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아마루베 철교

2015. 2. 21. 01:46

시간이 많지는 않았지만 아마루베역에 내린 것은 특별히 역 근처의 명소를 찾아가기 위한 것은 아니고 그냥 아마루베역 구경을 하기 위해서였다. 철도를 정말로 좋아하는 분들의 여행기를 보면서 아마루베역에 얼마 전까지 역사가 오래된 아마루베 철교가 있었고, 이 철교 위를 지나던 열차가 강풍으로 인해 다리 밑으로 추락하면서 인명 사고가 발생했으며, 이후 그 철교가 철거되었고, 새로운 교량이 건설되었다는 사실을 접하게 되었다. 인터넷에서 본 사진으로는 새 교량이 깔끔한 모습이기는 하지만, 예전의 철교의 모습이 더 정감어린 것이 아쉽기도. 기노사키온천에서 카스미까지, 그리고 카스미에서 아마루베까지 오는 과정에서 보이듯이 산악지대가 해안선에 접한 접근성이 좋지 않은 지형에 그렇다고 내세울만한 관광지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1~2시간에 한 대 정도 밖에 열차가 없고, 그것도 운전사 혼자 운행하는 원맨열차가 돌아다니는 곳이다.

지금은 철거된 예전의 아마루베철교.
(사진의 출처는 : 위키피디아 일본어)
저 위로 열차가 지나다녔다고 한다.

아마루베 철교는 약 100여년 전인 1912년에 3년 여 간의 공사 기간을 거쳐 건설된 교량이라고 한다. 산인혼센(山陰本線.산인본선)의 미개통 구간이었던 와다야마-요나고 구간을 건설시 이 지역의 산악 지형을 뚫고 선로를 건설하자니 당시의 기술로는 어려운 터널 굴착을 피하기 위하여 우회하여 교량을 짓기로 하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노사키온천에서 출발해서 아마루베역까지 오는 동안 산악, 터널 구간이 대부분이었다.

아마루베철교 열차 추락 사고에 대해 잠시 살펴보자면, 1986년 12월 28일 오후 1시 경에 카스미에서 하마사카(浜坂)로 가던 특급열차 미야비가 동해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밀려 교량 아래로 추락했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으로 회송 중인 빈 열차여서 차내에는 운전사와 차장, 그리고 차내 판매원만 타고 있어서 대형 참사는 모면할 수 있었지만, 열차가 교량 아래에 있던 공장을 덮치면서 공장 직원 5명과 차장이 사망하고, 차내 판매원 3명과 공장 직원 3명이 크게 다쳤다고 한다. 열차가 탈선한 적은 몇 번 있었지만, 교량 아래로 추락한 것은 거의 100년 만의 일이라서 상당히 큰 충격이었다고.

이후 사고 수습을 하고 교량을 보수하여 운행은 재개하였지만, 오래된 교량의 노후화가 심하여 안전상의 문제가 대두되었고, 지속적인 보수에 들어가는 비용 역시 만만치 않아서 거의 100년 가까운 역사를 이어오던 아마루베 철교를 철거하고 새로운 교량을 건설하기로 하였단다. 경영합리화를 위해서는 폐선을 결정하고 해당 구간을 버스와 같은 교통수단으로 대체할 수 있었음에도 새로 지은 것을 보면 역사를 중요시하는 것 같다.(실제로 아마루베 철교 철거 후 새로 건설하는 동안 버스를 이용한 대체수송을 실시했다고 한다) 가끔 역사를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왜곡하는 것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자신들의 역사에 대해서 중요시하고 지키고 간직하려는 노력은 우리도 본받아야 할 부분이 아닌지.

카스미역에서 열차시각표를 확인하기는 했지만, 당장 탈 열차의 시각만 보고 아마루베역에서 내린 뒤 돌아오거나 하마사카로 가는 다음 열차 시각을 적어오지 않고 급히 열차를 타버린 것이 문제였다. 뒤늦게 아마루베역에 내린 다음에 역에 있는 시각표를 보니 카스미로 돌아가는 다음 열차는 한 시간 후에 도착할 예정인지라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 지 막막해졌다. 이런 외진 곳에서는 열차가 한 시간에 한 대 꼴로 다니고 재수없으면 두 시간이라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계획 없이 가다보니 이런 실수를 하게 된다.


이 철로는 열차추락사고 이전에 있던 그 철로의 일부를 보존하여 과거의 역사를 남겨둔 것인데, 비극적인 사건을 기억하고 추모하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한 것은 인상깊다. 그래서인지 아마루베역에 내린 사람들은 열차가 떠나자마자 이 주변에서 사진을 찍고 정신없더니 일부는 아마루베 철교와 동네를 한 바퀴 둘러보려는지 아래로 내려간다. 

평소 같았으면 고민없이 그 사람들의 뒤를 따라서 구경을 하고 돌아왔겠지만, 여행 막바지의 피곤함이 발길을 돌려세웠다. 상행 다음 열차의 도착 시간까지는 꽤 여유가 있었지만, 태풍이 오고 있다는 소식과 일요일 오후 상행 열차의 혼잡함이 예상되기도 해서 그냥 포기했다. 역시 철덕과는 거리가 멀다. 하~

다음 날 귀국 예정인지라 돌아가는 열차 시각에 신경쓰이고, 며칠 동안 계속 열차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서 그런지 몸도 뻣뻣하게 굳은 것 같아서 맨손 체조를 하다가 사진을 찍으려고 몰려있는 사람들 사이를 설렁설렁 돌아다니며 다음 열차가 오기를 기다렸다. 시각표를 살펴보니 돌아갈 방향의 상행 열차가 아닌 하행 열차가 먼저 온다는 것이 함정이지만.

과거 철로 및 교량의 일부를 남겨두어 이렇게 기념공원처럼 만들어두었다.

일본의 역사 왜곡은 문제이지만, 역사 보존 및 사고 현장에 대한 보존을 통해 희생자 추모 및 재발 방지의 노력은 높이 살 만하다.

날이 좋았으면 저 아래 방파제 쪽으로 내려가서 바다 구경을 하고 싶었지만

귀찮아서 그냥 사진만 찍고 끝.

배수구를 통해서 아래를 보니 아찔한 높이다.

전망시설의 관람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까지.
일본답게 주의사항이 상세히 적혀 있다.

사진에 보이는 선로는 새 선로 이전 추락 사고가 났던 아마루베 철교에 있던 구 선로이고, 사진 중앙에 있는 플랫폼 왼쪽(콘크리트 벽과 플랫폼 사이)의 선로로 열차가 운행하고 있다. 비바람에 의해 산이 무너질 수 있으니 붕괴를 방지하기 위해 콘크리트로 축벽을 쌓아둔 모양이다.

카스미 방향으로 가는 상행 열차였으면 좋겠지만, 반대로 하마사카까지 가는 하행 열차가 먼저 온다. 평소에 이용하는 사람이 많은 역이 아닌지라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한 의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마냥 밖에서 서서 기다리기도 그렇고 해서 하마사카행 열차를 기다린다.

아마루베역에서 요로이(鎧)역으로 보통열차를 타고 가서, 요로이역에서 구경을 하고 보통열차를 타고 아마루베역으로 돌아오는 모델 코스 시각표를 알려주고 있다. 열차를 타고 아마루베에서 요로이에 다녀오면서 경치를 감상하라는 취지인데, 열차 운행횟수가 많지 않은 지역이라서 하루 3회 왕복이 가능하단다. 시간이 많아서 역에서 한두 시간 기다릴 여유가 있다면 상관없겠지만.. 세 번째는 아마루베에서 카스미까지 오가는 오가면서 경치 감상을 하라는 것이네. (현재시점에서는 열차 시각표가 변경되었을 수 있으니 미리 검색이 필요할 것 같다)

'아마루베 철교 공중역(餘部鉄橋空の駅)' 이라고 써있다. 여기서 내린 사람들은 죄다 이 역 혹은 아마루베 철교 및 경치를 구경하려고 내렸다.

역사가 깊은 역이지만 불의의 사고로 새로 역을 정비하면서 신식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다. 목이 타서 계속 물을 마신 탓에 잠시 이 곳에 들어가 생리적 현상을 해결한다. 계속 역 아래로 내려가서 아마루베 철교를 구경하고 바닷바람이나 쐬고 올까 고민을 하다가 결국에는 무리하지 않기로 한다. 귀국이 다음 날인데 그동안 많이 걸었으니 몸 조심을 해야지 싶고..

그리고 기다리던 카스미행 보통열차가 기름타는 냄새를 풀풀 풍기며 들어온다.

기노사키 온천에서 하마사카까지 오가는 원맨열차다. 도중 역무원이 상주하는 유인역이 거의 없으니 대부분의 역에서 정차할 때마다 기관사가 운임징수까지 하는 그런 시스템. 한국이야 지하철이 있는 대도시권을 제외하면 이런 완행열차가 없으니 마땅히 비유할 것이 없지만, 일본에서는 통근, 통학용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손실을 감수하고서라도 열차를 운행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바로 다음 역인 쿠타니역은 아주 황량하다.

오래된 열차라서 천장 위에 선풍기가 있다.
오래 전 서울지하철1호선, 당시에는 국철이라 불리던 경인선 전동차에서 선풍기를 볼 수 있었는데..

열차를 부분적으로 리모델링하였지만, 좌석은 예전 그대로라서 허리에 매우 좋지 않은 모양새. 
당연히 편하지는 않으나 짧은 거리를 탄다면 괜찮겠지.
아마루베에서 하마사카까지는 고작 역 두 개 뿐이지만, 역간 거리가 길어서 대충 15분 정도 걸린다. 

하마사카역에 도착 후 돌아갈 열차가 대기 중인 플랫폼으로 왔다.
역시 세월의 흐름을 간직한 떵차!
잠깐 시간이 있지만 역을 나갔다 오기에는 모자란 듯하고, 그냥 플랫폼에서 얼쩡거리며 사진이나 찍기로.

하마사카에서 산인혼센을 타고 대충 40~50분 정도 더 가면 돗토리역이라, 따로 요금을 지불하더라도 돗토리에 가려고 했는데, 태풍이 온다고 해서 계획은 완전히 바뀌었다. 태풍이 간사이지역을 덮칠 것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교통편이 끊길 수 있으니 공항에서 먼 곳으로 가는 것은 위험한 일이니 다시 돌아가는 열차를 타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지루한 여정을 시작하기로.

심심해서 역 사진이나 찍고.
아~ 포켓와이파이라도 빌려서 들고 다니면서 써야 하나.

하마사카까지 타고 왔던 열차는 돗토리행 열차로 변신.
아직까지 돗토리는 미정복지역인데..


연명개조를 하였다지만 세월의 흐름이 곳곳에 묻어나는 떵차.

역에 명소를 소개하는 간판이 있는데 안타깝게도 시간이 없어서 돌아가야 한단다.

자~ 이제부터 산인혼센을 타고 상경하는 길고 긴 여정이 남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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