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레이드

퍼스에 가다

2009. 10. 17. 23:00

학기 중에 있는 짧은 방학맞이로 잠시 서호주의 수도 퍼스에 다녀왔다. 4월 초에 잠깐 멜번에 다녀온 것을 빼면 집-학교-집을 반복하던 일상에서 벗어나 오래간만에 나들이를 가기로 한 것. 그나마 가까운 대도시라는 애들레이드에서도 비행기로 세 시간 가까이 걸리는 먼 곳이지만 호주에서도 외딴 곳에 위치한 서호주에 한 번 다녀오고 싶었던지라 Jetstar의 Friday Frenzy Sale에 왕복 119달러라는 특가에 구입한 항공권을 가지고 4박 5일의 퍼스 방문을 하게 되었다. 진정한 서호주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지만 그런 것이 있을 리는 없고, 저렴하게 도시 구경이나 하기로 한다. 호주의 도시야 다 거기서 거기지만..


괜히 잠꾸러기가 아니라서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은 언제나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여행을 떠나는 날, 특히 아침 일찍 비행기를 타는 날에는 밤을 새우고 나가는 것이 어느덧 습관처럼 되어 있다. 비행기를 타고 내리는 순간부터 피로가 몰려오면서 고통스러운 첫 날을 보내게 되지만, 비행기를 놓치고 공항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것보다는 훨씬 낫기 때문에.


살고 있는 집에서 공항까지 바로 가는 버스가 없어서 도보로 35분 정도 거리에 있는 버스 정류장까지 뛰어가려고 했으나, 다행히 집주인 형님께서 이른 시각부터 버스 정류장까지 태워주신다고 하여 아침부터 허둥대는 일은 간신히 면하였다.


작지만 국제선과 국내선 모두 취항하는 애들레이드 공항이다. 공항이 크지 않아서 검색대가 체크인 카운터 옆에 있고 통과 거리가 길지 않아서 좋다. 국내선인만큼 절차는 그다지 까다롭지 아니한데, 가끔 한 번씩 잘못 걸리면 집중수색을 하기도 한다. 검색대는 쉽게 통과했지만 젯스타 요금 중 가장 싼 JetSaver Light는 10kg 미만의 기내용 짐만 반입을 허용하기 때문에 체크인을 할 때 들고 있는 가방의 무게를 재야만 했다. 평소에는 조그만 백팩을 매다가 이번에는 가난한 여행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토트백을 들고 왔더니 무게를 재란다.


엄연히 학기 중에 있는 방학이기 때문에 숙제가 있어서 모든 것을 잊고 무작정 즐길 수만은 없다. 별로 반갑지 아니한 수학 숙제를 안고 가게 된다. 얼마 무겁지 아니한 바인더이지만, 어찌나 거추장스럽던지.. 기내에서 샌드위치라도 사먹을라 치면 돈이 꽤 들기에 하나에 99센트짜리 초코바를 두 개 사서 아침 대용으로 준비해왔다. 떠나는 순간보다 늘 더 즐거운 것이 떠나기 전 준비를 할 때다.


평소 단 음식을 즐기지 않는지라 달디 단 초코바가 도저히 넘어가지 않아서 커피 한 잔을 사서 마시게 된다. 지갑에 있던 동전을 탈탈 털어서 호주 및 뉴질랜드 지역의 트레이드 마크 커피인 플랫 화이트를 마신다.


공항의 상점들은 일찍부터 문을 열고 손님맞이에 분주하지만, 커피숍에만 사람이 조금 있고 모두 졸린 눈을 비비며 앉아 있다. 역시 쇼핑에는 큰 관심이 없는지라 편한 자리를 찾아 앉아서 탑승 시각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것이 타고 갈 비행기인가보다. 가장 싼 비행기를 찾아서 타다보니 대부분 젯스타를 타게 되어 나름대로 Jetstar Frequent Flyer가 되었는데, 가장 싼 좌석은 포인트 적립이 되지 않으므로 아무런 혜택이 없다. 젯스타의 많은 비행기가 에어버스의 A320이라는 것과 탑승시 안전사항에 대한 설명은 데모 키트만 주면 승무원처럼 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


젯스타 기내의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이 익숙하다. 통로쪽 좌석에 앉았기 때문에 뚱뚱한 승무원이 지나다니며 치지 않기를 바라며 자리에 앉았다. 비행 중에 숙제라도 하려고 바인더를 꺼내어 안고 탔지만 졸려서 눈을 뜨기 힘든데 숙제는 무슨 숙제냐..


이렇게 인사불성으로 뻗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역시 아침 비행기라서 정신을 가누지 못하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많다. 창가쪽에 있는 남자친구로 보이는 녀석은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어찌나 귀찮게 하던지..


공항에 도착 후 따로 체크인한 짐이 없기 때문에 선두 다툼을 하며 공항 밖으로 빠져 나왔다. 다행히 비행 중에 읽은 젯스타 잡지 중에서 퍼스 국내선 공항에서 시티까지 시내버스가 있다고 해서 버스를 찾아서 탔다. 짐이 많은 것도 아니고 어디로 갈 지 정하지도 않은 상황이라서 최대한 돈을 아낄 수 있는 시내버스를 타기로 한다. 요금은 $3.60으로 애들레이드에서는 한 번도 내보지 않은 거금. 재미있게도 호주에서 다른 주의 학생은 교통수단의 할인(Concession) 혜택에서 제외가 되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학생증은 SA에서만 유효하고, 다른 주에서는 일반 성인의 요금을 내야 한다. 멜번에서는 편도 16달러의 스카이버스를 타야 하는 것에 비하면 아주 저렴하지만 시내버스 한 번 타는 것이 4000원에 가깝다면 배가 좀 아프다.


한국에서 가끔 버스기사 폭행이 문제가 되기도 하는데, 여기서도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지 아예 쇠창살로 칸막이를 쳐놓아서 기사의 안전을 보장하고 있다. 다른 곳에서는 보지 못한 독특한 광경이다. 버스는 돌고 돌고 돌아서 시티를 향하여 가고, 고층 건물들이 보이면서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 시티라고 생각되는 곳에서 내려서 사람들이 많이 향하는 쪽을 따라서 걸어가니 자동차가 다니지 않도록 지정된 상점 거리가 나온다. 길을 제대로 찾기는 찾은 듯.


여신의 모습을 하고서 노상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람들은 지나가다가 이 광경을 보고 동전 하나씩을 던져주기도 하는데 이 때는 골드 코인, 즉 1달러나 2달러짜리 동전을 주는 것이 암묵적인 예의이다. 그러나 실버 코인을 준다 할 지라도 그것이 어디냐 싶다. 여태 먹고 살기 바빠서 동전을 준 적은 없으니..


외모에서 일본 사람 티가 확 나는 젊은 아가씨가 다가가 동전을 주고 같이 사진 촬영을 부탁한다. 대개 동전을 주지 않아도 사진 촬영을 거부하지 않지만 저것이 기본적인 예의인 것 같다.


아가씨와 같이 있던 친구가 사진을 찍는데, 이 모습을 지켜보면서 따라서 사진을 찍는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거냐!! 나중에 금색 칠을 하고 황금박쥐 퍼포먼스나 한 번 해볼까 싶다.


Murray Street Mall에 있는 관광안내소에서 기본적인 정보를 얻고자 했으나, 4박 5일 동안 무엇을 할 것인지 아무런 계획이 없는지라 오히려 무슨 정보를 찾느냐는 질문을 받게 된다. 음.. 음.. 저기 그냥 사실 별 생각이 없어서 무엇을 할 지 모르겠다고, 하루 이틀 정도는 퍼스 구경을 하고 남는 시간에는 근교를 돌아보고 싶다니 퍼스 시티 도보 구경에 관한 자료를 몇 개 주고, 퍼스와 프리맨틀에 관한 자료를 챙겨서 준다. 잊지 않고 퍼스 시티 지도를 하나 챙기고 마지막으로 대중교통에 관해 물으니, 트랜스퍼스(TransPerth)에 가서 직접 물어보는 것이 좋을 거란다. 나름 흡족해서 나오기는 했으나 생각해보니 숙소에 관한 것을 물어보지 않았다. 그 새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 있어서 또 기다리기는 귀찮고 돌아다니다가 보이는 백팩을 찾아가기로 했다.


 

배럭 스트리트를 따라 스완강쪽으로 내려가다보니 백팩이 보이지 않고, 반대쪽으로 가보니 한 두개 보였다. 노스브릿지쪽에 백팩이 몇 개 있다는 것 같지만, 걸어가기도 싫어서 웰링턴 스트리트에 있는 아무 곳에 들어가보기로 하는데 처음 간 곳은 첫 느낌이 좋지 않아 두 번째로 발견한 Globe Backpackers에 가서 체크인을 하고 짐을 던져놓고 나왔다.


짧지만 나름 뜻깊은 인연이 있는 스토리발전소의 김남경 소장님이 열심히 만드셨다는 퍼스의 한국어판 안내서가 있다고 해서 웰링턴 스트리트(Wellington Street)와 포레스트 플레이스(Forest Place)의 교차점에 있는 관광안내소를 찾아서 물어보았으나, 한국어로 된 것은 없고 영어로 된 것밖에 없단다. 아니 내가 아는 사람이 서호주관광청의 의뢰로 그 책을 만들었다는데 없냐고 다시 물으니 그런 것은 없단다. 아는 분이 만드셨다길래 그 작품을 보고 싶었던 것이지, 꼭 한글로 된 안내 책자가 필요했던 것은 아닌지라 "Experience Perth" 라는 영어로 된 공식 책자를 받아서 나왔다.


여러 가지 일일 투어 상품이 있지만, 아직 딱히 무엇을 해야할 지는 몰라서 망설이다가 나왔다. 차가 없고, 체류 기간이 길지 않다면 가장 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는 것이 일일 투어지만 이상하게도 구미에 맞는 것을 찾지 못했다. 퍼스에서도 2000km 이상 떨어진 브룸(Broome)에 가서 낙타를 타고 싶다는 생각만 하니 투어 상품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수밖에..


일단은 여행지에 도착, 그리고 거처까지 마련을 했으니 어느 정도 긴장이 풀리고 슬슬 몸이 무거워지기 시작하지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기에 시티를 조금 더 둘러보기로 했다. 해이 스트리트(Hay Street)에서는 패션쇼가 열리고 있었는데..


역시 백인 아가씨들은 길기도 하다. 그러나 호주에 오면 이런 아가씨들만 있다고 생각하면 크나큰 오산이다. 극히 일부분임을 명심해야 한다.


여기 사람들도 신기한지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구경을 하고 있었다. 날씨가 제법 쌀쌀했는데 저 모델들은 춥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추위를 느낄 틈도 없었겠지만.. 이제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 어디로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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