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

얼마 전부터 가끔 잠이 오지 않을 때 술기운을 빌려 잠을 자려고 한 잔 정도 마신다거나, 식사 자리에서 상대방에 맞춰주기 위해서 함께 첫 잔을 마시는 것 외에는 가급적 술을 마시지 않는다. 가장 큰 이유는 갈수록 멍청해지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게 되어 다시 회복은 되지 않더라도 그 속도를 조금이나마 늦출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는데, 한동안 술을 마시지 않다보니 술 냄새가 싫어지고 거부감을 느끼게 되어 자연히 술을 멀리하게 되었다. 와인 한 잔씩 마시면 혈액순환에 좋고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하는데, 어떤 연구에서는 술이라는 자체가 한 잔도 좋지 않다는 이야기도 있으니 사람의 건강상태나 체질에 따라 괜찮거나 도움이 될 수도, 반대로 나쁘거나 위험할 수도 있지 않은가 싶다.

그런 의학적인 연구 내용이 아니더라도 과로로 인한 만성피로와 체력저하가 고질병처럼 되면서 마실 때는 괜찮은 것 같은데 쉽게 취하고 숙취로 다음 날이 괴로운 것이나 술자리에 함께 한 사람이 술에 취해 개가 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예전에는 저렇게 개가 되었구나 싶은 생각에 스스로를 단속하려는 뜻도 있고, 여러 이유에서 술을 멀리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 이래놓고 나서 언제 또 술 한 잔 마시다 취해서 멍멍이짓을 할 지는 모르겠지만, 여행이든 출장이든 말이 잘 통하지 않는 타국에 있는 순간에는 어느 정도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서 되도록 더 조심하고 주의한다. 그러다보니 저녁을 먹은 뒤에는 호텔 방 안에서 텔레비전을 본다거나, 인터넷 웹서핑을 한다거나 기껏해야 편의점에서 간식을 사다가 먹는 것 외에는 마땅히 할 일이 없다. 게임이나 뭐 그렇고 그런 것이라든지 할 일이야 많이 있겠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런 방면에 별로 흥미가 없어서, 북오프 같은 중고서점에 가서 싸고 괜찮은 책을 둘러보거나 쇼핑을 한다거나 가까운 온천을 찾아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오는 정도랄까.

오후 8시가 다 되어가니 멀리 갔다 올 수는 없고, 편도 한 시간 이내에 갈 수 있을 만한 곳에 내려서 잠시 구경하고 교토에 돌아오는 정도라면 괜찮을 것 같아 킨테츠교토역으로 갔다. 킨테츠교토역은 한 쪽이 막힌 역이어서 반대 방향으로 갈 염려는 없지만, 가는 도중 노선이 분기되어 목적지가 다른 열차가 종종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다만 특급을 포함한 모든 등급, 모든 방면의 열차가 정차하는[각주:1] 야마토사이다이지(大和西大寺)역에서 오사카와 나라, 카시하라진구마에(橿原神宮前) 방면으로 분기되니 이 역까지는 걱정하지 않고 갈 수 있다. 어차피 시간상 사이다이지까지 갔다가 돌아오면 10시가 훌쩍 넘을테고, 다음 날 체크아웃을 해야하니 늦잠을 잘 수 없어서 무리하지 않아야 한다.


교토선에는 주로 4량 편성인 경우가 많아 열차를 병결하여 운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두 열차의 열차 모델 및 연식이 다르다.

거리상 특급권을 쓰기 아까우니 특급열차 대신 19시 46분 발 카시하라진구마에 행 급행열차에 탔다. 배가 부르니 잠이 오고, 앉아서 가면 좋겠지만 이미 사람들이 많이 타 있어 서서 간다. 밖은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보면서 간다. 30여 분 걸려서 야마토사이다이지에 도착하자 꽤 많은 사람들이 내렸다. 오사카와 교토를 연결하는 철도 노선이 많지만, JR, 한큐(阪急)는 오사카 북부와 교토를 연결하고, 케이한(京阪) 역시 오사카 북동부 방면 중심으로 교토에 이어지는 노선이어서 교토에서 나라를 거쳐 오사카 남부를 바로 연결하는 노선은 킨테츠가 유일하다. 킨테츠의 통학 정기권의 가격이 다른 회사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저렴하다던데, 그래서인지 직장인 외에도 학생들도 꽤 있다. 그러고 보니 우지에 살던 친구 녀석도 몇 년 전에 오사카에 통학하느라고 킨테츠를 이용했던 것이 생각난다.

사이다이지역은 교토선, 카시하라선과 나라선이 교차하는 지점인데, 동쪽의 나라, 서쪽의 오사카, 남쪽의 카시하라진구마에, 북쪽의 교토로 가는 노선이 교차하니 사거리와 같은 곳이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 같다. 아주 서울의 신촌이나 대학로 정도 같이 번화한 동네는 아니지만 나라현에서는 꽤 비중이 있어 나라역 주변이 나라현의 중심이라면 이 곳은 현 내의 교통의 요지라고 할 수 있겠다. 예전에 이 역을 몇 번 지나간 적은 있지만, 사이다이지역 주변에 유명한 관광 명소가 있는 것은 아니어서 역사 바깥으로 나가는 것은 처음이다.

역 바깥에는 나라 패밀리라는 쇼핑센터가 있어 전문 상점이 들어서 있고, 같은 건물 북쪽에 킨테츠백화점과 이온몰(AEON MALL)이 자리하고 있다. 추측이지만 나라패밀리라는 건물의 일부를 킨테츠백화점과 이온몰이 임대하여 영업하고 있는 것 같다. 킨테츠백화점은 오후 8시까지만 영업을 하는지라 들어가지 못하고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다가 이온몰은 아직 영업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간식거리를 사러 들어갔다.


사진 출처 http://www.nara-kintetsu-chintai.jp
이미 한밤중이 되어 사진을 찍어도 잘 안 나와서 부득이하게 인터넷에서 검색을 했다.
사이다이지역 북쪽 출구로 나가면 오른쪽에 이 건물이 보여서 찾기 어렵지 않다.


아무래도 외지에 있다보면 밥은 잘 챙겨먹더라도 균형잡힌 식사를 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종종 의식적으로 마트나 편의점에 들러 쥬스라든가 껍질을 쉽게 벗겨 먹을 수 있는 과일을 조금씩 사먹는 편이다. 평소에는 영양성분 같은 것을 생각하며 음식을 먹지 않고 편식에 가까울 만큼 좋아하는 것만 먹지만, 외지에서 몸이 아프면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으니 주의하는 정도. 이온몰에는 대개 수퍼마켓이 있으니 쥬스와 과일을 사러 지하로 연결되는 입구를 찾아서 들어갔다.


발렌타이데이와 맥주가 무슨 상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뭐..

9년 전 처음 일본에 갔을 때 일본어를 거의 못해서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였지만, 그 당시에도 밸런타인데이 전이어서 상점에서 밸런타인데이 관련 상품으로 초콜릿과 주류를 파는 곳이 많았다. 그 때 이 나라의 상술은 참 뛰어나다고 감탄하기도 하였는데, 맥주까지 이렇게 밸런타인데이라고 포장을 특별히 만들어 파는 것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술 한 잔 마시면 더 쉽게 상대에게 친밀함을 느낄 수 있어서인가.

일본에서도 대부분의 마트에서는 폐점 시각이 다가오면 신선 식품이나 소비기한이 짧은 조리 식품 등을 할인가격에 파는데, 사람들이 다 사서 간 뒤라 식료품 코너에는 먹을만한 것이 없고, 과일도 꽤 비싸서 살까 말까 고민이 되었다. 딸기가 큼지막한 것이 맛있게 보이는데 몇 개 되지 않는 작은 포장이 6천원이 넘어서 망설이다가 포기하고 방울토마토를 샀다. 그리고 마시는 요거트도 하나 사서 쪽쪽 빨아마시고..


부족분의 식물섬유 마시는 요구르트 석류맛.

유제품 귀신인지라 맛있게 먹었다.

밖으로 나와서 동네 한 바퀴를 돌아보는데 생각했던 만큼 거리에 상점이 많지 않고, 갈만한 곳이 보이지 않는다. 맛있는 냄새라도 풍기면 들어가서 먹고 나올텐데 먹자골목이라 불릴 만한 곳은 없는지 거리가 썰렁하다. 역의 남쪽에는 수퍼마켓이 하나 있는 것 같은데, 건너가기 귀찮다. 그럼 그냥 돌아가야지 별 수 있나. 사이다이지역으로 돌아가서 교토행 열차를 기다린다. 이번에도 당연히 추가요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급행열차인데 갈 때와는 달리 빈 자리가 많아서 편히 앉아서 간다. 교토역이 종점이니 마음 편히 잠을 자도 괜찮은데, 이렇게 긴장감이 없으면 잠이 잘 오지 않는다. 이건 무슨 청개구리 심보냐.


사토미가 모델인 이온 영어회화 광고.

그렇지만 여기서 이 학원을 다닌다고 해도 이 아가씨 볼 일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다시 교토역에 도착한 뒤, 호텔에서 나올 때 길바닥에서 주운 버스 1일 승차권을 가지고 버스를 타고 호텔 앞에서 내렸다. 누가 잃어버린 것인지 아니면 버스 탈만큼 탔다고 버리고 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2월 5일 날짜가 찍혀 있는 승차권이라 혹시 몰라서 주워서 주머니에 넣어두었는데 유용하게 잘 썼다. 그게 없었더라면 20분 동안 걸으면서 궁시렁거렸을텐데, 역시 돈이 좋기는 좋다. 승차권 버리고 가신 분 복 받으실 거에요~~♪


그래도 움직였다고 배가 고프니 야식을 먹어야지.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야키우동과 야키토리를 데워서 먹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체크아웃을 해야하니 대충 짐을 싸둔 뒤 씻고 잠을 청했다.

  1. 심야시간에는 교토발 열차가 야마토사이다이지까지 운행하지 않고, 신타나베(新田辺)까지만 가는 열차가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본문으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잠을 이겨내려고 애쓰다가 늦게 잠들었더니 아니나다를까 늦게 일어났다. 모처럼의 꿀잠이지만, 기껏해야 닷새 밖에 되지 않는 시간을 막 쓰다니 아쉬움도 없지 않지만, 일단 살고 보는 것이 먼저다. 이틀 연박이라 체크아웃의 압박이 없었기에 다행이지 하루만 묵는 것이었다면 낭패를 볼 뻔했다. 프런트에서 체크아웃 시간이 되었다고 전화오고 허둥대느라 정신이 없었겠지.

로비에 내려갔을 때 호텔에서 무료로 제공하는(사실 이게 호텔 숙박비에 포함되어 있어 미리 지불한 금액이겠지만) 아침 식사 시간이 이미 끝난 뒤라서, 물 한 잔 마시고 커피 한 잔 종이컵에 따라서 방으로 올라와서 다시 침대 위에 엎어졌다. 잠시 뒹굴거리다 할 일은 해야 하니, 잘 켜지지 않는 넷북을 겨우 켜고 배송사에 보낼 상품 리스트 작성을 시작했다. 상품별로 원산지와 재질, 단가 등을 분류하고 개별 단가를 입력해야 하는데, 이상하게 납품수량이 맞지 않아서 여러 번 반복해서 점검한 끝에 일단 저장해 놓고 침대로 돌아가 누웠다.

너무 적막한 것 같아서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있는데, 전 일본 야구 선수 키요하라 카즈히로(清原和弘)가 각성제 복용으로 체포되었다는 뉴스가 나온다. 키요하라라는 이름을 알게 된 것은 만화 H2 덕분인데, 이 만화의 주인공인 쿠니미 히로와 타치바나 히데오의 실제 모델이 80년대 야구선수 쿠와타 마스미(桑田真澄)와 키요하라 카즈히로라는 이야기 때문. 일본 야구를 처음 방송으로 접한 91년의 한일수퍼게임 이후, 15년이 지나 이승엽이 요미우리에서 활약할 때나 TV중계를 볼 수 있었고, 그 이전에 일본에 진출해 활약했던 선동열, 이종범 등도 스포츠뉴스에서나 짧게 나올 뿐이었으니. 그리고 그 밖에 각종 사건사고 뉴스가 나오는데, 뭐 이 나라에도 이상한 녀석들이 많고 조용할 날은 없는 것 같다.


키요하라 용의자 체포에 대한 TBS뉴스23 캡쳐화면 (인터넷에서 캡쳐화면을 구해왔음)

일을 하다보니 세 시간 정도가 훌쩍 지나가서 어느새 점심 시간이 되었다. 어쩐지 배가 고프더라니. 어제 사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도시락을 하나 꺼내서 청소 중인 로비에 내려가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방으로 들고 와서 먹었다. 어제 점심부터 계속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있으니 기분이 참 별로다. 어디로 가야할 지도 모르겠고, 나가서 밥을 먹고 오기는 시간이 아깝기도 하니 그냥 이렇게 때운다.

먹고 나니 배가 부르고 다시 피곤이 몰려온다. 아예 넷북을 침대 위로 들고와서 저장해 둔 파일을 다시 확인한 후 이상이 없는 것 같아서 메일을 보낸 뒤 덮어두고, 잠시 휴식. 마음 같아서는 명절 기간에 조용한 곳에서 산책이나 하고 저녁이면 온천에나 다녀오면서 쉬고 싶은데, 그럴 상황도 아니고 설날 전날 밤에 돌아가서 이것저것 할 일이 많고, 여기서 처리해야 할 일도 있고 해서 머리가 복잡하다. 가만히 엎어져 있다보니 해가 짧은 겨울이 아니랄까봐 아직 일몰 시각까지는 조금 남았지만 해가 슬슬 서쪽으로 넘어가는 것이 보인다.

고작 4박 5일 일정에서 첫 날을 딱히 한 것 없이 이동에 시간을 다 보내고, 다음 날 반나절을 일하느라 다 보내고 엎어져 있다가 어느덧 오후 5시가 다 되어가니 이렇게 시간을 보내기는 아깝다 싶어 씻고 나갈 준비를 했다. 매년 몇 차례 일본을 드나들게 되면서, 소위 유명 관광지라는 곳들은 대부분 다 가보았고, 종종 (의도하지 않은) 현지인 코스프레를 하면서 외국인 티를 내지 않고 지내지만 엄연히 외국인 관광객 아니던가.

교토역 방향은 대충 알았으니, 어제 왔던 길 대신에 다른 길로 교토역 쪽으로 가기로 한다. 교토역 주변의 교토 시내는 바둑판처럼 설계가 되어 방향을 알면 어지간한 길치가 아니라면 찾기 쉬운 편이다. 길을 못 찾기로 유명한 나 같은 사람이야 몇 번 오간 끝에 겨우 익히게 되었지만, 교토 시내의 랜드마크라면 JR교토역이나 교토 타워를 꼽을 수 있겠는데, 이 두 건물의 사이에 동서로 펼쳐진 대로는 시오코지(塩小路)다. 이 시오코지에서 한 블럭 북쪽으로 가면 시치죠(七条), 남쪽인 교토역의 남쪽 반대편 출구로 가면 하치죠(八条)가 나온다. 하치죠 남쪽으로는 토지(東寺) 외에 도보권에 있는 관광지는 없고 대부분이 북쪽에 있다.

남북의 구분을 죠(条)로 한다면 동서의 구분은 조금 까다로운데, 주요 교차점을 중심으로 남북을 잇는 큰 길인 "~도리" 를 중심으로 구분하면 쉽다. 교토역 중앙 출구로 나와서 교토 타워 쪽으로 난 길은 카라스마도리(烏丸通)를 중심으로 서쪽으로 신마치도리(新町通り), 오미야도리(大宮通り), 호리카와도리(堀川通り) 등 남북방향으로 나 있는 길로 구분된다. 그래서 교토에 있는 어느 건물의 주소를 보았을 때, 교토부 교토시 무슨무슨구 다음에 ~죠와 ~도리로 대충 어느 방향에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교토 시내의 주요 관광지라면 금각사와 은각사로 잘 알려진 킨카쿠지(金閣寺)와 긴카쿠지(銀閣寺)절을 비롯 역시 청수사로도 잘 알려진 키요미즈데라(清水寺)와 니죠성(니죠죠.二条城)을 꼽을 수 있겠는데 겨울에는 대개 이런 곳들이 오후 4~5시에 문을 닫으며, 마지막 입장은 폐문 30분 전까지만 받아서 갈 곳은 딱히 없다. 교토 시내를 대중교통으로 돌아다니며 이런 관광지들을 둘러볼 계획이 있다면 이른 아침 출근시간부터 버스를 타고 열심히 돌아다녀야 많은 곳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다. 그나마 키요미즈데라는 늦게까지 문을 열지만, 그 시간에 가면 어두워서 눈에 보이는 것이 별로 없다.

아무래도 딱히 가려는 곳이 없으니, 자연스레 직업병이 도져서 교토역 앞 사거리 건너편에 있는 요도바시카메라 교토점에 갔다. 이곳은 특이하게도 요도바시카메라 멀티미디어 교토(ヨドバシカメラマルチメディア京都)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데, 요도바시 지점들이 카메라와 가전제품 등만 판매하는 것이 아닌지라 다른 요도바시카메라 다른 지점과의 차이는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별 관심없는 분야의 상품까지 뒤지고 다닐만큼 한가하지도 않으니, 여기저기 오락가락하면서 상품 트렌드를 살펴보는 정도. 그리고 요도바시에서 무료 와이파이를 잡아서 사용할 수 있으니 메일 확인도 하고.

아침을 굶고 아점으로 도시락을 먹은 것이 전부인지라 배는 고프고, 어느덧 저녁 시간이 되어서 일단 교토역으로 건너갔다. 언제나 그렇듯 맛집을 찾아놓고 꼭 거기에 가서 밥을 먹을 만큼 계획적이고 치밀한 성격이 아닌지라 지하철과 연결된 교토역 지하상가 포르타(PORTA,ポルタ) 식당가를 살펴보면서 무엇을 먹을지 찾아본다.

지하철 교토역에서는 교토시 와이파이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 음식점 정보나 찾아볼까 싶어 접속했더니, 운송사에서 납품할 상품을 발송하였는지 통보가 오지 않는다는 연락이 와 있다. 그 일 때문에 호텔 방 안에 갇혀 하루 절반을 날려먹었는데 짜증과 분노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설 연휴는 한국이나 중국 등의 동아시아권의 일부 국가만 쉬기에 그 기간 동안 국제화물은 이와 상관없이 운송이 진행되고, 납품처에 배송정보를 전달해야 하는데 이렇게 배송업체가 이렇게 배를 째고 있다니 환장할 노릇. 한국에 있는 동료에게 오늘이 연휴 전 마지막 영업일이라 연락이 되지 않으면 일이 꼬일 수 있으니 계속 연락을 시도해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배송정보를 알아내라고 길길이 날뛰었더니, 사태의 심각성을 느꼈는지 어떻게든 책임지고 연락하여 회신을 받아두겠다고 한다.

그제서야 겨우 성질을 가라앉히고 여기에 저녁을 먹으러 왔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린다. 식욕은 반감된 상태이지만 그래도 뭐라도 먹어두어야 밤중에 배가 고파 잠을 못자는 일을 막을 수 있으니. 한국요리집도 있고, 라멘 가게도 있고, 스시 가게도 있고, 여러 음식점들이 있는데, 교토라고 하면 역시 두부요리 아닌가 싶어서 이 곳으로 정했다.


먹고 나와서 찍은 사진이라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데, 들어갈 때는 사람이 없어서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쿄료리(京料理.교토요리) 만시게(萬重)라는 가게.

교토는 두부요리가 유명하니 두부가 들어가고 따끈한 음식을 먹고자 들어갔다. 일본 음식점 답게 따뜻한 녹차와 일회용 물수건인 오시보리(お絞り)가 나온다. 들어가기 전에 이미 가게 바깥에 있는 음식 모형을 보면서 무엇을 먹을지 결정을 했지만, 다시 메뉴판을 들여다보다가 마음을 바꾸지 않고 처음에 정했던 아야(綾)를 시켰다. 일본에 와서 식은 음식을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먹는 것이 아닌, 막 따뜻하게 조리한 음식을 처음 먹게 되는 순간이다. 한국에서도 정신없이 일하다보면 식당에 가기 귀찮고, 배달 음식은 거기서 거기인지라 편의점에서 도시락 사서 데워 먹고 그러는지라 식당에서 먹게 될 음식이 반갑다.


요정(料亭.요리집)의 맛 "시-타케콘부(椎茸昆布)" 를 기념품으로 광고하고 있다. 

시-타케(椎茸.표고버섯)과 콘부(昆布.다시마) 절임 음식인 듯하다.


기다린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음식이 나왔다.


밥그릇이 잘린 것 같아서 다시 찍었는데 두부가 잘림.


콩물에 두부, 버섯, 야채 등을 넣고 끓인 나베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확실하지 않지만, 유바는 없었던 것 같다.


끝장을 내버렸음


아야(綾). 실제 음식이 모형과 거의 비슷하게 나온 것 같다


가운데 있는 1,700엔(세전) 짜리 음식.

세금 포함하면 1,836엔이라는 이렇게 비싼 음식을 먹는 호사를 누리다니..

밥값하려면 열심히 일해야겠어요.


밥을 먹으니 배가 부르고, 배가 부르니 잠이 온다. 그래서 기분 좋게 잠을 자기 위해 열차를 타러 간다.



 잠꾸러기의 원포인트 가이드

<京料理 満重 (쿄료리 만시게)>

만시게라는 곳을 나중에 구글에서 찾아보니 포르타에 있는 점포는 분점이고, 본점은 니죠성 북쪽에 있다고.

포르타점은 교토역 지하에서 쉽게 찾을 수 있으니, 여기서는 가보지도 않은 본점에 대한 정보를.

주소 : 京都府京都市上京区大宮通上立売下る芝大宮町9-1

전화번호 : 075-441-2131 (11:30~19:30까지 입점)


뭐 이렇게 생겼다고 한다.

이 음식점의 홈페이지 주소는 http://www.kyoryori-manshige.co.jp

가격은 카이세키요리(会席料理) 위주의 파는 본점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점심 식사만 해도 4~5천엔 정도이고, 카이세키요리는 이보다 2~3배 더 비싼 고급 음식점으로 보인다. 이에 반해 주로 식사 위주의 포르타점은 대충 1,000~2,000엔 선에서 괜찮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 같으니 주머니가 풍족하지 않은 사람들은 여기를 먼저 들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교토의 관광지가 대부분 교토 시내 동쪽 방면에 위치해 있으나, 불행히도 이틀 밤을 보낼 호텔은 서쪽에 위치해 있고, 교토역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다지 관광하기에 좋은 곳은 아니었다. 그 사실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이유로 이 곳을 찾아온 뒤에 느껴지는 막막함이란 참. 예약하기 전에 호텔 주소를 구글 지도에서 검색해보았는데, 교토역에서는 도보로 대충 23분 정도 걸린다고 해서, 걸음이 빠른 편이니 20분 안에 오갈 수 있겠다 싶어서 예약을 했다. 교토역 앞 버스 정류장에서 호텔 근처까지 버스가 다닌다고 하지만 배차간격이 서울 시내버스와 같지 않아 뜸한 편이라 기다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 걸어가게 만든다.

구글 맵을 켜고 현재 위치에서 호텔까지 경로탐색을 하여 가는 길을 찾았다. 위치 정보는 굳이 와이파이가 켜진 상태가 아니더라도 사용자의 이동에 따라 위치가 파악되므로 지도에 나온 경로에서 벗어나지 않고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소요시간이 23분이라고 하였으나 거리는 1.9km라서 한 시간에 4km를 걷는 평균적인 속도로 걷는다면 23분에 간다는 것 - 구글 지도에서 도보 속도는 시속 5km를 기준으로 하는 것 같다 - 은 말이 되지 않는다. 초행길이고 짐까지 잔뜩 껴안고 있으니 그 시간에 가는 것은 무리라고 보이지만 이 멍청한 구글에 질 수는 없지. 열심히 걷는다. 중간중간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느라 시간을 보내면서 마음은 급해지고 낑낑거리면서 겨우 23분에 맞추어 호텔에 도착했다. 아이씨!

일단 체크인을 한 뒤 방에 들어가자마자 무엇이 문제인지 부팅에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는 넷북을 펼치고, 업무 상황을 파악하고, 일련의 지시를 해야 한다. 납품 건에 대해서 최종 검토 및 승인을 해야 한국에서 일이 진행되므로 쉴 틈없이 리스트를 보면서 종류와 수량을 확인하고, 운송사에도 해당 상품의 리스트를 전달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보낼 것이 있어서 교토역 앞 중앙우체국에서 사 온 봉투에 넣어서 호텔 가까이에 있는 우체통에 넣고 오니, 이미 어두워지고 거리는 한산하다. 아직 해가 짧은 2월인데다, 일본은 한국보다 해가 빨리 뜨는 만큼 지는 것도 빠르고, 한국처럼 늦게까지 영업하는 상점이 많지 않아서 거리가 금방 어두워진다.

저녁을 먹어야 하니 다시 먼 길을 걸어 교토역으로 간다. 그냥 방 안에 있는 것도 심심하고 하니 그냥 걸어다니다 보이는 음식점에 가기로. 타베로그라도 찾아보고 나올까 싶었지만, 언제부터 그렇게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서 움직였다고. 참고로 교토역 앞 지하철과 연결되는 지하 상가에는 교토시에서 운영하는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있어서 사용자 등록을 하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다만 이 와이파이가 잘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 그래도 어떻게 와이파이 연결이 되어서 한국에 있는 동료에게 연락해 일이 잘 마무리되었는지 확인하고, 무엇을 먹을까 고민을 하다가 일본에 왔으니 우선 초밥을 먹기로 한다. 토리아에즈 스시! 동일본대지진 이후 방사능 유출 이후 안전성에는 여전히 의문이 있는 것이 사실인데, 인체에 유해한 수준이 아니라고 말해도 그것이 전혀 해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유혹에 넘어가고 만다. 날 음식만 보면 침이 꿀꺽꿀꺽 넘어가는지라..

교토역 지하에 있는 식당가에 빈 자리가 없어서 이온몰 1층 코효 수퍼마켓에서 대충 저녁거리를 사서 호텔로 돌아왔다. 기다리기도 귀찮고 돌아다니고 싶어도 몸이 피곤하니, 일단 방에 들어가 눕고 싶은 생각이 먼저다.



토리아에즈 사시미부터 :)

아무래도 횟감만 먹는 것이다보니 초밥(니기리즈시)에 올라가는 횟감보다는 질이 좋고 신선하기에 더 비싸다.

위쪽에 있는 것은 미니로 판매하는 구운 고등어와 가리비 니기리즈시.



다음은 니기리즈시 모듬.

이름이 사카나야상노니기리모리아와세(魚屋さんのにぎり盛り合わせ). 생선가게의 니기리모음이란다.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먹는 초밥보다 커서 보통 사람들은 몇 개만 먹어도 배가 부르지만 잘 먹기 때문에 이 정도 쯤은 뭐..



밥 위에 횟감을 썰어서 얹어 놓은 치라시스시.

이렇게 대충 2인분 이상을 먹었다.

스시 전문점에서 먹었다면 아마 최소 4~5만원 정도 나왔겠지 싶지만 1/3정도 가격에 해결.


식비 절약 및 배고플 때 간식 대신 먹기 위해서 거지 근성을 발휘해서 도시락도 서너 개를 사다가 냉장고에 넣어둔다. 이 때만 해도 이 도시락 덕분에 굶지 않고 지내게 될 줄은 몰랐지만..

씻고 잠을 청하는데 피곤한데 잠은 잘 들지 않는 곤란한 상황에 이어지고 있다. 계속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다 간신히 잠들었는데 새벽 2시가 지나서였다.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이번 여정은 편안하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리프트에서 내린 다음 이번에는 신사를 지나지 않고 큰 길을 따라 슬슬 내려왔다. 큰 길이라고 해봤자 국도 178호선 2차선 도로와 그 옆의 인도에 불과하지만. 일본은 한국과 같은 시간대를 쓰고 있는데 사실 이 시간대가 도쿄를 기준으로 한 시간대여서 적지 않은 차이를 느낄 수가 있다. 홋카이도와 같이 위도가 차이나는 경우는 제외하더라도 오사카나 교토와 같은 간사이 지방만 하더라도 서울보다 30분 정도 해가 빨리 뜨고 빨리 진다. 이는 도쿄 쪽으로 갈수록 더 심해진다. 그래서 한국에서 해가 18시 정도에 진다고 해서 일본에서도 같은 시간에 해가 지겠거니 하다가는 낭패를 보게 된다. 그 대표적인 케이스가 하루 전에 겪었던 어둠 속에서 헤매야 했던 와슈잔 전망대의 일이기도 하다. 혹시라도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서 친절히 링크를 하자면 "온천에 갔다가 막차를 놓치다!"편을 참조해 주시기를 바라는 바임.

길가에 있는 기념품 가게에서도 마타노조키의 모습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것 같다.
기념품을 사야 사진을 찍을 수 있는지, 돈을 내고 찍는지는 잘 모르겠다.

정확한 기상 정보를 찾아보지 않았지만 경험에 의해 대략 17시 30분에 일몰로 어두워진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다 이번에도 전철을 놓쳐서 오사카 시내를 걸어다니며 헤맬 수는 없는 일이니 시간 관리를 잘 해야한다. 교토까지 한 번에 가는 특급 하시다테 열차는 18시 46분이 막차라는 것은 알고 있는데, 그보다 한 시간 전에 이미 어두워지기 때문에 굳이 이 곳에서 있을 이유가 없는지라 가능하다면 더 일찍 출발하는 열차를 타는 편이 낫다. 일본 역시 밤문화가 발달한 나라이기는 하지만 한국에는 비할 바가 못 되고, 이런 관광지라면 밤이 되면 정말 할 것이 없다. 각설하고 후추역에서 내려와서 관광선을 타고 왔던 이치노미야역에 왔을 때 대략 16시 20분이었다.

이미 해의 위치가 일몰이 머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내가 가야하는 길은 바로 저 소나무숲이다.

자전거를 빌리려고 왔는데 남아있는 자전거는 마마챠리 한 대밖에 없다. 어차피 경사가 험한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서 굳이 기어가 필요하지는 않지만 자전거가 작고 낮아서 타면 더 힘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다시 배를 타고 돌아가는 방법도 있지만, 소나무숲을 그냥 지나치기는 아쉬워서 혹시라도 자전거를 반납하는 사람이 있나 잠시 주변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도 없다.ㅠ.ㅠ 아무리 그래도 이 마마챠리는 나의 체격에 맞지 않는 것 같아서 단념하고 그냥 두 다리에 미안하지만 걸어가기로 마음을 바꾼다.

나도 저런 자전거를 타고 싶다.

여기저기 자전거를 빌려주는 곳은 많은데 패스로 이용가능한 회사 외의 다른 곳은 돈을 주고 빌려야 해서 중간중간 망설이기도 했는데 환전을 안 한 바람에 주머니 사정이 상당히 좋지 않아서 몸을 고생시키는 수밖에 없다. 삼림욕하는 셈치고 슬슬 걸어가면 되지 않겠나.

여기서부터 아마노하시다테 소나무숲을 지나는 길이 시작된다. 여기서부터 125cc이상의 원동기를 포함한 자동차는 통행이 금지된다.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이 있을까 싶었는데 걷는 도중에는 보지 못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당연히 많다.

그냥 이렇게 길 사이로 소나무들이 있고, 개중에는 특이한 소나무들이 있어서 그런 소나무들은 이름표와 함께 설명을 해놓기도 하였다.

월척을 낚은 낚시꾼이 기분좋게 걸어가고 있다.

나무를 보는 눈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유달리 눈에 띄는 녀석이 있어서 사진을 찍어봤다.

카이센쿄(廻旋橋)까지 2.1km 남았다고 한다. 그럼 역까지는 대충 3km가 안 되고, 40분 정도면 충분히 갈 수 있을 듯하다.

V자 모양의 소나무. 이름은 나가요시노마츠라고 되어 있네.

석양은 아름답지만 안타깝게도 즐길 여유가 없구나.

이럴 줄 알았으면 아마노하시다테에서 하루 묵어가는 것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북쪽에 있는 이네에도 가고 싶은데 미리 오사카에서 머물기로 결정하고 숙박비를 다 지불해서 별 수가 없다. 아~

키가 커서 사진에 다 들어오지 않는 이 나무의 이름은 잘 모르겠다.

킨키자연보도. 아마노하시다테역이 2km 남았다고 한다.

하고로모(羽衣)의 소나무다.

아마노하시다테는 모래 퇴적층에 소나무들이 자라서 지금처럼 되었는데, 소나무재선충 때문에 소나무들이 멸종될 위기에 빠졌다가 최근에는 해충이 소강 상태여서 위기를 넘긴 상태라고 한다. 그러나 퇴적과 침식 작용의 균형이 무너져 이 소나무들이 심어져 있는 곳의 면적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어 침식을 방지하는데 애를 쓰고 있다고 한다.

부부소나무란다. 좋겠다.

윗부분.

천관 소나무다. 가치가 천관이라는건가.

1km를 더 걸어왔군.

 코죠로노마츠(小女郎の松)민화 하시다테코죠로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오테우에노마츠(御手植の松)
타이쇼(大正) 5년, 메이지 천황이 황태자일 때 심었다는 소나무다.

중간중간 이 연인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간다.

걷다보면 이들을 앞질러 가다가도 중간중간 멈춰서 사진 찍고 주변을 둘러보다보니 뒤쳐지고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된다. 저 아가씨는 신발도 걷기에 편하지 않아보이는데 잘 걷는다. 

이제 역이 1km 남았다.

원래 모래가 쌓여 만들어진 지형인지라 소나무숲 양쪽으로 백사장이 있고 해수욕장도 있다. 다만, 가을인지라 해수욕장은 문을 닫고 있는 상태라고.

멀리 보이는 백사장 끝에서 노는 젊은 친구들이 몇 명 있기는 했다.

지혜의 소나무.

이제 거의 다 왔다. 다리 두 번 건너면 몬쥬에 도착한다.

'특별명승 아마노하시다테' 라고 한다.

'일본의 길 100선' 어쩌고 뭐라뭐라 써 있는데 귀찮아서 안 읽어봤다.

일본삼경비

이 다리를 건너면 점심을 먹고 관광선을 탔던 몬쥬다.

사람이 북적이던 선착장도 조용하다.

점심을 먹었던 식당이 오른쪽에 보이고, 아마노하시다테역으로 가야하니 이 방향이 아닌 반대쪽으로 간다.

역으로 향하는 길은 이미 어둠이 깔리고 있다.

역에 도착했다.

이치노미야 선착장에는 여러 종류의 배 - 목적은 승객 수송의 유람선이겠지 - 들이 정박해 있다. 관광선의 경로는 '미야즈-아마노하시다테-이치노미야' 인데, 아마노하시다테까지 사람이 많다가 이치노미야까지 오는 배에 사람들이 별로 없는 것을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마노하시다테에 내려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소나무숲을 지나서 카사마츠 공원을 갔다와서 다시 자전거를 타고 가거나, 올 때만 자전거를 타고 와서 갈 때는 페리를 타는 것 같기도 하다. 계속 지켜본 것은 아니라서 잘은 모르겠다.

관광선들이 이치노미야 부두에 정박해 있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꽤 많고, 여기저기 자전거 빌려주는 곳도 있다.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 돈 받고 빌려준다.

카사마츠 공원은 산 위에 있지만, 리프트와 케이블카를 타는 후추역은 멀리 있지 않아서 굳이 자전거를 탈 필요는 없고, 오히려 얕은 오르막이라서 자전거라면 더 불편할 것 같다. 일본인들은 자전거가 생활화되어 있어서 남녀노소 자전거를 타는데,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 세워두고 구경해야 하고 그런 것이 귀찮아서.

이치노미야 선착장에서 나와서 직진하면 국도 178호가 나오는데, 이 길을 건너면 모토이세코노진쟈(元伊勢籠神社)가 있다. '籠' 라는 글자를 카고(かご)라고 읽어야 하는지 아닌지 몰라서 헤매고 있었는데, 나중에 구글에 쳐보니 "코-"로 발음한다고 한다.

조금씩 있던 구름도 보이지 않는 아주 맑은 날이다.

안에는 이런 곳이 있다.

사진을 찍지 말라는 안내가 있어서 사진은 여기까지만 찍고, 옆으로 난 길을 따라서 후추역으로 간다. 딱히 종교를 믿는 편은 아니어서 가는 곳마다 다르지만 여기는 그냥 넘어간다. 다들 어디서 왔는지 적지 않은 사람들이 신사 옆으로 난 길을 따라서 후추역으로 가는 것 같다. 어디로 가야하는지 헤맬 필요 없이 사람들을 졸래졸래 따라서 간다.

신사에서 나와서 가운데에 난 길을 따라서 찍은 곳까지 걸어오면 후추역이 있다.

관광지답게 기념품과 군것질거리를 파는 가게들이 줄을 서 있다. 탄고 지역의 토산물인 검은 콩으로 만든 음식과 주걱 등 여러가지 기념품이 보인다. 기념품은 딱히 마음에 드는 것이 없어서 그냥 넘어간다. 살짝 목이 마른 상태라서 맥주라도 한 잔 마실까 했는데, 마시고 난 뒤에 다시 목이 마를 것 같아서 참는다.

리프트, 케이블카와 나리아이등산버스(成相登山バス)를 타는 후추역.


검표하는 아저씨가 숫자를 세면서 승객들을 입장시키고 있다.

등산버스는 패스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도 하지만, 애시당초 관심이 없었고 방향이 산을 보고 올라가는 것이라 올라갈 때는 케이블카로, 내려올 때는 리프트를 타려고 했는데 케이블카는 20분 정도 기다려야 탈 수 있다고 해서 그냥 리프트를 타러 갔다. 케이블카, 리프트 모두 편도 330엔, 왕복 660엔인데, 패스가 있으면 무료로 탈 수 있다. 사람들 사이에서 줄을 서서 검표를 하는데 패스를 들고 있는 사람은 혼자인 것 같다. 그러나 줄을 서 있는 다른 사람들은 나를 혼자서 편하게 놀러온 일본인 청년 혹은 동네 백수 녀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눈에 딱 들어온다. 토비오리킨시(飛び降り禁止.투신금지)

리프트 의자에 안전벨트는 없는데 지면에서 높이가 많이 높지 않아서 성인이라면 그다지 위험해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술 한 잔 드셨다거나 어린이들이라면 잘못하면 다칠 수 있으니 주의를 해야겠지. 맞은편에서 내려오는 사람들 중에서 치마를 입은 언니들이 있어서 시선 처리하는 것이 곤란해지기도 하는데..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뛰어내리는 이상한 애들이 있는가보다.


아이를 안고 탄 저 아저씨 부럽더라~.


지금까지 완만한 경사였다면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올라가는 느낌이 난다.


흔들지 말란다. 진짜 생각없는 녀석들이 있는가보다.

리프트를 타고 이동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약 6분이라고 하는데, 조금 지루해질 무렵 카사마츠 공원이 있는 카사마츠역에 도착했다. 카사마츠역에서 내리면 바로 아마노하시다테를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고, 마타노조키(股のぞき)라 하여 뒤돌아서서 다리를 벌리고 몸을 숙여 얼굴을 가랑이 사이로 해서 보는 단이 있다. 아마노하시다테라는 이름이 "하늘로 이어지는 다리" 라는 의미라는데, 마타노조키로 보면 아마노하시다테의 소나무들이 하늘로 이어지는 것 같이 보인다고 한다.


일단은 심플하게 아마노하시다테를 찍어보았다.
왜 올라오니까 구름이 끼고 난리냐.


아직까지는 특별한 감흥이 없다.


카와라케 던지는 곳이 있다.

카와라케나게(かわらけ投げ. 토기던지기) 3장에 200엔인데 사람이나 기계가 판매하는 것은 아니고 자율적으로 사람들이 요금함에 200엔을 넣고 세 장의 납작한 접시를 가져가서 가운데 보이는 원 안으로 던진다. 세 개 던져서 세 개 다 넣으면 지혜를 얻는 현명한 사람이 된다고. 안 속아. 카와라케나게는 교토의 진고지(神護寺)라는 곳에서 유래한 것이라는데, 토기로 된 술잔이나 접시를 던져 소원을 비는 것이라 하며 일본의 관광지에서 종종 볼 수 있다고. 사진에서는 거리가 가까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생각보다 멀다 싶은 거리이고, 이 토기가 의외로 조준하기 힘든지 많은 사람들이 실패를 하였다. 1,000엔 이상 기념품을 사면 카와라케 던지기를 할 수 있다는데, 마땅히 마음에 드는 기념품이 없었다. 뭔가 귀엽고 깜찍한 아이템 있으면 사려고 했는데 그런 것이 없더라는..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는 간판도 있다. 양 옆에는 마타노조키용 계단.


여전히 시야가 좋지 않다.

마타노조키를 해보려고 했는데 사람들이 많아서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그렇다면 다른 곳으로 가야겠다 싶은데 사람들이 계단 위로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위에서 보면 더 잘 보일 수도 있겠다 싶어서 사람들을 따라서 위로 올라간다. 마타노조키 계단이 빈 곳이 있어서 올라가서 고개를 가랑이 사이로 해서 보니 어지럽다. 놀이기구도 뒤집어지는 것을 상당히 꺼리는 편인데, 다시 시도하니 피가 거꾸로 쏠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계단이 생각보다 많았다. 앜!


마타노조키 자세로 사진을 찍었더니 이렇다.

경치가 좋은데 구름이 끼어 시야가 흐릿해서 좀 별로다. 아직 하늘로 올라가는 계단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확 트인 광경을 보니 뭔가 답답했던 것이 풀리는 기분도 들고 그렇다.


이게 조금 더 하늘로 올라가는 것 같은가?


아~ 피가 쏠린다.


사진을 찍은 장소를 찍어두고


마지막으로 사진을 찍고 내려간다. 좋은 카메라를 사고 싶어지네.
(그럼 뭐하냐 사진을 찍는 사람이 별로인데..)


케이블카와 리프트 영업시간이 16시 30분까지라고 해서 서둘러 내려왔는데, 이 날은 관광객이 많아서 17시 30분까지 연장하기로 했다고 한다. 연장을 하더라도 저 소나무숲에 해가 지기 전에 가보려면 지금 내려가야 할 것 같다. 케이블카보다는 리프트가 내려갈 때 더 재미가 있을 것 같아서 이번에도 리프트를 탄다.


사람들이 다 같은 생각인지 케이블카에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래도 우천, 강풍 등 날씨가 좋지 않을 때는 리프트는 운행하지 않는다고 하니 케이블카가 필요한 것 같다. 장애인 한 명이 있었는데 직원들이 가서 부축해서 태워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일본의 서비스 정신은 유명하지 않던가.


상당히 단순한 리프트라서 그냥 플라스틱 의자에다가 줄을 매달아 놓은 듯한 느낌이다. 줄 대신 봉일 뿐이지 실제로도 그렇구나. 안전벨트는 없지만 지붕은 있어서 비나 눈이 오더라도 어느 정도라면 리프트를 운행하는 것 같다.


내려간다!


이 봉 하나가 큰 일을 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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