는 사람이 많을수록 더욱 그렇다. 이 곳은 수백 명이 묵을 수 있는 곳이어서 들어오는 사람과 나가는 사람의 줄이 끊이지 않았다. 뭐든지 느린 이 곳의 문화는 한국의 '빨리빨리' 와는 거리가 멀어서 뒤에 줄을 몇 명이 서든지 신경쓰지 않고 천천히 여유있게 일을 진행한다. 체크아웃하는 사람들과 농담을 하면서도 시간이 꽤 걸리고, 새로 체크인하려는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를 설명해주느라 또 시간이 걸린다. 여기서도 30분 가까이 걸려서 겨우 체크인을 마치고 방으로 들어갔다.

예약한 방은 6인실이었는데 이층 침대가 세 개 놓인 방이었다. 어떤 침대를 쓰라고 정해주는 경우는 거의 없어서 먼저 편한 자리를 찜하는 것이 우선이다. 아무래도 윗층보다는 아래층을 쓰는 것이 편하기에 얼른 가방을 던져두고 영역 표시를 한 후 카메라와 지갑만 들고 밖으로 나섰다. 이미 시간은 세션 시작인 11시에 가까워지고 있어서 마음이 급했다. 호주 도착 이후 여태까지 단 한 번만, 그것도 친구가 돈을 내서 타봤던 택시를 타고 경기장으로 갔다. 조금 시간이 걸리기는 해도 충분히 걸어갈 수 있는 거리고, 대회 기간만 경기장 근처까지 운행하는 무료 트램이 있음에도 혹시나 경기를 늦어서 보지 못할까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호주의 도심에서 택시를 타는 것은 돈을 길에다 버리는 일과 다름없는 일이었다. 원래 도심에서는 속도를 내기 어렵거니와 특히 멜번은 트램이 지나다녀서 도로가 좁고 신호가 복잡하여 가다가 서는 것을 반복하여 느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기사 역시 승객이 바빠서 탄 것을 보아도 느릿느릿 규정을 준수하며 운전을 한다. 내가 급하지만 않다면 이는 참 좋은 것이지만, 속이 좀 탄다. 성질 급한 한국인의 폐해다.

걸어서 약 30분 정도의 거리를 택시를 타고 15분만에 도착했는데 요금이 12달러. 배가 아플 틈도 없이 바로 경기장으로 뛰어갔다. 미리 경기장 표를 구입해놓은 덕분에 금방 들어가서 내 자리를 찾아 헤맸다.

 

거금 134.9 달러를 주고 산 여자 단식 준결승전 입장권

경기가 열리는 로드 레이버 아레나(Rod Laver Arena)는 호주의 전설적인 테니스 선수 로드 레이버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경기장인데, 해마다 호주오픈이 열리는 멜번 파크의 메인 경기장이다. 로드 레이버는 메이저 대회들이 아마추어 선수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한 오픈 시대에 처음으로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선수이며 1969년 한 해에 그랜드 슬램을 모두 제패한 달성한 유일무이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 경기장은 개폐식 지붕이 있어서 날씨에 따라 지붕을 열고 닫는데 날이 흐린 탓에 지붕을 다 열지 않고 반 정도만 열어 놓고 있었다. 로드 레이버 아레나 다음의 위치인 하이센스 아레나(Hisense Arena)는 중국의 전자업체 하이센스가 네이밍 스폰서로 참여한 경기장으로 대회 초반에 로드 레이버 아레나에서 소화가 불가능한 상위권 선수들의 경기가 열리는데, 이 두 곳은 따로 입장권을 사야 들어갈 수 있고, 세 번째 경기장이라 할 수 있는 마거릿 코트 아레나(Margaret Court Arena)부터 쇼 코트(Show Court)부터 20개에 가까운 작은 코트에서 열리는 경기는 그라운드 패스라 불리는 멜번 파크의 입장권과 같은 티켓을 사서 들어갈 수 있다. 로드 레이버 아레나 또는 하이센스 아레나의 입장권을 구입하면 이 티켓에 그라운드 패스가 포함되어 있는 셈이라 자신이 구입한 경기장과 그라운드 패스만으로 관전이 가능한 다른 경기장에 자유로이 출입이 가능하다. 물론 작은 코트 중에는 관중들이 관람할 만한 공간이 충분하지는 않다.

11시부터 바로 여자부 준결승 경기가 시작하는 줄 알았는데, 남자 복식 결승 경기에 이어서 여자 준결승 두 경기가 하나의 세션으로 되어 있었다. 만약 복식 경기가 먼저 열리는 것을 알았더라면 천천히 걸어왔을텐데 괜히 비싼 택시를 탄 것 같아 속이 쓰렸다.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남자 복식 준결승 1경기가 열린 후 여자 단식 준결승 두 경기가 이어지는데, 앞의 경기가 일찍 끝나더라도 오후 2시 이전에 경기를 시작하지는 않는다고.. 야잇 18.

대회 시작 전에 미리 구입한 티켓임에도 자리가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티켓 판매를 하는 티켓텍 지점에서 좌석 배치표를 보면서 심각하게 고민한 후 고른 자리인데, 이는 호주오픈 티켓 중 많은 좋은 좌석은 기업용 혹은 여행사 상품용으로 팔리기 때문에 어지간해서 일반인이 좋은 자리를 구하기는 사실 쉽지 않다고 한다. 그래도 좋아하는 선수의 경기를 볼 수 있으니 그걸로 만족하면 되겠지만 사실은 샤라포바가 아닌 페더러 경기를 보고 싶었다고!!


경기장에 스타 플레이어들의 사진이 붙어 있다. 

당시에 가장 잘 나가던 로저 페더러.


페더러의 천적이었던 라파엘 나달

그러나 이 대회까지만 해도 클레이코트에서만 위용을 뽐내던 선수였다.


기운 센 천하장사 서리나(Serena) 누님


전년도 우승자의 서리나 누나의 모습


남자부는 황제 페더러가 대회 3연패에 도전하는 상황


오른쪽에서 두 번째에 있는 레이튼 휴잇은 다른 세 명 보다는 조금 떨어지는 레벨이지만 호주 선수라고 끼워준 것 같다.


곧 경기에서 보게 될 마리아 샤라포바.

작년에 약물복용으로 2년간 출전 정지를 당해서 당분간 보기 힘들 것 같은데, 나이가 있어서 글쎄 어찌 될 지는..


로드 레이버 아레나로 들어갔다.


흐린 날씨라 그런지 비가 올까봐 지붕을 다 열어두지는 않은 것 같다.

전광판을 보니 샤라포바가 나오는 여자 단식 준결승 경기가 아닌 남자 복식 준결승 경기가 열리고 있었다. 톱시드였던 남자 복식계의 전설 브라이언 브라더스가 8강에서 격침당하고, 모르는 선수들이 경기를 하고 있어서인지 몰입이 잘 안 되었다. 프랑스의 미카엘 요다와 아르노 클레망이 승리해서 결승에 진출했다.  


복식 경기는 거의 안 봐서 잘 모르기도 하고 9년 넘게 지나서 누가 누구인지 기억도 잘 안 난다.


볼보이 또는 볼걸들이 있다.

기아자동차가 호주오픈의 메인스폰서 업체여서 한국 아이들도 선발하여 호주오픈의 볼키즈로 활약을 한단다. 주요 경기에서는 보지 못한 것 같은데, 워낙 많은 경기가 열리니 여러 곳에서 활약을 했겠지 싶다. 나는 기아자동차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지만..


이긴 팀이나 진 팀이나 꺼꾸리와 장다리 조합이었는데 모르는 선수들이라 그런 것도 있고, 이미 경기가 어느 정도 진행 중이어서인지 별로 재미를 붙이지는 못했는데 다행히 금방 끝났다. 선수들이 이런 말을 들으면 기분 나쁘겠지만..


이 날은 남자복식 준결승 한 경기와 여자단식 준결승 두 경기, 그리고 남자단식 준결승 한 경기가 이 곳 로드 레이버 아레나에서 열린다. 내가 산 데이 세션으로는 여자단식 준결승 경기까지만 볼 수 있고, 멜번 파크 안의 다른 코트에서 열리는 경기를 볼 수 있는데 대회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어서 열리는 경기가 많지 않아서 별 의미는 없었다. 악쟁이 샤라포바와 이번에 경기를 보면서 빠져든 이바노비치의 경기를 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지.


누군지 잘 모르지만 얘네들이 이겼다.


곧 열리는 경기는 샤라포바와 옐레나 얀코비치의 여자 단식 준결승 제 1경기

경기가 일찍 끝나는 바람에 여자 준결승전이 시작하는 2시까지는 시간이 꽤 많이 남아서 비싸지만 경기장 내의 매점에서 핫도그를 사서 먹고 멜번 파크 한 바퀴 돌면서 구경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돌아다니다 보니 샤라포바의 모습이 담긴 광고판도 있다.


이 때 확실히 나이키에서 샤라포바에게 엄청난 푸쉬를 했는데 지금은 뭐.. 약물복용자.


아무래도 평일 낮이기도 하고 나이트 세션에 라파엘 나달의 준결승 경기가 있으니 사람들이 그 경기를 많이 보러 가겠지 싶다. 대낮에 이렇게 시간을 낼 수 있는 사람은 나 같은 땡땡이 친 학생, 돈 많은 백수, 열렬한 테니스 애호가 정도겠지.


샤라포바와 맞붙게 된 세르비아의 옐레나 얀코비치. 5번 시드를 받은 샤라포바보다 더 높은 3번 시드를 받았는데, 이 해에 다른 선수들의 부상과 부진 속에 세계랭킹 1위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그러나 메이저 대회 우승 타이틀 하나 없다고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2010년 즈음까지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은 못하더라도 4강 정도에 오르는 꾸준한 포인트 관리로 세계랭킹은 높았으나 이후에 부상이 오면서 추락한 케이스. 그래도 최근까지도 계속 선수 생활은 하고 있다는 것 같다. 요즘에는 내가 테니스를 챙겨볼 정도의 여유가 없어서..


경기 전에 입고 오는 트레이너도 다른 선수들처럼 흔한 운동복 모양이 아니다.


팔다리가 길기는 길다. 키가 188cm라고 하니 이건 뭐..

아씨.. 나는 루저..


막상 실제로 보니 특별한 느낌이 들지는 않는데 샤라포바를 아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흥미롭게 보는 선수라서 그런가보다.


관중석 아래쪽에 빈 자리가 있어서 사진을 찍기 위해 아래로 내려갔다. 심판 언니보다 머리 하나 더 높구나..



[Melbourne Diary] Prologue

2011. 7. 4. 15:53

호주 브리즈번에서 어학연수를 하고 있던 2008년 잠시 짬을 내어 호주오픈 관람 및 멜번 구경을 위해 짧은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명색이 그랜드 슬램이라고 동네 축구 경기 보러 갔다오는 것과는 금액이 달랐지만 호주에 있는 동안이 아니면 평생 볼 일은 없겠다 싶어 큰 마음을 먹고 가진 돈을 거의 때려 부은 대형 프로젝트였다.

돈을 내고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치는 누릴 수 없어 수업이 끝나면 주립 도서관에 쪼르르 달려가 컴퓨터를 예약하여 사용하면서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숙소를 찾아 이메일을 보내 예약을 하는 등 나름대로(?) 준비를 했다. 일부러 영어로 된 론리 플래닛 호주편이 있기는 했지만 아무리 최신판이라도 가격 정보는 틀린 것이 많아서 별 도움은 안 되었다. 치밀하게 계획을 짜고 여행을 하는 성격은 아니라 멜번 시내와 근교에 둘러볼 곳에 대한 정보는 차차 가면서 읽기로 하고 그냥 덮어 두었다. 실제로 가보지 않고 많은 생각을 하고 계획을 짜다가 이도저도 아니게 되었던 적이 많아서 상황에 맞추어 대처할 생각이었다. 그나마 잠잘 곳이라도 미리 찾아놓은 것이 다행.

<호주오픈>
세계 테니스 4대 그랜드 슬램 중의 하나로 1월 중순부터 말까지 약 2주 정도 사이에 열리는 토너먼트 대회. 장소는 호주 멜번에 있는 멜번 올림픽 공원 (Melbourne Olympic Park), 흔히 멜번 파크라고 불리는 곳이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그랜드 슬램이라고 하지만, 아시아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호주오픈 기간 중에는 주관 방송사인 채널 세븐은 거의 하루 종일 경기를 생중계 혹은 녹화로 지연 중계를 하기에 원없이 테니스 경기를 텔레비전을 통해서 볼 수 있다. 호주오픈은 전년도 10월부터 티켓 판매에 들어가는데, 멀리 남반구에 따로 떨어져 있고 인구가 많지 않아서 티켓을 구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다. 심지어 하이라이트인 남자부 결승 경기조차도 호주 선수 혹은 호주 사람들이 좋아하는 로저 페더러가 진출하지 않는 한 전날까지도 티켓이 남아있기도 한다. 다만 관전하기에 좋은 좌석은 기업용 좌석이나 투어 패키지용으로 할당되고, 개인에게는 많이 풀리지 않아서 제대로 경기를 보려면 일찍 구입해야 한다.

내가 구입한 표는 여자부 준결승 두 경기가 예정된 1월 24일 로드 레이버 아레나의 데이 세션 티켓이었다. 1라운드부터 단계별로 가격이 상승하는데 토너먼트의 특성상 누가 붙을 것이라는 전망만 가능하지 확실하지 않아서 마음 먹고 티켓을 사기 어렵다. 경기의 일정은 전날 오후에야 발표가 되므로 어떤 선수끼리 대결하는지는 알 수 있어도 어느 시간대에 어느 경기장에서 맞붙게 될 지는 장담할 수 없다. 로저 페더러 정도 되면 대개 저녁 시간대에 메인 경기장인 로드 레이버 아레나의 경기로 편성되지만, 해당 시간대의 티켓 판매율이 좋으면 일부러 낮 시간대로 옮겨서 티켓 판매율을 높이기도 한다.

표를 산 날이 경기 6일 전인 1월 18일이었으니 6일 후에 벌어질 경기에서 어떤 선수를 보게 될 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여자부 경기이니 예쁜 선수들의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 대회가 진행되는 것을 보면서 계속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 마리아 샤라포바, 아나 이바노비치와 다니엘라 한투코바까지 4강에 진출하여 땡잡은 기분이었다.

일정은 경기 전날인 23일 저녁에 멜번행 비행기를 타고 가서 29일 아침 첫 비행기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그래도 명색이 학생인만큼 수업을 빠지고 가는 것이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지만 다행히 주말과 대체 휴일이 된 월요일 덕분에 3일의 연휴가 생겨 목요일과 금요일 수업만 빠지기로 했고, 돌아오는 29일은 화요일이지만 빨리 움직이면 점심 시간 이전에 수업에 참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음 같아서는 24일 아침에 일찍 가서 28일 늦게 돌아오는 것이 좋겠지만 비행기표 가격이 만만치 않아서 어쩔 수 없었다. 어차피 밤 늦게 도착해서 몇 시간 머물지 않는다는 생각에 숙소에서는 4일만 잠을 자고 출발하는 날 밤과 돌아오기 전날 밤은 공항에서 보내기로 했다.


브리즈번 시내에서 공항까지 가려면 에어트레인이라 불리는 공항철도를 타는 것이 가장 싸고 안전한 방법이다. 여행자들이 머무는 숙소에 공항 셔틀(흔히 코치라고 부른다)이 다니기는 하지만 시간대를 정해서 미리 예약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고, 저녁 퇴근 시간대에 걸려 차가 막히게 되면 비행기를 놓칠 위험이 있어 별로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그런데 막상 여행자들이 많은 짐을 끌고 공항으로 갈 때는 문 앞까지 와서 싣고 가는 코치가 더 편하기에 이용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아서 시내의 신문 판매소라든가 일부 호스텔 카운터 등에서 에어트레인 할인 티켓을 팔았다. 역에서 표를 살 때는 14달러를 내야 했는데 이 티켓은 13달러에 살 수 있으니 조금이라도 아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발품을 팔아 미리 사서 탈 필요가 있다. 다행히 묵던 호스텔 바로 옆에 있는 곳에서 이 티켓을 팔고 있어서 가는 길에 사서 갔다.


20분만에 공항까지 갈 수 있단다..


학교를 다녀와서 바로 짐을 챙겨 나오다보니 센트럴역에서 열차를 탈 때 시간이 빠듯한 편이었는데 열차가 중간에 몇 분 정도 신호에 걸려 정차하느라 늦을까봐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열차에서 내리자마자 체크인을 하기 위해 서둘러 달려갔는데 다행히 탑승 수속 중이었다. 따로 맡긴 짐이 없었는데, 검은 천으로 싸인 삼각대를 보더니 그게 뭐냐고 물어본다. 일본어로는 생각이 나는데 영어 단어는 떠오르지 않는다. "음. 트.. 트라이.. (뒤의 단어가 아 젠장...)" 라고 중얼거리자, "아, 트라이포드!" 패닉에 빠질 뻔한 순간 직원 아가씨가 구해준다. 고맙다. 그렇게 무사히 수속을 마치고 검색대를 통과한다. 그런데 검색대에서 조금 이상하다 싶은 것이 있으면 당사자의 동의 하에 짐을 뒤지는 경우가 있는데, 여행자 치고는 짐이 너무 초라한 덕분에 즉시 수색을 당했다. "이봐, 나쁜 사람 아니라고.." 이상한 물건이 나올 리는 없고 가볍게 끝이 났다.

브리즈번 공항 국내선은 콴타스와 버진 블루, 그리고 콴타스의 저가 브랜드인 젯스타 등이 취항하고 있다. 대형 항공사가 취항하지 않는 소도시를 전문적으로 취항하는 리저널 익스프레스 같은 곳도 있지만 비중이 적고, 이용자가 한정되어 있어서 별로 잘 알려져 있지는 않다. 아무래도 업무차 비행기를 타는 사람들은 콴타스를 많이 타고, 그 다음으로 버진 블루, 젯스타를 이용하는 편이다. 버진 블루는 젯스타에 비해서 취항 편수가 많아서 이용 승객도 많은데, 콴타스는 저가 브랜드인 젯스타의 취항을 늘릴수록 고가 브랜드 콴타스의 승객마저도 젯스타를 이용하여 전체적인 수입이 줄어드는 자기 잠식의 우려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곤란한 상황이었다.

멜번에는 공항이 두 개 있는데 멜번 공항이라고 부르는 툴라마린에 위치한 공항이 하나 있고, 시내에서 더 멀리 떨어진 질롱에 위치한 아발론 공항이 있다. 툴라마린의 멜번 공항은 국제공항과 함께 있어서 규모가 큰데, 도심까지는 약 20분 정도 거리에 있다. 브리즈번에서 멜번을 연결하는 노선 중 콴타스와 버진 블루는 툴라마린 공항에서 이착륙을 하는 반면, 젯스타는 공항세 절감을 위해 아발론 공항으로만 취항을 했다(나중에 젯스타도 브리즈번에서 툴라마린으로 가는 노선이 생긴다). 멜번이 초행길이기도 했지만 숙소에서 픽업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항이 툴라마린 공항이어서 여기로 가는 가장 싼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그렇지만 한창 관광객들이 몰리는 시기인지라 세금 포함 164달러의 거금을 지불하여야 했다. 이 돈이면 일주일 동안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데 정말 큰 마음을 먹고 저질렀다.

 


호주 국내선 비행기표는 공항마다 항공사와 공항마다 조금씩 다른데 이렇게 우리나라 국내선과 마찬가지로 영수증을 인쇄할 때 쓰는 감열지를 이용하여 간단하게 뽑아주기도 하고 국제선처럼 항공사 로고가 그려진 티켓 용지에 인쇄를 해주기도 한다. 비행 시간은 2시간 반 정도 걸리는데 멜번은 일광 절약 시간제를 시행하고 있어서 브리즈번보다 1시간이 빨랐다. 20시에 출발해서 23시 50분 도착 예정이니 9시간만 어떻게 공항에서 버티면 되었다. 공항에서 혼자 무엇을 하고 놀고 있을지 고민하고 있는데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비행기가 연착되어 출발이 지연된단다. 만세!


호주의 국내선 비행기는 약 80% 정도의 정시 출발률을 기록하는데 콴타스와 버진 블루[각주:1]가 상위권에 있는 편이다. 이 두 항공사의 브리즈번에서 시드니, 멜번을 오가는 비행기는 항공사마다 거의 매 시간마다 있고, 호주의 양대 도시인 시드니와 멜번을 오가는 비행기는 거의 30분에 한 대 꼴로 비행기가 있다. 대개 대도시들을 오가는 비행기들은 하루에 양 도시를 여러 번 왕복하는 경우가 많은데 도착과 출발의 간격이 타이트해서 한 번 조금이라도 늦게 출발하게 되면 연쇄적으로 조금씩 늦어지면서 지연이 종종 발생한다.

그런데 호주 사람들은 지연이 발생하더라도 흥분하고 화내는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간혹 극성맞은 사람들이 있어서 항의를 하기는 하지만, 정말 급한 사정이 아니면 대개 자신들의 할 일을 하면서 참고 기다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성질 급한 한국인으로서는 참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인데 느긋한 삶을 사는 호주 사람들에게는 잠시 늦어지는 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여유가 있다. 화를 내고 항의를 해봤자 늦어진 비행기가 빨리 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체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침착하게 비행기를 기다리는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국제선보다 국내선 수요가 더 많다보니 국내선 터미널에도 서점과 카페, 그리고 음식점 등이 자리하고 있어서 시간을 보내기 어렵지는 않다. 어린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들은 간단한 음식을 먹으러 다녀오기도 하고, 젊은 친구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수다를 떨고 있고 수트 차림의 중년 아저씨는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읽고 있다. 커피 한 잔에 샌드위치를 먹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였지만 여유가 없는지라 미리 사 온 과자 한 봉지를 꺼내 먹으면서 조용히 책을 읽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갑자기 안내 방송이 들렸다. 나이 먹고 억지로 배우는 영어인지라 귀를 쫑긋 세우고 집중해서 듣지 않으면 뭐라고 하는지 알아듣지 못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아서 신경을 써야 한다. 곧 비행기가 도착하면 탑승을 시작할 것이니 미리 준비하고 있으란다. 조금 더 늦어도 되는데..

앞으로 <멜번 다이어리>에서는 호주오픈 관람과 필립 아일랜드, 그레이트 오션 로드에 다녀온 이야기를 풀어놓으려 한다. 성능이 좋지 않은 카메라에 실력이 나쁜 사용자 덕분에 사진이 그다지 아름답지는 않지만 혹시 멜번에 관심 있고 여행 계획이 있는 분들에게 작은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Melbourne의 공식적인 한글 표기는 멜버른이지만 실제 호주에서는 그렇게 발음하는 사람이 없으므로 멜번이라고 씁니다.

  1. 버진 블루는 현재 버진 오스트레일리아(Virgin Australia)로 바뀌었음 [본문으로]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