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나달

로저 페더러(스위스·3위)는 다시 세월의 무상함을 느꼈을 경기였다. 먼저 두 세트를 따내고도, 더블 매치 포인트에서 단 한 점을 내지 못하며 내리 네 게임을 내주고 다 잡았던 결승행 티켓을 놓치고 말았다. 페더러는 2년 연속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1위)에게 US오픈 준결승에서 패하면서 올해 그랜드슬램 무관으로 시즌을 마치게 되었고, 2003년 이래 매년 최소 한 개 이상의 그랜드슬램 우승을 하던 기록이 중단되었다. 윔블던에서 조코비치에게 패하며 타이틀 방어에 실패했던 디펜딩 챔피언 라파엘 나달(스페인·2위)은 다시 챔피언 자리를 놓고 조코비치와 다시 맞붙게 되었다.

페더러와 동갑내기인 서리나 윌리엄스(미국·27위)는 세계 1위인 카롤리네 보스니아키(덴마크)를 맞아 승리하며 통산 네 번째 우승에 도전하게 되었는데, 페더러는 먼저 두 세트를 이기면 결승에 진출하는 여자 경기를 보면서 그랜드슬램 남자 단식이 5세트 경기인 것을 원망할지도 모를 일이다.

 

조코비치의 환호 ⓒ Getty lmages

대회 13일째 (9월 10일, 현지시간)

<남자 준결승>

정상적인 대회 진행이 이루어졌다면 토요일(10일) 오후에 여자 결승, 그리고 일요일(11일) 오후에 남자 결승이 열리면서 대회가 끝났겠지만, 이틀 간의 우천으로 인해 대개 하루씩 먼저 열리는 여자 준결승이 남자 준결승과 같은 날에 열리고, 결승전은 하루씩 밀리는 새로운 일정이 발표되었다.

빅4의 전원 생존으로 최고의 카드가 만들어진 남자 준결승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페더러의 행보에 모든 관심이 쏠렸다. 윔블던부터 대회 직전까지 부진했지만 이번 대회만을 노린 듯이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것도 있고, 그냥 페더러의 경기 내용에 따라 우승자가 달라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조코비치가 페더러를 이기면 우승은 그의 차지가 될 것이고, 페더러가 이기면 나달이 우승을 할 것이라는 페더러 팬들에게는 미안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페더러가 조코비치와 나달에게 밀리는 것은 그 지겨운 한 손 백핸드의 고질적인 약점은 뒤로 하더라도 스피드와 체력적인 면의 열세가 가장 크기에 두 선수를 상대로 긴 랠리를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이 경기에서 이길 것이라 믿었을 페더러 ⓒ Philip Hall/USTA

전성기에는 상대를 압도하는 기량으로 굳이 풀세트 접전을 치를 필요가 없던 페더러였지만, 이제 그의 기량이 쇠퇴하고 그를 밀어낼 만큼 성장한 어린 선수들과의 상대하면서 경기가 길어질수록 고전하는 일이 많아졌고, 최근 풀세트 경기에서의 저조한 승률은 현재 그가 처한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하고 있다. 이를 의식한 페더러는 초반부터 우세를 잡기 위한 노력을 했고, 1세트를 타이브레이크 끝에 따내고 2세트마저 조코비치의 갑작스런 난조를 놓치지 않고 서브 게임을 브레이크하여 승리하며 결승까지는 단 한 세트만을 남겨두었다. 그러나 3,4세트에서 페더러의 움직임은 급격이 둔해졌지만 조코비치의 샷은 페더러를 계속 움직이게 하면서 괴롭혔다. 페더러의 실책은 갑자기 늘어나기 시작했고 3세트에 이어 4세트마저 일찌감치 승부가 난 듯하자 5세트에 총력을 다하기 위하여 힘을 아끼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러나 점점 어두워진다 ⓒ Philip Hall/USTA

결국 승부를 가른 것은 5세트였다. 페더러는 4-3에서 조코비치의 서브 게임을 브레이크하며 5-3으로 앞서며 서브 게임을 맞아 경기를 끝낼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조코비치의 강력한 포핸드 리턴 득점에 이어 페더러의 포핸드가 네트를 맞고 튀면서 옆으로 나가면서 듀스가 되었고 결국 페더러는 이 게임을 더블 폴트로 조코비치에게 내주고 말았다. 끝낼 기회를 놓친 페더러에게 남은 것은 지옥과도 같았을 4연속 게임 패배와 함께 믿기지 않는 역전패였다. 전성기 시절 워낙 압도적인 경기를 해서일까 페더러는 이런 긴장된 승부처에서는 약해지는 모습이 있는 듯하다. 듀스가 되었더라도 페더러는 여전히 유리한 상황이었고, 게임을 브레이크 당한 후에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는 너무 힘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조코비치의 3:2(6(7)-7 4-6 6-3 6-2 7-5) 대역전승.

조코비치가 기사회생한 5세트 페더러의 더블 매치 포인트

 

조코비치 날다 ⓒ Andrew Ong/USTA

앤디 머리의 팬에게는 참 미안한 이야기지만 여전히 머리는 빅4라고 불리면서도 다른 세 선수와 자신과 사이에 보이지 않는(어쩌면 뚜렷하게 보이는 것일수도 있다) 그 벽을 넘어서지 못하며 나달에게 다시 패하며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개인적으로는 우승을 한 번 하고 나면 더 발전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랜드슬램 준결승에서 계속 나달을 만나는 것이 불운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동갑내기인 조코비치가 이미 페더러-나달의 시대를 마감하고 자신의 시대를 열어가는데 반하여 여전히 라이벌들을 빛나게 해주는 명품 조연의 역할에 그치고 있다.

어찌보면 참 불쌍한 앤디 머리 ⓒ Philip Hall/USTA

이 중요한 경기에서도 경기 내용이 들쑥날쑥한 고질적인 문제는 나아지지 않아서 톱 랭커들과의 승부에서 늘 고배를 들 수밖에 없는 그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고 말았다. 1세트 2-1로 앞선 나달은 네 번째 게임에서 더블 브레이크 포인트의 기회를 잡았지만 리턴 실패와 머리의 발리로 듀스를 허용했고 다시 서브 리턴에 실패하면서 머리에게 어드밴티지를 허용했다. 그러나 백핸드 실책으로 다시 듀스로 돌아간 머리는 서브로 득점하며 다시 게임을 이길 기회를 잡았지만 또 백핸드 실책으로 듀스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두 번의 기회를 놓친 머리에게 세 번째 기회는 없었는데 더블 폴트와 포핸드 실책으로 게임을 내주면서 3-1로 뒤지게 되었다. 이 한 번의 브레이크가 1세트의 승부를 갈랐고 6-4로 나달이 승리하였다. 2세트는 머리의 고질병인 집중력 부족이 드러나며 힘도 써보지 못한 채 나달이 6-2로 승리했다.

나달의 환호 ⓒ Philip Hall/USTA

나달의 쉬운 승리로 끝나기에는 팬들에게 미안했는지 머리는 3세트에서 분발하여 나달과의 스트로크 대결에서 밀리지 않으며 6-3으로 이기며 4세트에 돌입하게 되었다. 4세트 초반에는 경기가 팽팽하게 진행되면서 5세트까지 경기가 이어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네 번째 게임에서 나달은 결정적인 브레이크를 하며 머리에게 넘어갔던 경기 주도권을 빼앗아왔다. 1세트 나달의 브레이크와 마찬가지로 나달의 더블 브레이크 포인트에서 듀스 2회의 접전을 거친 후 더블 폴트와 포핸드 실책으로 머리가 서브 게임을 내주면서 3-1이 되었다. 나달은 서브 게임을 지키며 리드를 4-1로 벌렸고 머리는 3세트에서처럼 나달의 백핸드를 공략하면서 기습적으로 포핸드를 노리던 전술이 나오지 않으면서 무너지고 말았다. 나달의 3:1(6-4 6-2 3-6 6-2) 승리. 4세트 경기였지만 두 선수의 랠리가 길게 이어지며 경기 시간은 3시간 24분이나 걸렸다. 이로써 조코비치와 나달은 윔블던에 이어서 그랜드슬램 두 대회 연속으로 결승에서 맞붙게 되었다.

 나달의 서브 ⓒ Philip Hall/USTA

<여자 준결승>

No.1 보스니아키의 가장 큰 장점은 안정된 수비력이다. 공격은 컨디션에 따라 기복이 심하지만 안정된 수비는 지지 않는 경기의 바탕이 되기에 보스니아키가 시즌 내내 경기를 치르면서 그랜드슬램에서 변변찮은 성적을 거둠에도 압도적인 랭킹 1위를 달릴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는 창이 방패를 뚫을 만큼 날카롭지 못할 때에나 가능한 일이지 이 날처럼 서리나가 강력한 서브를 퍼부으면서 경기를 주도하는 날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랜드슬램은 정녕 그녀에게 인연이 아닌가 ⓒ Philip Hall/USTA

1세트는 2-1로 앞서던 서리나가 연속으로 보스니아키의 서브 게임을 브레이크하면서 5-1로 앞서면서 손쉬운 승리를 챙겼다. 네 번째 게임에서 트리플 브레이크 포인트에 몰렸던 보스니아키는 친절한 서리나의 3연속 라인을 벗어나는 실책으로 듀스를 만들며 기사회생했지만 세 번의 어드밴티지를 살리지 못하고 서브 게임을 내주었다. 2세트에서도 보스니아키는 2-1에서 서리나의 발리와 포핸드에 30-0으로 밀리더니 빗맞은 포핸드가 로브같이 들어가면서 서리나에게 사이드라인 근처로 떨어지는 포핸드 위너를 맞으며 트리플 브레이크 포인트에 몰렸다. 여기가 승부처임을 직감했을까 보스니아키는 더블 폴트로 게임을 내주며 1세트의 악몽을 되풀이하는가 싶었다. 그러나 서브 게임을 잘 지키면서 반격의 여지를 마련한 보스니아키는 5-3으로 뒤진 아홉 번째 게임에서 중요한 브레이크를 하면서 패배의 위기에서 일단 벗어났다. 서리나는 서브 에이스로 깔끔한 출발을 보였지만 더블 폴트로 동점이 되었다. 강서브에 이은 스매시로 30-15로 앞서며 경기를 끝낼 듯하였지만, 포핸드가 베이스라인을 벗어나고 네트에 걸리며 브레이크 포인트에 몰렸고 다시 더블 폴트를 범하며 게임을 내주며 5-4로 쫓겼다. 기사회생한 보스니아키는 서리나의 포핸드가 사이드라인을 벗어나며 기분 좋은 출발을 하였지만, 서리나의 포핸드를 두 번이나 맛을 본 다음 백핸드가 네트에 걸리며 매치포인트에 몰렸다. 보스니아키의 첫 서브가 폴트가 되면서 세컨드 서브를 잔뜩 노리고 기다리던 서리나는 강력한 백핸드 리턴을 날렸고, 보스니아키가 받아 친 공이 네트에 걸리며 경기는 끝났다. 2:0(6-2 6-4)으로 서리나가 승리하면서 통산 네 번째 우승에 단 1승만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

30대의 힘 서리나 윌리엄스 ⓒ Don Starr/USTA

다른 준결승 세 경기가 메인 경기장인 아더 애쉬 스타디움에서 열린 반면 상대적으로 인기가 적었던 사만다 스토서(호주·10위)와 안젤리크 케르베르(독일·92위)의 경기는 그랜드스탠드에서 열렸다. 앞의 세 경기를 보느라 직접 보지는 못하였는데 스토서가 2:1(6-3 2-6 6-2)로 케르베르를 이기고 생애 처음으로 대회 결승에 진출했다. 경기 결과를 놓고 보면 네트 플레이로 얻은 점수에서 스토서가 27-9로 압도적으로 많은데 스토서의 많은 복식 경기 경험이 큰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다.

기뻐하는 스토서 ⓒ Don Starr/USTA

비로 인해 연기된 단식 경기들이 전날 모두 열리면서 대회 종료를 하루 늦추어 잔여 경기를 치르는 것으로 일정상의 문제는 조절이 될 듯한 가운데 아직 8강 경기를 하지 못한 남자 선수 4명의 경기가 열렸다. 여자 선수들은 하루 휴식을 취하는 가운데 그동안 연기된 경기를 소화하는 일정에서도 단식 경기에 밀려있던 복식과 주니어 경기 등이 진행되었다.

남자 4강 나머지 두 장의 티켓은 라파엘 나달(스페인·2위)과 앤디 머리(영국·4위)에게 돌아가면서 남자 단식은 상위 4명의 시드 배정자가 4강에서 맞붙는 최상의 대진을 이루어지면서 프랑스오픈에 이어 두 번째 "꿈의 4강"이 이루어졌다. 대진은 지난 번과 마찬가지로 조코비치-페더러와 나달-머리의 승자가 결승에서 맞붙게 된다.

이번 시즌 두 번째 빅 4의 드림 세미파이널이 열린다

 

대회 12일째 (9월 9일, 현지시간 기준)

<남자 8강>

유럽파의 나달과 머리가 각각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안은 미국의 앤디 로딕(21위)과 존 이스너(22위)와 대결하게 되었다. 랭킹과 그동안의 경기 전적으로 보나 최근의 경기력으로 보나 쉽게 예상이 가능한 경기였으나 워낙 강력한 서브를 넣는 선수들이라는 점이 희박하지만 혹시나 하는 조금의 기대를 갖게 하였다.

준결승에 진출한 앤디 머리 ⓒ Getty Images

머리와 이스너의 경기는 그런 기대를 어느 정도 충족시켰는데 이스너는 경기 내내 첫 서브의 평균 속도가 어지간한 선수들의 최고 속도와 맞먹는 125mph를 기록할 정도로 강한 서브를 앞세워 서브 게임만큼은 지켜나가는 경기를 하였다. 그러나 1세트 막판 균형이 깨지고 마는데 5-5에서 머리가 경기 첫 브레이크를 기록하면서 역전에 성공했다. 이스너는 머리에게 포핸드 위너를 두 번 허용하며 30-15로 뒤진 상황에서 더블 폴트를 저지르며 브레이크 포인트에 몰렸다. 당황한 이스너는 발리에서 실수를 저지르며 게임을 내주었고, 머리가 서브 게임을 지키면서 7-5로 승리하였다. 2세트 역시 단 한 번의 브레이크가 승부를 갈랐다. 첫 게임에서 이스너는 연속해서 포핸드 실책을 범하며 30-0으로 밀렸고 머리는 이스너의 스매시를 받아낸 후 포핸드 위너를 날리며 트리플 브레이크 포인트로 압박했다. 이스너는 압박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네트에 공을 꽂으며 게임을 내주었다. 이 게임에서 밀린 이스너는 끝까지 회복하지 못하고 6-4로 두 번째 세트 역시 내주었다.

비록 졌지만 가능성을 보여준 강서버 이스너 ⓒ Philip Hall/USTA

그러나 이스너는 3세트 두 번째 게임을 머리의 실책에 힘입어 세 번의 듀스 끝에 브레이크하면서 리드를 잡았다. 역시 브레이크 하나가 세트의 승패를 좌우하면서 6-3으로 이스너가 승리했다. 4세트는 두 선수 모두 서브 게임을 지키며 6-6까지 팽팽한 승부가 이어졌고, 타이브레이크에서 집중력이 높았던 머리가 승리하였다. 머리는 백핸드 드롭샷으로 먼저 점수를 낸 후, 이스너의 서브를 받아내지 못하며 동점을 허용했으나 이스너가 더블 폴트를 저지르며 2-1로 리드를 잡았다. 서브를 가져온 머리는 이스너의 좋지 않은 리턴을 받아쳐 포핸드 위너를 날렸고 다음 랠리에서는 날카로운 백핸드를 사이드라인에 떨어뜨리며 4-1로 점수차를 벌렸다. 이스너는 머리의 어정쩡한 리턴을 포핸드 위너로 한 점을 따라붙었지만 발리와 포핸드 드롭이 연속으로 네트에 걸리며 6-1 매치포인트에 몰렸다. 부담감이 컸을까 이스너는 머리의 서브를 라인 밖으로 받아치면서 경기는 머리의 3:1(7-5 6-4 3-6 7-6(1)) 승리로 끝났다.

윔블던에 이어 다시 머리와 준결승에서 겨루게 된 디펜딩 챔피언 나달 ⓒ Philip Hall/USTA

이스너는 어느 정도 자신의 경기를 하다가 실책으로 무너졌다지만 이어진 경기의 로딕은 나달이 가지고 놀았다는 표현이 적당할 정도로 처참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서브에 의존하는 로딕의 첫 서브 성공률이 60%를 밑돌면서 나달은 세컨드 서브를 반격하여 리시브의 절반을 득점으로 연결했다. 스트로크 랠리가 이어질 경우 불리한 로딕은 서브 앤 발리를 위해 네트로 달려들었지만 나달은 로딕의 움직임을 읽고 빈 곳을 노려 공략하였다. 움직임이 느린 로딕은 속수무책으로 지켜보기만 하였고 발리도 실책이 이어지며 서브 게임을 지키는 것조차 어려웠다. 나달은 1시간 53분만에 3:0(6-2 6-1 6-3)으로 완승을 거두었다.

나달은 로딕의 약점인 백핸드를 집중 공략하여 그의 공격을 철저히 봉쇄했다 ⓒ Andrew Ong/USTA

준결승에서 프랑스오픈과 같은 매치업이 이루어졌는데 나달과 조코비치의 리턴 매치 혹은 최고의 흥행카드인 나달-페더러의 경기 등 어떤 대진이 나오더라도 재미있는 경기가 될 것 같다. 페더러나 조코비치나 나달이 떨어지기를 바라고 있을 것 같지만.

대회 9일째와 10일째인 9월 6일과 7일 비로 인해 모든 경기가 취소되거나 중단되면서 US오픈 경기 일정에 큰 지장을 초래하였다. 9일째는 남자 4라운드와 여자 8강 경기, 그리고 10일째는 남녀 8강 경기가 열릴 예정이었으나 일정이 꼬이면서 대회 기간이 늘어나는 것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하루 정도의 경기 취소는 다음 날에 경기를 나누어 소화할 수 있겠지만 이틀이나 경기가 열리지 못해 경기를 제 때 치르지 못한 선수들의 경우 컨디션 조절도 큰 변수가 될 것 같다.

송가를 누르고 준결승에 진출한 로저 페더러 ⓒ Rob Loud/USTA

 

대회 11일째 (9월 8일, 현지시간 기준)

<남자 4라운드>

여심을 사로잡는다는 나달의 상의 탈의 ⓒ Philip Hall/USTA

비로 인해 이틀 동안 경기를 하지 못한 8명의 선수들이 8강 진출을 위한 대결을 펼쳤다. 라파엘 나달(스페인·2위)은 질레스 뮐러(룩셈부르크·68위)와 윔블던에 이어 다시 맞붙었는데, 7일 경기를 하다가 1세트에서 뮐러가 3-0으로 앞선 상황에서 비로 중단된 경기를 재개하였다. 경기 연기가 큰 도움이 되었는지 나달은 재개된 경기에서의 첫 게임인 네 번째 게임을 러브 게임으로 따내며 추격에 나섰다. 이어진 게임에서 뮐러 역시 지지 않고 서브 에이스 두 개를 포함하여 러브 게임으로 이기며 4-1로 앞서 나갔는데, 여기서부터 뮐러의 실책쇼와 나달의 환상적인 스트로크가 터지기 시작했다. 나달은 연달아 세 게임을 따내며 4-4 동점을 만들었고 6-6에서 타이브레이크에 돌입한 후 상대의 허를 찌르는 날카로운 포핸드 스트로크로 뮐러를 단 1점으로 묶어놓으며 1세트를 이겼다. 왼손잡이끼리의 대결이어서 흥미로웠으나 나달은 발빠른 움직임으로 백핸드로 받을 것도 포핸드로 받아치며 공격적으로 나섰고, 집요하리만큼 상대의 백핸드 코스로 공을 보내어 묶어놓은 후 반대쪽 사이드라인과 베이스라인을 노려 스트로크를 날리며 경기를 압도했다. 2세트부터는 완벽한 나달의 일방적인 게임으로 진행되었고 3:0(7-6(1) 6-1 6-2) 나달의 승리로 끝났다.

늘 2% 부족했던 머리가 이번에는 그 부족함을 채울 수 있을지 ⓒ Andrew Ong/USTA

앤디 머리(영국·4위)는 도날드 영(미국·84위)의 돌풍을 잠재우며 8강에 진출했다. 머리는 자신은 지금까지 영이 상대해왔던 선수들과 급이 다른 선수임을 보여주려는 듯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머리는 서브에서 난조를 보였음에도 강하고 정확한 스트로크로 영을 괴롭혔고, 영은 그의 뜻대로 실책을 남발하며 졌다. 머리의 3:0(6-2 6-3 6-3) 완승.

볼에 바람을 넣어 풍선을 만드는 특이한 취미의 소유자 로딕 ⓒ Andrew Ong/USTA

앤디 로딕(미국·21위)은 비로 인해 루이 암스트롱 스타디움 대신 13번 코트에서 펼쳐진 경기에서 다비드 페레르(스페인·5위)를 누르고 3년만의 8강 진출에 성공했다. 로딕은 2:1로 앞선 4세트에서 2-2로 팽팽히 맞서다 서브 게임을 브레이크당하며 위기에 빠졌다. 그러나 이어진 게임에서 40-15로 앞서던 페레르가 갑자기 포핸드와 백핸드 실책을 연속으로 저지르며 듀스에 접어들었고, 로딕은 경기에서 자주 보기 힘든 백핸드 위너와 페레르의 실책을 묶어 게임을 따내며 3-3 동점을 만들었다. 기세가 오른 로딕은 강한 서브를 넣으며 지친 페레르를 압박했고, 페레르는 중요한 순간에서 실책을 잇달아 저지르며 내리 세 게임을 모두 지고 말았다. 로딕의 3:1(6-3 6-4 3-6 6-3) 승리. 로딕은 경기 후 13번 코트 관중석 주변을 한 바퀴 돌면서 자신을 응원하는 팬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이번 대회에서 이스너는 놀랄만한 기량을 보여주었는데 반짝이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 ⓒ Philip Hall/USTA

존 이스너(미국·22위)는 질레스 시몬(프랑스·12위)과의 경기에서 세 번의 타이브레이크를 승리로 이끌며 3:1(7-6(2) 3-6 7-6(2) 7-6(4)) 승리를 거두고 8강에 합류했다. 이스너의 그랜드슬램 8강 진출은 이번이 처음이다.

<남자 8강>

전날 예정되어 있던 남자 8강 경기 중 두 경기 역시 열렸다. 친한 친구 사이인 두 세르비아 선수의 맞대결인 노박 조코비치(1위)와 얀코 팁세라비치(20위)의 경기와 윔블던 8강의 리벤지 매치인 로저 페더러(스위스·3위)와 조-윌프리드 송가(프랑스·11위)의 경기였다.

"내가 제일 잘 나가" 의 조코비치 ⓒ Andrew Ong/USTA

조코비치는 팁세라비치를 맞아 이번 대회에서 가장 어려운 경기를 펼쳤다. 1세트와 2세트는 모두 타이브레이크까지 가는 접전 끝에 서로 한 세트씩 나누어 갖고 3세트를 맞이했다. 그런데 팁세라비치의 움직임이 둔해지면서 공격이 무뎌지고 수비가 느슨해지자 팽팽했던 경기의 양상이 조코비치의 압도적인 경기로 바뀌었다. 조코비치는 3세트를 6-0에 이어 4세트에서 연달아 세 게임을 이기며 아홉 게임을 연속으로 이기며 경기를 지배했다. 이 때 왼쪽 허벅지 햄스트링을 느낀 팁세라비치가 기권하면서 경기는 싱겁게 끝이 났다. 조코비치 입장에서는 팁세라비치가 조금 빨리 포기하기를 바랐겠지만, 모처럼 조코비치와 좋은 승부를 펼친 팁세라비치의 아쉬움도 클 것 같다.

멋있지만 치명적 단점이 되어버린 페더러의 한 손 백핸드 ⓒ Don Starr/USTA

조코비치가 찜찜한 기권승으로 준결승에 진출한 반면 페더러는 송가를 3:0(6-4 6-3 6-3)으로 제압하며 화끈한 복수전을 펼쳐 주목을 받았다. 페더러는 1세트에서 먼저 송가의 서브 게임을 잡아내며 3-1로 달아났지만 실책에 발목이 잡히며 연속으로 세 게임을 내주며 3-4로 밀리는 처지가 되었다. 그러나 서브 게임을 챙기며 동점을 만든 페더러는 송가의 연속된 실책 세 개를 놓치지 않고 밀어붙여 5-4로 재역전시킨 후 마지막 게임을 러브 게임으로 잡아내며 이겼다. 윔블던에서 3세트 이후 체력이 떨어지며 송가의 공세를 견디지 못했던 것과는 달리 페더러는 꾸준히 페이스를 유지하며 경기를 쉽게 이기면서 조코비치와 결승행을 놓고 다투게 되었다. 올해 페더러와 조코비치는 호주오픈과 프랑스오픈에 이어 그랜드슬램 준결승에서 세 번째 맞붙는데 지난 두 번의 승부에서는 1승 1패로 호각을 이루고 있다.

 

<여자 8강>

이틀로 나뉘어 열릴 예정이던 경기가 모두 비로 연기되면서 하루에 모두 열렸다. 이대로라면 여자 결승의 경우 예정되었던 10일(토요일 오후)에 열리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

생각에 잠긴 서리나 ⓒ Philip Hall/USTA

최근 미국 남녀 선수들의 동반 부진 속에 서리나 윌리엄스(27위)의 화려한 부활은 대회가 열리는 미국에서 가뭄 속의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10살 어린 아나스타샤 파블류첸코바(러시아·16위)를 맞아 2:0(7-5 6-1) 완승을 거두며 4강에 올랐다. 비로 인한 이틀 간의 휴식이 독이 되었는지 두 선수는 시작부터 실책을 많이 저지르며 상대의 서브 게임을 계속 브레이크하며 3-3으로 팽팽한 흐름을 이어갔다. 서리나가 일곱 번째 게임만에 서브 게임을 지킨 후로는 두 선수 모두 상대에게 브레이크를 허용하지 않아 5-4에서 파블류첸코바의 서브 게임을 맞이했다. 파블류첸코바는 연속으로 더블 폴트를 저지르며 30-0으로 뒤지면서 위기를 맞이했지만 침착하게 네 포인트를 따내며 벗어났고, 6-5로 서리나가 앞선 채 경기의 승부처가 된 열두 번째 게임에 돌입했다. 서리나는 상대 실책과 백핸드로 30-0으로 앞섰지만 실책과 파블류첸코바의 포핸드에 동점을 허용했다. 서리나가 백핸드 위너로 먼저 세트 포인트에 도달했지만, 파블류첸코바 역시 백핸드로 듀스를 만들며 다시 위기를 벗어났고 서브를 서리나가 받아내지 못하며 파블류첸코바의 어드밴티지가 되었다. 그러나 서리나는 12번의 긴 랠리 끝에 파블류첸코바의 포핸드 실책으로 다시 듀스를 만들더니 연속으로 두 포인트를 더해 1세트를 이겼다. 2세트는 서리나의 일방적인 흐름이었는데 파블류첸코바가 더블 폴트로 자멸하면서 손쉬운 승리를 헌납하였다.

무관의 여제 캐로 ⓒ Philip Hall/USTA

로딕과 페레르의 경기와 마찬가지로 13번 코트로 옮겨 열린 카롤리네 보스니아키(덴마크·1위)와 안드레아 펫코비치(독일·10위)의 경기는 2:0(6-1 7-6(5)) 보스니아키의 승리로 끝났다. 수비 불안과 실책으로 허무하게 1세트를 내준 펫코비치는 2세트에서는 각성한 듯 보스니아키와 치열한 접전을 벌였다. 캐로가 2-1로 앞선 네 번째 게임에서 펫코비치는 4연속 실책으로 서브 게임을 내주며 위기를 맞이했지만, 네트플레이를 앞세워 캐로의 서브 게임을 브레이크하고, 듀스 접전 끝에 서브 게임을 지켜내면서 3-3 동점을 만들었다. 그러나 펫코비치는 다시 한 번 서브 게임을 빼앗기며 5-3으로 뒤져 위기를 맞이했는데. 캐로의 더블 폴트와 백핸드로 브레이크하며 숨을 돌리고 서브 게임을 지켜내며 5-5 동점을 만들었다. 두 선수 모두 서브 게임을 지키며 맞이한 타이브레이크는 3-3 이후 승부가 갈렸다. 펫코비치는 3연속 실책이 이어지며 순식간에 트리플 매치 포인트에 몰렸고, 연속해서 발리로 점수를 내며 6-5까지 추격했지만 백핸드 샷이 베이스라인을 벗어나며 패하고 말았다. 보스니아키는 서리나와 결승 티켓을 놓고 다투게 된다.

소리 없이 준결승에 오른 스토서 ⓒ Andrew Ong/USTA

사만다 스토서(호주·9위)는 의외로 베라 즈보나레바(러시아·2위)를 2:0(6-3 6-3)으로 쉽게 이기며 4강에 진출했다. 1세트에서 3-2까지는 서로 서브 게임을 지키며 팽팽한 분위기였으나 즈보나레바가 더블 폴트와 실책 연발로 게임을 내준 후 스토서가 5-2로 달아나면서 경기가 급격히 스토서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스토서는 1세트 마지막 게임부터 2세트 두 번째 게임까지 12연속 포인트를 기록하면서 즈보나레바의 기를 완벽히 꺾었고, 잡은 리드를 놓치지 않고 2세트 5-3으로 앞선 상황에서 즈보나레바의 서브 게임을 맞이했다. 즈보나레바는 30-30에서 통한의 더블 폴트를 저지르며 매치 포인트를 내주었고 스토서는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즈보나레바는 스토서를 좌우로 흔들며 랠리를 주도했지만 20번의 스트로크가 오가는 랠리 다음의 즈보나레바의 백핸드 샷이 네트에 걸리며 눈물을 삼켰다.

이변의 주인공 케르베르 ⓒ Andrew Ong/USTA

조금 관심이 덜했던(역시 마찬가지라서 경기를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그랜드슬램 4라운드 이상 진출 경험도 없는 안젤리크 케르베르(독일·92위)와 플라비아 페네타(이탈리아·25위)의 경기에서는 케르베르가 풀세트 접전 끝에 2:1(6-4 4-6 6-3)의 승리를 거두며 준결승에 올라 스토서와 4강에서 맞붙게 되었다. 케르베르는 한 경기 한 경기가 자신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셈.

 

<Player of the Day>

질레스 시몽을 누르고 첫 그랜드슬램 8강 진출에 성공한 이스너 ⓒ Philip Hall/USTA

킴 카다시안과 시아라도 이 날 테니스를 보러 왔었다고 하더라는..

작년 우승자 라파엘 나달(스페인·2위)가 초반에 어려움을 겪는 슬로스타터의 모습을 보이면서도 경기가 진행될수록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며 대회 2연패를 향하여 조금씩 나아가고 있고, 앤디 로딕(미국·21위)과 존 이스너(미국·22위)는 홈팬들의 성원을 입고 강력한 서브를 앞세워 4라운드에 진출했다.

상위 랭커들의 잇따른 탈락에 다소 김이 샌 여자부에서는 8강 진출을 위한 선수들의 경쟁이 치열했다. 베라 즈보나레바(러시아·2위)를 비롯한 4명이 생애 첫 그랜드슬램 우승을 바라보며 8강에 진출했다.

대회 7일째 (9월 4일, 현지시간 기준)

<남자부 3라운드>

나달은 더이상 유망주라고 칭할 수 없는 다비드 날반디안(아르헨티나·76위)를 상대하여 3:0(7-6(5) 6-1 7-5)으로 이기며 4라운드에 진출했다. 1세트에서 나달은 초반에 몸이 덜 풀렸는지 고전하면서 날반디안에게 세트를 내줄 위기에 몰렸다. 그러나 날반디안은 더블 폴트를 범하며 나달에게 동점을 허용했고, 계속 치고 받다가 타이브레이크 끝에 패하고 말았다. 2세트는 완벽한 나달의 페이스. 나달의 강력한 톱스핀에 날반디안의 샷은 번번이 밖으로 나가며 나달의 완승으로 끝났다. 궁지에 몰린 날반디안은 3세트에서 각성하고 덤벼들어 5-5까지 팽팽한 승부를 이어갔으나, 마지막 서브 게임에서 또 더블 폴트를 저지르며 경기를 끝냈다. 날반디안은 결정적인 순간마다 더블 폴트가 나온 것이 패인이 되었다.

라파엘 나달의 서브 ⓒ Philip Hall/USTA

앤디 머리(영국·4위)는 펠리시아노 로페스(스페인·26위)를 맞아 한 수 위의 기량으로 3:0(6-1 6-4 6-2)의 승리를 거두었다. 2라운드에서 생각지도 않았던 위기를 맞았던 머리는 각성한 듯 초반부터 로페스를 거세게 압박하며 기선 제압에 성공했다. 1세트 시작과 함께 머리는 14연속 득점으로 로페스를 압도했고, 로페스는 30-0으로 뒤진 네 번째 게임에서 겨우 서브로 경기 첫 득점에 성공할 정도였다. 2세트에서 로페스는 보다 공격적으로 덤벼들며 1세트와는 다른 모습을 보였는데, 4-4 팽팽한 상황에서 역시 더블 폴트로 게임을 내주며 무너지고 말았다.

강력한 모습을 보여준 머리 ⓒ Rob Loud/USTA

로딕은 줄리앙 베네토(프랑스·81위)를 3:0(6-1 6-4 7-6(5))으로 누르고 최근의 부진에서 벗어난 모습을 보여주었다. 로딕은 강서브를 앞세워 두 세트를 따낸 후 3세트에서 베네토에게 거센 반격을 당했다. 로딕은 3세트에서 여러 번 브레이크의 기회가 있었으나 살리지 못하여 고전하였는데 침착하게 자신의 서브 게임을 지켜나가며 이기지는 못해도 지지 않는 경기를 펼쳤다. 타이브레이크에서 이미 두 세트를 이긴 로딕은 침착하게 경기를 펼친 반면 베네토는 실수를 연발하며 로딕의 승리로 경기가 끝났다. 작년 대회에서 2라운드 탈락의 수모를 당했던 로딕은 4라운드에 진출하면서 홈팬들의 성원에 보답하였다.

로딕은 조금씩 살아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 Philip Hall/USTA

역시 이번 대회에서 선전하고 있는 이스너는 알렉스 보고몰로프 주니어(미국·44위)에게 3:0(7-6(9) 6-4 6-4)의 승리를 거두며 4라운드에 진출했다. 이스너는 17개의 서브 에이스를 앞세워 보고몰로프의 코트를 폭격했는데, 잘 버티던 보고몰로프는 1세트 타이브레이크의 패배가 뼈아팠다. 보고몰로프는 타이브레이크를 앞서갔지만 이스너의 서브 에이스가 터지며 누가 먼저 두 점을 획득하는가를 겨루는 싸움으로 진행되었다. 이스너는 7-8로 뒤진 상황에서 연속으로 서브 에이스를 두 개 날리며 역전에 성공했고, 10-9로 앞선 상황에서 강력한 서브를 넣어 득점으로 연결시키며 승리했다. 이어진 두 세트는 이스너가 단 한 번씩의 브레이크로 세트를 따내며 어렵지 않게 이겼다.

강력한 서브를 자랑하는 이스너 ⓒ Rob Loud/USTA

그리고 다비드 페레르(스페인·5위)와 질레스 뮐러(독일·68위) 역시 승리를 거두며 4라운드에 합류했다, 2년 전의 영광을 재현하려던 후안 마르틴 델 포트로(아르헨티나·18위)는 질레스 시몬(프랑스·12위)에게 발목이 잡혀 탈락했고, 같은 아르헨티나 선수인 후안 이그나시오 첼라(24위)는 와일드 카드로 대회에 참가한 도날드 영(미국·83위)에게 패했다.

<여자부 4라운드>

다소 무게감이 떨어지는 매치업 때문에 여자 4라운드 경기는 다소 관심을 받지 못하였지만 8명의 여자 선수들은 8강의 네 자리를 놓고 다시 뜨거운 승부를 펼쳤다.

즈보나레바의 서브 ⓒ Don Starr/USTA

즈보나레바와 자비너 리지키(독일·18위)의 경기가 가장 관심을 모으는 경기였는데 즈보나레바의 완승으로 끝났다. 리지키는 주무기인 서브가 난조를 보이며 스스로 무너졌는데, 첫 서브 성공률이 고작 40%에 불과했고 에이스도 단 한 개 기록하는데 그쳤다. 서브가 안 들어가자 리지키는 1세트에 연속으로 두 번 브레이크를 당하며 끌려가는 경기를 하였고, 뒤늦게 추격에 나섰지만 4-2에서 즈보나레바에게 다시 브레이크를 당하며 힘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2세트는 3-3까지 팽팽하게 경기가 진행되었는데, 리지키가 40-40에서 더블 폴트로 즈보나레바에게 브레이크 포인트를 선사하였고 이어진 랠리에서 백핸드 실책이 나오면서 즈보나레바에게 분위기가 넘어갔다. 즈보나레바의 2:0(6-2 6-3) 승리.

13억 대륙을 울린 페네타 ⓒ Andrew Ong/USTA

3라운드에서 샤라포바를 격침시켰던 플라비아 페네타(이탈리아·25위)는 남녀 유일하게 생존한 아시아 선수인 펑슈웨이(중국·14위)를 2:0(6-4 7-6(6))으로 이기고 8강에 진출했다. 세트스코어는 2:0이지만 페네타는 펑슈웨이보다 고작 3점을 더 얻었을 정도(98-95)로 경제적인 경기를 하였는데, 러브 게임으로 지나 듀스 끝에 지나 어차피 지는 것은 똑같으니 질 때 깨끗이 지는 것이 더 나은지도 모르겠다. 펑슈웨이는 1세트 1-1 30-30에서 포핸드와 백핸드 실책을 연달아 범하며 페네타에게 서브 게임을 넘겨주고 말았다. 페네타는 일곱 번째 게임마저 브레이크하며 5-2로 앞서 나갔고, 펑슈웨이가 듀스 접전 끝에 브레이크를 하면서 따라붙었지만 페네타는 6-4로 세트를 가져갔다. 2세트는 네 번째 게임까지 서로 상대의 서브 게임을 브레이크하며 2-2로 팽팽히 맞섰고, 3-4에서 페네타가 더블 폴트로 서브 게임을 내주며 펑슈웨이가 3-5로 앞서게 되었다. 마지막 세트까지 갈 수 있는 절호의 찬스에서 펑슈웨이는 실책을 연발하며 서브 게임을 내주며 페네타에게 추격을 허용하였다. 펑슈웨이는 5-5에서도 서브 게임을 실책으로 내주며 마지막에 몰렸지만 페네타의 연속된 실책으로 타이브레이크까지 이어가며 생명 연장을 하였다. 타이브레이크에서 페네타는 시작하자마자 펑슈웨이에게 백핸드 위너 두 개를 얻어맞고 연속 실책을 범하며 4점을 내줬고, 3-6이라는 트리플 세트 포인트에 몰렸으나 연속으로 다섯 포인트를 따내는 괴력을 발휘하며 기적같은 승리를 이끌어내면서 2시간 반 넘게 걸린 승부를 끝냈다.

달리는 근육녀 스토서 ⓒ Don Starr/USTA

사만다 스토서(호주·10위)는 마리아 키릴렌코(러시아·29위)와 풀세트 접전 끝에 2:1(6-2 6(15)-7 6-3)로 승리하며 작년에 이어 2년 연속 US오픈 8강에 진출했다. 스토서의 완승으로 끝난 1세트와는 달리 2세트에서 팽팽히 맞서며 타이브레이크에 돌입한 두 선수는 사이좋게 실책을 번갈아가면서 저지르면서 승부를 길게 끌고 갔다. 스토서는 14-13에서 서브를 넣으며 경기를 끝낼 절호의 찬스를 잡았다. 그러나 12번의 랠리 끝에 키릴렌코에게 백핸드 위너를 얻어맞고 14-14 동점을 허용하더니 더블 폴트로 14-15 역전을 허용했다. 스토서는 키릴렌코의 실책으로 동점을 만들었지만 연달아 백핸드와 포핸드 실책을 저지르며 15-17로 84분이나 걸린 2세트를 내주면서 3세트에 돌입하게 되었다. 3세트는 2-2까지는 팽팽하게 이어졌지만 승부의 균형을 무너뜨린 것은 스토서였다. 스토서는 다섯 번째 게임에서 키릴렌코의 서브 게임을 포핸드 위너로 브레이크하면서 4-2로 달아났고 5-3으로 앞선 아홉 번째 게임에서 키릴렌코의 계속된 실책을 놓치지 않고 게임을 브레이크하면서 긴 승부를 마쳤다.

시드 못받은 선수들의 대결이었던 모니카 니쿨레스쿠(루마니아·68위)와 안젤리크 케르베르(독일·92위)의 대결에서는 케르베르가 2:0(6-4 6-3)으로 승리하며 생애 첫 그랜드슬램 8강에 진출했다. 경기를 직접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케르베르가 힘에서 니쿨레스쿠를 압도하면서 케르베르의 샷이 들어가느냐 안 들어가느냐에 따라 경기가 좌우된 것 같다.

<Player of the Day>

2라운드에서 바브린카, 3라운드에서 첼라를 무너뜨린 와일드카드로 출전한 도날드 영(미국) ⓒ Andrew Ong/US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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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너스 사진>

코트의 미녀 키릴렌코 ⓒ Don Starr/USTA

자비너 리지키 ⓒ Rob Loud/USTA

1라운드에서 라파엘 나달(스페인·2위)이 무명의 선수에게 크게 혼나더니 2라운드에서는 앤디 머리(영국·4위)가 로빈 하세(네덜란드·41위)에게 혼쭐이 나며 3:2(6-7(5) 2-6 6-2 6-0 6-4)의 진땀승을 거두었다. 시드 배정자들이 더러 탈락하기도 하였지만 톱랭커들과 미국 선수들이 4라운드에 진출하며 큰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경기가 잘 풀리지 않는 샤라포바 ⓒ Philip Hall/usopen.org

여자 3라운드 경기에서는 우승 후보 중의 하나로 꼽혔던 마리아 샤라포바(러시아·4위)가 플라비아 페네타(이탈리아·25위)에게 패하며 조기 탈락하는 이변이 일어났다. 실력을 떠나 흥행 면에서도 최고 인기 스타인 샤라포바의 탈락은 대회 관계자들은 물론 중계하는 사람들까지도 상당히 실망했을 것 같다.

<남자 2라운드>

나달은 윔블던에서 존 이스너와 사상 최장 시간 경기의 기록을 세웠던 니콜라 마위(프랑스·99위)를 만났다. 나달은 1라운드의 고전이 약이 된 덕분인지 훨씬 나아진 움직임을 보였는데, 강력한 톱스핀 스트로크를 앞세워 마위를 밀어붙여 두 세트 모두 6-2로 쉽게 이기며 앞서갔다. 3세트 첫 게임에서 마위는 갑자기 복근의 통증을 호소하며 경기를 기권했고, 나달은 손쉽게 3라운드에 진출하였다.

나달의 명품 포핸드 스트로크 ⓒ Philip Hall/usopen.org

머리는 경기 후 "이렇게 경기를 한다면 나는 집에 돌아가고 말 것이다" 고 말할 정도로 예상 밖의 고전을 했는데, 마치 두 명의 다른 사람이 경기를 한 듯한 앞의 두 세트와 뒤의 세 세트의 경기 내용은 천지차이였다. 1세트 타이브레이크에서 머리는 4-1로 앞서다 실책 4개를 포함하여 연속해서 다섯 포인트를 내 주며 충격의 역전패를 당하더니 2세트에서는 실책으로 스스로 무너지고 말았다. 궁지에 몰리니 정신을 차렸을까 머리는 3세트부터 달라진 모습을 보이며 경기를 뒤집었다.

집에 갈 뻔했던 머리 ⓒ Philip Hall/usopen.org

앤디 로딕(미국·21위)은 미국에서 개최되는 대회의 이점을 안고 와일드카드를 받아 출전하게 된 잭 삭(미국·555위)을 3:0(6-3 6-3 6-4)으로 이기고 3라운드에 진출했다. 아직 19세 생일도 지나지 않은 삭은 대선배인 로딕을 맞아 분전했지만 실수를 연발하며 경험을 쌓는데 만족해야 했다. 로딕은 최고 140mph(225km/h)의 광속 서브를 꽂아 넣으며 11개의 에이스를 기록했고, 서브를 넣은 뒤 70% 이상을 득점으로 연결하면서 경기를 쉽게 이겼다.

로딕은 3년만에 US오픈 4라운드에 진출했다 ⓒ Rob Loud/usopen.org

마위와 함께 장시간 경기 기록을 세웠고 로딕에 지지 않는 강서버인 존 이스너(미국·22위)도 역시 와일드카드로 출전한 로비 지네프리(미국·363위)를 3:0(6-4 6-3 6-4)으로 이겼다. 이스너는 20개의 서브 에이스를 기록하면서 지네프리를 압도하였는데, 서브 게임을 단 한 번도 빼앗기지 않으며 세트마다 한 번씩 나온 브레이크로 승리를 거두며 최근의 상승세를 이어갔다.

왠지 이번 대회의 다크호스가 될 것 같은 이스너 ⓒ Philip Hall/usopen.org

다비드 페레르(스페인·5위) 역시 제임스 블레이크(미국·63위)를 3:0(6-4 6-3 6-4)으로 제압했다. 페레르와 블레이크는 어느 한 쪽이 상대를 압도하지 못하는 거의 대등한 경기를 했지만 블레이크가 무려 51개의 실책을 저지르며 점수를 헌납하면서 페레르의 손쉬운 승리로 끝이 났다.

나달에 가려진 스페인 2인자 페레르 ⓒ Don Starr/usopen.org

아르헨티나 선수들의 선전도 눈에 띄었는데 후안 마르틴 델 포트로(18위)를 비롯하여 주니어 시절 페더러보다도 잘 나갔던 다비드 날반디안(76위)과 노장 후안 이그나시오 첼라(24위)가 승리했고, 질레스 시몬(프랑스·12위)과 펠리시아노 로페스(스페인·26위) 등이 역시 3라운드에 진출했다. 반면에 시드 배정자 중 스타니슬라스 바브링카(스위스·14위)와 위르겐 멜처(오스트리아·17위), 이반 류비치치(크로아티아·31위)가 2라운드에서 탈락하였다.

 

<여자 3라운드>

서리나 윌리엄스(미국·27위)는 부상 이후 아직 정상 궤도에 오르지 못했고 이제 나이가 부담스러워지는 시기가 되었고, 전년도 우승자 킴 클라이스테르스(벨기에·3위)는 출전하지 않았다. 부상 복귀 이후 아직 그랜드슬램 우승이 없는 샤라포바에게는 이번 대회가 화려한 부활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샤라포바를 이긴 페네타 ⓒ Philip Hall/usopen.org

그러나 샤라포바는 그동안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노장 페네타를 상대하여 화려한 실책쇼를 벌이며 2-1(6–3 3–6 6–4)로 패했다. 1세트에서 서브에 심각한 난조를 보인 샤라포바는 더블 폴트와 실책으로 두 번의 브레이크를 당하며 힘없이 무너지는가 싶더니 연달아 두 번의 브레이크를 하면서 동점으로 갈 절호의 찬스를 잡았다. 그러나 실책과 더블 폴트로 서브 게임을 내주며 추격 의지가 꺾이고 말았다. 2세트에서 여전히 샤라포바가 자신의 점수는 물론 페네타의 점수까지도 올릴 정도로 불안정한 경기를 했지만 집중력이 살아나면서 1세트와는 반대로 샤라포바가 세트를 따내고 3세트를 맞이했다. 페네타는 먼저 세 게임을 따내며 3-0을 만들었지만 4-1에서 연속으로 세 게임을 내주며 동점을 허용하였다. 그러나 페네타가 서브 게임을 지키며 5-4로 만든 반면, 샤라포바는 연속하여 더블 폴트로 0-30으로 몰린 후 페네타에게 백핸드와 포핸드 위너를 얻어맞고 무릎을 꿇었다. 이 경기에서 샤라포바의 더블 폴트는 12개, 실책은 60개에 달했다.

서브를 넣는 즈보나레바 ⓒ Philip Hall/usopen.org

샤라포바와 같은 러시아 출신의 베라 즈보나레바(2위)와 마리아 키릴렌코(29위)는 2:0의 승리를 거두면서 4라운드에 진출했다. 그랜드슬램과는 인연을 맺지 못하고 있는 즈보나레바 역시 이번 대회가 무관의 한을 풀 좋은 기회가 되었는데, 아나벨 메디나 가리게스(스페인·33위)를 맞아 2:0(6-4 7-5)으로 승리하며 4라운드에 진출하여 자비너 리지키(독일·22위)와 맞붙게 되었다. 더운 날씨 탓이었을까 두 선수 모두 서브 난조를 보이기도 했고 임팩트 없이 경기가 다소 지루했는데 팽팽한 순간에서 즈보나레바가 가리게스의 서브 게임을 빼앗으며 승리를 가져갔다.

기계같은 느낌을 주는 스토서 ⓒ Don Starr/usopen.org

호주의 희망 사만다 스토서(10위, 호주를 비롯한 영미권에서는 애칭인 샘 스토서라고 부른다)는 러시아의 나디아 페트로바(25위)와 매 세트 접전을 치르며 2:1(7-6(5) 6-7(5) 7-5)로 3시간이 넘는 대혈전에서 승리했다. 2세트에서 타이브레이크 끝에 기사회생한 페트로바는 3세트 초반 상승세를 이어가며 3-1로 앞서갔다. 그러나 스토서는 페트로바가 서브를 넣는 여덟 번째 게임을 듀스 끝에 브레이크하면서 4-4 동점을 만들었고, 6-5로 앞선 마지막 게임을 페트로바의 연속 실책에 힘입어 승리하면서 4라운드 진출권을 손에 넣었다. 올해는 물론 작년 프랑스오픈 준우승 이후 그랜드슬램에서 4라운드 이상 올라간 적이 없었던 스토서는 모처럼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강서버 리지키 ⓒ Andrew Ong/usopen.org

비너스의 기권으로 인한 부전승으로 쉽게 3라운드에 올라온 리지키는 이리나 팔코니(미국·79위)에게 52분만에 2:0(6-0 6-1)의 완승을 거두었다. 리지키는 서브 성공률의 난조에도 불구하고 남자 선수 수준의 강한 서브로 팔코니를 압박하였고, 약점인 수비에서 팔코니의 서브를 강한 리턴으로 반격하여 점수를 내면서 정신없이 몰아붙이며 역시 4라운드에 진출했다. 중국의 펑슈웨이(14위)는 독일의 줄리아 괴르게스(19위)를 2:0(6-4 7-6(1))로 이기면서 유일한 아시아 선수의 자존심을 지켰다.

 

<Player of the Day>

페네타가 "오늘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 Philip Hall/usopen.org

그리고 페네타를 오늘의 선수로 만들어 준 샤라포바 ⓒ Philip Hall/usopen.org

올해 US오픈에서는 남자부보다 여자부에서 이변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확실하게 빅4 체제가 굳어진 남자 테니스보다는 여자 테니스에서는 뚜렷한 강자가 없는 것이 이유가 아닌가 싶다. 프랑스오픈에서 우승했지만 윔블던에서 일찍 짐을 쌌던 중국의 리나는 더 일찍 짐을 싸는 일이 벌어졌는데 조금 배아프기는 하지만 중국의 희망을 넘어 아시아의 희망이었던 그녀의 부진이 안타깝다. 그러나 남녀 톱시드의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와 카롤리네 보스니아키(덴마크, a.k.a 캐롤라인 워즈니아키)는 가볍게 2회전에 진출했다.

대회 2일째 (8월 30일, 현지시간)

<남자부>

시드배정자 중에서 두 명의 탈락자 러시아의 미하일 유즈니(14위, 16번 시드)와 크로아티아의 이반 도딕(33위, 32번 시드)이 체면을 구겼지만 우승권에서는 다소 거리가 있는 선수들이라 큰 충격을 가져오지는 않았다.


조코비치의 백핸드 스트로크 ⓒ Julian Finney/Getty Images

No.1 조코비치는 W&S오픈에서의 어깨 부상이 염려스러웠지만 깔끔하게 서전을 승리로 장식하면서 올 시즌 세 번째 그랜드슬램을 위한 힘찬 발걸음을 내딛었다. 아일랜드의 코너 닐랜드(197위)를 맞이한 조코비치는 압도적인 경기를 펼치며 첫 세트를 6-0으로 따내고 2세트 역시 5-1로 앞서가고 있었는데 닐랜드가 경기를 포기하면서 손쉬운 승리를 거두었다. 닐랜드는 쨍쨍한 햇빛 아래서 경기를 하느라 몸에 무리가 왔는지 도중 갑자기 복통을 호소하며 기권했는데, 이미 경기가 일방적으로 기운 탓에 큰 의미는 없었지만 조코비치에게는 체력을 아낄 수 있는 행운이었다. 조코비치는 현재 컨디션은 좋은 상태이며 마지막 그랜드슬램인 US오픈에서 좋은 성적을 내어 현재까지 만족스러웠던 시즌을 잘 마무리하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을 말하기도.

나달의 백핸드 스트로크 ⓒ Patrick McDermott/Getty Images

추격자가 된 라파엘 나달(스페인·2위)은 세계랭킹 98위의 카자흐스탄의 안드레이 골루베프를 맞이하여 결과는 3:0이었지만 접전을 벌이며 힘겨운 승리를 따냈다. 나달의 경기내용은 썩 훌륭하지 않았지만 서브 최고 속도가 133mph(214km/h)에 달하는 등 서브 강도가 강력해진 모습이었다. 1세트는 나달의 뜻대로 경기가 잘 풀리며 6-3으로 쉽게 이겼지만, 2세트부터 골루베프가 서브 앤 발리를 앞세워 반격에 나서며 6-6으로 맞서다 타이브레이크 끝에 7-6(1)로 따냈다. 대개 팽팽한 접전이었던 세트를 마지막 순간에 내준 선수는 다음 세트에서 쉽게 무너지게 마련임에도 골루베프는 3세트에서도 분전하며 나달을 괴롭혔고, 나달은 간신히 7-5로 세트를 따냈다. 골루베프는 50%를 살짝 넘기는 낮은 서브 성공률과 나달의 4배에 가까운 57개의 실책(나달 16개)을 저지르며 자멸하고 말았다. 나달은 1라운드에서 고전한 것이 약이 될 것 같다며 애써 위안 삼는 모습.

세르비아와 쌍벽을 이루는 테니스 강국 스페인의 다비드 페레르(5위)는 러시아의 이고르 안드리에프를 맞이하여 첫 세트를 내주며 불안하였지만 연달아 세 세트를 쓸어담으며 3-1(2–6, 6–3, 6–0, 6–4)의 승리를 거두었다. 페레르는 나달에 가려 자국 내에서도 2인자에 그치고 있지만 큰 대회 우승 경력이 없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데 꾸준히 랭킹포인트를 모아서 떨어졌던 랭킹을 다시 끌어올렸다. 대진상 높은 시드배정자들이 이긴다고 가정했을 때 4라운드에서 앤디 로딕(미국·21위)과, 준결승에서 나달과 붙게 되는 독한 대진운이 변수로 작용할 전망. 미안하다 페레르, 너의 사진은 찾지 못했어.

벌처럼 날아 나비처럼 서브를 넣는 쏭가! ⓒ Nick Laham/Getty Images

윔블던에서 페더러를 때려눕힌(그리고 로저스컵에서도 한 번 또 이겼다) 조-윌프리드 송가(프랑스·11위)는 대만의 에이스 루옌순(82위)를 3:0(6-4 6-4 6-4)으로 제압하였고, 스타니슬라스 바브린카(스위스·14위), 페르난도 베르다스코(스페인·19위) 등의 시드배정자들도 2라운드에 진출했다. 배아프지만 루옌순은 남자부에서 유일한 아시아 선수였는데 안녕이다. 이제 시드를 배정받지 못할 만큼 순위권에서 밀려나버린 미국의 제임스 블레이크(63위)와 러시아의 니콜라이 다비덴코(39위), 다비드 날반디안(아르헨티나·76위)도 2라운드에 합류했다.

<여자부>

사랑에 빠진 워즈니아키의 백핸드 스트로크 ⓒ Mathew Stockman/Getty Images

골퍼 로리 맥길로이와 사랑에 빠진 워즈니아키는 누리아 랴고스테라 비베스(스페인·125위)를 맞아 2:0(6-3 6-1)로 깔끔하게 이기고 2라운드에 진출했다. 상대가 강하지 않았지만 다소 성공률이 높지 않았던 서브를 제외하고는 안정된 경기 운영을 하였지만, 공격력이 뛰어난 상대를 만났을 때도 이렇게 여유있는 경기를 할 수 있을지에 따라 워즈니아키의 성적이 달라질 것 같다. 어쩌면 사랑의 힘으로 첫 그랜드슬램 우승을 차지할지도 모르는 일이고.

아자렌카의 포어핸드 스트로크 ⓒ Julian Finney/Getty Images

괴성녀 빅토리아 아자렌카(벨라루스·5위)는 요한나 라르손(스웨덴·60위)를 2:0(6-1 6-3)으로 싱겁게 이기고 역시 2라운드에 진출했다. 경기 시간이 1시간 10분에 불과했을 정도로 기량의 차이가 보였던 경기. 아자렌카는 더블 폴트를 하나도 저지르지 않는 깔끔한 서브에 네트플레이에서 종종 실책을 저지르기는 했지만 안정된 수비력으로 상대의 실책을 자주 유도해내며 경기를 일방적인 흐름으로 끌고 갔다. 역시 파워풀한 선수들과의 경기에서도 밀리지 않느냐가 중요할 듯하다.

리나는 탈락했다 ⓒ Nick Laham/Getty Images

이 날의 최대 이변이라면 리나(8위)의 탈락이었다. 루마니아의 10대 소녀 시모나 할렙(53위)를 상대한 리나는 54개에 달하는 엄청난 실책을 저지르며 스스로 무너지고 말았다. 할렙은 가슴이 너무 커서 테니스 경기를 하기에 불편하다면서 34DD에서 34C로 축소 수술을 해서 화제를 모았던 선수인데 정말 수술을 한 이후 성적이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 최근 리나는 클레이코트 시즌에서 보여주었던 경기력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서양 선수들에게 힘에서 밀리고 시즌 후반으로 갈수록 체력적인 부분에서의 어려움을 겪는 것이 아닌가 싶다. 클레이코트에 비해 타구의 빠른 속도가 유지되는 잔디와 하드코트에서 경기하는 것도 어렵고, 고질적인 부상 부위인 오른 무릎도 피로를 느끼는 듯하다. 1세트를 2-6으로 쉽게 내준 리나는 2세트에서 팽팽한 접전을 이어갔으나 5-7로 지면서 짐을 싸게 되었다. 리나는 경기 후 "테니스는 자신에게 너무 터프한 것 같다, 모든 자신감을 잃었다" 는 인터뷰를 하여 최근 계속되는 부진으로 마음고생을 겪고 있음을 드러냈다.

'테니스는 힘이다'를 보여주는 서리나 윌리엄스 ⓒ Julian Finney/Getty Images

돌아온 그녀. 파워테니스의 달인 서리나 윌리엄스(미국·27위)는 리나와는 달리 최근의 상승세를 보여주며 대회 네 번째 우승을 위한 시동을 걸었다. 역시 10대 소녀인 세르비아의 보야나 요바노프스키(54위)를 맞이한 서리나는 서브에 고전하였지만 자신의 스타일인 그냥 힘으로 경기를 끝냈다. 2:0(6-1 6-1)의 완승을 거두는데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대회의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가 아닌가 싶은데, 나이도 있고 부상이 많은 탓에 계속 경기를 치르면서 몸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지가 변수가 될 것 같다.

아나 이바노비치는 부활할 수 있을까. 글쎄 잘 모르겠다 ⓒ Matthew Stockman/Getty Images

한없이 추락했다가 20위권 내에서 오르내리고 있는 아나 이바노비치(세르비아·19위)와 프란체스카 스키아보네(이탈리아·8위)도 승리를 거두었고, 전성기에서 다소 멀어졌지만 꾸준히 성적은 내고 있는 강호 옐레나 얀코비치(세르비아·12위)와 스베틀라나 쿠즈네초바(러시아·17위)등도 이름값을 하면서 2라운드에 진출했다.

이 날의 Player of the Day는 리나를 때려눕힌 할렙이 차지했다.

시모나 할렙 ⓒ Matthew Stockman/Getty Images

이제 2일째 리뷰를 마쳤는데 6일째 경기가 시작되고 있다. 가슴이 아프다. 더 서두르지 않으면.. 윽! 사진을 찾다가 멋진 것을 하나 발견해서 서비스로 올린다. 훗훗

경기장에서 찍은 뉴욕의 석양이란다. 뉴욕에 가고 싶어졌다 ⓒ Jared Wickerham/Getty Images

 

그리고 이것은 워즈니아키의 터키항공 광고. 이번에 중계를 보면서 참 자주 보는 광고다.

US오픈 2011 늦은 프리뷰

2011. 8. 31. 19:30

 

먹고 사는 문제로 인해 윔블던 이후 잠시 블로그를 버려둔지가 어느덧 두 달이 지나서 벌써 US오픈이 개막하였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테니스 경기가 한창 진행중일 때 잠시 여유가 생기는지라 짬짬이 경기 리뷰와 관련 소식을 전하고자 한다. 그동안 포스팅하지 않은 것들은 시간이 된다면 대회가 진행되면서 조금씩 올리도록 일단 노력은 해야겠다. (블로깅이 밥 먹여주는 것은 아니라서 장담은 할 수 없고..)

테니스팬들이라면 윔블던이 끝난 7월 초중반은 유럽에서 작은 클레이코트 대회들이 열리는데 상금의 규모는 물론 랭킹 포인트 역시 크지 않아 대개 윔블던에서 진을 뺀 정상급 선수들은 잠시 몸을 추스르는 시간이 되고, 다른 선수들이 상금과 포인트를 얻는 기회가 된다. 7월말부터 미국과 캐나다에서 본격적인 하드코트 시즌이 시작하게 되는데, 메이저대회 바로 밑에 위치한 큰 투어가 열리면서 상위권 선수들도 슬슬 대회에 나서며 US오픈을 위한 워밍업을 시작한다.

남자부에서 중요한 대회라고 한다면 ATP 마스터스 1000의 큰 대회인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리는 로저스컵과 미국 신시내티에서 열리는 W&S오픈인데 월드 넘버 원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와 앤디 머리(영국·4위)이 서로 나누어 타이틀을 가져갔다. 조코비치는 윔블던 우승 직후 데이비스컵에서 복식 경기에 참가한 것을 빼고는 오랜 휴식을 가지다 한 달만에 코트에 돌아와 로저스컵에 참가하여 우승했는데, 1993년 피트 샘프라스(미국) 이후 세계랭킹 1위에 오른 후 출전한 첫 ATP 토너먼트에서 우승한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 그러나 기세를 몰아 W&S오픈까지 노리던 조코비치는 결승에서 머리를 만나 고전하다가 기권하면서 시즌 두 번째 패배를 기록했다. 휴식 없이 연속으로 대회에 참가하면서 누적된 피로와 가벼운 어깨의 이상이 기권의 이유였는데 1세트를 먼저 내주며 출발이 좋지 않았던데다 2세트에서도 0-3으로 끌려가면서 경기를 이길 가능성이 적어지면서 US오픈을 바라보면서 일찌감치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다시 US오픈으로 돌아오면 이 대회는 같은 이름을 사용하는 골프의 메이저대회와 종종 혼동을 일으키기도 한다. 1881년에 첫 대회가 시작하여 1877년에 시작한 윔블던 다음의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대회이며 중간에 세계대전 등으로 중단되기도 해서 올해 130회째가 열린다. 1987년부터는 테니스 4대 메이저대회 중에서 그 해의 가장 마지막에 열리는 것으로 정해지면서 8월 말부터 9월 초중순 사이에 열리는 것이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 올해는 허리케인 아이린의 영향으로 미국이 피해를 보았지만 이 대회의 정상적인 진행에는 별 문제가 없다고 한다. 올해는 8월 29일부터 9월 11일(현지시간)까지 2주일간 경기가 진행되며, 대회에 앞서 23일부터 26일까지 4일간 퀄리파잉 매치가 진행되었다. 올해 총상금은 2370만 달러이고 남녀 단식 우승자는 180만 달러를 받게 되며, US오픈에 앞서 벌어지는 US오픈 시리즈 대회에서 얻은 포인트를 합산하여 최고 100만 달러의 보너스 상금을 준다. 이 보너스 상금의 주인공은 미국의 마디 피쉬(8위)와 서리나 윌리엄스(27위)다.

작년 대회에서 준우승에 그쳤던 조코비치는 생애 첫 US오픈 우승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이다. 올해 57승 2패의 경이적인 승률을 자랑하는 조코비치의 상승세에 비해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천재" 라파엘 나달(스페인·2위)과 "황제" 로저 페더러(스위스·3위)의 여름 성적표는 초라하였다. 나달은 로저스컵과 W&S오픈에서 각각 32강, 8강에서 탈락하였고, 페더러도 같은 대회에서 16강, 8강에서 침몰하며 US오픈 전망을 어둡게 하였다. 그러나 남자 테니스에서 여전히 빅4 체제가 무너지지 않고 있고, 5세트 경기에 긴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메이저대회의 특성과 큰 대회에서 경기를 하는 부담감 등을 고려할 때 여전히 이들이 조코비치의 가장 큰 견제 세력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전년도 우승자인 나달은 이번 대회에서 타이틀을 방어하지 못할 경우 조코비치와의 랭킹포인트 격차가 벌어지는 것은 물론 3위 페더러와의 격차도 줄어들며 연말 랭킹 2위를 위협받을 수 있는 상황이어서 이번 대회가 중요하다. 페더러에게는 이번 대회가 2003년부터 매년 메이저대회 타이틀을 한 개 이상 차지해온 기록을 이어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다. 큰 대회 울렁증에 시달리는 앤디 머리 역시도 이제는 어떤 가능성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점에서 모두가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라 치열한 접전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여자부는 디펜딩 챔피언 킴 클레이스테르스(벨기에·3위, a.k.a. 킴 클리스터스)가 불참한 가운데 세계랭킹이 27위까지 내려갔지만 뱅크 오브 웨스턴 클래식과 로저스컵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부활을 알린 서리나 윌리엄스가 여전히 강력한 우승후보이며, 들쑥날쑥한 경기력을 보이면서도 W&S오픈 우승을 차지한 마리아 샤라포바(러시아·4위)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세계랭킹은 굳건한 1위이지만 큰 대회 울렁증을 극복하지 못하며 디나라 사피나(러시아)의 재림이 아닌가 싶기도 한 카롤리네 보스니아키(덴마크, a.k.a. 캐롤라인 워즈니아키)의 활약은 두 우승 후보의 행보에 변수가 될 수도 있다. 대회 개막 직전의 뉴 헤이븐 오픈에서 우승하면서 상승세를 타고 있지만 올해 열린 메이저대회마다 전초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고서도 일찌감치 물을 먹었던 전례가 있는지라 큰 의미는 없는 듯하다. 오히려 로저스컵과 W&S오픈 2라운드 탈락이라는 초라한 성적표 덕분에 톱시드를 받아 유리한 대진임에도 큰 기대는 되지 않는다. 윔블던 여왕 페트라 크비토바(체코·7위)는 한 달 휴식 후 참가한 로저스컵과 W&S오픈에서 연속으로 16강에서 탈락하면서 페이스가 많이 떨어져 있어 역시 전망이 밝지는 않다고 적으려고 했는데 29일(현지시간)에 열린 1라운드에서 가볍게 탈락해버렸다. 이미 노쇠한 기미가 역력한 비너스 윌리엄스는 랭킹이 36위까지 떨어지고 시드 배정조차 받지 못했지만 관록과 자국에서 경기가 치르는 홈의 이점을 안고 있어 우승은 어렵더라도 우승을 노리는 선수들의 발목을 붙들고 늘어지며 물귀신 놀이를 할 수 있다.

프리뷰라면 대회 시작 전에 글을 썼어야 하는데 조금 늦었지만 사진 몇 장과 함께 간략하게 마무리하고 이어지는 글에서 29일과 30일에 열린 경기 결과를 전하도록 하겠다.

서브 연습을 하고 있는 로저 페더러 ⓒ Andrew Ong/usopen.org

큰 대회 울렁증이라면 역시 빠질 수 없는 앤디 머리 ⓒ Phil Hall/usopen.org

나달은 10살 이하의 어린이들을 상대로 테니스 클리닉을 열었다고 ⓒ Jennifer Pottheiser/usopen.org


 



1936년 브래드 페리의 우승 이후 영국인들은 그 후로 자국 선수들이 윔블던 트로피를 들어올리지 못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불행히도 1938년 버니 오스틴의 결승전 패배 이후 70년이 넘도록 영국 선수들은 윔블던 결승조차 진출하지 못했다.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영국의 에이스였던 팀 헨만도 네 번이나 준결승에서 좌절을 맛보아야 했고 헨만의 은퇴 후 그들의 염원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앤디 머리(24·영국, 세계 4위, a.k.a 앤디 머레이)를 향해 있었다. 그런 홈팬들의 열렬한 성원을 입고 경기에 나섰지만 머리는 2년 연속 라파엘 나달(25·스페인, 세계 1위)에게 4강에서 패하며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윔블던 2연패, 통산 3번째 우승에 도전하는 라파엘 나달 ⓒ AELTC / T. Hindley


대회 11일째 (7월 1일)

남자 4강 제 2경기 라파엘 나달 vs 앤디 머리 (센터 코트)

디펜딩 챔피언 라파엘 나달의 입장 ⓒ AELTC / N. Tingle

영국의 희망 앤디 머리의 입장 ⓒ AELTC / N. Tingle

영국 홈팬들의 염원을 안고 경기에 나선 머리는 1세트에서 정말 그 꿈을 이룰 것만 같은 경기를 하였다. 반면에 나달은 마치 예열이 덜 된 듯하였다. 머리는 서브 에이스 두 개를 앞세워 첫 게임을 기분 좋게 시작하며 앞서 나갔다. 나달은 아직 평소같이 날카롭지 못한 모습이었지만 특유의 톱 스핀 스트로크를 앞세워 머리를 베이스라인에 묶어 둔 채 경기를 하며 팽팽한 승부를 이어갔다. 나달은 심판이 친 크로스 샷을 아웃으로 판정하였는데 이에 대한 챌린지를 하지 않았다. 이어진 플레이에서 나달이 득점을 했는데, 챌린지를 했더라면 머리의 서브 게임을 브레이크할 수 있었는데 이 게임은 머리의 승리로 끝이 났다. 머리는 힙에 이상을 느껴 트레이너를 불렀는데, 별 이상이 없는지 다시 경기에 임했다. 두 선수는 5-6까지 서브 게임을 잘 지키며 팽팽한 승부를 이어갔는데, 나달의 서브 게임을 머리가 처음이자 마지막 브레이크를 하며 5-7로 세트를 따냈다. 이번 만큼은 머리가 나달을 이길 가능성이 높다고 기대하였던 영국인들의 바람이 이루어지는 듯했다.

나달의 강력한 포어핸드 스트로크 ⓒ AELTC / N. Tingle

그러나 2세트부터 영국인들에게 악몽같은 일들이 펼쳐졌다. 머리는 1-2로 앞선 상황에서 나달의 서브 게임을 다시 챙길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15-30의 리드가 15-40으로 변해야 할 순간 머리가 친 포어핸드 시터가 사이드라인을 벗어나며 30-30이 되면서 나달이 쉽게 게임을 마무리지었다. 위기 뒤에 바로 기회가 오는 법이라고 다음 게임에서 바로 나달이 경기에서 첫 번째 브레이크에 성공하며 리드를 잡았다. 스코어는 팽팽해도 랠리를 주도하는 것은 머리였는데 30-30에서 더블 폴트를 기록하면서 나달에게 브레이크 포인트를 주었고, 나달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게임을 따냈다. 이어진 게임에서는 감을 잡기 시작한 나달의 스트로크가 머리의 좌우를 흔들며 괴롭히며 4-2로 리드하였다. 머리의 부진 역시 갑작스러운 반전에 한 몫을 하였다. 머리는 첫 서브가 잘 들어가지 않으며 고전하기 시작했고, 스트로크는 구석으로 향하지 않으면서 두 번째 브레이크를 당하고 말았다. 나달은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는 선수였다. 기세를 몰아 마지막 게임을 따내며 36분 만에 2세트를 끝냈다.

나달의 백핸드 ⓒ AELTC / T. Hindley

3세트에서 머리는 완전히 경기 리듬을 잃어버렸다. 여전히 첫 서브가 말을 듣지 않으며 고전했고, 포어핸드 스트로크는 전혀 들어가지 않으며 첫 서브 게임을 내주고 말았다. 반대로 나달은 완전히 자신의 리듬을 찾아 경기를 유리하게 전개하였다. 서브 에이스 세 개를 기록하며 4-2로 달아났고, 다시 머리의 서브 게임을 브레이크하면서 3세트의 승부를 결정지었다. 나달이 이어진 서브 게임을 지키며 다시 6-2로 세트를 따냈다.

이기고 있는 나달은 미끄러지면서도 여유가 있다 ⓒ AELTC / N. Tingle

4세트는 마지막에 몰린 머리의 분발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러나 나달은 첫 게임부터 브레이크하면서 일말의 희망을 갖던 영국인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머리의 서브는 여전히 말을 듣지 않았고, 힘없는 두 번째 서브는 나달에게 밥을 갖다 주는 셈이었다. 머리는 첫 포인트를 내준 후 오래간만에 터진 서브 에이스로 만회하는 듯하였지만 연속으로 스매시와 포어핸드를 네트에 꽂으며 브레이크 포인트를 헌납하였고, 나달은 머리의 성의에 브레이크로 보답하였다. 이 브레이크 하나를 끝내 극복하지 못한 머리는 6-4로 패하게 된다. 나달의 3:1(5-7 6-2 6-2 6-4) 승리.

경기 요약 (출처 : 윔블던 공식 사이트)

기록을 보면 머리의 첫 서브 성공률은 58%인데, 1세트에서는 66%였던 서브 성공률이 2,3세트를 거치며 50% 이하로 내려갔다가 다시 4세트 중반 이후의 선전으로 간신히 조금 올랐다. 머리는 나달보다 강한 서브를 가지고 있음에도 자신의 장점을 살리지 못하며 나달에게 많은 반격의 기회를 주었다. 머리의 실책이 39개로 단 7개만을 기록한 나달보다 다섯 배 이상 많았던 것도 경기를 결코 유리하게 가져갈 수 없는 원인이 되었다. 경기 리뷰를 하면서 쓰기는 했지만 2세트부터는 나달의 일방적인 페이스로 경기가 진행되어 박진감을 느낄 수 없는 지루한 경기가 되었다.

풀죽은 머리의 인터뷰 모습 ⓒ AELTC / N. Tingle

나달은 승리와 함께 결승에 진출하게 되었음에도 월요일에 발표되는 ATP 랭킹에서 노박 조코비치에게 1위 자리를 내어주게 되었다. 세계 1위는 나달이 로저 페더러의 4년 6개월 간의 장기 집권을 무너뜨린 후 다시 한 번씩 주고 받으며 7년 가까이 두 사람만이 차지하던 자리였으나, 조코비치가 그 성역을 깨뜨렸다. 나달이 우승으로 그 아쉬움을 달랠 수 있을지 조코비치가 새로운 월드 넘버 원이 된 상승세를 이어갈 수 있을지 두 선수의 팽팽한 접전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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