윔블던 8강전

2004년 혜성처럼 등장했던 17세 소녀가 윔블던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그녀는 곧 본업인 테니스 이외에도 패션과 섹시 아이콘으로 유명해지며,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입을 올리는 여자 운동 선수가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어깨 부상으로 수술과 재활의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했고, 다시 힘들게 2006년 이후 5년만에 윔블던 준결승에 올랐다. 그녀의 이름은 다름아닌 마리아 샤라포바(24, 러시아, 세계랭킹 6위)다.

2011 Ladies' Single Final Four ⓒ AELTC

대회 8일째 (28일)

4라운드까지는 남녀 단식이 함께 열렸지만, 이제부터는 하루씩 번갈아 가면서 경기를 치를 예정이다. 물론 비라는 변수가 있어서 지붕이 있는 센터 코트가 아닌 다른 코트에서 경기하는 선수들의 경기가 연기될 가능성이 있지만 한국 시간으로 오늘 밤에 펼쳐지는 남자 8강 단식 두 경기를 제외하면 준결승과 결승은 센터 코트에서 열리기에 예정대로 열리게 될 것 같다.

환호하는 리지키 ⓒ AELTC / N. Tingle

센터 코트에서는 자비너 리지키(21, 독일, 세계랭킹 62위)와 마리온 바르톨리(26, 프랑스, 세계랭킹 9위)의 경기가 열렸다. 리지키는 중국의 리나를, 바르톨리는 디펜딩 챔피언 서리나 윌리엄스를 탈락시키며 우승 후보를 집으로 보낸 선수들. 쉬운 승부가 되지 않을 것이라 보였는데 3세트까지 갔지만 리지키가 경기 대부분을 이끌어갔다. 리지키는 1세트를 6-4로 승리했고 2세트 역시 5-4로 앞선 채 자신의 서브게임을 맞았다. 40-0의 쓰리 매치 포인트, 그러나 백핸드와 멋진 로브가 네트에 걸렸고 포어핸드마저 실책을 저지르며 듀스에 돌입했고, 더블 폴트를 저지르며 5-5 동점을 허용하고 말았다. 한 게임씩 더 따내며 결국 타이브레이크에 돌입하였고, 리지키는 집중력 부족으로 4-7로 패했다. 그러나 이미 바르톨리는 코트 전체의 빈 곳을 찾아 샷을 무차별적으로 날려댄 리지키에 의해 지쳐 있었고, 여전히 팔팔한 리지키는 바르톨리의 게임을 연속으로 브레이크하며 6-1로 쉽게 마지막 세트를 따냈다. 리지키의 2:1(6-4 6-7 6-1) 승. 이 승리로 리지키는 1999년 슈테피 그라프 이후 첫 독일 출신의 윔블던 여자 4강 진출 선수가 되었다.

리지키는 178cm, 70kg의 탄탄한 체격에 여자 선수 중에는 가장 강력한 서브를 구사하는 선수 중의 하나이고, 2009년 8월 세계랭킹 22위까지 올랐던 실력파 선수다. 작년과 올해 초는 조금 부진했지만 프랑스오픈부터 조금씩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프랑스오픈 2라운드에서 3번 시드의 베라 즈보나레바(러시아)를 상대로 3세트를 5-2로 앞선 채 매치 포인트를 맞이했으나 믿을 수 없는 5-7 역전패를 당하며 무너졌다. 경기 후 울면서 쓰러져 부상을 호소해 들것에 실려 나가기도 하는 사건이 있기도 했다(연기였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이처럼 그녀의 가장 큰 단점은 경기 중에도 오르락 내리락하는 기복이 심하다는 점인데 윔블던 8강 바르톨리와의 경기에서도 2세트에 이런 모습이 잠시 보였다. 그러나 윔블던의 전초전 격인 애곤 인터내셔널에서 우승을 하면서 컨디션을 끌어올린 리지키는 와일드카드로 출전한 윔블던에서 첫 그랜드 슬램 4강 진출의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5년만의 윔블던 준결승 진출을 이룬 샤라포바 ⓒ AELTC / N. Tingle

센터 코트의 두 번째 경기는 마리아 샤라포바와 도미니카 치불코바(22, 슬로바키아, 세계랭킹 24위)의 경기. 3개월 전 마드리드에서 치불코바에게 패한 적이 있던 샤라포바였지만 이 날 그녀의 컨디션은 절정에 올라 있었다. 강력한 베이스라이너의 면모를 뽐내며 포어핸드와 백핸드를 가리지 않고 좌우로 치불코바를 흔들며 경기를 유리하게 끌고 갔다. 대부분의 점수가 사이드라인과 베이스라인을 찌르는 스트로크에서 나왔을 만큼 샤라포바의 스트로크는 완벽에 가까웠다. 불과 한 시간 만에 2:0(6-1 6-1)의 완승이었다. 위너 23-3, 실책 10-11에서 보이듯이 완벽한 샤라포바를 위한 샤라포바에 의한 샤라포바의 경기였다.

샤라포바와 치불코바의 키 차이는.. 역시 크긴 크다 ⓒ AELTC / N. Tingle

경기 중에 현지 캐스터들도 샤라포바의 강력함에 할 말을 잃고 별다른 말을 하지 못할 정도였는데, 흥미로운 것은 지난 2004년 윔블던에서의 모습과 현재 샤라포바의 서브에 대한 비교가 있었다. 샤라포바는 전성기 때 시속 180km 후반의 강력한 서브를 넣는 선수였는데 최근에는 어깨 부상과 오랜 재활로 인한 두려움 때문인지 테이크 백부터 서브의 스윙 동작이 작아졌다. 그 때문인지 최고 속도와 평균 속도 모두 약 시속 10km 정도 줄어들면서 위력이 감소했고 서브 에이스의 숫자도 줄어들었다. 비가 와서 지붕을 덮고 경기가 열렸는데 덕분에 샤라포바의 "아오~!' "악!" "워우!" 함성이 경기장 안에서 진동하여 관중들의 귀가 따가웠을 것 같다. 치불코바의 부진도 샤라포바의 괴성에 압도된 것이 아닌지.

생애 첫 그랜드 슬램 준결승 진출을 이룬 아자렌카 ⓒ AELTC / J. Buckle

빅토리아 아자렌카(21, 벨라루스, 세계랭킹 4위)가 오스트리아의 타미라 파스첵(20, 세계랭킹 80위)을 2:0(6-3 6-1)으로 간단히 제압하고 역시 생애 첫 그랜드 슬램 4강에 진출하는 영광을 누렸다. 대부분의 그랜드 슬램에서 단식과 복식 모두 출전하는 욕심쟁이였는데, 이번에는 단식에만 출전하는 것이 체력적으로 더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자렌카는 1세트 1-1에서 연속으로 두 게임을 브레이크를 포함해 실점 없이 연속으로 따내며 3-1로 앞서 나갔고, 역전을 허용하지 않고 깔끔하게 세트를 마감했다. 아자렌카의 코너를 공략하는 강력한 스트로크와 스윙 발리 앞에 파스첵은 속수무책이었다. 2세트는 더 간단히 1-0에서 파스첵의 서브 게임을 브레이크하고 자신의 서브 게임을 지키며 3-0으로 앞서며 파스첵의 추격을 따돌렸다.

이 경기는 원래 No. 1 코트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1세트 첫 게임만에 비로 인해 경기가 중단된 후 재개와 중단을 반복하다가 센터 코트로 옮겨 경기가 열렸다. 윔블던 역사에서 경기를 다른 코트로 옮겨 치르는 것은 처음인데, 아자렌카와 파스첵은 그 역사적 순간의 '감동적인(moving) 경기'에 이름을 올린 주인공들이 되었다. No.1 코트에서 조용히 비가 그치고 경기가 시작하기만을 기다리던 팬들도 센터 코트의 입장권으로 교환할 기회를 얻게 되어 기다린 대가를 충분히 보상받은 셈이다. 전통보다는 실리를 택한 윔블던 위원회의 결정이 선수들과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을 위한 현명한 선택이었다. 덕분에 센터 코트에서는 샤라포바에 이어 아자렌카의 함성이 울려 퍼지며 소음 공해에 몸살을 앓았을 듯하다. 아자렌카 역시 최근 꾸준히 세계 톱 랭킹에 있으면서도 그랜드 슬램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는데 이번이 좋은 기회가 되었다.

2년 연속 준결승 진출의 크비토바 ⓒ AELTC / M. Hangst

비가 그치고 코트가 정리되면서 No. 1 코트에서 예정되었던 여자 단식 8강 두 경기 중 하나인 페트라 크비토바(21, 체코, 세계랭킹 8위)와 츠베타나 피론코바(23, 불가리아, 세계랭킹 33위)의 경기는 그대로 같은 경기장에서 열렸다. 작년 4강 진출자들의 대결이 된 이 경기에서는 여성 해설자가 여자 델 포트로라고 할 정도로 183cm, 70kg의 큰 체격을 가진 크비토바가(사실 샤라포바가 키는 188cm로 더 크지만 공식 프로필 상 체중은 고작 59kg라고 알려져 있다) 강력한 스트로크를 앞세워 피론코바를 밀어붙였다. 즈보나레바와 비너스 윌리엄스를 무찌른 피론코바는 그동안의 경기와는 달리 크비토바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자신의 서브 게임을 연속으로 브레이크 당하는 등 1세트를 힘없이 내주고 말았다. 2세트 초반에는 피론코바가 크비토바의 서브 게임을 브레이크하며 앞서 나갔지만, 크비토바가 피론코바의 서브 게임을 브레이크하며 따라잡고 접전을 벌이다 타이브레이크로 이어졌다. 타이브레이크에서 크비토바는 연속 실책 세 개를 범하며 2세트를 내주었지만, 3세트에서 지친 피론코바를 몰아붙이며 쉬운 승리를 거두었다. 크비토바의 2:1(6-3 6-7 6-2) 승리.

크비토바 역시 이번 승리로 첫 그랜드 슬램 우승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되었다. 4강에 오른 선수 중에서 단 한 번이라도 윔블던을 포함한 그랜드 슬램에서 결승 진출이라도 한 선수는 샤라포바가 유일하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단판 승부로 벌어지는 테니스에서 준결승과 결승이 주는 부담감이 큰 것을 생각하면 유경험자 샤라포바가 심리적인 면에서는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는 듯하다.

한국 시간으로 오늘 밤 9시부터 남자 단식 8강이 시작하는데 라파엘 나달의 부상은 예상대로 경기를 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레벨이 높은 선수들과 상대하게 되기에 부상으로 인한 경기력 손실이 얼마나 경기에 영향을 미칠 것인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