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퍼이나바

오사카에서의 셋째 날(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둘째 날이라고 해야)을 맞이했다. 금요일은 한국이고 일본이고 모두 평일로 일하는 날이다. 그래서 새벽에 손바닥보다 조금 큰 넷북을 가지고 성질내면서 일을 하다가 몇 시간 자고 일어나 오전 내내 일을 하였다. 토요일, 일요일이 있으니 하루 정도 희생하는 것쯤이야.. "오후부터는 땡땡이다" 라고 마냥 좋아할 수는 없는 것이 우려했던 그것이 현실로 일어날 것 같단다. 19호 태풍 봉퐁이 열도 전역을 쓸고 갈 것으로 예상되는데, 주말부터 오키나와를 시작으로 영향권에 들 것이라고 한다. 7년 전 일본에서 겪었던 태풍의 위력은 아주 무시무시했는데.. 여기는 태풍도 스케일이 달라.

이제부터 JR웨스트 간사이 와이드 패스를 사용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사철이나 지하철은 이용하지 않고 무조건 JR만 타는거다. 특급열차도 신칸센도 탈거야.

신이마미야역에서 텐노지역으로 이동. 태풍이 온다고는 하는데 아직은 날이 아주 맑다.

카모행 야마토지쾌속열차를 타고 텐노지역에서 하차.

신이마미야역은 동네는 후줄근하지만 난카이와 지하철 사카이스지센 환승역이라 나름 이용객이 많은 편이라 그런지 쾌속열차도 정차하는 역이다. 신이마미야에서 승강장에 가니 열차가 도착해 있어서 사진은 내린 다음에 찍기로. JR니시니혼의 간사이지역에서 자주 볼 수 있는 221계 쾌속열차. 열차 계열은 잘 모르는데 시간표 조회라든가 운행 상황 같은 정보 찾다보면 조금씩 주워듣게 되고, 철도에 관심이 많은 분들께 묻고 정보를 얻기도 한다.

태풍 19호 때문에 10월 13일부터 14일까지 운행에 차질이 있을 것이라는 안내를 하고 있다.
내가 탈 열차는 여기에 없고 저 계단을 올라가서 옆에 있는 18번 플랫폼으로 간다.

교토행 특급 하루카가 탈 열차.
열차가 들어오는 중에 찍었는데 셔터스피드가 따라가지 못하네.

하루카는 간사이공항으로 갈 때만 관공특급이 되고, 간사이공항에서 교토 방면으로 갈 때는 그냥 특급으로 불린다.

텐노지에서 신오사카나 교토 방면으로 가려면 오사카칸조센(大阪環状線)을 타고 오사카역에서 다시 도카이도혼센(東海道本線. 오사카-교토 구간은 흔히 교토센京都線이라는 별칭으로 불림)을 갈아타야하는 불편함이 있는데 하루카를 타면 신오사카나 교토에 쉽게 갈 수 있다. 환승이 없어 편리하고 정차역이 적어서 빠른 것도 장점이지만, 사람 많아서 부대끼는 것을 싫고 좌석이 더 편하고 진행방향으로 좌석 방향이 있어서 특급열차를 선호하는 편이다. 어차피 추가 비용 들일 필요가 없다면 더 빠르고 비싼 요금의 열차를 타고 싶은 마음도 없잖아 있고.

하루카는 오사카칸조센을 따라가다가 오사카 카모츠센(貨物線.화물선)을 타고 신오사카역으로 이동하게 된다. 저 멀리 보이는 건물이 이 앞에서 잠시 소개했던 오사카역. 오사카역은 유일하게 오사카칸조센과 교토센 모두 지나가는 역이지만 하루카는 이 역을 건너뛰는 것이 아닌 아예 지나가지 않는다. 도카이도센은 오사카역의 북쪽, 칸조센은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 두 노선이 가장 수요가 많아 빡빡하게 운행하기에 그 중간에 다른 선로로 교행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오사카역을 지나지 않고 신오사카역쪽으로 합류하는 화물선을 타고 도카이도센으로 진입하는 방식으로 운행하고 있다. 역시 텐노지에서 신오사카 구간을 운행하는 특급 쿠로시오도 이 경로로 운행을 하고 있다. 그나저나 저 황금부지에는 어떤 건물이 들어설 것인지..

요도가와를 건너면 신오사카역이다. 도카이도신칸센 건설시 오사카역이 아닌 신오사카를 종착역으로 한 것은 이 요도가와를 두 번 건너는 불편을 없애기 위해서였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오사카역 주변은 썰렁하다.

교토까지 가지 않고 신오사카에서 내릴 생각이었는데 어디에 갈 지 아직 정하지는 않았다. 와카야마방면은 시간상 늦은 것 같아서 일찌감치 포기했는데, 가보지 않은 곳 중에서 어디라도 가려고 일단 왔다. 신칸센을 타든 특급 열차를 타든 오래 기다리지 않고 바로 탈 수 있는 열차를 타고 그 곳에 가기로 했다.

신오사카역은 아직 내부 리모델링 공사가 완전히 끝나지 않아서 어수선한 모습이 남아 있는데 공사를 하면서 우동가게가 사라져서 마음이 아프다. 나 여기 나름 단골이었는데.. 흑흑 ㅠ.ㅠ 여전히 태풍 19호 때문에 열차 운행에 영향이 있을 것 같다는 안내를 전광판으로 하고 있다.

산요신칸센은 신오사카-오카야마 구간까지 이용 가능한데, 신고베역은 고베 중심부인 산노미야까지 내려가려면 20분 정도 걸어야 해서 별로 가고 싶지 않고, 니시아카시는 내려서 할 일이 없고, 히메지는 오사카에 묵을 만한 곳이 없을 때 지내는 곳이고, 아이오이는 진짜 막막한 곳이고, 오카야마 밖에 갈만한 곳이 없네. 신고베에서 산노미야까지 지하철 역 하나인데 요금은 210엔이고, 버스도 아마 200엔인가 그럴거다. 비싸도 너무 비싸~ 그래서 안 탄다.

흐~음.. 가장 위에 있는 특급 수퍼 하쿠토 7호를 타보자. 이 열차는 돗토리를 지나 구라요시까지 간다. 그런데 간사이 와이드 패스로는 서쪽 방면의 재래선 산요혼센은 구라시키까지 탈 수 있어서 카미고리(上郡)까지는 갈 수 있는 것 같은데 이것은 차장에게 확실히 물어보기로 하고 열차를 기다린다. 수퍼 하쿠토는 카미고리까지 JR선을 달리고 카미고리-치즈간은 치즈큐코(智頭急行)라는 별개의 회사 구간을 운행하기 때문에 이 구간의 요금을 따로 내야 한다. 치즈부터 돗토리까지는 다시 JR구간이지만, 이 패스의 유효범위를 넘어가기에 역시 따로 요금을 내야해서 카미고리가 추가요금을 내지 않고 갈 수 있는 마지막 역이다.

이 곳은 신오사카역입니다.

매연과 함께 열차가 소음을 내면서 들어온다. 비전화구간을 달리는 열차인지라 기름 타는 냄새를 풀풀 풍기는 디젤 열차가 운행하고 있다. 열차는 HOT7000계로 치즈큐코 소속의 차량이라고. 9월에 히메지, 산노미야에서 4박을 하다보니 이 열차를 타는 일이 있어서 심심해서 돌아다니다가 알았다. 열차의 특징이라면 아래 사진과 같이 객차의 양 끝 스크린으로 앞뒤의 모습을 생중계하고 있다는 것. 옆으로 난 창문으로만 바깥을 볼 수 있는 승객들을 위한 서비스인 것 같다.

그런데 생각만큼 신나지는 않은 것 같다.

평일 대낮이라 그런가 사람들이 별로 없다.

치즈큐코의 차량이라도 JR니시니혼의 구간을 운행하고 있기에 승차하는 기관사와 차장은 JR니시니혼의 아저씨들이 맡고 있다. 카미고리까지 가도 되는지 확인사살을 해야하니까 잘 된 일이다. 오사카역을 지나고 다음은 산노미야. 그런데 산노미야에서 안 내릴래.

산노미야는 패스.

산노미야를 지나니 차장 아저씨가 조금 시간이 생겼는지 검표를 하신다. 일단 패스를 꺼내서 쫙 보여주고 헤헤.. 오카야마까지 특급열차라든가 보통열차를 타고 재래선으로 가려고 하는데 카미고리까지 타도 괜찮냐고 물어본다. 예상대로 카미고리까지 가도 된단다. 여기서 하나 더 그럼 카미고리에서 오카야마 가는 열차가 있냐고 물어보니 사람 좋은 이 아저씨는 수퍼 이나바가 14시 42분에 있다고. 그런데 이 아저씨 사람은 좋은데.. ㅠ.ㅠ

산요혼센 스마카이힌코엔(須磨海浜公園)부터는 왼쪽 편(하행 방향 기준)으로 태평양을 따라 달려서 경치가 괜찮다. 히메지 방면으로 가는 경우 진행 방향 왼쪽, 고베 방면으로 갈 때에는 오른쪽에 앉는 것을 추천.

'레인보우 브릿지' 라는 애칭을 가진 아카시카이쿄오하시(明石海峡大橋.아카시해협대교)가 보인다. 경험상 주변이 어둡고 조명이 강하지는 않아서 어두워지면 야경 사진을 찍기에는 그다지 좋지 않은 것 같다. 내 카메라 성능이 좋지 않아서 그런 것일 수도.

마이코역을 지나 아사기리쪽으로 가고 있다. 아사기리 다음은 이 열차의 정차역인 아카시.

협궤임에도 최고 시속 130km로 달린다는 JR의 강력한 무기 신쾌속열차다. 다른 사철과는 달리 교토(마이바라)에서부터 히메지(아보시 또는 카미고리)까지 한 번에 달리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은데, 속도 역시 빠르다는 장점이. 다만 고베-아카시 구간은 선형이 좋지 않아서 이 정도까지는 속도를 내지는 못한다는 것 같다.

아카시역에서는 멀리 아카시성이 보인다. 일본의 100대 명성에 선정되었다고 하는데, 100개면 어지간한 성들이 다 포함된 것 같네. 나중에 시간되면 한 번 들러보기로 하고 열차를 타고 계속 간다.

아카시를 지나면 논과 밭이 보이는 빈도가 높아진다. 도시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뜻이겠지.

뭔가 도시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싶네. 신칸센 선로도 보이는 것을 보니 히메지역에 다가가고 있는 것 같다.

세계문화유산 히메지성이 있는 히메지역.

별다른 이유는 없는데 그냥 호감가는 동네다. 그러나 이번에는 패스. 히메지성은 2차대전 당시 폭격을 피해서 예전 모습 그대로 지금까지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성 중의 하나로, 일본의 국보이자 세계유산으로 선정된 중요한 문화재다. 일본에서 흔한 일이지만 지반이 약해서 지반 침하가 이루어져 성이 기울어지고 그랬다는데 30년에 걸친 쇼와 대수리를 통해 이 성을 해체했다가 재조립하는 보수공사를 했고, 2010년부터 2015년 3월까지 10억 엔 정도를 들여 다시 한 번 이 성을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헤이세이 대수리를 하고 있다. 이 성의 보수공사가 완료되면 히메지의 관광객이 늘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단다.

이제 시골이라는거야.

히메지역을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흔히 볼 수 있는 농촌 광경이 펼쳐진다. 쉽게 말해 이 동네는 시골이라는거지. 지금은 논에 있던 벼들을 다 수확하지 않았을까 싶다.

열차에 흔적을 남기고 잠시 세면대를 이용했다.

카미고리역에 도착. 리뉴얼 수퍼 하쿠토가 2008년 굿디자인 수상을 했다고 자랑하고 있다.

역시 차장 아저씨가 말한 14시 42분은 여기 도착 시간이었어. 나는 다음에 오는 수퍼 이나바의 시각을 물어본건데.. 그래도 다행히 수퍼 이나바가 오는 시각까지는 30분도 남지 않았네. 앞서 말한대로 이 역에서 승무원 교대가 이루어지고, 열차는 산요혼센에서 치즈큐코센으로 들어간다.

이제부터 잠시 굿디자인상을 수상한 수퍼 하쿠토의 모습을 감상하시겠습니다.

HOT의 의미는 효고(Hyogo), 오카야마(Okayama), 돗토리(Tottori) 세 현의 영어 이니셜을 딴 것이라고.

열차가 출발하니 셔터 스피드가 따라가지 못하는 이 바보 카메라.

열차는 이제 치즈센으로 들어가 버렸고, 옆에 치즈큐코의 카미고리역이 있다.

인터넷에서 검색하다 알게 되었는데 일본에는 '철도무스메(鉄道むすめ)'라고 각 철도회사들의 제복을 입은 캐릭터들이 있다고 한다. 무스메라는 이름처럼 다 여자들인데, 아무래도 남자 중에 철도팬이 많아서일까 철덕들을 상대로 별짓을 다하네. 치즈큐코에도 철도무스메가 있나 구글링해서 찾아보았더니 있다.

이름은 미야모토 에리오(宮本えりお)라고 수퍼 하쿠토 차장이라고 하네. 이런 차장 언니 있으면 치즈역까지 타고 갔지.. 아이고~ 의미 없다.

역 이름을 보니 카키고리(カキ氷.빙수) 생각이 나네.

郡가 ごおり로 읽히는 장음이어서 카미고오리라고 하기도 하고 일본어 표기법에 의해 초성에 거센소리를 쓰지 않아서 가미고오리 또는 가미고리라고도 한다. 그러나 나는 카미고리라고 할래.

쩝. 그냥 조용한 시골역이라는 말 밖에 할 말이 없다.

방문 기념으로 애써 치즈큐코의 카미고리역에 가까이 가서 사진을 찍어주었어.
나중에 돈 벌어서 치즈큐코센도 타도록 할게.

할 일이 없어서 플랫폼 사진도 찍는다.

수퍼 이나바와 수퍼 하쿠토의 타는 곳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스포츠센터가 있어 야간에도 야구나 테니스 등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시골이지만 부럽네.

건너편에 출구가 있다. 배가 고프고 하니 잠깐 나가서 먹을 것을 사와야겠어.
그런데 역 앞에는 그 흔한 편의점 하나 없다. 뭐 이래~

그래도 가게가 있을 것 같아 수색을 했고 드럭스토어를 찾았다. 드럭스토어라고 약 빨고 장사하는 곳 아닙니다. 나름 이 지역에서 날리는 체인점인 것 같았는데 지금 찾아보니 오카야마 쪽과 간사이 4개 현에 110개의 지점을 가진 곳이라 한다. 근데 왜 난 지금까지 못봤지?? 들어가서 도시락 하나와 뿅가리스웨트를 하나 사면서 1엔짜리 모아서 떨어버렸다. 아싸! 짐이 가벼워진 것 같아요!

열차가 자주 다니는 곳이 아니고 딱히 동네가 사람을 불러모으는 곳도 아니라서 복잡하지 않다. 평일이니까 모두 출근하고 학교에 가든가 했겠지.

그냥 시골이라니까.

역으로 돌아가니 수퍼 이나바가 이미 도착하고 있다. 아~ 이런! 저거 못타면 오카야마에 한 시간 정도 늦게 도착하게 되는데 해가 길지 않은 계절이니까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열차에 뛰어든다. 열차는 단촐하게 2량 편성인데 1호차가 지정석, 2호차가 자유석임을 확인하고 2호차에 올라탄다. 자유석이니까 빈 자리를 찾아서 앉아야 하는데 끝에 빈 자리 두 개가 있다. 럭키~ 타고 난 뒤에 생각해보니 여기서 승무원 교대하고 진행방향 바꾸고 해야 하니 시간이 꽤 걸릴 텐데 괜히 서두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수퍼 이나바는 예전에 봤을 수도 있는데 기억에 없고, 생각보다 단촐한 열차다. 낙장불입이라는 말처럼 이미 타버린 열차니까 사진 찍겠다고 다시 내리지는 않는다. 탑승객들 다수가 업무차 상경하는 것 같고,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많고 해서 소란을 피우고 싶지는 않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선로. 구배가 심해서 탈선 방지를 위하여 가드레일을 설치해 두었다.
서울지하철 1호선 시청-종각역 구간에도 가드레일이 설치되어 있지 않나?

배고프니까 일단 밥을 먹는다.
따뜻했으면 맛있을 것 같은데..

오카야마에 도착.
모두 다 내린 열차 안은 이렇네.

열차는 회송으로 행선LED를 바꾸어 놓았네.

안테나숍인 "돗토리.오카야마 신바시관" 오픈 기념이라고 이런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는데 9월 28일부터 10월 27일까지 기간 한정이란다.

두 량이라 단촐하지만 빈 좌석 가득한 열차를 끌고 다니는 것보다는 낫지.

돗토리현의 상징인 배꽃을 그려놓았다고 하네.

이렇게 오카야마에 도착했음.

오카야마 맞아요~~~
오른쪽에 오카야마역 명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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