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샤라포바


비행기 앞 좌석 뒤에 작은 텔레비전이 붙어 있는데 테니스 경기 중계방송을 하고 있었다. 보면서 갈 수 있겠다 싶었는데 갑자기 광고 화면이 뜨더니 돈을 내고 시청해야 한단다. 1달러 정도면 기꺼이 감수할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비쌌다. 저가 항공사에 속하는 버진 블루는 화장실을 제외한 모든 서비스는 유료다. 당연히 기내식도 제공되지 않고 승무원들이 카트를 끌고 다니며 음료와 스낵류를 판매하는데 시중의 마트에서 판매하는 것보다는 조금 비싸다. 호주에서 유일하게 기내 서비스가 무료인 항공사는 콴타스 뿐이다.

출발은 늦었는데 얼마 늦지 않고 도착했다. 조금 천천히 갈 것이지 전속력으로 달리다니 조종사들의 퇴근 본능이 발동했나보다. 에잇, 당신들은 집에 가거나 호텔에서 묵겠지만 나는 공항에서 뒹굴어야 한다고! 그렇다고 기내에서 난동을 부릴 수도 없고(당연히 기내에서 난동을 부리면 형사 처벌을 받는다), 조용히 마리 선생님이 주신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원서를 읽으며 갔다. 생소한 내용이 아니면 적당히 이해는 하는데 읽는 속도가 느려 한 장 넘어가는데 30분씩 걸렸다.

이미 시간이 12시를 넘어섰기에 공항의 모든 상점은 문을 닫았고, 모두 재빨리 밖으로 나가서 시내로 향하는 교통편을 찾으러 다니기 바빴다. 단 한 번도 공항에 내렸을 때 누군가 마중하러 나온 적이 없었지만 이 때만큼은 갈 곳이 없다는 사실에 참 서글퍼졌다. 멜번 공항에서는 매 시간 시내로 들어가는 셔틀 버스가 있지만, 셔틀 버스 비용과 하루 묵을 숙박비라도 아껴야 하는 상황이어서 그냥 공항 주변을 맴돌았다. 멜번 공항에는 터미널이 4개가 있는데 각 터미널에 순서대로 숫자를 붙여 T1, T2, T3, T4라고 부른다. T1은 콴타스와 젯스타가 사용하는 국내선, T3는 버진 블루와 기타 지역 항공사의 호주 국내선, T4는 멜번을 허브로 삼는 타이거 항공의 국내선, 그리고 T2는 국제공항이다. (2008년 시점이므로 현재는 조금 달라졌을 수도 있음을 유의하시기를 바람)

마땅히 할 일이 없어서 국제공항 터미널로 건너갔다. 국제공항은 새벽까지도 비행기의 출도착이 있어서 계속 사람들이 오가는지라 비행기가 도착할 때쯤 되면 주변이 시끄러워졌다. 관광안내소에는 중년의 아주머니가 늦게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영어가 된다면 여기서 숙박과 교통을 예약해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공항에 도착해서 몇 시간 보내고 아침에 호스텔의 픽업 버스를 타고 들어가고, 돌아가는 비행기 역시 전날 밤에 공항에서 노숙 계획이라 6박 7일의 여정이지만 숙소는 단 4박만을 예약했다. 다행히도 텔레비전이 있어서 은근슬쩍 가서 테니스 중계를 보았다. 호주오픈은 메인 코트인 로드 레이버 아레나(Rod Laver Arena)의 경기 일정을 빡빡하게 잡는 편이어서 마지막에 경기가 있는 선수들은 밤을 새워 경기하는 일이 종종 있다. 3라운드에서 로저 페더러와 얀코 팁세라비치가 4시간 27분 동안 경기를 하면서 일정이 지연되어 휴잇과 바그다티스는 밤 11시 52분에 경기를 시작해서 새벽 4시 34분까지 경기를 벌이기도 했다. 경기를 자정이 다 되어 시작한 것도 불운인데, 풀세트 접전을 펼치기까지 했으니 얼마나 피곤했을까. 어쨌든 밤새 따로 할 일도 없고 공항에 사람들이 다 빠져나가고 조용해질 때까지 기다리면서 잠시 인터넷이나 할까 기웃거리고 있는데 1달러짜리 동전 하나를 주웠다. 의외로 호주에서는 땅을 보고 다니다보면 동전을 줍는 경우가 많다. 경비가 빠듯한 여정이니 작지만 여행 경비에 보태기로. 

멜번은 하루에 사계절을 모두 경험할 수 있다고 할 정도로 날씨가 변덕스럽다. 아침과 저녁은 선선하지만 낮에는 아주 덥다가 종종 비가 내리기도 하고, 밤이 되면 서늘해져서 춥다고 느껴질 정도다. 남반구의 호주는 계절이 한국과 정반대인지라 1월이면 한여름에 해당하여 낮에는 기온이 섭씨 35도 이상 올라가는데, 밤이 되면 15도 정도로 기온이 뚝 떨어져 일교차가 심해 감기 걸리기도 쉽다.


침낭을 뒤집어 쓰고 자고 있는 사람도 있고 공항에서 노숙하는 사람들이 없지는 않다. 혼자 외딴 곳에 있는 것보다는 생판 모르는 사람이라도 옆에서 자는 것이 나을 듯해서 옆에 자리를 잡았다. 모자를 벗고 얼굴을 가리고 누워서 웅크린 채잠을 청했다. 쉽게 잠이 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밤에 잠을 자두어야 일어나서 힘차게 움직일 수 있으니 어느 순간 잠이 들었는데 추위 때문에 잠에서 깼다. 열량 보충을 위해 먹다 남겨둔 과자를 꺼내서 다 먹었지만 잠을 자면서 체온이 내려갔는지 몸이 덜덜 떨렸다. 긴팔 옷이라면 트랙 수트 하나 가지고 온 것이 전부인데 반팔 티셔츠 위에 하나 걸친다고 추위가 해결될 리 없었다.


저 베개 대신 쓸만한 배낭과 침낭이 얼마나 부럽던지..


잠꾸러기인데 잠이 오지 않을 리는 없지만 밤이 되자 날이 쌀쌀해지면서 추위가 느껴져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짐을 줄이기 위해서 반소매 셔츠와 바지만 가지고 와서 위에 덧입을 옷도 없고, 누워 있다가 잠깐 잠이 들었다가도 곧 추워서 금방 깨서 옆에 있는 국제선 터미널에 다녀오면서 대한항공이 멜버른에도 취항한다는 소식도 접하고, 다시 원래 있던 장소로 돌아와 잠을 청하다 깨기를 반복하면서 날이 밝아지는 것을 보았다. 


북반구의 겨울은 남반구의 여름인지라 해가 일찍 뜬다. 추워서 사진이 흔들렸다.


비록 공항에서 노숙을 한 거지이기는 하지만 너무 거지 티를 내는 것은 좋지 않으니 화장실에 가서 얼굴을 씻고 머리를 매만진 뒤 공중 전화 앞에서 서성거렸다. 사람 얼굴을 보고 대화하는 것은 큰 어려움이 없지만, 여전히 영어가 익숙치 않아서 전화로만 이야기하는 것은 두려움이 남아 있었다. 어떻게 말을 해야할 지 생각하며 연습을 해보다가 백패커스의 수신자 부담 전화번호로 다이얼을 돌렸다. 좀 이른 시간인 것 같지만 도착했으니 데리러 오라고. 그랬더니 9시에 픽업 버스가 갈 것이니 기다리고 있으라면서 버스가 가는 위치를 알려주었다. 호주에서 지내면서 한동안 백패커스에 묵었던 것은 숙박비를 절약하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계속 영어를 사용하는 환경에 자신을 노출시키기 위함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전화로 대화하는 것도 큰 두려움 없이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기뻤다.


나도 공식 교통수단을 이용하고 싶은데..

 

참새도 추운지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침낭에서 번데기 놀이를 하는 이들은 잘도 자고 있다. 부럽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늘어나고 시끌시끌해졌고, 추위가 가시기 시작했다.


벤치에 앉아 있다가 공항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혹시 몰라서 미리 나가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정말로 9시가 되자 백팩커스에서 보낸 승합차가 도착했다. 예약한 백패커스에서 온 것이 맞냐고 물어보니 맞다고 하여 차에 올라타고 백패커스 유니폼을 입은 기사와 몇 마디 주고 받았다. 바로 출발할 줄 알았더니 세 명 더 기다렸다가 가야한다며 차 안에서 쉬고 있으란다. 이미 9시간을 기다렸는데 못 기다릴 이유 또한 없어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사이에 세 명의 배낭족이 다가왔고 드디어 공항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그런데 운전하는 친구가 시내에 들어서서는 바로 가지 않고 주변의 공원이니 구경할 곳을 돌면서 멜번에 대해서 열심히 안내를 시작했다. 여행자들에게 이런 서비스는 참 반갑고 고마운 일이지만, 얼른 체크인을 하고 테니스를 보러 가야 하기에 그의 설명이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아침 시간의 백패커스는 늘 분주하다. 규모가 클수록 그리고 찾는 사람이 많을수록 더욱 그렇다. 이 곳은 수백 명이 묵을 수 있는 곳이어서 들어오는 사람과 나가는 사람의 줄이 끊이지 않았다. 뭐든지 느린 이 곳의 문화는 한국의 '빨리빨리' 와는 거리가 멀어서 뒤에 줄을 몇 명이 서든지 신경쓰지 않고 천천히 여유있게 일을 진행한다. 체크아웃하는 사람들과 농담을 하면서도 시간이 꽤 걸리고, 새로 체크인하려는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를 설명해주느라 또 시간이 걸린다. 여기서도 30분 가까이 걸려서 겨우 체크인을 마치고 방으로 들어갔다.

예약한 방은 6인실이었는데 이층 침대가 세 개 놓인 방이었다. 어떤 침대를 쓰라고 정해주는 경우는 거의 없어서 먼저 편한 자리를 찜하는 것이 우선이다. 아무래도 윗층보다는 아래층을 쓰는 것이 편하기에 얼른 가방을 던져두고 영역 표시를 한 후 카메라와 지갑만 들고 밖으로 나섰다. 이미 시간은 세션 시작인 11시에 가까워지고 있어서 마음이 급했다. 호주 도착 이후 여태까지 단 한 번만, 그것도 친구가 돈을 내서 타봤던 택시를 타고 경기장으로 갔다. 조금 시간이 걸리기는 해도 충분히 걸어갈 수 있는 거리고, 대회 기간만 경기장 근처까지 운행하는 무료 트램이 있음에도 혹시나 경기를 늦어서 보지 못할까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호주의 도심에서 택시를 타는 것은 돈을 길에다 버리는 일과 다름없는 일이었다. 원래 도심에서는 속도를 내기 어렵거니와 특히 멜번은 트램이 지나다녀서 도로가 좁고 신호가 복잡하여 가다가 서는 것을 반복하여 느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기사 역시 승객이 바빠서 탄 것을 보아도 느릿느릿 규정을 준수하며 운전을 한다. 내가 급하지만 않다면 이는 참 좋은 것이지만, 속이 좀 탄다. 성질 급한 한국인의 폐해다.

걸어서 약 30분 정도의 거리를 택시를 타고 15분만에 도착했는데 요금이 12달러. 배가 아플 틈도 없이 바로 경기장으로 뛰어갔다. 미리 경기장 표를 구입해놓은 덕분에 금방 들어가서 내 자리를 찾아 헤맸다.

 

거금 134.9 달러를 주고 산 여자 단식 준결승전 입장권

경기가 열리는 로드 레이버 아레나(Rod Laver Arena)는 호주의 전설적인 테니스 선수 로드 레이버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경기장인데, 해마다 호주오픈이 열리는 멜번 파크의 메인 경기장이다. 로드 레이버는 메이저 대회들이 아마추어 선수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한 오픈 시대에 처음으로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선수이며 1969년 한 해에 그랜드 슬램을 모두 제패한 달성한 유일무이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 경기장은 개폐식 지붕이 있어서 날씨에 따라 지붕을 열고 닫는데 날이 흐린 탓에 지붕을 다 열지 않고 반 정도만 열어 놓고 있었다. 로드 레이버 아레나 다음의 위치인 하이센스 아레나(Hisense Arena)는 중국의 전자업체 하이센스가 네이밍 스폰서로 참여한 경기장으로 대회 초반에 로드 레이버 아레나에서 소화가 불가능한 상위권 선수들의 경기가 열리는데, 이 두 곳은 따로 입장권을 사야 들어갈 수 있고, 세 번째 경기장이라 할 수 있는 마거릿 코트 아레나(Margaret Court Arena)부터 쇼 코트(Show Court)부터 20개에 가까운 작은 코트에서 열리는 경기는 그라운드 패스라 불리는 멜번 파크의 입장권과 같은 티켓을 사서 들어갈 수 있다. 로드 레이버 아레나 또는 하이센스 아레나의 입장권을 구입하면 이 티켓에 그라운드 패스가 포함되어 있는 셈이라 자신이 구입한 경기장과 그라운드 패스만으로 관전이 가능한 다른 경기장에 자유로이 출입이 가능하다. 물론 작은 코트 중에는 관중들이 관람할 만한 공간이 충분하지는 않다.

11시부터 바로 여자부 준결승 경기가 시작하는 줄 알았는데, 남자 복식 결승 경기에 이어서 여자 준결승 두 경기가 하나의 세션으로 되어 있었다. 만약 복식 경기가 먼저 열리는 것을 알았더라면 천천히 걸어왔을텐데 괜히 비싼 택시를 탄 것 같아 속이 쓰렸다.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남자 복식 준결승 1경기가 열린 후 여자 단식 준결승 두 경기가 이어지는데, 앞의 경기가 일찍 끝나더라도 오후 2시 이전에 경기를 시작하지는 않는다고.. 야잇 18.

대회 시작 전에 미리 구입한 티켓임에도 자리가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티켓 판매를 하는 티켓텍 지점에서 좌석 배치표를 보면서 심각하게 고민한 후 고른 자리인데, 이는 호주오픈 티켓 중 많은 좋은 좌석은 기업용 혹은 여행사 상품용으로 팔리기 때문에 어지간해서 일반인이 좋은 자리를 구하기는 사실 쉽지 않다고 한다. 그래도 좋아하는 선수의 경기를 볼 수 있으니 그걸로 만족하면 되겠지만 사실은 샤라포바가 아닌 페더러 경기를 보고 싶었다고!!


경기장에 스타 플레이어들의 사진이 붙어 있다. 

당시에 가장 잘 나가던 로저 페더러.


페더러의 천적이었던 라파엘 나달

그러나 이 대회까지만 해도 클레이코트에서만 위용을 뽐내던 선수였다.


기운 센 천하장사 서리나(Serena) 누님


전년도 우승자의 서리나 누나의 모습


남자부는 황제 페더러가 대회 3연패에 도전하는 상황


오른쪽에서 두 번째에 있는 레이튼 휴잇은 다른 세 명 보다는 조금 떨어지는 레벨이지만 호주 선수라고 끼워준 것 같다.


곧 경기에서 보게 될 마리아 샤라포바.

작년에 약물복용으로 2년간 출전 정지를 당해서 당분간 보기 힘들 것 같은데, 나이가 있어서 글쎄 어찌 될 지는..


로드 레이버 아레나로 들어갔다.


흐린 날씨라 그런지 비가 올까봐 지붕을 다 열어두지는 않은 것 같다.

전광판을 보니 샤라포바가 나오는 여자 단식 준결승 경기가 아닌 남자 복식 준결승 경기가 열리고 있었다. 톱시드였던 남자 복식계의 전설 브라이언 브라더스가 8강에서 격침당하고, 모르는 선수들이 경기를 하고 있어서인지 몰입이 잘 안 되었다. 프랑스의 미카엘 요다와 아르노 클레망이 승리해서 결승에 진출했다.  


복식 경기는 거의 안 봐서 잘 모르기도 하고 9년 넘게 지나서 누가 누구인지 기억도 잘 안 난다.


볼보이 또는 볼걸들이 있다.

기아자동차가 호주오픈의 메인스폰서 업체여서 한국 아이들도 선발하여 호주오픈의 볼키즈로 활약을 한단다. 주요 경기에서는 보지 못한 것 같은데, 워낙 많은 경기가 열리니 여러 곳에서 활약을 했겠지 싶다. 나는 기아자동차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지만..


이긴 팀이나 진 팀이나 꺼꾸리와 장다리 조합이었는데 모르는 선수들이라 그런 것도 있고, 이미 경기가 어느 정도 진행 중이어서인지 별로 재미를 붙이지는 못했는데 다행히 금방 끝났다. 선수들이 이런 말을 들으면 기분 나쁘겠지만..


이 날은 남자복식 준결승 한 경기와 여자단식 준결승 두 경기, 그리고 남자단식 준결승 한 경기가 이 곳 로드 레이버 아레나에서 열린다. 내가 산 데이 세션으로는 여자단식 준결승 경기까지만 볼 수 있고, 멜번 파크 안의 다른 코트에서 열리는 경기를 볼 수 있는데 대회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어서 열리는 경기가 많지 않아서 별 의미는 없었다. 악쟁이 샤라포바와 이번에 경기를 보면서 빠져든 이바노비치의 경기를 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지.


누군지 잘 모르지만 얘네들이 이겼다.


곧 열리는 경기는 샤라포바와 옐레나 얀코비치의 여자 단식 준결승 제 1경기

경기가 일찍 끝나는 바람에 여자 준결승전이 시작하는 2시까지는 시간이 꽤 많이 남아서 비싸지만 경기장 내의 매점에서 핫도그를 사서 먹고 멜번 파크 한 바퀴 돌면서 구경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돌아다니다 보니 샤라포바의 모습이 담긴 광고판도 있다.


이 때 확실히 나이키에서 샤라포바에게 엄청난 푸쉬를 했는데 지금은 뭐.. 약물복용자.


아무래도 평일 낮이기도 하고 나이트 세션에 라파엘 나달의 준결승 경기가 있으니 사람들이 그 경기를 많이 보러 가겠지 싶다. 대낮에 이렇게 시간을 낼 수 있는 사람은 나 같은 땡땡이 친 학생, 돈 많은 백수, 열렬한 테니스 애호가 정도겠지.


샤라포바와 맞붙게 된 세르비아의 옐레나 얀코비치. 5번 시드를 받은 샤라포바보다 더 높은 3번 시드를 받았는데, 이 해에 다른 선수들의 부상과 부진 속에 세계랭킹 1위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그러나 메이저 대회 우승 타이틀 하나 없다고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2010년 즈음까지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은 못하더라도 4강 정도에 오르는 꾸준한 포인트 관리로 세계랭킹은 높았으나 이후에 부상이 오면서 추락한 케이스. 그래도 최근까지도 계속 선수 생활은 하고 있다는 것 같다. 요즘에는 내가 테니스를 챙겨볼 정도의 여유가 없어서..


경기 전에 입고 오는 트레이너도 다른 선수들처럼 흔한 운동복 모양이 아니다.


팔다리가 길기는 길다. 키가 188cm라고 하니 이건 뭐..

아씨.. 나는 루저..


막상 실제로 보니 특별한 느낌이 들지는 않는데 샤라포바를 아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흥미롭게 보는 선수라서 그런가보다.


관중석 아래쪽에 빈 자리가 있어서 사진을 찍기 위해 아래로 내려갔다. 심판 언니보다 머리 하나 더 높구나..



윔블던 여자 단식 결승에서 경기장의 소음 차단녀 페트라 크비토바(21·체코, 세계 8위)가 7년만의 화려한 컴백을 눈앞에 두었던 요정 마리아 샤라포바(24·러시아, 세계 6위)를 물리치고 생애 첫 우승을 차지했다. 준결승에서 괴성녀 빅토리아 아자렌카를 물리치고 결승에 올라온 크비토바는 다시 악쓰는 여자 샤라포바를 누르며 시끄러운 선수들의 킬러로 자리매김했다. 대회 전에는 아무도 그녀를 우승 후보로 생각하지 않았지만, 소리 없이 강했던 그녀는 강호들을 하나씩 무찌르며 지난 10년간 윌리엄스 자매 외 단 두 명에게만 허락되었던 윔블던 여왕의 자리에 올랐다. 

윔블던 여왕 페트라 크비토바 ⓒ AELTC / M. Hangst

 

윔블던 파이널리스트 ⓒ AELTC / J. Buckle

 

대회 12일째 (7월 2일)

여자 결승 페트라 크비토바 vs 마리아 샤라포바 (14:00 센터 코트)

결승전에 입장하는 크비토바와 샤라포바 ⓒ AELTC / M. Hangst

샤라포바의 우세를 점친 사람이 적지 않았는데, 샤라포바는 4강까지 여섯 경기를 치르는 동안 단 한 세트도 내주지 않는 깔끔한 경기를 했고, 베이스라인에서 날리는 강력한 스트로크가 전성기에 못지않게 살아났다는 평이었다. 그러나 경기에 앞서 체코 출신의 '철녀'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는 샤라포바가 왼손잡이인 크비토바의 서브의 궤적이 낯설어 받는 것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예측을 했다.

공을 쫓는 샤라포바 ⓒ AELTC / M. Hangst

크비토바는 시작부터 첫 서브가 잘 들어가지 않았는데 두 번의 포어핸드 미스로 샤라포바에게 0-30으로 끌려갔다. 샤라포바의 실책과 좋지 않은 서브 리턴을 빈 곳을 찾아 공격하여 동점을 만들었지만, 연달아 네트에 공을 꽂으며 첫 게임을 내주었다. 그러나 샤라포바의 서브 게임을 바로 브레이크하면서 승부를 다시 원점으로 돌렸다. 샤라포바는 15-40에서 더블 폴트를 저질러 게임을 내준 것이 뼈아팠다. 이어진 크비토바의 서브 게임에서는 두 번의 듀스 끝에 샤라포바의 리턴 실패와 크비토바의 백핸드 위너가 이어지며 크비토바가 승리하며 경기를 역전시켰다. 샤라포바 역시 더블 폴트를 또 저질렀지만 긴 랠리에서 승리하며 서브 게임을 지켜 2-2를 만들었다. 그러나 크비토바가 이어진 서브 게임을 지킨 반면 샤라포바는 30-30에서 더블 폴트를 두 번 연달아 저지르며 게임을 내주어 4-2가 되면서 균형이 깨졌다. 크비토바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시 서브 게임을 지키며 5-2로 달아났고, 이후 한 게임씩 주고받으며 6-3으로 1세트는 크비토바의 승리로 끝났다.

크비토바는 왼손잡이입니다 ⓒ AELTC / T. Hindley

2세트에서 크비토바는 집중력을 잃지 않고 차분하게 샤라포바를 압박했다. 샤라포바는 0-30으로 앞섰지만, 리턴 미스와 크비토바의 크로스 포어핸드에 동점을 허용했다. 이어서 샤라포바의 다섯 번째 더블 폴트가 나오며 졸지에 브레이크 포인트에 밀렸고 크비토바는 베이스라인 위에 떨어지는 포어핸드로 첫 게임을 가져갔다. 라인 심판은 처음에 아웃을 선언했지만 바로 정정했고, 샤라포바는 챌린지를 했지만 인으로 판명되면서 기회만 날렸다. 다음 게임에서 크비토바는 40-30에서 더블 폴트로 듀스를 허용했지만 강력한 서브 두 개로 승리를 챙겼다. 다시 두 게임 차이로 밀리면서 샤라포바는 위기를 맞이했지만 깔끔하게 서브 게임을 지킨 후 크비토바의 서브 게임을 브레이크하면서 2-2를 만들었다. 크비토바는 세 번째 더블 폴트를 하면서 샤라포바에 기회를 주었고, 샤라포바는 베이스라인 스트로크가 살아나면서 30-40의 브레이크 포인트에 도달했다. 크비토바는 듀스로 갈 기회가 있었지만 다소 약했던 스매시가 샤라포바의 본능적인 방어에 걸리며 크비토바의 키를 넘겨 베이스라인 안쪽에 떨어지면서 게임을 내주었다. 크비토바에게는 불운이었지만, 샤라포바와 샤라포바를 응원하는 사람들에게는 행운이었다.

윔블던 여왕에 오르는 결승점이 된 강력한 크비토바의 서브 ⓒ AELTC / M. Hangst

샤라포바는 반격의 기회를 맞은 듯했지만 서브 게임을 내주며 좋은 기세를 이어가지 못했다. 샤라포바는 30-40의 게임 포인트에 도달했지만 크비토바의 강력한 스트로크가 폭발하며 네 번의 듀스 끝에 크비토바에게 승리가 돌아갔다. 그러나 롤러코스터 경기는 샤라포바만의 것이 아니었다. 크비토바는 듀스에서 시터를 네트에 꽂고 샤라포바의 강한 리턴을 맞으며 다시 서브 게임을 내주는 브레이크 랠리가 이어졌다. 다시 3-3 동점. 계속 브레이크 랠리가 이어지면 먼저 서브를 넣는 샤라포바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정확히 세트의 절반을 지나는 순간, 크비토바가 승리를 향한 부스터를 발동시켰다. 크비토바는 샤라포바의 서브를 강하게 리턴하면서 투 브레이크 포인트를 만들었고, 한 점을 따라잡혔지만 샤라포바의 포어핸드가 길게 벗어나며 다시 리드를 잡았다. 이어진 서브 게임에서 15-30으로 밀렸지만 샤라포바가 받아내기 힘든 강한 서브를 연달아 코트에 꽂으며 승리하며 5-3으로 생애 첫 윔블던 우승까지 단 한 게임만을 남겨놓게 되었다. 샤라포바는 뒤늦게 서브 게임을 지키며 5-4로 따라붙었지만, 크비토바는 침착하게 강한 서브를 넣으며 샤라포바를 압박했고, 40-0의 쓰리 챔피언쉽 포인트에 도달했다. 자신의 첫 우승을 자축하려는 듯이 크비토바는 깔끔한 서브 에이스로 경기를 마감하면서 윔블던 여왕의 자리에 올랐다.

경기 요약 (출처 : 윔블던 공식 사이트)

샤라포바는 76%의 첫 서브 적중률을 기록했지만 더블 폴트를 의식한 나머지 위력이 떨어졌고 코스 역시 좋지 못해 크비토바의 강력한 리턴에 고전했다. 서브 후 득점으로 연결시키는 빈도가 크게 떨어진 것이 샤라포바가 다섯 번이나 브레이크를 당한 이유였다. 크비토바는 샤라포바에 미사일 스트로크에 지지 않고 스트로크 싸움을 펼쳐 승리를 거두었는데, 서브가 약해진 샤라포바의 유일한 장점을 무력화시켰다는 점이 승리의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윔블던 파이널리스트 ⓒ AELTC / T. Hindley

크비토바는 이번 승리로 윔블던 여왕에 오르면서  세계 톱랭커들도 평생 한 번 차지하기 힘든 그랜드 슬램을 차지한 것은 선수 생활을 하면서 자신감을 가질 수 있고, 큰 대회에 참가할 때도 부담감을 떨쳐버릴 수 있어 앞으로의 선전이 더 기대된다. 그녀는 세계랭킹 8위에 작년 준결승 진출자임에도 우승 후보로는 꼽히지 않았다. 처음 결승에 오른 그랜드 슬램에서 전혀 긴장하지 않고 경기를 승리로 이끌 만큼의 강심장은 앞으로 대회마다 그녀를 우승 후보로 꼽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왼손잡이라는 희소성에 어느 선수에도 뒤지지 않는 파워풀한 서브와 스트로크는 수비형 선수들이 많아진 최근의 여자 테니스계에서 주목을 받을 것이다.

승자의 스포트라이트 ⓒ AELTC / T. Hindley

준우승에 머무른 샤라포바 역시 크비토바에 대해 대단한 경기를 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날 경기에 대해 크비토바가 코트 전체에서 강력한 위닝샷을 쳤고 자신보다 더 공격적으로 깊고 강한 공을 쳤다고 하였다. 크비토바의 장점으로 강력한 게임 운영과 힘을 꼽으며, 터프 포지션에서 공격적으로 전환하는 능력에 대해 찬사를 보냈다. 샤라포바는 아쉬움 속에서도 긴 부상 끝에 윔블던 결승까지 오른 것은 앞으로 남은 투어에서 자신감을 가지고 경기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면서 부상을 떨쳐내고 정상적인 플레이를 할 수 있는 것에 만족을 표시했다. 샤라포바의 약혼자인 샤샤 부야치치는 대회 내내 관중석에서 샤라포바를 열렬히 응원하였는데 패배로 참 아쉽게 되었다.

준우승자이지만 여전한 인기를 과시하는 샤라포바 ⓒ AELTC / M. Hangst

그동안 밤잠을 설치게 만들었던 윔블던은 오늘 남자 단식 결승을 끝으로 2주간의 대회를 마치게 된다. 조코비치와 나달이라는 신 라이벌 대결에서 누가 웃을지도 관심이지만 대회가 끝난다니 아쉬운 마음도 든다.

보너스 샷 샤라포바 언니 ⓒ AELTC / J. Buckle

마리아 샤라포바(24·러시아, 세계랭킹 6위)가 돌아왔다. 7년 전 그녀를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었던 그 윔블던 결승의 현장으로. 샤라포바는 자비너 리지키(21·독일, 세계랭킹 62위)를 맞아 2:0(6-4 6-3)으로 승리를 거두고 통산 두 번째 윔블던 우승, 네 번째 그랜드 슬램을 위해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7년만에 윔블던 결승에 진출한 샤라포바 ⓒ AELTC / N. Tingle

 

대회 10일째 (30일)

여자 4강 제 2경기 마리아 샤라포바 vs 자비너 리지키 (센터 코트)


Come On!! ⓒ AELTC / N. Tingle


샤라포바의 출발은 좋지 않은 정도가 아니고 4강에서 탈락했던 프랑스오픈을 연상시키는 최악의 모습이었다. 리지키의 서브로 시작한 첫 게임에서 지고, 자신의 서브 게임을 맞이했다. 그런데 샤라포바의 서브는 말을 듣지 않았다. 더블 폴트로 첫 점수를 내주고 실책과 리지키의 포어핸드 득점으로 순식간에 쓰리 브레이크 포인트에 몰리더니 다시 더블 폴트로 게임을 내주었다. 리지키가 다시 서브 게임을 지키면서 0-3으로 밀린 상황에서 샤라포바는 이 경기의 중대한 전환점이 되는 게임에 돌입하였다. 다시 더블 폴트로 먼저 점수를 내주며 불안했던 샤라포바는 동점을 만들며 트레이드 마크인 "Come On" 을 터뜨렸다. 연속으로 두 포인트를 얻으며 게임 포인트에 도달했지만 다시 집중력을 잃으며 듀스를 허용했고 더블 폴트로 리지키의 어드밴티지까지 몰렸다. 리지키의 드롭샷은 벗어나 다시 듀스가 되었고, 위기를 넘긴 샤라포바는 두 포인트를 연속으로 얻으며 간신히 서브 게임을 지켰다. 1-3에서 리지키의 서브, 그러나 샤라포바는 조금씩 자신의 주무기인 포어핸드의 감을 잡아가고 있었다. 미사일같은 강력한 포어핸드 스트로크가 나오며 브레이크 포인트에 도달했고 리지키가 네트에 공을 치며 첫 브레이크에 성공했다. 샤라포바는 여전히 더블 폴트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베이스라인에서 상대의 좌우로 흔들어대는 강력한 스트로크가 뿜어져 나오며 3-3 동점을 만들었다. 둘 다 서브 게임을 지키며 팽팽히 맞선 4-4, 리지키는 첫 서브에서 실패하면서 약한 세컨드 서브로 샤라포바에게 반격의 기회를 스스로 제공해주며 무너졌다. 샤라포바의 두 번째 브레이크로 5-4 역전, 기세를 몰아 샤라포바는 더블 폴트가 있었지만 강력한 포어핸드로 40-15로 투 세트 포인트에 도달했다. 리지키는 드롭샷으로 포인트를 올리며 저항했지만, 샤라포바는 서브 에이스로 세트를 끝냈다.

 

샤라포바의 백핸드 미사일 스트로크 ⓒ AELTC / T. Hindley

다시 리지키의 서브로 시작한 2세트. 그러나 서브가 잘 들어가지 않는 것이 전염되었는지 리지키의 첫 서브 성공률은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리지키는 주무기인 시속 200km에 달하는 강력한 서브가 말을 듣지 않자 스스로도 어이없어 하면서 경기를 풀어가는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샤라포바는 리지키의 세컨드 서브를 적극적으로 공략해 폭격을 가해 게임을 브레이크했다. 샤라포바는 계속 더블 폴트를 저지르면서도 미사일 쇼로 리지키를 꼼짝 못하게 하면서 2-0, 다시 리지키의 서브 게임을 브레이크하며 3-0으로 앞섰다. 리지키는 여전히 말을 듣지 않는 샤라포바의 서브를 포어핸드로 리턴하여 3-1로 따라갔지만, 서브가 들어가지 않아 듀스 끝에 게임을 내주어 4-1이 되었다. 리지키는 윔블던 4강이라는 무대에 오른 것만으로도 기쁜지 뜻대로 되지 않는 경기에 어이가 없는지 리나를 상대할 때처럼 끈질긴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샤라포바의 서브는 여전히 말을 듣지 않아 듀스와 어드밴티지를 반복하며 고전하였지만, 노련한 샤라포바는 힘들게 지키며 5-1을 만들어 승기를 굳혔다. 샤라포바는 5-2에서 서브 게임을 더블 폴트로 놓치며 5-3으로 추격을 허용하였지만, 리지키의 서브를 다시 브레이크하면서 경기를 마무리했다.

 

리지키는 경기에 밀리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는데 승부욕이 부족한 것일까. ⓒ AELTC / N. Tingle

 

경기 요약 (출처 : 윔블던 공식 홈페이지)

경기 결과를 요약하면 두 선수 모두 전반적으로 경기 내용이 좋지는 않았다. 샤라포바는 첫 서브의 성공률이 절반도 미치지 못했고, 리지키 역시 53%로 아주 좋지 않았다. 샤라포바는 더블 폴트를 13번이나 저질렀지만, 리지키 역시 첫 서브를 제대로 넣지 못해 두 번째 서브에서 리턴하기 쉬운 공이 들어온 덕분에 특유의 베이스라인 플레이가 가능했다. 리지키는 첫 서브와 두 번째 서브의 위력 차이가 심했는데, 약한 두 번째 서브가 샤라포바에게 반격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말았다. 샤라포바는 서브가 좋지 않은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고 자신의 장점을 살리는 경기를 하면서 좋지 않은 컨디션에서도 경기를 이끌어 갈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준 점이 고무적이다. 55%에 달하는 리시빙 포인트의 득점 연결과 더 많은 실책, 적은 위너 속에서도 집중력있게 필요한 순간에 점수를 올린 것이 승리의 원동력이 되었다. 리지키는 비슷한 상황에서 샤라포바의 강력한 스트로크에 밀려 드롭샷과 같은 변칙적인 플레이를 할 수밖에 없었던 점도 있지만, 더 많은 포인트를 올리면서도 게임은 따내지 못하는 효율적이지 못한 경기를 하며 패배하였다.

샤라포바는 과연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까.

 

 

2004년 혜성처럼 등장했던 17세 소녀가 윔블던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그녀는 곧 본업인 테니스 이외에도 패션과 섹시 아이콘으로 유명해지며,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입을 올리는 여자 운동 선수가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어깨 부상으로 수술과 재활의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했고, 다시 힘들게 2006년 이후 5년만에 윔블던 준결승에 올랐다. 그녀의 이름은 다름아닌 마리아 샤라포바(24, 러시아, 세계랭킹 6위)다.

2011 Ladies' Single Final Four ⓒ AELTC

대회 8일째 (28일)

4라운드까지는 남녀 단식이 함께 열렸지만, 이제부터는 하루씩 번갈아 가면서 경기를 치를 예정이다. 물론 비라는 변수가 있어서 지붕이 있는 센터 코트가 아닌 다른 코트에서 경기하는 선수들의 경기가 연기될 가능성이 있지만 한국 시간으로 오늘 밤에 펼쳐지는 남자 8강 단식 두 경기를 제외하면 준결승과 결승은 센터 코트에서 열리기에 예정대로 열리게 될 것 같다.

환호하는 리지키 ⓒ AELTC / N. Tingle

센터 코트에서는 자비너 리지키(21, 독일, 세계랭킹 62위)와 마리온 바르톨리(26, 프랑스, 세계랭킹 9위)의 경기가 열렸다. 리지키는 중국의 리나를, 바르톨리는 디펜딩 챔피언 서리나 윌리엄스를 탈락시키며 우승 후보를 집으로 보낸 선수들. 쉬운 승부가 되지 않을 것이라 보였는데 3세트까지 갔지만 리지키가 경기 대부분을 이끌어갔다. 리지키는 1세트를 6-4로 승리했고 2세트 역시 5-4로 앞선 채 자신의 서브게임을 맞았다. 40-0의 쓰리 매치 포인트, 그러나 백핸드와 멋진 로브가 네트에 걸렸고 포어핸드마저 실책을 저지르며 듀스에 돌입했고, 더블 폴트를 저지르며 5-5 동점을 허용하고 말았다. 한 게임씩 더 따내며 결국 타이브레이크에 돌입하였고, 리지키는 집중력 부족으로 4-7로 패했다. 그러나 이미 바르톨리는 코트 전체의 빈 곳을 찾아 샷을 무차별적으로 날려댄 리지키에 의해 지쳐 있었고, 여전히 팔팔한 리지키는 바르톨리의 게임을 연속으로 브레이크하며 6-1로 쉽게 마지막 세트를 따냈다. 리지키의 2:1(6-4 6-7 6-1) 승. 이 승리로 리지키는 1999년 슈테피 그라프 이후 첫 독일 출신의 윔블던 여자 4강 진출 선수가 되었다.

리지키는 178cm, 70kg의 탄탄한 체격에 여자 선수 중에는 가장 강력한 서브를 구사하는 선수 중의 하나이고, 2009년 8월 세계랭킹 22위까지 올랐던 실력파 선수다. 작년과 올해 초는 조금 부진했지만 프랑스오픈부터 조금씩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프랑스오픈 2라운드에서 3번 시드의 베라 즈보나레바(러시아)를 상대로 3세트를 5-2로 앞선 채 매치 포인트를 맞이했으나 믿을 수 없는 5-7 역전패를 당하며 무너졌다. 경기 후 울면서 쓰러져 부상을 호소해 들것에 실려 나가기도 하는 사건이 있기도 했다(연기였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이처럼 그녀의 가장 큰 단점은 경기 중에도 오르락 내리락하는 기복이 심하다는 점인데 윔블던 8강 바르톨리와의 경기에서도 2세트에 이런 모습이 잠시 보였다. 그러나 윔블던의 전초전 격인 애곤 인터내셔널에서 우승을 하면서 컨디션을 끌어올린 리지키는 와일드카드로 출전한 윔블던에서 첫 그랜드 슬램 4강 진출의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5년만의 윔블던 준결승 진출을 이룬 샤라포바 ⓒ AELTC / N. Tingle

센터 코트의 두 번째 경기는 마리아 샤라포바와 도미니카 치불코바(22, 슬로바키아, 세계랭킹 24위)의 경기. 3개월 전 마드리드에서 치불코바에게 패한 적이 있던 샤라포바였지만 이 날 그녀의 컨디션은 절정에 올라 있었다. 강력한 베이스라이너의 면모를 뽐내며 포어핸드와 백핸드를 가리지 않고 좌우로 치불코바를 흔들며 경기를 유리하게 끌고 갔다. 대부분의 점수가 사이드라인과 베이스라인을 찌르는 스트로크에서 나왔을 만큼 샤라포바의 스트로크는 완벽에 가까웠다. 불과 한 시간 만에 2:0(6-1 6-1)의 완승이었다. 위너 23-3, 실책 10-11에서 보이듯이 완벽한 샤라포바를 위한 샤라포바에 의한 샤라포바의 경기였다.

샤라포바와 치불코바의 키 차이는.. 역시 크긴 크다 ⓒ AELTC / N. Tingle

경기 중에 현지 캐스터들도 샤라포바의 강력함에 할 말을 잃고 별다른 말을 하지 못할 정도였는데, 흥미로운 것은 지난 2004년 윔블던에서의 모습과 현재 샤라포바의 서브에 대한 비교가 있었다. 샤라포바는 전성기 때 시속 180km 후반의 강력한 서브를 넣는 선수였는데 최근에는 어깨 부상과 오랜 재활로 인한 두려움 때문인지 테이크 백부터 서브의 스윙 동작이 작아졌다. 그 때문인지 최고 속도와 평균 속도 모두 약 시속 10km 정도 줄어들면서 위력이 감소했고 서브 에이스의 숫자도 줄어들었다. 비가 와서 지붕을 덮고 경기가 열렸는데 덕분에 샤라포바의 "아오~!' "악!" "워우!" 함성이 경기장 안에서 진동하여 관중들의 귀가 따가웠을 것 같다. 치불코바의 부진도 샤라포바의 괴성에 압도된 것이 아닌지.

생애 첫 그랜드 슬램 준결승 진출을 이룬 아자렌카 ⓒ AELTC / J. Buckle

빅토리아 아자렌카(21, 벨라루스, 세계랭킹 4위)가 오스트리아의 타미라 파스첵(20, 세계랭킹 80위)을 2:0(6-3 6-1)으로 간단히 제압하고 역시 생애 첫 그랜드 슬램 4강에 진출하는 영광을 누렸다. 대부분의 그랜드 슬램에서 단식과 복식 모두 출전하는 욕심쟁이였는데, 이번에는 단식에만 출전하는 것이 체력적으로 더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자렌카는 1세트 1-1에서 연속으로 두 게임을 브레이크를 포함해 실점 없이 연속으로 따내며 3-1로 앞서 나갔고, 역전을 허용하지 않고 깔끔하게 세트를 마감했다. 아자렌카의 코너를 공략하는 강력한 스트로크와 스윙 발리 앞에 파스첵은 속수무책이었다. 2세트는 더 간단히 1-0에서 파스첵의 서브 게임을 브레이크하고 자신의 서브 게임을 지키며 3-0으로 앞서며 파스첵의 추격을 따돌렸다.

이 경기는 원래 No. 1 코트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1세트 첫 게임만에 비로 인해 경기가 중단된 후 재개와 중단을 반복하다가 센터 코트로 옮겨 경기가 열렸다. 윔블던 역사에서 경기를 다른 코트로 옮겨 치르는 것은 처음인데, 아자렌카와 파스첵은 그 역사적 순간의 '감동적인(moving) 경기'에 이름을 올린 주인공들이 되었다. No.1 코트에서 조용히 비가 그치고 경기가 시작하기만을 기다리던 팬들도 센터 코트의 입장권으로 교환할 기회를 얻게 되어 기다린 대가를 충분히 보상받은 셈이다. 전통보다는 실리를 택한 윔블던 위원회의 결정이 선수들과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을 위한 현명한 선택이었다. 덕분에 센터 코트에서는 샤라포바에 이어 아자렌카의 함성이 울려 퍼지며 소음 공해에 몸살을 앓았을 듯하다. 아자렌카 역시 최근 꾸준히 세계 톱 랭킹에 있으면서도 그랜드 슬램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는데 이번이 좋은 기회가 되었다.

2년 연속 준결승 진출의 크비토바 ⓒ AELTC / M. Hangst

비가 그치고 코트가 정리되면서 No. 1 코트에서 예정되었던 여자 단식 8강 두 경기 중 하나인 페트라 크비토바(21, 체코, 세계랭킹 8위)와 츠베타나 피론코바(23, 불가리아, 세계랭킹 33위)의 경기는 그대로 같은 경기장에서 열렸다. 작년 4강 진출자들의 대결이 된 이 경기에서는 여성 해설자가 여자 델 포트로라고 할 정도로 183cm, 70kg의 큰 체격을 가진 크비토바가(사실 샤라포바가 키는 188cm로 더 크지만 공식 프로필 상 체중은 고작 59kg라고 알려져 있다) 강력한 스트로크를 앞세워 피론코바를 밀어붙였다. 즈보나레바와 비너스 윌리엄스를 무찌른 피론코바는 그동안의 경기와는 달리 크비토바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자신의 서브 게임을 연속으로 브레이크 당하는 등 1세트를 힘없이 내주고 말았다. 2세트 초반에는 피론코바가 크비토바의 서브 게임을 브레이크하며 앞서 나갔지만, 크비토바가 피론코바의 서브 게임을 브레이크하며 따라잡고 접전을 벌이다 타이브레이크로 이어졌다. 타이브레이크에서 크비토바는 연속 실책 세 개를 범하며 2세트를 내주었지만, 3세트에서 지친 피론코바를 몰아붙이며 쉬운 승리를 거두었다. 크비토바의 2:1(6-3 6-7 6-2) 승리.

크비토바 역시 이번 승리로 첫 그랜드 슬램 우승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되었다. 4강에 오른 선수 중에서 단 한 번이라도 윔블던을 포함한 그랜드 슬램에서 결승 진출이라도 한 선수는 샤라포바가 유일하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단판 승부로 벌어지는 테니스에서 준결승과 결승이 주는 부담감이 큰 것을 생각하면 유경험자 샤라포바가 심리적인 면에서는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는 듯하다.

한국 시간으로 오늘 밤 9시부터 남자 단식 8강이 시작하는데 라파엘 나달의 부상은 예상대로 경기를 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레벨이 높은 선수들과 상대하게 되기에 부상으로 인한 경기력 손실이 얼마나 경기에 영향을 미칠 것인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달콤한 하루 휴식을 갖고 두 번째 월요일을 맞은 선수들. 악명높은 비는 내리지 않아서 경기가 지연되거나 취소되지 않았지만 뜨거운 햇살이 선수들에게는 편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경기를 마지막으로 윔블던에서 떠나야 하는 이들에게는 잔인한 블랙 먼데이가 되었다.

대회 7일째 (27일)

남자부에서는 '월드 넘버 원' 라파엘 나달(스페인)과 '황제' 로저 페더러(스위스)를 비롯한 4강 후보로 꼽힌 선수들이 모두 무사히 8강에 안착했다. 그러나 다른 네 명의 얼굴은 사실 기대했던 것과는 달랐다.

2세트 중간 인저리 타임을 갖는 라파엘 나달 © AELTC / T. Hindley

나달은 아르헨티나의 후안 마르틴 델 포트로를 3:1(7-6 3-6 7-6 6-4)로 꺾으며 8강에 올랐다. 델 포트로는 2009년 US오픈에서 페더러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지만 작년에 부진에 빠지며 한때 4위까지 올라갔던 랭킹이 485위까지 떨어지는 급추락을 경험했다. 그래도 두 개의 투어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조금씩 기량 회복을 하고 있던 중이어서 나달과의 명승부를 기대할 만하였다. 1세트부터 왼쪽 발의 이상으로 메디컬 타임을 요청하였던 나달은 다리를 저는 불편한 모습이었지만 1세트와 3세트 두 번의 타이브레이크에서 승리한 것이 컸다. 나달의 발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한 상태로 전해지고 있는데 검진 결과에 따라 다음 경기에 출전하지 않을 수도 있다니 결과를 지켜보아야겠지만 경기를 하는 모습으로 보아서는 출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Low-Vak 조코비치 © AELTC / S. Wake

나달이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거나 자신이 결승에 오르기만 해도 다음 주 세계랭킹에서 1위 자리에 오르게 되는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는 미카엘 로드라(프랑스)를 3:0(6-3 6-3 6-3)으로 쉽게 이겼다. 전형적인 서브 앤 발리 플레이어인 로드라는 54%에 그친 첫 서브 성공률이 발목을 잡았다. 바그다티스와의 힘든 경기에서 이긴 후 조금 더 정신을 차리게 된 것인지 조코비치는 냉정하게 경기를 하면서 1시간 41분 만에 경기를 마치고 8강에 진출했다. 조코비치는 8강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호주의 버나드 토믹을 상대한다.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페더러에게도 해당되는 말인지도 © AELTC / N. Tingle

페더러는 미하일 유즈니(러시아)의 공세에 첫 세트를 타이브레이크 끝에 지면서 대회 무실 세트 승리 기록이 중단되었다. 타이브레이크에서 2-1로 앞서던 페더러는 유즈니가 더블 폴트 등으로 자신의 서브 기회를 잘 살리지 못하자 4-2로 점수 차이를 벌렸지만 스트로크 미스가 이어지며 세트를 내주고 말았다. 2세트 2-2로 맞설 때만 하여도 페더러가 덜미를 잡힐 수 있겠다 싶은 분위기였지만, 페더러가 첫 브레이크를 성공시키며 3-2로 앞서 분위기를 반전시키며 세트를 따내고 3세트의 첫 게임 0-40으로 밀린 브레이크 위기에서 역전승에 이은 브레이크로 결정타를 날렸다. 페더러의 3:1(6-7 6-3 6-3 6-3) 승리. 페더러는 첫 서브의 성공률이 62%로 낮고, 실책을 25개나 범하는 등 다소 부진한 경기 내용이었지만 다재다능한 능력을 살려 승부처에서 점수를 따내며 승리를 이끌어냈다. 8강에서 맞붙는 상대는 조 윌프레드 송가(프랑스, a.k.a 쏭가 or 총가).

이제 머레이 대신 머리라고 부르기로 했다 (원어민 발음 중심주의) © AELTC / M. Hangst

앤디 머리(영국)는 리샤르 가스케(프랑스)를 상대로 3:0(7-6 6-3 6-2)의 승리를 거두었다. 첫 세트는 타이브레이크까지 가는 접전이었지만, 이후 두 세트는 머리가 쉽게 따냈다. 두 선수는 이 경기 전까지 맞대결에서 2승 2패를 기록하고 있었고, 작년 프랑스오픈에서 풀세트 접전을 벌여 머리가 두 세트를 먼저 내준 후 세 세트를 따내며 역전승을 거둔 명승부를 하기도 했었다. 머리는 첫 서브 성공률이 60%에 그쳤지만, 14개의 에이스와 36개의 리턴 실패로 이어질 만큼 위력을 발휘했고, 44개의 위너를 기록하면서 10개의 실책만을 저지르는 안정된 경기를 하였다. 머리는 쨍쨍한 햇빛을 의식한 듯 대회 처음으로 모자를 쓰고 경기를 한 것이 조금은 색달랐던 점. 8강의 상대는 이미 한 명의 앤디를 집에 보낸 스페인의 펠리시아노 로페스.

프랑스의 자존심 쏭가! © AELTC / T. Hundley

나머지 4명의 8강 진출자를 보면, 미국의 마디 피쉬(세계랭킹 9위)가 작년 준우승자 토마스 베르디흐(체코, 세계랭킹 7위)를 3:0(7-6 6-4 6-4)으로 누르고 8강에서 나달과 맞붙게 되었다. 1981년생으로 테니스계에서는 노장에 속하는 피쉬는 최근 들어 경기력이 더 좋아진 모습이어서 자신의 랭킹을 끌어올리고 있다. 송가는 세계랭킹 6위 다비드 페레르(스페인)를 3:0(6-3 6-4 7-6)으로 이기고 작년에 이어 8강 진출에 성공했다. 16강에 세 명이나 되었던 프랑스 선수 중 유일하게 살아남으며 프랑스 테니스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3라운드에서 이변을 연출했던 로페스는 역시 3라운드에서 가엘 몽피스를 누르며 이변을 일으킨 루카스 쿠보트(폴란드)와 그야말로 피 터지는 접전을 벌여 3:2(3-6 7-6 6-7 7-5 7-5)의 대역전극을 펼쳤다. 그 혈전을 치르고 나서 로페스는 바로 다음 경기장으로 달려가 혼합 복식 경기를 뛰어 승리를 거두었으니 이 사람 철인인지도. 토믹은 벨기에의 하비에르 말리세를 3:0(6-1 7-5 6-4)으로 완파하며 돌풍을 이어갔다. 세계랭킹이 고작 158위어서 이번 대회에도 예선을 거쳐 진출한 토믹은 그랜드 슬램 첫 4라운드 진출에 이어 8강 진출이라는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호주 남자 선수가 윔블던 8강은 참 오래간만의 일이다. 버나드 토믹 © AELTC / C. Brunskill

그래도 빅4가 건재했던 남자부보다 더 심하게 진창이 된 것은 여자 단식이었다. 윌리엄스 시스터즈(미국)가 나란히 짐을 싸게 되었고, 첫 그랜드슬램에 도전하였던 세계랭킹 1위 카롤리네 보스니아키(덴마크)도 무너졌다.

작년의 한을 푼 피론코바 © AELTC / M. Hangst

3라운드에서 베라 즈보나레바(러시아)에게 성공적인 복수를 했던 불가리아의 츠베타나 피론코바(32번 시드)는 비너스 윌리엄스를 2:0(6-2 6-3)으로 간단히 제압했다. 냉정하게 보았을 때 비너스는 그랜드 슬램에서 정상에 오르기 힘들 정도로 전성기에 비해 기량이 많이 쇠퇴했다. 그럼에도 윔블던 5회 우승의 관록을 믿어볼 만하였으나 반응 속도가 많이 느려진 몸이 반응하지 못하며 피론코바의 공을 받아내지 못했다. 피론코바는 이번 대회에서 단식 외에도 복식 멀티를 하였는데 복식 2라운드에서 패배한 것이 단식에 집중하는 계기가 될 것 같다.

바르톨리의 환호 © AELTC / N. Tingle

9번 시드를 받았던 마리온 바르톨리(프랑스, 세계랭킹 9위)는 서리나 윌리엄스를 2:0(6-3 7-6)으로 눌렀다. 오랜 공백을 가진 터라 초반에 발동이 잘 걸리지 않는 서리나는 1세트를 쉽게 내준 후에야 거센 저항을 했으나 바르톨리에게 패하고 말았다. 서리나는 비록 패하기는 했지만 윔블던 이후 다시 경기력을 회복할 경우 충분히 세계 정상권에 머물 실력을 가지고 있는 듯하여 조금 더 두고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디펜딩 챔피언으로서 포인트를 지키지 못해 세계랭킹이 저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은 면치 못하게 되었다. 바르톨리는 8강에서 이번 대회에서 무서운 기세로 달리고 있는 자비너 리지키를 상대하게 되어 쉽지 않은 경기가 예상된다.

보스니아키의 꿈을 무너뜨린 치불코바 © AELTC / J. Buckle

보스니아키의 패배는 더욱 드라마틱했다. 보스니아키는 도미니카 치불코바(불가리아, 24번 시드)를 맞아 1세트를 6-1로 가볍게 이겼다. 보스니아키는 1세트에서 첫 서브의 성공률이 79%에 달했고, 치불코바의 서브를 모두 리턴하면서 수비 여왕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러나 2세트부터 살아난 치불코바의 공격은 보스니아키의 수비를 붕괴시키기 시작했고, 타이브레이크 끝에 승리를 거두었다. 무려 74분이나 걸린 3세트는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으나 5-5에서 치불코바가 보스니아키의 서브게임을 브레이크하면서 앞섰고, 경기를 7-5로 끝냈다. 치불코바의 2:1(1-6 7-6 7-5) 승리. 치불코바는 올해 초 시드니 메디뱅크 인터내셔널에서 보스니아키를 이긴 적이 있기는 했지만 호주오픈에서는 패했고, 상대 전적이 2승 6패로 밀리고 있었는데 메이저대회 우승이 간절했던 보스니아키에게 통쾌한 복수를 했다.

샤라포바의 아악~! 서브 © AELTC / J. Buckle

아무리 그래도 현역 선수 중 윔블던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선수는 마리아 샤라포바(러시아)다. 단 한 차례 우승이었지만 그것이 너무도 강렬했던 그녀는 7년 전의 영광을 다시 누릴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샤라포바는 계속 대진 운이 좋은 편이었는데 4라운드에서도 중국의 펑슈웨이(20번 시드)를 맞아 2:0(6-4 6-2)의 쉬운 승리를 거두었다. 샤라포바는 여전히 서브에서 고전하였지만 서브 이후 경기를 풀어나가는 능력이 좋았다. 펑슈웨이에 비해서 9개 많은 위너를 기록하면서도 실책은 7개 적게 기록한 것이 가장 큰 승인. 그러나 상대 전적 2승 2패로 팽팽히 맞선 치불코바와의 8강 승부는 쉽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특히 올해 포함 최근 승부에서 모두 패한 것이 샤라포바로서는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다.

이번에는 인상을 덜 찌푸린 아자렌카 © AELTC / T. Hindley

빅토리아 아자렌카(벨라루스, 4번 시드)는 나디아 페트로바(러시아)를 2:0(6-2 6-2)로 가볍게 이겼다. 아자렌카는 자신보다 세계랭킹이 높은 선수들은 모두 떨어져서 첫 그랜드 슬램 달성의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페트라 크비토바(체코, 8번 시드)는 야니나 위크마이어(벨기에, 19번 시드)를 2:0(6-0 6-2)로 더 쉽게 이겼다. 시드 배정자들끼리의 경기에서 한 게임도 내주지 않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데 크비토바가 작년 윔블던 4강 진출이 운이 아니었음을 보여줄 지도 모르겠다. 시드를 받지 못한 이들의 대결에서는 3라운드에서 리나를 누르고 파란을 일으킨 자비너 리지키(독일)와 타미라 파스첵(오스트리아)이 8강행 티켓을 손에 넣었다.

윔블던 8일째인 28일에는 남자 단식 선수들은 휴식을 취하고(복식과 혼합복식은 경기가 있다), 여자 단식 8강의 네 경기가 모두 열린다. 과연 125회 윔블던 4강은 어떤 선수들이 올라갈 지 두고 볼 일이다.

이 분들도 센터 코트의 경기를 관람하셨다. 누구는 태어날 때부터 왕자, 나는 엄마 아들 © AELTC / M. Hangst

윔블던 3라운드가 끝나고 16강이 가려졌다. 4라운드까지는 무난히 진출하리라 예상되었던 선수들이 종종 탈락하면서 이변이 일어나고 있지만,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혔던 선수들은 여전히 안정된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어 갈수록 흥미진진한 승부가 이어질 것 같다. 여자부의 마리아 샤라포바(러시아)와 카롤리네 보스니아키(덴마크, a.k.a. 캐롤라인 워즈니아키) 등은 예정된 경기가 우천과 일몰로 취소되면서 하루 밀린 스케쥴을 소화하게 되었고, 남자부 경기에서도 여러 경기가 중단되면서 다음 날로 밀려서 선수들이 컨디션 조절이라는 다른 과제를 안게 되었다.

 

대회 5일째 (24일)

비가 와서 많은 경기들이 다음 날로 밀리며 많은 선수들이 고생을 해야했다. 톱시드를 받은 세계랭킹 1위 라파엘 나달도 비 앞에서는 경기를 할 수 없었다.

재빠르게 공을 향해 달리는 앤디 머레이 ⓒ AELTC / M. Hangst

앤디 머레이(영국)는 유일하게 지붕이 있는 경기장인 센터 코트에서 경기를 한 덕분에 예정대로 경기를 치를 수 있었다. 크로아티아의 이반 류비치치를 맞은 머레이는 1세트를 먼저 따냈지만 2세트에서 갑자기 흔들리며 세트 스코어 1:1을 허용하고 말았다. 경기가 풀리지 않을 때 순간적으로 페이스를 잃어버리는 고질적인 문제가 머레이의 발목을 잡으며 이미 탈락한 앤디 로딕(미국)에 이어 앤디들이 모두 탈락하는 듯했다. 그러나 3세트에서는 다시 자기 페이스를 찾으며 6-1로 쉽게 이기고, 4세트에서 타이 브레이크 끝에 7-6으로 마무리하면서 4라운드에 진출하였다. 류비치치는 최고 시속 224km(139mph)의 강서브를 앞세워 밀어붙였지만 스트로크의 정교함에서 머레이에 밀리며 경기를 내주었다.

 

세상에 아니 로페스에게 영원한 천적이란 없다 ⓒ AELTC / M. Hangst

이 날의 가장 큰 이변은 다른 앤디, 로딕의 탈락이었다. 로딕의 상대였던 스페인의 펠리시아노 로페스는 로딕과 일곱 번 맞붙어 단 한 번도 이긴 적이 없었기에 로딕의 낙승이 예상되었다. 로딕은 특기인 최고 시속 230km(143mph)의 광속 서브를 넣으며 로페스를 압박했지만 정확도가 떨어졌고, 로페스가 로딕의 코스를 잘 파악하고 대처하면서 힘든 경기를 하였다. 스트로크가 길게 이어질수록 단점이 많이 드러나는 로딕으로서는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1세트와 2세트에서 타이브레이크에서 패하고, 3세트에서 결정적인 브레이크를 당하며 로딕은 0:3의 완패를 당하고 말았다. 남자부의 톱 10 선수 중에서 첫 번째 탈락이었다.

굿바이 롸딕! ⓒ AELTC / M. Hangst

머레이에 밀려 센터 코트 대신 No.1 코트에서 경기를 하던 나달은 1세트를 7-6으로 따낸 후 경기가 비로 연기되었고, 후안 마르틴 델 포트로(아르헨티나), 가엘 몽피스(프랑스) 등도 역시 도중에 경기가 중단되었다.

샤라포바와 롭슨의 등장 ⓒ AELTC / N. Tingle

여자부에서는 전날 경기가 연기되어 치르지 못한 샤라포바와 보스니아키 등이 다른 선수들의 3라운드 경기에 앞서 2라운드 경기를 하였다. 샤라포바는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안은 17세 소녀 로라 롭슨에게 고전하며 1세트에서 1-4로 밀리며 첫 세트를 내주는 듯이 보였지만 익숙하지 않은 상대 파악이 완료되자 무섭게 점수를 따내며 타이브레이크까지 끌고 갔고, 타이브레이크에서도 2-4로 뒤지다가 다섯 점을 연속으로 내면서 승리했다. 1세트의 역전패의 충격이 컸을까 롭슨은 2세트에서는 큰 저항을 하지 못하며 경기는 샤라포바의 2:0(7-6 6-3) 승리로 끝났다.. 샤라포바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롭슨이 대단한 잠재력을 가졌다고 극찬하였다고. 보스니아키는 프랑스의 버지니 라자노를 1시간 6분만에 2:0(6-1 6-3)으로 제압하고 3라운드에 진출했다.

왜 아자렌카는 모두 인상을 쓴 사진만 있을까 ⓒ AELTC / M. Hangst

3라운드 경기에서는 빅토리아 아자렌카(벨라루스)가 다니엘라 한투코바(슬로바키아)와 풀세트 접전 끝에 2:1(6-3 3-6 6-2)로 이겼다. 한투코바는 2세트에서 무서운 집중력으로 아자렌카의 서브게임을 브레이크하며 3세트까지 경기를 끌고 갔지만 3세트 초반부터 발걸음이 무뎌지면서 패하고 말았다. 한투코바는 단식과 복식을 병행하고 있는데 적지 않은 나이에 많은 경기 때문인지 경기 후반으로 갈수록 조금씩 체력의 한계가 드러나는 듯하다. 샤라포바 못지 않게 경기 중에 괴성을 지르는 아자렌카는 음역대가 높아 경기를 볼 때 자연스럽게 음소거를 하게 된다.

2인자를 이긴 피론코바는 쩜오인가 ⓒ AELTC / T. Hindley

2번 시드, 세계랭킹 2위, 작년 준우승자 삼박자를 갖춘 2인자 베라 즈보나레바(러시아)는 불가리아의 스베타나 피론코바에게 덜미를 잡히며 탈락했다. 피론코바는 작년 준결승에서 즈보나레바에서 패하여 아쉽게 결승 진출에 실패했는데 그 빚을 제대로 갚았다. 어떻게 3라운드까지 올라오기는 했지만 뭔가 좋아보이지는 않았던 즈보나레바는 피론코바에 그냥 일방적으로 밀리며 졌다. 비너스 윌리엄스(미국)는 순식간에 마리아 호세 마르티네스 산체스를 이겼고, 프랑스의 마리온 바르톨리, 벨기에의 야니나 위크마이어, 체코의 페트라 크리토바 등도 승리를 거두며 4라운드에 진출했다.

 

대회 6일째 (25일)

포어핸드 스트로크 발사 준비 완료 ⓒ AELTC / M. Hangst

이 날의 일정은 밀린 경기의 재개부터 시작되었다. 나달은 룩셈부르크의 질레스 뮐러를 3:0(7-6 7-6 6-0)으로 물리치며 한 세트도 내주지 않고 승승장구하고 있다. 왼손잡이 선수끼리의 대결이어서 흥미있는 경기였는데 뮐러가 한 세트라도 타이브레이크에서 따냈더라면 나달을 조금 더 괴롭힐 수 있었겠지만, 아쉽게 두 세트를 내준 후 3세트에서는 전의를 상실하며 그냥 무너지고 말았다.

페더러의 원핸드 백핸드 스트로크는 정말.. ⓒ AELTC / J. Buckle

로저 페더러(스위스)는 아르헨티나의 다비드 날반디안을 3:0(6-4 6-2 6-4)으로 물리치며 1시간 46분만에 경기를 끝냈다. 그동안 애먹던 서브 성공률도 71%로 많이 올라왔고 최고 시속 209km(130mph)까지 나온 서브 속도 역시 지난 경기에 비해서 좋았다. 서브의 위력이 살아나자 경기를 유리하게 이끌어가면서 브레이크를 한 번만 허용하였고, 일곱 번의 브레이크 포인트에서 다섯 번 브레이크를 성공시키며 쉽게 경기를 이겼다.

공공의 적이 되어버린 조코비치 ⓒ AELTC / M. Hangst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는 사이프러스의 마르코스 바그다티스와의 접전을 3:1(6-4 4-6 6-3 6-4)로 승리하였다. 스코어처럼 조코비치가 우세한 경기를 했지만 바그다티스 또한 물러서지 않고 끈질기게 조코비치를 괴롭혔다. 각 세트마다 단 한 번씩만 브레이크가 있었는데, 세 번의 브레이크를 한 조코비치가 바그다티스를 눌렀다. 조코비치는 종종 날카로운 백핸드 스트로크를 보여주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실수가 많아서 경기를 어렵게 했다. 그러나 4세트에서 고비에서 서브 에이스를 기록하며 바그다티스를 압박하여 승리했다. 경기장 내에는 사이프러스 출신의 바그다티스의 팬도 많았고, 심지어 페더러를 응원하던 팬들까지도 잠재적 위협인 조코비치보다는 바그다티스를 응원하면서 조코비치는 공공의 적이 되는 듯싶었으나 관중들의 일방적인 응원도 잠재울만큼 조코비치의 기량이 한 수 위였다. 조코비치는 2세트 중반 랠리에서 샷을 미스한 후 라켓을 바닥에 세 번 치면서 부러뜨리는 모습을 연출하는 등 심한 감정 기복을 다시 보여주었다.

3년 전 바그다티스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그를 아저씨라 불렀다 ⓒ AELTC / T. Hindley

호주의 테니스 아이돌 버나드 토믹 ⓒ AELTC / T. Hindley

3라운드에서 호주의 레이튼 휴잇을 이겼던 5번 시드 로빈 소더링(스웨덴)은 호주의 버나드 토믹에게 0:3(1-6 4-6 5-7)로 힘없이 무너지며 탈락했다. 소더링은 휴잇과의 경기에서도 그다지 좋은 모습은 아니었는데 이 경기에서도 실망스러운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로딕에 이은 두 번째 톱10 선수의 탈락이 되었다. 휴잇으로 대표되던 호주 남자 테니스의 에이스 자리에 토믹이 세대교체를 선언하는 계기가 될지 관심이 간다. 휴잇의 패배로 상심했을 오지팬들이 다시 토믹의 이름을 외치며 경기장을 시끄럽게 할 것 같다. 그 외에 후안 마르틴 델 포트로(아르헨티나)와 다비드 페레르(스페인) 등이 역시 4라운드에 진출하며 16인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현지 캐스터는 캐롤라인 보스니아키라고 그녀를 부른다. 쳇! ⓒ AELTC / J. Buckle

하루 만에 경기를 다시 치르게 된 보스니아키는 호주의 자밀라 가조소바를 2:0(6-3 6-2)로 가볍게 이기고 4라운드에 진출했다. 이틀 연속 1시간 6분 만에 경기를 끝낼 정도로 좋은 몸 상태와 안정된 기량을 보여주고 있어서 생애 첫 메이저 대회 우승 가능성을 밝히고 있다. 가조소바는 예전에 자밀라 그로스라는 이름으로 뛰던 선수인데, 이혼을 하고 다시 결혼 전의 성으로 경기에 나서고 있다. 태생은 슬로바키아지만 호주 이중국적을 가지고 있어 호주 국적으로 경기에 출전하고 있다.

그녀는 마치 성난 암사자와 같았다 ⓒ AELTC / S. Wake

샤라포바와 서리나 윌리엄스(미국)도 한 수 위의 기량으로 모두 2:0 승리를 거두며 가볍게 4라운드에 진출했다. 샤라포바는 여전히 서브의 정확도에 문제를 드러내고 있지만 경기력이 안정 궤도에 올라 있는 상황이고, 서리나는 초반 두 경기에서는 코트가 낯선 듯 경기 중반부터 발동이 걸리는 모습이었지만 경기 감각을 차츰 회복해가는 것이 눈에 보인다. 이 두 선수는 경기를 치를수록 더 강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2라운드 최고의 이변을 일으켰던 자비너 리지키(독일)도 일본의 미사키 도이를 꺾고 4라운드에 합류했고, 아나 이바노비치는 체코의 페트라 세트코브스카에 가볍게 패하며 다시 짐을 싸게 되었다.

6일 동안의 일정을 마친 윔블던은 오늘 하루를 쉬고 내일 7일째 일정을 재개한다. 7일째에는 단식 4라운드 경기가 모두 열려 절반이 탈락하고 8강이 가려지게 된다. 과연 누가 남고 누가 집으로 돌아갈 것인가.

마지막 사진은 신데렐라가 될 뻔했던 롭순이로.. ⓒ AELTC / N. Tingle

첫 날의 우천으로 연기된 경기가 둘째 날 열리면서 둘째 날 경기가 또 하루 밀리는 일이 벌어져 2라운드와 함께 1라운드 경기가 열리기도 했다. 윔블던 2라운드에서도 큰 이변 없이 우승후보들이 순항하고 있는 가운데 남자부에서는 톱 랭커들이 무난하게 3라운드까지 진출한 반면, 여자부에서는 세계랭킹 4위로 아시아인으로서 첫 그랜드 슬램 우승을 차지했던 리나(중국)가 와일드카드로 대회에 참가한 독일의 자비너 리지키에게 덜미를 잡히는 이변이 발생했다.

무너진 리나 ⓒ AELTC / N. Tingle

 

대회 3일째 (22일)

나달의 강력한 포어핸드 스트로크 ⓒ AELTC / M. Hangst

라파엘 나달(스페인), 토마스 베르디흐(체코), 영국과 미국의 두 앤디 등 톱 랭커들이 무난하게 이기며 나란히 3회전에 진출했다. 나달은 1회전에 이어 미국 출신의 라이언 스위팅과 맞붙었는데 38개의 위너를 기록하면서 실수를 7개밖에 저지르지 않는 깔끔한 경기를 보여주며 가볍게 승리했다. 시도가 많았던 네트 어프로치의 성공률도 81%로 좋았고, 첫 번째 서브의 성공률은 70%, 평균 속도는 시속 184km(114mph)였고 첫 서브에서 득점은 78%였다. 나달의 3라운드 상대는 룩셈부르크의 질레스 뮐러.

 

베르디흐는 목이 마르다 ⓒ AELTC / N. Tingle

베르디흐는 첫 번째 서브 성공률이 58%에 그칠 정도로 부정확했지만 첫 서브를 성공시킨 후 득점률이 89%였다. 낮은 첫 서브 성공률에도 불구하고 더블 폴트는 단 한 차례밖에 저지르지 않는 놀라운 두 번째 서브의 정확도를 보여주었다. 리시빙 포인트가 무려 51%에 달하는 등 상대의 서브게임을 쉽게 브레이크하며 3:0(6-1 6-4 6-2)로 쉽게 이겼다. 서브 최고 속도는 시속 216km(134mph).

로딕이 백핸드샷의 정확도만 높인다면.. ⓒ AELTC / J. Buckle

나달에 이어 센터 코트에서 메인 이벤트를 장식한 앤디 로딕은 상대인 빅토르 하네스쿠(루마니아)의 최고 빠른 서브의 속도보다 더 빠른 평균 서브 속도인 시속 204km(127mph)의 광속 서브를 앞세워 승리했다. 에이스는 15개에 불과했지만 첫 번째 서브 후 93%, 두 번째 서브 후 74%를 득점으로 연결시키며 확실하게 서브게임을 지킨 것이 승리의 원동력이 되었다.

승리 후 코트에 드러누워 환호하는 머레이 ⓒ AELTC / N. Tingle

홈팬들의 성원을 업은 앤디 머레이(영국)는 독일의 토비아스 캄케를 3:0(6-3 6-3 7-5)으로 누르고 3라운드에 진출했다. 머레이는 첫 번째 서브의 성공률이 54%에 그치면서 다소 어려운 게임을 했으나 고비에서 집중력을 발휘해 상대의 서브게임을 브레이크를 하면서 승리를 거두었다. 강한 상대를 만나서도 계속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느냐가 머레이에게 주어진 가장 큰 과제인 듯하다.

베라 즈보나레바 ⓒ Getty Image / C. Mason

여자부에서는 베라 즈보나레바(러시아)가 같은 나라의 엘레나 베스니나를 2:0(6-1 7-5)으로 가볍게 누르고 3라운드에 진출했다. 세계랭킹 2위이자 작년 준우승자임에도 큰 주목을 받지 못하는 불쌍한 즈보나레바는 조용히 승리를 챙기며 조금씩 우승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비너스 윌리엄스(미국)는 노장 키미코 다테-크룸(일본)과 풀세트 접전을 벌여 마지막 세트를 힘겹게 따내며 2:1(6-7 6-3 8-6)으로 승리했고, 4번 시드의 빅토리아 아자렌카(벨라루스)는 51분만에 2:0(6-0 6-3)승리를 거두며 3라운드에 합류했다.

베라 즈보나레바. 이런 것은 굴욕 사진인가 ⓒ Getty Image / C. Mason

 

대회 넷째 날 (23일)

페더러의 여유로운 스트로크 ⓒ AELTC / N. Tingle

로저 페더러(스위스)는 한 수 위의 기량으로 상대를 압도하며 프랑스의 아드리안 만나리노를 3:0(6-2 6-3 6-2)로 88분만에 가볍게 제압했다. 현지에서는 이 날 센터 코트에서 열린 두 경기가 길었는데, 페더러가 저녁 시간을 위해 빠르게 경기를 끝냈다고 표현하기도. 특별히 경기의 승부처라고 볼 수 있는 장면이 없이 무난하게 경기를 앞서가며 쉽게 경기를 따냈다. 첫 번째 서브는 페더러의 다음 상대는 28번 시드를 받은 아르헨티나의 다비드 날반디안이다.

조코비치 승자의 여유 ⓒ AELTC / N. Tingle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는 남아공의 케빈 앤더슨을 3:0(6-3 6-4 6-2)으로 가볍게 이기며 3라운드에 진출했다. 조코비치는 74%의 첫 번째 서브 성공률과 75%의 첫 서브 후 득점 성공률을 보이며 안정적으로 경기를 했다. 첫 세트에서 연속 다섯 게임을 따내며 앞서던 조코비치는 브레이크를 당하며 연달아 게임을 내주었지만 잘 마무리했고, 앤더슨이 정신차리고 맞선 두 번째 세트에서도 3-3으로 맞선 일곱 번째 게임을 브레이크하며 세트를 가져오면서 쉽게 경기를 마무리했다. 첫 번째 서브의 속도가 최고 시속 200km(124mph), 평균 시속 183km(114mph)를 기록하는 등 평소보다 시속 10km 정도 느린 속도가 나왔는데 어느 정도 체력을 비축하려고 힘을 쓰지 않는 것인지도. 조코비치의 다음 상대는 사이프러스의 마르코스 바그다티스다.

지옥 끝에서 살아난 소더링 ⓒ AELTC / T. Hindley

로빈 소더링(스웨덴)은 왕년의 세계랭킹 1위인 호주의 레이튼 휴이트에게 먼저 두 세트를 내주며 궁지에 몰렸다가 연속으로 나머지 세트를 모조리 따내며 힘겹게 3라운드에 합류했다. 휴이트는 마지막 세트에서 4:5로 뒤지던 자신의 서브게임에서 자멸한 것이 두고두고 뼈아플 것 같다. 소더링은 러시아의 이고르 안드리에프와 호주의 버나드 토믹의 승자와 3라운드에서 대결하게 된다.

3시간 54분의 대혈투 끝에 패한 휴이트. 불쌍해서 사진 한 컷. ⓒ AELTC / T. Hindley

서리나의 힘은 살아있다 ⓒ AELTC / J. Buckle

작년 우승자 서리나 윌리엄스(미국)는 루마니아의 시모나 할렙에게 첫 세트를 먼저 내주며 고전하다가 뒤늦게 발동이 걸리며 2:1(3-6 6-2 6-1)로 승리하며 3라운드에 진출했다. 서리나는 첫 번째 서브 성공률이 52%에 그치는 등 고전했으나 어지간해서는 당해낼 수 없는 파워를 앞세워 역전승을 일구어냈다. 1년만에 코트로 돌아온 탓인지 경기력이 들쑥날쑥한 면이 있는데 계속 경기를 하면서 나아질 듯하다.

리지키의 환호 ⓒ AELTC / N. Tingle

그랜드 슬램 연속 우승을 노리던 리나는 독일의 자비너 리지키에게 발목을 잡히는 이변이 일어났다. 리나는 먼저 1세트를 따냈으나 연거푸 두 세트를 내주며 1:2(6-3 4-6 6-8)로 역전패를 당했다. 3세트 세트스코어 2-2에서 리지키의 서브게임을 브레이크를 하며 경기를 앞서 나갔지만 5-3으로 앞선 상황에서 두 게임을 내주며 5-5 동점을 허용했고, 서로 브레이크를 하며 팽팽히 맞선 6-6 상황에서 체력적인 열세를 보이며 무너졌다. 리지키는 패배 직전에서 최고 시속 200km(124mph)의 강서브를 앞세워 경기를 뒤집으며 3라운드에 진출했다. 리나는 4-17로 크게 밀린 서브의 위력 앞에 자신의 주무기인 구석을 찌르는 정교한 스트로크를 보여주지 못했다.

마리아 샤라포바(러시아)와 캐롤라인 워즈니아키(덴마크)의 2라운드 경기는 앞 경기가 비로 지연됨에 따라 다음 날로 연기되었다.

조용히 3라운드에 진출한 아나 이바노비치(세르비아) ⓒ AELTC / J. Buckle

 

*주 : Sabine Lisicki 의 이름을 "WTA Media Guide" 의 선수 이름 발음 기호에 따라 사빈 리시츠키에서 자비너 리지키로 수정합니다.

남자부 톱시드의 라파엘 나달(스페인)이 2라운드 경기를 치르고 있는 지금은 다소 늦은 소식일 수 있지만 간략하게 주요 선수 위주로 윔블던 20일과 21일에 열렸던 1라운드 경기 결과를 전하려고 한다. 시드 배정 선수들이 탈락하는 등의 작은 이변은 있지만 우승 후보들은 모두 쉽게 1라운드에서 승리를 거두며 우승을 향해 한 발 앞으로 나아갔다.

대회 첫째 날 (20일)

라파엘 나달의 서브 ⓒ AELTC / T. Hindley

라파엘 나달은 1라운드에서 미국의 마이클 러셀을 세트 스코어 3:0(6-4 6-2 6-2)으로 가볍게 이기고 2라운드에 진출했다. 러셀은 33세의 노장으로 2007년 세계랭킹 60위에 올랐던 것이 최고일만큼 나달과는 급이 다른 선수. 나달의 첫 번째 서브 성공률은 67%에 그쳤지만 최고 시속 187km(116mph)까지 나온 서브를 앞세워 첫 번째 서브에서 77%의 포인트를 따내며 경기를 압도했다. 스트로크의 정확도를 보여주는 위너의 수에서 35:14로 압도한 것도 나달이 자기 경기를 확실히 했음을 보여준다.

앤디 머레이의 스트로크 ⓒ AELTC / M. Hangst

앤디 머레이(영국)는 스페인의 다니엘 히메노 트라베르에게 1세트를 먼저 내주었으나 경기를 뒤집으며 3:1(4-6 6-3 6-0 6-0)으로 이겼다. 머레이의 첫 번째 서브 성공률은 70%, 최고 속도는 시속 209km(130mph)를 기록했으며 위너의 숫자도 45:24로 우세했다. 첫 번째 서브에서 90%에 달하는 득점을 올린 것과 88%의 성공률을 기록한 어프로치가 승리의 원동력이었다.

나머지 톱 10 랭커를 보면 토마스 베르디흐(체코), 가엘 몽피스(프랑스), 마디 피쉬(미국)이 모두 3:0으로 승리하며 2회전에 진출했다. 왕년의 세계랭킹 1위 토미 하스(독일)는 룩셈부르크의 질레서 뮐러에게 1:3으로 패하며 1회전에서 탈락했다. 30번 시드를 배정받았던 브라질의 토마스 벨루치를 제외한 시드 배정 선수는 모두 2회전에 진출했다.

빠른 발을 가진 프란세스카 스키아보네 ⓒ AELTC / M. Hangst

여자부에서는 6번 시드의 프란세스카 스키아보네(이탈리아)가 왕년에 마르티나 힝기스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던 옐레나 도키치(호주)를 2:1(6-4 1-6 6-3)로 이겼다. 스키아보네는 프랑스오픈에서 우승했던 그랜드 슬램 경력이 있어서일까 작년 준우승자이자 세계랭킹 2위인 베라 즈보나레바(러시아)를 No. 1 코트로 밀어내고 센터 코트에서 경기하는 행운을 누렸다. 즈보나레바도 미국의 앨리슨 리스키를 2:1(6-0 3-6 6-3)로 이기고 2라운드에 진출했다. 오래간만에 컴백한 비너스 윌리엄스와 러시아의 스베틀라나 쿠즈네초바, 그리고 일본의 노장 키미코 다테-크룸도 2라운드에 합류했다. 비너스와 다테-크룸은 2라운드에서 맞붙을 예정이다. 의외로 시드 배정자들이 탈락한 경우가 많은 것이 이 날의 특징.

대회 둘째 날 (21일)

벌처럼 날아오르는 로저 페더러 ⓒ AELTC / N. Tingle

남녀 모두 첫째 날보다는 볼거리가 더 많은 둘째 날이었다. 샘프라스의 7회 우승에 도전하는 '황제' 로저 페더러(스위스)는 카자흐스탄의 미하일 카카시킨을 3:0(7-6 6-4 6-2)으로 가볍게 이기며 2라운드에 진출했다. 페더러의 첫 번째 서브 성공률은 71%, 첫 서브 후 득점 성공률은 89%였고 서브의 최고 속도는 시속 205km(127mph)였다. 53-16으로 압도한 위너의 숫자에서 보이듯이 모처럼 정확한 스트로크가 빛을 발한 경기였다.

승자의 환호 노박 조코비치 ⓒ AELTC / N. Tingle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는 프랑스의 제레미 샤디를 3:0(6-4 6-1 6-1)로 가볍게 제압하며 강력한 포스를 보여주었다. 샤디는 최고 시속 217km(135mph)의 강력한 서브를 가지고 있음에도 첫 번째 서브가 59%밖에 되지 않았고, 첫 서브의 득점도 68%에 그쳤다. 광서버 앤디 로딕(미국)도 최고 시속 228km(142mph)의 광속 서브를 앞세워 독일의 안드레아스 벡을 3:0(6-4 7-6 6-3)으로 누르며 2라운드에 합류했다. 로딕은 첫 번째 서브의 평균 속도가 시속 200km(124mph)로 어지간한 선수들의 최고 속도에 맞먹는 무시무시함을 보여주었다.

톱10 선수로는 5번 시드의 로빈 소더링(스웨덴)과 7번 시드의 다비드 페레르(스페인)가 2라운드에 진출했고, 스페인의 페르난도 베르다스코와 2009년 US오픈 우승자 후안 마르틴 델 포트로(아르헨티나), 무하마드 알리의 재림 조-윌프레드 송가(프랑스), 왕년의 강자 호주의 레이튼 휴이트 등도 합류했다. 지난 대회에서 사상 초유의 11시간 5분(5세트만 8시간 11분)짜리 2박 3일 매치를 벌였던 존 아이스너(미국)와 니콜라스 마후트(프랑스)는 다시 1라운드에서 맞붙었는데 이번에는 아이스너가 3:0(7-6 6-2 7-6)으로 승리했다. 아이스너가 이기기는 했지만 두 세트에서 타이브레이크까지 가는 접전이 벌어졌다고.

이것이 샤라포바 스타일! 마리아 샤라포바 ⓒ AELTC / N. Tingle

여자 경기에서는 마리아 샤라포바(러시아)가 같은 나라의 안나 차크베다체를 2:0(6-2 6-1)으로 가볍게 제압하며 산뜻한 출발을 하였다. 프랑스오픈 이후 여러 이유로 경기에 불참하다가 윔블던에 참가한 샤라포바는 경기 내용이 좋지는 않았지만 상대의 부진 덕분에 쉬운 승리를 거두었다. 한 때 톱10에 들었던 차크베다체는 첫 번째 서브 성공률이 58%에 불과하고, 첫 서브에서 54%밖에 되지 않는 득점을 기록하는 등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무릎을 꿇었다. 샤라포바의 서브 최고 속도는 시속 173km(108mph)에 불과했다.

울고 있는 서리나 윌리엄스 ⓒ AELTC / N. Tingle

작년 우승자 서리나 윌리엄스(미국)는 프랑스의 아라바네 레자이를 2:1(6-3 3-6 6-1)로 다소 힘겹게 이기고 2라운드에 진출했다. 남자 못지 않은 강서버답게 시속 188km(117mph)의 강력한 서브를 보여주었으나 서브의 정확도는 61%로 좋지는 않았다. 경기가 끝나고 윔블던에서 다시 1승만이라도 더 하고 싶었다면서 오래간만에 코트에 돌아온 소감을 밝히며 울음을 터뜨렸다고.

워즈니아키의 서브 ⓒ AELTC / N. Tingle

전직 우승자들에게 센터 코트를 빼앗기고 No.1 코트에서 경기를 치른 세계랭킹 1위 캐롤라인 워즈니아키(덴마크)와 프랑스오픈 우승자 중국의 리나, 워낙 쟁쟁한 선수들에 가려진 세계랭킹 4위 빅토리아 아자렌카(벨라루스)는 2:0으로 가볍게 2라운드에 합류했다. 이 밖에 이름이 꽤 알려진 선수로는 아나 이바노비치(세르비아), 다니엘라 한투코바(슬로바키아), 마리아 키릴렌코(러시아) 등이 2라운드에 합류했다. 호주의 희망인 세계랭킹 10위 사만다 스토서와 전 세계랭킹 1위인 세르비아의 옐레나 얀코비치는 패하며 짐을 싸게 되었다. 일본의 새로운 희망이자 아시아 랭킹 3위인 모리타 아유미는 첫 세트를 이기고도 두 세트를 연거푸 내주며 역시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첫 날부터 비가 내리며 꼬이기 시작한 경기 일정은 둘째 날에 1라운드 경기를 모두 마치지 못함에 따라 일부 선수들은 셋째 날에 1라운드 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센터 코트에는 지붕을 씌워 우천에도 경기를 할 수 있게 하였다지만 나머지 코트에서는 비가 내리면 경기를 할 수 없어 참 혼란스럽다.

지금 이 순간 나달이 벌써 2:0으로 앞선 가운데 3세트를 끝내려 하고, 머레이가 두 세트를 따내려 하고 있다. 경기 결과를 쓰느라고 두 시간이나 걸리다니.. 흑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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