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무로란에서 오샤만베(長万部)행 보통열차를 타고 계속 무로란본선을 달린다. 환승시간이 단 5분에 불과하였기 때문에 잠시 역 바깥으로 나가서 동네 구경할 시간도 없고, 양 어깨와 두 팔 모두 짐을 안고 있었던 탓에 얌전히 열차에 올라 타서 빈 자리를 찾아보았으나, 사람들이 많아서 결국 서서 가게 되었다. 모든 역에 정차하는 보통열차이기에 중간역에서 사람들이 하나 둘씩 내릴 것 같으니 금방 자리가 나기를 기대해보지만, 예상보다 오랫동안 사람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서 별 수가 없다.


해안에 접한 지대에는 공장들이 들어서 있는데, 무로란은 철강과 화학 공업 등의 중화학산업과 조선업 등이 발달한 곳이라고 한다. 홋카이도에서는 유일한 공업지대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예쁜 항구마을이 아니고 투박한 굴뚝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렇게 조선소도 있는 것 같고..


사키모리역

이런 역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사키모리역 전에 모토와니시(本輪西)역은 한 눈 팔다가 그냥 지나쳐버렸다.. 지나는 모든 역의 명판 사진을 찍으려면 조금 더 부지런해야 하는데, 그럴 리가 없다.


열차가 슬금슬금 높은 곳으로 올라가서 차창 밖으로 동네를 조망할 수 있는데 경관이 아름답지는 않다. 공업지대답게 해안 주변에 조선소에서 사용하는 타워크레인이 여러 대 보이고, 선박을 건조하고 있는 시설인 것 같다.


코가네(黄金)역.

황금역이다. 역명판의 기둥을 황금으로 만든 것은 아니고, 녹이 슬었을 뿐이기는 하지만..


황금은 보이지 않는다. 있었다면 누군가가 이미 가져갔겠지..


지금은 무인역으로 운전수(기관사)가 열차 운전은 물론 운임을 받는 일도 하지만, 예전 이 역에 역무원이 있던 시절에는 이 역의 입장권이 꽤 잘 팔렸다고 한다. 금은 세계 어디서든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니.. 지금은 역에 상주하는 직원이 없지만 역 출입은 자유롭게 할 수 있고, 열차를 탈 때 정리권을 뽑고, 내릴 때 운전수에게 운임과 정리권을 함께 낸다.

 

마렛푸(稀府)역

역 이름이 일본의 다른 지역에 비해 많이 생소한 느낌인데 아이누어에서 음차하였기 때문이라나.. 홋카이도가 일본의 역사에 포함되기 시작한 것이 역 주변에 별로 눈에 띄는 건물은 없는 한적한 시골 마을인 것 같다.

 

마렛푸역을 출발하여 다음 역인 키타후나오카역으로 향하는데 선로가 갈수록 해안선에 가깝게 다가간다.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고 있어서 열차 진행 방향의 왼쪽에서 햇살이 차창을 통해 들어오는데 잠시 구름이 해를 가리고 있다.


이 부근에는 인적이 드물기 때문에 선로 주변에 수풀이 우거져 있다.


해안선에 가까이 붙어서 이어지는 선로라서 바다를 가까이서 구경할 수 있다.

 

태풍이 지나간 후에 너울의 여파인지 파도는 꽤 높았다. 


키타후나오카역에서 학생 한 명이 내렸다.


키타후나오카역

역이 바다에 접해 있는데, 태풍이 불어오거나 비바람이 심할 때는 이 역 이용이 어려울 것 같다.


처음에는 빈 자리가 거의 없었는데 진행방향 왼쪽 창가 자리가 생겨서 냉큼 앉아서 갔다. 갈 길이 먼 사람이니 가능하면 체력소모를 줄여야 하고, 창가 쪽 자리에서 바깥 경치를 보기 위해서.


다테몬베츠역

다테몬베츠역은 특급 호쿠토, 수퍼호쿠토의 정차역으로, 이 역에는 역무원이 상주하고 있어서 승차권이나 요금을 운전수 대신 역무원에게 내고 나간다. 다테라고 하면 가장 유명한 사람은 독안룡 다테 마사무네(伊達政宗)일텐데 이 사람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고, 다테 가의 분가인 와타리다테(亘理伊達) 가문이 이 곳에 정착하면서 이 지역의 이름 몬베츠와 합쳐서 다테몬베츠가 되었다고 하는 것 같다.


다테시 개척기념관과 쇼와신잔이 이 근처에 있다고 한다. 개척기념관은 버스로 10분, 도보로 20분 걸린다고 하니 걸어서 다녀오면 되겠는데, 짐은 어떻게 들고 다닐 것인지도 문제고 이 열차에서 내리면 다음 열차가 언제 올 지 모른다.. 


저 그림의 장수는 다테 마사무네인가..

계속해서 오샤만베로 향한다.


나카와역

저 학생들은 서로 아는 사이인가..


햇빛이 강해서 일단 햇빛 차단막을 내리고 창문을 살짝 열고 간다.


우스역


열차 안은 평화롭다.


한동안 해안선 옆으로 다니다 어느새 산 속을 지나가고 있다.


구름이 껴서 어두워진 탓도 있을테고, 산 옆으로 가다보니 사진이 흔들렸다.


학생들이 토야역에서 많이 내린다.

토야역은 삿포로-하코다테 구간의 특급열차가 정차하는 역이다. 2012년 토야코(洞爺湖)에서 G7정상회담을 개최해서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은 곳이기도 하다. 한국인으로서 마음이 아프기는 하지만 일본은 선진국이자 강대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여러 국제 관계 등으로 인해 이득을 본 것도 있지만, 일단 1억 3천만에 가까운 인구와 과거에 서양세력들과 세계대전을 벌였을 만큼의 기술과 힘을 가진 나라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토야코의 경관이 좋다고 해서 한 번 가보고 싶은데, 가난해서 못가고 있다는..

 

토요우라역

역 뒤편은 그냥 숲이다..


역사 앞으로 지나는 2차선 도로 건너편에 평범한 가정집들이 있다. 스윽 둘러보니 평범한 마을이고 딱히 눈에 띄는 건물이나 시설 같은 것은 없는 것 같다. 토요우라역을 출발해서 오키시역까지 가는 도중 꽤 긴 터널을 지나게 된다. 원래 선로는 산 위로 우회하는 경로였는데 급경사와 급구배를 피하기 위해 새로이 터널을 건설하여 선로가 지나가도록 했다고 한다. 덕분에 거리가 1.6km 정도 짧아졌다고.


터널을 지나면 해안선과 가까이 선로가 이어진다.


오키시역을 출발하면 다시 터널이 기다리고 있다. 


이름은 안 나왔지만 이 건물이 레분역 건물. 역시 무인역이다.


레분역을 출발하면 살짝 오르막 경사가 있고, 산을 향해서 달린다.

 

이런 산 속에 무슨 마을이 있고, 역이 있을까 싶지만..


역이 있다. 코보로(小幌)역

이 역은 비경역(秘境駅)으로 잘 알려진 역이다. 1년 여 전에 출장을 와서 머물다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이 역이 소개되는 것을 보았는데, 원래는 신호장이었는데 여객 취급을 했고, 이 역에서 나가는 길이 없다고 한다. 원래 이 역은 신호장이었으나 국철 민영화를 하면서 역으로 승격이 되었다고 하는데, 당시만 해도 주변에 민가가 있어서 역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었다고 한다. 1970년대까지는 주변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후에 사람들이 없어지면서 자연스럽게 길이 사라지게 되었다고. 아마도 인적이 없다보니 숲이 우거져버린 모양. 마을도 없고 밖으로 주변에 관광명소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이 역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철도 동호인(철덕)이라는 것 같다. 방송에도 나오고, 조만간 이 역이 폐역이 될 가능성도 있어서 하루 한 명 이상이 이 역을 방문하고 있다고 하는데, 여름철에나 갈 만하지 겨울에는 엄두를 내지 못할 것 같다. 코보로역이 위치한 토요우라쵸(豊浦町)에서는 역의 존속을 원하고 있어서 1년 단위로 유지비를 부담하는 조건으로 JR홋카이도와 계약을 하고 있다고 한다. 승강장도 1량짜리 열차에만 대응할 수 있어서 2량짜리 열차가 도착하면 선두차량만 문을 연다고..


코보로역을 출발


날씨가 안 좋아지는 것을 느끼기는 했지만, 구름이 몰려오고 바람이 세지면서 조금씩 이상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오샤만베역까지는 앞으로 다섯 역이라서 곧 도착할 것 같지만, 오샤만베 이후에 하코다테까지 가는 열차는 정상적으로 운행할 것인지 슬슬 염려가 되었다. 평소 같으면 별 염려를 하지 않았겠지만, 며칠 전에 폭우로 인해 하코다테 방면으로 가는 열차의 운행이 중단된 것을 보고 난 뒤라서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릴 것 같은 날씨가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우산이 있어도 들 손이 하나 더 있는 것도 아니고 바람이 세서 우산을 써도 별 소용없을 것 같은데..


오샤만베역에 도착했다. 이제 모리행 열차로 갈아타고 가야하는데 열차 시간이 약 40분 가까이 남아서 역 근처 구경이나 해야할 것 같다. 날이 흐려지고 바람이 거세지고 언제 비가 와도 이상하지 않을 듯한 날씨라서 역 안에 갇혀 있어야 할 지도 모를 일이지만..


타고 온 열차는 다시 무로란으로 돌아가는 모양이다. 어느새 행선판을 바꾸어 놓았다.


혹시 사진이 흔들렸을까 싶어서 다시 열차 사진을 찍고 역 바깥으로 나가려고 계단을 올라가서 개찰구를 지나려고 하는데, 역무원이 승객으로 보이는 사람들 몇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모리행 보통열차가 강풍으로 운휴가 되어서 모리역까지 특급열차를 대체로 이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그런데 특급열차에 탈 수 없는 승차권을 가지고 있는데, 보통열차가 운행하지 않는다니 어떻게 해야하는지 물어봐야겠다 싶어서 얼른 역무원에게 다가갔다.

"모리행 보통열차는 운행하지 않나요?"

"네, 바람이 많이 불어서 운휴가 되었네요. 혹시 어디까지 가시나요?"

"하코다테까지 가려고 하는데요.."

"승차권은 있나요?"

"네.. 청춘18승차권이 있어요.."

"그러면 모리역까지 특급열차 자유석에 타고 가세요. 모리역에서 하코다테까지는 정상 운행 예정입니다."

그러더니 역무원은 무전으로 승객 한 명이 더 있다고 지령실인지 특급열차의 차장인지 외부인으로서는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 연락을 했다. 안 좋은 기상 덕분에 오샤만베에서 모리역까지 워프를 하게 된 셈인데.. 오샤만베에서 모리까지는 특급권 없이도 특급열차를 타고 갈 수 있게 되어 오전에 갉아먹은 시간을 많이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하였지만, 철도 지옥인 홋카이도를 너무 얕보았다는 것을 모리역에 도착한 뒤에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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