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저 페더러(스위스·3위)는 다시 세월의 무상함을 느꼈을 경기였다. 먼저 두 세트를 따내고도, 더블 매치 포인트에서 단 한 점을 내지 못하며 내리 네 게임을 내주고 다 잡았던 결승행 티켓을 놓치고 말았다. 페더러는 2년 연속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1위)에게 US오픈 준결승에서 패하면서 올해 그랜드슬램 무관으로 시즌을 마치게 되었고, 2003년 이래 매년 최소 한 개 이상의 그랜드슬램 우승을 하던 기록이 중단되었다. 윔블던에서 조코비치에게 패하며 타이틀 방어에 실패했던 디펜딩 챔피언 라파엘 나달(스페인·2위)은 다시 챔피언 자리를 놓고 조코비치와 다시 맞붙게 되었다.

페더러와 동갑내기인 서리나 윌리엄스(미국·27위)는 세계 1위인 카롤리네 보스니아키(덴마크)를 맞아 승리하며 통산 네 번째 우승에 도전하게 되었는데, 페더러는 먼저 두 세트를 이기면 결승에 진출하는 여자 경기를 보면서 그랜드슬램 남자 단식이 5세트 경기인 것을 원망할지도 모를 일이다.

 

조코비치의 환호 ⓒ Getty lmages

대회 13일째 (9월 10일, 현지시간)

<남자 준결승>

정상적인 대회 진행이 이루어졌다면 토요일(10일) 오후에 여자 결승, 그리고 일요일(11일) 오후에 남자 결승이 열리면서 대회가 끝났겠지만, 이틀 간의 우천으로 인해 대개 하루씩 먼저 열리는 여자 준결승이 남자 준결승과 같은 날에 열리고, 결승전은 하루씩 밀리는 새로운 일정이 발표되었다.

빅4의 전원 생존으로 최고의 카드가 만들어진 남자 준결승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페더러의 행보에 모든 관심이 쏠렸다. 윔블던부터 대회 직전까지 부진했지만 이번 대회만을 노린 듯이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것도 있고, 그냥 페더러의 경기 내용에 따라 우승자가 달라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조코비치가 페더러를 이기면 우승은 그의 차지가 될 것이고, 페더러가 이기면 나달이 우승을 할 것이라는 페더러 팬들에게는 미안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페더러가 조코비치와 나달에게 밀리는 것은 그 지겨운 한 손 백핸드의 고질적인 약점은 뒤로 하더라도 스피드와 체력적인 면의 열세가 가장 크기에 두 선수를 상대로 긴 랠리를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이 경기에서 이길 것이라 믿었을 페더러 ⓒ Philip Hall/USTA

전성기에는 상대를 압도하는 기량으로 굳이 풀세트 접전을 치를 필요가 없던 페더러였지만, 이제 그의 기량이 쇠퇴하고 그를 밀어낼 만큼 성장한 어린 선수들과의 상대하면서 경기가 길어질수록 고전하는 일이 많아졌고, 최근 풀세트 경기에서의 저조한 승률은 현재 그가 처한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하고 있다. 이를 의식한 페더러는 초반부터 우세를 잡기 위한 노력을 했고, 1세트를 타이브레이크 끝에 따내고 2세트마저 조코비치의 갑작스런 난조를 놓치지 않고 서브 게임을 브레이크하여 승리하며 결승까지는 단 한 세트만을 남겨두었다. 그러나 3,4세트에서 페더러의 움직임은 급격이 둔해졌지만 조코비치의 샷은 페더러를 계속 움직이게 하면서 괴롭혔다. 페더러의 실책은 갑자기 늘어나기 시작했고 3세트에 이어 4세트마저 일찌감치 승부가 난 듯하자 5세트에 총력을 다하기 위하여 힘을 아끼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러나 점점 어두워진다 ⓒ Philip Hall/USTA

결국 승부를 가른 것은 5세트였다. 페더러는 4-3에서 조코비치의 서브 게임을 브레이크하며 5-3으로 앞서며 서브 게임을 맞아 경기를 끝낼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조코비치의 강력한 포핸드 리턴 득점에 이어 페더러의 포핸드가 네트를 맞고 튀면서 옆으로 나가면서 듀스가 되었고 결국 페더러는 이 게임을 더블 폴트로 조코비치에게 내주고 말았다. 끝낼 기회를 놓친 페더러에게 남은 것은 지옥과도 같았을 4연속 게임 패배와 함께 믿기지 않는 역전패였다. 전성기 시절 워낙 압도적인 경기를 해서일까 페더러는 이런 긴장된 승부처에서는 약해지는 모습이 있는 듯하다. 듀스가 되었더라도 페더러는 여전히 유리한 상황이었고, 게임을 브레이크 당한 후에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는 너무 힘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조코비치의 3:2(6(7)-7 4-6 6-3 6-2 7-5) 대역전승.

조코비치가 기사회생한 5세트 페더러의 더블 매치 포인트

 

조코비치 날다 ⓒ Andrew Ong/USTA

앤디 머리의 팬에게는 참 미안한 이야기지만 여전히 머리는 빅4라고 불리면서도 다른 세 선수와 자신과 사이에 보이지 않는(어쩌면 뚜렷하게 보이는 것일수도 있다) 그 벽을 넘어서지 못하며 나달에게 다시 패하며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개인적으로는 우승을 한 번 하고 나면 더 발전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랜드슬램 준결승에서 계속 나달을 만나는 것이 불운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동갑내기인 조코비치가 이미 페더러-나달의 시대를 마감하고 자신의 시대를 열어가는데 반하여 여전히 라이벌들을 빛나게 해주는 명품 조연의 역할에 그치고 있다.

어찌보면 참 불쌍한 앤디 머리 ⓒ Philip Hall/USTA

이 중요한 경기에서도 경기 내용이 들쑥날쑥한 고질적인 문제는 나아지지 않아서 톱 랭커들과의 승부에서 늘 고배를 들 수밖에 없는 그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고 말았다. 1세트 2-1로 앞선 나달은 네 번째 게임에서 더블 브레이크 포인트의 기회를 잡았지만 리턴 실패와 머리의 발리로 듀스를 허용했고 다시 서브 리턴에 실패하면서 머리에게 어드밴티지를 허용했다. 그러나 백핸드 실책으로 다시 듀스로 돌아간 머리는 서브로 득점하며 다시 게임을 이길 기회를 잡았지만 또 백핸드 실책으로 듀스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두 번의 기회를 놓친 머리에게 세 번째 기회는 없었는데 더블 폴트와 포핸드 실책으로 게임을 내주면서 3-1로 뒤지게 되었다. 이 한 번의 브레이크가 1세트의 승부를 갈랐고 6-4로 나달이 승리하였다. 2세트는 머리의 고질병인 집중력 부족이 드러나며 힘도 써보지 못한 채 나달이 6-2로 승리했다.

나달의 환호 ⓒ Philip Hall/USTA

나달의 쉬운 승리로 끝나기에는 팬들에게 미안했는지 머리는 3세트에서 분발하여 나달과의 스트로크 대결에서 밀리지 않으며 6-3으로 이기며 4세트에 돌입하게 되었다. 4세트 초반에는 경기가 팽팽하게 진행되면서 5세트까지 경기가 이어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네 번째 게임에서 나달은 결정적인 브레이크를 하며 머리에게 넘어갔던 경기 주도권을 빼앗아왔다. 1세트 나달의 브레이크와 마찬가지로 나달의 더블 브레이크 포인트에서 듀스 2회의 접전을 거친 후 더블 폴트와 포핸드 실책으로 머리가 서브 게임을 내주면서 3-1이 되었다. 나달은 서브 게임을 지키며 리드를 4-1로 벌렸고 머리는 3세트에서처럼 나달의 백핸드를 공략하면서 기습적으로 포핸드를 노리던 전술이 나오지 않으면서 무너지고 말았다. 나달의 3:1(6-4 6-2 3-6 6-2) 승리. 4세트 경기였지만 두 선수의 랠리가 길게 이어지며 경기 시간은 3시간 24분이나 걸렸다. 이로써 조코비치와 나달은 윔블던에 이어서 그랜드슬램 두 대회 연속으로 결승에서 맞붙게 되었다.

 나달의 서브 ⓒ Philip Hall/USTA

<여자 준결승>

No.1 보스니아키의 가장 큰 장점은 안정된 수비력이다. 공격은 컨디션에 따라 기복이 심하지만 안정된 수비는 지지 않는 경기의 바탕이 되기에 보스니아키가 시즌 내내 경기를 치르면서 그랜드슬램에서 변변찮은 성적을 거둠에도 압도적인 랭킹 1위를 달릴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는 창이 방패를 뚫을 만큼 날카롭지 못할 때에나 가능한 일이지 이 날처럼 서리나가 강력한 서브를 퍼부으면서 경기를 주도하는 날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랜드슬램은 정녕 그녀에게 인연이 아닌가 ⓒ Philip Hall/USTA

1세트는 2-1로 앞서던 서리나가 연속으로 보스니아키의 서브 게임을 브레이크하면서 5-1로 앞서면서 손쉬운 승리를 챙겼다. 네 번째 게임에서 트리플 브레이크 포인트에 몰렸던 보스니아키는 친절한 서리나의 3연속 라인을 벗어나는 실책으로 듀스를 만들며 기사회생했지만 세 번의 어드밴티지를 살리지 못하고 서브 게임을 내주었다. 2세트에서도 보스니아키는 2-1에서 서리나의 발리와 포핸드에 30-0으로 밀리더니 빗맞은 포핸드가 로브같이 들어가면서 서리나에게 사이드라인 근처로 떨어지는 포핸드 위너를 맞으며 트리플 브레이크 포인트에 몰렸다. 여기가 승부처임을 직감했을까 보스니아키는 더블 폴트로 게임을 내주며 1세트의 악몽을 되풀이하는가 싶었다. 그러나 서브 게임을 잘 지키면서 반격의 여지를 마련한 보스니아키는 5-3으로 뒤진 아홉 번째 게임에서 중요한 브레이크를 하면서 패배의 위기에서 일단 벗어났다. 서리나는 서브 에이스로 깔끔한 출발을 보였지만 더블 폴트로 동점이 되었다. 강서브에 이은 스매시로 30-15로 앞서며 경기를 끝낼 듯하였지만, 포핸드가 베이스라인을 벗어나고 네트에 걸리며 브레이크 포인트에 몰렸고 다시 더블 폴트를 범하며 게임을 내주며 5-4로 쫓겼다. 기사회생한 보스니아키는 서리나의 포핸드가 사이드라인을 벗어나며 기분 좋은 출발을 하였지만, 서리나의 포핸드를 두 번이나 맛을 본 다음 백핸드가 네트에 걸리며 매치포인트에 몰렸다. 보스니아키의 첫 서브가 폴트가 되면서 세컨드 서브를 잔뜩 노리고 기다리던 서리나는 강력한 백핸드 리턴을 날렸고, 보스니아키가 받아 친 공이 네트에 걸리며 경기는 끝났다. 2:0(6-2 6-4)으로 서리나가 승리하면서 통산 네 번째 우승에 단 1승만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

30대의 힘 서리나 윌리엄스 ⓒ Don Starr/USTA

다른 준결승 세 경기가 메인 경기장인 아더 애쉬 스타디움에서 열린 반면 상대적으로 인기가 적었던 사만다 스토서(호주·10위)와 안젤리크 케르베르(독일·92위)의 경기는 그랜드스탠드에서 열렸다. 앞의 세 경기를 보느라 직접 보지는 못하였는데 스토서가 2:1(6-3 2-6 6-2)로 케르베르를 이기고 생애 처음으로 대회 결승에 진출했다. 경기 결과를 놓고 보면 네트 플레이로 얻은 점수에서 스토서가 27-9로 압도적으로 많은데 스토서의 많은 복식 경기 경험이 큰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다.

기뻐하는 스토서 ⓒ Don Starr/US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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