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급 난푸

오카야마역에서 내렸는데 시간이 좀 애매하다. 16시 5분에 고치행 열차가 있어서 이것을 타고 코지마에 갈 생각인데 시간이 좀 남아서 역 안에서 돌아다녀보기로 한다.

특급 난푸 17호가 탈 열차다.

10분 정도 남았으니 역 구경을 하면서 승강장 위치 등을 익히기로 한다. 오카야마는 자주 가는 곳인데 늘 역에서 헤맨다. 이 참에 각 플랫폼에서 출도착하는 열차 노선을 좀 알아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 강렬한 햇빛은 열차 이름이 선라이너라서 그런건가.

이 열차는 쾌속열차로 하행, 즉 히로시마 방면의 후쿠야마까지 운행하는 쾌속열차. JR니시니혼이 똥차에 생명을 계속 불어넣어 굴리는 것으로 유명한데 꽤나 된 녀석 같다.

선라이너라고 태양이 막 빛나고 있어. ㅋ

미하라까지 가면 히로시마 근처까지 가는 열차네.
아마 117계 열차인 것 같은데, 아이고~ 관심 없다.

다음에 들어올 열차는 이즈모시행 특급 야쿠모구나.

우앙~ 친숙한 381계 열차가 야쿠모로 뛰는구나.
근데 나는 돈이 없어서 탈 수가 없어.

윳타리야쿠모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열차네.
혹시나 해서 구글에서 윳타리야쿠모를 검색해보니 나름 특별한 열차 같다.

7년 전에 야쿠모를 탈 때는 똥차였던 것 같은데..

내가 탈 열차는 이것.

비전화 구간을 달리는 탓에 역시 기름 냄새 풍기는 디젤 열차다.

맨 뒤에 있는 이 3호차가 자유석이다.

사람이 많아서 통로쪽의 빈 좌석 하나에 앉음.

코지마역에 도착했다.

코지마역은 세토오하시센(瀬戸大橋線)의 혼슈 마지막 역이다. JR니시니혼과 JR시고쿠의 승무원 교대가 이루어지고, 이제 열차는 JR시고쿠 관할 구간을 달리게 된다. 코지마역을 떠나면 육지의 끝까지 달린 다음에 세토오하시를 건너게 된다. 세토오하시는 시와쿠쇼토(塩飽諸島)의 다섯 개의 섬을 잇는 6개의 섬을 잇는 6개의 교량과 그 교량 사이를 잇는 4개의 고가교로 구성되어 있다. 교량은 현수교, 사장교, 트러스교 등 다양한 공법을 사용하여 건설하였고, 고가교 포함 총 길이가 13.1km에 달하는 엄청난 공사였다. 이 세토오하시는 차량과 철도가 함께 지나는 다리로는 세계 최장 규모란다. 영종대교나 간사이공항연락교 역시 육지와 섬 사이를 잇는 바다 위에 지은 차량과 철도 병용 다리인데 그 길이와 규모 면에서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 덕분에 이 공사가 JR의 전신인 국철에 엄청난 빚을 떠안겨주었다고.

승무 교대를 한 JR시고쿠의 차장이 시계를 보면서 출발 준비를 하고 있다.

출발이 1분 남았구나.

계속 시계만 보고 있네.

여기서 이렇게 여유를 부리고 있는데, 이 여유는 곧 엄청난 후회로 다가오게 된다.

세토오하시를 지나서 처음 도착하는 역이 다카마츠 방면은 사카이데(坂出), 마츠야마 방면은 우타즈(宇多津)다.

타고 왔던 열차 난푸는 남쪽으로 떠나갔고, 나는 출구로 내려간다. 저 승무원은 다음 열차인 쾌속 마린라이너가 도착하면 승무교대하려는 차장인 것 같다. 물어보지 않아서 잘은 몰라.

역이 의외로 깔끔하고 카미고리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좋다.
카미고리역의 친절한 역무원 아저씨에게 미안..

역 안에 관광안내소가 있기는 한데 한 번 슬쩍 보니 뭔가 쓸만한 정보는 없는 것 같아서 일단 역 바깥으로 나가본다.
역 앞에 버스정류장이 있기는 한데, 좀 황량해서 당황스럽다.

버스의 시간표를 보는데 어느 버스 노선이 와슈잔 전망대에 가는 것인지 모르겠네. 버스가 있길래 일단 버스에 타서 세리켄(整理券.정리권)을 뽑아서 앉아 있는데 조금 있다가 버스 기사가 와서 운전석에 앉았다. 버스 안에 붙은 노선도를 살펴보는데 왠지 이 버스가 전망대에 가지 않을 것 같다는 강한 느낌이 들어서 운전수 아저씨에게 물어봤다.

"스미마셍. 이 버스 와슈잔 전망대에 가요?"

"안 가요. 4번 승강장에서 17시 30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야 가요."

"진짜요? 아~ 스미마셍. 그럼 내릴래요."


간단한 대화를 마치고 내렸는데 버스 출발 시간까지는 40분 정도 남았다. 아~ 뭐하면서 시간을 보내나 싶은데 지나쳤던 관광안내소에 가서 좀 물어보기로 한다.

잠꾸러기 : 스미마셍. 와슈잔 전망대에 가려고 하는데요. 어떻게 가죠?

안내원 : 어서오세요. 그래요?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데요.

잠꾸러기 : 그렇군요. 17시 30분에 버스를 타라고 했던 것 같아요.

안내원 : 네. 맞아요. (버스 시간표를 주면서) 4번 승강장에서 버스를 타고 와슈잔 제2전망대 정류장에서 내리면 돼요. 그런데..

잠꾸러기 : 엥?

안내원 : 이 버스가 막차라서 타고 올라가면 내려오는 버스가 없어요.

빠직!!

잠꾸러기 : 네? 정말인가요? 그럼 어떻게 역으로 돌아오지요?

안내원 : 택시를 타거나 걸어서 오든가 해야겠죠.

잠꾸러기 : 택시는 잡기 쉽나요?

안내원 : 전화해서 택시를 불러야 해요.

잠꾸러기 : 그런가요? 걸으면 얼마나 걸릴까요?

안내원 : 한 시간 정도 걸릴 것 같네요.

잠꾸러기 : 그렇군요.

안내원 : 혹시 어디서 오셨나요?

잠꾸러기 : 한국에서 왔어요.

안내원 : 아! 일본어 잘하시는데요.

잠꾸러기 : 아니에요. 길 물어보는 것만 할 줄 알아요.

안내원 : ㅋㅋㅋ

잠꾸러기 :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이 되네요.

안내원 : 택시 연락처 드릴까요?

잠꾸러기 : 그냥 걸어서 내려올래요. 근데 내려서 걸어오는 길은 어느 방향인가요?

안내원 : (지도에 손을 짚어 길을 가리키면서) 역 건물 옆에 큰 길 있지요? 바로 그 길을 따라서 오는 거에요.

잠꾸러기 : 그렇군요. 혹시 근처에 맛있는 음식점이 있나요?

안내원 : 어떤 음식을 말하는거죠?

잠꾸러기 : 아무거나 상관은 없는데 밥이라든가 일본 음식이었으면 좋겠네요.

안내원 : (지도에서 코지마역 북쪽을 가리키며) 음식점은 이 쪽에 몇몇 있는데 갔다가 오면 다 문 닫을 거예요.

잠꾸러기 : 그렇군요. 그럼 가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내원 : 조심하세요.(気をつけてください)

역사를 나와서 다시 버스정류장 쪽으로 가는데 독특하게 랩핑한 버스가 지나간다.
요즘 고지마를 청바지의 성지, 청바지의 발상지라 하여 밀고 있는 그런 내용인가보다.

행군을 위한 준비물을 사려고 주변을 둘러보니 야마다덴키가 있어서 2리터짜리 물과 크런키 초콜릿 하나를 사서 나왔다.

시각표를 보니 이 버스를 타고 27분 정도를 가야 한다.
거리는 멀지 않은데 이 버스가 돌아서 가기 때문에 조금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이게 시모덴순환선 노선도

와슈잔 전망대에 가는 버스 노선인 시모덴준칸센(下電循環線.시모덴순환선, 下津井循環線 시모츠이순환선이라고도 한다)은 코지마역을 기점으로 한 바퀴 돌아서 오는 노선이어서 되돌아오는 버스가 없다. 그래서 막차를 타고 도중에 내리면 다음 버스가 없다. 와슈잔다이니텐보다이(鷲羽山第二展望台.와슈잔제2전망대)에 내릴 때 버스 기사가 돌아가는 버스가 없는 것을 알고 있냐고 물어본다. 버스가 서울시내버스처럼 바글바글하지도 않고 동네만 돌다보니 이미 타고 내리는 동네 사람들은 대충 알고 있을 터. 외부에서 온 사람이 눈에 띄었을 것이다.

"네. 알고 있어요."

그러자 기사는 내려갈 때는 택시를 타거나 걸어가야 하는데 괜찮겠냐고 다시 물어본다.

"네. 괜찮아요."

그럼 조심하라면서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하며 한다. 버스기사가 미안할 것이 뭐가 있나. 오히려 신경써주니 고맙다. 고개를 돌려 꾸벅 인사를 하고 어둠 속으로 뛰어든다. 두 번씩이나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불안해지는데..



이것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찍은 사진인데 밝게 보정해서 이 정도 나온거다.

이미 어둠이 짙게 깔려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산 속인지라 아이폰의 플래시 기능을 켜서 앞을 비추어야 눈앞이 보일 정도인데, 작은 불빛에도 멀리까지 보이는 것을 보면 어둡기는 어두운 모양이다. 내심 괜히 왔다 싶은 생각이 드는데 그래도 왔으니 어떻게 그냥 가냐. 어둠을 뚫고 전망대쪽으로 올라가봐야지. 나는 용감하거든.ㅋ

나름대로 흔들리지 않고 잘 찍었다고 생각했는데 빛이 너무 적어서 저질로 나온다.

그나마 쓸만한 사진이 이 정도야.ㅋ

나는 석양을 배경으로 찍고 싶었는데 어둠 속의 다리를 찍고 앉아있네.

아~ 보정해도 수가 없고 그저 답답할 따름이네.

이것으로 만족해야지. 에휴~
다음에 갈 기회가 있으면 대낮부터 가서 해가 지는 것을 기다리고 있을거야.

내려가는 길은 산 속이라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아이폰 플래시에 의존해서 걸어 내려가는 수밖에 없었다. 호주에서도 쿠사산 전망대에서 버스 없어서 걸어서 하산한 적이 있었는데 여기는 높지는 않지만 나무들이 우거져 조금의 빛도 들어오지 않는다. 산이 높지 않고 인가가 가까운 곳이라서 맹수가 달려들 위험은 없어 보였는데, 조금도 겁나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어두워서 혹시라도 잘못 발을 헛디뎌서 다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있었다. 산에 차도가 있는데 급커브 구간이 있어서 정신 놓고 가다가는 차에 치일 위험도 있고 이런 곳에서 굴러서 넘어져 다치면 아주 곤란한 상황이 되니까. 다행히 산이 높지 않아서 10여 분 정도 조심조심 걸어내려가니 하산에 성공하여 어딘지 모를 마을에 도착했다. 40분 정도 더 가야 하는 것 같은데, 그래도 이제 가로등과 민가에서 비치는 불빛이 있어서 인도를 따라 걸어서 코지마역으로 간다. 물을 마시고 비상식량으로 샀던 크런키 초컬릿을 먹으면서 계속 걸어간다. 주택가를 지나고 보트레이스장을 지나고 코지마역에 도착. 걸음이 느리지는 않았는데 초행길이라 주변을 살피다보니 진짜 한 시간 정도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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