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JAPAN/2017.09 늦여름에도 홋카이도

#11. 쿠시로습원역

2018. 9. 8. 16:54



올라왔으면 다시 내려가야 하는데, 좋다고 구경해놓고 왜 올라왔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마음이 다르다더니 볼 것 다 봤다고 이렇게 마음이 변하나보다.


구름이 잔뜩 끼어 있어서 언제 비가 내려도 이상하지 않을 날씨라서 비를 맞기 전에 얼른 내려가야 할 것 같다. 쿠시로습원역에 사람들이 비를 피할 수 있는 오두막 같은 시설이 있으니 일단 비를 피하는 것이 우선이다. 일본이란 나라에서 갑자기 내리는 비에 당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빨리 이동해야겠다.


비지터스라운지에 갔다 오면 비가 쏟아질 것 같아서 그냥 내려간다.


어찌어찌하다보니 올라갈 때 갔던 길과는 다른 길로 내려가고 있다.


근처에 민숙이 있는 것 같은데 여름과 가을에는 사람들이 이 부근을 자주 찾아오겠지만, 겨울이면 발길이 끊어질 터라, 민숙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다른 일도 함께 하고 있을 것 같다. 오히려 조용한 습원의 풍경을 보기 위해 찾는 사람이 많아지려나..


올라갈 때 이용했던 길보다는 지형이 평탄하기는 한데, 그만큼 돌아가는 것 같다.


차량이 지나다니지 못하게 막아두었고, 여기부터는 걸어서 가라고 한다. 차가 없으니 걸어서 가야하는데 뭐..


센모본선. 쿠시로와 아바시리를 잇는 지방교통선인데 이름은 본선이지만 간선철도는 아니다. 전 구간 비전화 단선 구간이고, 이 구간의 최고속도는 시속 80km가 최대로 설정되어 있다. 현재 시점에서 아바시리에서 쿠시로까지 오가는 열차는 5왕복을 하고 있는데, 이 중 시레토코마슈호라고 불리는 쾌속열차가 중간에 통과하는 역이 3~4개에 불과해서 소요시간 단축은 기껏 10여 분 내외일까, 효과는 미미하다. 선로 자체가 후져서 최고속도가 낮은데다 전 구간 단선에 양방향으로 오가는 열차가 교행을 하면서 대피하는 경우도 있어서 운행시간을 단축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 그나마 사람들이 거의 안 타는 역들을 다 없애버렸는데도 이 모양 이 꼴이다.


길에 꽃이 있네..

밟지 않으려고 일부러 피해서 간다. 


다시 쿠시로습원역으로 돌아왔다.


전망대에 갈 때 올라갔던 계단이 보인다. 

시간이 남아서 한 바퀴 돌아보니 굳이 계단을 오르지 않아도 돌아서 올라갈 수 있는 길이 있었다.


식물들도 이런 환경에서 살아가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을 보니 뭔가 반성하게 되는 것 같다.


천천히, 충분히 즐기고 가라고 하는데 형이 오늘 좀 바쁘다.


열차에 따른 정차 위치를 표시하고 있다. SL차량이 가장 끝에 정차를 하는구나. 석탄을 태워서 달리는 열차이니 인부들이 삽으로 석탄을 퍼서 화로에 넣는 공간도 필요할 터이고..


카모마일인가..

꽃을 잘 몰라서 ㅜㅜ


따로 관리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은데 알아서 잘 크는 모양이다.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드는 것을 보니 열차 시각이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다.


'천천히, 충분히, 실컷 일본 최고의 경관을 즐기세요' 라고 열차가 말하고 있다.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 역이라 그런지 다른 역들에 비해서 시설은 좋은 편인 것 같다.

역 주변을 누군가 관리하는 것 같지는 않고 그냥 식물들이 알아서 자라는 것 같다.


사슴은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오지 않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직은 푸르지만, 조만간 저 나뭇잎들이 붉게 물들고 나뭇가지들만 남을 시기가 머지 않은 것 같다.


아까 그 열차 같은데..

토로역 찍고 다시 쿠시로에 돌아갔다가 다시 토로역으로 가는 모양이다.


더 많은 승객들이 탈 수 있도록 남는 보통 객차를 하나 가져다가 증결해서 운행을 하고 있다. 노롯코열차의 지정석 좌석이 각지고 딱딱해서 불편하고, 사람들이 많아서 북적이고, 안내원이 마이크를 들고 계속 설명을 해서 시끄러우니 사람이 적고 조용한 자유석으로 설정된 맨 뒤 차량에 타고 가야겠다. 트윙클플라자에서 예약한 버스는 토로역에서 14시 30분에 출발한다고 하니 시간은 많이 남을 것 같지만, 조금 일찍 가서 기다리고 있어야겠다.


쿠시로시츠겐(쿠시로습원)역에 내리면 오두막이 하나 있고 뒤에 있는 산에는 등산로가 있다. 저 오두막은 한여름에 더울 때나 비나 눈이 내릴 때 잠시 피해갈 수 있는 장소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울리지 않게 피부가 약해서 별다른 준비 없이 햇빛에 노출되면 금방 벌개지다가 곧 타기 시작해서 벗겨지기 때문에 늘 주의가 필요해서 이렇게 흐린 날씨가 좋을 때도 있다.



저 사람들이 가는 길로도 전망대로 갈 수 있는데 조금 돌아가는 경로다.


차가 없으니 주차장은 해당사항이 없고, 전망대를 향해서 올라가본다. 460m라면 얼마 멀지 않은 거리이니 금방 다녀올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젊은 청년이 앞서서 배낭을 메고 올라가길래 역시 따라서 가는데, 늙었다고 투덜대면서도 속으로는 아직 이 정도는 가뿐히 오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아주 조~금은 남아있다. 그런데 저 청년은 배낭을 메고 가면 올라가면 되지만 나는 등에 짐 하나에 캐리어를 씨부랄들고 올라가야 하는데, 바닥이 젖어 있어서 조금 불편한 상황이다.


일단 어느 정도 올라오니 여기서부터는 땅의 상태가 캐리어를 끌고 갈 수 있을 것 같다. 이 등산로는 그럭저럭 배수가 잘 되는가보다.


산을 올라가니 '호소오카비지터스라운지(細岡ビジターズラウンジ)' 라는 건물이 있다. 이건 무슨 공항의 비즈니스클래스 라운지도 아니고, 저기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이 귀찮아서 안 간다. 이 곳에 대하여 자세한 정보를 얻고 싶다면 웹사이트 http://www.kushiro-shitsugen-np.jp/kansatu/hosooka 를 참고하면 되겠다.


어느 정도 올라왔다고 여기서도 쿠시로습원을 내려볼 수 있다. 날씨가 맑지 않아서 그런지 멀리 있는 곳까지 시야가 확보되지 않고, 밑에 심어진 나무들이 가리고 있어서 가까운 쪽은 잘 보이지 않는 것이 아쉽지만, 날씨가 무덥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저기에는 연못이 있는 것 같고, 그 뒤로는 쿠시로가와(釧路川)가 흐르고 있는 것 같다.

갑자기 '깊은 습원 속 옹달샘 누가와서 먹나요~♬' 노래가 생각이 나는데..


이 계단을 올라가면 전망광장이 있는데, 여기서 계단을 올라가지 않고 주욱 가면 우측에 입구가 나오는데 가장 조망이 좋은 전망대인 호소오카전망대라고 한다. 뭐 결국 호소오카전망대를 추천한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걸어서 1분 정도 걸린다고 하니 슬슬 다녀오면 되겠다.


캐리어가 잠시 찬조출연..

저 똥덩어리..


습원에 저렇게 연못처럼 물이 고여 있는 곳이 보인다.

사슴들은 와서 물만 먹고 가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이렇게 쿠시로습원을 보고 있지만, 습원 전체의 면적은 193.57km²에 이른다고 한다. 이 면적이 어느 정도인가 하면 서울특별시 전체 면적의 1/3에 조금 못 미치는 정도이니 상당히 넓은 습원 지대라 할 수 있다. 1980년 일본이 람사르 협약에 가입할 때 최초로 등록한 습지라고 하는데, 이 주변에 두루미 등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지역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조류와 여러 동식물군이 자생하고 있다고 한다. 두루미를 일본어로 탄쵸(タンチョウ)라고 부르는데, 쿠시로공항의 이름도 '탄쵸쿠시로공항' 이다.


안개가 끼어서 시야가 좁아진 것이 아쉬울 따름인데, 그렇다고 햇빛 쨍쨍한 맑은 날이었으면 타죽는다고 불평을 했을 것 같다.


흐린 날씨에 안개가 끼어서 멀리 있는 것은 잘 보이지 않는 것이,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역시 한 번에 되는 일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조금 더 높은 곳으로 가보기로 한다.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조금 더 고생하고 미션 클리어를 하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으음.. 큰 차이는 잘 모르겠다.

어차피 할 일은 없지만 괜히 힘을 뺐나 싶기도 하고..


그래도 이렇게 숲속을 다니는 것은 알게 모르게 마음의 평온을 가져오는 것 같으니 힐링한 셈 치도록 해야겠다.


사진을 여러 각도에서 찍고 싶은데, 막상 찍고보니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이것은 다시 처음의 사진으로 돌아온 것 같다.

이번에는 작은 연못 세 개를 한 번에 담아본다


파노라마 모드로 촬영을 했더니 이렇게 나온다.

이런 것이 신기한 것을 보면 옛날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구름이 잔뜩 끼어서 햇빛에 피부가 탈 염려는 없지만, 우중충한 날씨 덕분에 기분이 안 나고 가라앉는 것 같은 느낌이다. 묘한 것이 조금 덥더라도 햇빛이 나는 맑은 날을 좋아하는데, 햇빛이 쨍쨍한 날에는 피부가 견디지 못하고 가벼운 화상을 입는 경우가 흔해서 매우 난감하다. 그래서 썬크림을 잔뜩 바르고 다니기는 하는데, 그러면 또 피부에 갖가지 문제가 생기더라는..

 

뭔가 흔하게 등장하지 않는 조류가 나타나나 싶어서 기다리는데 안 보인다.


날씨가 영 별로고, 새들도 많이 없고..


쿠시로습원국립공원 호소오카전망대

옆에 나온 아저씨가 계속 저렇게 자리를 잡고 있어서 그냥 사진에 나오든 말든 무시해야겠다. 어차피 얼굴이 나오는 것도 아니니까 뭐..


전망대 구경도 마쳤으니 이제 내려가서 슬슬 돌아갈 준비를 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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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비가 꽤 왔는지 열차 승강장 위가 젖어 있다. 쿠시로에서는 이 쿠시로습원노롯코 열차를 관광상품으로 몇년 째 계절마다 우려먹고 있는데, 여름에는 쿠시로습원노롯코호라는 열차로, 겨울에는 SL후유노시츠겐(冬の湿原)호라는 계절한정 이벤트로 열차를 운행하고 있다. JR패스나 홋카이도레일패스가 있으면 좌석 지정을 할 수 있어서 신토쿠역에서 쿠시로행 열차 예약을 할 때 함께 좌석을 예약하여 지정석권을 미리 받아두었다. 


쿠시로 습원의 종이란다.

음..


쿠시로역 건물은 꽤 오래된 듯한 모습인데 과거에는 쿠시로역 안에 상업시설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1층에 편의점 키오스크와 서점, 식당만 남아있고, 별다른 상업시설이 없다. 이 지역의 쇠락을 보여주는 하나의 단면이 아닐까 싶다. 홋카이도 전체적으로 인구 유출이 심해지고 있는데, 삿포로권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은 수도권으로 향하고, 삿포로 이외의 다른 홋카이도 지역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은 삿포로권으로 들어오는 추세라고 한다. 홋카이도의 면적이 현 시점에서 대한민국의 실효적 지배영역의 80%를 넘어서는 정도인데, 이촌향도 현상이 심해지면서 지방의 쇠락이 가속화되고 있다고.


노롯코 트레인 

이번에 타고 갈 열차인 노롯코 열차. 앞의 헤드마크에 있는 글자는 ノロッコ 를 부드럽게 폰트를 만들어 놓은 것인데, 처음 보았을 때 도대체 저것이 무엇인가 잠시 고민을 하기도 했다. 센모본선 열차를 타도 이 쿠시로습원을 지나가지만, 운행하는 열차가 몇 편 안 되는데다 배차간격이 길어서 한 번 놓치면 오래 기다려야 하고 불편함이 있는데다, 용케 열차를 탄다고 해도 평상시 속도를 유지하면서 운행하다가 정차하는 역에서 정차할 뿐이라 관광 목적으로 타면 재미가 떨어질 것 같다. 대신 노롯코열차를 타면 운행 중간중간 차내 안내원이 두루미라든가 야생동물이 나타났다고 알려주고, 열차 역시 속도를 낮추어 천천히 가면서 승객들이 차창 밖으로 보이는 동물의 모습을 보도록 친절하게 알려준다. 주된 언어는 당연히 일본어이지만, 최근에는 중국어를 하는 사람도 이 열차에 타서 요즘 일본 여행의 대세인 중국인 관광객에 대한 배려도 하고 있다. 한국인은 찬밥.. 역시 쪽수가 많은 것이 좋다. 흑흑


처음 이 열차를 보았을 때 이 열차 석탄 때서 증기뿜으면서 가는 열차인가 싶었는데, 이 열차는 디젤기관차가 견인을 하고, 증기기관차는 SL(Steam Locomotive)열차로 부른다. 증기기관차는 겨울철에 SL후유노시츠겐호로 운행하는 열차로 활약을 한다. 

노롯코열차는 천천히 움직이는 노로이(鈍い)와 토롯코(トロッコ)라는 화물 수송용 소형 화물차를 합친 단어라고 할 수 있는데, 트럭이나 일반 열차가 들어갈 수 없는 장소에 선로를 깔아서 달리게 한 상자 모양의 차량을 말한다고. 


이 기관차도 꽤 오래된 녀석인 것 같은데..


열차가 꽤 낡아보이는 것이 적잖은 연식을 자랑할 것 같다.


측면에서 보니 카와사키중공업에서 쇼와 49년에 제작한 기관차인가보다. 

쇼와 49년이면 1974년이니 얘가 형님이네.. 

몰라뵈서 죄송합니다.



지금이야 별 생각 없지만 언젠가는 열차 안의 노부부처럼 나이가 들면 누군가와 함께 늙어가면서 지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별로 오래 살 것 같지는 않지만..


이 열차는 10년 전과 비교해서 크게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은데..

겨울이 아니어서 그런가 화로가 없나..


쿠시로역

저 건너편에서는 삿포로행 특급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이틀 후에 돌아갈 때 저 사람들처럼 삿포로행 특급열차를 타게 된다. 열차로는 5시간에서 5시간 반 정도 걸리는데, 고속버스 역시 비슷한 시간이 걸리지만 가격은 더 저렴한 편이다. 돈이 없으면 버스를 타는 것이 정답. 단, JR패스를 가진 외국인은 예외.


건너편 승강장에는 네무로행 쾌속 노샷푸 열차가 대기중이다. 네무로에도 한 번 가보고 싶은데, 하루에 6왕복이고, 대충 두 시간 반에서 세 시간 가까이 걸린다. 네무로에 가면 일본 최동단 노샷푸미사키까지 다녀와야 하니 버스비도 만만치 않고 하루를 통째로 날려버리는지라 다음 기회로.


어느덧 열차는 쿠시로 습원에 들어온 듯하다.


날씨가 우중충해서 조금 그런데 뭐 별 수 있나. 날씨는 사람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 아니거늘 그냥 팔자려니 생각한다.


사람들도 차창 왼쪽으로 보이는 습원을 주시하고 있다.


낡은 카메라라서 셔터스피드가 따라가지 못한다. 에잇!!


중간중간 두루미도 있었는데 늘 한 발 늦어서 사진을 못 찍었다.


호소오카역

쿠시로습원에 호소오카전망대라는 곳이 있는데, 이 곳에 가려면 호소오카역이 아닌 쿠시로시츠겐(釧路湿原)역에서 내려야 한다. 이번에는 종점인 토로역까지 가기 때문에 도중에 쿠시로시츠겐역에서 내리지 않고 호소오카역을 지나 일단 토로역까지 가본다.


센모본선은 쿠시로습원 한가운데를 통과하는 노선이라서 왼쪽 오른쪽에 두루미가 나타나기도 하는데 뒤늦게 알아차리고 카메라로 초점을 맞추다보면 날아가버린다. 이 열차를 타고 왕복하면서 사진을 찍기도 그렇고..


두루미 없는 습원 사진이나 찍자..


안 될 놈은 안 된다는 말이 떠오른다. 

흑흑 ㅜㅜ


노롯코열차는 여기서 운행을 멈추지 않고 토로역까지 가지만, 쿠시로습원역에 내렸다. 호소오카전망대는 쿠시로시츠겐역에서 산을 올라가면 나온다고 하니 우선 전망대에 다녀올 생각이었다. 다만 백팩에 캐리어를 끌고 산을 올라가려니 생각보다 시간이 걸리고 개고생을 좀 할 것 같은데..

호텔에서 제공하는 아침 식사를 먹고 짐을 다 챙겨서 체크아웃을 하면서 프런트에 잠시 짐을 맡겨두고 밖으로 나왔다. 기껏해야 두 시간 정도 시간이 있는데, 쿠시로라는 곳에 처음 온 것이나 다름 없으니 여기가 어떤 곳인가 잠시 둘러보고 가야 할 것 같다.


잠시 도시 구경을 해 BoA요!

예전에 쿠시로에 온 적은 있는데, 이 때는 역에서 나가지 않고 바로 노롯코 열차를 타고 북쪽으로 이동을 해서 쿠시로라는 도시를 이번에 처음으로 구경하는 셈이다. 쿠시로는 도토(道東)지역의 가장 큰 도시이고, 홋카이도에서 네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지만, 인구는 약 17만 명 정도라고 한다. 홋카이도는 지속적으로 인구가 감소하는 추세라서 시험삼아 홋카이도에 거주하고자 하는 외국인들을 모집하여 거주 체험을 한 적도 있다고 하는데, 겨울이 거의 일 년의 절반인 곳이고, 몇몇 대도시를 빼고는 생활이 불편한 곳이 많아서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않았다는 것 같다.


인간이라는 제목의 동상이 있다.


다시 짐을 맡겨 놓은 호텔을 지나 남쪽으로 가서 누사마이바시(幣舞橋)로 가본다. 대충 이 동네를 돌아보니 쿠시로습원 외에는 그다지 눈에 띄는 장소가 있을 것 같아보이지는 않을 것 같다.

'피셔맨즈 워프 MOO' 라는 곳이 있다.

들어가보니 수산시장 같은 곳인데, 다만 차이가 있다면 수산시장임에도 바닥에 물이 흐르고 있다거나 심한 비린내가 나지는 않는다는 정도. 이외에도 각종 가공식품들도 판매를 하고 있더라는.. 조금 전에 아침밥을 든든히 먹고 나와서 별로 뭔가 먹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고, 그냥 슬쩍 구경이나 했다.


나름대로 잘 지어놓은 건물 같은데 뜬금없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

쿠시로 시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다시 누사마이바시를 건너서 돌아오면서 여신상이라고 해야하나, 옷을 벗고 있는 동상들 사진이나 찍어본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으니 사계절 동상인가보다. 이것은 봄이고..

이것은 여름

언니 너무 야해요.


무와 시로이코이비토 간판 사진을 찍어봄


여기서 왼쪽으로 가면 앗케시와 네무로에 간다고 하는데, 나중에 쿠시로에 다시 오게 되면 아마도 일본의 최동단의 노삿푸미사키를 보러 갈 때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백수도 아니고 그거 하나 보러 가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고. 앗케시의 훈제굴이 그렇게 맛있다던데.. 왼쪽의 건물은 호텔이었던 것 같은데, 뭔가 러브호텔 같은 느낌도 나는데 쿠시로 센츄리 캐슬 호텔이라는 곳이라 한다.

 

누사마이바시


다리의 좌우 양쪽에 여신들이 둘 씩 서 있다.


날씨가 우중충하고 지나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고, 이거 혼자서 뭐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가을


Moo에도 별로 볼 것은 없고, 그냥 누사마이바시에서 오락가락하고 있다.

 

겨울

이걸로 사계절을 완성했다.


엇! 갑자기 아이들이 잔뜩 등장하는데..

무슨 현장체험학습이라도 하는 것인가.


동네는 별로 볼 것이 없는데 숙박업소만 잔뜩 있다.


아이들과 섞이지 않으려고 잠시 자리를 피했는데, 도토노시키(道東の四季)라는 제목의 시귀가 적힌 비석이 있는데 글씨를 흘려써서 별로 읽어보고 싶지 않다.


오른쪽에는 누사마이바시의 그림인 것 같은데..

날씨 탓인지는 몰라도 도시 전체적으로 뭐랄까 쇠락해가는 느낌이 든다고 해야할까.

 

여기는 먹자골목.

작은 도시에도 유흥가는 있다.


메르헨마켓이라는 가게가 문을 닫았다고 한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27년이나 영업한 점포라고 하는데, 서적과 문구류를 팔던 곳이었다고 한다. 요즘에는 서적이라면 인터넷으로 구입하는 사람이 많을 터이고, 문구류 역시 인터넷이나 대형마트에서 더 저렴하게 팔고 있으니 경쟁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홋카이도처럼 겨울에 눈이 많이 오는 곳이라면 굳이 서점까지 가서 책을 살 필요가 없을 터이니.. 비디오가 라디오스타를 죽였듯이, 온라인쇼핑이 소매상을 죽이고 있는 셈이구나..


어젯밤에 호텔을 찾아갈 때 거리가 꽤 되었던 것 같아서 짐을 찾아서 쿠시로역으로 갔는데, 초행길에 밤이라 더 멀게 느껴졌는지 금방 역 앞에 도착했다. 열차는 미리 예약을 해둔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어서 예약을 안 한 열차는 자유석에 앉아서 가야할 것 같다.

 

쿠시로역 앞에는 철차륜이 전시되어 있다.

쿠시로 그레이스교회라는 건물도 있고


옛날 열차의 차륜인가보다.


이 분은 단체관광 인솔자인 것 같다.


탈 열차는 쿠시로시츠겐노롯코2호.

쿠시로습원이라고 하는 일본의 국립공원으로 간다. 쿠시로습원은 습원 통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는데, 8년 전에 다녀온 적이 있지만, 당시에는 열차 안에서 일본어로 진행되는 안내방송을 거의 알아듣지 못했고, 한겨울이어서 돌아다니기도 어려운 상황이어서 그냥 열차 안에서 구경만 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이번에는 차내 방송을 얼마나 알아들을 수 있는가 스스로 시험을 해볼 기회인 것 같다.



후라노에는 라벤더만 있는 것이 여러 꽃이 있고, 와이너리도 있고, 후라노가 아니면 그리 멀지 않은 비에이의 언덕과 해바라기도 있고, 여러가지 볼 것이 많겠지만, 이번에는 그냥 거쳐가는 곳일 뿐 방문하고자 하는 장소는 아니었다. 후라노역부터 네무로본선을 따라서 가면 도토지역의 중심 도시인 쿠시로에 가게 되는데, 특급열차는 쿠시로까지만 운행하고, 쿠시로 동쪽에 있는 네무로까지는 보통, 쾌속열차만 운행을 한다.


점심을 먹기는 하였지만, 아침을 안 먹었으니 늦은 아침을 먹은 셈으로 치고, 이제 늦은 점심을 먹어야 할 것 같다. 일단 수퍼마켓에 들러서 간식거리를 조금 사고, 시간이 좀 남길래 후라노 마르쉐에 있는 '푸치푸치버거' 라는 곳에서 햄버거를 하나 주문했다.


딱히 특별해보이지는 않지만..


꽤 맛있게 먹었다. 배가 고파서 그랬을 수도 있는데..


이 키하40계의 낡아빠진 열차가 히가시시카고에(東鹿越)역까지 데려다 줄 예정이다. 원래는 히가시시카고에를 지나 신토쿠까지 열차를 운행했으나 2016년 여름에 태풍 라이언록이 이 지역을 쓸고 가는 바람에 네무로본선이 작살이 나버렸다. JR홋카이도 입장에서는 네무로본선에 열차를 굴리면 굴릴수록 수익이 나지 않는 구간이어서 어쩌면 잘 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 보통열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통근 및 통학을 위한 것이라 장기간 운행을 중단할 수 없어서 열차 대신에 대행버스 운행 계획을 세워서 버스를 대신 투입하고 있다.


이 동네의 주요 관광지로는 후라노스키장, 후라노와인하우스, 텔레비전 드라마 '키타노쿠니카라' 의 로케이션 장소 등이 있다고 한다. 가본 곳은 라벤더 언덕 정도인가.. 몇 번 이 동네를 지나가기는 했는데, 주로 후라노와 비에이 정도만 갔던 것 같다.


열차가 출발하기도 전에 전광판에는 다음 열차 안내를 하고 있다. 쾌속 카리카치는 타키카와를 출발해 네무로본선 후라노, 신토쿠 등을 거쳐 오비히로를 지나 이케다역까지 운행한다. 철도 거리는 204.2km라고 하는데, 히가시시카고에역과 신토쿠역 사이는 열차 대신 대행버스로 대체운송을 하고 있어서 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 여기가 대도시이고,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면 철도회사에서 어떻게든 재빨리 복구를 하여 승객 운송을 하려고 할 터인데, JR홋카이도는 적자가 아닌 구간이 한 손에 꼽기도 어려울 정도로 경영상태가 좋지 않아서 어떻게든 적자노선은 운행 재개를 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일본의 수도권이나 칸사이권에서 열차 사고가 나면 어떻게든 재빨리 복구해서 운행을 하려고 달려드는 것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후라노역 바로 다음 역인 누노베역은 잘라먹고 그 다음 역인 야마베역.

이런 역이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


이 역에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내렸다.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많지 않으니 열차 운행 간격도 길고, 그 덕분에 어느 정도 자리를 채워서 다니고 있다. 사진 속의 책을 보는 여학생은 공부 열심히 하는 모범생인 것 같은데 저 학생 부모님이 좋아하시겠다. 나는 왜 학교 다닐 때 그렇게 잠만 쳐 잤던가..


히가시시카고에역부터 철도 운행이 중단되어서 열차에 탄 사람들 중 히가시시카고에가 목적지인 사람을 제외하고는 나머지는 내려서 버스로 갈아타고, 반대로 버스를 타고 왔던 사람들은 열차로 갈아타고 후라노 방면으로 간다. 학생들은 정기권을 보여주고 버스에 타는데, 그런 보통열차만 탈 수 있는 정기권이 아닌 JR패스를 꺼내서 버스기사 아저씨에게 보여드리고 올라탔다. 후라노에서 출발할 때는 열차에 빈 자리가 없었지만, 역을 하나 둘 지나면서 많이 내려서 셋 중에 둘 이상은 이미 내려서 집으로 간 것 같다.

 

버스는 JR홋카이도에서 대체수송 목적으로 계약한 전세버스인 것 같다. 후라노역에서 탔을 때나 자리가 없어서 서서 가는 학생들이 몇 있었지, 갈수록 하나둘 내리더니 대행버스를 탄 사람은 많지 않았다.


대행버스라고 해서 뭔가 특별한 것이 있는 것은 아니고 관광버스를 대절하여 열차운행 불통구간을 버스로 대신 운행하는 것 뿐이다. 주로 학생들이 많이 이용해서 이들이 주된 대상인데, 소요시간은 열차로 다닐 때보다 조금 더 걸리는 것 같다. 일본의 도로 자체가 대부분 제한속도가 낮은데다 도로에 있는 버스정류장이 아니고 역 앞까지 가서 버스를 세우고, 차를 돌려서 나오는 것도 시간을 더 잡아먹으니 이래저래 시간이 많이 걸릴 수 밖에.


슬슬 해가 지고 있고


이쿠토라역에 도착했다.


첫 일본여행에서도 이쿠토라역에 들른 적이 있었는데, 말도 잘 안 통하고,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면서도 열차를 타고 왔던 기억이 있다. 그 당시에는 뭐가 뭔지도 모르고 사진찍고 눈 속을 헤매면서 다녔는데.. 영화로도 제작된 철도원의 호로마이역의 배경이 이쿠토라역이었고, 아직까지 당시의 세트가 남아 있기는 한데, 겨울철에는 찾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서 앞으로 어떻게 될 지는 잘 모르겠다.


호로마이역 간판이 아직 남아 있구나.. 시간이 조금 더 있으면 여기서 내려서 구경을 하고 다음 버스를 타면 되겠지만, 이미 어두워지고 있어서 그냥 버스 안에서 사진만 찍었다.


이 때 히로스에 료코 참 예뻤는데.. 요즘에는 약에도 손을 대고 이래저래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고 한다.


다음은 오치아이역

어두워지고 있다.

그리고 신토쿠역.

신토쿠역에 도착할 때는 이미 주변이 다 어두워진 뒤였다. 보통열차는 네무로본선으로 다니지만, 특급열차는 세키쇼선으로 다니는 덕분에 운행에 별다른 차질이 없어 정상운행을 하고 있다. 다만, 여러가지 이유로 조금씩 열차가 늦어지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강풍이 불면 열차 운행에 지장이 있다고 속도를 늦추고, 눈이 많이 오면 눈이 많이 온다고 속도를 늦추고.. 대행버스를 운행하는 회사는 '후라노버스' 라는 회사라고 한다. 어디선가 본 것에 의하면 올해는 대행버스의 운행편수를 늘렸다고 하는 것 같던데.. 아닌가.


저 떵차를 타고 가는 것은 아니고, 특급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이런 떵차를 타는 사람들은 역시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사람이 별로 없는데 한 학생이 걸어온다.


키하 40계 똥차를 원없이 보고 있다.


오비히로까지만 간다면 보통열차라도 타고 갈텐데 쿠시로까지 가야하니 특급열차를 타야한다.


도시락을 사놓은 것이 있어서 이걸로 저녁을.

설마 상하지는 않았겠지..


계속해서 길을 따라서 걷고 있는데 조금 더 가면 미치노에키(道の駅)라는 곳이 있어서 잠시 쉬면서 밥을 먹고 목을 축일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것 같다. 미치노에키라는 곳은 한국으로 따지면 휴게소 정도라 하면 되겠다. 이동하는 중간에 음료와 식사를 하면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그런데 홋카이도는 겨울이 길고 눈이 많이 오기 때문에 문을 닫고 쉬는 곳도 많고,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다니는 여행자들 역시 줄어들게 마련이어서 겨울에는 문을 닫는 곳들이 꽤 많다고 한다.  


아오이이케에 단체관광객이 많이 오기에 아예 단체버스용 주차장도 준비되어 있다.


비에이까지는 대충 20km 이상 남은 것 같은데 다섯 시간 정도 걸으면 갈 수 있을 듯하지만, 비에이역에 도착시간이 늦어지면 쿠시로에 갈 수 없으므로 식당이 보이면 점심을 챙겨먹고, 버스를 타고 가야할 것 같다.

 

일단 눈에 보이는 식당인 '치하루의 야채 키친' 에 들어가서 음식을 주문했다. 고기를 좋아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육식 위주의 식단의 부작용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여행 중에 는 가급적 균형잡힌 영양섭취를 하려는 편이어서. 이 때는 몰랐지만, 나중에 돌아와서 이 가게 정보를 찾다가 유기농 야채를 쓴다는 것을 본 것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이 메뉴 이름이 '野菜ときのこのトマト煮込ランチ' 이라고 한다. 토마토를 끓여서 소스처럼 만들어 야채와 버섯을 넣고 졸인 음식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토마토파스타와 비슷한 맛이 났던 것 같다.


평소에 끼니를 거르는 경우도 많고, 그러다보니 야채를 잘 안 먹게되는 편이라 이렇게 돌아다닐 때는 일부러 야채가 많이 들어간 음식을 찾아서 먹고 있다.

 

샐러드에 뿌려진 소스의 맛도 괜찮았던 것 같은데..


일부러 술 대신 알콜이 들어가지 않은 소프트드링크를 마셨는데 무엇이었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무슨 시트러스였던가..

안타깝게도 이 가게는 폐업을 해서 지금 이 자리에는 다른 음식점이 들어온 것 같다.


가게 안의 모습도 깔끔하고 예뻐서 마음에 드는 곳이었으나.. 새로 개업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폐업을 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고 살아가는 것이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니..


직접 담근 매실도 판매를 하는 것 같았다.


가게 곳곳에 주인 아주머니의 정성이 담겨 있어서 나중에 가족과 함께 와야겠다 싶은 곳이었는데 좀 아쉽다.

식사와 음료까지 1,500엔을 내고 영수증을 받아서 나왔다.


버스 시각표를 보니 시간이 조금 남아서 커피를 파는 카라마츠라는 커피 가게에 가서 아이스커피를 한 잔 시켰다. 250엔이었던가 300엔이었던가.. 이렇게 기억이 잘 안 나서 영수증을 챙기는 편인데..


사람들이 한창 많이 찾을 때이지만, 이 동네는 자차가 아니면 접근하기 조금 어려운 곳이라 사람들이 별로 없는 것 같았다.


이제 슬슬 버스를 기다리러 가야겠다.


아무래도 낮이 되니 차들이 많아진 것 같다.


버스를 기다리는데 사람이 많아서인지 원래 예정시각보다 3~4분 정도 늦게 도착했다. 아마도 아오이이케 앞에서 사람들이 많이 타지 않았을까 싶다.


비에이역 도착

어제 어영부영하다가 비에이역에 늦게 도착해서 시로가네에 늦게 갔던 것이 뒤늦게서야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일찍 가서 미리 아오이이케나 흰수염폭포를 보았더라면 조금 여유있게 구경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해외에서 찾아오는 관광객이 많아지니 비에이역에도 이렇게 영어로 설명을 해놓은 시각표와 지도가 있고, 그리고 주요 구간의 운임을 안내하고 있다. 아오이이케에서 비에이역까지 오는 버스 운임이 시로가네온천부터 타는 것보다 110엔 저렴하다. 110엔이면 보통의 가게에서 500ml 페트병에 든 음료수 하나 사서 마실 돈도 안 되는데, 버스비 아끼겠다고 걸어다닌 것은 아니고, 길을 걷는 도중에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고 보지 못한 것이 있지 않을까?' 는 생각이 들어서 걸어다녔는데, 걸어다니느라 땡볕에 땀을 한 바가지 흘리고 나니 괜히 허튼 곳에 힘을 쓴 것 같기도 하고.

 

후라노행 열차가 들어오고 있다.

이제부터 쿠시로행 여정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비에이에 한두 번 온 것도 아니고 촌스럽게 사진 따위는 안 찍을란다.


나카후라노역

이 시기면 이미 라벤더는 끝나지 않았을까 싶은데..

 

이 열차 안에는 쭝궈 쪽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계속 비디오 촬영을 하면서 뭐라뭐라 쎨라쎨라하고 있었다. 신경이 거슬려서 발로 한 대 차주고 싶었지만, 문화시민이기에 폭력은 안 되고, 말도 안 통하니 가만히 있었다.

후라노역.

1년 전에 여기 왔었는데, 또 왔다...


한국에서는 '청(青)의 호수' 라고도 부르는 아오이이케(青い池)를 찾아서 계속 걸어간다. 흰수염폭포부터는 약 3.1km 거리라고 하는데 이 정도면 가볍게(?) 다녀올 만한 거리인지라.. 물론 태양이 작열하는 날씨라 걸을 때마다 땀이 몇 방울씩 떨어지기는 했지만.. 

앞의 글에서 시라히게노타키(白ひげの滝)를 보고 계속 비에이 방면으로 걸어가는 내용이 이어지는데, 나무가 쓰러져 있는 마지막 사진을 찍고 약 20분 정도 걸려서 아오이이케에 걸어서 도착했다. 아이폰7의 배경화면에 나왔다는 곳이라고 하는데, 아이폰7이 나오자마자 사서 쓸 정도로 돈이 많지 않아서 이 때는 몇 만원 주고 산 아이폰5c를 쓰고 있었던 것 같다. 화면이 큰 스마트폰이 좋은 점도 있지만,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사이즈가 편하기도 하고..

 

신기하게도 연못에 있는 물의 색이 푸르다.

 정말 호수의 이름처럼 푸른(青い) 호수다.

어쩌다 나무들이 이렇게 수몰당했나 싶어서 찾아보니, 화산 니류로 인한 피해를 방지하고자 만든 언제(堰堤)라는 둑을 여러 곳에 만들어 두었는데, 1988년 12월 토카치다케의 화산 분출 당시 이 중 하나의 제방에 물이 고인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이 연못에 갇힌 나무들은 비쩍 말라 있다.


지나가듯이 아오이이케의 사진을 한 번 본 적이 있었는데, 그냥 쓱 보고 넘어가서 '물 속에 나무가 사는가보군' 이렇게 생각했는데, 그건 착각이었다. 토카치다케의 화산 분출시 피해를 줄이기 위해 제방을 만들어 두었는데, 여기에 물이 들어차 고이면서 연못처럼 되었다고 한다. 그 덕분에 멀쩡히 잘 있던 나무들은 물에 잠기게 되었고, 물 속에서 크는 식물이 아니었기에 저렇게 말라죽게 되었다고 한다.


저렇게 죽어간 나무를 보니 뭔가 짠한 느낌이 들었다. 나무 입장에서는 '나는 물 속에 사는 나무도 아닌데, 어디서 물이 들어오더니 순식간에 수몰당했다' 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나무는 생각을 못하나..

 

물 색깔은 청색보다는 옥색에 가까운 듯한데, 이 연못이 알려지게 된 것은 1997년 일본의 타카하시 마스미라는 사람이 블루리버라는 사진집에 이 곳의 사진을 수록하면서 아오이이케라는 곳이 사진 애호가들을 중심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파랗긴 파랗다.


이 나무들이 불쌍하다.

동물이었다면 피하려고 움직이기라도 했을 터인데 나무는 땅에 뿌리를 박고 있었을 터이니 그냥 꼼짝없이 수몰될 수 밖에 없었을 것 같다. 동일본대지진이라든지 최근에 일어난 서일본 지역의 홍수피해 등을 보면 확실히 이 나라는 자연재해가 빈번하고 그 규모가 큰데, 그나마 자연재해에 대한 대비가 철저하여 그나마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것 같다. 한국은 최근에 들어서 일본에 비하면 약하지만 지진을 겪은 경험이나 대비가 거의 없었기에 사람들이 놀라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부터라도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시 피해를 줄일 수 있도록 미리 방재훈련을 철저히 해야할 것 같다. 막상 민방위훈련도 귀찮기는 하더라만 그래도 할 것은 해야겠지.


저렇게 계속 물에 잠겨 있으면 이미 뿌리까지 다 썩었을 것 같은데..


그렇게 죽어간 나무들은 저렇게 말라서 잎사귀 하나 없이 있는가 보다. 


아오이이케의 끝부분. 

어디가 끝인가 보려고 한 바퀴 돌다보니 여기까지 왔다.


물에 잠기지 않은 곳에는 나무들이 잘 있는데, 저렇게 죽었거나 죽어가는 식물들의 삶 역시 사람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 같다.


수몰된 나무들. 겨울이면 여기는 꽁꽁 얼어 있을 것이고 얼음과 눈 위에서 라이트업을 한다고 하던데 갈 기회가 있어도 추워서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이가 들수록 추운 것이 싫어진다.


이 곳에는 끊임없이 사람들이 왔다 가고, 개중에는 단체관광객들, 중궈와 한국의 패키지 관광객들이 많아서 복잡한데, 집단으로 움직이다보니 꽤 소란스럽다. 그들을 이리저리 피해서 가는 것도 일이라 귀찮다. 개별적으로 일행이 없이 자유롭게 여행하는 사람의 한 명으로서 떼지어 다니면서 질서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눈꼴사나울 따름. 

 

사람들이 계속 몰려들기에 시야가 확보되면 바로 사진을 찍고 움직인다.

 

덕분에 사진의 질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렌즈에 김이 서렸나..

 

사람들이 남는 것은 사진이라고 하는데 혼자서 돌아다닐 때 셀카는 얼굴에 뭐가 묻었나 확인할 때나 찍고, 대개 어딘가에 가고 본 것을 기억하고 남겨두기 위해 사진을 찍는 편이라 눈에 보이는 것만 사진으로 남기고 있다.


구름이 잠시 따가운 햇살을 막아주고 있다. 아리가또~ 이제 사진 몇 장 더 찍고 이 곳을 떠나야 할 것 같다.


수몰 피해 나무들.. ㅠㅠ


나무의 뿌리는 이미 썩었을 터이고. 동물이라면 어떻게든 피하려고 애를 써보기라도 했을텐데 이 나무들은 그저 뿌리내리고 있다가 그냥 참사를 당한 셈일 터이니.저렇게 말라버리고 죽어가는 나무가 안타깝기도 하고..

파노라마로 사진을 찍어볼까 했는데 지나다니는 사람이 많아서 잘 나오지 않을 것 같아서 포기하고, 그냥 한 바퀴 돌며 중간중간 멈춰 사진 한두 장씩 찍고 이동을 했다. 초반에는 대륙인 단체관광객이 와서 난리부르스를 추더니 잠시 후에는 한국이었나 중국이었나 아니면 둘 다였나 패키지투어 관광객들이 와서 시끌벅적해짐과 동시에 혼잡해졌다. 얼른 사진 몇 장 찍고 도망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퍼뜩 드는데 이 정도면 사진을 찍을만큼 찍었다 싶은데, 다시 이 곳에 오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잠시 이 호수를 더 바라보다가 다시 이동을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4. 흰수염폭포

2018. 8. 28. 04:57



지난 밤에는 오토바이를 타고 전국을 돌아다니는 아저씨와 같은 방에서 잠을 자게 되었는데, 미에현에서 오신 분이라고 한다. 미에라고 하면 츠, 토바, 시마, 이세 정도 다녀온 것이 전부인 것 같은데 시간이 많이 흘러서 잘 기억이 나지도 않고,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킨테츠 우지야마다역이었던가 근처에 있는 음식점에서 오코노미야끼를 먹었던 것이라, 이세신궁에 갔다 온 적이 있고, 몇몇 도시에 잠시 들러서 묵은 적이 있지만, 시간이 지나니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분과 이야기를 하다보니 한국인들은 일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을 하는가에 대해서도 물어보시는데, 아무래도 역사적인 문제가 있어서 쉽사리 양국의 간극을 좁히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하니, 자신은 전후세대이기 때문에 전쟁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경험한 것이 없어서 딱히 뭐라고 말할 수는 없고, 거기에 대해서 특별히 가지고 있는 감정은 없다고. 전후세대라고 하면 1945년 이후 태어난 이들을 말하는 것이니 그 아저씨도 대충 50대 전후일 것 같은데, 뭐랄까 조금 마음이 열려 있는 분 같은 느낌이 들었다. 대개 여행 중에 만나는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마음에 여유가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설마 조센징이 와서 자기한테 귀찮게 말을 걸더라고 뒷담화를 까지는 않았겠지..

그러다 그 아저씨는 이른 시각에 출발하였고, 나는 조금 늦게 일어나서 천천히 씻고 짐을 챙겨서 밖으로 나왔다. 아침을 먹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조금 더 비에이 방면으로 가다보면 미치노에키라든가 카페나 식당이 하나 둘 정도는 있지 않을까 싶었다. 원래 방문하는 장소에 대해서 미리 열심히 연구를 하고, 효과적인 동선을 찾아내거나 맛집을 찾아놓고 가는 것이 전혀 아니고, 일본에 왔으면 온천욕이나 해야지 하면서 온천이 있는 곳을 찾은 것 뿐이고, 부킹닷컴에서 흰수염폭포가 가깝다는 한국인 여행자의 댓글을 보고 아 근처에 이런 것이 있구나 싶었는데, '배틀트립' 이었던가 어떤 텔레비전 여행 프로그램에서 잠시 보았던 것 같아서 그 곳에 잠시 가보기로 한다.


흰수염폭포(白ひげの滝)

일본어로는 '시라히게노타키' 라고 부른다.

 

이 주변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것 같다.


예상했던대로 이 폭포를 실제로 보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찍어놓은 사진을 보는 것보다는 못하다는 느낌이었다. 유량이 적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조금 더 화끈하게 물이 쏟아졌으면 좋으련만 수염처럼 가늘게 흐르는 것이 좀 아쉽기도 하고.. 수염이라서 저렇게 쫄쫄쫄 물이 흐르는건가..


사진을 한 장 더 찍고


폭포를 바라보고 있는 다리 위에서 사진을 하나 더 찍고


주변에 사람들이 없는 틈을 타서 사진을 몇 장 더 찍었다.


물 색깔이 다소 푸른 빛을 띈다고 해서 아오이카와(青い川)라고 불린다는 것 같다.


밑에는 온천수가 섞여서인지 김이 올라오기도 하고..

 

바닥에 흐르는 물도 맑지는 않다. 온천수도 섞여 있을 터이고..


조금 먼 곳까지 사진을 찍고

 

가족으로 보이는 관광객들이 다리를 건너고 있다.

 

근처의 고급 료칸형 숙소 사진도 찍어본다. 갈 곳은 많으니 다시 올 일은 없을 것 같기는 하지만..

 

햇빛과 맞장을 뜨려다보니 사진이 이렇게 나왔나..

 

렌즈에 물이나 땀이 묻어있었던 것 같다.

 

시라히게노타키(白ひげの滝, 흰수염폭포)에 대한 설명인데 '다리 위에서 봐 BoA요~' 라고 한다. 아쉽지만, 짐도 있고, 이 더운 날씨에 종일 먼 길을 가야하므로 체력을 아껴야 하니 그럴 일은 없다.


역시 여행을 온 가족들인 것 같고..

 

여기 흐르는 강의 이름이 비에이카와(美瑛川)인 것 같다.


다리를 다시 건너서 처음 장소로 되돌아왔다.

여기에 온 사람들은 대부분 가족 단위인데다 자동차를 가지고 와서 별 문제가 없겠지만, 차도 없고, 돈도 없는 사람은 걸어서 가야 한다. 버스가 다니기는 하지만, 버스 시간이 띄엄띄엄해서 버스 시간에 맞춰서 돌아다니는 것도 골치가 아픈 일이라. 올 때와 마찬가지로 비에이역까지 가는 버스는 하루에 단 다섯 대만이 다닐 뿐. 일단은 아오이케까지만 걸어서 가보고, 그 다음에 버스를 타고 비에이로 돌아가면 될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날씨에 비에이역까지 걸어가는 것은 할 짓이 아닌 듯하다.


자작나무들이 잔뜩 심어져 있다. 일단 강렬한 햇빛을 가려주니 굉장히 고맙다.


캐리어를 끌고 다니기 편한 길이 있어서 자작나무숲 가까이 가는데 아쉽게도 이렇게 정비해서 포장된 길은 별로 길지 않았다.

 

그런데 더 들어가봤자 뭔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저 안에 들어가 잠시 쉬려고 했는데 벌들이 날아다녀서 도망쳤다. 이런 곳에서 벌에 쏘일 수도 있어서..


사람이 지나다닌 듯한 흔적이 있기는 한데, 그리 많이 다닌 것 같지는 않다. 다시 생각해봐도 백팩을 메고 캐리어를 끌고 다니면서 이런 험한 지형을 지나가고 있는 사람이 어리석은 것 같은데..

 

부동의 폭포라는 곳이 있는데 모르고 그 곳을 지나쳐버렸다. 나중에 이 근처에 가게 된다면 다녀오겠는데, 그게 언제가 될 지는 모르는 일이고. 부동의 폭포 보러간다고 이 곳을 또 갈 수는 없는 일이고. 여기서 시로가네가 1.5km라고 하니, 여기까지 그만큼 걸어온 것 같은데, 이 정도면 몸풀기 정도라 생각하면 되지만, 짐덩이가 두 개나 있어서 걸어가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10년 넘게 사용하면서 바퀴가 여기저기 찍히고 주인의 과적으로 인한 피해로 손잡이가 휘어져서 잘 들어가고 나오지 않는 캐리어라서, 돈 벌어서 새 캐리어를 살 때까지 조금만 더 고생하자고 달래가면서 끌고 다니고 있다.


태풍과 폭우로 인해서 저렇게 쓰러진 나무들도 있는데, 일단 아오이케까지만 가보고 아오이케부터는 버스를 타고 비에이로 가야 할 것 같다. 썬크림을 두껍게 바르고 다니고 있지만, 땀이 줄줄 흘러서 계속 씻겨 내리고, 다시 바르기를 반복하고 있다.9월인데도 햇살이 쨍쨍해서 도저히 짐을 메고 끌면서 이 햇살과 맞장을 뜨자니 그 전에 타죽을 것 같다. 사진 속에 쓰러진 나무는 비바람 때문인 것 같은데, 날이 맑은 것은 그나마 다행인건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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