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의 사만다 스토서(10위)가 예상을 깨고 대회 네 번째 우승에 도전하던 서리나 윌리엄스(미국·27위)를 격침시키고 2011 US오픈 여자 단식에서 우승하면서 생애 첫 그랜드슬램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2011 US오픈 여자 단식 우승자 사만다 스토서 ⓒ Philip Hall/USTA

스토서가 세계 무대에 이름이 알려지게 된 것은 2009년 프랑스오픈이었다. 아무리 영국의 영향을 받아 테니스가 보급되고 발전하였다고 하나 인구가 적고 남반구에 동떨어진 호주가 세계 테니스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20세기 테니스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선수들이 많았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그러나 최근 호주 테니스는 스타 부재 속에 남녀 모두 부진한 성적으로 애를 태우고 있다가 롤랑 가로에서 스토서의 깜짝 4강으로 모든 신문들이 1면 머릿기사로 낼 만큼 화제가 되었다.

사실 스토서는 단식보다는 복식에 더 치중하는 선수였고, 복식에서는 나름대로 성적을 내오던 터라 호주에서는 스토서의 활약을 비중있게 보도하면서도 반신반의하던 것이 없지 않았다. 단식에서는 크게 유명하지 않았지만 복식에서는 이미 2005년에 US오픈 우승을 경험한 것을 비롯하여 그랜드슬램에서 우승 2회와 준우승 5회를 차지하였고, 연말 챔피언쉽에서도 두 차례의 우승 경험을 비롯하여 23회의 WTA투어 우승을 거둔 실력자였다. 스토서는 프랑스오픈 이후 복식보다는 단식에 포커스를 맞추기 시작했는데 윔블던과 US오픈에서는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하며 관심이 살짝 사그러들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에서 열린 HP오픈에서 WTA 투어 단식 첫 우승을 차지하였고, 작년에 패밀리 서클 컵 우승에 이어 프랑스오픈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호주를 대표하는 선수로서 자리매김을 확실히 하였다.

 

대회 14일째 (9월 11일, 현지시간)

<여자 단식 결승>

사만다 스토서(호주, 9번 시드) 2 : 0 (6-2 6-3) 서리나 윌리엄스(미국, 28번 시드)

경기 전 긴장된 사진 촬영 ⓒ Philip Hall/USTA

서리나는 이번 대회에서 전현직 세계 1위 선수들을 가볍게 완파하며 결승에 진출하면서 부상 복귀 후 16연승을 이어가는 중이었다. 경기의 내용을 보더라도 단 한 세트도 내주지 않으며 범접할 수 없는 위용을 보여주었고, 빅토리아 아자렌카, 아나 이바노비치, 아나스타샤 파블류첸코바에 이어 카롤리네 보스니아키까지 무릎을 꿇고 말았다. 서리나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하면 매번 같은 말을 하여 미안하지만 여자 선수로서는 믿기지 않을 만큼의 강력한 파워다. 서브는 언니인 비너스에 비하여 대략 10km/h 정도 느린 편이지만, 단단한 근육질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묵직한 스트로크로 베이스라인을 공략하여 상대를 꼼짝하지 못하게 하는 단순하지만 치명적인 플레이를 한다. 이번 대회에서 수비라고 하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이바노비치와 보스니아키를 손쉽게 때려눕힌 것만 보아도 서리나는 전성기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다시 세계 최강의 자리에 올라설 수 있을 만큼의 기량이 회복되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이미 US오픈 3회 우승과 함께 그랜드슬램 13회 우승이라는 현역 최고의 경험 역시 결승전이라는 부담스러운 경기에서 중요한 자산이었다.

강서버 서리나 윌리엄스 ⓒ Philip Hall/USTA

이에 맞서는 스토서는 작년 프랑스오픈 이후 두 번째 그랜드슬램 결승이었는데(단식), 이번 대회에서 가장 치열한 경기를 통해 결승에 올라왔다. 나디아 페트로바와 마리아 키릴렌코 등 러시아 선수들과 대회 최장 시간 경기와 타이브레이크 최다 스코어의 기록을 세우면서 올라왔고, 준결승에서도 안젤리크 케르베르와 풀세트 경기를 하여 승리를 하였다. 남자 선수를 연상시키는 근육질 몸매와 기계와도 같은 무표정한 얼굴의 그녀가 비록 파워는 밀리지만 기동력이 현저히 떨어진 서리나의 약점을 공략할 수 있을 것인지가 경기의 승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였다.

근육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스토서 ⓒ Philip Hall/USTA

스토서는 1-1로 맞선 세 번째 게임에서 이변의 시작을 알렸다. 15-15에서 서리나는 스토서를 좌우로 흔들어 만든 기회에서 회심의 포핸드가 벗어났지만 서브 에이스를 날리며 30-30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어진 랠리에서 스토서의 백핸드 발리가 네트를 맞고 넘어가 코트에 떨어지면서 브레이크 포인트가 되었고, 스토서가 서리나를 오른쪽으로 몰아놓고 왼쪽 베이스라인으로 날린 스트로크를 서리나가 받아낸 공이 라인을 벗어나며 2-1로 앞서게 되었다. 스토서는 차분히 서브 게임을 지키고 이어진 서리나의 서브 게임도 다시 브레이크 포인트에 도달하였지만 두 번의 듀스 끝에 아쉽게 내주며 3-2로 리드를 이어갔다. 여기서부터 2세트 첫 게임 15-0까지 스토서의 놀라운 13연속 포인트가 나오는데 스토서는 가볍게 서브 게임을 러브 게임으로 이기며 4-2를 만들었다. 서리나는 반격이 필요한 시점이었지만 스토서의 날카로운 서브 리턴과 실책이 이어지며 한 점도 내지 못하고 두 번째 브레이크를 허용했고, 다음 게임에서도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1세트를 31분만에 6-2로 내주었다.

스토서는 서리나의 서브를 효과적으로 공략하여 재미를 보았다 ⓒ Philip Hall/USTA

스토서는 2세트 시작을 브레이크로 장식하며 서리나를 강하게 압박했다. 이 브레이크는 스토서에게 정말 운이 따르는 것이었는데, 15-15에서 스토서에게 스매시와 강한 포핸드 서브 리턴을 맞고 더블 브레이크 포인트에 몰린 서리나는 서브 에이스로 40-30을 만들고 이어진 랠리에서 듀스로 가는 포핸드 위너를 날렸다. 스토서는 미처 따라가지 못하여 받아내지 못하였지만, 주심 에바 애스더라키는 서리나가 샷을 날린 후 스토서의 플레이가 종료되기 전 "컴온" 을 외쳐 방해하였다면서 스토서의 포인트를 인정하면서 서리나는 서브 게임을 잃고 말았다. 그러나 독오른 서리나는 스토서의 서브 게임을 빼앗으며 동점을 만들었고, 서브 게임을 잘 지켜내면서 3-2로 리드를 잡았다.

서리나의 "컴온" 과 심판과의 언쟁

고전하는 서리나 ⓒ Philip Hall/USTA

서리나가 슬슬 회복하는 듯하였던 경기는 스토서의 놀랄 만한 4게임 연속 승리로 싱겁게 끝이 나버렸다. 스토서는 30-30에서 서리나의 포핸드 실책과 포핸드 위너로 승리하며 3-3 동점을 만들었고, 이어진 게임도 서리나의 세컨드 서브를 공략하여 포핸드 위너와 서리나의 연속된 백핸드 실책을 묶어 승리하면서 4-3으로 역전에 성공했다. 서브 게임을 지키며 5-3으로 달아난 스토서는 경기의 마지막 게임이 된 아홉 번째 게임을 맞이했다. 15-15에서 연속으로 백핸드를 네트와 밖으로 날려버리며 더블 매치 포인트에 몰린 서리나는 스매시와 포핸드 공격으로 간신히 듀스를 만들며 위기에서 탈출했다. 여기서 빛이 난 것은 더블 매치 포인트를 잃었지만 침착함을 잃지 않은 스토서였다. 스토서는 두 번의 포핸드 위너를 연속하여 서리나의 왼쪽으로 날리며 자신의 첫 US오픈과 그랜드슬램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이다! ⓒ Philip Hall/USTA

스토서는 우승 직후 가족들이 있는 응원석으로 올라가 함께 기쁨을 나누기도 ⓒ Philip Hall/USTA

준우승자와 우승자 ⓒ Philip Hall/USTA

스토서의 우승은 이본 굴라공 코울리가 1980년 윔블던 여자 단식 우승을 차지한 이후 31년만의 호주 선수의 그랜드슬램 우승이며, US오픈에서는 1973년 마거릿 코트 이후 38년만이다. 남자 선수까지 포함한다면 2001년 레이튼 휴잇의 US오픈 우승 이후 10년만이다. 서리나는 경기 패배 후 스토서에게 축하 인사를 하였지만, 심판과 악수를 하지 않으면서 이 장면이 중계 카메라에 잡히며 뒤끝을 보여주었다. 서리나의 잘못이라고 보여지지만, 과거 심판들과의 악연이 있었기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았나 싶다. 아쉽게 복귀 후 연승을 마감하게 되었지만 다시 그랜드슬램에서 결승까지 오르는 저력을 보여주며 앞으로 남은 시즌과 내년에 더 좋은 활약을 기대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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