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기노사키온천 가는 길

2014. 11. 19. 05:28


12일 일요일은 3연휴의 두번째 날로 관광업계에서 바라는 황금연휴 기간인데, 태풍이 정말 오고야 말았다. 가을에 태풍이 오다니.. 악! 오사카를 비롯한 긴키 지역은 태풍의 영향권에 아직 접어든 상태는 아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예정했던 여행 계획을 취소하면서 8,9,10일 숙박을 예약하고 11일 밤은 미처 예약을 못하고 12일만 간신히 길 건너에 있는 역시 싸구려 호텔에 예약을 한 상태였다. 그것도 일본 사이트가 아닌 아고다에 있던 마지막 간신히 하나를 예약했다. 11일에는 어떻게 할 지 도착한 이후부터 계속 고민을 하다가 그나마 사람이 없는 역시 기타킨키의 하마사카나 카스미에서 하룻밤 묵고 돗토리에 들렀다 올 생각도 했는데, 미리 예약했던 사람들이 취소를 한 바람에 운 좋게 하루를 묵던 곳에서 더 있을 수 있었고, 귀국 전날인 12일만 같은 동네의 길 건너편에서 하루 묵고 집으로 가는 계획이 완성되어 있었다. 덕분에 11일은 카스미에 가서 유명한 카스미가니(香住ガニ.카스미 게)를 먹으려던 계획을 대신해 아마노하시다테에 다녀오고, 12일에 기노사키온천에 다녀오는 힐링 여행 일정으로 바꾸었다. 인터넷으로 예약만 해놓은 상태였다면 12일 역시 같은 곳에서 하루 더 묵을 수 있었는데, 아고다에서 예약을 하고 결제까지 해버린 뒤여서 취소할 수도 없고, 조금 귀찮은 상황을 감수하는 수밖에. 오사카의 싸구려 호텔보다 카스미의 민숙이 더 비싼지라 돈이 부족했던 상황에서 오히려 잘 되었다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 어쩔 수 없이 인터넷카페를 전전해야 하는 상황을 피할 수 있어서 다행이기는 하지만 아쉬운 마음도 들고.

날이 맑았던 어제와는 달리 비가 내리지는 않지만 구름이 낀 날씨여서 몸도 찌뿌둥한 것이 아침이 상쾌하지 않다. 낮에는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지만, 밤에 들어가서는 넷북을 열고 회사 일을 살펴야 하는지라 잠이 부족하기도 하고, 이틀 연속으로 많이 걷고 열차에 오래 앉아 있었더니 적지 않은 피로가 쌓인 듯한 느낌. 어른들 말씀처럼 하루하루가 다르다는 느낌은 아니지만 피로 회복이 늦어지는 것은 사실인 듯하다.


오사카칸조센을 타고 텐노지역에 도착.

역시 시작은 텐노지역으로 가서 특급 하루카를 타는 것이다. 산인혼센(山陰本線)의 시작이 교토니까 교토까지 가는거다. 특급열차를 타도 기노사키온천까지밖에 못 가기는 하지만 온천은 즐거우니까. 이 때만 해도 마음이 바뀔 지는 몰랐는데..


건너편에 반대방향으로 가는 소토마와리(外回り.한국식으로는 외선) 열차가 역시 정차중이다.


일요일이라고 철덕 아저씨가 커다란 렌즈가 달린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고 있다. 부럽다~ 카메라가.

자주 오면서도 그냥 지나쳤던 역 명판이나 찍어본다.

동일본대지진 이후 오사카에 자주 가는 편이지만 초심자라면 복잡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노선들이다.

위에 있는 야마토지카이소쿠(大和路快速)는 오사카-나라 방면, 키슈지카이소쿠(紀州路快速)는 오사카-와카야마 방면의 열차, JR난바에 가는 보통열차는 아마도 나라 쪽에서 오는 열차겠지. 들어오는 열차도 가지각색이지만 타는 곳이 열차에 따라 달라지니까 헤매기 쉽다. 대충 구분은 할 수 있는데 정신을 놓고 있다가 종종 실수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열차들은 내가 탈 열차가 아니라는 말씀.

특급 하루카를 탈거다. 키슈지쾌속열차가 늦어서 특급열차도 지연되나 싶었는데 그렇지는 않은 모양.
야! 그런데 5분이나 늦었는데 출발하지 않고 있잖아.

갑자기 4분 지연으로 말을 바꾸고 있다. 5분이라고!!

하루카는 제 시간에 왔습니다!!! 이래서 비싼 돈을 주고 특급열차를 타는가 BoA요.

신오사카역. 태풍 19호 접근에 따른 안내를 하는데.. 모르겠다!!

다음은 교토.

산토리 교토 공장을 지난다.

밤이 되면 여기에 열차 수십 대가 들어오겠지.

드디어 낡은 밥통열차가 걸렸구나.

시간이 약 18분 정도 남아 있어서 일단 역에서 늦은 아침 식사를 해결하기로 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어. 교토역 30번, 31번 승차홈 사이에 우동과 소바를 파는 가게가 있는데 지난밤에 이 앞에서 저녁을 먹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동전이 부족해서 그냥 오사카로 갔는데, 이번에는 부족한 동전 대신 잔액이 조금 남아 있는 스이카로 결제를 했다. 지난달에 삿포로에서 3,000엔 충전해서 공항에 가고, 과자를 산 후에 조금 남은 잔액이 있었다.


카츠카레동과 미니우동 세트.

맛은 뭐 잘 모르겠다. 먹을 만한 그런 정도랄까.

원래 음식 가지고 장난치는 것 별로 안 좋아해서 카레돈까스 같은 것은 잘 안 먹는데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음.

이것은 심플한 우동.

먹고 나면 잠이 잘 올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간밤에 규동으로도 부족해서 마트에서 니기리즈시 12개짜리와 삿포로 맥주를 사서 잘 먹었는데 그래도 배가 고팠는지 순식간에 뚝딱하고 열차를 타러 간다. 아직 2분 정도 남은 것 같다. 먹는데 10분 정도 걸린 모양이네.

출발을 앞두고 차장이 문을 닫을 준비를 하고 있다.


열차는 확실히 별로다. 특히 화장실은 여자라면 참 불편하게 생겼다.

니조역 지나고 나니까 그 다음에는 그냥 산이다.

왠지 진행방향 오른쪽에 앉고 싶어졌다.

차장이 아직 검표를 안 해서 카메오카(亀岡)역에서부터 앞 칸으로 이동해서 오른쪽 좌석에 착석. 여기는 소노베(園部)역.

졸다보니 어느새 복지산(福知山. 일본식 발음은 후쿠치야마)역. 여기를 다시 오다니..

반대쪽에 소학교 저학년 정도로 보이는 어린 아이와 할아버지가 함께 열차를 타고 후쿠치야마역에서 내리는데 승차권인지 특급권인지는 모르겠는데 둘 중 하나를 잃어버린 모양. 차장이 검표까지 했으니 두 장을 모두 가지고 있었을 텐데 화장실이나 어디 좌석 틈바구니로 흘려버린 모양. 결국 못 찾고 내렸는데 요금을 더 내지는 않았는지 모르겠다. 열차를 타면 표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저 코노토리는 어제 내가 아마노하시다테에 갈 때 탔던 그 열차다. 그리고 지금 탄 열차는 그 때 보았던 기노사키 열차고.


후쿠치야마에서 토요오카까지는 JR의 산인혼센과 KTR의 미야즈센이 있는데 열차 시간이 띄엄띄엄한 것도 있겠지만 KTR의 역은 황량하기 이를 데 없다. 이래서야 망하지 않고 배기겠느냐 싶은 생각이 든다.

후쿠치야마부터 계속 단선이기 때문에 역에서 교행을 하느라 열차가 서 있다. 역시 특급열차가 우선이겠지.

눈에 보이는 것은 산과 들판.

토요오카역. 저 열차는 빨간 색인 것을 보건대 KTR에서 요즘 홍보하는 탄고 아카마츠 열차인 것 같다.

신오사카발 기노사키온천행 특급열차의 이름 코노토리는 '황새'라는 뜻인데, 토요오카를 지나서 마루야마가와를 지나다 종종 황새를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날은 황새가 보이지 아니한다. 황새는 국제적으로 멸종 위기에 처한 귀한 새로 토요오카시에서는 이 황새 복원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런 노력 덕분인지 종종 황새들이 보이기도 하고 열차 이름도 황새라고 지은 것 같다.

키타킨키 빅X 네트워크를 여기서도 홍보를 하고 있다. 좀 안쓰럽기도 한데..

주말이나 연휴 기간에는 코노토리나 기노사키 열차의 자유석이 바글바글해서 빈 자리가 별로 없는데 태풍 앞에서 모든 것이 무너지고 말았다. 기노사키온천까지 가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자리가 텅텅 빈 채로 간다.

종점인 기노사키온천에 도착.

기노사키온천은 오사카, 교토에서 세 시간 정도 걸리는 가깝다고 할 수 없는 거리에 있는데(비싸기는 하지만 신칸센을 타면 두 시간 반에 도쿄나 후쿠오카에 갈 수도 있으니), 유서깊은 온천인지라 외국인보다 현지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그러나.. 태풍 때문에 썰렁하다.


타고 온 열차는 이제 코노토리로 이름을 바꾸고 신오사카로 간단다.

온천욕을 즐기고 나오면 시간이 남을 것 같으니 카스미까지 갔다가 온 다음에 온천을 하고 돌아가기로 한다. 기노사키온천에 처음 오는 것이 아니라서 온천가를 돌아보며 구경할 필요는 없고 소토유 한두 군데 들어가서 몸만 담그고 나오면 되는지라. 돌아오는 열차 시간이 조금 애매하기는 한데 18시 18분에 신오사카 행 코노토리 마지막 열차가 있으니 오후 4시 즈음해서 이 곳에 돌아오면 될 것 같다. 정신을 어디에 팔아먹고 다니는지 매표소에서 열차 시각표 확인하고 나오다가 투명한 유리창벽에 들이박았다. 터벅터벅 걸었으니 다행이지 서둘러 달리기라도 했으면 대형참사가 벌어질 뻔했네. 안에 있던 역무원들이 볼까 싶어 서둘러 도망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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