윔블던 여자 단식 결승에서 경기장의 소음 차단녀 페트라 크비토바(21·체코, 세계 8위)가 7년만의 화려한 컴백을 눈앞에 두었던 요정 마리아 샤라포바(24·러시아, 세계 6위)를 물리치고 생애 첫 우승을 차지했다. 준결승에서 괴성녀 빅토리아 아자렌카를 물리치고 결승에 올라온 크비토바는 다시 악쓰는 여자 샤라포바를 누르며 시끄러운 선수들의 킬러로 자리매김했다. 대회 전에는 아무도 그녀를 우승 후보로 생각하지 않았지만, 소리 없이 강했던 그녀는 강호들을 하나씩 무찌르며 지난 10년간 윌리엄스 자매 외 단 두 명에게만 허락되었던 윔블던 여왕의 자리에 올랐다. 

윔블던 여왕 페트라 크비토바 ⓒ AELTC / M. Hangst

 

윔블던 파이널리스트 ⓒ AELTC / J. Buckle

 

대회 12일째 (7월 2일)

여자 결승 페트라 크비토바 vs 마리아 샤라포바 (14:00 센터 코트)

결승전에 입장하는 크비토바와 샤라포바 ⓒ AELTC / M. Hangst

샤라포바의 우세를 점친 사람이 적지 않았는데, 샤라포바는 4강까지 여섯 경기를 치르는 동안 단 한 세트도 내주지 않는 깔끔한 경기를 했고, 베이스라인에서 날리는 강력한 스트로크가 전성기에 못지않게 살아났다는 평이었다. 그러나 경기에 앞서 체코 출신의 '철녀'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는 샤라포바가 왼손잡이인 크비토바의 서브의 궤적이 낯설어 받는 것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예측을 했다.

공을 쫓는 샤라포바 ⓒ AELTC / M. Hangst

크비토바는 시작부터 첫 서브가 잘 들어가지 않았는데 두 번의 포어핸드 미스로 샤라포바에게 0-30으로 끌려갔다. 샤라포바의 실책과 좋지 않은 서브 리턴을 빈 곳을 찾아 공격하여 동점을 만들었지만, 연달아 네트에 공을 꽂으며 첫 게임을 내주었다. 그러나 샤라포바의 서브 게임을 바로 브레이크하면서 승부를 다시 원점으로 돌렸다. 샤라포바는 15-40에서 더블 폴트를 저질러 게임을 내준 것이 뼈아팠다. 이어진 크비토바의 서브 게임에서는 두 번의 듀스 끝에 샤라포바의 리턴 실패와 크비토바의 백핸드 위너가 이어지며 크비토바가 승리하며 경기를 역전시켰다. 샤라포바 역시 더블 폴트를 또 저질렀지만 긴 랠리에서 승리하며 서브 게임을 지켜 2-2를 만들었다. 그러나 크비토바가 이어진 서브 게임을 지킨 반면 샤라포바는 30-30에서 더블 폴트를 두 번 연달아 저지르며 게임을 내주어 4-2가 되면서 균형이 깨졌다. 크비토바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시 서브 게임을 지키며 5-2로 달아났고, 이후 한 게임씩 주고받으며 6-3으로 1세트는 크비토바의 승리로 끝났다.

크비토바는 왼손잡이입니다 ⓒ AELTC / T. Hindley

2세트에서 크비토바는 집중력을 잃지 않고 차분하게 샤라포바를 압박했다. 샤라포바는 0-30으로 앞섰지만, 리턴 미스와 크비토바의 크로스 포어핸드에 동점을 허용했다. 이어서 샤라포바의 다섯 번째 더블 폴트가 나오며 졸지에 브레이크 포인트에 밀렸고 크비토바는 베이스라인 위에 떨어지는 포어핸드로 첫 게임을 가져갔다. 라인 심판은 처음에 아웃을 선언했지만 바로 정정했고, 샤라포바는 챌린지를 했지만 인으로 판명되면서 기회만 날렸다. 다음 게임에서 크비토바는 40-30에서 더블 폴트로 듀스를 허용했지만 강력한 서브 두 개로 승리를 챙겼다. 다시 두 게임 차이로 밀리면서 샤라포바는 위기를 맞이했지만 깔끔하게 서브 게임을 지킨 후 크비토바의 서브 게임을 브레이크하면서 2-2를 만들었다. 크비토바는 세 번째 더블 폴트를 하면서 샤라포바에 기회를 주었고, 샤라포바는 베이스라인 스트로크가 살아나면서 30-40의 브레이크 포인트에 도달했다. 크비토바는 듀스로 갈 기회가 있었지만 다소 약했던 스매시가 샤라포바의 본능적인 방어에 걸리며 크비토바의 키를 넘겨 베이스라인 안쪽에 떨어지면서 게임을 내주었다. 크비토바에게는 불운이었지만, 샤라포바와 샤라포바를 응원하는 사람들에게는 행운이었다.

윔블던 여왕에 오르는 결승점이 된 강력한 크비토바의 서브 ⓒ AELTC / M. Hangst

샤라포바는 반격의 기회를 맞은 듯했지만 서브 게임을 내주며 좋은 기세를 이어가지 못했다. 샤라포바는 30-40의 게임 포인트에 도달했지만 크비토바의 강력한 스트로크가 폭발하며 네 번의 듀스 끝에 크비토바에게 승리가 돌아갔다. 그러나 롤러코스터 경기는 샤라포바만의 것이 아니었다. 크비토바는 듀스에서 시터를 네트에 꽂고 샤라포바의 강한 리턴을 맞으며 다시 서브 게임을 내주는 브레이크 랠리가 이어졌다. 다시 3-3 동점. 계속 브레이크 랠리가 이어지면 먼저 서브를 넣는 샤라포바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정확히 세트의 절반을 지나는 순간, 크비토바가 승리를 향한 부스터를 발동시켰다. 크비토바는 샤라포바의 서브를 강하게 리턴하면서 투 브레이크 포인트를 만들었고, 한 점을 따라잡혔지만 샤라포바의 포어핸드가 길게 벗어나며 다시 리드를 잡았다. 이어진 서브 게임에서 15-30으로 밀렸지만 샤라포바가 받아내기 힘든 강한 서브를 연달아 코트에 꽂으며 승리하며 5-3으로 생애 첫 윔블던 우승까지 단 한 게임만을 남겨놓게 되었다. 샤라포바는 뒤늦게 서브 게임을 지키며 5-4로 따라붙었지만, 크비토바는 침착하게 강한 서브를 넣으며 샤라포바를 압박했고, 40-0의 쓰리 챔피언쉽 포인트에 도달했다. 자신의 첫 우승을 자축하려는 듯이 크비토바는 깔끔한 서브 에이스로 경기를 마감하면서 윔블던 여왕의 자리에 올랐다.

경기 요약 (출처 : 윔블던 공식 사이트)

샤라포바는 76%의 첫 서브 적중률을 기록했지만 더블 폴트를 의식한 나머지 위력이 떨어졌고 코스 역시 좋지 못해 크비토바의 강력한 리턴에 고전했다. 서브 후 득점으로 연결시키는 빈도가 크게 떨어진 것이 샤라포바가 다섯 번이나 브레이크를 당한 이유였다. 크비토바는 샤라포바에 미사일 스트로크에 지지 않고 스트로크 싸움을 펼쳐 승리를 거두었는데, 서브가 약해진 샤라포바의 유일한 장점을 무력화시켰다는 점이 승리의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윔블던 파이널리스트 ⓒ AELTC / T. Hindley

크비토바는 이번 승리로 윔블던 여왕에 오르면서  세계 톱랭커들도 평생 한 번 차지하기 힘든 그랜드 슬램을 차지한 것은 선수 생활을 하면서 자신감을 가질 수 있고, 큰 대회에 참가할 때도 부담감을 떨쳐버릴 수 있어 앞으로의 선전이 더 기대된다. 그녀는 세계랭킹 8위에 작년 준결승 진출자임에도 우승 후보로는 꼽히지 않았다. 처음 결승에 오른 그랜드 슬램에서 전혀 긴장하지 않고 경기를 승리로 이끌 만큼의 강심장은 앞으로 대회마다 그녀를 우승 후보로 꼽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왼손잡이라는 희소성에 어느 선수에도 뒤지지 않는 파워풀한 서브와 스트로크는 수비형 선수들이 많아진 최근의 여자 테니스계에서 주목을 받을 것이다.

승자의 스포트라이트 ⓒ AELTC / T. Hindley

준우승에 머무른 샤라포바 역시 크비토바에 대해 대단한 경기를 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날 경기에 대해 크비토바가 코트 전체에서 강력한 위닝샷을 쳤고 자신보다 더 공격적으로 깊고 강한 공을 쳤다고 하였다. 크비토바의 장점으로 강력한 게임 운영과 힘을 꼽으며, 터프 포지션에서 공격적으로 전환하는 능력에 대해 찬사를 보냈다. 샤라포바는 아쉬움 속에서도 긴 부상 끝에 윔블던 결승까지 오른 것은 앞으로 남은 투어에서 자신감을 가지고 경기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면서 부상을 떨쳐내고 정상적인 플레이를 할 수 있는 것에 만족을 표시했다. 샤라포바의 약혼자인 샤샤 부야치치는 대회 내내 관중석에서 샤라포바를 열렬히 응원하였는데 패배로 참 아쉽게 되었다.

준우승자이지만 여전한 인기를 과시하는 샤라포바 ⓒ AELTC / M. Hangst

그동안 밤잠을 설치게 만들었던 윔블던은 오늘 남자 단식 결승을 끝으로 2주간의 대회를 마치게 된다. 조코비치와 나달이라는 신 라이벌 대결에서 누가 웃을지도 관심이지만 대회가 끝난다니 아쉬운 마음도 든다.

보너스 샷 샤라포바 언니 ⓒ AELTC / J. Buck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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