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노사키온센역에서 탈 열차는 카스미행 보통열차. 두 시 넘어서 도착을 해서 온천을 여유있게 즐기려면 이동하는 것은 무리였지만, 그래도 가지고 있는 패스의 이용범위가 여기까지가 아니고 하마사카(浜坂)까지여서 한 번 가보고 싶어졌다. 조금 일찍 출발했더라면 온천도 하고, 카스미, 하마사카를 조금 여유있게 둘러볼 수도 있는데, 밤이면 숙소에 들어가 TV를 보면서 일본어공부를 한다거나 야식을 먹으면서 일을 하는 경우가 있어서 새벽녘에 잠들어 8시가 넘어 눈을 떠서 이불 속에서 뒹굴고 있다가 나오는지라 10시 전후에 출발을 하고 목적지에 늦게 도착하는 악순환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왼쪽은 상행(교토) 방면이고 오른쪽이 하행(하마사카) 방면이다. 기노사키온천에도 로프웨이가 있어서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는데 작년 초에 갔을 때 돈이 없어서 로프웨이를 못탔다. 이번에는 시간이 없었고..

탈 열차는 카스미(香住)까지 가는 보통열차. 흔히 완만렛샤(ワンマン列車)라고 하는 운전사가 차장 역할까지 다 하면서 운행하는 열차가 들어올 예정이다. 인구가 적은 시골 지역에는 무인역이 많아 요금 징수가 어렵기 때문에, 기관사가 그 역할까지 한다. 전광판에 선두차량부터 하차해달라는(先頭車両から降車)는 것도 운전사에게 운임을 지불하라는 이야기다.

열차는 두 량짜리 열차. 외관은 꽤 오래된 열차였는데 내부는 현대화 공사를 하여 신형차량처럼 잘 개조를 해놓았다. 역시 타는 사람은 거의 없다. 차창에 보이는 서양인 아저씨 하나와 나와 단 둘이 승차. 그런데 이 아저씨는 다음 역인 타케노(竹野)에서 내리더라. 그럼 이 칸에는 혼자란 이야기네.

이 열차가 달리는 산인혼센(山陰本線). 도호쿠혼센(東北本線)이 도호쿠신칸센 신아오모리 연장 이후 일부 구간을 지역 철도 회사에 운영을 넘긴 후 일본의 재래선 노선 중에서는 가장 긴 노선이 되었다. 일본에 여러 번 다녀오면서 어지간히 이름이 알려진 동네는 가보았지만, 기노사키온천 이후 산인혼센 구간을 가보는 것은 처음. 그래서인지 차창 밖의 경치를 유심히 보게 된다. 사실 이 노선이 다니는 지역은 인구밀도가 높지 않은 곳인데다, 산인혼센이 지나가는 곳 중에서 그나마 알려진 돗토리가 있는 돗토리현이나 마츠에, 이즈모가 있는 시마네현은 일본에서도 가장 인구가 적은 현 1,2위를 다투는 곳인데다, 효고현 북쪽 역시 인구가 적은 곳이라 열차 운행도 뜸하고 달리는 열차도 썰렁하기 그지없다. 거기에 태풍이 온다고 하니 이 지역으로 여행을 계획했던 사람들도 대부분 취소를 했다고.

도시 생활에 익숙해진 사람으로서 이런 시골에서 생활하라고 한다면 어렵겠지만, 나중에 이런 곳에서 조용히 지내는 것을 꿈꾸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친구들은 요즘에 시골에서 생활하려는 사람이 어디 있냐며 늙은이 같은 소리를 한다고 그러니까 여자친구가 없는 거라고들 한다. 난 그저 삭막한 도시에서 벗어나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지내고 싶을 뿐이라고.

사츠(佐津)역이다. 다케노역에 정차했을 때는 사진을 못 찍었는데, 그냥 찍어봤다. 역시 무인역으로 운전사가 승객 관리 업무를 전담하게 된다.

산인혼센 복선 전철화를 추진하자고 하는데, 복선화가 되면 양방향 열차 운행 속도가 빨라지고, 열차 교행을 하지 않아도 되니 열차 편성 역시 늘어날 수 있을테고, 전선을 설치하면 열차 운행비용이 감소하겠지. 그런데 이 노선을 이용하는 수요가 중요한 것인데, 복선화를 한다면 새로이 선로를 깔아야 하고, 전선을 설치하는 비용을 회수할 수 있을 만큼의 수요가 증가할 것인지는 의문이다. 이 지역 주민으로서는 갈수록 사람들이 도회지로 빠져나가고, 지역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노인들만 거주하게 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치 않다.

시바야마(柴山)역. 열차가 출발하고 사진을 찍었더니 흔들려버렸다. 다음 역은 열차의 종착역인 카스미. 무인역이라 잡초가 무성하고 역명판을 받치는 기둥에 녹이 슨 것이 관리가 잘 되지 않았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역시 이 동네도 일본에서는 니혼카이(日本海)라 부르는 동해에 접한 곳인데, 몇몇 민숙 여관이 있는 듯하다. 

조금 더 가니 약간은 규모가 있는 마을이 나오는데 아마도 이 열차의 종착역인 카스미에 곧 도착할 것 같다. 카스미는 카스미가니(香住ガニ.카스미 게)로 유명한 동네로 겨울철이면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 한다. 맛있는 게요리를 먹고, 온천을 즐기고 가는 1박 2일 여행 상품이 인기라고. JR에서도 동절기에는 오사카에서 출발해서 카스미 또는 하마사카까지 운행하는 카니카니하마카제(かにカニはまかぜ)열차를 운행한다. 이 열차 탑승객은 대개 왕복 열차 승차권과 게요리 식사가 제공되는 온천 근처의 숙소에서의 하루 숙박이 포함된 여행 상품을 통해 관광을 하고 돌아간다고. 예전에 멋모르고 기노사키온천에서 오사카로 돌아가려고 이 열차를 탔었는데, 전 좌석이 지정석에 만석이라서 다음 역인 토요오카에서 재빨리 내렸던 기억이 있다. 계속 그 열차를 타고 있었다면, 차장이 검표를 하다가 나에게 지정석 특급권 요금을 징수했을 것이야.


지금까지 지나왔던 곳에 비해서는 제법 큰 동네라는 느낌이 온다.

카스미역에 내렸다. 키하 47계의 오래된 열차다.

그래도 내부는 리모델링을 한데다 이용승객도 많지 않아서 상당히 깔끔하다. 역시 JR니시니혼의 차량 재활용실력은 뛰어나다.

열차가 여기까지만 운행을 하니 잠시 역 바깥으로 나가서 다음 열차 시각을 알아보고 동네 한 바퀴 돌아보기로 한다. 저 지오파크와 바다의 문화관을 오가기에는 시간이 없어요.

반대편에는 토요오카행 쾌속열차가 정차해 있다. 이 열차를 타면 기노사키온천까지 빨리 돌아갈 수 있으나, 여기까지 온 의미가 없어지므로 아쉽지만 패스하기로 한다. 이 열차 역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차량이다.

카스미역은 역무원이 있는 유인역이라서 역무원 아저씨에게 품 안에 있던 패스를 보여주고 역 바깥으로 나왔다. 역시나 이 역의 상징은 게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다. 태풍만 아니었더라면 이 날은 기노사키온천에서 온천을 즐기고 여기에서 하룻밤 묵으면서 게를 먹으려고 했는데 조금은 아쉽다. 그 아쉬움보다 당장 할 일이 없다는 것이 참 괴롭다. 다시 역으로 돌아가 열차 시각표를 뒤적이는데 하마사카까지 가는 열차 시각이 많이 남아서 절망에 빠지려는 찰나, 역 개찰구 앞에 달린 LCD모니터에서 임시쾌속 산인카이간지오라이너(山陰海岸ジオライナー.산인해안지오라이너)열차가 15시 9분에 카스미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다시 패스를 보여주고 안으로 들어가 지하도를 지나 건너편 플랫폼으로 갔다.

차량 전체에 새로이 도색을 한 신형 차량인 듯 싶다. 썩은 차량 재생만 하는 줄 알았던 JR니시니혼도 이런 신형 열차를 투입하고 있구나 싶다. 산인카이간지오라이너는 주말과 공휴일에만 운행하는 임시열차로 토요오카에서 돗토리까지 꽤 먼 거리를 운행하는 열차다. 이름처럼 산인해안을 따라 달리면서 자연을 감상하는 열차인데, 패스의 유효구간이 하마사카까지이니 거기까지만 갔다가 돌아오면 되는데, 문제는 하마사카에 가기 전에 내릴 역이 있다는 것.

신형 열차답게 내부도 깔끔하고 장거리 운행을 하는 열차인지라 화장실도 있다.

열차의 랩핑 역시 잘 되어 있는데..

문제는 이 열차를 타고 끝까지 갈 수 없다는 것이겠지.

내부에도 이 열차가 다니는 지역의 특색을 보여주는 사진들로 랩핑을 해놓았다. 저 샌드보드 타는 사진은 사구로 유명한 돗토리일테고..

이 열차를 타면서 저 광경들을 다 볼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물어볼걸 그랬나 싶다.

다행히 구름이 걷히고 파란 하늘이 보이는가도 싶은데..

열차는 텅텅 비었다. 태풍의 여파인가. 계속 주변 안내방송을 하는 승무원 민망하게시리.

바다가 보인다.

그리고 내가 내릴 곳인 장소에 거의 다 왔다.

바로 이 역이다.

열차 앞 칸에 타고 있던 사람들도 여기서 많이 내리고, 역에 있던 사람들은 이 열차를 탄다.

사진 실력이 형편없어서 죄송합니다.

돗토리행 인증샷.

승무원 인증샷. 이 열차에는 운전사 외의 승무원이 둘인데, 아마도 이 여자 승무원이 짬이 덜 되는지 차내 안내방송은 물론 문 닫는 것도 다 맡아서 하고 있다. 나머지 한 명 남자 승무원은 보이지 않네.

열차는 문을 닫고 떠나간다. 가지 말라고 소리치고 싶었으나 그런다고 가지 않을 열차도 아니고..

아직 가지 않는 것은 붙잡으면 문 열어주려는 것인가. 얼른 가라!

그렇습니다. 이 역은 아마루베역입니다.


 잠꾸러기의 여행노트

<임시 쾌속열차 산인카이간지오라이너(山陰海岸ジオライナー)>

토요오카(豊岡)-돗토리(鳥取)를 오가는 임시 쾌속열차. 토요일, 일요일과 슈쿠지츠(祝日.축일)라고 부르는 한국으로 따지면 공휴일에만 왕복 1편성 운행하며, 2월 28일까지 운행이 예정되어 있다. 하행은 오후에, 상행은 오전에 있으므로 시간을 잘 맞추어야 한다. 토요오카-돗토리 구간을 약 두 시간 정도 걸려서 운행하며, 주요 역에만 정차하는 쾌속열차다. 차내 안내방송이 있어서 별도의 가이드 없이 여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일본어로만 방송을 해서 일본어를 모르면 아무 소용이 없다.열차시각표는 첨부파일을 참조(일본어 문서).

saningeoliner.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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