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라 한투코바

여자부 4강전 첫 경기와 다음 경기 사이에 쉬는 시간이 생겨서 잠시 밖으로 나와서 로드 레이버 아레나 근처를 돌아다니다가 다시 들어왔다. 어느덧 점심 먹을 시간이 된데다 어제 밤부터 강제로 단식을 계속해왔으므로 뭐라도 먹어야겠는데 늘 돈이 발목을 잡는다. 5.5달러였던가 했던 핫도그로 적당히 끼니를 때우고 경기장 주변을 한 바퀴 슬슬 걸어서 돌아본 뒤 자리로 돌아왔다. 그런데 선수들이 경기를 할 때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데, 경기 전에 선수들이 몸을 풀 때나 쉬고 있을 때는 혼자서 할 일이 없다. 앉은 자리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 편하기는 하지만 말 한 마디 나눌 사람이 없으니 금방 지루해졌다. 영어가 짧아서 대화가 잘 되지 않았겠지만..


아나 이바노비치

이 때만 해도 이바노비치가 샤라포바와 함께 여자 테니스를 주름잡을 것으로 여겨졌으나, 실제로는 테니스 선수로서의 전성기가 짧았다. 2008년 프랑스오픈 우승 후 잠시 세계랭킹 1위에 오르기도 했지만, 한 달 후에 열린 윔블던부터 하락세를 보여 시드 배정조차 받지 못한 중국의 정제에게 덜미를 잡혀 일찌감치 탈락하는 등 들쑥날쑥한 성적을 내면서 랭킹이 떨어졌고, 테니스로 주목받는 것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반대로 가십이나 남자관계로 주목받는 경우가 늘어났는데, 잠깐 회복하는 듯하다가 다시 가라앉고, 작년에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와 결혼을 했다.


좌우로 폴짝폴짝 뛰고 있다. 공이 오는 방향으로 바로 움직일 수 있도록 긴장감 유지를 위해서일 것 같다.


모처럼 앞모습 사진을 찍을 기회였으나, 셔터스피드가 따라가지 못했다..


서브를 넣기 전.


예상 밖으로 한투코바의 일방적인 경기로 흘러가고 있다.


상대인 다니엘라 한투코바 

비록 단식에서 그랜드슬램 우승은 커녕 결승에도 올라간 적도 없고, 토너먼트 대회에서 얻은 트로피도 손에 꼽을 정도이기는 한데, 경기에 많이 참여하면서 포인트를 올려서 랭킹을 끌어올린 하드워커라고 해야겠다. 여기에 복식과 혼합복식도 출전하는 경우가 있으니 '질 보다는 양' 을 택한 것인지도. 한투코바 역시 예쁜 외모로 주목을 받아 실력에 비해서 조금 더 유명세를 얻은 면도 없지 않지만, 출신국가인 슬로바키아의 인구가 5백만 남짓에 불과하고, 테니스 스타일이 점잖아서 그런지 시끌벅적하게 소리를 질러대는 친구들보다는 인기가 떨어지는 편.


한투코바가 메이저 대회 단식에서 4강까지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첫 세트는 일방적으로 점수를 따내며 6-0으로 손쉽게 승리했으나, 2세트부터 본격적인 경기가 펼쳐졌다.

 

한투코바의 서브

사진의 질이 대단히 좋지 않아서 참 그렇다.
이것은 다 날씨가 좋지 않아 지붕을 닫은 것과 고물 카메라 탓이다.


카메라 셔터 스피드가 못 따라가서 한 번에 찍지는 못하고 각기 다른 서브 상황에서 찍은 사진을 연결해보았다. 하나의 연속되는 동작의 사진은 아니고, 


서브를 넣기 전 바닥을 보는 한투코바


서브 토스를 하고

 

강하게 서브를 때린다


이바노비치의 리턴


리턴에 실패했다..


득점에 성공한 한투코바는 즐거운 마음으로 볼보이로부터 공을 받았다.


서브를 위해 엔드라인 쪽으로 걸어감


서브에 들어가는 준비 동작


토스 후에 점프


공중에서 서브를 위해 백스윙


이바노비치의 강한 서브


서브 후 연속동작


저 스윙에 맞으면 골로 갈 것 같다.


착지

여기까지..


포핸드 스트로크


백핸드 스트로크를 날리는 이바노비치


그러나 이 게임 역시 이바노비치가 내주고 말았다.

1세트 마지막 게임은 한투코바의 서브게임.


이바노비치는 한 게임도 못 따고 세트를 내줄 위기에 처했다.


이바노비치는 1세트의 향방이 달린 여섯 번째 게임 역시 고전하는데..


이바노비치가 1세트에서 한 게임도 못 따고 퍼펙트로 지고 말았다. 토너먼트 대회 초기에나 나올 법한 일이 이런 그랜드슬램의 4강에서 나오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었다. 누가 뭐래도 한투코바가 이바노비치를 이기고 결승에 진출할 것 같았다.


이바노비치가 1세트를 0대 6의 치욕적인 점수로 내주고 코트체인지를 하고 있다.


경기 중간 잠시 쉬고 있는 이바노비치


한투코바도 쉬고 있다.

경기가 일방적인 한투코바의 승리로 끝날 것 같았는데 2세트에서는 접전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바노비치의 결정적인 브레이크로 6대 3으로 세트를 따내면서 마지막 세트로 이어지게 된다.


땀을 닦는 이바노비치


이바노비치가 포인트를 얻은 다음에 즐겨하는 세리머니 포즈


이바노비치의 득점 후에는 항상 저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지막 세트에서 한투코바는 4대 3으로 앞서고 있었다. 그러나 이바노비치는 연속으로 세 게임을 따내 마지막 세트에서 이기며 대역전승을 거두면서 결승에 진출하여 샤라포바와 맞붙게 되었다.


전광판에 나오는 한투코바의 표정


구입했던 티켓으로 로드 레이버 아레나에서 볼 수 있는 데이 세션 경기는 다 봐서 밖으로 나가야 한다. 남자 4강전 경기는 나이트 세션 경기라서 따로 티켓을 구입해야 하는데, 시간대도 시간대지만, 남자 경기가 더 박진감이 있어서 그런지 이 경기는 대부분의 좌석이 다 팔렸다. 취소하여 남은 좌석이 몇 개 있기는 하지만, 자리가 좋지 않은 편이고, 여러 경기를 볼 수 있는 데이 세션 입장권과는 달리 한 경기만 볼 수 있음에도 가격이 더 비싸서 사기는 부담스럽고. 그냥 밖에 나가서 페더레이션 스퀘어에서 앉아서 보거나 펍에 가서 텔레비전 중계를 보는 것이 더 낫다.


경기가 끝나고 이바노비치가 인터뷰를 준비하고 있다.


호주의 채널 7(Seven)에서 단독으로 호주오픈 테니스 경기 생중계를 한다. 뉴스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정규프로그램은 결방되고, 테니스 경기 중계를 하는데 대회 초반에는 톱랭커들의 경기가 프라임타임이 아닌 시간대에도 있기에 대부분을 테니스 중계에 시간을 할애한다. 토너먼트 대회의 특성상 대회가 진행될수록 생존하는 선수들이 적어지므로 이 채널의 저녁시간 프로그램을 즐겨 시청하는 사람들이라면 테니스가 원망스럽겠지만, 테니스 팬이라면 아주 반가운 일이다. 

 

기아자동차가 이 대회의 공식 스폰서라는 것은 이미 앞에서 언급했던 것 같은데..


세션이 끝났으니 사람들이 대부분 밖으로 나갔다. 한꺼번에 사람이 많이 몰리는 것을 피해 조금 기다렸다가 나간다. 이 시간에 나가봤자 사람들만 많고 바깥 날씨는 더우니.. 냉방시설이 있기는 하지만 별로 시원하지 않다고 한다. 반소매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와서 가만히 앉아서 경기를 보는 경우라면 조금 썰렁한 느낌이 들기는 하는데, 냉방을 가동해도 경기를 하는 선수들의 땀이 식지 않을 정도에 맞추어 할테니 냉기가 직접적으로 나오는 곳이 아니라면 많이 시원하거나 춥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고 한다.

 

로드 레이버 아레나의 천장


마거릿 코트 아레나

그라운드패스만 있으면 들어갈 수 있는 코트 중에서 가장 좋은 코트다. 이 경기장에는 남녀 단식 경기 중에서 중요도에 따라 로드 레이버 아레나와 하이센스 아레나에 배정된 경기 다음으로 높은 랭커의 선수 또는 인기 선수들의 경기가 배정된다. 이 시점에서는 이미 각 부문에서 4강전을 진행하고 있어서 이 경기장에서 그 경기들이 열리지는 않고, 주로 복식 경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누가 뭐래도 테니스에서는 남녀 단식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상금 역시 가장 많으며, 이 종목의 선수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기에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조금 전에 있던 로드 레이버 아레나와는 너무도 다른 분위기


메인 경기장인 로드 레이버 아레나에 경기가 있을 때는 저 전광판에 경기 중계 영상을 틀어준다.


메인 경기장인 로드 레이버 아레나

어차피 경기장 내에서 볼 수 있는 경기가 없어서 밖으로 나왔다.

피곤하니 잠시 호스텔로 돌아가야 할 것 같은데, 지금은 서두를 필요가 없으니 천천히 걸어서 시내를 구경하면서 가보도록 한다. 아침에 비싼 택시비를 내고 온 것이 아까운 생각이 드는데 처음이라 이런 시행착오를 겪는다고 위안을 삼는다.


최근 10년 동안 단식 우승자 사진을 전시해두었다.

안드레 애거시가 가장 눈에 먼저 띄었고..

 

1998년 우승자 마르티나 힝기스.


힝기스는 1997년에도 우승을 했었고, 이 때만 해도 샘프라스도 마지막 불꽃을 태우던 시절이었네.


우승 트로피 사진

 

멜번 파크(Melbourne Park)라 불리는 테니스 공원. 주요 경기는 돔형식으로 된 로드 레이버 아레나에서 열리고,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경기 또는 인기가 있는 경기는 하이센스 아레나에서 열린다. 이 때까지만 해도 하이센스 아레나가 아닌 보다폰 아레나(Vodafone Arena)라는 이름이었는데, 중국의 궐기로 하이센스가 급격히 성장하면서 다음 해부터는 네이밍 스폰서가 하이센스로 바뀌었다. 보다폰은 예전에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유니폼에 로고를 달 정도였으나, 역시 돈 전쟁에서 밀리면서 자리를 빼앗겼다.

 


보다폰 아레나


그라운드패스로는 들어갈 수 없는 2개의 유료 경기장이다. 대신 이 유료 경기장의 입장권을 사면 그라운드패스가 따라오게 되기에 자신이 구입한 경기장의 경기는 물론, 멜번 파크에 개방된 경기장에서 열린 다른 경기를 그냥 볼 수 있다. 이런 대회에 처음 와서 그라운드 패스가 무엇인지 몰랐는데..

멜번 시내는 물론 교외지역까지 연결하는 철도가 경기장 주변을 지나간다.

 

대회 막바지인지라 저녁에는 남자 단식 준결승 1경기가 열리는데, 이 경기가 로드 레이버 아레나의 나이트 세션이라서 데이 세션 티켓을 산 사람은 경기장에 들어갈 수 없어서 그냥 돌아간다. 데이 세션은 여러 경기가 있지만, 상대적으로 사람들의 관심이 적기 때문에, 남자부 준결승 경기 하나만 볼 수 있는 나이트 세션 티켓이 더 비싸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으니 이 경기는 백패커스로 돌아가서 텔레비전으로 봐야 할 것 같다.

윔블던 3라운드가 끝나고 16강이 가려졌다. 4라운드까지는 무난히 진출하리라 예상되었던 선수들이 종종 탈락하면서 이변이 일어나고 있지만,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혔던 선수들은 여전히 안정된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어 갈수록 흥미진진한 승부가 이어질 것 같다. 여자부의 마리아 샤라포바(러시아)와 카롤리네 보스니아키(덴마크, a.k.a. 캐롤라인 워즈니아키) 등은 예정된 경기가 우천과 일몰로 취소되면서 하루 밀린 스케쥴을 소화하게 되었고, 남자부 경기에서도 여러 경기가 중단되면서 다음 날로 밀려서 선수들이 컨디션 조절이라는 다른 과제를 안게 되었다.

 

대회 5일째 (24일)

비가 와서 많은 경기들이 다음 날로 밀리며 많은 선수들이 고생을 해야했다. 톱시드를 받은 세계랭킹 1위 라파엘 나달도 비 앞에서는 경기를 할 수 없었다.

재빠르게 공을 향해 달리는 앤디 머레이 ⓒ AELTC / M. Hangst

앤디 머레이(영국)는 유일하게 지붕이 있는 경기장인 센터 코트에서 경기를 한 덕분에 예정대로 경기를 치를 수 있었다. 크로아티아의 이반 류비치치를 맞은 머레이는 1세트를 먼저 따냈지만 2세트에서 갑자기 흔들리며 세트 스코어 1:1을 허용하고 말았다. 경기가 풀리지 않을 때 순간적으로 페이스를 잃어버리는 고질적인 문제가 머레이의 발목을 잡으며 이미 탈락한 앤디 로딕(미국)에 이어 앤디들이 모두 탈락하는 듯했다. 그러나 3세트에서는 다시 자기 페이스를 찾으며 6-1로 쉽게 이기고, 4세트에서 타이 브레이크 끝에 7-6으로 마무리하면서 4라운드에 진출하였다. 류비치치는 최고 시속 224km(139mph)의 강서브를 앞세워 밀어붙였지만 스트로크의 정교함에서 머레이에 밀리며 경기를 내주었다.

 

세상에 아니 로페스에게 영원한 천적이란 없다 ⓒ AELTC / M. Hangst

이 날의 가장 큰 이변은 다른 앤디, 로딕의 탈락이었다. 로딕의 상대였던 스페인의 펠리시아노 로페스는 로딕과 일곱 번 맞붙어 단 한 번도 이긴 적이 없었기에 로딕의 낙승이 예상되었다. 로딕은 특기인 최고 시속 230km(143mph)의 광속 서브를 넣으며 로페스를 압박했지만 정확도가 떨어졌고, 로페스가 로딕의 코스를 잘 파악하고 대처하면서 힘든 경기를 하였다. 스트로크가 길게 이어질수록 단점이 많이 드러나는 로딕으로서는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1세트와 2세트에서 타이브레이크에서 패하고, 3세트에서 결정적인 브레이크를 당하며 로딕은 0:3의 완패를 당하고 말았다. 남자부의 톱 10 선수 중에서 첫 번째 탈락이었다.

굿바이 롸딕! ⓒ AELTC / M. Hangst

머레이에 밀려 센터 코트 대신 No.1 코트에서 경기를 하던 나달은 1세트를 7-6으로 따낸 후 경기가 비로 연기되었고, 후안 마르틴 델 포트로(아르헨티나), 가엘 몽피스(프랑스) 등도 역시 도중에 경기가 중단되었다.

샤라포바와 롭슨의 등장 ⓒ AELTC / N. Tingle

여자부에서는 전날 경기가 연기되어 치르지 못한 샤라포바와 보스니아키 등이 다른 선수들의 3라운드 경기에 앞서 2라운드 경기를 하였다. 샤라포바는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안은 17세 소녀 로라 롭슨에게 고전하며 1세트에서 1-4로 밀리며 첫 세트를 내주는 듯이 보였지만 익숙하지 않은 상대 파악이 완료되자 무섭게 점수를 따내며 타이브레이크까지 끌고 갔고, 타이브레이크에서도 2-4로 뒤지다가 다섯 점을 연속으로 내면서 승리했다. 1세트의 역전패의 충격이 컸을까 롭슨은 2세트에서는 큰 저항을 하지 못하며 경기는 샤라포바의 2:0(7-6 6-3) 승리로 끝났다.. 샤라포바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롭슨이 대단한 잠재력을 가졌다고 극찬하였다고. 보스니아키는 프랑스의 버지니 라자노를 1시간 6분만에 2:0(6-1 6-3)으로 제압하고 3라운드에 진출했다.

왜 아자렌카는 모두 인상을 쓴 사진만 있을까 ⓒ AELTC / M. Hangst

3라운드 경기에서는 빅토리아 아자렌카(벨라루스)가 다니엘라 한투코바(슬로바키아)와 풀세트 접전 끝에 2:1(6-3 3-6 6-2)로 이겼다. 한투코바는 2세트에서 무서운 집중력으로 아자렌카의 서브게임을 브레이크하며 3세트까지 경기를 끌고 갔지만 3세트 초반부터 발걸음이 무뎌지면서 패하고 말았다. 한투코바는 단식과 복식을 병행하고 있는데 적지 않은 나이에 많은 경기 때문인지 경기 후반으로 갈수록 조금씩 체력의 한계가 드러나는 듯하다. 샤라포바 못지 않게 경기 중에 괴성을 지르는 아자렌카는 음역대가 높아 경기를 볼 때 자연스럽게 음소거를 하게 된다.

2인자를 이긴 피론코바는 쩜오인가 ⓒ AELTC / T. Hindley

2번 시드, 세계랭킹 2위, 작년 준우승자 삼박자를 갖춘 2인자 베라 즈보나레바(러시아)는 불가리아의 스베타나 피론코바에게 덜미를 잡히며 탈락했다. 피론코바는 작년 준결승에서 즈보나레바에서 패하여 아쉽게 결승 진출에 실패했는데 그 빚을 제대로 갚았다. 어떻게 3라운드까지 올라오기는 했지만 뭔가 좋아보이지는 않았던 즈보나레바는 피론코바에 그냥 일방적으로 밀리며 졌다. 비너스 윌리엄스(미국)는 순식간에 마리아 호세 마르티네스 산체스를 이겼고, 프랑스의 마리온 바르톨리, 벨기에의 야니나 위크마이어, 체코의 페트라 크리토바 등도 승리를 거두며 4라운드에 진출했다.

 

대회 6일째 (25일)

포어핸드 스트로크 발사 준비 완료 ⓒ AELTC / M. Hangst

이 날의 일정은 밀린 경기의 재개부터 시작되었다. 나달은 룩셈부르크의 질레스 뮐러를 3:0(7-6 7-6 6-0)으로 물리치며 한 세트도 내주지 않고 승승장구하고 있다. 왼손잡이 선수끼리의 대결이어서 흥미있는 경기였는데 뮐러가 한 세트라도 타이브레이크에서 따냈더라면 나달을 조금 더 괴롭힐 수 있었겠지만, 아쉽게 두 세트를 내준 후 3세트에서는 전의를 상실하며 그냥 무너지고 말았다.

페더러의 원핸드 백핸드 스트로크는 정말.. ⓒ AELTC / J. Buckle

로저 페더러(스위스)는 아르헨티나의 다비드 날반디안을 3:0(6-4 6-2 6-4)으로 물리치며 1시간 46분만에 경기를 끝냈다. 그동안 애먹던 서브 성공률도 71%로 많이 올라왔고 최고 시속 209km(130mph)까지 나온 서브 속도 역시 지난 경기에 비해서 좋았다. 서브의 위력이 살아나자 경기를 유리하게 이끌어가면서 브레이크를 한 번만 허용하였고, 일곱 번의 브레이크 포인트에서 다섯 번 브레이크를 성공시키며 쉽게 경기를 이겼다.

공공의 적이 되어버린 조코비치 ⓒ AELTC / M. Hangst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는 사이프러스의 마르코스 바그다티스와의 접전을 3:1(6-4 4-6 6-3 6-4)로 승리하였다. 스코어처럼 조코비치가 우세한 경기를 했지만 바그다티스 또한 물러서지 않고 끈질기게 조코비치를 괴롭혔다. 각 세트마다 단 한 번씩만 브레이크가 있었는데, 세 번의 브레이크를 한 조코비치가 바그다티스를 눌렀다. 조코비치는 종종 날카로운 백핸드 스트로크를 보여주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실수가 많아서 경기를 어렵게 했다. 그러나 4세트에서 고비에서 서브 에이스를 기록하며 바그다티스를 압박하여 승리했다. 경기장 내에는 사이프러스 출신의 바그다티스의 팬도 많았고, 심지어 페더러를 응원하던 팬들까지도 잠재적 위협인 조코비치보다는 바그다티스를 응원하면서 조코비치는 공공의 적이 되는 듯싶었으나 관중들의 일방적인 응원도 잠재울만큼 조코비치의 기량이 한 수 위였다. 조코비치는 2세트 중반 랠리에서 샷을 미스한 후 라켓을 바닥에 세 번 치면서 부러뜨리는 모습을 연출하는 등 심한 감정 기복을 다시 보여주었다.

3년 전 바그다티스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그를 아저씨라 불렀다 ⓒ AELTC / T. Hindley

호주의 테니스 아이돌 버나드 토믹 ⓒ AELTC / T. Hindley

3라운드에서 호주의 레이튼 휴잇을 이겼던 5번 시드 로빈 소더링(스웨덴)은 호주의 버나드 토믹에게 0:3(1-6 4-6 5-7)로 힘없이 무너지며 탈락했다. 소더링은 휴잇과의 경기에서도 그다지 좋은 모습은 아니었는데 이 경기에서도 실망스러운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로딕에 이은 두 번째 톱10 선수의 탈락이 되었다. 휴잇으로 대표되던 호주 남자 테니스의 에이스 자리에 토믹이 세대교체를 선언하는 계기가 될지 관심이 간다. 휴잇의 패배로 상심했을 오지팬들이 다시 토믹의 이름을 외치며 경기장을 시끄럽게 할 것 같다. 그 외에 후안 마르틴 델 포트로(아르헨티나)와 다비드 페레르(스페인) 등이 역시 4라운드에 진출하며 16인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현지 캐스터는 캐롤라인 보스니아키라고 그녀를 부른다. 쳇! ⓒ AELTC / J. Buckle

하루 만에 경기를 다시 치르게 된 보스니아키는 호주의 자밀라 가조소바를 2:0(6-3 6-2)로 가볍게 이기고 4라운드에 진출했다. 이틀 연속 1시간 6분 만에 경기를 끝낼 정도로 좋은 몸 상태와 안정된 기량을 보여주고 있어서 생애 첫 메이저 대회 우승 가능성을 밝히고 있다. 가조소바는 예전에 자밀라 그로스라는 이름으로 뛰던 선수인데, 이혼을 하고 다시 결혼 전의 성으로 경기에 나서고 있다. 태생은 슬로바키아지만 호주 이중국적을 가지고 있어 호주 국적으로 경기에 출전하고 있다.

그녀는 마치 성난 암사자와 같았다 ⓒ AELTC / S. Wake

샤라포바와 서리나 윌리엄스(미국)도 한 수 위의 기량으로 모두 2:0 승리를 거두며 가볍게 4라운드에 진출했다. 샤라포바는 여전히 서브의 정확도에 문제를 드러내고 있지만 경기력이 안정 궤도에 올라 있는 상황이고, 서리나는 초반 두 경기에서는 코트가 낯선 듯 경기 중반부터 발동이 걸리는 모습이었지만 경기 감각을 차츰 회복해가는 것이 눈에 보인다. 이 두 선수는 경기를 치를수록 더 강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2라운드 최고의 이변을 일으켰던 자비너 리지키(독일)도 일본의 미사키 도이를 꺾고 4라운드에 합류했고, 아나 이바노비치는 체코의 페트라 세트코브스카에 가볍게 패하며 다시 짐을 싸게 되었다.

6일 동안의 일정을 마친 윔블던은 오늘 하루를 쉬고 내일 7일째 일정을 재개한다. 7일째에는 단식 4라운드 경기가 모두 열려 절반이 탈락하고 8강이 가려지게 된다. 과연 누가 남고 누가 집으로 돌아갈 것인가.

마지막 사진은 신데렐라가 될 뻔했던 롭순이로.. ⓒ AELTC / N. Tingle

남자부 톱시드의 라파엘 나달(스페인)이 2라운드 경기를 치르고 있는 지금은 다소 늦은 소식일 수 있지만 간략하게 주요 선수 위주로 윔블던 20일과 21일에 열렸던 1라운드 경기 결과를 전하려고 한다. 시드 배정 선수들이 탈락하는 등의 작은 이변은 있지만 우승 후보들은 모두 쉽게 1라운드에서 승리를 거두며 우승을 향해 한 발 앞으로 나아갔다.

대회 첫째 날 (20일)

라파엘 나달의 서브 ⓒ AELTC / T. Hindley

라파엘 나달은 1라운드에서 미국의 마이클 러셀을 세트 스코어 3:0(6-4 6-2 6-2)으로 가볍게 이기고 2라운드에 진출했다. 러셀은 33세의 노장으로 2007년 세계랭킹 60위에 올랐던 것이 최고일만큼 나달과는 급이 다른 선수. 나달의 첫 번째 서브 성공률은 67%에 그쳤지만 최고 시속 187km(116mph)까지 나온 서브를 앞세워 첫 번째 서브에서 77%의 포인트를 따내며 경기를 압도했다. 스트로크의 정확도를 보여주는 위너의 수에서 35:14로 압도한 것도 나달이 자기 경기를 확실히 했음을 보여준다.

앤디 머레이의 스트로크 ⓒ AELTC / M. Hangst

앤디 머레이(영국)는 스페인의 다니엘 히메노 트라베르에게 1세트를 먼저 내주었으나 경기를 뒤집으며 3:1(4-6 6-3 6-0 6-0)으로 이겼다. 머레이의 첫 번째 서브 성공률은 70%, 최고 속도는 시속 209km(130mph)를 기록했으며 위너의 숫자도 45:24로 우세했다. 첫 번째 서브에서 90%에 달하는 득점을 올린 것과 88%의 성공률을 기록한 어프로치가 승리의 원동력이었다.

나머지 톱 10 랭커를 보면 토마스 베르디흐(체코), 가엘 몽피스(프랑스), 마디 피쉬(미국)이 모두 3:0으로 승리하며 2회전에 진출했다. 왕년의 세계랭킹 1위 토미 하스(독일)는 룩셈부르크의 질레서 뮐러에게 1:3으로 패하며 1회전에서 탈락했다. 30번 시드를 배정받았던 브라질의 토마스 벨루치를 제외한 시드 배정 선수는 모두 2회전에 진출했다.

빠른 발을 가진 프란세스카 스키아보네 ⓒ AELTC / M. Hangst

여자부에서는 6번 시드의 프란세스카 스키아보네(이탈리아)가 왕년에 마르티나 힝기스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던 옐레나 도키치(호주)를 2:1(6-4 1-6 6-3)로 이겼다. 스키아보네는 프랑스오픈에서 우승했던 그랜드 슬램 경력이 있어서일까 작년 준우승자이자 세계랭킹 2위인 베라 즈보나레바(러시아)를 No. 1 코트로 밀어내고 센터 코트에서 경기하는 행운을 누렸다. 즈보나레바도 미국의 앨리슨 리스키를 2:1(6-0 3-6 6-3)로 이기고 2라운드에 진출했다. 오래간만에 컴백한 비너스 윌리엄스와 러시아의 스베틀라나 쿠즈네초바, 그리고 일본의 노장 키미코 다테-크룸도 2라운드에 합류했다. 비너스와 다테-크룸은 2라운드에서 맞붙을 예정이다. 의외로 시드 배정자들이 탈락한 경우가 많은 것이 이 날의 특징.

대회 둘째 날 (21일)

벌처럼 날아오르는 로저 페더러 ⓒ AELTC / N. Tingle

남녀 모두 첫째 날보다는 볼거리가 더 많은 둘째 날이었다. 샘프라스의 7회 우승에 도전하는 '황제' 로저 페더러(스위스)는 카자흐스탄의 미하일 카카시킨을 3:0(7-6 6-4 6-2)으로 가볍게 이기며 2라운드에 진출했다. 페더러의 첫 번째 서브 성공률은 71%, 첫 서브 후 득점 성공률은 89%였고 서브의 최고 속도는 시속 205km(127mph)였다. 53-16으로 압도한 위너의 숫자에서 보이듯이 모처럼 정확한 스트로크가 빛을 발한 경기였다.

승자의 환호 노박 조코비치 ⓒ AELTC / N. Tingle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는 프랑스의 제레미 샤디를 3:0(6-4 6-1 6-1)로 가볍게 제압하며 강력한 포스를 보여주었다. 샤디는 최고 시속 217km(135mph)의 강력한 서브를 가지고 있음에도 첫 번째 서브가 59%밖에 되지 않았고, 첫 서브의 득점도 68%에 그쳤다. 광서버 앤디 로딕(미국)도 최고 시속 228km(142mph)의 광속 서브를 앞세워 독일의 안드레아스 벡을 3:0(6-4 7-6 6-3)으로 누르며 2라운드에 합류했다. 로딕은 첫 번째 서브의 평균 속도가 시속 200km(124mph)로 어지간한 선수들의 최고 속도에 맞먹는 무시무시함을 보여주었다.

톱10 선수로는 5번 시드의 로빈 소더링(스웨덴)과 7번 시드의 다비드 페레르(스페인)가 2라운드에 진출했고, 스페인의 페르난도 베르다스코와 2009년 US오픈 우승자 후안 마르틴 델 포트로(아르헨티나), 무하마드 알리의 재림 조-윌프레드 송가(프랑스), 왕년의 강자 호주의 레이튼 휴이트 등도 합류했다. 지난 대회에서 사상 초유의 11시간 5분(5세트만 8시간 11분)짜리 2박 3일 매치를 벌였던 존 아이스너(미국)와 니콜라스 마후트(프랑스)는 다시 1라운드에서 맞붙었는데 이번에는 아이스너가 3:0(7-6 6-2 7-6)으로 승리했다. 아이스너가 이기기는 했지만 두 세트에서 타이브레이크까지 가는 접전이 벌어졌다고.

이것이 샤라포바 스타일! 마리아 샤라포바 ⓒ AELTC / N. Tingle

여자 경기에서는 마리아 샤라포바(러시아)가 같은 나라의 안나 차크베다체를 2:0(6-2 6-1)으로 가볍게 제압하며 산뜻한 출발을 하였다. 프랑스오픈 이후 여러 이유로 경기에 불참하다가 윔블던에 참가한 샤라포바는 경기 내용이 좋지는 않았지만 상대의 부진 덕분에 쉬운 승리를 거두었다. 한 때 톱10에 들었던 차크베다체는 첫 번째 서브 성공률이 58%에 불과하고, 첫 서브에서 54%밖에 되지 않는 득점을 기록하는 등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무릎을 꿇었다. 샤라포바의 서브 최고 속도는 시속 173km(108mph)에 불과했다.

울고 있는 서리나 윌리엄스 ⓒ AELTC / N. Tingle

작년 우승자 서리나 윌리엄스(미국)는 프랑스의 아라바네 레자이를 2:1(6-3 3-6 6-1)로 다소 힘겹게 이기고 2라운드에 진출했다. 남자 못지 않은 강서버답게 시속 188km(117mph)의 강력한 서브를 보여주었으나 서브의 정확도는 61%로 좋지는 않았다. 경기가 끝나고 윔블던에서 다시 1승만이라도 더 하고 싶었다면서 오래간만에 코트에 돌아온 소감을 밝히며 울음을 터뜨렸다고.

워즈니아키의 서브 ⓒ AELTC / N. Tingle

전직 우승자들에게 센터 코트를 빼앗기고 No.1 코트에서 경기를 치른 세계랭킹 1위 캐롤라인 워즈니아키(덴마크)와 프랑스오픈 우승자 중국의 리나, 워낙 쟁쟁한 선수들에 가려진 세계랭킹 4위 빅토리아 아자렌카(벨라루스)는 2:0으로 가볍게 2라운드에 합류했다. 이 밖에 이름이 꽤 알려진 선수로는 아나 이바노비치(세르비아), 다니엘라 한투코바(슬로바키아), 마리아 키릴렌코(러시아) 등이 2라운드에 합류했다. 호주의 희망인 세계랭킹 10위 사만다 스토서와 전 세계랭킹 1위인 세르비아의 옐레나 얀코비치는 패하며 짐을 싸게 되었다. 일본의 새로운 희망이자 아시아 랭킹 3위인 모리타 아유미는 첫 세트를 이기고도 두 세트를 연거푸 내주며 역시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첫 날부터 비가 내리며 꼬이기 시작한 경기 일정은 둘째 날에 1라운드 경기를 모두 마치지 못함에 따라 일부 선수들은 셋째 날에 1라운드 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센터 코트에는 지붕을 씌워 우천에도 경기를 할 수 있게 하였다지만 나머지 코트에서는 비가 내리면 경기를 할 수 없어 참 혼란스럽다.

지금 이 순간 나달이 벌써 2:0으로 앞선 가운데 3세트를 끝내려 하고, 머레이가 두 세트를 따내려 하고 있다. 경기 결과를 쓰느라고 두 시간이나 걸리다니.. 흑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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