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안 마르틴 델 포트로

달콤한 하루 휴식을 갖고 두 번째 월요일을 맞은 선수들. 악명높은 비는 내리지 않아서 경기가 지연되거나 취소되지 않았지만 뜨거운 햇살이 선수들에게는 편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경기를 마지막으로 윔블던에서 떠나야 하는 이들에게는 잔인한 블랙 먼데이가 되었다.

대회 7일째 (27일)

남자부에서는 '월드 넘버 원' 라파엘 나달(스페인)과 '황제' 로저 페더러(스위스)를 비롯한 4강 후보로 꼽힌 선수들이 모두 무사히 8강에 안착했다. 그러나 다른 네 명의 얼굴은 사실 기대했던 것과는 달랐다.

2세트 중간 인저리 타임을 갖는 라파엘 나달 © AELTC / T. Hindley

나달은 아르헨티나의 후안 마르틴 델 포트로를 3:1(7-6 3-6 7-6 6-4)로 꺾으며 8강에 올랐다. 델 포트로는 2009년 US오픈에서 페더러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지만 작년에 부진에 빠지며 한때 4위까지 올라갔던 랭킹이 485위까지 떨어지는 급추락을 경험했다. 그래도 두 개의 투어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조금씩 기량 회복을 하고 있던 중이어서 나달과의 명승부를 기대할 만하였다. 1세트부터 왼쪽 발의 이상으로 메디컬 타임을 요청하였던 나달은 다리를 저는 불편한 모습이었지만 1세트와 3세트 두 번의 타이브레이크에서 승리한 것이 컸다. 나달의 발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한 상태로 전해지고 있는데 검진 결과에 따라 다음 경기에 출전하지 않을 수도 있다니 결과를 지켜보아야겠지만 경기를 하는 모습으로 보아서는 출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Low-Vak 조코비치 © AELTC / S. Wake

나달이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거나 자신이 결승에 오르기만 해도 다음 주 세계랭킹에서 1위 자리에 오르게 되는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는 미카엘 로드라(프랑스)를 3:0(6-3 6-3 6-3)으로 쉽게 이겼다. 전형적인 서브 앤 발리 플레이어인 로드라는 54%에 그친 첫 서브 성공률이 발목을 잡았다. 바그다티스와의 힘든 경기에서 이긴 후 조금 더 정신을 차리게 된 것인지 조코비치는 냉정하게 경기를 하면서 1시간 41분 만에 경기를 마치고 8강에 진출했다. 조코비치는 8강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호주의 버나드 토믹을 상대한다.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페더러에게도 해당되는 말인지도 © AELTC / N. Tingle

페더러는 미하일 유즈니(러시아)의 공세에 첫 세트를 타이브레이크 끝에 지면서 대회 무실 세트 승리 기록이 중단되었다. 타이브레이크에서 2-1로 앞서던 페더러는 유즈니가 더블 폴트 등으로 자신의 서브 기회를 잘 살리지 못하자 4-2로 점수 차이를 벌렸지만 스트로크 미스가 이어지며 세트를 내주고 말았다. 2세트 2-2로 맞설 때만 하여도 페더러가 덜미를 잡힐 수 있겠다 싶은 분위기였지만, 페더러가 첫 브레이크를 성공시키며 3-2로 앞서 분위기를 반전시키며 세트를 따내고 3세트의 첫 게임 0-40으로 밀린 브레이크 위기에서 역전승에 이은 브레이크로 결정타를 날렸다. 페더러의 3:1(6-7 6-3 6-3 6-3) 승리. 페더러는 첫 서브의 성공률이 62%로 낮고, 실책을 25개나 범하는 등 다소 부진한 경기 내용이었지만 다재다능한 능력을 살려 승부처에서 점수를 따내며 승리를 이끌어냈다. 8강에서 맞붙는 상대는 조 윌프레드 송가(프랑스, a.k.a 쏭가 or 총가).

이제 머레이 대신 머리라고 부르기로 했다 (원어민 발음 중심주의) © AELTC / M. Hangst

앤디 머리(영국)는 리샤르 가스케(프랑스)를 상대로 3:0(7-6 6-3 6-2)의 승리를 거두었다. 첫 세트는 타이브레이크까지 가는 접전이었지만, 이후 두 세트는 머리가 쉽게 따냈다. 두 선수는 이 경기 전까지 맞대결에서 2승 2패를 기록하고 있었고, 작년 프랑스오픈에서 풀세트 접전을 벌여 머리가 두 세트를 먼저 내준 후 세 세트를 따내며 역전승을 거둔 명승부를 하기도 했었다. 머리는 첫 서브 성공률이 60%에 그쳤지만, 14개의 에이스와 36개의 리턴 실패로 이어질 만큼 위력을 발휘했고, 44개의 위너를 기록하면서 10개의 실책만을 저지르는 안정된 경기를 하였다. 머리는 쨍쨍한 햇빛을 의식한 듯 대회 처음으로 모자를 쓰고 경기를 한 것이 조금은 색달랐던 점. 8강의 상대는 이미 한 명의 앤디를 집에 보낸 스페인의 펠리시아노 로페스.

프랑스의 자존심 쏭가! © AELTC / T. Hundley

나머지 4명의 8강 진출자를 보면, 미국의 마디 피쉬(세계랭킹 9위)가 작년 준우승자 토마스 베르디흐(체코, 세계랭킹 7위)를 3:0(7-6 6-4 6-4)으로 누르고 8강에서 나달과 맞붙게 되었다. 1981년생으로 테니스계에서는 노장에 속하는 피쉬는 최근 들어 경기력이 더 좋아진 모습이어서 자신의 랭킹을 끌어올리고 있다. 송가는 세계랭킹 6위 다비드 페레르(스페인)를 3:0(6-3 6-4 7-6)으로 이기고 작년에 이어 8강 진출에 성공했다. 16강에 세 명이나 되었던 프랑스 선수 중 유일하게 살아남으며 프랑스 테니스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3라운드에서 이변을 연출했던 로페스는 역시 3라운드에서 가엘 몽피스를 누르며 이변을 일으킨 루카스 쿠보트(폴란드)와 그야말로 피 터지는 접전을 벌여 3:2(3-6 7-6 6-7 7-5 7-5)의 대역전극을 펼쳤다. 그 혈전을 치르고 나서 로페스는 바로 다음 경기장으로 달려가 혼합 복식 경기를 뛰어 승리를 거두었으니 이 사람 철인인지도. 토믹은 벨기에의 하비에르 말리세를 3:0(6-1 7-5 6-4)으로 완파하며 돌풍을 이어갔다. 세계랭킹이 고작 158위어서 이번 대회에도 예선을 거쳐 진출한 토믹은 그랜드 슬램 첫 4라운드 진출에 이어 8강 진출이라는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호주 남자 선수가 윔블던 8강은 참 오래간만의 일이다. 버나드 토믹 © AELTC / C. Brunskill

그래도 빅4가 건재했던 남자부보다 더 심하게 진창이 된 것은 여자 단식이었다. 윌리엄스 시스터즈(미국)가 나란히 짐을 싸게 되었고, 첫 그랜드슬램에 도전하였던 세계랭킹 1위 카롤리네 보스니아키(덴마크)도 무너졌다.

작년의 한을 푼 피론코바 © AELTC / M. Hangst

3라운드에서 베라 즈보나레바(러시아)에게 성공적인 복수를 했던 불가리아의 츠베타나 피론코바(32번 시드)는 비너스 윌리엄스를 2:0(6-2 6-3)으로 간단히 제압했다. 냉정하게 보았을 때 비너스는 그랜드 슬램에서 정상에 오르기 힘들 정도로 전성기에 비해 기량이 많이 쇠퇴했다. 그럼에도 윔블던 5회 우승의 관록을 믿어볼 만하였으나 반응 속도가 많이 느려진 몸이 반응하지 못하며 피론코바의 공을 받아내지 못했다. 피론코바는 이번 대회에서 단식 외에도 복식 멀티를 하였는데 복식 2라운드에서 패배한 것이 단식에 집중하는 계기가 될 것 같다.

바르톨리의 환호 © AELTC / N. Tingle

9번 시드를 받았던 마리온 바르톨리(프랑스, 세계랭킹 9위)는 서리나 윌리엄스를 2:0(6-3 7-6)으로 눌렀다. 오랜 공백을 가진 터라 초반에 발동이 잘 걸리지 않는 서리나는 1세트를 쉽게 내준 후에야 거센 저항을 했으나 바르톨리에게 패하고 말았다. 서리나는 비록 패하기는 했지만 윔블던 이후 다시 경기력을 회복할 경우 충분히 세계 정상권에 머물 실력을 가지고 있는 듯하여 조금 더 두고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디펜딩 챔피언으로서 포인트를 지키지 못해 세계랭킹이 저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은 면치 못하게 되었다. 바르톨리는 8강에서 이번 대회에서 무서운 기세로 달리고 있는 자비너 리지키를 상대하게 되어 쉽지 않은 경기가 예상된다.

보스니아키의 꿈을 무너뜨린 치불코바 © AELTC / J. Buckle

보스니아키의 패배는 더욱 드라마틱했다. 보스니아키는 도미니카 치불코바(불가리아, 24번 시드)를 맞아 1세트를 6-1로 가볍게 이겼다. 보스니아키는 1세트에서 첫 서브의 성공률이 79%에 달했고, 치불코바의 서브를 모두 리턴하면서 수비 여왕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러나 2세트부터 살아난 치불코바의 공격은 보스니아키의 수비를 붕괴시키기 시작했고, 타이브레이크 끝에 승리를 거두었다. 무려 74분이나 걸린 3세트는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으나 5-5에서 치불코바가 보스니아키의 서브게임을 브레이크하면서 앞섰고, 경기를 7-5로 끝냈다. 치불코바의 2:1(1-6 7-6 7-5) 승리. 치불코바는 올해 초 시드니 메디뱅크 인터내셔널에서 보스니아키를 이긴 적이 있기는 했지만 호주오픈에서는 패했고, 상대 전적이 2승 6패로 밀리고 있었는데 메이저대회 우승이 간절했던 보스니아키에게 통쾌한 복수를 했다.

샤라포바의 아악~! 서브 © AELTC / J. Buckle

아무리 그래도 현역 선수 중 윔블던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선수는 마리아 샤라포바(러시아)다. 단 한 차례 우승이었지만 그것이 너무도 강렬했던 그녀는 7년 전의 영광을 다시 누릴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샤라포바는 계속 대진 운이 좋은 편이었는데 4라운드에서도 중국의 펑슈웨이(20번 시드)를 맞아 2:0(6-4 6-2)의 쉬운 승리를 거두었다. 샤라포바는 여전히 서브에서 고전하였지만 서브 이후 경기를 풀어나가는 능력이 좋았다. 펑슈웨이에 비해서 9개 많은 위너를 기록하면서도 실책은 7개 적게 기록한 것이 가장 큰 승인. 그러나 상대 전적 2승 2패로 팽팽히 맞선 치불코바와의 8강 승부는 쉽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특히 올해 포함 최근 승부에서 모두 패한 것이 샤라포바로서는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다.

이번에는 인상을 덜 찌푸린 아자렌카 © AELTC / T. Hindley

빅토리아 아자렌카(벨라루스, 4번 시드)는 나디아 페트로바(러시아)를 2:0(6-2 6-2)로 가볍게 이겼다. 아자렌카는 자신보다 세계랭킹이 높은 선수들은 모두 떨어져서 첫 그랜드 슬램 달성의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페트라 크비토바(체코, 8번 시드)는 야니나 위크마이어(벨기에, 19번 시드)를 2:0(6-0 6-2)로 더 쉽게 이겼다. 시드 배정자들끼리의 경기에서 한 게임도 내주지 않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데 크비토바가 작년 윔블던 4강 진출이 운이 아니었음을 보여줄 지도 모르겠다. 시드를 받지 못한 이들의 대결에서는 3라운드에서 리나를 누르고 파란을 일으킨 자비너 리지키(독일)와 타미라 파스첵(오스트리아)이 8강행 티켓을 손에 넣었다.

윔블던 8일째인 28일에는 남자 단식 선수들은 휴식을 취하고(복식과 혼합복식은 경기가 있다), 여자 단식 8강의 네 경기가 모두 열린다. 과연 125회 윔블던 4강은 어떤 선수들이 올라갈 지 두고 볼 일이다.

이 분들도 센터 코트의 경기를 관람하셨다. 누구는 태어날 때부터 왕자, 나는 엄마 아들 © AELTC / M. Hangst

윔블던 3라운드가 끝나고 16강이 가려졌다. 4라운드까지는 무난히 진출하리라 예상되었던 선수들이 종종 탈락하면서 이변이 일어나고 있지만,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혔던 선수들은 여전히 안정된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어 갈수록 흥미진진한 승부가 이어질 것 같다. 여자부의 마리아 샤라포바(러시아)와 카롤리네 보스니아키(덴마크, a.k.a. 캐롤라인 워즈니아키) 등은 예정된 경기가 우천과 일몰로 취소되면서 하루 밀린 스케쥴을 소화하게 되었고, 남자부 경기에서도 여러 경기가 중단되면서 다음 날로 밀려서 선수들이 컨디션 조절이라는 다른 과제를 안게 되었다.

 

대회 5일째 (24일)

비가 와서 많은 경기들이 다음 날로 밀리며 많은 선수들이 고생을 해야했다. 톱시드를 받은 세계랭킹 1위 라파엘 나달도 비 앞에서는 경기를 할 수 없었다.

재빠르게 공을 향해 달리는 앤디 머레이 ⓒ AELTC / M. Hangst

앤디 머레이(영국)는 유일하게 지붕이 있는 경기장인 센터 코트에서 경기를 한 덕분에 예정대로 경기를 치를 수 있었다. 크로아티아의 이반 류비치치를 맞은 머레이는 1세트를 먼저 따냈지만 2세트에서 갑자기 흔들리며 세트 스코어 1:1을 허용하고 말았다. 경기가 풀리지 않을 때 순간적으로 페이스를 잃어버리는 고질적인 문제가 머레이의 발목을 잡으며 이미 탈락한 앤디 로딕(미국)에 이어 앤디들이 모두 탈락하는 듯했다. 그러나 3세트에서는 다시 자기 페이스를 찾으며 6-1로 쉽게 이기고, 4세트에서 타이 브레이크 끝에 7-6으로 마무리하면서 4라운드에 진출하였다. 류비치치는 최고 시속 224km(139mph)의 강서브를 앞세워 밀어붙였지만 스트로크의 정교함에서 머레이에 밀리며 경기를 내주었다.

 

세상에 아니 로페스에게 영원한 천적이란 없다 ⓒ AELTC / M. Hangst

이 날의 가장 큰 이변은 다른 앤디, 로딕의 탈락이었다. 로딕의 상대였던 스페인의 펠리시아노 로페스는 로딕과 일곱 번 맞붙어 단 한 번도 이긴 적이 없었기에 로딕의 낙승이 예상되었다. 로딕은 특기인 최고 시속 230km(143mph)의 광속 서브를 넣으며 로페스를 압박했지만 정확도가 떨어졌고, 로페스가 로딕의 코스를 잘 파악하고 대처하면서 힘든 경기를 하였다. 스트로크가 길게 이어질수록 단점이 많이 드러나는 로딕으로서는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1세트와 2세트에서 타이브레이크에서 패하고, 3세트에서 결정적인 브레이크를 당하며 로딕은 0:3의 완패를 당하고 말았다. 남자부의 톱 10 선수 중에서 첫 번째 탈락이었다.

굿바이 롸딕! ⓒ AELTC / M. Hangst

머레이에 밀려 센터 코트 대신 No.1 코트에서 경기를 하던 나달은 1세트를 7-6으로 따낸 후 경기가 비로 연기되었고, 후안 마르틴 델 포트로(아르헨티나), 가엘 몽피스(프랑스) 등도 역시 도중에 경기가 중단되었다.

샤라포바와 롭슨의 등장 ⓒ AELTC / N. Tingle

여자부에서는 전날 경기가 연기되어 치르지 못한 샤라포바와 보스니아키 등이 다른 선수들의 3라운드 경기에 앞서 2라운드 경기를 하였다. 샤라포바는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안은 17세 소녀 로라 롭슨에게 고전하며 1세트에서 1-4로 밀리며 첫 세트를 내주는 듯이 보였지만 익숙하지 않은 상대 파악이 완료되자 무섭게 점수를 따내며 타이브레이크까지 끌고 갔고, 타이브레이크에서도 2-4로 뒤지다가 다섯 점을 연속으로 내면서 승리했다. 1세트의 역전패의 충격이 컸을까 롭슨은 2세트에서는 큰 저항을 하지 못하며 경기는 샤라포바의 2:0(7-6 6-3) 승리로 끝났다.. 샤라포바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롭슨이 대단한 잠재력을 가졌다고 극찬하였다고. 보스니아키는 프랑스의 버지니 라자노를 1시간 6분만에 2:0(6-1 6-3)으로 제압하고 3라운드에 진출했다.

왜 아자렌카는 모두 인상을 쓴 사진만 있을까 ⓒ AELTC / M. Hangst

3라운드 경기에서는 빅토리아 아자렌카(벨라루스)가 다니엘라 한투코바(슬로바키아)와 풀세트 접전 끝에 2:1(6-3 3-6 6-2)로 이겼다. 한투코바는 2세트에서 무서운 집중력으로 아자렌카의 서브게임을 브레이크하며 3세트까지 경기를 끌고 갔지만 3세트 초반부터 발걸음이 무뎌지면서 패하고 말았다. 한투코바는 단식과 복식을 병행하고 있는데 적지 않은 나이에 많은 경기 때문인지 경기 후반으로 갈수록 조금씩 체력의 한계가 드러나는 듯하다. 샤라포바 못지 않게 경기 중에 괴성을 지르는 아자렌카는 음역대가 높아 경기를 볼 때 자연스럽게 음소거를 하게 된다.

2인자를 이긴 피론코바는 쩜오인가 ⓒ AELTC / T. Hindley

2번 시드, 세계랭킹 2위, 작년 준우승자 삼박자를 갖춘 2인자 베라 즈보나레바(러시아)는 불가리아의 스베타나 피론코바에게 덜미를 잡히며 탈락했다. 피론코바는 작년 준결승에서 즈보나레바에서 패하여 아쉽게 결승 진출에 실패했는데 그 빚을 제대로 갚았다. 어떻게 3라운드까지 올라오기는 했지만 뭔가 좋아보이지는 않았던 즈보나레바는 피론코바에 그냥 일방적으로 밀리며 졌다. 비너스 윌리엄스(미국)는 순식간에 마리아 호세 마르티네스 산체스를 이겼고, 프랑스의 마리온 바르톨리, 벨기에의 야니나 위크마이어, 체코의 페트라 크리토바 등도 승리를 거두며 4라운드에 진출했다.

 

대회 6일째 (25일)

포어핸드 스트로크 발사 준비 완료 ⓒ AELTC / M. Hangst

이 날의 일정은 밀린 경기의 재개부터 시작되었다. 나달은 룩셈부르크의 질레스 뮐러를 3:0(7-6 7-6 6-0)으로 물리치며 한 세트도 내주지 않고 승승장구하고 있다. 왼손잡이 선수끼리의 대결이어서 흥미있는 경기였는데 뮐러가 한 세트라도 타이브레이크에서 따냈더라면 나달을 조금 더 괴롭힐 수 있었겠지만, 아쉽게 두 세트를 내준 후 3세트에서는 전의를 상실하며 그냥 무너지고 말았다.

페더러의 원핸드 백핸드 스트로크는 정말.. ⓒ AELTC / J. Buckle

로저 페더러(스위스)는 아르헨티나의 다비드 날반디안을 3:0(6-4 6-2 6-4)으로 물리치며 1시간 46분만에 경기를 끝냈다. 그동안 애먹던 서브 성공률도 71%로 많이 올라왔고 최고 시속 209km(130mph)까지 나온 서브 속도 역시 지난 경기에 비해서 좋았다. 서브의 위력이 살아나자 경기를 유리하게 이끌어가면서 브레이크를 한 번만 허용하였고, 일곱 번의 브레이크 포인트에서 다섯 번 브레이크를 성공시키며 쉽게 경기를 이겼다.

공공의 적이 되어버린 조코비치 ⓒ AELTC / M. Hangst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는 사이프러스의 마르코스 바그다티스와의 접전을 3:1(6-4 4-6 6-3 6-4)로 승리하였다. 스코어처럼 조코비치가 우세한 경기를 했지만 바그다티스 또한 물러서지 않고 끈질기게 조코비치를 괴롭혔다. 각 세트마다 단 한 번씩만 브레이크가 있었는데, 세 번의 브레이크를 한 조코비치가 바그다티스를 눌렀다. 조코비치는 종종 날카로운 백핸드 스트로크를 보여주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실수가 많아서 경기를 어렵게 했다. 그러나 4세트에서 고비에서 서브 에이스를 기록하며 바그다티스를 압박하여 승리했다. 경기장 내에는 사이프러스 출신의 바그다티스의 팬도 많았고, 심지어 페더러를 응원하던 팬들까지도 잠재적 위협인 조코비치보다는 바그다티스를 응원하면서 조코비치는 공공의 적이 되는 듯싶었으나 관중들의 일방적인 응원도 잠재울만큼 조코비치의 기량이 한 수 위였다. 조코비치는 2세트 중반 랠리에서 샷을 미스한 후 라켓을 바닥에 세 번 치면서 부러뜨리는 모습을 연출하는 등 심한 감정 기복을 다시 보여주었다.

3년 전 바그다티스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그를 아저씨라 불렀다 ⓒ AELTC / T. Hindley

호주의 테니스 아이돌 버나드 토믹 ⓒ AELTC / T. Hindley

3라운드에서 호주의 레이튼 휴잇을 이겼던 5번 시드 로빈 소더링(스웨덴)은 호주의 버나드 토믹에게 0:3(1-6 4-6 5-7)로 힘없이 무너지며 탈락했다. 소더링은 휴잇과의 경기에서도 그다지 좋은 모습은 아니었는데 이 경기에서도 실망스러운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로딕에 이은 두 번째 톱10 선수의 탈락이 되었다. 휴잇으로 대표되던 호주 남자 테니스의 에이스 자리에 토믹이 세대교체를 선언하는 계기가 될지 관심이 간다. 휴잇의 패배로 상심했을 오지팬들이 다시 토믹의 이름을 외치며 경기장을 시끄럽게 할 것 같다. 그 외에 후안 마르틴 델 포트로(아르헨티나)와 다비드 페레르(스페인) 등이 역시 4라운드에 진출하며 16인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현지 캐스터는 캐롤라인 보스니아키라고 그녀를 부른다. 쳇! ⓒ AELTC / J. Buckle

하루 만에 경기를 다시 치르게 된 보스니아키는 호주의 자밀라 가조소바를 2:0(6-3 6-2)로 가볍게 이기고 4라운드에 진출했다. 이틀 연속 1시간 6분 만에 경기를 끝낼 정도로 좋은 몸 상태와 안정된 기량을 보여주고 있어서 생애 첫 메이저 대회 우승 가능성을 밝히고 있다. 가조소바는 예전에 자밀라 그로스라는 이름으로 뛰던 선수인데, 이혼을 하고 다시 결혼 전의 성으로 경기에 나서고 있다. 태생은 슬로바키아지만 호주 이중국적을 가지고 있어 호주 국적으로 경기에 출전하고 있다.

그녀는 마치 성난 암사자와 같았다 ⓒ AELTC / S. Wake

샤라포바와 서리나 윌리엄스(미국)도 한 수 위의 기량으로 모두 2:0 승리를 거두며 가볍게 4라운드에 진출했다. 샤라포바는 여전히 서브의 정확도에 문제를 드러내고 있지만 경기력이 안정 궤도에 올라 있는 상황이고, 서리나는 초반 두 경기에서는 코트가 낯선 듯 경기 중반부터 발동이 걸리는 모습이었지만 경기 감각을 차츰 회복해가는 것이 눈에 보인다. 이 두 선수는 경기를 치를수록 더 강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2라운드 최고의 이변을 일으켰던 자비너 리지키(독일)도 일본의 미사키 도이를 꺾고 4라운드에 합류했고, 아나 이바노비치는 체코의 페트라 세트코브스카에 가볍게 패하며 다시 짐을 싸게 되었다.

6일 동안의 일정을 마친 윔블던은 오늘 하루를 쉬고 내일 7일째 일정을 재개한다. 7일째에는 단식 4라운드 경기가 모두 열려 절반이 탈락하고 8강이 가려지게 된다. 과연 누가 남고 누가 집으로 돌아갈 것인가.

마지막 사진은 신데렐라가 될 뻔했던 롭순이로.. ⓒ AELTC / N. Tingle

남자부 톱시드의 라파엘 나달(스페인)이 2라운드 경기를 치르고 있는 지금은 다소 늦은 소식일 수 있지만 간략하게 주요 선수 위주로 윔블던 20일과 21일에 열렸던 1라운드 경기 결과를 전하려고 한다. 시드 배정 선수들이 탈락하는 등의 작은 이변은 있지만 우승 후보들은 모두 쉽게 1라운드에서 승리를 거두며 우승을 향해 한 발 앞으로 나아갔다.

대회 첫째 날 (20일)

라파엘 나달의 서브 ⓒ AELTC / T. Hindley

라파엘 나달은 1라운드에서 미국의 마이클 러셀을 세트 스코어 3:0(6-4 6-2 6-2)으로 가볍게 이기고 2라운드에 진출했다. 러셀은 33세의 노장으로 2007년 세계랭킹 60위에 올랐던 것이 최고일만큼 나달과는 급이 다른 선수. 나달의 첫 번째 서브 성공률은 67%에 그쳤지만 최고 시속 187km(116mph)까지 나온 서브를 앞세워 첫 번째 서브에서 77%의 포인트를 따내며 경기를 압도했다. 스트로크의 정확도를 보여주는 위너의 수에서 35:14로 압도한 것도 나달이 자기 경기를 확실히 했음을 보여준다.

앤디 머레이의 스트로크 ⓒ AELTC / M. Hangst

앤디 머레이(영국)는 스페인의 다니엘 히메노 트라베르에게 1세트를 먼저 내주었으나 경기를 뒤집으며 3:1(4-6 6-3 6-0 6-0)으로 이겼다. 머레이의 첫 번째 서브 성공률은 70%, 최고 속도는 시속 209km(130mph)를 기록했으며 위너의 숫자도 45:24로 우세했다. 첫 번째 서브에서 90%에 달하는 득점을 올린 것과 88%의 성공률을 기록한 어프로치가 승리의 원동력이었다.

나머지 톱 10 랭커를 보면 토마스 베르디흐(체코), 가엘 몽피스(프랑스), 마디 피쉬(미국)이 모두 3:0으로 승리하며 2회전에 진출했다. 왕년의 세계랭킹 1위 토미 하스(독일)는 룩셈부르크의 질레서 뮐러에게 1:3으로 패하며 1회전에서 탈락했다. 30번 시드를 배정받았던 브라질의 토마스 벨루치를 제외한 시드 배정 선수는 모두 2회전에 진출했다.

빠른 발을 가진 프란세스카 스키아보네 ⓒ AELTC / M. Hangst

여자부에서는 6번 시드의 프란세스카 스키아보네(이탈리아)가 왕년에 마르티나 힝기스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던 옐레나 도키치(호주)를 2:1(6-4 1-6 6-3)로 이겼다. 스키아보네는 프랑스오픈에서 우승했던 그랜드 슬램 경력이 있어서일까 작년 준우승자이자 세계랭킹 2위인 베라 즈보나레바(러시아)를 No. 1 코트로 밀어내고 센터 코트에서 경기하는 행운을 누렸다. 즈보나레바도 미국의 앨리슨 리스키를 2:1(6-0 3-6 6-3)로 이기고 2라운드에 진출했다. 오래간만에 컴백한 비너스 윌리엄스와 러시아의 스베틀라나 쿠즈네초바, 그리고 일본의 노장 키미코 다테-크룸도 2라운드에 합류했다. 비너스와 다테-크룸은 2라운드에서 맞붙을 예정이다. 의외로 시드 배정자들이 탈락한 경우가 많은 것이 이 날의 특징.

대회 둘째 날 (21일)

벌처럼 날아오르는 로저 페더러 ⓒ AELTC / N. Tingle

남녀 모두 첫째 날보다는 볼거리가 더 많은 둘째 날이었다. 샘프라스의 7회 우승에 도전하는 '황제' 로저 페더러(스위스)는 카자흐스탄의 미하일 카카시킨을 3:0(7-6 6-4 6-2)으로 가볍게 이기며 2라운드에 진출했다. 페더러의 첫 번째 서브 성공률은 71%, 첫 서브 후 득점 성공률은 89%였고 서브의 최고 속도는 시속 205km(127mph)였다. 53-16으로 압도한 위너의 숫자에서 보이듯이 모처럼 정확한 스트로크가 빛을 발한 경기였다.

승자의 환호 노박 조코비치 ⓒ AELTC / N. Tingle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는 프랑스의 제레미 샤디를 3:0(6-4 6-1 6-1)로 가볍게 제압하며 강력한 포스를 보여주었다. 샤디는 최고 시속 217km(135mph)의 강력한 서브를 가지고 있음에도 첫 번째 서브가 59%밖에 되지 않았고, 첫 서브의 득점도 68%에 그쳤다. 광서버 앤디 로딕(미국)도 최고 시속 228km(142mph)의 광속 서브를 앞세워 독일의 안드레아스 벡을 3:0(6-4 7-6 6-3)으로 누르며 2라운드에 합류했다. 로딕은 첫 번째 서브의 평균 속도가 시속 200km(124mph)로 어지간한 선수들의 최고 속도에 맞먹는 무시무시함을 보여주었다.

톱10 선수로는 5번 시드의 로빈 소더링(스웨덴)과 7번 시드의 다비드 페레르(스페인)가 2라운드에 진출했고, 스페인의 페르난도 베르다스코와 2009년 US오픈 우승자 후안 마르틴 델 포트로(아르헨티나), 무하마드 알리의 재림 조-윌프레드 송가(프랑스), 왕년의 강자 호주의 레이튼 휴이트 등도 합류했다. 지난 대회에서 사상 초유의 11시간 5분(5세트만 8시간 11분)짜리 2박 3일 매치를 벌였던 존 아이스너(미국)와 니콜라스 마후트(프랑스)는 다시 1라운드에서 맞붙었는데 이번에는 아이스너가 3:0(7-6 6-2 7-6)으로 승리했다. 아이스너가 이기기는 했지만 두 세트에서 타이브레이크까지 가는 접전이 벌어졌다고.

이것이 샤라포바 스타일! 마리아 샤라포바 ⓒ AELTC / N. Tingle

여자 경기에서는 마리아 샤라포바(러시아)가 같은 나라의 안나 차크베다체를 2:0(6-2 6-1)으로 가볍게 제압하며 산뜻한 출발을 하였다. 프랑스오픈 이후 여러 이유로 경기에 불참하다가 윔블던에 참가한 샤라포바는 경기 내용이 좋지는 않았지만 상대의 부진 덕분에 쉬운 승리를 거두었다. 한 때 톱10에 들었던 차크베다체는 첫 번째 서브 성공률이 58%에 불과하고, 첫 서브에서 54%밖에 되지 않는 득점을 기록하는 등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무릎을 꿇었다. 샤라포바의 서브 최고 속도는 시속 173km(108mph)에 불과했다.

울고 있는 서리나 윌리엄스 ⓒ AELTC / N. Tingle

작년 우승자 서리나 윌리엄스(미국)는 프랑스의 아라바네 레자이를 2:1(6-3 3-6 6-1)로 다소 힘겹게 이기고 2라운드에 진출했다. 남자 못지 않은 강서버답게 시속 188km(117mph)의 강력한 서브를 보여주었으나 서브의 정확도는 61%로 좋지는 않았다. 경기가 끝나고 윔블던에서 다시 1승만이라도 더 하고 싶었다면서 오래간만에 코트에 돌아온 소감을 밝히며 울음을 터뜨렸다고.

워즈니아키의 서브 ⓒ AELTC / N. Tingle

전직 우승자들에게 센터 코트를 빼앗기고 No.1 코트에서 경기를 치른 세계랭킹 1위 캐롤라인 워즈니아키(덴마크)와 프랑스오픈 우승자 중국의 리나, 워낙 쟁쟁한 선수들에 가려진 세계랭킹 4위 빅토리아 아자렌카(벨라루스)는 2:0으로 가볍게 2라운드에 합류했다. 이 밖에 이름이 꽤 알려진 선수로는 아나 이바노비치(세르비아), 다니엘라 한투코바(슬로바키아), 마리아 키릴렌코(러시아) 등이 2라운드에 합류했다. 호주의 희망인 세계랭킹 10위 사만다 스토서와 전 세계랭킹 1위인 세르비아의 옐레나 얀코비치는 패하며 짐을 싸게 되었다. 일본의 새로운 희망이자 아시아 랭킹 3위인 모리타 아유미는 첫 세트를 이기고도 두 세트를 연거푸 내주며 역시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첫 날부터 비가 내리며 꼬이기 시작한 경기 일정은 둘째 날에 1라운드 경기를 모두 마치지 못함에 따라 일부 선수들은 셋째 날에 1라운드 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센터 코트에는 지붕을 씌워 우천에도 경기를 할 수 있게 하였다지만 나머지 코트에서는 비가 내리면 경기를 할 수 없어 참 혼란스럽다.

지금 이 순간 나달이 벌써 2:0으로 앞선 가운데 3세트를 끝내려 하고, 머레이가 두 세트를 따내려 하고 있다. 경기 결과를 쓰느라고 두 시간이나 걸리다니.. 흑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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