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리프트에서 내린 다음 이번에는 신사를 지나지 않고 큰 길을 따라 슬슬 내려왔다. 큰 길이라고 해봤자 국도 178호선 2차선 도로와 그 옆의 인도에 불과하지만. 일본은 한국과 같은 시간대를 쓰고 있는데 사실 이 시간대가 도쿄를 기준으로 한 시간대여서 적지 않은 차이를 느낄 수가 있다. 홋카이도와 같이 위도가 차이나는 경우는 제외하더라도 오사카나 교토와 같은 간사이 지방만 하더라도 서울보다 30분 정도 해가 빨리 뜨고 빨리 진다. 이는 도쿄 쪽으로 갈수록 더 심해진다. 그래서 한국에서 해가 18시 정도에 진다고 해서 일본에서도 같은 시간에 해가 지겠거니 하다가는 낭패를 보게 된다. 그 대표적인 케이스가 하루 전에 겪었던 어둠 속에서 헤매야 했던 와슈잔 전망대의 일이기도 하다. 혹시라도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서 친절히 링크를 하자면 "온천에 갔다가 막차를 놓치다!"편을 참조해 주시기를 바라는 바임.

길가에 있는 기념품 가게에서도 마타노조키의 모습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것 같다.
기념품을 사야 사진을 찍을 수 있는지, 돈을 내고 찍는지는 잘 모르겠다.

정확한 기상 정보를 찾아보지 않았지만 경험에 의해 대략 17시 30분에 일몰로 어두워진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다 이번에도 전철을 놓쳐서 오사카 시내를 걸어다니며 헤맬 수는 없는 일이니 시간 관리를 잘 해야한다. 교토까지 한 번에 가는 특급 하시다테 열차는 18시 46분이 막차라는 것은 알고 있는데, 그보다 한 시간 전에 이미 어두워지기 때문에 굳이 이 곳에서 있을 이유가 없는지라 가능하다면 더 일찍 출발하는 열차를 타는 편이 낫다. 일본 역시 밤문화가 발달한 나라이기는 하지만 한국에는 비할 바가 못 되고, 이런 관광지라면 밤이 되면 정말 할 것이 없다. 각설하고 후추역에서 내려와서 관광선을 타고 왔던 이치노미야역에 왔을 때 대략 16시 20분이었다.

이미 해의 위치가 일몰이 머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내가 가야하는 길은 바로 저 소나무숲이다.

자전거를 빌리려고 왔는데 남아있는 자전거는 마마챠리 한 대밖에 없다. 어차피 경사가 험한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서 굳이 기어가 필요하지는 않지만 자전거가 작고 낮아서 타면 더 힘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다시 배를 타고 돌아가는 방법도 있지만, 소나무숲을 그냥 지나치기는 아쉬워서 혹시라도 자전거를 반납하는 사람이 있나 잠시 주변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도 없다.ㅠ.ㅠ 아무리 그래도 이 마마챠리는 나의 체격에 맞지 않는 것 같아서 단념하고 그냥 두 다리에 미안하지만 걸어가기로 마음을 바꾼다.

나도 저런 자전거를 타고 싶다.

여기저기 자전거를 빌려주는 곳은 많은데 패스로 이용가능한 회사 외의 다른 곳은 돈을 주고 빌려야 해서 중간중간 망설이기도 했는데 환전을 안 한 바람에 주머니 사정이 상당히 좋지 않아서 몸을 고생시키는 수밖에 없다. 삼림욕하는 셈치고 슬슬 걸어가면 되지 않겠나.

여기서부터 아마노하시다테 소나무숲을 지나는 길이 시작된다. 여기서부터 125cc이상의 원동기를 포함한 자동차는 통행이 금지된다.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이 있을까 싶었는데 걷는 도중에는 보지 못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당연히 많다.

그냥 이렇게 길 사이로 소나무들이 있고, 개중에는 특이한 소나무들이 있어서 그런 소나무들은 이름표와 함께 설명을 해놓기도 하였다.

월척을 낚은 낚시꾼이 기분좋게 걸어가고 있다.

나무를 보는 눈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유달리 눈에 띄는 녀석이 있어서 사진을 찍어봤다.

카이센쿄(廻旋橋)까지 2.1km 남았다고 한다. 그럼 역까지는 대충 3km가 안 되고, 40분 정도면 충분히 갈 수 있을 듯하다.

V자 모양의 소나무. 이름은 나가요시노마츠라고 되어 있네.

석양은 아름답지만 안타깝게도 즐길 여유가 없구나.

이럴 줄 알았으면 아마노하시다테에서 하루 묵어가는 것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북쪽에 있는 이네에도 가고 싶은데 미리 오사카에서 머물기로 결정하고 숙박비를 다 지불해서 별 수가 없다. 아~

키가 커서 사진에 다 들어오지 않는 이 나무의 이름은 잘 모르겠다.

킨키자연보도. 아마노하시다테역이 2km 남았다고 한다.

하고로모(羽衣)의 소나무다.

아마노하시다테는 모래 퇴적층에 소나무들이 자라서 지금처럼 되었는데, 소나무재선충 때문에 소나무들이 멸종될 위기에 빠졌다가 최근에는 해충이 소강 상태여서 위기를 넘긴 상태라고 한다. 그러나 퇴적과 침식 작용의 균형이 무너져 이 소나무들이 심어져 있는 곳의 면적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어 침식을 방지하는데 애를 쓰고 있다고 한다.

부부소나무란다. 좋겠다.

윗부분.

천관 소나무다. 가치가 천관이라는건가.

1km를 더 걸어왔군.

 코죠로노마츠(小女郎の松)민화 하시다테코죠로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오테우에노마츠(御手植の松)
타이쇼(大正) 5년, 메이지 천황이 황태자일 때 심었다는 소나무다.

중간중간 이 연인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간다.

걷다보면 이들을 앞질러 가다가도 중간중간 멈춰서 사진 찍고 주변을 둘러보다보니 뒤쳐지고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된다. 저 아가씨는 신발도 걷기에 편하지 않아보이는데 잘 걷는다. 

이제 역이 1km 남았다.

원래 모래가 쌓여 만들어진 지형인지라 소나무숲 양쪽으로 백사장이 있고 해수욕장도 있다. 다만, 가을인지라 해수욕장은 문을 닫고 있는 상태라고.

멀리 보이는 백사장 끝에서 노는 젊은 친구들이 몇 명 있기는 했다.

지혜의 소나무.

이제 거의 다 왔다. 다리 두 번 건너면 몬쥬에 도착한다.

'특별명승 아마노하시다테' 라고 한다.

'일본의 길 100선' 어쩌고 뭐라뭐라 써 있는데 귀찮아서 안 읽어봤다.

일본삼경비

이 다리를 건너면 점심을 먹고 관광선을 탔던 몬쥬다.

사람이 북적이던 선착장도 조용하다.

점심을 먹었던 식당이 오른쪽에 보이고, 아마노하시다테역으로 가야하니 이 방향이 아닌 반대쪽으로 간다.

역으로 향하는 길은 이미 어둠이 깔리고 있다.

역에 도착했다.

오사카 시내에서 오전 11시가 못 되어서 출발을 했는데 벌써 오후 1시 40분이 다 되어가니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그나마 환승 대기 시간이 짧아서 대충 세 시간 정도 걸린 것 같은데, 돌아갈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끔찍해지는군.

헬로키티는 참 바쁘다. 총무성 행정상담 안내 포스터에도 등장하다니.
산리오는 고양이도 아닌 저 캐릭터 하나로 얼마나 울궈먹는거냐.

역에서 나가려다가 이 사진 하나 찍고 가려고 기다렸다.
뭔가 이 지역에서 먹어주는 캐릭터인가 해서 찍었는데 그다지 존재감은 없는 듯하다.

관광지라면 어디에나 있는 상점가. 기념품, 술과 음식을 파는 가게들이 모여 있다.

길을 따라 상점가를 지나서 조금 더 걸어갔는데 페리와 모터보트 선착장이 있고 그 앞으로는 바다가 있어 더 이상 갈 수가 없다. 아마노하시다테라고 불리는 그 소나무밭으로 가기 위해서는 다른 길로 가야 하는 것 같다. 다시 돌아와서 주변을 살펴보니 리프트와 모노레일을 타는 곳이 근처에 있는데 아마노하시다테는 위에서 내려보는 것이 제맛이라고 해서 사람들이 가는 방향으로 철로를 한 번 건너서 따라갔다. 시설의 이름은 '아마노하시다테 뷰랜드' 라고 하는데,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매표소에 패스를 보여주고 여기서 타는 것이 맞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매표소 직원이 지도를 하나 꺼내서 보여주면서 여기는 다른 회사라면서 패스로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은 저 건너편 카사마츠(笠松)에 있는 리프트와 케이블카라고 설명해준다. 지도를 가져가도 되냐고 하니 그래도 된다고 해서 지도를 챙겨서 대충 지리를 파악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역 안에 있는 관광안내소에 물어보고 올 것을 그랬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아마노하시다테도 일단 먹고 나서 보는거다. 일어나서 호텔에서 커피 한 잔 마신 것이 전부라 배가 고픈데 식당 여기저기를 살펴보다가 입간판에 있는 사진에 꽂혀 바로 들어갔다.

카이센동(海鮮丼). 새우에 연어에 가리비에 연어알에 맛있겠다.

사진과 매우 흡사한 편이다. 이타다키마스~!

야호~

시원한 나마비루 한 모금 마시고 식사 시작하여 순식간에 끝을 낸 다음 남은 맥주를 다 비우고 일어선다. 밥 한 그릇과 맥주 한 잔의 값이 2,000엔이나 하는군. 아껴두었던 5,000엔짜리 지폐를 여기서 쓰게 된다. 카이센동이 1,450엔이었고, 생맥주 중사이즈가 550엔. 역시나 이 곳은 관광지였음. ㅠ.ㅠ 그래도 맛있게 먹었으니 기분좋게 나온다.

레스토랑 몬쥬(れすとらん文珠)라는 곳이었음.

배가 부르고 하니 갈 때는 페리를 타고 올 때는 자전거를 타고 오면 될 것 같아서 선착장으로 간다. 야밤 행군의 피로가 풀리지 않아서 많이 걷는 것은 피하는게 좋겠지 싶다. 그렇게 걸었는데도 아무렇지 않고 멀쩡한데 그래서 더 불안하네.

이틀 후면 태풍이 온다는데 날씨가 좋다. 썬크림을 가져왔어야 하는데..

관광선 타는 곳이다.

이번에는 이 곳에서 배를 타는 것이 맞다고 확신하고 직원 아줌마에게 패스를 보여주며 물어봤다. 승차권을 살 필요 없이 그냥 패스를 들고 타라고 하는데 배 출발시간은 3시니까 조금 기다리라고 한다. 어설프게 야매로 배운 일본어가 어느 정도 통하고 있다. 공항이라든가 큰 도시일수록 역이나 관광시설 직원들이 영어를 조금씩 하지만, 이런 곳에서는 일본어를 못하면 손짓 발짓을 해가면서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 그래서 어떻게든 일본어를 공부하려고 하는데 이제 머리에 잘 안 들어가고 공부도 하기 싫고 그렇네. 패스가 있으면 여기서 자전거를 공짜로 빌릴 수 있는데 돌아올 때 빌리면 되겠지라고 생각을 했다...

스릴을 즐기는 사람은 여기의 모터보트를 추천. 관광선보다 훨씬 빠르다.

원래 요금은 카사마츠까지 왕복이 1,500엔이다. 이거 한 번 왕복하면 패스 가격의 대부분을 뽑는 셈이네.

배가 도착했다.

사람들이 내리고 있어서 기다리고 있다.

모터보트는 사람이 타면 그냥 출발한다.

저 멀리 산 위에 있는 것이 처음에 잘못 갔던 아마노하시다테 뷰랜드.

갈매기 먹이를 팔고 있다. 새우깡의 원조인 카루비의 캇파 에비센.

갈매기들에게 새우과자 던져주는 것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똑같나보다. 100엔을 앞에 있는 통에 넣고 과자 한 봉지 가져가면 되는데, 이번 여행에서는 군것질은 최대한 삼가야 하는 형편이라 어쩔 수 없네. 새우과자 저도 참 좋아하는데요. 돈이 없으니 다음에 먹어보겠습니다. ㅋ 참고로 새우깡이 표절인가에 대해서는 N사에서는 공식적으로 인정한 바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캇파 에비센이 출시 50주년을 맞았으니, 1971년에 처음 나온 새우깡보다 먼저 만들어졌다는 이야기 그 다음은 알아서 생각하시기를..

1층 선실은 텅텅 비었다.
2층 갑판 위로 올라가자.

아마노하시다테를 오른쪽에 두고 저 끝까지 간다.

걸어서 아마노하시다테에 가려면 저 다리를 건너가면 된다.

그리고 한 번 더 다리를 건너야 한다.

저렇게 바다 사이에 이어진 곳에 소나무들이 있는 곳이 아마노하시다테

카사마츠 방면인 이치노미야 선착장까지 가는 사람은 고작 다섯 명.
모녀와 연인, 그리고 여기 이상한 녀석 하나 추가요.

갈매기들이 날아든다.
위의 사진을 보면 오른쪽의 여자가 새우과자를 들고 있다.

나도 날개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제 과자 투척은 다 끝났다.

저 소나무길이 생각보다 길다.

멀리 카사마츠공원의 리프트와 케이블카가 보인다.

이치노미야역에 도착했다.

탔던 배는 카모메 11호였다. 배 이름도 갈매기구나.

선착장 부근에서 할 일은 없고 케이블카가 되었든 리프트가 되었든 아무 것이나 타러 간다. 벌써 오후 3시가 넘었으니 주어진 시간이 딱 3시간 남짓이기도 하거니와, 일본은 한국보다 해가 빨리 지기 때문에 시간을 허비하다가는 여기서 어둠을 맞이하면 전날의 비극을 다시 경험할 지도 모르는 일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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