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오픈의 공식 일정에 따르면 여자 선수들은 대회 첫 날과 둘째날에 1라운드 경기를 모두 마치도록 되어 있지만, 남자 선수들은 3일에 걸쳐 경기를 진행하게 된다. 남자 경기는 하루씩 밀려서 진행이 되는데 어차피 결승이 여자 경기 다음날에 열리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는 것 같다. 중간에 휴식일이라는 것이 없어서 비가 내리다보면 일정이 꼬일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회 첫 날 (8월 29일)

<남자부>

이변은 그다지 일어나지 않았다. 윔블던 우승자 페트라 크비토바(체코)가 1라운드에서 덜컥 발목이 잡혀 탈락하였지만 대부분의 시드 배정자들은 무사히 1라운드를 통과했다.

남자부에서는 빅4 중에서 가장 먼저 경기를 치르는 로저 페더러(스위스·3위)에게 관심이 모아졌다. 페더러는 윔블던에서 충격의 역전패를 당하며 8강에서 떨어지기도 했지만, 그의 커리어 중에서 가장 쓸쓸한 한 해를 보내고 있다. 역시 하향세를 맞이했다는 말을 들었던 작년에 US오픈 시리즈인 로저스컵에서 준우승에 이어 W&S마스터스에서 우승을 차지하였고 US오픈도 준결승까지 진출하였던 것에 비해 올해는 그랜드슬램 무관에 윔블던 이후 W&S오픈 8강이 최고 성적인지라 전망이 그다지 밝지는 않은 상태다. 그래도 대회 첫 날 메인 경기장인 아더 애쉬 스타디움에서 저녁 마지막 경기로 페더러의 경기가 열릴 만큼 여전히 테니스계의 최고 스타임을 입증하였다.


페더러의 전매특허인 한손 백핸드 ⓒ Rob Loud/usopen.org

페더러의 상대는 세계랭킹 52위인 콜롬비아의 산티아고 히랄도였는데 그는 호주오픈을 제외한 다른 그랜드슬램에서 한 번도 승리를 거둔 적이 없었다. 경기 초반 페더러는 첫 서브 성공률이 50%에 그칠 만큼 서브에 애를 먹으며 고전하였고, 스트로크 역시 좋지 않아 실책을 남발하면서 접전을 이어갔다. 특히 이제 공공연한 페더러의 약점이 되어버린 한 손 백핸드는 높게 오는 공을 원하는 곳으로 쉽게 쳐내지 못하며 경기를 어렵게 풀어가는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1세트를 6-4로 따낸 후 2세트부터는 히랄도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과감한 네트플레이를 앞세워 경기를 주도해갔다. 올 어라운드 플레이어지만 피트 샘프라스 이후 현재 최고의 서브 앤 발리 플레이어이기도 한 그의 능력이 돋보였다고나 할까. 결국 3:0(6-4 6-3 6-2)으로 페더러의 승리.

피쉬의 강서브 ⓒ Philip Hall/usopen.org

설마하는 마음이 있기는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 주목해야 할 다크호스인 미국의 마디 피쉬(8위)는 US오픈 시리즈에서의 상승세를 몰아 1라운드를 가볍게 통과했다. 자국에서 열리는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안은 피쉬는 아더 애쉬 스타디움의 대회 첫 경기에서 독일의 토비아스 캄케를 3:0(6-2 6-2 6-1)으로 이겼다. 피쉬는 페더러와 동갑인 81년생이지만 최근에 와서야 세계 무대에서 빛을 보기 시작한 특이한 케이스다. 2살 때부터 베이스라인에서 공을 넘길 수 있었을 만큼의 천재였다고 하는데(대개 톱클래스의 선수들은 5,6세 전후로 테니스를 배우기 시작한다고 알려져 있다), 늘 동료인 앤디 로딕에게 가려져 있다가 올해 세계랭킹에서도 로딕을 추월하면서 미국 남자 테니스계의 에이스로 떠올랐다. 역시 이 경기에서 장기인 강서브와 포어핸드 스트로크를 앞세워(로딕과 비슷한 스타일을 떠올리면 된다) 일방적인 경기를 펼쳤다. 서브에이스는 4개에 불과했지만 첫 서브의 86%가 득점으로 이어질만큼 강력한 서브였다.

테니스 최강국으로 떠오른 세르비아의 팁세라비치 ⓒ Andrew Ong/usopen.org

다른 시드 배정자 중에는 프랑스의 가엘 몽피스(7위), 체코의 토마스 베르디흐(9위), 세르비아의 얀코 팁세라비치(20위) 등이 3:0으로 가볍게 1라운드를 승리로 장식했고, 세르비아의 No.2 인 빅토르 트로이키(15위)가 콜롬비아의 알레한드로 팔라(119위)에게 2:3으로 역전패하며 시드 배정자 중에서 첫 희생자가 되었다. 윔블던에서 선전했던 호주의 버나드 토믹(60위)도 승리를 거두었고, 노장 후안 카를로스 페레로(스페인·105위)와 토미 하스(독일·475위)도 1라운드를 통과했다.

 

<여자부>

앞서 설명한대로 이변은 여자부에서 일어났다. 크비토바가 루마니아의 알렉산드라 둘게루(48위)에 0:2(6-7 3-6)로 완패하며 윔블던 우승자가 US오픈 1라운드에서 탈락하는 사상 최초의 기쁘지 아니한 기록을 세운 것. 최근 크비토바의 경기를 보면 윔블던에서 보여주었던 힘과 세기를 찾아볼 수 없어 이번 대회 직전에 우승 후보로 꼽는 이들이 드물었다. 크비토바에 따르면 윔블던 우승이 큰 부담으로 작용했고 그 이후 경기에 집중하기 어려웠다고 하는데, 유망주에서 그랜드슬램 우승자가 되고 난 후 다른 선수들의 견제도 심해지고 작은 행동에도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면서 여러 면에서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꾸준하게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도 실력이기에 아쉬움이 남는다. 크비토바는 첫 서브 성공률이 50%에 채 미치지 못하였고, 52개의 실책을 저지르는 등 스스로 경기를 말아먹으며 패하였다. 다음 대회에서는 심기일전하여 달라진 모습을 기대해본다.

안녕, 크비토바 ⓒ Philip Hall/usopen.org

이제 더이상 정상권에서 멀어졌지만 여전히 이름만 들어도 무서운 비너스 윌리엄스(미국·36위)는 러시아의 베스나 도론츠(91위)를 맞아 여전히 남자보다 강한 서브를 뿜어내며 1라운드를 가볍게 이겼다. 비너스는 서브는 최고 126mph(202km/h)이나 나오며 여전함을 과시했지만 운동량과 움직임에서 노쇠한 기미를 전혀 떨쳐내지는 못했다. 상대보다 많은 27개의 실책을 저질렀음에도 28개나 되는 위너를 앞세워 2:0(6-4 6-3)의 승리를 거두었다.

비너스의 서브는 무서웠다 ⓒ Rob Loud/usopen.org

마리아 샤라포바(러시아·5위)는 첫 경기부터 고질적인 문제인 들쑥날쑥한 경기력을 보여주며 그녀를 우승후보로 점찍었던 사람들에게 물음표를 던져주었다. 샤라포바는 무명의 히더 왓슨(영국·102위)에게 첫 세트를 내주며 끌려가다가 2세트를 7-5로 이기며 힘겹게 경기를 원점으로 돌려놓았고 3세트를 따내며 2:1(3-6 7-5 6-3)로 간신히 경기를 가져올 수 있었다. 좋지 않은 날에 꼭 보여지는 저조한 서브 성공률과 결정적인 순간의 더블 폴트, 그리고 상대를 압도하는 수의 실책이 쏟아져 나오며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경기력이었다. 상대가 약했던 것이 샤라포바가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였지 조금이라도 경험이 많고 차분하게 대처하는 선수였더라면 1라운드 탈락이라는 수모를 당할 뻔했다.

샤라포바는 그때 그때 달라요 ⓒ Philip Hall/usopen.org

베라 즈보나레바(러시아·2위), 마리온 바르톨리(프랑스·9위), 펑슈아이(중국·14위) 등 크비토바를 제외한 시드 배정자 모두가 1라운드를 통과했다. 일본 선수로는 미사키 도이와 아유미 모리타 등이 출전했지만 모두 경기 도중 기권하며 탈락했고, 16세 신인 메디슨 키스(미국·455위)가 자신보다 21살이나 많은 질 클레이바스(미국·111위)를 누르며 2라운드에 진출해 '오늘의 선수'에 선정되었다.

"Player of the Day" 메디슨 키스. 그녀가 미국 테니스계의 희망이 될지 ⓒ Andrew Ong/usopen.org

시간적 여유가 없어 대회 5일째가 끝난 후에야 겨우 첫 날 리뷰를 작성했다. 그래도 주말이니 따라잡기 위해 계속 분발하는 수밖에..

 

오프닝 나이트 세레모니였다고.. 앗 직접 보고 싶다. ⓒ Don Star/usope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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