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수염폭포

#4. 흰수염폭포

2018. 8. 28. 04:57



지난 밤에는 오토바이를 타고 전국을 돌아다니는 아저씨와 같은 방에서 잠을 자게 되었는데, 미에현에서 오신 분이라고 한다. 미에라고 하면 츠, 토바, 시마, 이세 정도 다녀온 것이 전부인 것 같은데 시간이 많이 흘러서 잘 기억이 나지도 않고,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킨테츠 우지야마다역이었던가 근처에 있는 음식점에서 오코노미야끼를 먹었던 것이라, 이세신궁에 갔다 온 적이 있고, 몇몇 도시에 잠시 들러서 묵은 적이 있지만, 시간이 지나니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분과 이야기를 하다보니 한국인들은 일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을 하는가에 대해서도 물어보시는데, 아무래도 역사적인 문제가 있어서 쉽사리 양국의 간극을 좁히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하니, 자신은 전후세대이기 때문에 전쟁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경험한 것이 없어서 딱히 뭐라고 말할 수는 없고, 거기에 대해서 특별히 가지고 있는 감정은 없다고. 전후세대라고 하면 1945년 이후 태어난 이들을 말하는 것이니 그 아저씨도 대충 50대 전후일 것 같은데, 뭐랄까 조금 마음이 열려 있는 분 같은 느낌이 들었다. 대개 여행 중에 만나는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마음에 여유가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설마 조센징이 와서 자기한테 귀찮게 말을 걸더라고 뒷담화를 까지는 않았겠지..

그러다 그 아저씨는 이른 시각에 출발하였고, 나는 조금 늦게 일어나서 천천히 씻고 짐을 챙겨서 밖으로 나왔다. 아침을 먹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조금 더 비에이 방면으로 가다보면 미치노에키라든가 카페나 식당이 하나 둘 정도는 있지 않을까 싶었다. 원래 방문하는 장소에 대해서 미리 열심히 연구를 하고, 효과적인 동선을 찾아내거나 맛집을 찾아놓고 가는 것이 전혀 아니고, 일본에 왔으면 온천욕이나 해야지 하면서 온천이 있는 곳을 찾은 것 뿐이고, 부킹닷컴에서 흰수염폭포가 가깝다는 한국인 여행자의 댓글을 보고 아 근처에 이런 것이 있구나 싶었는데, '배틀트립' 이었던가 어떤 텔레비전 여행 프로그램에서 잠시 보았던 것 같아서 그 곳에 잠시 가보기로 한다.


흰수염폭포(白ひげの滝)

일본어로는 '시라히게노타키' 라고 부른다.

 

이 주변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것 같다.


예상했던대로 이 폭포를 실제로 보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찍어놓은 사진을 보는 것보다는 못하다는 느낌이었다. 유량이 적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조금 더 화끈하게 물이 쏟아졌으면 좋으련만 수염처럼 가늘게 흐르는 것이 좀 아쉽기도 하고.. 수염이라서 저렇게 쫄쫄쫄 물이 흐르는건가..


사진을 한 장 더 찍고


폭포를 바라보고 있는 다리 위에서 사진을 하나 더 찍고


주변에 사람들이 없는 틈을 타서 사진을 몇 장 더 찍었다.


물 색깔이 다소 푸른 빛을 띈다고 해서 아오이카와(青い川)라고 불린다는 것 같다.


밑에는 온천수가 섞여서인지 김이 올라오기도 하고..

 

바닥에 흐르는 물도 맑지는 않다. 온천수도 섞여 있을 터이고..


조금 먼 곳까지 사진을 찍고

 

가족으로 보이는 관광객들이 다리를 건너고 있다.

 

근처의 고급 료칸형 숙소 사진도 찍어본다. 갈 곳은 많으니 다시 올 일은 없을 것 같기는 하지만..

 

햇빛과 맞장을 뜨려다보니 사진이 이렇게 나왔나..

 

렌즈에 물이나 땀이 묻어있었던 것 같다.

 

시라히게노타키(白ひげの滝, 흰수염폭포)에 대한 설명인데 '다리 위에서 봐 BoA요~' 라고 한다. 아쉽지만, 짐도 있고, 이 더운 날씨에 종일 먼 길을 가야하므로 체력을 아껴야 하니 그럴 일은 없다.


역시 여행을 온 가족들인 것 같고..

 

여기 흐르는 강의 이름이 비에이카와(美瑛川)인 것 같다.


다리를 다시 건너서 처음 장소로 되돌아왔다.

여기에 온 사람들은 대부분 가족 단위인데다 자동차를 가지고 와서 별 문제가 없겠지만, 차도 없고, 돈도 없는 사람은 걸어서 가야 한다. 버스가 다니기는 하지만, 버스 시간이 띄엄띄엄해서 버스 시간에 맞춰서 돌아다니는 것도 골치가 아픈 일이라. 올 때와 마찬가지로 비에이역까지 가는 버스는 하루에 단 다섯 대만이 다닐 뿐. 일단은 아오이케까지만 걸어서 가보고, 그 다음에 버스를 타고 비에이로 돌아가면 될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날씨에 비에이역까지 걸어가는 것은 할 짓이 아닌 듯하다.


자작나무들이 잔뜩 심어져 있다. 일단 강렬한 햇빛을 가려주니 굉장히 고맙다.


캐리어를 끌고 다니기 편한 길이 있어서 자작나무숲 가까이 가는데 아쉽게도 이렇게 정비해서 포장된 길은 별로 길지 않았다.

 

그런데 더 들어가봤자 뭔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저 안에 들어가 잠시 쉬려고 했는데 벌들이 날아다녀서 도망쳤다. 이런 곳에서 벌에 쏘일 수도 있어서..


사람이 지나다닌 듯한 흔적이 있기는 한데, 그리 많이 다닌 것 같지는 않다. 다시 생각해봐도 백팩을 메고 캐리어를 끌고 다니면서 이런 험한 지형을 지나가고 있는 사람이 어리석은 것 같은데..

 

부동의 폭포라는 곳이 있는데 모르고 그 곳을 지나쳐버렸다. 나중에 이 근처에 가게 된다면 다녀오겠는데, 그게 언제가 될 지는 모르는 일이고. 부동의 폭포 보러간다고 이 곳을 또 갈 수는 없는 일이고. 여기서 시로가네가 1.5km라고 하니, 여기까지 그만큼 걸어온 것 같은데, 이 정도면 몸풀기 정도라 생각하면 되지만, 짐덩이가 두 개나 있어서 걸어가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10년 넘게 사용하면서 바퀴가 여기저기 찍히고 주인의 과적으로 인한 피해로 손잡이가 휘어져서 잘 들어가고 나오지 않는 캐리어라서, 돈 벌어서 새 캐리어를 살 때까지 조금만 더 고생하자고 달래가면서 끌고 다니고 있다.


태풍과 폭우로 인해서 저렇게 쓰러진 나무들도 있는데, 일단 아오이케까지만 가보고 아오이케부터는 버스를 타고 비에이로 가야 할 것 같다. 썬크림을 두껍게 바르고 다니고 있지만, 땀이 줄줄 흘러서 계속 씻겨 내리고, 다시 바르기를 반복하고 있다.9월인데도 햇살이 쨍쨍해서 도저히 짐을 메고 끌면서 이 햇살과 맞장을 뜨자니 그 전에 타죽을 것 같다. 사진 속에 쓰러진 나무는 비바람 때문인 것 같은데, 날이 맑은 것은 그나마 다행인건가 싶다.


하늘이 맑아서 기분이 좋은 가운데 어울리지 않게 이 시간에 길을 걷고 있다. 대개 이 시간에는 집에서 막 눈을 뜨거나 늦잠을 자서 곧 허둥대기 일보직전일텐데.. 잠을 설친 덕분에 일찍 짐을 챙겨서 나오게 되었다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 사실 어지간히 피곤하지 않으면 낯선 곳에서는 잠을 잘 자지 못해서 고생을 하는 편이라..


삿포로 테레비탑도 보이고 


도토루에 들어가서 샌드위치와 커피를 시켰다.

생각해보니 내가 주로 아침 식사가 포함된 비즈니스호텔의 숙박 플랜 또는 아침 식사를 추가로 신청했던 것은 아침부터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는 것이 싫어서였던 것 같다. 고독한 미식가는 아니고, 그냥 주는대로 나오는대로 잘 먹는 사람이라서.. 


뭐였더라..

사진을 찍기는 했는데 무엇을 찍으려고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왼쪽은 삿포로와 하코다테를 오가는 183계 디젤 차량 특급 호쿠토, 오른쪽은 733계 전동차

 

홋카이도의료대학역까지 운행하는 보통열차. 

삿쇼선은 한 번도 안 타본 것 같은데, 뭐 별로 타보고 싶지는 않다.


탈 열차 카무이가 들어오고 있다.

이 특급형 전동차는 예전에 '수퍼 카무이' 라는 이름으로 삿포로와 아사히카와를 연결하는 하코다테본선을 다녔는데 언제부터인지 '수퍼' 이름이 빠졌다. 예전에는 틸팅이 되는 디젤 차량으로 운행하는 특급형 열차에 '수퍼' 라는 단어를 붙였던 것 같은데, 예를 들면 삿포로에서 하코다테를 오가는 특급 호쿠토는 틸팅이 되지 않는 디젤 똥차 183계 열차이고, 수퍼 호쿠토는 틸팅이 되는 261계, 281계 디젤 동차 같은 식으로. 


비바이(美唄)역

역 이름처럼 홋카이도 비바이시에 있는 역. 이 역은 늘 지나가기만 했는데, 이번에도 그냥 지나간다.


역을 출발하면 곧 이런 숲 사이로 달린다.


여기는 스나가와(砂川)역

이 동네의 강에는 모래가 많은가..

카무이의 정차역은 비바이, 이와미자와, 스나가와, 후카가와, 타키카와, 그리고 종착역인 아사히카와가 되겠다.

 

아침을 안 먹은 것은 아닌데 배가 고파서 샐러드를 사먹었다.

영양성분 계량하면서 치밀하게 식단을 짜서 음식을 먹을 리는 없지만 가급적 골고루 먹으려고 노력은 하고 있다.


4종의 필수 아미노산이 배합된 드링크제도 하나 사서 마시고..

이틀 동안 호스텔에서 잤더니 피곤한 것이 나이는 속일 수 없는 것 같다.


후라노선이 단선이기에 양방향 교행을 위하여 잠시 정차 중이다. 어차피 한 시간에 한 방향으로 열차 한 편씩 다니는 곳이라 복선화할 필요도 없고, 관광객들이 몰리는 시즌을 빼면 통근, 통학하는 사람들만 이용하는 노선이라..


열차 안에서도 햇빛이 따갑게 느껴지는데, 밖에 있으면 햇빛이 꽤 부담스러울 것 같다.

 

비에이역에 내려서 역 가까운 곳을 슬슬 돌아다닌다. 

이번에는 언덕을 걸어서 올라가는 것은 아니고 시간이 조금 남아서 그냥 설렁설렁 평지에서 돌아다니고 있는데, 9월이라고 찌는 듯한 더위는 한풀 꺾인 것 같은 느낌이다.


이번에 탈 버스가 마지막 버스이므로 얌전히 정류장 앞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아직 컨디션이 올라오지 않아서 계속 가라앉는 느낌인데, 앞으로 며칠 간은 쉽사리 올라오지 않을 것 같아서 살짝 걱정이 된다.


여기는 카페인 것 같다.


그냥 시골 마을인데 이 곳이 일본만이 아니고 여러 곳에 알려지면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동네 사람들이 피해를 보는 일도 적지 않다고 한다. 예전에는 출입금지 정도의 문구가 있었다면, 요즘에는 아예 외국어로도 출입을 하면 경찰에 연락할 수 있다는 문구도 본 것 같은데..


비에이도 식후경이라고..

아침에 커피 한 잔에 빵 한 조각 먹고 간식으로 작은 샐러드 하나 먹은 것이 전부라서 삼각김밥과 삿포로클래식으로 점심을 먹는다. 그런데 이것이 이 날 마지막으로 먹는 식사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햇빛이 따가울 것 같았는데 다행히 구름이 있어서 염려했던 만큼은 아니었다.


누가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비에이가 일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라고 한다.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것은 부정하지 않지만, '가장 ~하다' 는 말은 과장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버스 정류장을 찾아서 기다리고 있는데 버스가 원래 예정시각을 지났는데 도착하지 않았다. 이것이 시로가네온천행 마지막 버스라서 예약한 숙소에 갈 수 있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것이라 살짝 염려가 되기는 했는데, 짐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드는 것을 보니 제대로 버스 정류장을 찾아온 것은 맞는 것 같다. 저 사람들도 외국에서 찾아온 사람들인 것 같아서 그다지 신뢰할 수는 없지만.. 예정시각보다 5분 남짓 지났을까, 버스가 와서 짐을 들고 올라탔다.

거리비례로 운임이 올라가는 방식이라서 처음에 탈 때 운임을 내는 것이 아니라 정리권을 뽑아서 가지고 있다가 정리권에 적힌 번호에 맞추어 버스 앞에 있는 요금표 표시기에 들어온 금액을 준비해서 내릴 때 지불하면 된다. 

 

이 나라는 재해가 많은 만큼 재해시에 피난 장소 표지판이 있다.


아무래도 북쪽에 위치한 동네라서 그런지 해가 생각보다 빨리 지는 것 같다. 이미 9월이라 며칠 지나면 추분이고, 그 이후로 반년 동안은 낮보다 밤이 긴 시간이 될 터이니.. 


초점이 안 맞았지만 뭐 하루이틀 그러는 것도 아니고..


좁은 2차선 도로이지만, 길이 곧게 주욱 뻗어 있고, 지나다니는 차가 거의 없어서 속도를 내기에는 좋을 것 같지만, 대부분의 버스기사들은 규정속도를 준수하면서 운전을 한다. 버스의 경우 각 정류장마다 버스 시각표가 있는데, 도로 위를 다니기 때문에 변수가 많아서 늘 시각표에 나온 정확한 시각은 아니지만, 가급적 운행시각표에 맞춰서 운행하려고 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일본은 한국에 비해 자동차의 제한속도가 낮아서 앞에 지나다니는 차량이 없더라도 규정속도를 준수하는 편이다.


예상대로 계속 산과 들판만 보인다.

제한속도는 시속 50km라는..

 

시로가네온천은 얼마나 먼가..

여기에 오기 전에 구글 지도로 대충 거리를 계산해보니 20km정도 되는 거리였던 것 같던데 초행길이라 그런지 가도가도 끝이 없어 보인다. 버스의 종점에서 내리면 된다고 하니 급할 것이 없기는 하지만 버스가 기껏해야 최고 시속 50km로 달릴테니 표정속도는 거기에 미치지 않을 터이고, 대충 40분 정도는 걸렸던 것 같은데, 그 덕분에 버스 운임은 650엔까지 올라갔다. 

  

시간이 걸린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거리가 멀어서 내일 체크아웃을 하고 비에이역으로 돌아가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닐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버스에서 내리니 어느덧 어둠이 짙었다. 숙소에 전화를 했더니 걸어서 올라오다보면 보일 것이라고 해서 조금 걸어 올라가니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문제는 이 산골에 있는 숙소 근처에 밥을 먹을 만한 곳이 없더라는 것인데.. 편의점은 당연히 없고, 식료품을 파는 조그만 구멍가게 같은 곳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 가게가 있다고 해도 이 시간에 영업을 할 것 같지는 않고.. 숙소에 물어보니 이 근처에는 밥을 먹을 만한 곳이 없다고 하면서 건너편에 있는 호텔의 레스토랑 정도에서나 밥을 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이 근방에 있는 두 개의 큰 호텔 중 하나인 다이세츠잔시로가네관광호텔(大雪山白金観光ホテル)이 있는데, 아마도 이 호텔을 말한 모양이었다. 이 호텔에는 큰 식당이 있어서 여기에 들어가볼까 했는데 단체 관광객이 많이 왔는지 시끌벅적해서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각주:1]배는 고프지만 아사히카와역에서 죽치고 기다리면서 사두었던 음식이 조금 남아 있어서 이걸로 적당히 끼니를 때우고, 내일 일어나자마자 식당을 찾아서 맛있는 음식을 사먹어야 할 것 같다.

  1.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서 이 호텔의 웹사이트 주소를 찾아서 검색을 해보니 당일입욕+식사는 1,300엔이라고 한다. (http://www.shirogane-kankou.com/blog/index.html) 한국어로 된 페이지는 없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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