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라 크비토바

지난 2주간 윔블던 관련 포스팅을 하면서 주로 남녀 단식에 초점을 맞추어 주요 경기 리뷰를 했는데, 중간에 넣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잠시 풀어놓는 것으로 철야 투쟁을 멈추고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려고 한다. 무엇보다 갑작스럽게 많은 이들이 찾아주셔서 놀랍고 감사할 따름이다.

조코비치와 크비토바는 모두 윔블던 우승 첫 경험 ⓒ AELTC / T. Lovelock

단식 경기의 우승 상금은 우승자 110만 파운드(약 18억 9천만 원)이고, 준우승 상금은 55만 파운드(약 9억 4천만 원). 윔블던에서 한 번 우승하면 상금만으로도 평생 먹고 살 돈이 마련되는 셈이다. 3라운드 탈락자까지는 한 단계 내려갈 때마다 개인이 수령하는 상금은 반으로 줄어드는데, 128명이 맞붙는 1라운드에서 패한 64명이 각각 수령하게 되는 상금이 11,500파운드로 2천만원에 가까운 돈이니 이것만 해도 대단하다. 퀄리파잉 1라운드에서 탈락해도 1,750파운드(약 3백만 원)가 주어지니 비행기삯 정도는 충분히 뽑을 수 있는 돈이다.

크비토바도 이번 대회 우승으로 7월 4일자 세계 랭킹에서 7위로 한 단계 상승했다. 이번 시즌 레이스만 놓고 보면 보스니아키(5776점)에 조금 뒤진 2위(5037점)를 달리고 있어 남은 시즌 경기 결과에 따라 연말 랭킹 1위도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준우승자인 샤라포바도 랭킹이 한 단계 상승한 5위가 되었고, 4위였던 리나가 6위로 내려앉았다.

오픈 시대의 대기록을 세운 브라브라 ⓒ AELTC / M. Hangst

복식은 동성의 경우 우승 상금이 25만 파운드(약 4억 3천만 원), 혼성의 경우 9만 2천 파운드(약 1억 6천만원)가 한 조에 주어지는데, 어느 한 사람이 더 가져가서 서로 싸우는 일은 없는 것 같다. 남자 복식의 브라이언 브라더스(미국)는 11번 째 그랜드 슬램 우승으로 우디즈와 타이기록을 세웠다. 다른 선수들처럼 파트너의 변동없이 수년 째 정상을 지켜온 브라브라가 조만간 새로운 기록을 세울 것으로 보인다. 여자 복식은 현재 가장 강한 복식조인 크베타 페스츠케(체코)와 카타리나 스레보트닉(슬로베니아)이 우승을 차지했는데 자비너 리지키(독일)와 사만다 스토서(호주)가 하루에 준결승과 결승을 치르느라 체력 소모가 커서 쉽게 승리를 거두었다.

알프스 소녀였던 힝기스가 알프스 아줌마가 되어버린 세월의 무상함이여 ⓒ AELTC / S. Wake

윔블던에서는 인비테이셔널 매치라고 해서 전 윔블던 챔피언들이 초청되어 복식 경기를 갖는데 여자 복식결승에서 린제이 데이븐포트(미국)와 마르티나 힝기스(스위스)가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미국)와 야나 노보트나(체코)를 이기고 우승을 차지했다. 아무래도 은퇴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팔팔한 젊은 선수들이 더 잘 뛸 수밖에 없다. 이 경기에서도 작지만 상금(우승 17,500파운드, 준우승 14,500파운드)이 있다고. 젊었을 때 테니스 잘 치면 나이 들어서도 먹고 살 길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샤라포바 이전에 윔블던의 연인은 힝기스였는데.. ⓒ AELTC / S. Wake

힝기스 이야기가 나온 김에 잠시 이야기하자면 뛰어났던 테니스 실력 이외에도 여러 스타들과 염문을 뿌리기로 유명했다. 스페인의 프로 골퍼 세르히오 가르시아, 영국의 축구 선수 솔 캠벨, 테니스 선수 라덱 스테파넥 등 많은 사람들과 사귀었는데 작년에 6살 연하의 남자와 결혼했다.

그러나 그녀의 테니스 실력은 그저 그렇더라는 (현재 세계랭킹 31위에 올라 있다) ⓒ AELTC / S. Wake

윔블던은 여전히 흰색 유니폼을 입도록 하는 규정이 있는데, 꼭 튀고 싶은 선수들이 유니폼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경우가 있다. 미국의 베타니 마텍-샌즈는 코트의 레이디 가가 패션을 해서 화제가 되었는데, 개인적으로는 비너스의 경기복이 더 충격적이었다.

비너스의 쇼킹 경기복 ⓒ AELTC / S. Wake

비너스는 흑인이다보니 흰색은 그다지 잘 받지 않음에도 옷에 장난을 너무 친 것 같다. 그냥 깔끔한 경기복을 입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비너스는 자신의 유니폼을 스스로 디자인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범인의 눈으로 보면 참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서리나의 인터뷰 모습 ⓒ AELTC / T. Lovelock

사실 그 동생이 인터뷰할 때 입고 나온 셔츠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돈이 없어서 찢어진 옷을 입은 것은 아닐테고 어느 정도 예의는 지켜야 하는데 이 자매는 너무 파격을 즐긴다.

그 밖에 여러 유명 인사가 윔블던 경기장을 찾아서 화제가 되었다. 영미권 언론에서는 케이트 미들턴의 동생 피파 미들턴에 대해서 난리를 치고 있는데 이해할 수 없고 별로 마음에 들지 않으므로 여기서는 과감하게 그녀는 생략하도록 하겠다. 아는 사람들만 잠시 소개해본다.

호주의 백상어 그렉 노먼씨께서 오셨습니다 ⓒ Getty Images / Julian Finney

F1 스타 마크 웨버도 경기를 관람했다 ⓒ Getty Images / Clive Mason

래퍼 Jay-Z씨도 멀리 대서양을 건너 영국까지 와서 경기를 보았다. ⓒ AFP Photo / Glyn Kirk

루퍼트 그린트와 올리버 펠프스 ⓒ Getty Images / Julian Finney

영화 해리 포터 시리즈에 출연했던 론 역의 루퍼트 그린트와 조지 역의 올리버 펠프스도 경기를 보았다고 하는데, 원하는 사람은 이들이 아닌 엠마 왓슨인데 어흑!

아쉬움을 앤양으로 달래보자 ⓒ Getty Images / Julian Finney

앤 해서웨이는 애인 아담 슐만과 함께 여자 결승전 경기를 관람하였다. 이 아가씨 프라다를 입는 악마였을 때 참 예쁘게 나왔는데 그 이후 영화에서는 강한 인상을 남겨주지 못해 아쉽다.

윔블던은 끝나도 ATP와 WTA 투어가 계속 진행되고 있는데 매일 밤을 새우며 경기를 지켜볼 수는 없어서 당분간 테니스 리뷰는 가끔 시간이 날 때만 포스팅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쉽지만 이제부터 매주 테니스의 공주 한 명씩 골라서 선수에 대한 이야기를 다룰 계획이니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린다.

윔블던 여자 단식 결승에서 경기장의 소음 차단녀 페트라 크비토바(21·체코, 세계 8위)가 7년만의 화려한 컴백을 눈앞에 두었던 요정 마리아 샤라포바(24·러시아, 세계 6위)를 물리치고 생애 첫 우승을 차지했다. 준결승에서 괴성녀 빅토리아 아자렌카를 물리치고 결승에 올라온 크비토바는 다시 악쓰는 여자 샤라포바를 누르며 시끄러운 선수들의 킬러로 자리매김했다. 대회 전에는 아무도 그녀를 우승 후보로 생각하지 않았지만, 소리 없이 강했던 그녀는 강호들을 하나씩 무찌르며 지난 10년간 윌리엄스 자매 외 단 두 명에게만 허락되었던 윔블던 여왕의 자리에 올랐다. 

윔블던 여왕 페트라 크비토바 ⓒ AELTC / M. Hangst

 

윔블던 파이널리스트 ⓒ AELTC / J. Buckle

 

대회 12일째 (7월 2일)

여자 결승 페트라 크비토바 vs 마리아 샤라포바 (14:00 센터 코트)

결승전에 입장하는 크비토바와 샤라포바 ⓒ AELTC / M. Hangst

샤라포바의 우세를 점친 사람이 적지 않았는데, 샤라포바는 4강까지 여섯 경기를 치르는 동안 단 한 세트도 내주지 않는 깔끔한 경기를 했고, 베이스라인에서 날리는 강력한 스트로크가 전성기에 못지않게 살아났다는 평이었다. 그러나 경기에 앞서 체코 출신의 '철녀'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는 샤라포바가 왼손잡이인 크비토바의 서브의 궤적이 낯설어 받는 것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예측을 했다.

공을 쫓는 샤라포바 ⓒ AELTC / M. Hangst

크비토바는 시작부터 첫 서브가 잘 들어가지 않았는데 두 번의 포어핸드 미스로 샤라포바에게 0-30으로 끌려갔다. 샤라포바의 실책과 좋지 않은 서브 리턴을 빈 곳을 찾아 공격하여 동점을 만들었지만, 연달아 네트에 공을 꽂으며 첫 게임을 내주었다. 그러나 샤라포바의 서브 게임을 바로 브레이크하면서 승부를 다시 원점으로 돌렸다. 샤라포바는 15-40에서 더블 폴트를 저질러 게임을 내준 것이 뼈아팠다. 이어진 크비토바의 서브 게임에서는 두 번의 듀스 끝에 샤라포바의 리턴 실패와 크비토바의 백핸드 위너가 이어지며 크비토바가 승리하며 경기를 역전시켰다. 샤라포바 역시 더블 폴트를 또 저질렀지만 긴 랠리에서 승리하며 서브 게임을 지켜 2-2를 만들었다. 그러나 크비토바가 이어진 서브 게임을 지킨 반면 샤라포바는 30-30에서 더블 폴트를 두 번 연달아 저지르며 게임을 내주어 4-2가 되면서 균형이 깨졌다. 크비토바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시 서브 게임을 지키며 5-2로 달아났고, 이후 한 게임씩 주고받으며 6-3으로 1세트는 크비토바의 승리로 끝났다.

크비토바는 왼손잡이입니다 ⓒ AELTC / T. Hindley

2세트에서 크비토바는 집중력을 잃지 않고 차분하게 샤라포바를 압박했다. 샤라포바는 0-30으로 앞섰지만, 리턴 미스와 크비토바의 크로스 포어핸드에 동점을 허용했다. 이어서 샤라포바의 다섯 번째 더블 폴트가 나오며 졸지에 브레이크 포인트에 밀렸고 크비토바는 베이스라인 위에 떨어지는 포어핸드로 첫 게임을 가져갔다. 라인 심판은 처음에 아웃을 선언했지만 바로 정정했고, 샤라포바는 챌린지를 했지만 인으로 판명되면서 기회만 날렸다. 다음 게임에서 크비토바는 40-30에서 더블 폴트로 듀스를 허용했지만 강력한 서브 두 개로 승리를 챙겼다. 다시 두 게임 차이로 밀리면서 샤라포바는 위기를 맞이했지만 깔끔하게 서브 게임을 지킨 후 크비토바의 서브 게임을 브레이크하면서 2-2를 만들었다. 크비토바는 세 번째 더블 폴트를 하면서 샤라포바에 기회를 주었고, 샤라포바는 베이스라인 스트로크가 살아나면서 30-40의 브레이크 포인트에 도달했다. 크비토바는 듀스로 갈 기회가 있었지만 다소 약했던 스매시가 샤라포바의 본능적인 방어에 걸리며 크비토바의 키를 넘겨 베이스라인 안쪽에 떨어지면서 게임을 내주었다. 크비토바에게는 불운이었지만, 샤라포바와 샤라포바를 응원하는 사람들에게는 행운이었다.

윔블던 여왕에 오르는 결승점이 된 강력한 크비토바의 서브 ⓒ AELTC / M. Hangst

샤라포바는 반격의 기회를 맞은 듯했지만 서브 게임을 내주며 좋은 기세를 이어가지 못했다. 샤라포바는 30-40의 게임 포인트에 도달했지만 크비토바의 강력한 스트로크가 폭발하며 네 번의 듀스 끝에 크비토바에게 승리가 돌아갔다. 그러나 롤러코스터 경기는 샤라포바만의 것이 아니었다. 크비토바는 듀스에서 시터를 네트에 꽂고 샤라포바의 강한 리턴을 맞으며 다시 서브 게임을 내주는 브레이크 랠리가 이어졌다. 다시 3-3 동점. 계속 브레이크 랠리가 이어지면 먼저 서브를 넣는 샤라포바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정확히 세트의 절반을 지나는 순간, 크비토바가 승리를 향한 부스터를 발동시켰다. 크비토바는 샤라포바의 서브를 강하게 리턴하면서 투 브레이크 포인트를 만들었고, 한 점을 따라잡혔지만 샤라포바의 포어핸드가 길게 벗어나며 다시 리드를 잡았다. 이어진 서브 게임에서 15-30으로 밀렸지만 샤라포바가 받아내기 힘든 강한 서브를 연달아 코트에 꽂으며 승리하며 5-3으로 생애 첫 윔블던 우승까지 단 한 게임만을 남겨놓게 되었다. 샤라포바는 뒤늦게 서브 게임을 지키며 5-4로 따라붙었지만, 크비토바는 침착하게 강한 서브를 넣으며 샤라포바를 압박했고, 40-0의 쓰리 챔피언쉽 포인트에 도달했다. 자신의 첫 우승을 자축하려는 듯이 크비토바는 깔끔한 서브 에이스로 경기를 마감하면서 윔블던 여왕의 자리에 올랐다.

경기 요약 (출처 : 윔블던 공식 사이트)

샤라포바는 76%의 첫 서브 적중률을 기록했지만 더블 폴트를 의식한 나머지 위력이 떨어졌고 코스 역시 좋지 못해 크비토바의 강력한 리턴에 고전했다. 서브 후 득점으로 연결시키는 빈도가 크게 떨어진 것이 샤라포바가 다섯 번이나 브레이크를 당한 이유였다. 크비토바는 샤라포바에 미사일 스트로크에 지지 않고 스트로크 싸움을 펼쳐 승리를 거두었는데, 서브가 약해진 샤라포바의 유일한 장점을 무력화시켰다는 점이 승리의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윔블던 파이널리스트 ⓒ AELTC / T. Hindley

크비토바는 이번 승리로 윔블던 여왕에 오르면서  세계 톱랭커들도 평생 한 번 차지하기 힘든 그랜드 슬램을 차지한 것은 선수 생활을 하면서 자신감을 가질 수 있고, 큰 대회에 참가할 때도 부담감을 떨쳐버릴 수 있어 앞으로의 선전이 더 기대된다. 그녀는 세계랭킹 8위에 작년 준결승 진출자임에도 우승 후보로는 꼽히지 않았다. 처음 결승에 오른 그랜드 슬램에서 전혀 긴장하지 않고 경기를 승리로 이끌 만큼의 강심장은 앞으로 대회마다 그녀를 우승 후보로 꼽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왼손잡이라는 희소성에 어느 선수에도 뒤지지 않는 파워풀한 서브와 스트로크는 수비형 선수들이 많아진 최근의 여자 테니스계에서 주목을 받을 것이다.

승자의 스포트라이트 ⓒ AELTC / T. Hindley

준우승에 머무른 샤라포바 역시 크비토바에 대해 대단한 경기를 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날 경기에 대해 크비토바가 코트 전체에서 강력한 위닝샷을 쳤고 자신보다 더 공격적으로 깊고 강한 공을 쳤다고 하였다. 크비토바의 장점으로 강력한 게임 운영과 힘을 꼽으며, 터프 포지션에서 공격적으로 전환하는 능력에 대해 찬사를 보냈다. 샤라포바는 아쉬움 속에서도 긴 부상 끝에 윔블던 결승까지 오른 것은 앞으로 남은 투어에서 자신감을 가지고 경기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면서 부상을 떨쳐내고 정상적인 플레이를 할 수 있는 것에 만족을 표시했다. 샤라포바의 약혼자인 샤샤 부야치치는 대회 내내 관중석에서 샤라포바를 열렬히 응원하였는데 패배로 참 아쉽게 되었다.

준우승자이지만 여전한 인기를 과시하는 샤라포바 ⓒ AELTC / M. Hangst

그동안 밤잠을 설치게 만들었던 윔블던은 오늘 남자 단식 결승을 끝으로 2주간의 대회를 마치게 된다. 조코비치와 나달이라는 신 라이벌 대결에서 누가 웃을지도 관심이지만 대회가 끝난다니 아쉬운 마음도 든다.

보너스 샷 샤라포바 언니 ⓒ AELTC / J. Buckle

윔블던 결승에서 빅토리아 아자렌카와 마리아 샤라포바의 스테레오 사운드는 듣지 못하게 되었다. 만약 이 두 선수가 윔블던 결승에 진출하고 비가 와서 센터 코트의 지붕을 닫았다면 사상 최고로 시끄러운 경기를 지켜보게 되었을 것이다. 윔블던 결승의 길목에서 맞붙은 아자렌카와 페트라 크비토바는 누가 결승에 올라가든 생애 첫 그랜드 슬램과 윔블던 결승 진출이라는 부담 속에서 승부를 펼쳐야 했고, 크비토바가 풀세트 매치 끝에 승리를 거두었다.


대회 10일째 (30일)

4강 제 1경기 페트라 크비토바 vs 빅토리아 아자렌카 (13:00 센터 코트)

생애 첫 그랜드 슬램 결승에 오른 페트라 크비토바 ⓒ AELTC / T. Hindley


빅토리아 아자렌카(21· 벨라루스, 세계 4위)는 이번 시즌 들어 그녀의 테니스 커리어 중에서 가장 빛나면서도 다른 어느 선수보다도 안정된 활약을 해왔다. 랭킹 포인트를 1500점 이상 쌓으면서 작년 연말 10위였던 랭킹도 4위까지 끌어 올렸고, 생애 첫 그랜드 슬램 단식 4강에도 올랐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 기존의 스타들에 가려져 주목을 받지 못했을 뿐 무서운 경기력을 보여주었던 페트라 크비토바(21· 체코, 세계 8위)와 맞붙게 되었다. 왼손잡이, 체코 출신으로 전설적 스타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의 재림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크비토바는 강력한 서브와 공격적인 플레이가 돋보이는 선수다.

경기 이전 두 선수의 상대 전적은 2승 2패로 팽팽하였지만, 윔블던에서 작년에도 4강에 올랐던 크비토바가 3라운드에서 2:0으로 이긴 것을 비롯하여 올해 마드리드에서도 승리를 추가하는 등 최근에는 크비토바의 우세였다. 그리고 4강까지 올라오는 과정에서 보여주었던 크비토바의 강력함은 대단했다. 비록 아자렌카가 경험이나 현재 랭킹에서도 더 높지만, 크비토바의 우세를 조금씩 점쳤던 것은 이런 여러 가지가 반영되었을 것이다.

큰 경기에 대한 부담 때문일까 크비토바는 자신의 서브로 시작한 1세트부터 브레이크 위기에 몰렸다. 그러나 간신히 듀스를 만들고 서브 에이스로 위기를 탈출했다. 1세트의 승부처는 크비토바가 2-1로 앞선 아자렌카의 서브 게임이었다. 크비토바는 시작부터 강한 리턴으로 맞서며 아자렌카를 압박해 40-15의 브레이크 포인트를 만들었고, 각이 큰 포어핸드로 사이드라인을 공략하는 위닝샷으로 게임을 따냈다. 승기를 잡은 크비토바는 두 개의 서브 에이스로 무력 시위를 했는데, 갑자기 경기장 내에서 장비 소음이 발생하여 몇 초간 경기가 중단되기도 하였다. 아자렌카는 인상을 크게 찌푸리며 상당히 신경에 거슬리는 모습이었는데, 자신의 괴성 역시 거슬리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은 아는지 모르는지. 소리가 멈추고 아자렌카는 분발하여 듀스를 만드는 데는 성공했지만 크비토바는 강한 백핸드 스트로크로 위닝샷을 날리며 4-1로 도망갔다. 크비토바는 완전히 경기를 지배하며 아자렌카를 압박하였다. 두 선수 모두 베이스라인에서 경기를 펼치는 스타일이어서 스트로크 싸움으로 경기가 이어졌지만 크비토바의 힘이 아자렌카를 무너뜨리고 있었다. 크비토바는 다시 아자렌카의 서브 게임을 브레이크하고, 서브 에이스 3개로 세트 포인트를 만들며 마지막 게임까지 따내 6-1로 1세트를 마쳤다.


자신감이 넘치는 크비토바 ⓒ AELTC / T. Hindley


크비토바의 강한 모습은 예상했지만 경기는 기대보다 더 일방적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나 아자렌카는 2세트에서 시작과 동시에 강력한 반격을 보여주었다. 2세트 시작과 동시에 연속으로 7개의 포인트를 얻어 자신의 서브 게임을 지키고 쓰리 브레이크 포인트로 크비토바의 서브 게임을 위협했다. 크비토바는 1세트와는 달리 실책이 연속되며 처음으로 서브 게임을 놓친 반면 아자렌카의 발놀림은 갈수록 좋아졌다. 크비토바는 이어진 아자렌카의 서브 게임에서 강력한 리턴으로 브레이크를 노려봤지만 아자렌카의 손쉬운 승리로 끝나며 0-3이 되었다. 크비토바는 2-4에서 포어핸드를 앞세워 브레이크를 노렸지만 실패하였고, 서브 게임을 서로 잘 지키며 3-6으로 아자렌카가 두 번째 세트를 가져갔다.

운명을 가르는 3세트가 시작되었다. 먼저 서브를 넣게 된 크비토바는 뭔가 어수선했던 2세트와 달리 강한 서브로 가볍게 게임을 선취하며 쉽게 경기를 풀어갔다. 그리고 기세를 몰아 경기의 승부처가 된 아자렌카의 서브 게임을 뺏으며 분위기를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크비토바가 서브 게임을 지키며 점수는 3-0으로 벌어졌고, 서로 두 번의 서브 게임에서 점수를 얻어 5-2에서 아자렌카의 서브로 이 날 경기의 마지막 게임에 돌입했다. 크비토바는 아자렌카의 서브를 포어핸드, 백핸드를 가리지 않고 강하고 깊은 리턴으로 괴롭혔고, 마침내 매치 포인트에 돌입했다. 부담을 이기지 못한 아자렌카는 더블 폴트로 허무하게 1시간 44분이 걸린 경기에서 패하고 말았다. 작년 준결승에서 서리나 윌리엄스에게 패하며 눈물을 흘렸던 크비토바는 두 번째 도전만에 윔블던 결승 진출이라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경기 요약 (출처 : 윔블던 공식 사이트)


경기 기록을 잠시 살펴보면 가장 빠른 서브는 크비토바 시속 181km(113mph), 아자렌카 시속 170km(106mph), 평균(첫 서브)은 각각 시속 164km(102mph), 158km(98mph)였는데 서브 에이스는 9-1로 크비토바가 압도적이었다. 두 선수 모두 첫 서브 성공률이 60%대로 좋지 않아서 두 번째 서브에서 상대의 공격적인 리턴을 허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힘에서 밀린 아자렌카는 수비적으로 경기에 임했는데, 안정보다는 모험을 택하고 공격적으로 나선 크비토바가 결국 경기에서 승리했다. 아자렌카는 실책이 7개로 적었지만 위너 역시 9개로 적었고, 크비토바는 14개의 실책을 했지만 40개에 달하는 위너가 승리에 절대적인 요인이었다.


경기 후 서로 안아주고 얼굴을 비비는 훈훈한 장면을 연출한 두 선수 ⓒ AELTC / N. Tingle

크비토바는 피론코바와의 8강 경기에서도 나타났듯이 1세트의 압도적인 경기력에 비해 2세트에서 집중력이 떨어지는 점을 보완하면 결승에서도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상대인 샤라포바가 베이스라인의 최강자이지만, 대회 내내 서브에서 애를 먹고 있어서 크비토바와의 경기는 접전이 되지 않을까 싶다.


* 4강 두 번째 경기인 마리아 샤라포바와 자비너 리지키의 경기는 다음 글에서 계속.

2004년 혜성처럼 등장했던 17세 소녀가 윔블던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그녀는 곧 본업인 테니스 이외에도 패션과 섹시 아이콘으로 유명해지며,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입을 올리는 여자 운동 선수가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어깨 부상으로 수술과 재활의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했고, 다시 힘들게 2006년 이후 5년만에 윔블던 준결승에 올랐다. 그녀의 이름은 다름아닌 마리아 샤라포바(24, 러시아, 세계랭킹 6위)다.

2011 Ladies' Single Final Four ⓒ AELTC

대회 8일째 (28일)

4라운드까지는 남녀 단식이 함께 열렸지만, 이제부터는 하루씩 번갈아 가면서 경기를 치를 예정이다. 물론 비라는 변수가 있어서 지붕이 있는 센터 코트가 아닌 다른 코트에서 경기하는 선수들의 경기가 연기될 가능성이 있지만 한국 시간으로 오늘 밤에 펼쳐지는 남자 8강 단식 두 경기를 제외하면 준결승과 결승은 센터 코트에서 열리기에 예정대로 열리게 될 것 같다.

환호하는 리지키 ⓒ AELTC / N. Tingle

센터 코트에서는 자비너 리지키(21, 독일, 세계랭킹 62위)와 마리온 바르톨리(26, 프랑스, 세계랭킹 9위)의 경기가 열렸다. 리지키는 중국의 리나를, 바르톨리는 디펜딩 챔피언 서리나 윌리엄스를 탈락시키며 우승 후보를 집으로 보낸 선수들. 쉬운 승부가 되지 않을 것이라 보였는데 3세트까지 갔지만 리지키가 경기 대부분을 이끌어갔다. 리지키는 1세트를 6-4로 승리했고 2세트 역시 5-4로 앞선 채 자신의 서브게임을 맞았다. 40-0의 쓰리 매치 포인트, 그러나 백핸드와 멋진 로브가 네트에 걸렸고 포어핸드마저 실책을 저지르며 듀스에 돌입했고, 더블 폴트를 저지르며 5-5 동점을 허용하고 말았다. 한 게임씩 더 따내며 결국 타이브레이크에 돌입하였고, 리지키는 집중력 부족으로 4-7로 패했다. 그러나 이미 바르톨리는 코트 전체의 빈 곳을 찾아 샷을 무차별적으로 날려댄 리지키에 의해 지쳐 있었고, 여전히 팔팔한 리지키는 바르톨리의 게임을 연속으로 브레이크하며 6-1로 쉽게 마지막 세트를 따냈다. 리지키의 2:1(6-4 6-7 6-1) 승. 이 승리로 리지키는 1999년 슈테피 그라프 이후 첫 독일 출신의 윔블던 여자 4강 진출 선수가 되었다.

리지키는 178cm, 70kg의 탄탄한 체격에 여자 선수 중에는 가장 강력한 서브를 구사하는 선수 중의 하나이고, 2009년 8월 세계랭킹 22위까지 올랐던 실력파 선수다. 작년과 올해 초는 조금 부진했지만 프랑스오픈부터 조금씩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프랑스오픈 2라운드에서 3번 시드의 베라 즈보나레바(러시아)를 상대로 3세트를 5-2로 앞선 채 매치 포인트를 맞이했으나 믿을 수 없는 5-7 역전패를 당하며 무너졌다. 경기 후 울면서 쓰러져 부상을 호소해 들것에 실려 나가기도 하는 사건이 있기도 했다(연기였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이처럼 그녀의 가장 큰 단점은 경기 중에도 오르락 내리락하는 기복이 심하다는 점인데 윔블던 8강 바르톨리와의 경기에서도 2세트에 이런 모습이 잠시 보였다. 그러나 윔블던의 전초전 격인 애곤 인터내셔널에서 우승을 하면서 컨디션을 끌어올린 리지키는 와일드카드로 출전한 윔블던에서 첫 그랜드 슬램 4강 진출의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5년만의 윔블던 준결승 진출을 이룬 샤라포바 ⓒ AELTC / N. Tingle

센터 코트의 두 번째 경기는 마리아 샤라포바와 도미니카 치불코바(22, 슬로바키아, 세계랭킹 24위)의 경기. 3개월 전 마드리드에서 치불코바에게 패한 적이 있던 샤라포바였지만 이 날 그녀의 컨디션은 절정에 올라 있었다. 강력한 베이스라이너의 면모를 뽐내며 포어핸드와 백핸드를 가리지 않고 좌우로 치불코바를 흔들며 경기를 유리하게 끌고 갔다. 대부분의 점수가 사이드라인과 베이스라인을 찌르는 스트로크에서 나왔을 만큼 샤라포바의 스트로크는 완벽에 가까웠다. 불과 한 시간 만에 2:0(6-1 6-1)의 완승이었다. 위너 23-3, 실책 10-11에서 보이듯이 완벽한 샤라포바를 위한 샤라포바에 의한 샤라포바의 경기였다.

샤라포바와 치불코바의 키 차이는.. 역시 크긴 크다 ⓒ AELTC / N. Tingle

경기 중에 현지 캐스터들도 샤라포바의 강력함에 할 말을 잃고 별다른 말을 하지 못할 정도였는데, 흥미로운 것은 지난 2004년 윔블던에서의 모습과 현재 샤라포바의 서브에 대한 비교가 있었다. 샤라포바는 전성기 때 시속 180km 후반의 강력한 서브를 넣는 선수였는데 최근에는 어깨 부상과 오랜 재활로 인한 두려움 때문인지 테이크 백부터 서브의 스윙 동작이 작아졌다. 그 때문인지 최고 속도와 평균 속도 모두 약 시속 10km 정도 줄어들면서 위력이 감소했고 서브 에이스의 숫자도 줄어들었다. 비가 와서 지붕을 덮고 경기가 열렸는데 덕분에 샤라포바의 "아오~!' "악!" "워우!" 함성이 경기장 안에서 진동하여 관중들의 귀가 따가웠을 것 같다. 치불코바의 부진도 샤라포바의 괴성에 압도된 것이 아닌지.

생애 첫 그랜드 슬램 준결승 진출을 이룬 아자렌카 ⓒ AELTC / J. Buckle

빅토리아 아자렌카(21, 벨라루스, 세계랭킹 4위)가 오스트리아의 타미라 파스첵(20, 세계랭킹 80위)을 2:0(6-3 6-1)으로 간단히 제압하고 역시 생애 첫 그랜드 슬램 4강에 진출하는 영광을 누렸다. 대부분의 그랜드 슬램에서 단식과 복식 모두 출전하는 욕심쟁이였는데, 이번에는 단식에만 출전하는 것이 체력적으로 더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자렌카는 1세트 1-1에서 연속으로 두 게임을 브레이크를 포함해 실점 없이 연속으로 따내며 3-1로 앞서 나갔고, 역전을 허용하지 않고 깔끔하게 세트를 마감했다. 아자렌카의 코너를 공략하는 강력한 스트로크와 스윙 발리 앞에 파스첵은 속수무책이었다. 2세트는 더 간단히 1-0에서 파스첵의 서브 게임을 브레이크하고 자신의 서브 게임을 지키며 3-0으로 앞서며 파스첵의 추격을 따돌렸다.

이 경기는 원래 No. 1 코트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1세트 첫 게임만에 비로 인해 경기가 중단된 후 재개와 중단을 반복하다가 센터 코트로 옮겨 경기가 열렸다. 윔블던 역사에서 경기를 다른 코트로 옮겨 치르는 것은 처음인데, 아자렌카와 파스첵은 그 역사적 순간의 '감동적인(moving) 경기'에 이름을 올린 주인공들이 되었다. No.1 코트에서 조용히 비가 그치고 경기가 시작하기만을 기다리던 팬들도 센터 코트의 입장권으로 교환할 기회를 얻게 되어 기다린 대가를 충분히 보상받은 셈이다. 전통보다는 실리를 택한 윔블던 위원회의 결정이 선수들과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을 위한 현명한 선택이었다. 덕분에 센터 코트에서는 샤라포바에 이어 아자렌카의 함성이 울려 퍼지며 소음 공해에 몸살을 앓았을 듯하다. 아자렌카 역시 최근 꾸준히 세계 톱 랭킹에 있으면서도 그랜드 슬램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는데 이번이 좋은 기회가 되었다.

2년 연속 준결승 진출의 크비토바 ⓒ AELTC / M. Hangst

비가 그치고 코트가 정리되면서 No. 1 코트에서 예정되었던 여자 단식 8강 두 경기 중 하나인 페트라 크비토바(21, 체코, 세계랭킹 8위)와 츠베타나 피론코바(23, 불가리아, 세계랭킹 33위)의 경기는 그대로 같은 경기장에서 열렸다. 작년 4강 진출자들의 대결이 된 이 경기에서는 여성 해설자가 여자 델 포트로라고 할 정도로 183cm, 70kg의 큰 체격을 가진 크비토바가(사실 샤라포바가 키는 188cm로 더 크지만 공식 프로필 상 체중은 고작 59kg라고 알려져 있다) 강력한 스트로크를 앞세워 피론코바를 밀어붙였다. 즈보나레바와 비너스 윌리엄스를 무찌른 피론코바는 그동안의 경기와는 달리 크비토바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자신의 서브 게임을 연속으로 브레이크 당하는 등 1세트를 힘없이 내주고 말았다. 2세트 초반에는 피론코바가 크비토바의 서브 게임을 브레이크하며 앞서 나갔지만, 크비토바가 피론코바의 서브 게임을 브레이크하며 따라잡고 접전을 벌이다 타이브레이크로 이어졌다. 타이브레이크에서 크비토바는 연속 실책 세 개를 범하며 2세트를 내주었지만, 3세트에서 지친 피론코바를 몰아붙이며 쉬운 승리를 거두었다. 크비토바의 2:1(6-3 6-7 6-2) 승리.

크비토바 역시 이번 승리로 첫 그랜드 슬램 우승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되었다. 4강에 오른 선수 중에서 단 한 번이라도 윔블던을 포함한 그랜드 슬램에서 결승 진출이라도 한 선수는 샤라포바가 유일하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단판 승부로 벌어지는 테니스에서 준결승과 결승이 주는 부담감이 큰 것을 생각하면 유경험자 샤라포바가 심리적인 면에서는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는 듯하다.

한국 시간으로 오늘 밤 9시부터 남자 단식 8강이 시작하는데 라파엘 나달의 부상은 예상대로 경기를 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레벨이 높은 선수들과 상대하게 되기에 부상으로 인한 경기력 손실이 얼마나 경기에 영향을 미칠 것인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달콤한 하루 휴식을 갖고 두 번째 월요일을 맞은 선수들. 악명높은 비는 내리지 않아서 경기가 지연되거나 취소되지 않았지만 뜨거운 햇살이 선수들에게는 편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경기를 마지막으로 윔블던에서 떠나야 하는 이들에게는 잔인한 블랙 먼데이가 되었다.

대회 7일째 (27일)

남자부에서는 '월드 넘버 원' 라파엘 나달(스페인)과 '황제' 로저 페더러(스위스)를 비롯한 4강 후보로 꼽힌 선수들이 모두 무사히 8강에 안착했다. 그러나 다른 네 명의 얼굴은 사실 기대했던 것과는 달랐다.

2세트 중간 인저리 타임을 갖는 라파엘 나달 © AELTC / T. Hindley

나달은 아르헨티나의 후안 마르틴 델 포트로를 3:1(7-6 3-6 7-6 6-4)로 꺾으며 8강에 올랐다. 델 포트로는 2009년 US오픈에서 페더러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지만 작년에 부진에 빠지며 한때 4위까지 올라갔던 랭킹이 485위까지 떨어지는 급추락을 경험했다. 그래도 두 개의 투어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조금씩 기량 회복을 하고 있던 중이어서 나달과의 명승부를 기대할 만하였다. 1세트부터 왼쪽 발의 이상으로 메디컬 타임을 요청하였던 나달은 다리를 저는 불편한 모습이었지만 1세트와 3세트 두 번의 타이브레이크에서 승리한 것이 컸다. 나달의 발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한 상태로 전해지고 있는데 검진 결과에 따라 다음 경기에 출전하지 않을 수도 있다니 결과를 지켜보아야겠지만 경기를 하는 모습으로 보아서는 출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Low-Vak 조코비치 © AELTC / S. Wake

나달이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거나 자신이 결승에 오르기만 해도 다음 주 세계랭킹에서 1위 자리에 오르게 되는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는 미카엘 로드라(프랑스)를 3:0(6-3 6-3 6-3)으로 쉽게 이겼다. 전형적인 서브 앤 발리 플레이어인 로드라는 54%에 그친 첫 서브 성공률이 발목을 잡았다. 바그다티스와의 힘든 경기에서 이긴 후 조금 더 정신을 차리게 된 것인지 조코비치는 냉정하게 경기를 하면서 1시간 41분 만에 경기를 마치고 8강에 진출했다. 조코비치는 8강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호주의 버나드 토믹을 상대한다.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페더러에게도 해당되는 말인지도 © AELTC / N. Tingle

페더러는 미하일 유즈니(러시아)의 공세에 첫 세트를 타이브레이크 끝에 지면서 대회 무실 세트 승리 기록이 중단되었다. 타이브레이크에서 2-1로 앞서던 페더러는 유즈니가 더블 폴트 등으로 자신의 서브 기회를 잘 살리지 못하자 4-2로 점수 차이를 벌렸지만 스트로크 미스가 이어지며 세트를 내주고 말았다. 2세트 2-2로 맞설 때만 하여도 페더러가 덜미를 잡힐 수 있겠다 싶은 분위기였지만, 페더러가 첫 브레이크를 성공시키며 3-2로 앞서 분위기를 반전시키며 세트를 따내고 3세트의 첫 게임 0-40으로 밀린 브레이크 위기에서 역전승에 이은 브레이크로 결정타를 날렸다. 페더러의 3:1(6-7 6-3 6-3 6-3) 승리. 페더러는 첫 서브의 성공률이 62%로 낮고, 실책을 25개나 범하는 등 다소 부진한 경기 내용이었지만 다재다능한 능력을 살려 승부처에서 점수를 따내며 승리를 이끌어냈다. 8강에서 맞붙는 상대는 조 윌프레드 송가(프랑스, a.k.a 쏭가 or 총가).

이제 머레이 대신 머리라고 부르기로 했다 (원어민 발음 중심주의) © AELTC / M. Hangst

앤디 머리(영국)는 리샤르 가스케(프랑스)를 상대로 3:0(7-6 6-3 6-2)의 승리를 거두었다. 첫 세트는 타이브레이크까지 가는 접전이었지만, 이후 두 세트는 머리가 쉽게 따냈다. 두 선수는 이 경기 전까지 맞대결에서 2승 2패를 기록하고 있었고, 작년 프랑스오픈에서 풀세트 접전을 벌여 머리가 두 세트를 먼저 내준 후 세 세트를 따내며 역전승을 거둔 명승부를 하기도 했었다. 머리는 첫 서브 성공률이 60%에 그쳤지만, 14개의 에이스와 36개의 리턴 실패로 이어질 만큼 위력을 발휘했고, 44개의 위너를 기록하면서 10개의 실책만을 저지르는 안정된 경기를 하였다. 머리는 쨍쨍한 햇빛을 의식한 듯 대회 처음으로 모자를 쓰고 경기를 한 것이 조금은 색달랐던 점. 8강의 상대는 이미 한 명의 앤디를 집에 보낸 스페인의 펠리시아노 로페스.

프랑스의 자존심 쏭가! © AELTC / T. Hundley

나머지 4명의 8강 진출자를 보면, 미국의 마디 피쉬(세계랭킹 9위)가 작년 준우승자 토마스 베르디흐(체코, 세계랭킹 7위)를 3:0(7-6 6-4 6-4)으로 누르고 8강에서 나달과 맞붙게 되었다. 1981년생으로 테니스계에서는 노장에 속하는 피쉬는 최근 들어 경기력이 더 좋아진 모습이어서 자신의 랭킹을 끌어올리고 있다. 송가는 세계랭킹 6위 다비드 페레르(스페인)를 3:0(6-3 6-4 7-6)으로 이기고 작년에 이어 8강 진출에 성공했다. 16강에 세 명이나 되었던 프랑스 선수 중 유일하게 살아남으며 프랑스 테니스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3라운드에서 이변을 연출했던 로페스는 역시 3라운드에서 가엘 몽피스를 누르며 이변을 일으킨 루카스 쿠보트(폴란드)와 그야말로 피 터지는 접전을 벌여 3:2(3-6 7-6 6-7 7-5 7-5)의 대역전극을 펼쳤다. 그 혈전을 치르고 나서 로페스는 바로 다음 경기장으로 달려가 혼합 복식 경기를 뛰어 승리를 거두었으니 이 사람 철인인지도. 토믹은 벨기에의 하비에르 말리세를 3:0(6-1 7-5 6-4)으로 완파하며 돌풍을 이어갔다. 세계랭킹이 고작 158위어서 이번 대회에도 예선을 거쳐 진출한 토믹은 그랜드 슬램 첫 4라운드 진출에 이어 8강 진출이라는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호주 남자 선수가 윔블던 8강은 참 오래간만의 일이다. 버나드 토믹 © AELTC / C. Brunskill

그래도 빅4가 건재했던 남자부보다 더 심하게 진창이 된 것은 여자 단식이었다. 윌리엄스 시스터즈(미국)가 나란히 짐을 싸게 되었고, 첫 그랜드슬램에 도전하였던 세계랭킹 1위 카롤리네 보스니아키(덴마크)도 무너졌다.

작년의 한을 푼 피론코바 © AELTC / M. Hangst

3라운드에서 베라 즈보나레바(러시아)에게 성공적인 복수를 했던 불가리아의 츠베타나 피론코바(32번 시드)는 비너스 윌리엄스를 2:0(6-2 6-3)으로 간단히 제압했다. 냉정하게 보았을 때 비너스는 그랜드 슬램에서 정상에 오르기 힘들 정도로 전성기에 비해 기량이 많이 쇠퇴했다. 그럼에도 윔블던 5회 우승의 관록을 믿어볼 만하였으나 반응 속도가 많이 느려진 몸이 반응하지 못하며 피론코바의 공을 받아내지 못했다. 피론코바는 이번 대회에서 단식 외에도 복식 멀티를 하였는데 복식 2라운드에서 패배한 것이 단식에 집중하는 계기가 될 것 같다.

바르톨리의 환호 © AELTC / N. Tingle

9번 시드를 받았던 마리온 바르톨리(프랑스, 세계랭킹 9위)는 서리나 윌리엄스를 2:0(6-3 7-6)으로 눌렀다. 오랜 공백을 가진 터라 초반에 발동이 잘 걸리지 않는 서리나는 1세트를 쉽게 내준 후에야 거센 저항을 했으나 바르톨리에게 패하고 말았다. 서리나는 비록 패하기는 했지만 윔블던 이후 다시 경기력을 회복할 경우 충분히 세계 정상권에 머물 실력을 가지고 있는 듯하여 조금 더 두고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디펜딩 챔피언으로서 포인트를 지키지 못해 세계랭킹이 저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은 면치 못하게 되었다. 바르톨리는 8강에서 이번 대회에서 무서운 기세로 달리고 있는 자비너 리지키를 상대하게 되어 쉽지 않은 경기가 예상된다.

보스니아키의 꿈을 무너뜨린 치불코바 © AELTC / J. Buckle

보스니아키의 패배는 더욱 드라마틱했다. 보스니아키는 도미니카 치불코바(불가리아, 24번 시드)를 맞아 1세트를 6-1로 가볍게 이겼다. 보스니아키는 1세트에서 첫 서브의 성공률이 79%에 달했고, 치불코바의 서브를 모두 리턴하면서 수비 여왕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러나 2세트부터 살아난 치불코바의 공격은 보스니아키의 수비를 붕괴시키기 시작했고, 타이브레이크 끝에 승리를 거두었다. 무려 74분이나 걸린 3세트는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으나 5-5에서 치불코바가 보스니아키의 서브게임을 브레이크하면서 앞섰고, 경기를 7-5로 끝냈다. 치불코바의 2:1(1-6 7-6 7-5) 승리. 치불코바는 올해 초 시드니 메디뱅크 인터내셔널에서 보스니아키를 이긴 적이 있기는 했지만 호주오픈에서는 패했고, 상대 전적이 2승 6패로 밀리고 있었는데 메이저대회 우승이 간절했던 보스니아키에게 통쾌한 복수를 했다.

샤라포바의 아악~! 서브 © AELTC / J. Buckle

아무리 그래도 현역 선수 중 윔블던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선수는 마리아 샤라포바(러시아)다. 단 한 차례 우승이었지만 그것이 너무도 강렬했던 그녀는 7년 전의 영광을 다시 누릴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샤라포바는 계속 대진 운이 좋은 편이었는데 4라운드에서도 중국의 펑슈웨이(20번 시드)를 맞아 2:0(6-4 6-2)의 쉬운 승리를 거두었다. 샤라포바는 여전히 서브에서 고전하였지만 서브 이후 경기를 풀어나가는 능력이 좋았다. 펑슈웨이에 비해서 9개 많은 위너를 기록하면서도 실책은 7개 적게 기록한 것이 가장 큰 승인. 그러나 상대 전적 2승 2패로 팽팽히 맞선 치불코바와의 8강 승부는 쉽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특히 올해 포함 최근 승부에서 모두 패한 것이 샤라포바로서는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다.

이번에는 인상을 덜 찌푸린 아자렌카 © AELTC / T. Hindley

빅토리아 아자렌카(벨라루스, 4번 시드)는 나디아 페트로바(러시아)를 2:0(6-2 6-2)로 가볍게 이겼다. 아자렌카는 자신보다 세계랭킹이 높은 선수들은 모두 떨어져서 첫 그랜드 슬램 달성의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페트라 크비토바(체코, 8번 시드)는 야니나 위크마이어(벨기에, 19번 시드)를 2:0(6-0 6-2)로 더 쉽게 이겼다. 시드 배정자들끼리의 경기에서 한 게임도 내주지 않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데 크비토바가 작년 윔블던 4강 진출이 운이 아니었음을 보여줄 지도 모르겠다. 시드를 받지 못한 이들의 대결에서는 3라운드에서 리나를 누르고 파란을 일으킨 자비너 리지키(독일)와 타미라 파스첵(오스트리아)이 8강행 티켓을 손에 넣었다.

윔블던 8일째인 28일에는 남자 단식 선수들은 휴식을 취하고(복식과 혼합복식은 경기가 있다), 여자 단식 8강의 네 경기가 모두 열린다. 과연 125회 윔블던 4강은 어떤 선수들이 올라갈 지 두고 볼 일이다.

이 분들도 센터 코트의 경기를 관람하셨다. 누구는 태어날 때부터 왕자, 나는 엄마 아들 © AELTC / M. Hang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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