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2007 부활>

 

3월에는 몬나 코치에게 점프에 대한 지도를 받았다. 미키가 피겨에 갓 입문하였을 무렵에 몬나 코치는 더블 악셀과 트리플 점프 등 점프의 기초를 가르쳐주었는데, 차차 나이가 들면서 다른 코치들에게 지도를 받으면서도 점프에 흔들릴 때는 몬나 코치를 찾아서 문제점을 찾고 개선하려는 노력을 하였다.

 

비록 올림픽에서 참담한 연기를 보였다고 하나 미키의 인기가 바로 식은 것은 아니었다. 의류업체 까르띠에의 이벤트에 참여하는가 하면, 도쿄에서 아이스쇼를 갖기도 했고, 졸업 후 고향인 나고야에서는 1일 경찰서장 행사에서 "비행방지 캠페인"에 나서기도 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도요타자동차에 입사하였고, 쥬쿄대에도 사회인 학생으로 입학하면서 어엿한 성인의 삶을 시작한다. 비록 "국민적 기대를 저버린 원죄"가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일본 피겨의 에이스였으며 간판스타였기에, 일부 언론의 편파 보도 및 악의성 보도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인기를 과시했다.

 

 

 


1일 경찰서장 미키


 

 

까르띠에 행사에 참여한 미키

 

한편 쥬쿄대에서는 도요타캠퍼스(아이치현에 위치한 도요타시에 위치. 도요타시는 나고야에서 약 30km 정도 떨어진 도시로, 이름처럼 자동차회사 도요타에서 시의 이름이 유래한 곳)에 미키와 아사다를 위한 전용 링크를 만들기로 했다는 계획을 공식 발표한다. 

 

 

 

"안도 미키와 아사다 마오를 위한" 이런 경기장이 건설된다고 발표를 했음.


5월 14일에 사이타마 수퍼아레나에서 "저팬 오픈"이라는 친선 대회에서 아사다와 함께 출전하여 여자부 우승을 차지하는데, 미키는 104.56점으로 4위에 그쳤으나 125.72의 최고점을 받은 아사다의 활약이 빛났다. 그리고 일본스케이트연맹의 특별강화선수에 다시 지정되며, 6월 10일자 닛칸 스포츠의 기혼 남성 800명을 대상으로 한 "미혼이라면 결혼하고 싶은 스포츠 선수는?" 이란 주제의 설문조사에서 프리스타일 스키선수 우에무라 아이코에 이어 2위에 오르면서 인기가 아직 식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이어 여름에는 일본 각지에서 아이스쇼에 아사다 자매, 아라카와 등과 함께 참가하고, 한국에 와서 현대카드 수퍼매치 아이스쇼에 참여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보여준다.

 

 

2006 드림 온 아이스 페스티벌에 참가한 미키 

 

 

 

아사다 자매와 미일피겨대항전에 참가하기도 하는데 왼쪽이 아사다 마오의 언니 아사다 마이(浅田舞)

마이가 미키와 동년배가 아니었더라면 어떤 결과를 낳았을까.

 

가장 큰 변화는 2006-2007시즌부터 코치를 문제의 그 사람, 니콜라이 모로조프로 바꾼 것. 모로조프는 기술적인 면 외에 안무와 표현력에 관한 부분에서 지도력을 인정받고 있는데, 과거에는 미셸 콴, 타라 리핀스키 등의 안무에도 참여했던 경력이 있다, 모로조프는 선수로서는 크게 빛을 보지 못하고 부상으로 은퇴한 후, 후일 아사다의 코치로 등장하는 "러시아의 대모" 타티아나 타라소바의 보조코치로 지도자로서 첫걸음을 내딛는다. 그러나 어느 정도 자신의 명성이 알려지자 타라소바와 결별하고 나와서 이미 수구리 후미에, 다카하시 다이스케 등을 지도했고, 아라카와가 예상치 못한 인생경기로 예상 밖의 금메달을 따는 모습을 옆에서 보았기에 그를 선택한 것이라 보인다. 


새로운 시즌에서 미키는 첫 그랑프리대회인 스케이트 아메리카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기분좋게 시작한다. 반면 함께 출전한 아사다는 3위에 그친다.




2006 스케이트 아메리카 우승을 차지한 미키




2006 스케이트 아메리카 프리스케이팅 장면




3위 아사다가 오른쪽에 있다.

 


2006 스케이트 아메리카 쇼트프로그램


2006 스케이트 아메리카 프리스케이팅

이어서 출전한 그랑프리 에릭 봉파르에서는 쇼트, 프리, 종합에서 모두 2위였는데, 이 대회의 우승자는 4년 후 밴쿠버 올림픽에서 우승하는 김연아였다. (김연아와 관련된 내용은 여기저기에 아~주 많으니 여기서는 생략) 다음 달에는 러시아 생트페테르부크르에서 그랑프리 파이널이 열리는데, 아사다가 쇼트에서 1위, 미키는 2위에 오른다. 그러나 프리에서 이 둘은 무너지면서 4위, 6위를 기록했고, 종합에서 아사다는 2위로 내려앉고, 미키는 6위로 시상대에도 오르지 못하고 만다. 파이널 우승자는 쇼트에서 3위에 그쳤지만, 프리에서 대역전극을 펼친 김연아. 


에릭 봉파르 쇼트프로그램 장면



에릭 봉파르 프리스케이팅 장면


2006 그랑프리 파이널 쇼트프로그램

고향인 나고야에서 열린 전일본선수권은 아사다가 압도적인 점수차로 미키를 누르고 우승을 차지한다. 수준급의 선수들이 즐비한 전일본선수권은 세계선수권에 출전할 선수 선발전을 겸하고 있어 경쟁이 치열했는데, 쇼트에서 아사다가 71.14, 미키가 69.50으로 큰 차이는 없었지만, 프리에서 아사다가 거의 완벽한 연기를 펼친 반면, 미키는 점프에서 실수를 하면서 격차가 벌어지는데 아사다가 프리에서 받은 점수는 140.62로 총점 211.76이었고, 미키는 프리 116.15, 총점 185.65. 3위는 나카노가 차지하면서 이 세 선수가 3개월 후 도쿄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에 참가하게 된다. 이 대회에서 미키는 쇼트와 프리에서 모두 2위였음에도 우승을 차지하게 되는데, 쇼트 1위였던 김연아는 프리에서 부진으로 3위로 밀려났고, 쇼트 5위였던 아사다가 프리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으며 2위로 올라섰다.


<점프의 교정, 그리고 부상>

올림픽의 실패 다음 시즌을 비교적 잘 마쳤음에도 미키에게는 다른 고민이 있었다. 큰 문제가 없이 점프를 하고 연기를 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받아든 채점표에는 회전수 부족, 잘못된 엣지 사용 등 점프에서 여러 가지 잘못된 습관들로 인해 감점을 당하고 있음을 자각하게 된 것이다. 이에 미키는 시즌 중임에도 불구하고 플립 점프를 교정하기로 한다. 플립 점프는 전진하다가 반 바퀴를 돌아 회전 추진력을 얻어 뛰어오르는 점프인데, 이 때 왼쪽 발의 스케이트 인엣지와 오른쪽 발끝을 사용해서 도약을 해야하는데, 미키는 습관적으로 아웃엣지를 사용했다. 그러나 아웃엣지를 사용하는 것은 점프를 할 때 다리의 바깥쪽 근육에 힘이 들어가게 되는데, 반대로 안쪽 근육을 사용하여 인엣지로 점프를 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반 사람들도 평소에 쓰지 않던 근육을 사용하게 되면 근육통에 시달리고 심한 경우 큰 부상을 입게 되는데, 피겨를 시작하여 10년 정도 사용해온 점프 방식을 바꾸는 것은 무모함에 가까운 일이었다. 코치인 모로조프는 무모한 일이라고 이를 강하게 반대하였지만, 선수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고.

피겨스케이팅은 짧은 연기 시간 동안 모든 힘을 다 쏟아내는 경기인데, 빙판을 지쳐 가속을 하여 얻어낸 에너지를 바탕으로 수직으로 뛰어오름과 동시에 회전을 해야 하는 점프는 훈련을 받은 재능이 있는 선수들만이 할 수 있는 종목이다. 발목은 물론 무릎, 그리고 고관절 등에 엄청난 하중이 가해지는데 이와 같은 일이 반복됨에 따라 선수들은 고질적인 부상을 안고 경기에 임하게 된다. 휴식과 재활 등을 통해 상태를 호전시켜 가능한 최고의 상태를 유지하려는 것이지, 운동을 그만두지 않는 한 완벽한 몸상태를 만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에도 미키는 자신의 점프 기술에 문제가 있음을 알고, 더 좋은 연기를 위해 제대로 된 기술을 사용하려는 용기있는 결정을 내린다. (참고로 아사다는 여전히 야매 수준의 트리플 악셀을 고집하고 있음과 비교하면 참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덕분에 미키의 2007-2008시즌은 세계무대 등장 이후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게 된다. 에지를 교정 중인 트리플 플립의 성공률 뚝 떨어졌고, 그 과정에서 러츠마저 흔들려버리면서 자신의 3회전 연속 기술이던 트리플 러츠-트리플 루프 기술의 사용도 주저하게 되었다. 그랑프리시리즈 스케이트아메리카에서 2위를 기록했지만, NHK트로피 프리에서 점프 시도 후 세 번이나 착지에 실패하면서 다케다 나나(武田菜也)에게도 밀린 4위에 그쳐 그랑프리 파이널 진출에 실패한다. 프리에서 얻은 85.29라는 점수는 세계정상권의 선수의 점수와는 너무도 먼 저조한 기록이었다.

그럼에도 그랑프리시리즈 이상의 경쟁이 벌어지는 전일본선수권에서는 아사다에 총점 1.15점 뒤진 204.18로 2위에 오른다. 프리의 연기는 트리플 러츠-더블 루프-더블 루프 3연속 점프에서 감점을 당한 것 외에는 깔끔한 연기를 펼쳤으나, 쇼트에서의 점수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역전에는 실패한다. 이 대회에서 미키는 오른쪽 어깨의 



전일본선수권 2위에 오른 미키, 아사다, 나카노



안도 미키의 전일본선수권 프리스케이팅 (2007)

전일본선수권에 이어 다음해 2월 고양에서 열린 4대륙선수권에서도 아사다와 캐나다의 조애니 로세트에 이어 3위에 오르지만, 시즌을 마무리하는 세계선수권에서 우려했던 일이 벌어진다. 부상으로 경기 중에 연기를 멈추고 기권을 하고 만 것. 쇼트프로그램에서도 8위에 그치는 좋지 않은 모습이었는데, 프리스케이팅에서도 점프에서 점프를 실패하는 등 고전하다가 스스로 연기를 중단하고 기권 의사를 밝히며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링크를 빠져나왔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당시 미키는 왼쪽 종아리 근육 파열로 정상적인 연기는 물론, 스케이팅이 어려운 상태였다고 한다. 모로조프는 이대로 경기를 하다가 부상이 심해지면 수개월 간 스케이트를 탈 수 없다며 미키에게 불참을 권유했는데, 미키는 출전을 고집했다고 전해진다. 



2008 세계선수권에서 부상으로 연기를 멈추고 기권하는 미키

점프 교정으로 인한 연기의 불안정성과 부상 여파 등으로 2008-2009시즌에서도 미키는 단 한 번의 우승을 차지하지 못한 채 시즌을 마치게 된다. 반면 고관절 부상으로 인해 4대륙선수권에서 불참하고, 세계선수권에서도 3위에 그쳤던 김연아가 정상적인 모습으로 돌아오며 아사다와 라이벌 구도가 만들어짐에 따라 양국의 미디어와 일반 대중은 김연아-아사다의 대결에 초점을 맞추게 되고, 미키에 대한 관심은 조금씩 사라져가기 시작한다. 특히 이 시즌에 김연아는 아사다에게 밀려 2위에 그친 그랑프리 파이널을 제외한 출전한 모든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피겨에 대해서는 적어도 아시아에서는 최고" 라는 일본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게 되고, 그 강력한 대항마로 아사다에 강력한 푸시를 하게 된다. 이 시즌의 미키의 성적을 정리하면, 그랑프리시리즈 스케이트아메리카 3위, 그랑프리시리즈 컵 오브 차이나 2위,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는 최하위인 6위, 전일본대회와 세계선수권 3위, 2009 ISU 월드 팀 트로피 여자싱글 5위였다. 반면 아사다는 그랑프리시리즈에서 우승과 준우승, 그랑프리 파이널 우승, 전일본대회 우승, 월드 팀 트로피 여자싱글 우승 등 네 차례 우승과 한 차례 준우승, 그리고 4대륙선수권 3위, 세계선수권 4위로 단연 일본을 대표하는 선수로 자리매김한다.



2008 전일본선수권대회 



2009 세계선수권 프리스케이팅

부진했던 2년 동안 일본 언론을 비롯한 세간의 관심이 줄어들기도 했지만 악질성의 안티도 늘었다. 가십 전문 주간지 등에서는 훈련 중인 미키의 치부가 드러나는 사진이나 경기 중에 넘어지거나 점프를 하면서 잔뜩 찡그린 표정이 담긴 사진을 게재하면서 괴롭혔고, 안티팬들에 의한 놀림감이 되었다. 능숙하지 못한 언론 대응 역시 미키에게는 좋지 않은 반응을 가져오게 되는데, 토리노 올림픽 전후에 있었던 사건들로 기자 및 언론에 대하여 감정이 좋지도 않았거니와 계속되는 부진 속에서 그 이유를 캐묻는 사람들에게 조곤조곤 자신의 상황과 기분을 설명하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 일. 사소한 말 한 마디에도 걸고 넘어지면서 핑계를 댄다는 반응이 나왔는데, 2008년 전일본선수권 공식 연습에서 수구리와 부딪치는 사고가 발생하여 작은 부상을 입었는데, 아사다와 수구리에 이어 3위로 대회를 마친 후 인터뷰에서 "내가 부상을 당해서 다행이다" 라고 한 말을 성적에 대한 핑계 또는 상대를 탓하는 뉘앙스로 보도가 되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단다. 


그냥 내보내면 음란물로 걸릴 것 같아서 부득이하게 모자이크 처리를 했다. ㅋ



연습 중에 수구리와 충돌한 장면

때마침 미키와 코치 모로조프의 동거설이 터지면서 그녀에 대한 여론은 더 악화되었다. 마침 성적이 좋지 않았던 때라 올림픽이 1년도 남지 않았는데 훈련은 하지 않고 연애질만 하고 있냐는 반응이 대세였다. 그러나 코치와 같은 숙소를 사용하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남녀 사이에서 동거의 의미는 다른 것이므로 그런 관계였는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두 사람 사이가 일반적인 사제관계를 넘어서 연애를 한다는 것은 기정 사실로 받아들여졌기에..


선수와 코치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친근한 이 모습. ㅋ


<두 번째 올림픽>

올림픽이 열리는 2009-2010시즌, 두 시즌 동안 무관에 그친 미키는 올림픽 출전의 의지를 다지며 새로운 시즌을 맞이한다. 미키는 역사에만 남은 4회전 점프를 더이상 할 수 없었음에도 계속 미련을 떨치지 못하였는데, 모로조프는 클린 연기가 우선이라면서 4회전 점프 대신 다른 점프의 안정성을 높이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미키는 그랑프리시리즈 모스텔레콤컵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부활을 알렸는데, 같이 대회에 참가한 아사다가 5위에 그치는 부진을 보이며 일본 피겨에 위기감이 감돌게 되었다. 1주일 앞서 아사다는 그랑프리시리즈 트로피 에릭 봉파르에서 2위에 올랐지만 내용을 보면 김연아에게 40점 가까운 차이가 나는 참패를 당한 직후였기에 그 충격은 더했다. 미키는 11월에 열린 그랑프리시리즈 NHK트로피에서는 쇼트와 프리에서 각각 2위에 그쳤지만 종합에서는 최고점을 기록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아사다의 부진과 비교되는 미키의 연속 우승은 주목할 만했지만, 이 대회에서 올림픽 메달 후보로 꼽히는 선수들이 출전하지 않았고, 합계 160점대 초반의 점수로 간신히 이긴 덕분인지 조용히 넘어가게 된다. 



12월이 되고, 아사다가 탈락한 가운데(절대 불참이 아님) 도쿄에서 열린 그랑프리 파이널 쇼트프로그램에서 미키는 김연아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하는 이변을 일으킨다. 김연아의 프로그램 구성점수가 더 높았지만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에서 토루프의 회전 부족과 트리플 플립의 실수로 감점을 받으며 2위가 된 것. 반대로 미키는 토리노 올림픽 이후 열린 국제경기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좋은 성적을 내지만 프리스케이팅에서 김연아에게 역전당하면서 첫 그랑프리 파이널 우승을 놓치고 만다. 그러나 이러한 성적 덕분에 밴쿠버 올림픽 진출권을 사실상 획득하게 되면서 착실히 올림픽 준비를 할 수 있게 된다.


미키의 2009년 그랑프리 파이널 프리스케이팅

그랑프리파이널 3주 후 열린 전일본선수권에서는 아사다, 스즈키 아키코(鈴木明子), 그리고 수구리에 이어 4위에 오른다. 그렇지만 기존에 다른 국내, 국제대회의 성적 역시 대표 선발 평가 요소이기에 아사다, 스즈키와 함께 밴쿠버 올림픽 대표 선수로 선발되면서 두 번째 올림픽에 참가하게 된다.

밴쿠버 올림픽에서는 미키가 아닌 아사다가 에이스이자 인기 스타였기에 미키에 대한 관심과 기대는 크지 않았다. 아사다와 김연아의 대결로 대중의 관심이 쏠렸지만 일부에서는 혹시 모를 잭팟이 터져, 4년 전의 아라카와처럼 미키의 인생경기가 펼쳐질 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했다고도 한다. 미키는 좋은 경기를 하기는 했지만 메달권에 든 선수들 모두가 인생경기를 펼치는 바람에 빛이 퇴색하고 말았다. 냉정히 말해서 미키의 프로그램 구성과 그것을 연기하는 능력을 보았을 때, 다른 선수들의 부진 혹은 심판들의 호의적인 판정이 없이 우승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것이 사실. 




밴쿠버에서 아사다, 스즈키, 그리고 미키.



2010 밴쿠버올림픽 쇼트프로그램



모로조프 코치와 함께 점수를 기다리는 미키



프리스케이팅에서의 의상은 참 독특했다.



뭔가 이집트 같은 분위기도 나고 로마 시대 느낌도 나는 듯하고 그렇다.


 

미키의 2010년 밴쿠버올림픽 쇼트프로그램(프리스케이팅은 영상을 찾지 못해서 ㅠ.ㅠ)

 

미키는 쇼트와 프리에서 큰 실수 없이 경기를 마치기는 하지만, 모든 출전 선수들이 개인 최고 기록을 넘어 세계기록까지 세우는 깔끔한 연기를 펼치는 바람에 5위에 머무르고 만다. 일본은 에이스인 아사다가 쇼트에서 73.78이라는 고득점을 기록하며 두 대회 연속 금메달을 획득하는 꿈을 꾸게 되지만, 바로 다음에 나온 김연아가 78.50이라는 세계신기록을 세운데 이어, 이튿날에 열린 프리에서는 아사다보다 먼저 나와서 150.06의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사실상 확정지으면서 꿈을 접게 된다. 아사다는 트리플 악셀 3회 작렬을 앞세워 총점 205.50의 자신의 최고 점수로 분전했지만 2위에 만족해야 했다.

 

 

 

2010년 3월 토리노 세계선수권 프리스케이팅

 

3월에 토리노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는 4년 전의 악몽이 떠올라서였을까 쇼트에서 11위에 그치는 부진으로 프리에서 좋은 연기를 펼치고도 4위에 그치고 만다. 3위를 차지한 핀란드의 라우라 레피스토와는 불과 0.8점차였다.

 

김연아가 금메달 이후 선수 생활을 계속할 것인지 고민에 빠지며 휴업을 하고, 아사다가 올림픽 후유증과 약점으로 지적된 스핀과 스텝의 기본기를 다지느라 2010-2011시즌에서 존재감을 잃어버린 가운데, 미키는 '호랑이 없는 굴에 토끼가 왕' 이라고 베이징에서 열린 그랑프리 파이널을 제외한 나머지 그랑프리시리즈 두 대회와 전일본선수권, 4대륙선수권, 세계선수권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하며 적어도 이 시즌에서만큼은 피겨퀸이 된다.

 

 

<휴식. 그리고 들끓는 열애설>

 

그러나 2011-2012시즌을 앞두고 미키는 일본스케이트연맹을 통해 "코치, 관계자들과 상의한 결과, 2014년 소치올림픽을 목표로 하는데 있어 이번 시즌은 충전기간으로 삼겠다" 면서 시즌 불참을 선언하게 한다.그랑프리시리즈 불참을 선언한다. 시니어 데뷔 이후 가장 화려한 성적을 올리며 전성기를 누리는 와중에 갑자기 경기에 출전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공식적으로 밝혀진 바는 없지만, 일본 언론의 추측 혹은 보도에 따르면(대개 정보원은 피겨 관계자라고) 모로조프 코치와의 결별이 큰 충격을 주었다는 것이다. 모로조프는 이미 자신이 지도하던 선수와 두 차례의 공식적인 결혼을 한 바 있고, 이에 앞서 동갑내기 선수와 깊은 관계를 가졌던 전력이 있는지라 미키와 함께하는 시간 동안에도 두 사람의 관계가 일반적인 선수와 코치의 관계가 아니었다는 것이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다만 이에 대해 두 사람은 단 한 차례도 이러한 점을 시인하지 않았다). 여러 목격담에 의하면 미키가 역시 모로조프가 다른 여자 선수를 지도할 때마다 링크를 한쪽에서 지켜보고 있었다고 하는데, 그의 여성 편력이 화려한데다, 쭉쭉 잘 빠진 러시아 미녀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으니 신경이 쓰일 법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처음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열애설, 동거설 등을 퍼뜨렸던 언론이 속칭 "찌라시"인 일본의 가십 전문지들이고, 러시아에서도 악명 높은 타블로이드판 신문에서나 보도되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사실무근일 가능성도 없지 않지만,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도 있을 것이고 여러 이유에서 쉬쉬하며 보도하지 않는 것들도 많으니 그 중에서 몇 가지 신빙성이 있어 보이는 것들만 추려서 소개를 한다.

 

모스크바에서 열린 세계선수권 이후 미키와 모로조프의 결혼설이 터졌는데, 일본매체 주간 아사히는 역시 피겨 관계자의 말을 빌려 "작년 대회장에서 미키가 '이 사람과 결혼한다'며 미소를 띠고 있었고 가까운 친척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모로조프를 소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친척이 "미키가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좋은 것 아니냐"며 교제를 허락하고 있었다" 고 전했다. 모로조프 역시 미키와 함께 미키의 모친을 직접 만나는 등 두 사람의 관계는 결혼에 임박한 것으로 보였으나, 정작 당사자인 모로조프는 결혼에 대해서는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이미 여러 차례의 과거가 있는데다 미모를 자랑하는 많은 여자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었기에 자신을 속박하는 결혼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에 미키가 속앓이를 하다가 모로조프와의 관계를 청산하기로 마음먹었다는 것이 결별설의 요체.

 

5월 무렵에 미키와 모로조프가 결별을 했는데, 미키는 연인 사이는 끝이 나더라도 선수와 코치로서의 관계로는 계속 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모로조프가 인터뷰에서 밝힌 바로는(역시 출처가 찌라시이기에 신뢰도가 그다지 높지는 않지만) 이미 연인 사이가 끝나서 인간 관계가 파탄난 가운데, 제대로 코칭을 할 수 없어서 거절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 당시 미키는 올림픽 이후 계속 아마추어 선수 생활을 이어가면서 올림픽에 재도전할 것인지, 부담이 적은 프로 선수로 전향하여 아이스쇼를 주로 하면서 경쟁의 압박에서 벗어난 생활을 할 지 계속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 모로조프는 관심을 받을 수 없는 프로스케이터를 지도하는 것을 꺼렸고, 현역선수를 지도하면서 명성을 쌓고 싶은 바람이 있었기에 미키의 코치를 맡는 것도 거절했다고 전해진다. 

 

 

 

미키와 난리 야스하루 (안도 미키 트위터)

 

이후 미키의 트위터에 남자 피겨스케이터 난리 야스하루(南里康晴)와 함께 찍은 사진들이 올라오면서 미키와 난리의 교제설이 새롭게 등장한다. 주간 여성지 세븐은 "모로조프와 헤어진 뒤 상심하던 미키가 난리와 만나게 되었다. 안도 미키와 난리 야스하루는 주니어 피겨선수 시절부터 사이가 좋았고 가족끼리도 친하다. 난리 야스하루가 올해 프로선수로 전향하면서 안도미키와 장래 문제 및 연애문제를 상담하며 가까워졌고 자연스럽게 연인사이로 이어졌다" 고 보도한다. 이에 미키와 난리의 열애설은 (역시 당사자들은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기정 사실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그리고 난리는 올해 초 미키가 낳은 딸의 친부로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꼽힌다.

 

 

 

 

인터뷰 기사에 실린 안도 미키

 

그렇게 한 시즌을 날린 미키는 2012-2013시즌에는 복귀를 준비하지만 결국 다시 불참을 선언하게 된다. 지난 시즌 불참 때문에 그랑프리시리즈 출전을 위해 ISU에 서약서까지 제출한 상태였지만, 코치를 구하지 못한 것이 결정적인 원인이었다고 한다. 닛칸스포츠의 단독 인터뷰에 따르면 미키는 모로조프에게 다시 코치 요청을 하였지만, 모로조프는 이에 응하지 않았고, 다른 코치를 선임하려고 했지만 모로조프만한 인물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이에 코치가 없는 상태에서 연습을 할 수밖에 없었고, 기술적인 면이나 정신적인 면에서 조정이 이루어지지 않아 경기를 치를 수 없는 상태라고 말한다. 내년 시즌, 즉 2013-2014시즌을 마지막 시즌으로 삼아 지금까지 응원해준 팬들을 위해 부끄럽지 않은 연기를 하고 싶은 희망을 밝힌다. ISU에 그랑프리 출전에 대한 서약서를 제출한 후, 부상 이외의 이유로 대회에 불참하는 경우 ISU주최의 국제 대회 출전 정지 등의 제재를 받게 되지만, 지금의 상태로는 팬들에게 실망을 주고 다른 선수들에게도 실례가 될 것이라면서, 국제대회가 아닌 국내의 소규모의 대회일지라도 괜찮다면서 팬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마지막 무대를 선보이겠다는 의지를 밝힌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한 시즌이 아닌 두 시즌 연속으로 피겨를 쉬는 것과 여전히 코치 선임에 대한 문제, 그리고 일본스케이트연맹과의 좋지 않은 관계 등으로 인해 사실상 현역 은퇴의 수순으로 받아들여졌고, 그녀에게 남아 있던 관심조차 다른 선수들로 향하게 된다.

 

 

<미혼모 스케이터의 도전>

 

올림픽 직후 극심한 슬럼프에 빠졌던 아사다는 미키가 불참을 선언한 두 시즌 동안 부활에 성공하며, 단연 일본 최고의 선수로 인정받게 된다. 그리고 꾸준히 5위 이내에 랭크되는 스즈키와, 1994년생 신예 무라카미 가나코(村上佳奈子)가 새로운 기대주로 떠오르면서, 아사다의 원톱 체제에 스즈키와 무라카미가 뒤를 받치는 체제로 바뀐다. 주목할 점이라면 여자 피겨선수라면 환갑을 지나 칠순이라고 할 수 있는 28살의 노장이라는 것.

 

피겨 선수들이 휴식기를 갖는 7월 충격적인 사건이 터졌으니, 미키의 출산 소식이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출산에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밝힐 수 없다는 것.

 

 

 

 

TV에 보도된 미키와 그녀의 딸 히마와리

 

 

언론과 대중은 이 결혼도 하지 않은 처자의 아이 아버지가 누구인가를 밝히는데 불을 켜고 달려들었는데, 두 사람이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었다. 미키와 연인 관계였던(혹은 그렇다고 여겨지던) 코치 모로조프와 그 이후 연인 관계로 알려진(혹은 그렇다고 여겨지던) 난리였다. 아이의 이름인 히마와리(向日葵)가 러시아의 국화라는 이유로 모로조프의 아이가 아닌가 의심을 받았는데, 이에 모로조프는 자신이 아버지가 아니라고 강력히 부인하였고, 나중에 가십성 보도에 능한 매체(속칭 찌라시)에 의하면 출산을 한 병원 관계자가 "혼혈은 아니었다" 고 말했다고 하여 난리에게 혐의가 있다고 여기는 듯하다.

 

사람들은 이제 아이까지 낳은 미키가 더이상 피겨선수로서 활약을 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이미 다른 선수들이 잘하고 있기에 그녀의 복귀를 기다리지도 않는 상황이라서 이렇게 미키의 피겨스케이터로서의 커리어가 끝나는 듯이 보였다. 출산이 알려지기 이전, 5월 30일 도쿄 요요기 국립경기장 특설아이스링크에서 열린 '아트 온 아이스 2013 재팬' 기자회견에서 안도 미키가 "새로운 시즌에는 선수로 빙판에 나서고 싶다" 면사 소치 올림픽에 도전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는 했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미적지근했다. 그러나 출산 사실을 알린 이후, 미키는 "피겨와 아이 모두 끌어안고 싶다. 올림픽까지 치른 뒤 명예롭게 은퇴할 것" 이라며 포부를 밝힌다. 그리고 나중에 밝혀진 사실인데 1월에 도요타자동차를 퇴사했다고. 도요타에서는 만류하였지만 자신과 관련된 이야기들로 인하여 회사에 누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단다.


복귀 이후 미키의 첫 대회는 독일에서 열린 네벨혼 트로피, ISU의 시즌 캘린더에 포함된 국제대회이기는 하지만 정상급 선수들이 출전하는 그랑프리시리즈보다 레벨이 낮은 대회. 과거 전성기의 미키라면 출전하지 않았을 대회이지만 그랑프리시리즈에 출전이 불가능한 상태이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대회 1주일 전에 발터 리조를 임시 코치로 선임하여 출전하였는데, 미키는 쇼트 2위, 프리 4위, 종합 2위에 입상한다. 출전하는 선수들이 대부분 어리거나 클래스가 낮기에 순위보다는 점수에 비중을 두어야 하는데 59.79/103.07/162.86 으로 평범한 점수였지만 일단 올림픽 출전을 위한 최소 기술점수는 넘기는데 성공한다. 2년의 공백기와 출산 후 복귀임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다고 할 수 있으나, 내용 면에서도 점프의 높이와 회전, 스케이팅 속도, 스핀의 질과 속도 등 모든 면에서 많이 모자라서 남은 기간 동안 기량을 끌어올릴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네벨혼 트로피 쇼트프로그램


네벨혼 트로피 프리스케이팅


리조 코치의 지도와 그와의 호흡이 만족스러웠는지 미키는 그를 올림픽까지 함께할 정식 코치로 선임한다.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수도 있지만..그러나 올림픽 출전기준 점수를 통과하였다고 하더라도, 더 중요한 것은 일본대표로 선발되는가의 여부였다. 일본스케이트연맹은 세 장의 출전권 중에서 한 장을 전일본선수권 우승자에게 배당할 예정인데(다른 두 장은 그랑프리시리즈에서의 최우수자 등 국제대회 성적을 기준으로 선발), 국제대회에 출전하지 못하는 미키는 이것만이 희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2년 동안의 휴식으로 아무런 실적이 없기에 전일본선수권 본선 출전권을 얻기 위한 작은 국내 대회에 출전해야 했다. 10월에는 1차 관문인 관동선수권에 나가서 56.25/91.05/147.30으로 1위로 동일본선수권진출권을 획득한다. 트리플 루프의 회전 부족과 스핀의 감점은 옥에 티. 

 

 

 관동선수권 쇼트프로그램 영상

 

 

11월에 열린 동일본선수권에서는 상위 5명에게 전일본선수권 출전 자격이 주어진다. 그러나 미키는 쇼트에서 연속된 점프 실수와 스텝, 스핀에서도 모두 감점을 받으며 41.97로 출전 선수 26명 중 14위에 그친다. 소치 올림픽을 향한 꿈이 여기서 끝나는가 싶었지만, 다음날 프리에서 105.21점을 받아 1위를 차지하며, 종합 2위로 전일본선수권 출전권을 획득했다.

 

미키는 2주 후 오스트리아 그라츠에서 열린 아이스챌린지에 출전하여 56.78/94.12/150.90으로 2위를 차지한다. 쇼트에서는 선전했지만, 프리에서 점프 등에서 실수를 거푸 하면서 여전히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아이스챌린지 쇼트프로그램

 

 

아이스챌린지 프리스케이팅

 

그러던 미키가 복귀 이후 최고의 경기를 펼친 것이 2주 후, 김연아와 함께 출전한 골든스핀 오브 자그레브였다. 처음으로 쇼트에서 60점대를 기록했고, 프리에서도 110점을 넘겼다. 176.82의 합계 역시 150점 전후를 기록하던 것에 비해서 크게 나아진 모습.

 

이미 26세가 된 미키에게는 소치올림픽은 마지막 기회다. 딸에게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고 싶다는 미키, 과연 그 꿈을 이룰 수 있을지. 올림픽을 향한 마지막 도전이 여기에서 끝날 것인지, 아니면 생애 세 번째 올림픽에 나갈 수 있을지 오늘 그리고 내일 그녀의 운명을 가를 경기가 펼쳐진다. 그녀의 선전을 기대해본다.

 

 

 

 

전일본선수권 연습 중인 안도 미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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