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국 프로야구에서 김성근 감독과 SK만큼이나 논쟁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나 팀은 없을 것이다. 골수 LG팬의 입장에서 6년 전에 김성근 감독이 해임되지 않고 LG에 계속 있었더라면 두 번이나 꼴지를 하면서 엘롯기 동맹에 합류하고, 5년만의 8연승 한 번 했다고 주목받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지금 그는 내가 응원하는 팀을 며칠 전에 때려부순 적장일 뿐이다.


나는 김성근 감독의 경기스타일을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먼저 밝혀두고 싶다. 이미 떠나간 선수이지만 김재현이 플래툰 시스템에 갇혀 있고, 타자 라인업이 매일 바뀔 정도에 투수들은 벌떼로 등판을 한다. (최근에는 팀 사정상 벌떼 마운드가 어렵다지만) 선수가 사람이 아닌 기계의 부속품처럼 생각한다는 말도 일정 부분 일리가 있다. 그런데 만약 내가 응원하는 팀이 저렇게라도 야구를 해서 이기면 몇 가지 아쉬운 점은 있더라도 기분이 좋더라는 것이다. 투수들이 좌르르 등판하여 꾸역꾸역 경기를 이기고 나면 몇 시간이 걸리더라도 승리의 기쁨을 안고 집으로 돌아오더라는 것이다.


김재박 감독이 LG로 오기로 결정이 되었을 때, 번트야구에 대해서 많은 팬들이 우려를 했다. LG의 신바람 야구하고 김재박 감독의 번트 야구와는 맞지가 않는다고.. 그런데 하도 팀이 바닥을 기고 있어서였을까, 이대형이 기습번트로 출루하고 도루한 다음 2번 타자가 번트로 3루 보내고, 3번 타자가 스퀴즈로 불러들여 점수를 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매경기를 이렇게 하면 또 불만의 소리가 나오겠지만, 내가 응원하는 팀이 이기는 것을 보고 싶었다. 타선이 강공으로 점수를 낼 능력이 안 된다면 번트를 대서라도 점수를 내서 이겼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다른 팀의 팬이 볼 때는 얄밉고 짜증나는 경기일지라도, 프로 구단은 응원하는 팬들에게 승리하는 경기를 보여주어야 한다. 홈런 6개를 치면서 22대 17로 이기나, 투수 돌려막기와 스퀴즈로 1대 0으로 이기나 승리하는 것은 똑같다. 진정 자신이 좋아하는 팀을 응원하는 팬들이라면 규칙 안에서 경기를 하여 이긴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


김재박 감독이 LG로 와서는 예전만큼 번트를 많이 대는 것 같지 않아 보인다. 당연히 LG의 투수진들이 점수를 지켜낼 수 없으니 경기가 팽팽해서 선취점을 내야 할 때나 하위타선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타자들에게 맡기는 것 같다. 작년까지만 해도 김재박 감독에 경질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요즘에는 그 수가 확 줄어들었다. 최근 KIA의 조범현 감독 경질론도 조금은 수그러들었다고 하고, 반대로 로이스터 감독에 대한 불만의 소리는 조금 더 많아졌다니 역시 프로는 성적으로 모든 것을 말하는가 싶다.


그나저나 김성근 감독의 경기 스타일 중 잦은 투수교체는 이미 한국 야구의 트렌드가 되었다. 덕분에 우리 경기 시간은 다른 나라보다 훨씬 길고 조금 지루한 면이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는 열심히 하고 있는 선수들에게 미안하지만 과거처럼 강력한 투수가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선동열, 최동원 시절에 이 선수들은 하루 쉬고 나와서도 혼자서 몇 이닝을 무식하리만큼 공을 뿌려주었으나 요즘에는 이런 투수를 찾기가 힘들다. 선발 투수의 완투가 사라져 가고 있고, 중간에서도 2이닝 이상 길게 가 줄 수 있는 투수를 찾기도 힘들다. 사상 최악의 타격전이었던 15일 목동 경기만 보아도 어떻게 한 타자 막기가 힘드니 이런 투수들에게 몇 이닝을 맡기고 한 두번의 투수 교체로 경기를 마무리하는 것은 애시당초 어려운 일이다.


만약에 한 팀의 선발 투수진이 선동열-최동원-이상훈-정민태-봉중근(LG팬이라 취향이 반영되었음)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어느 감독도 이런 벌떼 야구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여기에 전천후로 뛸만한 송유석 같은 투수에 마무리 김용수가 있으면 1군 엔트리에 투수를 7명만 올려도 될 것이다. 교체는 기껏해야 한두 번이고, 때로는 선발 투수가 경기를 마무리지어 줄 터이니.. 그러나 우리 야구가 발전하면서 타자들의 힘이 부쩍 늘었고, 예전처럼 타자를 압도할 만한 투수는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그러니 어쩌랴 어떻게든 9이닝을 최소실점으로 막아야 하니, 이런 저런 투수를 다 불러모아 어떻게든 막아보겠다는 것이다. 기계 부속품처럼 짜맞추는 느낌이 들지만, 이는 선수들에게는 오히려 행복한 일이다. 이런 방식의 투수 교체가 없다면 정말 미안하지만 지금 LG에서 좌완 스페셜리스트로 나오는 류택현 선수는 유니폼을 벗고 다른 일을 찾아야 할 것이다. 선수마다 능력이 다르고 자신의 장기를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다르니 여기에 맞추어 선수에게 능력에 맡는 임무를 부여하는 것이다.


신기한 것은 이미 팀을 떠난 선수들이 그에게 싫은 소리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의 정서에 그런 말을 대놓고 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싫은 소리를 하지 않는 것만이 아니라 좋은 말만 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그와 단 1년을 같이 했던 양준혁 선수가 "야구에 혼을 심는 것을 배웠다" 고 하는 것이나, 역시 얼마 함께 하지 않았고, 야구계를 떠나버린 이상훈이 스승의 날에 화분을 선물할 정도라는 것은 TV를 통해서, 혹은 관중석에 앉아서 경기만을 보는 사람들은 모르는 무엇인가가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김성근 감독이 한국 야구계를 주름잡는 실력자이기 때문에 은퇴 후에 덕을 보겠다고 아부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요, 오히려 그 반대일지언대 그렇게 감사의 표시를 하는 것을 보면 "이 사람(주 : 나이 어린 사람이 반말을 해서 죄송하지만, 여기서는 존대를 하지 않겠다)이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구나" 고 생각을 하게 된다. 승부욕 덕분에 매너 없는 경기를 한다고 하는데(주 : 이 부분은 내가 전 경기를 본 것도 아니고, 김성근 감독이 승부욕이 강한 것은 여기저기서 드러나니 어느 정도는 사실일 수도 있다고 하겠다), 일정 부분은 왜곡 전달된 것도 없지 않아 있는 듯하다. 특히 김성근 감독이 데드볼 이후 사과했다고 2군으로 내려보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님이 드러났지만, 언제나 "왜곡된 진실" 은 나중에 바로잡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근우, 윤길현, 채병용, 그리고 박재홍은 SK와 김성근 감독을 욕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이들의 행동이 잘 한 것이라거나 감독과 선수 관계가 "사제 관계" 로 얽힌 한국 야구에서 김성근 감독이 선수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책임에서 자유롭다고 말할 수 없다. 다만 그 대상이 SK이고, 김성근 감독이기 때문에 과장, 과대 포장이 되는 면은 없지 않아 보인다. 타 구단에는 별의별 사회적 범죄를 저지르는 선수들이 있지만, 이 선수들의 감독들은 선수 통제를 못했다고 김성근 감독처럼 비난받지는 않는다. 선수 개개인에게 그 비난이 집중될 뿐이고, 가끔 구단을 싸잡아 욕을 하지 로이스터 감독이나 김경문 감독이 선수가 경기장 바깥에서 일으킨 사건 때문에 크게 욕을 먹는 것 같지는 않다. 채병용이 조성환을 맞춘 것이 고의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그 상황에 빈볼을 던질 필요가 있었나 싶지만 판단을 유보해두고),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박재홍의 행위이지만 그 비난은 해당 선수들을 넘어 감독과 구단으로 향했다. 문제의 사구 역시도 SK가 아닌 다른 팀에서 맞추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LG의 박경수는 두산 김선우에게 머리를 맞은 이후 손목에 또 공을 맞아 결국 2군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두산을 질책하는 목소리는 찾기 힘들다. LG 유니폼을 새로 입은 이진영에 대한 자료를 찾다보니 SK시절 KIA 이범석의 공에 늑골을 맞아 시즌 아웃된 적이 있었고, 이범석은 작년에는 김태완의 얼굴에 공을 던진 적이 있지만 그에 대한 비난의 강도는 크지 않았다.


SK가 너무 잘 나가기 때문에, 그것도 김성근 감독이 부임하고 2년 연속 통합 우승에 올해도 선두를 달리는 것에서 공공의 적이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에 대해 과거 해태가 전성기를 달릴 때 지금의 SK처럼 공공의 적이었는지, SK가 더러운 경기를 하기 때문에 비난을 받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이 나오겠지만, 이에 대해서는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불행히도 해태가 V9를 하던 시절에는 전 경기를 방송으로 중계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모든 비난과 논쟁의 중심인 인터넷이라는 것이 있지도 않았다. 지금에야 모두가 실시간으로 경기를 볼 수 있고, 그에 대한 글을 바로 올리며 자유롭게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중의가 형성이 되지만 당시에는 경기를 보고 같이 어울려 경기를 본 사람들과 술 한 잔 하는 것이 야구 관람 이후의 커뮤니케이션의 전부였다. 다음 날 신문에 경기 결과가 나와도 독자들이 접할 수 있는 것은 신문 기사일 뿐, 확대 재생산하는 댓글과 팬 커뮤니티의 글은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해태가 공공의 적일지라도 그에 대한 의사 표현은 경기장에 모인 관중들과 가끔 중계되는 경기를 보는 야구팬들의 개인적인 의견에 불과했다. 지금처럼 팬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수백 명, 수천 명이 클릭하여 읽고 나서 동조하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김성근 감독의 WBC 감독 제의 고사 부분은 그를 향한 비난 여론에 더욱 불을 지폈다. 그러나 내가 들었던 생각은 김성근 감독이 단기전인 WBC의 특성상 거절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애초부터 KBO와는 사이가 좋지 않은 것은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고, 김성근 감독의 야구가 상대를 철저히 분석하고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자신이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찻집에서 30분도 안 되어 끝났다는 무성의한 감독 제안 등 KBO가 김성근 감독을 원하지 않았다는 것도 감독직을 거부하는 하나의 이유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김성근 감독이 그 파장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가뜩이나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또 하나의 빌미를 제공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그를 옹호하지는 않겠다. 상황이 어찌되었든 책임을 회피한 것은 사실이고, 이에 관해서 논쟁하고 싶지도 않으니..


글을 시작했으니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데, 주저리주저리 늘어놓고 정리하려니 쉽지가 않다. SK가 싫고 김성근이 싫다는 것은 개인의 취향이요, 이는 자유로운 의사로 존중받아야 한다. 그리고 SK의 선수들이 잘못한 것은 사실이요, 개중에는 비판받을 것도 있다. 다만 SK니까, 김성근이니까 편견을 가지고 다른 잣대로 그들을 평가하지 말자는 것이다. 김성근 감독이 바른 말을 하면, "김성근이 싫다. 하지만 김성근의 저 말은 이치에 맞다" 고 하면 되는 것이다. "너나 잘하세요" 라는 식으로 잘못을 들추고 흠집을 내고자 한다면 완전 무결한 사람이나 뭐라고 말을 할 수 있겠다. 털어서 먼지 안 나고, 모든 것이 완벽한 사람은 어디에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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