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나드 토믹

많은 이들이 기대하던 16년 전인 1995년 세계랭킹 1위부터 4위였던 안드레 애거시, 피트 샘프라스, 보리스 베커와 고란 이바노세비치가 함께 4강에 올라 우승을 다투던 일의 재현은 없었다. Big 4 중에서 가장 안정된 경기를 하면서 윔블던 정상 탈환의 가능성을 높였던 로저 페더러(29, 스위스, 세계랭킹 3위)가 예상을 깨고 두 세트를 먼저 따내고도 나머지 세트를 모두 잃은 믿기지 않는 패배를 당하며 탈락한 것이다.

2011 Wimbledon Gentlemen's Single Final 4 ⓒ AELTC

대회 9일째 (29일)

센터 코트에서 조-윌프레드 송가(26, 프랑스, 세계랭킹 19위, a.k.a. 총가, 쏭가)를 상대하는 페더러의 4강은 눈 앞에 있는 듯했다. 같은 시각 옆 경기장에서 노박 조코비치(24, 세르비아, 세계랭킹 2위)가 버나드 토믹(18, 호주, 세계랭킹 158위)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혀 2세트를 내주며 고전하고 있을 때 페더러는 2:0으로 앞선 상태에서 3세트를 맞이하고 있었다. 페더러는 두 세트를 먼저 따낸 후 토너먼트 경기에서 178승 무패의 신화적인 전적을 자랑하고 있었고, 그의 서브와 스트로크는 전성기에 못지않을 정도로 정확도를 자랑하고 있었다. 아마 그는 피트 샘프라스의 윔블던 7회 우승과 동률을 이루는 꿈을 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페더러의 그랜드 슬램 우승은 16회에서 멈추게 될 지도 모르겠다 ⓒ AELTC / N. Tingle

그러나 페더러는 3세트 1-1로 맞선 상황에서 자신의 서브게임을 어이없는 실수로 내주면서 위기를 맞이하였다. 0-30에서 누가 보아도 페더러의 득점이다 싶은 쉬운 스매시를 사이드라인 바깥으로 날리며 브레이크 포인트에 몰렸고, 15-40에서 이번에는 반대쪽 사이드라인으로 날린 스매시를 송가가 강력한 포어핸드 위너로 연결시키며 브레이크했다. 송가와 페더러는 각자 자신의 서브게임을 잃지 않으며 5-4에서 송가의 서브게임을 맞이했다. 페더러는 이 서브게임을 브레이크하여 세트를 더 끌고 가서 역전을 노렸고, 송가는 마무리 짓기 위해 치열한 다툼을 벌였다. 페더러는 30-0으로 앞서며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으나, 송가가 네트를 살짝 넘기는 드롭샷과 서브 에이스로 30-30을 만들었다. 송가의 서브 에이스는 더블 폴트로 판정되어 40-15로 브레이크 포인트에 몰리게 되었지만, 송가의 챌린지로 판독한 결과 라인 끝에 아주 살짝 걸친 것이 인정되어 30-30으로 정정되었다. 송가는 포어핸드로 40-30을 만들며 세트 포인트에 도달했지만 페더러 역시 포어핸드로 듀스를 만들며 격렬히 저항했다. 송가가 한 점을 내면 페더러는 기어이 다시 점수를 내면서 어드밴티지와 듀스가 다시 반복되었는데 페더러의 샷이 네트로 향하고 송가가 서브 에이스로 점수를 내면서 세트를 끝냈다.

벌처럼 날아오른 송가 ⓒ AELTC / M. Hangst

이때까지만 해도 페더러가 경기에 패할 것이라 예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4세트부터 페더러의 체력 고갈이 눈에 보였다. 발놀림이 둔해져 좌우로 흔드는 서브와 스트로크를 보면서도 따라가지 못하였고, 공격에서도 첫 두 세트에서 80%가 넘었던 첫 서브 성공률이 낮아졌다. 3세트와 마찬가지로 1-1로 맞선 상황에서 다시 브레이크를 당하며 끌려가는 경기를 하다가 다시 4-6으로 세트를 내주었다. 두 선수의 운명을 가르는 5세트 역시 페더러의 서브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첫 게임에서 송가에게 브레이크를 당하며 힘겨운 출발을 했고, 마지막까지 송가의 서브게임을 브레이크하지 못하면서 4-5로 뒤진 채 송가의 서브게임을 맞이하였다. 송가는 페더러를 거세게 밀어붙여 쓰리 매치 포인트를 만들었고 페더러는 이를 극복하지 못하며 패하였다. 두 세트를 먼저 이긴 경기의 무패 기록이 깨짐과 동시에 윔블던 7회 우승을 노리던 그의 목표가 좌절되는 순간이었다. 송가의 3-2(3-6 6-7 6-4 6-4 6-4) 승리. 페더러는 실책을 고작 11개밖에 하지 않았음에도 송가의 힘과 스피드를 당해내지 못하고 무너지고 말았다.

No.1 코트에서 No.1을 바라보는 조코비치의 포효 ⓒ AELTC / N. Tingle

페더러와 같은 시간에 No.1 코트에서 경기를 하였던 조코비치는 져도 잃을 것이 없는 토믹에게 고전을 하였다. 토믹의 서브로 시작한 1세트 첫 게임을 가볍게 브레이크하며 1세트를 6-2로 가볍게 이겼다. 토믹은 긴장한 티가 역력했고 조코비치는 한 수 가르친다는 듯 여유 있는 경기를 했다. 그러나 여유가 방심이 되었을까 토믹은 2세트를 6-3으로 따냈고 조코비치는 햇빛을 피하기 위해 쓴 모자를 벗고 경기를 하였다. 3세트 역시 토믹은 상승세를 이어가며 3-1로 앞서갔지만 여기서 조코비치는 3세트와 4세트 첫 게임까지 이어지는 여섯 게임을 연속해서 따내며 3세트를 이겼다. 그대로 무너질 것 같던 토믹은 4세트에서는 격렬히 저항하며 5-5까지 따라갔지만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하고 5-7로 패하였다. 조코비치의 3:1(6-2 3-6 6-3 7-5) 승리.

조코비치와 송가는 4강에서 맞붙게 되는데 이 경기에서 이길 경우 결승 결과는 상관없이 라파엘 나달(25, 스페인, 세계랭킹 1위)을 밀어내고 월드 넘버 원에 오르게 된다. 패하더라도 나달이 우승을 하지 못하는 경우 역시 세계랭킹 1위에 오르게 되어 나달이 수성을 위해서는 우승과 조코비치의 결승 진출 실패라는 두 가지 조건이 모두 만족되어야 하는 불리한 상황에 처했다. 조코비치와 송가의 상대 전적은 송가가 5승 2패로 앞서 있는데, 5세트 경기인 그랜드 슬램에서는 1승 1패로 팽팽하다.

나달, 윔블던 2연패를 향하여 ⓒ AELTC / S. Wake

나달은 조코비치가 승리를 거두고 떠난 No.1 코트에서 마디 피쉬(29, 미국, 세계랭킹 10위)와 4강 진출을 다투었다. 나달은 초반부터 거세게 몰아붙여 피쉬의 서브게임을 브레이크하면서 첫 게임을 따내 기선을 제압했다. 나달은 첫 서브 성공률이 50%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좋지 않았지만 나달의 주 무기는 서브가 아니었다. 4-2로 앞선 일곱 번째 게임에서 다시 브레이크를 하며 5-2로 달아나며 승기를 잡았고, 브레이크로 따라 붙는 피쉬를 브레이크로 맞불을 놓으며 1세트에서 승리했다. 2세트는 2-1로 근소한 리드를 유지하던 네 번째 게임에서 단 한 번의 브레이크로 승부의 향방을 바꾸었다. 피쉬는 3-5로 뒤진 아홉 번째 게임에서 15-0으로 앞서면서 저항하려 했으나 나달은 가볍게 연달아 네 포인트를 따내며 "Vamos" 를 외쳤다.

3세트는 서로 한 번씩 사이좋게 상대의 서브게임을 브레이크하면서 시작하더니 5-5까지 쫓고 쫓기는 랠리가 이어졌다. 피쉬는 40-15로 앞선 열한 번째 게임을 서브 에이스로 마무리하면서 6-5로 앞서갔고, 기어이 다음 게임까지 강력한 포어핸드 스트로크로 따내면서 집에 가지 않기 위한 저항을 하였다. 승부가 갈린 4세트에서 나달은 1-1에서 피쉬의 서브게임을 브레이크하면서 앞서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피쉬에게 큰 부담을 주었다. 피쉬는 0-30으로 뒤진 마지막 게임에서 포어핸드 스트로크가 벗어나 쓰리 매치 포인트에 몰렸고, 나달은 마지막 포인트를 백핸드 발리로 따내 6-4로 세트를 마감하며 경기의 승자가 되었다. 나달의 3:1(6-3 6-3 5-7 7-4) 승리.

3년 연속 윔블던 4강의 앤디 머리. 이번에도 여기가 끝인가 ⓒ AELTC / J. Buckle

나달이 피쉬를 상대하는 동안 센터 코트에서는 앤디 머리(24, 영국, 세계랭킹 4위)는 펠리시아노 로페스(29, 스페인, 세계랭킹 44위)의 경기는 가장 재미없는 8강 경기였다. 1세트에서 2-2로 팽팽하게 가면서도 머리의 일방적인 흐름으로 가는 듯했던 경기는 3-2 에서 맞은 로페스의 서브게임을 머리가 브레이크하면서 확실히 기울어졌다. 5-3으로 앞선 머리는 아홉 번째 게임 40-15에서 서브 에이스로 세트를 따냈다. 머리는 자신의 서브게임은 전혀 내주지 않으면서 2세트와 3세트에서도 한 번씩 로페스의 서브게임을 브레이크하며 단 세 번의 브레이크로 경기를 이기는 효율적인 경기를 했다. 광서버 앤디 로딕(미국)을 서브로 때려눕혔던 로페스였지만 서브 에이스는 고작 7개밖에 기록하지 못해 머리의 13개에 밀렸다. 머리는 첫 서브의 성공률이 56%에 그치는 서브의 부진이 아쉬웠지만 40개의 위너를 기록하면서 11개의 실책밖에 저지르지 않는 안정적인 스트로크가 돋보였다. 머리의 3:0(6-3 6-4 6-4) 완승.

나달은 머리와 4강에서 맞붙게 되었는데 두 선수의 상대전적은 11승 4패로 나달의 우세다. 특히 윔블던에서 나달이 우승한 2008년과 2010년 두 차례 맞붙어 두 번 모두 나달이 3:0으로 이긴 바 있다. 머리에게는 이번이 복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자 3년 연속 4강을 넘어 첫 결승 진출을 노려볼 때가 되었다. 반면에 나달은 머리를 이기면 항상 우승했던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어서 두 선수의 승부가 어떻게 펼쳐질 지 관심이 간다.

토믹은 어떤 선수로 성장할 것인가? ⓒ AELTC / S. Wake

달콤한 하루 휴식을 갖고 두 번째 월요일을 맞은 선수들. 악명높은 비는 내리지 않아서 경기가 지연되거나 취소되지 않았지만 뜨거운 햇살이 선수들에게는 편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경기를 마지막으로 윔블던에서 떠나야 하는 이들에게는 잔인한 블랙 먼데이가 되었다.

대회 7일째 (27일)

남자부에서는 '월드 넘버 원' 라파엘 나달(스페인)과 '황제' 로저 페더러(스위스)를 비롯한 4강 후보로 꼽힌 선수들이 모두 무사히 8강에 안착했다. 그러나 다른 네 명의 얼굴은 사실 기대했던 것과는 달랐다.

2세트 중간 인저리 타임을 갖는 라파엘 나달 © AELTC / T. Hindley

나달은 아르헨티나의 후안 마르틴 델 포트로를 3:1(7-6 3-6 7-6 6-4)로 꺾으며 8강에 올랐다. 델 포트로는 2009년 US오픈에서 페더러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지만 작년에 부진에 빠지며 한때 4위까지 올라갔던 랭킹이 485위까지 떨어지는 급추락을 경험했다. 그래도 두 개의 투어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조금씩 기량 회복을 하고 있던 중이어서 나달과의 명승부를 기대할 만하였다. 1세트부터 왼쪽 발의 이상으로 메디컬 타임을 요청하였던 나달은 다리를 저는 불편한 모습이었지만 1세트와 3세트 두 번의 타이브레이크에서 승리한 것이 컸다. 나달의 발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한 상태로 전해지고 있는데 검진 결과에 따라 다음 경기에 출전하지 않을 수도 있다니 결과를 지켜보아야겠지만 경기를 하는 모습으로 보아서는 출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Low-Vak 조코비치 © AELTC / S. Wake

나달이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거나 자신이 결승에 오르기만 해도 다음 주 세계랭킹에서 1위 자리에 오르게 되는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는 미카엘 로드라(프랑스)를 3:0(6-3 6-3 6-3)으로 쉽게 이겼다. 전형적인 서브 앤 발리 플레이어인 로드라는 54%에 그친 첫 서브 성공률이 발목을 잡았다. 바그다티스와의 힘든 경기에서 이긴 후 조금 더 정신을 차리게 된 것인지 조코비치는 냉정하게 경기를 하면서 1시간 41분 만에 경기를 마치고 8강에 진출했다. 조코비치는 8강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호주의 버나드 토믹을 상대한다.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페더러에게도 해당되는 말인지도 © AELTC / N. Tingle

페더러는 미하일 유즈니(러시아)의 공세에 첫 세트를 타이브레이크 끝에 지면서 대회 무실 세트 승리 기록이 중단되었다. 타이브레이크에서 2-1로 앞서던 페더러는 유즈니가 더블 폴트 등으로 자신의 서브 기회를 잘 살리지 못하자 4-2로 점수 차이를 벌렸지만 스트로크 미스가 이어지며 세트를 내주고 말았다. 2세트 2-2로 맞설 때만 하여도 페더러가 덜미를 잡힐 수 있겠다 싶은 분위기였지만, 페더러가 첫 브레이크를 성공시키며 3-2로 앞서 분위기를 반전시키며 세트를 따내고 3세트의 첫 게임 0-40으로 밀린 브레이크 위기에서 역전승에 이은 브레이크로 결정타를 날렸다. 페더러의 3:1(6-7 6-3 6-3 6-3) 승리. 페더러는 첫 서브의 성공률이 62%로 낮고, 실책을 25개나 범하는 등 다소 부진한 경기 내용이었지만 다재다능한 능력을 살려 승부처에서 점수를 따내며 승리를 이끌어냈다. 8강에서 맞붙는 상대는 조 윌프레드 송가(프랑스, a.k.a 쏭가 or 총가).

이제 머레이 대신 머리라고 부르기로 했다 (원어민 발음 중심주의) © AELTC / M. Hangst

앤디 머리(영국)는 리샤르 가스케(프랑스)를 상대로 3:0(7-6 6-3 6-2)의 승리를 거두었다. 첫 세트는 타이브레이크까지 가는 접전이었지만, 이후 두 세트는 머리가 쉽게 따냈다. 두 선수는 이 경기 전까지 맞대결에서 2승 2패를 기록하고 있었고, 작년 프랑스오픈에서 풀세트 접전을 벌여 머리가 두 세트를 먼저 내준 후 세 세트를 따내며 역전승을 거둔 명승부를 하기도 했었다. 머리는 첫 서브 성공률이 60%에 그쳤지만, 14개의 에이스와 36개의 리턴 실패로 이어질 만큼 위력을 발휘했고, 44개의 위너를 기록하면서 10개의 실책만을 저지르는 안정된 경기를 하였다. 머리는 쨍쨍한 햇빛을 의식한 듯 대회 처음으로 모자를 쓰고 경기를 한 것이 조금은 색달랐던 점. 8강의 상대는 이미 한 명의 앤디를 집에 보낸 스페인의 펠리시아노 로페스.

프랑스의 자존심 쏭가! © AELTC / T. Hundley

나머지 4명의 8강 진출자를 보면, 미국의 마디 피쉬(세계랭킹 9위)가 작년 준우승자 토마스 베르디흐(체코, 세계랭킹 7위)를 3:0(7-6 6-4 6-4)으로 누르고 8강에서 나달과 맞붙게 되었다. 1981년생으로 테니스계에서는 노장에 속하는 피쉬는 최근 들어 경기력이 더 좋아진 모습이어서 자신의 랭킹을 끌어올리고 있다. 송가는 세계랭킹 6위 다비드 페레르(스페인)를 3:0(6-3 6-4 7-6)으로 이기고 작년에 이어 8강 진출에 성공했다. 16강에 세 명이나 되었던 프랑스 선수 중 유일하게 살아남으며 프랑스 테니스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3라운드에서 이변을 연출했던 로페스는 역시 3라운드에서 가엘 몽피스를 누르며 이변을 일으킨 루카스 쿠보트(폴란드)와 그야말로 피 터지는 접전을 벌여 3:2(3-6 7-6 6-7 7-5 7-5)의 대역전극을 펼쳤다. 그 혈전을 치르고 나서 로페스는 바로 다음 경기장으로 달려가 혼합 복식 경기를 뛰어 승리를 거두었으니 이 사람 철인인지도. 토믹은 벨기에의 하비에르 말리세를 3:0(6-1 7-5 6-4)으로 완파하며 돌풍을 이어갔다. 세계랭킹이 고작 158위어서 이번 대회에도 예선을 거쳐 진출한 토믹은 그랜드 슬램 첫 4라운드 진출에 이어 8강 진출이라는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호주 남자 선수가 윔블던 8강은 참 오래간만의 일이다. 버나드 토믹 © AELTC / C. Brunskill

그래도 빅4가 건재했던 남자부보다 더 심하게 진창이 된 것은 여자 단식이었다. 윌리엄스 시스터즈(미국)가 나란히 짐을 싸게 되었고, 첫 그랜드슬램에 도전하였던 세계랭킹 1위 카롤리네 보스니아키(덴마크)도 무너졌다.

작년의 한을 푼 피론코바 © AELTC / M. Hangst

3라운드에서 베라 즈보나레바(러시아)에게 성공적인 복수를 했던 불가리아의 츠베타나 피론코바(32번 시드)는 비너스 윌리엄스를 2:0(6-2 6-3)으로 간단히 제압했다. 냉정하게 보았을 때 비너스는 그랜드 슬램에서 정상에 오르기 힘들 정도로 전성기에 비해 기량이 많이 쇠퇴했다. 그럼에도 윔블던 5회 우승의 관록을 믿어볼 만하였으나 반응 속도가 많이 느려진 몸이 반응하지 못하며 피론코바의 공을 받아내지 못했다. 피론코바는 이번 대회에서 단식 외에도 복식 멀티를 하였는데 복식 2라운드에서 패배한 것이 단식에 집중하는 계기가 될 것 같다.

바르톨리의 환호 © AELTC / N. Tingle

9번 시드를 받았던 마리온 바르톨리(프랑스, 세계랭킹 9위)는 서리나 윌리엄스를 2:0(6-3 7-6)으로 눌렀다. 오랜 공백을 가진 터라 초반에 발동이 잘 걸리지 않는 서리나는 1세트를 쉽게 내준 후에야 거센 저항을 했으나 바르톨리에게 패하고 말았다. 서리나는 비록 패하기는 했지만 윔블던 이후 다시 경기력을 회복할 경우 충분히 세계 정상권에 머물 실력을 가지고 있는 듯하여 조금 더 두고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디펜딩 챔피언으로서 포인트를 지키지 못해 세계랭킹이 저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은 면치 못하게 되었다. 바르톨리는 8강에서 이번 대회에서 무서운 기세로 달리고 있는 자비너 리지키를 상대하게 되어 쉽지 않은 경기가 예상된다.

보스니아키의 꿈을 무너뜨린 치불코바 © AELTC / J. Buckle

보스니아키의 패배는 더욱 드라마틱했다. 보스니아키는 도미니카 치불코바(불가리아, 24번 시드)를 맞아 1세트를 6-1로 가볍게 이겼다. 보스니아키는 1세트에서 첫 서브의 성공률이 79%에 달했고, 치불코바의 서브를 모두 리턴하면서 수비 여왕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러나 2세트부터 살아난 치불코바의 공격은 보스니아키의 수비를 붕괴시키기 시작했고, 타이브레이크 끝에 승리를 거두었다. 무려 74분이나 걸린 3세트는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으나 5-5에서 치불코바가 보스니아키의 서브게임을 브레이크하면서 앞섰고, 경기를 7-5로 끝냈다. 치불코바의 2:1(1-6 7-6 7-5) 승리. 치불코바는 올해 초 시드니 메디뱅크 인터내셔널에서 보스니아키를 이긴 적이 있기는 했지만 호주오픈에서는 패했고, 상대 전적이 2승 6패로 밀리고 있었는데 메이저대회 우승이 간절했던 보스니아키에게 통쾌한 복수를 했다.

샤라포바의 아악~! 서브 © AELTC / J. Buckle

아무리 그래도 현역 선수 중 윔블던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선수는 마리아 샤라포바(러시아)다. 단 한 차례 우승이었지만 그것이 너무도 강렬했던 그녀는 7년 전의 영광을 다시 누릴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샤라포바는 계속 대진 운이 좋은 편이었는데 4라운드에서도 중국의 펑슈웨이(20번 시드)를 맞아 2:0(6-4 6-2)의 쉬운 승리를 거두었다. 샤라포바는 여전히 서브에서 고전하였지만 서브 이후 경기를 풀어나가는 능력이 좋았다. 펑슈웨이에 비해서 9개 많은 위너를 기록하면서도 실책은 7개 적게 기록한 것이 가장 큰 승인. 그러나 상대 전적 2승 2패로 팽팽히 맞선 치불코바와의 8강 승부는 쉽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특히 올해 포함 최근 승부에서 모두 패한 것이 샤라포바로서는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다.

이번에는 인상을 덜 찌푸린 아자렌카 © AELTC / T. Hindley

빅토리아 아자렌카(벨라루스, 4번 시드)는 나디아 페트로바(러시아)를 2:0(6-2 6-2)로 가볍게 이겼다. 아자렌카는 자신보다 세계랭킹이 높은 선수들은 모두 떨어져서 첫 그랜드 슬램 달성의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페트라 크비토바(체코, 8번 시드)는 야니나 위크마이어(벨기에, 19번 시드)를 2:0(6-0 6-2)로 더 쉽게 이겼다. 시드 배정자들끼리의 경기에서 한 게임도 내주지 않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데 크비토바가 작년 윔블던 4강 진출이 운이 아니었음을 보여줄 지도 모르겠다. 시드를 받지 못한 이들의 대결에서는 3라운드에서 리나를 누르고 파란을 일으킨 자비너 리지키(독일)와 타미라 파스첵(오스트리아)이 8강행 티켓을 손에 넣었다.

윔블던 8일째인 28일에는 남자 단식 선수들은 휴식을 취하고(복식과 혼합복식은 경기가 있다), 여자 단식 8강의 네 경기가 모두 열린다. 과연 125회 윔블던 4강은 어떤 선수들이 올라갈 지 두고 볼 일이다.

이 분들도 센터 코트의 경기를 관람하셨다. 누구는 태어날 때부터 왕자, 나는 엄마 아들 © AELTC / M. Hangst

테니스 경기를 대개 영어로 중계되는 방송을 통해 보면서 영어식으로 읽는 것에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출신 국가 고유의 발음이 있을 터이니 그렇게 부르고 읽어도 되는지 조금은 신경이 쓰였다. 여러 언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이 아닌지라 선수의 경기 장면을 짧게라도 보거나 가이드나 대회의 프로그램을 통해서 알게 된 선수 이름의 철자는 알아도 어떻게 읽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더군다나 서양에는 이민자 출신의 선수들도 많은데 이들의 이름은 모국의 방식으로 읽어야 하는지 새로 이민을 간 나라의 방식으로 읽어야 하는지 혼란스러울 따름이다. 자신의 이름에 대한 전통을 지키기 위해 그대로 이름 읽는 법을 고수하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새로 정착한 나라에 녹아들면서 사람들이 부르는대로 흘러가는 것을 좋아하는 선수가 있어서 어느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어야 할 지 모르겠다. 같은 나라에서 같은 스펠의 이름을 쓰면서도 사람마다 다르게 부르기도 혹은 다르게 부르라기도 하는 판이니 직접 선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을 들어보지 않으면 어느 것이 맞는지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라는 것.

 

호주에 있을 때 옐레나 도키치(Jelena Dokic)의 경기를 종종 보았는데, 실제 그녀의 경기를 로드 레이버에서 보기도 있었다. 도키치가 무서운 아이로 세계 테니스계에 등장해 마르티나 힝기스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던 당시에는 유고슬라비아 국적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후 호주로 이민을 와서 호주 국적으로 경기에 참가하고 있었다. 어쨌든 유고 출신 선수로 뛰던 시절에는 이 소녀의 이름을 영어식으로 도킥이라 불러야 할 지 아니면 태생지인 유고 지역에서 불리는대로 도키치라고 불러야 할 지 모든 언론들이 고민을 하였던 적이 있다. 도키치 자신은 "도킥이라 부르든 도키치라 부르든 네 멋대로 하세요" 라고 했는데 우리나라 언론에서도 도킥이라고 기재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있다. 그런데 2009년 호주오픈에서 부활하며 '호주의 희망' 으로 떠올랐던 도키치는 도키치라고 불러달라고 했던 것 같다. 반대로 크로아티아 출신의 호주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버나드 토믹(Bernard tomic)은 호주에서 성장해서인지 "토믹" 이라는 영어식 발음을 선호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선수의 이름을 사정을 모르는 제삼자가 부르기는 쉽지가 않다.

외래어 표기법이 있다고는 하지만 사실 잘 모르겠고, 개인적으로 이름과 지명은 최대한 소리나는 것과 가깝게 쓰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여기서는 이 방식을 최대한 고수해볼까 하는데 외국 선수의 이름을 한글로 옮기다보면 발음 나는대로 옮기기가 쉽지만은 않다. 영국의 앤디 머레이의 경우 머레이가 아닌 머리가 더 비슷한 발음인데 그냥 앤디 머리라고 쓰면 병신 취급을 받게 될 지도 모른다. 미국의 앤디 로딕만 하더라도 앤디 롸딕이라고 버터를 잔뜩 발라서 표기하면 재수없는 녀석이 되고 말 것이다. 이미 벨기에 국적을 가지고 있지만 프랑스계인 사람인 쥐스틴 에넹 역시 에넹이 아닌 에나와 가깝게 발음을 하는 것은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에넹이 사람들이 자신을 영어식으로 불러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점이다. 호주오픈에서 에넹이 승리를 거두자 인터뷰를 하는데(아마 짐 쿠리어였던 것 같지만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다) "저스틴~" 하고 아주 영어식으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고 에넹 역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연스럽게 인터뷰에 응했다. 어쩌면 도키치가 했던 말처럼 "네 멋대로 부르세요. 대신 나를 기억하세요"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폴란드계 덴마크인 캐롤라인 워즈니아키(Caroline Wozniacki) 역시 덴마크인은 '카롤리네 보스니아키' 라고 발음을 하고 어떻게 보면 핏줄이 닿은 폴란드식으로 불러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데 국제 무대에서 통용되는 발음은 영어식인 캐롤라인 워즈니아키다. WTA의 발음 가이드에도 보스니아키가 아닌 워즈니아키(woz-nee-AK-ee)라고 하는 것을 보면 이 경우도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테니스에서 영어가 대세이기에 굳이 자신의 이름을 원어로 불러달라기보다는 대세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냐고 혼자서 지레짐작을 해본다. 우리나라의 언론에서도 한때 보즈니아키라고 하다가 워즈니아키로 쓰는 것도 이런 지침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관련링크 : http://ko.forvo.com/word/caroline_wozniacki/ (덴마크인의 워즈니아키 이름 발음)

스위스 국적의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의 경우도 난감한 케이스다. 스위스는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와 스위스 고유어인 래토-로만어까지 네 가지의 언어가 공식 언어인데 같은 이름을 놓고도 발음하는 법이 서로 다르단다. 그러나 페더러의 이름 로저는 남아공 출신의 어머니가 지어준 영어 이름이라고. 알면 알수록 복잡하다. 아~

관련링크 : http://ko.forvo.com/word/roger_federer/ (로저 페더러 이름의 독일식, 프랑스식 발음 비교)

재미있는 것은 역시 폴란드 출신으로 캐나다로 이민을 간 Aleksandra Wozniak 이라는 선수가 있는데, WTA 가이드에는 이 선수를 영어식이 아닌 폴란드식으로 보즈니악(VOZ-nee-ak)이라고 부르라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미국에서는 영어식으로 워즈니악이라고 부른다는 것.

 


Predicto TV – Andy Roddick, Aleksandra Wozniak by Predicto_Mobile

 

ATP와 WTA에서 선수 이름 발음에 대한 가이드(Pronunciation Guide)를 발간한 적이 있다고 하는데 WTA의 가이드는 2011년 미디어 가이드에도 수록되어 있어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지만, ATP의 가이드는 떠돌았다는 말은 있는데 막상 구글링을 해봤는데 찾을 수가 없다. 그런데 이 가이드에 대한 평판도 좋지는 않으니 전부 믿을 것은 못 되는가보다.

 

위의 동영상은 각 나라 사람들이 자국 선수들의 이름을 읽어주는 것인데, 여기에도 발음이 틀렸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해당 언어를 모르니 어느 것이 잘못되었는지 쉽게 구할 수 있는 자료로는 가장 현실적인 것이 아닌가 싶다.

테니스 선수는 아니지만 성룡(成龍)의 경우를 보면 중국어 발음대로 하면 '청룽' 이라고 한다. 그런데 성룡이 우리나라에 오면 '안녕하세요. 성룡입니다.' 라면서 자신의 이름을 한국식으로 말을 한다. 자신의 나라에서 불리는 발음을 고집하지 않고 그 나라의 문화와 습성에 맞게 알아서 배려하는 모습이다. 성룡이라 부르든 청룽이라 부르든 크게 개의치 않듯이 테니스 선수들도 자신의 이름에 대해서 어떻게 부르든 개의치 않는다면 그냥 부르고 그렇게 읽어도 큰 지장이 없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앞으로는 어지간하면 그나마 확실한 물증이 있는 WTA의 가이드에 따라서 선수의 이름을 표기하려고 한다. 언젠가는 에넹 대신 에나라고 쓰게 될지도 모른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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