윔블던

지난 2주간 윔블던 관련 포스팅을 하면서 주로 남녀 단식에 초점을 맞추어 주요 경기 리뷰를 했는데, 중간에 넣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잠시 풀어놓는 것으로 철야 투쟁을 멈추고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려고 한다. 무엇보다 갑작스럽게 많은 이들이 찾아주셔서 놀랍고 감사할 따름이다.

조코비치와 크비토바는 모두 윔블던 우승 첫 경험 ⓒ AELTC / T. Lovelock

단식 경기의 우승 상금은 우승자 110만 파운드(약 18억 9천만 원)이고, 준우승 상금은 55만 파운드(약 9억 4천만 원). 윔블던에서 한 번 우승하면 상금만으로도 평생 먹고 살 돈이 마련되는 셈이다. 3라운드 탈락자까지는 한 단계 내려갈 때마다 개인이 수령하는 상금은 반으로 줄어드는데, 128명이 맞붙는 1라운드에서 패한 64명이 각각 수령하게 되는 상금이 11,500파운드로 2천만원에 가까운 돈이니 이것만 해도 대단하다. 퀄리파잉 1라운드에서 탈락해도 1,750파운드(약 3백만 원)가 주어지니 비행기삯 정도는 충분히 뽑을 수 있는 돈이다.

크비토바도 이번 대회 우승으로 7월 4일자 세계 랭킹에서 7위로 한 단계 상승했다. 이번 시즌 레이스만 놓고 보면 보스니아키(5776점)에 조금 뒤진 2위(5037점)를 달리고 있어 남은 시즌 경기 결과에 따라 연말 랭킹 1위도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준우승자인 샤라포바도 랭킹이 한 단계 상승한 5위가 되었고, 4위였던 리나가 6위로 내려앉았다.

오픈 시대의 대기록을 세운 브라브라 ⓒ AELTC / M. Hangst

복식은 동성의 경우 우승 상금이 25만 파운드(약 4억 3천만 원), 혼성의 경우 9만 2천 파운드(약 1억 6천만원)가 한 조에 주어지는데, 어느 한 사람이 더 가져가서 서로 싸우는 일은 없는 것 같다. 남자 복식의 브라이언 브라더스(미국)는 11번 째 그랜드 슬램 우승으로 우디즈와 타이기록을 세웠다. 다른 선수들처럼 파트너의 변동없이 수년 째 정상을 지켜온 브라브라가 조만간 새로운 기록을 세울 것으로 보인다. 여자 복식은 현재 가장 강한 복식조인 크베타 페스츠케(체코)와 카타리나 스레보트닉(슬로베니아)이 우승을 차지했는데 자비너 리지키(독일)와 사만다 스토서(호주)가 하루에 준결승과 결승을 치르느라 체력 소모가 커서 쉽게 승리를 거두었다.

알프스 소녀였던 힝기스가 알프스 아줌마가 되어버린 세월의 무상함이여 ⓒ AELTC / S. Wake

윔블던에서는 인비테이셔널 매치라고 해서 전 윔블던 챔피언들이 초청되어 복식 경기를 갖는데 여자 복식결승에서 린제이 데이븐포트(미국)와 마르티나 힝기스(스위스)가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미국)와 야나 노보트나(체코)를 이기고 우승을 차지했다. 아무래도 은퇴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팔팔한 젊은 선수들이 더 잘 뛸 수밖에 없다. 이 경기에서도 작지만 상금(우승 17,500파운드, 준우승 14,500파운드)이 있다고. 젊었을 때 테니스 잘 치면 나이 들어서도 먹고 살 길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샤라포바 이전에 윔블던의 연인은 힝기스였는데.. ⓒ AELTC / S. Wake

힝기스 이야기가 나온 김에 잠시 이야기하자면 뛰어났던 테니스 실력 이외에도 여러 스타들과 염문을 뿌리기로 유명했다. 스페인의 프로 골퍼 세르히오 가르시아, 영국의 축구 선수 솔 캠벨, 테니스 선수 라덱 스테파넥 등 많은 사람들과 사귀었는데 작년에 6살 연하의 남자와 결혼했다.

그러나 그녀의 테니스 실력은 그저 그렇더라는 (현재 세계랭킹 31위에 올라 있다) ⓒ AELTC / S. Wake

윔블던은 여전히 흰색 유니폼을 입도록 하는 규정이 있는데, 꼭 튀고 싶은 선수들이 유니폼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경우가 있다. 미국의 베타니 마텍-샌즈는 코트의 레이디 가가 패션을 해서 화제가 되었는데, 개인적으로는 비너스의 경기복이 더 충격적이었다.

비너스의 쇼킹 경기복 ⓒ AELTC / S. Wake

비너스는 흑인이다보니 흰색은 그다지 잘 받지 않음에도 옷에 장난을 너무 친 것 같다. 그냥 깔끔한 경기복을 입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비너스는 자신의 유니폼을 스스로 디자인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범인의 눈으로 보면 참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서리나의 인터뷰 모습 ⓒ AELTC / T. Lovelock

사실 그 동생이 인터뷰할 때 입고 나온 셔츠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돈이 없어서 찢어진 옷을 입은 것은 아닐테고 어느 정도 예의는 지켜야 하는데 이 자매는 너무 파격을 즐긴다.

그 밖에 여러 유명 인사가 윔블던 경기장을 찾아서 화제가 되었다. 영미권 언론에서는 케이트 미들턴의 동생 피파 미들턴에 대해서 난리를 치고 있는데 이해할 수 없고 별로 마음에 들지 않으므로 여기서는 과감하게 그녀는 생략하도록 하겠다. 아는 사람들만 잠시 소개해본다.

호주의 백상어 그렉 노먼씨께서 오셨습니다 ⓒ Getty Images / Julian Finney

F1 스타 마크 웨버도 경기를 관람했다 ⓒ Getty Images / Clive Mason

래퍼 Jay-Z씨도 멀리 대서양을 건너 영국까지 와서 경기를 보았다. ⓒ AFP Photo / Glyn Kirk

루퍼트 그린트와 올리버 펠프스 ⓒ Getty Images / Julian Finney

영화 해리 포터 시리즈에 출연했던 론 역의 루퍼트 그린트와 조지 역의 올리버 펠프스도 경기를 보았다고 하는데, 원하는 사람은 이들이 아닌 엠마 왓슨인데 어흑!

아쉬움을 앤양으로 달래보자 ⓒ Getty Images / Julian Finney

앤 해서웨이는 애인 아담 슐만과 함께 여자 결승전 경기를 관람하였다. 이 아가씨 프라다를 입는 악마였을 때 참 예쁘게 나왔는데 그 이후 영화에서는 강한 인상을 남겨주지 못해 아쉽다.

윔블던은 끝나도 ATP와 WTA 투어가 계속 진행되고 있는데 매일 밤을 새우며 경기를 지켜볼 수는 없어서 당분간 테니스 리뷰는 가끔 시간이 날 때만 포스팅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쉽지만 이제부터 매주 테니스의 공주 한 명씩 골라서 선수에 대한 이야기를 다룰 계획이니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린다.

노박 조코비치(24·세르비아, 세계 2위)가 제 125회 윔블던 남자 단식 결승에서 디펜딩 챔피언이자 몇 시간 후 자신에게 세계랭킹 1위를 내어줄 라파엘 나달(25·스페인)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며 생애 첫 윔블던 우승을 차지했다. 호주오픈 두 차례 우승을 합쳐 통산 세 번째이자 올 시즌 두 번째 그랜드 슬램 우승이다.

조코비치의 작년까지의 행보를 보면 페더러-나달 시대의 또다른 희생양이 아닌가 싶었다. 2008년 호주오픈 준결승에서 로저 페더러를 꺾고 결승에 올라 첫 그랜드 슬램 우승을 차지하였지만 작년까지 두 선수에게 밀려 3인자에 머물렀고 페더러와 나달 둘 중 하나가 부진에 빠질 때에만 가끔 2위에 이름을 올려 놓는 정도였다. 사람들은 조코비치가 아닌 페더러가 17번째 그랜드 슬램을 차지할 수 있을지 혹은 나달이 페더러의 기록을 넘어설 것인지에 더 관심을 가지며 올해 초까지도 3위에 머무르던 조코비치는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았다. 테니스 선수의 전성기가 평균적으로 20대 중반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제 정점에 거의 다다른 것일지도 모를 조코비치도 앤디 로딕이나 레이튼 휴잇처럼 그저 한 번 그랜드 슬램을 차지했던 우수한 선수의 하나로 사라질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조코비치는 올해 초부터 가지고 있던 잠재력을 모두 폭발시키며 41연승의 돌풍을 일으켰다. 호주오픈에서 다시 페더러를 잡고 결승에 올라 두 번째 우승을 차지했고, 이후 출전하는 투어마다 페더러와 나달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프랑스오픈 4강에서 페더러에게 일격을 당하며 연승 행진이 중단되었지만, 이미 페더러를 2위 자리에서 끌어내린 후 멀찌감치 따돌렸고 1위 나달을 근소한 포인트 차이로 쫓았다. 그리고 윔블던 결승에 오르며 나달이 지켜오던 월드 넘버 원 등극이 예정된 상태에서 윔블던 타이틀을 놓고 현재가 아닌 전 1위가 되는 나달을 상대로 승리했다. 단 한 번의 패배가 아쉬울 정도로 시즌 48승 1패의 경이적인 승률을 자랑하며 극강의 포스를 뿜어내고 있는 조코비치는 이제 페더러-나달의 시대의 막을 내리고 자신만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선수가 될지도 모른다.

드디어 윔블던 트로피에 입을 맞춘 조코비치 ⓒ AELTC / M. Hangst

 

대회 마지막 날 (7월 3일)

남자 결승 노박 조코비치 vs 라파엘 나달 (14:00 센터 코트)

경기 시작에 앞서 서로를 격려하는 두 선수 ⓒ AELTC / M. Hangst

나달은 그랜드 슬램 결승에서 로저 페더러 이외의 선수에게 져본 일이 없었다. 그리고 두 선수의 상대전적은 나달이 16승 11패로 앞서 있었고, 윔블던 결승도 다섯 번째였다. 그러나 조코비치는 올해 나달을 만나 한 번도 지지 않아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큰 이상이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으나 8강에서 발에 통증을 느꼈던 나달의 컨디션이 최고조에 이르지 못할 것이라는 점도 조코비치에게는 유리한 부분이었다.(부상도 실력이다)

포어핸드 스트로크를 치기 전 공에서 시선을 집중하는 조코비치 ⓒ AELTC / T. Hindley


조코비치의 서브로 시작한 1세트는 팽팽하게 진행되었다. 조코비치는 서브 에이스로 기분 좋은 출발을 했지만, 나달에게 연속으로 포어핸드를 맞으며 15-30으로 끌려갔다. 조코비치는 서브 에이스를 다시 터뜨리며 동점을 만들었고, 나달이 네트에 공을 꽂고 라인 밖으로 날린 덕분에 첫 게임을 승리로 장식했다. 톱랭커 간의 승부에서 자신의 서브 게임을 지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 나달은 개의치 않고 자신의 서브 게임을 가볍게 챙기며 균형을 맞췄다. 이후 여섯 게임을 두 선수는 상대방에게 두 포인트 이상을 허용하지 않은 채 안전하게 자신의 서브 게임을 챙기며 4-4의 팽팽한 접전을 이어갔다. 조코비치가 아홉 번째 게임에서 이기며 5-4로 앞서 나갔고 나달의 서브 게임이 시작되었다. 나달은 연속으로 서브 에이스 두 개를 조코비치의 코트에 꽂으며 30-0의 리드를 잡았다. 5-5가 되고 첫 세트는 타이 브레이크로 이어질 분위기였다. 그러나 조코비치는 나달의 우측을 공략한 백핸드와 선상에 떨어지는 포어핸드로 동점을 만들었고, 나달은 포어핸드가 네트에 걸리며 세트 포인트를 허용하였다. 흔들린 나달은 포어핸드가 사이드라인을 벗어나면서 첫 세트를 내주고 말았다.

경기가 잘 풀리지 않는 나달 ⓒ AELTC / M. Hangst

2세트는 조코비치의 페이스로 진행되었다. 조코비치의 서브로 시작된 첫 게임에서 나달은 0-30으로 앞서며 분위기 전환을 꾀했다. 앤디 머리에게 첫 세트를 내준 후 연속으로 세 세트를 따내며 역전승을 거둔 준결승을 연상시키는 플레이였다. 그러나 나달은 왼쪽 사이드라인을 벗어나는 샷으로 동점을 허용하더니 스매시가 베이스라인을 벗어나면서 역전을 허용했다. 위기를 넘긴 조코비치는 서브 에이스를 날리며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첫 게임을 가져갔고, 곧바로 나달의 서브 게임을 탈취하며 연속 브레이크에 성공했다. 15-15에서 조코비치는 나달의 서브를 노려 오른쪽 코너로 리턴하여 득점에 성공했고, 긴 랠리 끝에 나달이 백핸드를 네트에 꽂으며 브레이크 포인트가 되었다. 조코비치는 치열한 랠리가 발리로 이어지는 순간 나달의 키를 넘겨 빈 코트로 떨어지는 백핸드 샷을 날리며 승리했다. 다음 게임에서도 조코비치는 서브 에이스 두 개를 포함하여 쉽게 이기며 3-0으로 달아나 나달의 추격권에서 벗어났다. 나달은 뒤늦게 한 게임을 따내며 추격에 나섰지만, 조코비치는 4-1에서 다시 나달의 서브 게임을 브레이크하여 추격의 여지를 없애며 6-1로 세트를 마무리했다.

함성을 지르며 스스로를 격려하는 조코비치 ⓒ AELTC / M. Hangst


조코비치는 4라운드부터 준결승까지 경기를 유리하게 이끌어가며 어렵지 않게 승리를 챙겼지만 꼭 마치 다른 사람처럼 리듬을 잃고 한 세트 씩 내주었는데 결승에서도 3세트에서 갑자기 샷의 난조를 보이며 나달에게 추격의 기회를 제공하였다. 나달은 자신의 서브로 시작한 첫 게임을 이기며 반격을 위한 시동을 걸었고, 바로 조코비치의 서브 게임을 브레이크하며 기세를 올렸다. 두 번째 게임은 나달의 포어핸드 위너에 이은 조코비치의 어림없이 빗나가는 뜬 공으로 0-30이 되었고, 나달의 리턴 실패와 조코비치의 서브 에이스로 30-30이 되는 접전이었다. 그러나 조코비치의 포어핸드가 빗나가며 나달은 첫 브레이크 포인트에 도달했고, 조코비치가 백핸드를 네트에 날리며 나달은 첫 브레이크에 성공했다. 상승세를 탄 나달은 러브 게임으로 세 번째 게임까지 승리하여 3-0으로 앞서며 조코비치가 주도해오던 경기 흐름을 자기 쪽으로 가져왔다. 조코비치는 나달의 키를 넘기는 로빙 샷으로 한 게임을 따냈지만, 나달이 나머지 세 게임을 쓸어 담으며 3세트를 6-1로 이겼다.

조코비치 날다 ⓒ AELTC / M. Hangst


운명의 4세트는 조코비치의 서브 게임으로 시작하였다. 나달은 첫 게임에서 경기의 흐름을 완전히 돌릴 수 있는 결정적 기회를 잡았다. 30-30에서 조코비치가 나달의 포어핸드를 넘기지 못하고 네트에 꽂으며 나달은 브레이크 포인트가 되었다. 그러나 나달은 조코비치의 공격을 받아 친 포어핸드가 벗어나며 듀스를 허용하였고 연속으로 조코비치에게 두 포인트를 내주며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 위기에서 벗어난 조코비치는 나달의 서브 게임을 브레이크하며 2-0으로 앞서갔다. 나달은 실책을 연발하며 조코비치에게 쉬운 브레이크를 허용하며 승부가 기우는 듯했지만 아직 조코비치가 승리를 속단하기는 일렀다. 30-40으로 조코비치가 브레이크 포인트에 몰린 상황에서 넣은 서브를 나달이 포어핸드 슬라이스로 받아쳤고, 이 공은 네트 윗 부분을 맞고 조코비치의 코트로 떨어졌다. 나달은 의례적인 미안하다는 제스처를 취했지만 운이 따르는 브레이크였고, 여기에 약간 흔들린 조코비치가 이어진 게임에서 실책을 연발하며 2-2 동점이 되었다.

이겼다! ⓒ AELTC / T. Hindley


나달이 경기를 뒤집기 위해서는 조코비치가 잘 나가던 분위기가 깨진 이 때가 마지막 기회였다. 그러나 조코비치는 다시 냉정을 되찾아 나달을 무섭게 몰아붙였고 30-30에서 나달의 백핸드가 네트에 걸리고 포어핸드 리턴이 베이스라인을 넘어가면서 3-2로 앞서기 시작했다. 조코비치가 강해진 가장 큰 이유는 경기 중에 페이스가 잠시 흔들리더라도 금방 다시 마음을 다잡고 경기에 임하는 정신적인 안정인지도 모른다. 나달과 조코비치는 서로 서브 게임을 지키며 4-3이 되었고, 조코비치가 승부에 결정타를 날리는 브레이크를 하는 여덟 번째 게임에 돌입하였다. 나달은 이 경기에서 유일한 더블 폴트를 가장 중요한 시점에서 저지르며 출발이 좋지 않았는데 나달의 톱스핀 포어핸드가 벗어나고 네트에 걸리며 순식간에 쓰리 브레이크 포인트에 몰렸다. 나달은 포어핸드로 한 포인트를 만회하지만, 백핸드가 다시 길게 벗어나면서 결정적인 브레이크를 당했다. 이제 두 선수는 5-3 조코비치의 리드 속에 결승전 마지막이 된 게임에 돌입했다. 30-30으로 맞서며 아직 나달에게는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조코비치는 재치있는 발리로 챔피언쉽 포인트에 도달했고, 나달의 백핸드를 겨냥한 조코비치의 깊은 크로스 백핸드 스트로크를 나달이 라인 밖으로 쳐내면서 조코비치의 승리로 경기가 끝났다.

 

하늘이시여! ⓒ AELTC / M. Hangst

 

경기 요약 (출처: 윔블던 공식 사이트)

나달은 첫 서브 성공률이 좋았지만 그것이 득점과 연결되는 확률이 조코비치에 비해 낮았다. 팽팽한 접전에서 랠리를 리드한 것은 조코비치였고 그런 점들이 그대로 기록에 나타나 있다.

챔피언 그리고 준우승이 어색한 나달 ⓒ AELTC / M. Hangst


이미 1위를 예약한 조코비치였지만 윔블던 우승으로 2위 라파엘 나달과의 격차를 더 벌릴 수 있게 되었다. 조코비치는 7월 4일자 ATP 랭킹에서 13,285점으로 11,270점의 나달과 2,000점 이상으로 차이를 벌렸고, 나달은 그대로 9,230점을 유지한 3위 페더러와의 격차가 줄어들었다. 조코비치는 올 시즌 나달과의 상대에서 연승 행진을 이어가면서 마지막 그랜드 슬램인 US 오픈에서 나달에게 작년의 결승전 패배를 설욕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잔디 먹는 조코비치 ⓒ AELTC / S. Wake


조코비치는 "생애 최고의 날" 이라면서 우승의 기쁨을 표현했고, 센터 코트의 잔디를 뜯어 맛을 보는 독특한 세리머니를 하여 관심을 끌기도 하였다. 첫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후 타이틀 방어와 사람들의 기대, 성적에 대한 부담 속에 많은 압박을 받았고, 최소한 4강 이상을 진출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자신을 사로잡았다고 밝혔다. 그리고 나달과 페더러가 지배하는 가운데 자신의 위치가 어디였는지 스스로도 의심하고 고민했음을 솔직히 말했다. 나달은 핑계를 대지 않고 조코비치가 대단하고 환상적인 경기를 했는데 자신이 그 이상 하지 못했음을 인정하면서 패배를 인정했다. 또 현재 최고이자 내일이면 세계 최고의 선수와 경기를 했고, 자신은 두 번째라며 조코비치를 칭찬함과 동시에 세계 1위를 내준 아쉬운 마음을 드러냈다. 그리고 자신이 처음 윔블던에서 우승하던 때를 기억하기 때문에 조코비치가 지금 얼마나 기쁠지 잘 알고 있다며 그의 우승을 축하하였다. 한편 이 날 경기가 열린 센터 코트에는 세르비아의 대통령 보리스 타딕이 로얄석에서 앉아 직접 조코비치를 응원하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1936년 브래드 페리의 우승 이후 영국인들은 그 후로 자국 선수들이 윔블던 트로피를 들어올리지 못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불행히도 1938년 버니 오스틴의 결승전 패배 이후 70년이 넘도록 영국 선수들은 윔블던 결승조차 진출하지 못했다.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영국의 에이스였던 팀 헨만도 네 번이나 준결승에서 좌절을 맛보아야 했고 헨만의 은퇴 후 그들의 염원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앤디 머리(24·영국, 세계 4위, a.k.a 앤디 머레이)를 향해 있었다. 그런 홈팬들의 열렬한 성원을 입고 경기에 나섰지만 머리는 2년 연속 라파엘 나달(25·스페인, 세계 1위)에게 4강에서 패하며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윔블던 2연패, 통산 3번째 우승에 도전하는 라파엘 나달 ⓒ AELTC / T. Hindley


대회 11일째 (7월 1일)

남자 4강 제 2경기 라파엘 나달 vs 앤디 머리 (센터 코트)

디펜딩 챔피언 라파엘 나달의 입장 ⓒ AELTC / N. Tingle

영국의 희망 앤디 머리의 입장 ⓒ AELTC / N. Tingle

영국 홈팬들의 염원을 안고 경기에 나선 머리는 1세트에서 정말 그 꿈을 이룰 것만 같은 경기를 하였다. 반면에 나달은 마치 예열이 덜 된 듯하였다. 머리는 서브 에이스 두 개를 앞세워 첫 게임을 기분 좋게 시작하며 앞서 나갔다. 나달은 아직 평소같이 날카롭지 못한 모습이었지만 특유의 톱 스핀 스트로크를 앞세워 머리를 베이스라인에 묶어 둔 채 경기를 하며 팽팽한 승부를 이어갔다. 나달은 심판이 친 크로스 샷을 아웃으로 판정하였는데 이에 대한 챌린지를 하지 않았다. 이어진 플레이에서 나달이 득점을 했는데, 챌린지를 했더라면 머리의 서브 게임을 브레이크할 수 있었는데 이 게임은 머리의 승리로 끝이 났다. 머리는 힙에 이상을 느껴 트레이너를 불렀는데, 별 이상이 없는지 다시 경기에 임했다. 두 선수는 5-6까지 서브 게임을 잘 지키며 팽팽한 승부를 이어갔는데, 나달의 서브 게임을 머리가 처음이자 마지막 브레이크를 하며 5-7로 세트를 따냈다. 이번 만큼은 머리가 나달을 이길 가능성이 높다고 기대하였던 영국인들의 바람이 이루어지는 듯했다.

나달의 강력한 포어핸드 스트로크 ⓒ AELTC / N. Tingle

그러나 2세트부터 영국인들에게 악몽같은 일들이 펼쳐졌다. 머리는 1-2로 앞선 상황에서 나달의 서브 게임을 다시 챙길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15-30의 리드가 15-40으로 변해야 할 순간 머리가 친 포어핸드 시터가 사이드라인을 벗어나며 30-30이 되면서 나달이 쉽게 게임을 마무리지었다. 위기 뒤에 바로 기회가 오는 법이라고 다음 게임에서 바로 나달이 경기에서 첫 번째 브레이크에 성공하며 리드를 잡았다. 스코어는 팽팽해도 랠리를 주도하는 것은 머리였는데 30-30에서 더블 폴트를 기록하면서 나달에게 브레이크 포인트를 주었고, 나달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게임을 따냈다. 이어진 게임에서는 감을 잡기 시작한 나달의 스트로크가 머리의 좌우를 흔들며 괴롭히며 4-2로 리드하였다. 머리의 부진 역시 갑작스러운 반전에 한 몫을 하였다. 머리는 첫 서브가 잘 들어가지 않으며 고전하기 시작했고, 스트로크는 구석으로 향하지 않으면서 두 번째 브레이크를 당하고 말았다. 나달은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는 선수였다. 기세를 몰아 마지막 게임을 따내며 36분 만에 2세트를 끝냈다.

나달의 백핸드 ⓒ AELTC / T. Hindley

3세트에서 머리는 완전히 경기 리듬을 잃어버렸다. 여전히 첫 서브가 말을 듣지 않으며 고전했고, 포어핸드 스트로크는 전혀 들어가지 않으며 첫 서브 게임을 내주고 말았다. 반대로 나달은 완전히 자신의 리듬을 찾아 경기를 유리하게 전개하였다. 서브 에이스 세 개를 기록하며 4-2로 달아났고, 다시 머리의 서브 게임을 브레이크하면서 3세트의 승부를 결정지었다. 나달이 이어진 서브 게임을 지키며 다시 6-2로 세트를 따냈다.

이기고 있는 나달은 미끄러지면서도 여유가 있다 ⓒ AELTC / N. Tingle

4세트는 마지막에 몰린 머리의 분발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러나 나달은 첫 게임부터 브레이크하면서 일말의 희망을 갖던 영국인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머리의 서브는 여전히 말을 듣지 않았고, 힘없는 두 번째 서브는 나달에게 밥을 갖다 주는 셈이었다. 머리는 첫 포인트를 내준 후 오래간만에 터진 서브 에이스로 만회하는 듯하였지만 연속으로 스매시와 포어핸드를 네트에 꽂으며 브레이크 포인트를 헌납하였고, 나달은 머리의 성의에 브레이크로 보답하였다. 이 브레이크 하나를 끝내 극복하지 못한 머리는 6-4로 패하게 된다. 나달의 3:1(5-7 6-2 6-2 6-4) 승리.

경기 요약 (출처 : 윔블던 공식 사이트)

기록을 보면 머리의 첫 서브 성공률은 58%인데, 1세트에서는 66%였던 서브 성공률이 2,3세트를 거치며 50% 이하로 내려갔다가 다시 4세트 중반 이후의 선전으로 간신히 조금 올랐다. 머리는 나달보다 강한 서브를 가지고 있음에도 자신의 장점을 살리지 못하며 나달에게 많은 반격의 기회를 주었다. 머리의 실책이 39개로 단 7개만을 기록한 나달보다 다섯 배 이상 많았던 것도 경기를 결코 유리하게 가져갈 수 없는 원인이 되었다. 경기 리뷰를 하면서 쓰기는 했지만 2세트부터는 나달의 일방적인 페이스로 경기가 진행되어 박진감을 느낄 수 없는 지루한 경기가 되었다.

풀죽은 머리의 인터뷰 모습 ⓒ AELTC / N. Tingle

나달은 승리와 함께 결승에 진출하게 되었음에도 월요일에 발표되는 ATP 랭킹에서 노박 조코비치에게 1위 자리를 내어주게 되었다. 세계 1위는 나달이 로저 페더러의 4년 6개월 간의 장기 집권을 무너뜨린 후 다시 한 번씩 주고 받으며 7년 가까이 두 사람만이 차지하던 자리였으나, 조코비치가 그 성역을 깨뜨렸다. 나달이 우승으로 그 아쉬움을 달랠 수 있을지 조코비치가 새로운 월드 넘버 원이 된 상승세를 이어갈 수 있을지 두 선수의 팽팽한 접전이 예상된다.

윔블던 결승에서 빅토리아 아자렌카와 마리아 샤라포바의 스테레오 사운드는 듣지 못하게 되었다. 만약 이 두 선수가 윔블던 결승에 진출하고 비가 와서 센터 코트의 지붕을 닫았다면 사상 최고로 시끄러운 경기를 지켜보게 되었을 것이다. 윔블던 결승의 길목에서 맞붙은 아자렌카와 페트라 크비토바는 누가 결승에 올라가든 생애 첫 그랜드 슬램과 윔블던 결승 진출이라는 부담 속에서 승부를 펼쳐야 했고, 크비토바가 풀세트 매치 끝에 승리를 거두었다.


대회 10일째 (30일)

4강 제 1경기 페트라 크비토바 vs 빅토리아 아자렌카 (13:00 센터 코트)

생애 첫 그랜드 슬램 결승에 오른 페트라 크비토바 ⓒ AELTC / T. Hindley


빅토리아 아자렌카(21· 벨라루스, 세계 4위)는 이번 시즌 들어 그녀의 테니스 커리어 중에서 가장 빛나면서도 다른 어느 선수보다도 안정된 활약을 해왔다. 랭킹 포인트를 1500점 이상 쌓으면서 작년 연말 10위였던 랭킹도 4위까지 끌어 올렸고, 생애 첫 그랜드 슬램 단식 4강에도 올랐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 기존의 스타들에 가려져 주목을 받지 못했을 뿐 무서운 경기력을 보여주었던 페트라 크비토바(21· 체코, 세계 8위)와 맞붙게 되었다. 왼손잡이, 체코 출신으로 전설적 스타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의 재림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크비토바는 강력한 서브와 공격적인 플레이가 돋보이는 선수다.

경기 이전 두 선수의 상대 전적은 2승 2패로 팽팽하였지만, 윔블던에서 작년에도 4강에 올랐던 크비토바가 3라운드에서 2:0으로 이긴 것을 비롯하여 올해 마드리드에서도 승리를 추가하는 등 최근에는 크비토바의 우세였다. 그리고 4강까지 올라오는 과정에서 보여주었던 크비토바의 강력함은 대단했다. 비록 아자렌카가 경험이나 현재 랭킹에서도 더 높지만, 크비토바의 우세를 조금씩 점쳤던 것은 이런 여러 가지가 반영되었을 것이다.

큰 경기에 대한 부담 때문일까 크비토바는 자신의 서브로 시작한 1세트부터 브레이크 위기에 몰렸다. 그러나 간신히 듀스를 만들고 서브 에이스로 위기를 탈출했다. 1세트의 승부처는 크비토바가 2-1로 앞선 아자렌카의 서브 게임이었다. 크비토바는 시작부터 강한 리턴으로 맞서며 아자렌카를 압박해 40-15의 브레이크 포인트를 만들었고, 각이 큰 포어핸드로 사이드라인을 공략하는 위닝샷으로 게임을 따냈다. 승기를 잡은 크비토바는 두 개의 서브 에이스로 무력 시위를 했는데, 갑자기 경기장 내에서 장비 소음이 발생하여 몇 초간 경기가 중단되기도 하였다. 아자렌카는 인상을 크게 찌푸리며 상당히 신경에 거슬리는 모습이었는데, 자신의 괴성 역시 거슬리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은 아는지 모르는지. 소리가 멈추고 아자렌카는 분발하여 듀스를 만드는 데는 성공했지만 크비토바는 강한 백핸드 스트로크로 위닝샷을 날리며 4-1로 도망갔다. 크비토바는 완전히 경기를 지배하며 아자렌카를 압박하였다. 두 선수 모두 베이스라인에서 경기를 펼치는 스타일이어서 스트로크 싸움으로 경기가 이어졌지만 크비토바의 힘이 아자렌카를 무너뜨리고 있었다. 크비토바는 다시 아자렌카의 서브 게임을 브레이크하고, 서브 에이스 3개로 세트 포인트를 만들며 마지막 게임까지 따내 6-1로 1세트를 마쳤다.


자신감이 넘치는 크비토바 ⓒ AELTC / T. Hindley


크비토바의 강한 모습은 예상했지만 경기는 기대보다 더 일방적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나 아자렌카는 2세트에서 시작과 동시에 강력한 반격을 보여주었다. 2세트 시작과 동시에 연속으로 7개의 포인트를 얻어 자신의 서브 게임을 지키고 쓰리 브레이크 포인트로 크비토바의 서브 게임을 위협했다. 크비토바는 1세트와는 달리 실책이 연속되며 처음으로 서브 게임을 놓친 반면 아자렌카의 발놀림은 갈수록 좋아졌다. 크비토바는 이어진 아자렌카의 서브 게임에서 강력한 리턴으로 브레이크를 노려봤지만 아자렌카의 손쉬운 승리로 끝나며 0-3이 되었다. 크비토바는 2-4에서 포어핸드를 앞세워 브레이크를 노렸지만 실패하였고, 서브 게임을 서로 잘 지키며 3-6으로 아자렌카가 두 번째 세트를 가져갔다.

운명을 가르는 3세트가 시작되었다. 먼저 서브를 넣게 된 크비토바는 뭔가 어수선했던 2세트와 달리 강한 서브로 가볍게 게임을 선취하며 쉽게 경기를 풀어갔다. 그리고 기세를 몰아 경기의 승부처가 된 아자렌카의 서브 게임을 뺏으며 분위기를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크비토바가 서브 게임을 지키며 점수는 3-0으로 벌어졌고, 서로 두 번의 서브 게임에서 점수를 얻어 5-2에서 아자렌카의 서브로 이 날 경기의 마지막 게임에 돌입했다. 크비토바는 아자렌카의 서브를 포어핸드, 백핸드를 가리지 않고 강하고 깊은 리턴으로 괴롭혔고, 마침내 매치 포인트에 돌입했다. 부담을 이기지 못한 아자렌카는 더블 폴트로 허무하게 1시간 44분이 걸린 경기에서 패하고 말았다. 작년 준결승에서 서리나 윌리엄스에게 패하며 눈물을 흘렸던 크비토바는 두 번째 도전만에 윔블던 결승 진출이라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경기 요약 (출처 : 윔블던 공식 사이트)


경기 기록을 잠시 살펴보면 가장 빠른 서브는 크비토바 시속 181km(113mph), 아자렌카 시속 170km(106mph), 평균(첫 서브)은 각각 시속 164km(102mph), 158km(98mph)였는데 서브 에이스는 9-1로 크비토바가 압도적이었다. 두 선수 모두 첫 서브 성공률이 60%대로 좋지 않아서 두 번째 서브에서 상대의 공격적인 리턴을 허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힘에서 밀린 아자렌카는 수비적으로 경기에 임했는데, 안정보다는 모험을 택하고 공격적으로 나선 크비토바가 결국 경기에서 승리했다. 아자렌카는 실책이 7개로 적었지만 위너 역시 9개로 적었고, 크비토바는 14개의 실책을 했지만 40개에 달하는 위너가 승리에 절대적인 요인이었다.


경기 후 서로 안아주고 얼굴을 비비는 훈훈한 장면을 연출한 두 선수 ⓒ AELTC / N. Tingle

크비토바는 피론코바와의 8강 경기에서도 나타났듯이 1세트의 압도적인 경기력에 비해 2세트에서 집중력이 떨어지는 점을 보완하면 결승에서도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상대인 샤라포바가 베이스라인의 최강자이지만, 대회 내내 서브에서 애를 먹고 있어서 크비토바와의 경기는 접전이 되지 않을까 싶다.


* 4강 두 번째 경기인 마리아 샤라포바와 자비너 리지키의 경기는 다음 글에서 계속.

많은 이들이 기대하던 16년 전인 1995년 세계랭킹 1위부터 4위였던 안드레 애거시, 피트 샘프라스, 보리스 베커와 고란 이바노세비치가 함께 4강에 올라 우승을 다투던 일의 재현은 없었다. Big 4 중에서 가장 안정된 경기를 하면서 윔블던 정상 탈환의 가능성을 높였던 로저 페더러(29, 스위스, 세계랭킹 3위)가 예상을 깨고 두 세트를 먼저 따내고도 나머지 세트를 모두 잃은 믿기지 않는 패배를 당하며 탈락한 것이다.

2011 Wimbledon Gentlemen's Single Final 4 ⓒ AELTC

대회 9일째 (29일)

센터 코트에서 조-윌프레드 송가(26, 프랑스, 세계랭킹 19위, a.k.a. 총가, 쏭가)를 상대하는 페더러의 4강은 눈 앞에 있는 듯했다. 같은 시각 옆 경기장에서 노박 조코비치(24, 세르비아, 세계랭킹 2위)가 버나드 토믹(18, 호주, 세계랭킹 158위)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혀 2세트를 내주며 고전하고 있을 때 페더러는 2:0으로 앞선 상태에서 3세트를 맞이하고 있었다. 페더러는 두 세트를 먼저 따낸 후 토너먼트 경기에서 178승 무패의 신화적인 전적을 자랑하고 있었고, 그의 서브와 스트로크는 전성기에 못지않을 정도로 정확도를 자랑하고 있었다. 아마 그는 피트 샘프라스의 윔블던 7회 우승과 동률을 이루는 꿈을 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페더러의 그랜드 슬램 우승은 16회에서 멈추게 될 지도 모르겠다 ⓒ AELTC / N. Tingle

그러나 페더러는 3세트 1-1로 맞선 상황에서 자신의 서브게임을 어이없는 실수로 내주면서 위기를 맞이하였다. 0-30에서 누가 보아도 페더러의 득점이다 싶은 쉬운 스매시를 사이드라인 바깥으로 날리며 브레이크 포인트에 몰렸고, 15-40에서 이번에는 반대쪽 사이드라인으로 날린 스매시를 송가가 강력한 포어핸드 위너로 연결시키며 브레이크했다. 송가와 페더러는 각자 자신의 서브게임을 잃지 않으며 5-4에서 송가의 서브게임을 맞이했다. 페더러는 이 서브게임을 브레이크하여 세트를 더 끌고 가서 역전을 노렸고, 송가는 마무리 짓기 위해 치열한 다툼을 벌였다. 페더러는 30-0으로 앞서며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으나, 송가가 네트를 살짝 넘기는 드롭샷과 서브 에이스로 30-30을 만들었다. 송가의 서브 에이스는 더블 폴트로 판정되어 40-15로 브레이크 포인트에 몰리게 되었지만, 송가의 챌린지로 판독한 결과 라인 끝에 아주 살짝 걸친 것이 인정되어 30-30으로 정정되었다. 송가는 포어핸드로 40-30을 만들며 세트 포인트에 도달했지만 페더러 역시 포어핸드로 듀스를 만들며 격렬히 저항했다. 송가가 한 점을 내면 페더러는 기어이 다시 점수를 내면서 어드밴티지와 듀스가 다시 반복되었는데 페더러의 샷이 네트로 향하고 송가가 서브 에이스로 점수를 내면서 세트를 끝냈다.

벌처럼 날아오른 송가 ⓒ AELTC / M. Hangst

이때까지만 해도 페더러가 경기에 패할 것이라 예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4세트부터 페더러의 체력 고갈이 눈에 보였다. 발놀림이 둔해져 좌우로 흔드는 서브와 스트로크를 보면서도 따라가지 못하였고, 공격에서도 첫 두 세트에서 80%가 넘었던 첫 서브 성공률이 낮아졌다. 3세트와 마찬가지로 1-1로 맞선 상황에서 다시 브레이크를 당하며 끌려가는 경기를 하다가 다시 4-6으로 세트를 내주었다. 두 선수의 운명을 가르는 5세트 역시 페더러의 서브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첫 게임에서 송가에게 브레이크를 당하며 힘겨운 출발을 했고, 마지막까지 송가의 서브게임을 브레이크하지 못하면서 4-5로 뒤진 채 송가의 서브게임을 맞이하였다. 송가는 페더러를 거세게 밀어붙여 쓰리 매치 포인트를 만들었고 페더러는 이를 극복하지 못하며 패하였다. 두 세트를 먼저 이긴 경기의 무패 기록이 깨짐과 동시에 윔블던 7회 우승을 노리던 그의 목표가 좌절되는 순간이었다. 송가의 3-2(3-6 6-7 6-4 6-4 6-4) 승리. 페더러는 실책을 고작 11개밖에 하지 않았음에도 송가의 힘과 스피드를 당해내지 못하고 무너지고 말았다.

No.1 코트에서 No.1을 바라보는 조코비치의 포효 ⓒ AELTC / N. Tingle

페더러와 같은 시간에 No.1 코트에서 경기를 하였던 조코비치는 져도 잃을 것이 없는 토믹에게 고전을 하였다. 토믹의 서브로 시작한 1세트 첫 게임을 가볍게 브레이크하며 1세트를 6-2로 가볍게 이겼다. 토믹은 긴장한 티가 역력했고 조코비치는 한 수 가르친다는 듯 여유 있는 경기를 했다. 그러나 여유가 방심이 되었을까 토믹은 2세트를 6-3으로 따냈고 조코비치는 햇빛을 피하기 위해 쓴 모자를 벗고 경기를 하였다. 3세트 역시 토믹은 상승세를 이어가며 3-1로 앞서갔지만 여기서 조코비치는 3세트와 4세트 첫 게임까지 이어지는 여섯 게임을 연속해서 따내며 3세트를 이겼다. 그대로 무너질 것 같던 토믹은 4세트에서는 격렬히 저항하며 5-5까지 따라갔지만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하고 5-7로 패하였다. 조코비치의 3:1(6-2 3-6 6-3 7-5) 승리.

조코비치와 송가는 4강에서 맞붙게 되는데 이 경기에서 이길 경우 결승 결과는 상관없이 라파엘 나달(25, 스페인, 세계랭킹 1위)을 밀어내고 월드 넘버 원에 오르게 된다. 패하더라도 나달이 우승을 하지 못하는 경우 역시 세계랭킹 1위에 오르게 되어 나달이 수성을 위해서는 우승과 조코비치의 결승 진출 실패라는 두 가지 조건이 모두 만족되어야 하는 불리한 상황에 처했다. 조코비치와 송가의 상대 전적은 송가가 5승 2패로 앞서 있는데, 5세트 경기인 그랜드 슬램에서는 1승 1패로 팽팽하다.

나달, 윔블던 2연패를 향하여 ⓒ AELTC / S. Wake

나달은 조코비치가 승리를 거두고 떠난 No.1 코트에서 마디 피쉬(29, 미국, 세계랭킹 10위)와 4강 진출을 다투었다. 나달은 초반부터 거세게 몰아붙여 피쉬의 서브게임을 브레이크하면서 첫 게임을 따내 기선을 제압했다. 나달은 첫 서브 성공률이 50%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좋지 않았지만 나달의 주 무기는 서브가 아니었다. 4-2로 앞선 일곱 번째 게임에서 다시 브레이크를 하며 5-2로 달아나며 승기를 잡았고, 브레이크로 따라 붙는 피쉬를 브레이크로 맞불을 놓으며 1세트에서 승리했다. 2세트는 2-1로 근소한 리드를 유지하던 네 번째 게임에서 단 한 번의 브레이크로 승부의 향방을 바꾸었다. 피쉬는 3-5로 뒤진 아홉 번째 게임에서 15-0으로 앞서면서 저항하려 했으나 나달은 가볍게 연달아 네 포인트를 따내며 "Vamos" 를 외쳤다.

3세트는 서로 한 번씩 사이좋게 상대의 서브게임을 브레이크하면서 시작하더니 5-5까지 쫓고 쫓기는 랠리가 이어졌다. 피쉬는 40-15로 앞선 열한 번째 게임을 서브 에이스로 마무리하면서 6-5로 앞서갔고, 기어이 다음 게임까지 강력한 포어핸드 스트로크로 따내면서 집에 가지 않기 위한 저항을 하였다. 승부가 갈린 4세트에서 나달은 1-1에서 피쉬의 서브게임을 브레이크하면서 앞서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피쉬에게 큰 부담을 주었다. 피쉬는 0-30으로 뒤진 마지막 게임에서 포어핸드 스트로크가 벗어나 쓰리 매치 포인트에 몰렸고, 나달은 마지막 포인트를 백핸드 발리로 따내 6-4로 세트를 마감하며 경기의 승자가 되었다. 나달의 3:1(6-3 6-3 5-7 7-4) 승리.

3년 연속 윔블던 4강의 앤디 머리. 이번에도 여기가 끝인가 ⓒ AELTC / J. Buckle

나달이 피쉬를 상대하는 동안 센터 코트에서는 앤디 머리(24, 영국, 세계랭킹 4위)는 펠리시아노 로페스(29, 스페인, 세계랭킹 44위)의 경기는 가장 재미없는 8강 경기였다. 1세트에서 2-2로 팽팽하게 가면서도 머리의 일방적인 흐름으로 가는 듯했던 경기는 3-2 에서 맞은 로페스의 서브게임을 머리가 브레이크하면서 확실히 기울어졌다. 5-3으로 앞선 머리는 아홉 번째 게임 40-15에서 서브 에이스로 세트를 따냈다. 머리는 자신의 서브게임은 전혀 내주지 않으면서 2세트와 3세트에서도 한 번씩 로페스의 서브게임을 브레이크하며 단 세 번의 브레이크로 경기를 이기는 효율적인 경기를 했다. 광서버 앤디 로딕(미국)을 서브로 때려눕혔던 로페스였지만 서브 에이스는 고작 7개밖에 기록하지 못해 머리의 13개에 밀렸다. 머리는 첫 서브의 성공률이 56%에 그치는 서브의 부진이 아쉬웠지만 40개의 위너를 기록하면서 11개의 실책밖에 저지르지 않는 안정적인 스트로크가 돋보였다. 머리의 3:0(6-3 6-4 6-4) 완승.

나달은 머리와 4강에서 맞붙게 되었는데 두 선수의 상대전적은 11승 4패로 나달의 우세다. 특히 윔블던에서 나달이 우승한 2008년과 2010년 두 차례 맞붙어 두 번 모두 나달이 3:0으로 이긴 바 있다. 머리에게는 이번이 복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자 3년 연속 4강을 넘어 첫 결승 진출을 노려볼 때가 되었다. 반면에 나달은 머리를 이기면 항상 우승했던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어서 두 선수의 승부가 어떻게 펼쳐질 지 관심이 간다.

토믹은 어떤 선수로 성장할 것인가? ⓒ AELTC / S. Wake

2004년 혜성처럼 등장했던 17세 소녀가 윔블던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그녀는 곧 본업인 테니스 이외에도 패션과 섹시 아이콘으로 유명해지며,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입을 올리는 여자 운동 선수가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어깨 부상으로 수술과 재활의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했고, 다시 힘들게 2006년 이후 5년만에 윔블던 준결승에 올랐다. 그녀의 이름은 다름아닌 마리아 샤라포바(24, 러시아, 세계랭킹 6위)다.

2011 Ladies' Single Final Four ⓒ AELTC

대회 8일째 (28일)

4라운드까지는 남녀 단식이 함께 열렸지만, 이제부터는 하루씩 번갈아 가면서 경기를 치를 예정이다. 물론 비라는 변수가 있어서 지붕이 있는 센터 코트가 아닌 다른 코트에서 경기하는 선수들의 경기가 연기될 가능성이 있지만 한국 시간으로 오늘 밤에 펼쳐지는 남자 8강 단식 두 경기를 제외하면 준결승과 결승은 센터 코트에서 열리기에 예정대로 열리게 될 것 같다.

환호하는 리지키 ⓒ AELTC / N. Tingle

센터 코트에서는 자비너 리지키(21, 독일, 세계랭킹 62위)와 마리온 바르톨리(26, 프랑스, 세계랭킹 9위)의 경기가 열렸다. 리지키는 중국의 리나를, 바르톨리는 디펜딩 챔피언 서리나 윌리엄스를 탈락시키며 우승 후보를 집으로 보낸 선수들. 쉬운 승부가 되지 않을 것이라 보였는데 3세트까지 갔지만 리지키가 경기 대부분을 이끌어갔다. 리지키는 1세트를 6-4로 승리했고 2세트 역시 5-4로 앞선 채 자신의 서브게임을 맞았다. 40-0의 쓰리 매치 포인트, 그러나 백핸드와 멋진 로브가 네트에 걸렸고 포어핸드마저 실책을 저지르며 듀스에 돌입했고, 더블 폴트를 저지르며 5-5 동점을 허용하고 말았다. 한 게임씩 더 따내며 결국 타이브레이크에 돌입하였고, 리지키는 집중력 부족으로 4-7로 패했다. 그러나 이미 바르톨리는 코트 전체의 빈 곳을 찾아 샷을 무차별적으로 날려댄 리지키에 의해 지쳐 있었고, 여전히 팔팔한 리지키는 바르톨리의 게임을 연속으로 브레이크하며 6-1로 쉽게 마지막 세트를 따냈다. 리지키의 2:1(6-4 6-7 6-1) 승. 이 승리로 리지키는 1999년 슈테피 그라프 이후 첫 독일 출신의 윔블던 여자 4강 진출 선수가 되었다.

리지키는 178cm, 70kg의 탄탄한 체격에 여자 선수 중에는 가장 강력한 서브를 구사하는 선수 중의 하나이고, 2009년 8월 세계랭킹 22위까지 올랐던 실력파 선수다. 작년과 올해 초는 조금 부진했지만 프랑스오픈부터 조금씩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프랑스오픈 2라운드에서 3번 시드의 베라 즈보나레바(러시아)를 상대로 3세트를 5-2로 앞선 채 매치 포인트를 맞이했으나 믿을 수 없는 5-7 역전패를 당하며 무너졌다. 경기 후 울면서 쓰러져 부상을 호소해 들것에 실려 나가기도 하는 사건이 있기도 했다(연기였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이처럼 그녀의 가장 큰 단점은 경기 중에도 오르락 내리락하는 기복이 심하다는 점인데 윔블던 8강 바르톨리와의 경기에서도 2세트에 이런 모습이 잠시 보였다. 그러나 윔블던의 전초전 격인 애곤 인터내셔널에서 우승을 하면서 컨디션을 끌어올린 리지키는 와일드카드로 출전한 윔블던에서 첫 그랜드 슬램 4강 진출의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5년만의 윔블던 준결승 진출을 이룬 샤라포바 ⓒ AELTC / N. Tingle

센터 코트의 두 번째 경기는 마리아 샤라포바와 도미니카 치불코바(22, 슬로바키아, 세계랭킹 24위)의 경기. 3개월 전 마드리드에서 치불코바에게 패한 적이 있던 샤라포바였지만 이 날 그녀의 컨디션은 절정에 올라 있었다. 강력한 베이스라이너의 면모를 뽐내며 포어핸드와 백핸드를 가리지 않고 좌우로 치불코바를 흔들며 경기를 유리하게 끌고 갔다. 대부분의 점수가 사이드라인과 베이스라인을 찌르는 스트로크에서 나왔을 만큼 샤라포바의 스트로크는 완벽에 가까웠다. 불과 한 시간 만에 2:0(6-1 6-1)의 완승이었다. 위너 23-3, 실책 10-11에서 보이듯이 완벽한 샤라포바를 위한 샤라포바에 의한 샤라포바의 경기였다.

샤라포바와 치불코바의 키 차이는.. 역시 크긴 크다 ⓒ AELTC / N. Tingle

경기 중에 현지 캐스터들도 샤라포바의 강력함에 할 말을 잃고 별다른 말을 하지 못할 정도였는데, 흥미로운 것은 지난 2004년 윔블던에서의 모습과 현재 샤라포바의 서브에 대한 비교가 있었다. 샤라포바는 전성기 때 시속 180km 후반의 강력한 서브를 넣는 선수였는데 최근에는 어깨 부상과 오랜 재활로 인한 두려움 때문인지 테이크 백부터 서브의 스윙 동작이 작아졌다. 그 때문인지 최고 속도와 평균 속도 모두 약 시속 10km 정도 줄어들면서 위력이 감소했고 서브 에이스의 숫자도 줄어들었다. 비가 와서 지붕을 덮고 경기가 열렸는데 덕분에 샤라포바의 "아오~!' "악!" "워우!" 함성이 경기장 안에서 진동하여 관중들의 귀가 따가웠을 것 같다. 치불코바의 부진도 샤라포바의 괴성에 압도된 것이 아닌지.

생애 첫 그랜드 슬램 준결승 진출을 이룬 아자렌카 ⓒ AELTC / J. Buckle

빅토리아 아자렌카(21, 벨라루스, 세계랭킹 4위)가 오스트리아의 타미라 파스첵(20, 세계랭킹 80위)을 2:0(6-3 6-1)으로 간단히 제압하고 역시 생애 첫 그랜드 슬램 4강에 진출하는 영광을 누렸다. 대부분의 그랜드 슬램에서 단식과 복식 모두 출전하는 욕심쟁이였는데, 이번에는 단식에만 출전하는 것이 체력적으로 더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자렌카는 1세트 1-1에서 연속으로 두 게임을 브레이크를 포함해 실점 없이 연속으로 따내며 3-1로 앞서 나갔고, 역전을 허용하지 않고 깔끔하게 세트를 마감했다. 아자렌카의 코너를 공략하는 강력한 스트로크와 스윙 발리 앞에 파스첵은 속수무책이었다. 2세트는 더 간단히 1-0에서 파스첵의 서브 게임을 브레이크하고 자신의 서브 게임을 지키며 3-0으로 앞서며 파스첵의 추격을 따돌렸다.

이 경기는 원래 No. 1 코트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1세트 첫 게임만에 비로 인해 경기가 중단된 후 재개와 중단을 반복하다가 센터 코트로 옮겨 경기가 열렸다. 윔블던 역사에서 경기를 다른 코트로 옮겨 치르는 것은 처음인데, 아자렌카와 파스첵은 그 역사적 순간의 '감동적인(moving) 경기'에 이름을 올린 주인공들이 되었다. No.1 코트에서 조용히 비가 그치고 경기가 시작하기만을 기다리던 팬들도 센터 코트의 입장권으로 교환할 기회를 얻게 되어 기다린 대가를 충분히 보상받은 셈이다. 전통보다는 실리를 택한 윔블던 위원회의 결정이 선수들과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을 위한 현명한 선택이었다. 덕분에 센터 코트에서는 샤라포바에 이어 아자렌카의 함성이 울려 퍼지며 소음 공해에 몸살을 앓았을 듯하다. 아자렌카 역시 최근 꾸준히 세계 톱 랭킹에 있으면서도 그랜드 슬램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는데 이번이 좋은 기회가 되었다.

2년 연속 준결승 진출의 크비토바 ⓒ AELTC / M. Hangst

비가 그치고 코트가 정리되면서 No. 1 코트에서 예정되었던 여자 단식 8강 두 경기 중 하나인 페트라 크비토바(21, 체코, 세계랭킹 8위)와 츠베타나 피론코바(23, 불가리아, 세계랭킹 33위)의 경기는 그대로 같은 경기장에서 열렸다. 작년 4강 진출자들의 대결이 된 이 경기에서는 여성 해설자가 여자 델 포트로라고 할 정도로 183cm, 70kg의 큰 체격을 가진 크비토바가(사실 샤라포바가 키는 188cm로 더 크지만 공식 프로필 상 체중은 고작 59kg라고 알려져 있다) 강력한 스트로크를 앞세워 피론코바를 밀어붙였다. 즈보나레바와 비너스 윌리엄스를 무찌른 피론코바는 그동안의 경기와는 달리 크비토바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자신의 서브 게임을 연속으로 브레이크 당하는 등 1세트를 힘없이 내주고 말았다. 2세트 초반에는 피론코바가 크비토바의 서브 게임을 브레이크하며 앞서 나갔지만, 크비토바가 피론코바의 서브 게임을 브레이크하며 따라잡고 접전을 벌이다 타이브레이크로 이어졌다. 타이브레이크에서 크비토바는 연속 실책 세 개를 범하며 2세트를 내주었지만, 3세트에서 지친 피론코바를 몰아붙이며 쉬운 승리를 거두었다. 크비토바의 2:1(6-3 6-7 6-2) 승리.

크비토바 역시 이번 승리로 첫 그랜드 슬램 우승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되었다. 4강에 오른 선수 중에서 단 한 번이라도 윔블던을 포함한 그랜드 슬램에서 결승 진출이라도 한 선수는 샤라포바가 유일하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단판 승부로 벌어지는 테니스에서 준결승과 결승이 주는 부담감이 큰 것을 생각하면 유경험자 샤라포바가 심리적인 면에서는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는 듯하다.

한국 시간으로 오늘 밤 9시부터 남자 단식 8강이 시작하는데 라파엘 나달의 부상은 예상대로 경기를 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레벨이 높은 선수들과 상대하게 되기에 부상으로 인한 경기력 손실이 얼마나 경기에 영향을 미칠 것인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달콤한 하루 휴식을 갖고 두 번째 월요일을 맞은 선수들. 악명높은 비는 내리지 않아서 경기가 지연되거나 취소되지 않았지만 뜨거운 햇살이 선수들에게는 편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경기를 마지막으로 윔블던에서 떠나야 하는 이들에게는 잔인한 블랙 먼데이가 되었다.

대회 7일째 (27일)

남자부에서는 '월드 넘버 원' 라파엘 나달(스페인)과 '황제' 로저 페더러(스위스)를 비롯한 4강 후보로 꼽힌 선수들이 모두 무사히 8강에 안착했다. 그러나 다른 네 명의 얼굴은 사실 기대했던 것과는 달랐다.

2세트 중간 인저리 타임을 갖는 라파엘 나달 © AELTC / T. Hindley

나달은 아르헨티나의 후안 마르틴 델 포트로를 3:1(7-6 3-6 7-6 6-4)로 꺾으며 8강에 올랐다. 델 포트로는 2009년 US오픈에서 페더러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지만 작년에 부진에 빠지며 한때 4위까지 올라갔던 랭킹이 485위까지 떨어지는 급추락을 경험했다. 그래도 두 개의 투어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조금씩 기량 회복을 하고 있던 중이어서 나달과의 명승부를 기대할 만하였다. 1세트부터 왼쪽 발의 이상으로 메디컬 타임을 요청하였던 나달은 다리를 저는 불편한 모습이었지만 1세트와 3세트 두 번의 타이브레이크에서 승리한 것이 컸다. 나달의 발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한 상태로 전해지고 있는데 검진 결과에 따라 다음 경기에 출전하지 않을 수도 있다니 결과를 지켜보아야겠지만 경기를 하는 모습으로 보아서는 출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Low-Vak 조코비치 © AELTC / S. Wake

나달이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거나 자신이 결승에 오르기만 해도 다음 주 세계랭킹에서 1위 자리에 오르게 되는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는 미카엘 로드라(프랑스)를 3:0(6-3 6-3 6-3)으로 쉽게 이겼다. 전형적인 서브 앤 발리 플레이어인 로드라는 54%에 그친 첫 서브 성공률이 발목을 잡았다. 바그다티스와의 힘든 경기에서 이긴 후 조금 더 정신을 차리게 된 것인지 조코비치는 냉정하게 경기를 하면서 1시간 41분 만에 경기를 마치고 8강에 진출했다. 조코비치는 8강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호주의 버나드 토믹을 상대한다.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페더러에게도 해당되는 말인지도 © AELTC / N. Tingle

페더러는 미하일 유즈니(러시아)의 공세에 첫 세트를 타이브레이크 끝에 지면서 대회 무실 세트 승리 기록이 중단되었다. 타이브레이크에서 2-1로 앞서던 페더러는 유즈니가 더블 폴트 등으로 자신의 서브 기회를 잘 살리지 못하자 4-2로 점수 차이를 벌렸지만 스트로크 미스가 이어지며 세트를 내주고 말았다. 2세트 2-2로 맞설 때만 하여도 페더러가 덜미를 잡힐 수 있겠다 싶은 분위기였지만, 페더러가 첫 브레이크를 성공시키며 3-2로 앞서 분위기를 반전시키며 세트를 따내고 3세트의 첫 게임 0-40으로 밀린 브레이크 위기에서 역전승에 이은 브레이크로 결정타를 날렸다. 페더러의 3:1(6-7 6-3 6-3 6-3) 승리. 페더러는 첫 서브의 성공률이 62%로 낮고, 실책을 25개나 범하는 등 다소 부진한 경기 내용이었지만 다재다능한 능력을 살려 승부처에서 점수를 따내며 승리를 이끌어냈다. 8강에서 맞붙는 상대는 조 윌프레드 송가(프랑스, a.k.a 쏭가 or 총가).

이제 머레이 대신 머리라고 부르기로 했다 (원어민 발음 중심주의) © AELTC / M. Hangst

앤디 머리(영국)는 리샤르 가스케(프랑스)를 상대로 3:0(7-6 6-3 6-2)의 승리를 거두었다. 첫 세트는 타이브레이크까지 가는 접전이었지만, 이후 두 세트는 머리가 쉽게 따냈다. 두 선수는 이 경기 전까지 맞대결에서 2승 2패를 기록하고 있었고, 작년 프랑스오픈에서 풀세트 접전을 벌여 머리가 두 세트를 먼저 내준 후 세 세트를 따내며 역전승을 거둔 명승부를 하기도 했었다. 머리는 첫 서브 성공률이 60%에 그쳤지만, 14개의 에이스와 36개의 리턴 실패로 이어질 만큼 위력을 발휘했고, 44개의 위너를 기록하면서 10개의 실책만을 저지르는 안정된 경기를 하였다. 머리는 쨍쨍한 햇빛을 의식한 듯 대회 처음으로 모자를 쓰고 경기를 한 것이 조금은 색달랐던 점. 8강의 상대는 이미 한 명의 앤디를 집에 보낸 스페인의 펠리시아노 로페스.

프랑스의 자존심 쏭가! © AELTC / T. Hundley

나머지 4명의 8강 진출자를 보면, 미국의 마디 피쉬(세계랭킹 9위)가 작년 준우승자 토마스 베르디흐(체코, 세계랭킹 7위)를 3:0(7-6 6-4 6-4)으로 누르고 8강에서 나달과 맞붙게 되었다. 1981년생으로 테니스계에서는 노장에 속하는 피쉬는 최근 들어 경기력이 더 좋아진 모습이어서 자신의 랭킹을 끌어올리고 있다. 송가는 세계랭킹 6위 다비드 페레르(스페인)를 3:0(6-3 6-4 7-6)으로 이기고 작년에 이어 8강 진출에 성공했다. 16강에 세 명이나 되었던 프랑스 선수 중 유일하게 살아남으며 프랑스 테니스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3라운드에서 이변을 연출했던 로페스는 역시 3라운드에서 가엘 몽피스를 누르며 이변을 일으킨 루카스 쿠보트(폴란드)와 그야말로 피 터지는 접전을 벌여 3:2(3-6 7-6 6-7 7-5 7-5)의 대역전극을 펼쳤다. 그 혈전을 치르고 나서 로페스는 바로 다음 경기장으로 달려가 혼합 복식 경기를 뛰어 승리를 거두었으니 이 사람 철인인지도. 토믹은 벨기에의 하비에르 말리세를 3:0(6-1 7-5 6-4)으로 완파하며 돌풍을 이어갔다. 세계랭킹이 고작 158위어서 이번 대회에도 예선을 거쳐 진출한 토믹은 그랜드 슬램 첫 4라운드 진출에 이어 8강 진출이라는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호주 남자 선수가 윔블던 8강은 참 오래간만의 일이다. 버나드 토믹 © AELTC / C. Brunskill

그래도 빅4가 건재했던 남자부보다 더 심하게 진창이 된 것은 여자 단식이었다. 윌리엄스 시스터즈(미국)가 나란히 짐을 싸게 되었고, 첫 그랜드슬램에 도전하였던 세계랭킹 1위 카롤리네 보스니아키(덴마크)도 무너졌다.

작년의 한을 푼 피론코바 © AELTC / M. Hangst

3라운드에서 베라 즈보나레바(러시아)에게 성공적인 복수를 했던 불가리아의 츠베타나 피론코바(32번 시드)는 비너스 윌리엄스를 2:0(6-2 6-3)으로 간단히 제압했다. 냉정하게 보았을 때 비너스는 그랜드 슬램에서 정상에 오르기 힘들 정도로 전성기에 비해 기량이 많이 쇠퇴했다. 그럼에도 윔블던 5회 우승의 관록을 믿어볼 만하였으나 반응 속도가 많이 느려진 몸이 반응하지 못하며 피론코바의 공을 받아내지 못했다. 피론코바는 이번 대회에서 단식 외에도 복식 멀티를 하였는데 복식 2라운드에서 패배한 것이 단식에 집중하는 계기가 될 것 같다.

바르톨리의 환호 © AELTC / N. Tingle

9번 시드를 받았던 마리온 바르톨리(프랑스, 세계랭킹 9위)는 서리나 윌리엄스를 2:0(6-3 7-6)으로 눌렀다. 오랜 공백을 가진 터라 초반에 발동이 잘 걸리지 않는 서리나는 1세트를 쉽게 내준 후에야 거센 저항을 했으나 바르톨리에게 패하고 말았다. 서리나는 비록 패하기는 했지만 윔블던 이후 다시 경기력을 회복할 경우 충분히 세계 정상권에 머물 실력을 가지고 있는 듯하여 조금 더 두고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디펜딩 챔피언으로서 포인트를 지키지 못해 세계랭킹이 저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은 면치 못하게 되었다. 바르톨리는 8강에서 이번 대회에서 무서운 기세로 달리고 있는 자비너 리지키를 상대하게 되어 쉽지 않은 경기가 예상된다.

보스니아키의 꿈을 무너뜨린 치불코바 © AELTC / J. Buckle

보스니아키의 패배는 더욱 드라마틱했다. 보스니아키는 도미니카 치불코바(불가리아, 24번 시드)를 맞아 1세트를 6-1로 가볍게 이겼다. 보스니아키는 1세트에서 첫 서브의 성공률이 79%에 달했고, 치불코바의 서브를 모두 리턴하면서 수비 여왕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러나 2세트부터 살아난 치불코바의 공격은 보스니아키의 수비를 붕괴시키기 시작했고, 타이브레이크 끝에 승리를 거두었다. 무려 74분이나 걸린 3세트는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으나 5-5에서 치불코바가 보스니아키의 서브게임을 브레이크하면서 앞섰고, 경기를 7-5로 끝냈다. 치불코바의 2:1(1-6 7-6 7-5) 승리. 치불코바는 올해 초 시드니 메디뱅크 인터내셔널에서 보스니아키를 이긴 적이 있기는 했지만 호주오픈에서는 패했고, 상대 전적이 2승 6패로 밀리고 있었는데 메이저대회 우승이 간절했던 보스니아키에게 통쾌한 복수를 했다.

샤라포바의 아악~! 서브 © AELTC / J. Buckle

아무리 그래도 현역 선수 중 윔블던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선수는 마리아 샤라포바(러시아)다. 단 한 차례 우승이었지만 그것이 너무도 강렬했던 그녀는 7년 전의 영광을 다시 누릴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샤라포바는 계속 대진 운이 좋은 편이었는데 4라운드에서도 중국의 펑슈웨이(20번 시드)를 맞아 2:0(6-4 6-2)의 쉬운 승리를 거두었다. 샤라포바는 여전히 서브에서 고전하였지만 서브 이후 경기를 풀어나가는 능력이 좋았다. 펑슈웨이에 비해서 9개 많은 위너를 기록하면서도 실책은 7개 적게 기록한 것이 가장 큰 승인. 그러나 상대 전적 2승 2패로 팽팽히 맞선 치불코바와의 8강 승부는 쉽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특히 올해 포함 최근 승부에서 모두 패한 것이 샤라포바로서는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다.

이번에는 인상을 덜 찌푸린 아자렌카 © AELTC / T. Hindley

빅토리아 아자렌카(벨라루스, 4번 시드)는 나디아 페트로바(러시아)를 2:0(6-2 6-2)로 가볍게 이겼다. 아자렌카는 자신보다 세계랭킹이 높은 선수들은 모두 떨어져서 첫 그랜드 슬램 달성의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페트라 크비토바(체코, 8번 시드)는 야니나 위크마이어(벨기에, 19번 시드)를 2:0(6-0 6-2)로 더 쉽게 이겼다. 시드 배정자들끼리의 경기에서 한 게임도 내주지 않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데 크비토바가 작년 윔블던 4강 진출이 운이 아니었음을 보여줄 지도 모르겠다. 시드를 받지 못한 이들의 대결에서는 3라운드에서 리나를 누르고 파란을 일으킨 자비너 리지키(독일)와 타미라 파스첵(오스트리아)이 8강행 티켓을 손에 넣었다.

윔블던 8일째인 28일에는 남자 단식 선수들은 휴식을 취하고(복식과 혼합복식은 경기가 있다), 여자 단식 8강의 네 경기가 모두 열린다. 과연 125회 윔블던 4강은 어떤 선수들이 올라갈 지 두고 볼 일이다.

이 분들도 센터 코트의 경기를 관람하셨다. 누구는 태어날 때부터 왕자, 나는 엄마 아들 © AELTC / M. Hangst

윔블던 3라운드가 끝나고 16강이 가려졌다. 4라운드까지는 무난히 진출하리라 예상되었던 선수들이 종종 탈락하면서 이변이 일어나고 있지만,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혔던 선수들은 여전히 안정된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어 갈수록 흥미진진한 승부가 이어질 것 같다. 여자부의 마리아 샤라포바(러시아)와 카롤리네 보스니아키(덴마크, a.k.a. 캐롤라인 워즈니아키) 등은 예정된 경기가 우천과 일몰로 취소되면서 하루 밀린 스케쥴을 소화하게 되었고, 남자부 경기에서도 여러 경기가 중단되면서 다음 날로 밀려서 선수들이 컨디션 조절이라는 다른 과제를 안게 되었다.

 

대회 5일째 (24일)

비가 와서 많은 경기들이 다음 날로 밀리며 많은 선수들이 고생을 해야했다. 톱시드를 받은 세계랭킹 1위 라파엘 나달도 비 앞에서는 경기를 할 수 없었다.

재빠르게 공을 향해 달리는 앤디 머레이 ⓒ AELTC / M. Hangst

앤디 머레이(영국)는 유일하게 지붕이 있는 경기장인 센터 코트에서 경기를 한 덕분에 예정대로 경기를 치를 수 있었다. 크로아티아의 이반 류비치치를 맞은 머레이는 1세트를 먼저 따냈지만 2세트에서 갑자기 흔들리며 세트 스코어 1:1을 허용하고 말았다. 경기가 풀리지 않을 때 순간적으로 페이스를 잃어버리는 고질적인 문제가 머레이의 발목을 잡으며 이미 탈락한 앤디 로딕(미국)에 이어 앤디들이 모두 탈락하는 듯했다. 그러나 3세트에서는 다시 자기 페이스를 찾으며 6-1로 쉽게 이기고, 4세트에서 타이 브레이크 끝에 7-6으로 마무리하면서 4라운드에 진출하였다. 류비치치는 최고 시속 224km(139mph)의 강서브를 앞세워 밀어붙였지만 스트로크의 정교함에서 머레이에 밀리며 경기를 내주었다.

 

세상에 아니 로페스에게 영원한 천적이란 없다 ⓒ AELTC / M. Hangst

이 날의 가장 큰 이변은 다른 앤디, 로딕의 탈락이었다. 로딕의 상대였던 스페인의 펠리시아노 로페스는 로딕과 일곱 번 맞붙어 단 한 번도 이긴 적이 없었기에 로딕의 낙승이 예상되었다. 로딕은 특기인 최고 시속 230km(143mph)의 광속 서브를 넣으며 로페스를 압박했지만 정확도가 떨어졌고, 로페스가 로딕의 코스를 잘 파악하고 대처하면서 힘든 경기를 하였다. 스트로크가 길게 이어질수록 단점이 많이 드러나는 로딕으로서는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1세트와 2세트에서 타이브레이크에서 패하고, 3세트에서 결정적인 브레이크를 당하며 로딕은 0:3의 완패를 당하고 말았다. 남자부의 톱 10 선수 중에서 첫 번째 탈락이었다.

굿바이 롸딕! ⓒ AELTC / M. Hangst

머레이에 밀려 센터 코트 대신 No.1 코트에서 경기를 하던 나달은 1세트를 7-6으로 따낸 후 경기가 비로 연기되었고, 후안 마르틴 델 포트로(아르헨티나), 가엘 몽피스(프랑스) 등도 역시 도중에 경기가 중단되었다.

샤라포바와 롭슨의 등장 ⓒ AELTC / N. Tingle

여자부에서는 전날 경기가 연기되어 치르지 못한 샤라포바와 보스니아키 등이 다른 선수들의 3라운드 경기에 앞서 2라운드 경기를 하였다. 샤라포바는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안은 17세 소녀 로라 롭슨에게 고전하며 1세트에서 1-4로 밀리며 첫 세트를 내주는 듯이 보였지만 익숙하지 않은 상대 파악이 완료되자 무섭게 점수를 따내며 타이브레이크까지 끌고 갔고, 타이브레이크에서도 2-4로 뒤지다가 다섯 점을 연속으로 내면서 승리했다. 1세트의 역전패의 충격이 컸을까 롭슨은 2세트에서는 큰 저항을 하지 못하며 경기는 샤라포바의 2:0(7-6 6-3) 승리로 끝났다.. 샤라포바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롭슨이 대단한 잠재력을 가졌다고 극찬하였다고. 보스니아키는 프랑스의 버지니 라자노를 1시간 6분만에 2:0(6-1 6-3)으로 제압하고 3라운드에 진출했다.

왜 아자렌카는 모두 인상을 쓴 사진만 있을까 ⓒ AELTC / M. Hangst

3라운드 경기에서는 빅토리아 아자렌카(벨라루스)가 다니엘라 한투코바(슬로바키아)와 풀세트 접전 끝에 2:1(6-3 3-6 6-2)로 이겼다. 한투코바는 2세트에서 무서운 집중력으로 아자렌카의 서브게임을 브레이크하며 3세트까지 경기를 끌고 갔지만 3세트 초반부터 발걸음이 무뎌지면서 패하고 말았다. 한투코바는 단식과 복식을 병행하고 있는데 적지 않은 나이에 많은 경기 때문인지 경기 후반으로 갈수록 조금씩 체력의 한계가 드러나는 듯하다. 샤라포바 못지 않게 경기 중에 괴성을 지르는 아자렌카는 음역대가 높아 경기를 볼 때 자연스럽게 음소거를 하게 된다.

2인자를 이긴 피론코바는 쩜오인가 ⓒ AELTC / T. Hindley

2번 시드, 세계랭킹 2위, 작년 준우승자 삼박자를 갖춘 2인자 베라 즈보나레바(러시아)는 불가리아의 스베타나 피론코바에게 덜미를 잡히며 탈락했다. 피론코바는 작년 준결승에서 즈보나레바에서 패하여 아쉽게 결승 진출에 실패했는데 그 빚을 제대로 갚았다. 어떻게 3라운드까지 올라오기는 했지만 뭔가 좋아보이지는 않았던 즈보나레바는 피론코바에 그냥 일방적으로 밀리며 졌다. 비너스 윌리엄스(미국)는 순식간에 마리아 호세 마르티네스 산체스를 이겼고, 프랑스의 마리온 바르톨리, 벨기에의 야니나 위크마이어, 체코의 페트라 크리토바 등도 승리를 거두며 4라운드에 진출했다.

 

대회 6일째 (25일)

포어핸드 스트로크 발사 준비 완료 ⓒ AELTC / M. Hangst

이 날의 일정은 밀린 경기의 재개부터 시작되었다. 나달은 룩셈부르크의 질레스 뮐러를 3:0(7-6 7-6 6-0)으로 물리치며 한 세트도 내주지 않고 승승장구하고 있다. 왼손잡이 선수끼리의 대결이어서 흥미있는 경기였는데 뮐러가 한 세트라도 타이브레이크에서 따냈더라면 나달을 조금 더 괴롭힐 수 있었겠지만, 아쉽게 두 세트를 내준 후 3세트에서는 전의를 상실하며 그냥 무너지고 말았다.

페더러의 원핸드 백핸드 스트로크는 정말.. ⓒ AELTC / J. Buckle

로저 페더러(스위스)는 아르헨티나의 다비드 날반디안을 3:0(6-4 6-2 6-4)으로 물리치며 1시간 46분만에 경기를 끝냈다. 그동안 애먹던 서브 성공률도 71%로 많이 올라왔고 최고 시속 209km(130mph)까지 나온 서브 속도 역시 지난 경기에 비해서 좋았다. 서브의 위력이 살아나자 경기를 유리하게 이끌어가면서 브레이크를 한 번만 허용하였고, 일곱 번의 브레이크 포인트에서 다섯 번 브레이크를 성공시키며 쉽게 경기를 이겼다.

공공의 적이 되어버린 조코비치 ⓒ AELTC / M. Hangst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는 사이프러스의 마르코스 바그다티스와의 접전을 3:1(6-4 4-6 6-3 6-4)로 승리하였다. 스코어처럼 조코비치가 우세한 경기를 했지만 바그다티스 또한 물러서지 않고 끈질기게 조코비치를 괴롭혔다. 각 세트마다 단 한 번씩만 브레이크가 있었는데, 세 번의 브레이크를 한 조코비치가 바그다티스를 눌렀다. 조코비치는 종종 날카로운 백핸드 스트로크를 보여주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실수가 많아서 경기를 어렵게 했다. 그러나 4세트에서 고비에서 서브 에이스를 기록하며 바그다티스를 압박하여 승리했다. 경기장 내에는 사이프러스 출신의 바그다티스의 팬도 많았고, 심지어 페더러를 응원하던 팬들까지도 잠재적 위협인 조코비치보다는 바그다티스를 응원하면서 조코비치는 공공의 적이 되는 듯싶었으나 관중들의 일방적인 응원도 잠재울만큼 조코비치의 기량이 한 수 위였다. 조코비치는 2세트 중반 랠리에서 샷을 미스한 후 라켓을 바닥에 세 번 치면서 부러뜨리는 모습을 연출하는 등 심한 감정 기복을 다시 보여주었다.

3년 전 바그다티스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그를 아저씨라 불렀다 ⓒ AELTC / T. Hindley

호주의 테니스 아이돌 버나드 토믹 ⓒ AELTC / T. Hindley

3라운드에서 호주의 레이튼 휴잇을 이겼던 5번 시드 로빈 소더링(스웨덴)은 호주의 버나드 토믹에게 0:3(1-6 4-6 5-7)로 힘없이 무너지며 탈락했다. 소더링은 휴잇과의 경기에서도 그다지 좋은 모습은 아니었는데 이 경기에서도 실망스러운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로딕에 이은 두 번째 톱10 선수의 탈락이 되었다. 휴잇으로 대표되던 호주 남자 테니스의 에이스 자리에 토믹이 세대교체를 선언하는 계기가 될지 관심이 간다. 휴잇의 패배로 상심했을 오지팬들이 다시 토믹의 이름을 외치며 경기장을 시끄럽게 할 것 같다. 그 외에 후안 마르틴 델 포트로(아르헨티나)와 다비드 페레르(스페인) 등이 역시 4라운드에 진출하며 16인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현지 캐스터는 캐롤라인 보스니아키라고 그녀를 부른다. 쳇! ⓒ AELTC / J. Buckle

하루 만에 경기를 다시 치르게 된 보스니아키는 호주의 자밀라 가조소바를 2:0(6-3 6-2)로 가볍게 이기고 4라운드에 진출했다. 이틀 연속 1시간 6분 만에 경기를 끝낼 정도로 좋은 몸 상태와 안정된 기량을 보여주고 있어서 생애 첫 메이저 대회 우승 가능성을 밝히고 있다. 가조소바는 예전에 자밀라 그로스라는 이름으로 뛰던 선수인데, 이혼을 하고 다시 결혼 전의 성으로 경기에 나서고 있다. 태생은 슬로바키아지만 호주 이중국적을 가지고 있어 호주 국적으로 경기에 출전하고 있다.

그녀는 마치 성난 암사자와 같았다 ⓒ AELTC / S. Wake

샤라포바와 서리나 윌리엄스(미국)도 한 수 위의 기량으로 모두 2:0 승리를 거두며 가볍게 4라운드에 진출했다. 샤라포바는 여전히 서브의 정확도에 문제를 드러내고 있지만 경기력이 안정 궤도에 올라 있는 상황이고, 서리나는 초반 두 경기에서는 코트가 낯선 듯 경기 중반부터 발동이 걸리는 모습이었지만 경기 감각을 차츰 회복해가는 것이 눈에 보인다. 이 두 선수는 경기를 치를수록 더 강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2라운드 최고의 이변을 일으켰던 자비너 리지키(독일)도 일본의 미사키 도이를 꺾고 4라운드에 합류했고, 아나 이바노비치는 체코의 페트라 세트코브스카에 가볍게 패하며 다시 짐을 싸게 되었다.

6일 동안의 일정을 마친 윔블던은 오늘 하루를 쉬고 내일 7일째 일정을 재개한다. 7일째에는 단식 4라운드 경기가 모두 열려 절반이 탈락하고 8강이 가려지게 된다. 과연 누가 남고 누가 집으로 돌아갈 것인가.

마지막 사진은 신데렐라가 될 뻔했던 롭순이로.. ⓒ AELTC / N. Tin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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