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청춘18 승차권의 세 번째 사용일이 되었다.[각주:1] 일정은 아사히카와를 출발하여 후라노에 도착 후 후라노역 주변을 돌아보고 다시 아사히카와로 돌아와서 짐을 챙긴 뒤에 삿포로에 돌아가는 것이었다. 이 날 하루 청춘18 승차권을 사용하면 단 이틀 분이 남는데, 다음 날은 삿포로에서 아오모리까지, 마지막 날은 아오모리에서 토쿄에 가는, 하루종일 열차를 타는 이틀이 되겠다.

지난 밤에 정리를 하면서 한국으로 가지고 갈 것을 대충 추려서 가방의 빈 자리에 넣고, 남는 것은 상자 하나에 모아서 따로 포장을 하여 체크아웃을 하면서 호텔에 맡겨두고 아사히카와역으로 갔다.


홋카이도의 흔한 열차 키하 40계


JR홋카이도의 철도 노선 중 삿포로 근교 지역과 하코다테에서 신하코다테호쿠토역 사이의 하코다테라이너가 다니는 구간만 전동차가 다니고, 다른 구간은 디젤 동차로 운행하고 있다. 그 덕분에 디젤 차량에 대해서는 다른 지역의 JR 여객철도회사보다 경험도 많고 전문적이라 할 수 있지만, 자신들의 전문이라고 이 열차를 굴리는 것이 아니라 비전화 구간에 새로이 가선을 설치할 만한 재정적 여력이 없고, 불행히도 전동차를 투입하기 위해 가선 건설비용이나 열차 교체 비용을 감수할 만큼 수요가 많지 않아서 계속해서 키하 40계를 사용하고 있다. 해외여행자들이 많이 찾는다 해도 그것은 일시적 수요에 불과하고, 정기적으로 철도를 이용하는 연선 인구는 감소 추세인 만큼 장기적인 관점에서 새로운 열차 증비라든가 시설 개선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오히려 수요 부족 구간에서 열차가 감편되고, 폐선이 되는 것이 요즘의 상황인지라 '인구의 감소 → 열차의 감소 → 교통의 불편 → 인구의 감소' 의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JR홋카이도는 지자체의 도움 없이 존속하기 어려운 노선을 추려서 발표하면서 각 지자체의 지원을 요청하였지만, 이 지역이 갑자기 인구가 늘어나거나 발전하는 곳이 아니고 쇠락하는 중이어서 재정적인 지원을 받는 것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조만간 수요 부족의 노선의 폐선과 함께 버스 등의 대체운송수단이 도입되지 않을까 싶은데, 줄어드는 인구를 다시 늘리는 것이 하루아침에 되는 쉬운 일도 아니고, 지속적으로 적지 않은 돈이 필요할텐데 땅파면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아사히카와역은 원래 지면에 지어진 역이었으나, 낡은 역 건물을 철거하고 새로 지으면서 고가화하였고, 지붕을 만들어 강우, 강설에 대비하였다고 한다. 2000년대 후반에 아사히카와역에 눈이 쌓여서 열차에서 내려 역을 나오다가 발이 다 젖어버려 가장 가까운 호텔로 들어가 말렸던 기억이 남아 있는데, 지금은 눈이 3~4층 높이까지 쌓이지 않는 한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아사히카와와 비에이를 오가는 원맨열차. 삿포로 근교 열차와 특급열차를 제외하고 홋카이도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키하 40계 디젤동차다. 이 열차를 타고 일단 비에이까지 간다.


비에이역에 도착해서 내려서 후라노행 열차를 기다린다.

쭝꿔로 추정되는 곳에서 온 것 같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여기서 갈아탈 열차는 후라노 비에이 노롯코열차. 노롯코라는 이름은 느리다, 더디다는 의미의 노로이(鈍い)와 차체의 윗부분이 열려 있어 개방된 차량에 여객을 수송할 수 있는 열차를 말하는 토롯코(トロッコ)를 합쳐서 만들어진 단어라고 한다. JR홋카이도에서는 이 닭장 열차 같은 열차를 여름동안 후라노 비에이 노롯코열차로 운행하고 있다. 6월 말부터 8월 20일 경까지는 매일, 이후에는 주말에 운행을 한다. 이 열차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는데 운이 따랐는지 토요일에 오게 되었고, 아침에 생각없이 나왔지만 어쩌다보니 시간이 맞아서 노롯코열차를 타게 되었다. 지정석은 지정석권을 따로 구입해야 하는데, 자유석은 추가요금이 필요하지 않아서 열차에 올라타서 빈 자리를 찾아서 앉았다.

 

비에이강을 건너고 있다


주말이지만 여름이 지나서인지 열차에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JR홋카이도의 직원은 검표를 하면서 승차기념으로 스탬프 용지를 나누어 주었던 것 같다. 스탬프를 찍어서 가져오기는 했는데, 막상 돌아오고 나면 그런 것을 잘 챙겨두지는 않아서 어디에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누군가 '이게 뭐야? 쓰레기네' 하면서 버렸을 수도 있고..


이 동네에서 언덕은 빠질 수 없는 주인공이다.


열차를 타고 가면서 제법 괜찮은 차창 밖 풍경을 볼 수 있다.


마을의 정경은 평화롭기 그지 없다.

 

올해는 이미 늦었고 언젠가 다시 홋카이도에 가게 된다면 비바우시역 주변과 파노라마로드를 보러 다녀오고 싶다.


저 홀로 덩그러니 있는 집에서 살면 어떤 기분일까 궁금하다.


비바우시역

비에이를 떠난 노롯코 열차는 비바우시역에 잠시 정차했다. 파노라마로드 코스를 완주하려면 거리가 길기 때문에 걸어서 다니기는 무리이고, 자전거를 타더라도 몇 시간이 필요하다고 들었다. 어차피 이 날은 처음부터 많이 걸어다니거나 자전거를 탈 생각이 없어서 그냥 열차 안에서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 감상만 할 생각이었다. 오후부터 상경의 대장정이 이어지므로 최대한 체력을 아끼는 것이 우선이었고, 일정을 빠듯하게 만들 생각은 없었다. 

비바우시역 가까이에 리버티유스호스텔이라는 곳이 보인다. 이 근방에는 호텔급의 숙소가 없으니 이 동네에서 묵으려면 게스트하우스나 유스호스텔, 펜션 등을 찾아보아야 한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민박집 같은 곳도 있다는 것으로 들었는데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


비에이역에서 비바우시역과, 비바우시역에서 카미후라노역 사이는 역간 거리가 길어서 걸어다니기에는 조금 멀다. 걸어간다면 2시간 정도 예상하고 걸어가면 되겠지만 별로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운동삼아 산책하는 기분 삼아서 여유있게 가면 괜찮을 듯하지만, 아쉽게도 시간이 빠듯한 상황이라서..


열차 내부는 이렇게 꾸며두었다.

주말을 맞아 찾아온 일본인들도 많고, 대륙과 섬에서 온 중국인들도 꽤 있었다. 이 시기라면 후라노에서 꽃구경을 하는 것은 어렵고, 비에이에서 해바라기 정도 볼 수 있을텐데..


카메라가 좋아보인다..


비바우시역을 출발하면 직선으로 쭉 뻗은 선로를 지나가게 된다. 창문이 있어서 초점이 잘 맞지 않아 뒤늦게 사진 한 장 찍었는데 끝에 곡선 구간이 사진에 담겼다. 조금 일찍 카메라를 꺼내서 사진을 찍었으면 좋았을텐데 아쉽다.


숲 속으로 선로가 있는데 이런 곳에서 가끔 야생동물들이 열차에 치이기도 해서 운행중단 또는 지연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선로 주위에 죄다 철조망을 설치하는 것은 벼룩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일이겠지 싶다.


열차는 시속 70km 정도로 달리고 있다.


후라노선은 지방교통선으로 선로의 등급이 낮아서 시속 85km로 속도가 제한되는데, 아사히카와에서 출발하여 갈수록 역간 거리가 길어져서 그럭저럭 속도를 내기는 하지만 표정속도가 그다지 빠르지는 않다. 전 구간 단선이라서 상하행 열차가 교행을 할 수 있도록 복선으로 선로가 설치된 교행역에서 2~5분 내외 정차를 하면서 시간을 까먹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가장 빠른 경우도 1시간 이상 걸리고 대개 1시간 10분~30분 정도 걸린다고 보면 된다. 


철도 건널목을 지나고

작은 교량도 지나고


이제 슬슬 후라노에 진입하고 있는 것 같다.


이 동네 역시 언덕이 많다.

지난 달에 이 곳에 왔을 때는 비가 와서 비를 쫄딱 맞고 다녔었는데..

 

농사지은 것을 수확하는 모양이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니..

 

카미후라노역에 정차

이름처럼 후라노시의 북쪽에 있는 지역이다.


학생 한 명이 보인다..


역 주변은 생각보다 관리를 잘 한 것 같다.

 

카미후라노역을 출발할 때 아무도 없는 차량 뒤편에 가서 사진을 찍었는데 타이밍이 조금 늦었다.

 

카미후라노역을 출발하여 니시나카역으로 향한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후라노는 평범한 시골 마을처럼 보인다.

이런 풍경은 한국에서도 볼 수 있는 평범한 농촌의 모습인데, 여름철이면 많은 관광객을 불러들이는 곳이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장기적인 관점을 가지고 사람들이 흥미를 가지고 찾아올 것을 발굴해내는 것도 필요하고, 어떻게 홍보하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모으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관광객들에게 터무니없는 바가지를 씌우지 않는 양심적인 자세가 중요한데, 한 철 장사라고 단기간에 뽕을 뽑으려는 사람들이 많아서 아예 쳐다보지도 않게 되는 것 같다.


카미후라노역을 출발해서 완만한 오른쪽 곡선 구간을 지나면, 다시 길게 쭉 뻗은 선로가 나온다. 니시나카, 나카후라노, 시카우치역까지 선로는 곧게 뻗어 있고, 시카우치역에서 가쿠덴역까지는 중간에 살짝 굽이가 있는 것을 제외하면 선로가 직선으로 놓여 있다. 철도 팬이라면 적당한 곳에서 자리잡고 지나가는 열차의 사진을 찍기에 좋은 장소일 듯하다.


수확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니시나카역에 도착 직전이다. 니시나카역 다음 역은 여름철 라벤더 시즌에 사람들이 많이 찾는 나카후라노역인데, 라벤더 시즌에는 니시나카역과 나카후라노역 사이에 라벤더바타케역이라는 간이역을 임시로 만들어 노롯코 열차만 정차한다. 상하행 3왕복에 불과하여 시간을 맞추는 것이 쉽지 않아서 나카후라노역까지 걸어갈 수 있는데, 약 20~25분 정도 걸린다.

 

라벤더는 이미 다 지기도 했고, 팜 토미타는 지난 달에 다녀와서 나카후라노에 내리지 않고 목적지인 후라노까지 계속 갔다. 라벤더시즌이 한창인 7월과 8월에는 니시나카역과 나카후라노역 사이에 라벤더바타케(ラベンダー畑)역이라는 간이역을 만들어 노롯코 열차가 정차하는데, 이미 라벤더 시즌은 끝나서 이 역은 폐쇄된 상태.


해가 쨍쨍 내리쬐는 맑은 날을 좋아하지만, 햇빛이 너무 강렬하면 피부가 금방 타서 딱 이 정도가 좋다. 구름이 적당히 햇빛을 막아주는 것이 다행이다 싶은데, 지난 달 후라노에서 보았던 아름다운 풍경을 생각하고 와서인지 조금은 실망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롯코열차는 후라노역에 도착했다.

분위기로 봐서는 사람이 석탄 넣고 불을 때서 달리는 열차일 것 같지만, 그냥 디젤 동차가 나머지 객차를 끌고 다니는 열차다. 석탄 넣어서 불을 때서 달리는 열차는 SL후유노시츠겐(冬の湿原)호라는 열차가 쿠시로에서 시베챠까지 겨울 한정으로 운행을 하고 있다.  


이제 이 열차는 다시 아사히카와까지 돌아갈 예정이라서 후라노역 밖으로 나가서 구경을 하다가 아사히카와에 돌아갈 때는 평범한 보통열차를 타야한다. 오후 10시 정도에는 삿포로에 도착해야 하니 아사히카와에는 늦어도 오후 5시 이전에 아사히카와로 가는 열차를 타야할 것 같다.

 

카와사키중공업에서 제작하고 아사히카와운전구에 소속된 열차인 것 같다.


객차는 이렇게 생겼다. 정원이 50명이란다.

이제 슬슬 후라노 시내를 구경하러 바깥으로 나가본다.

  1. 앞에서 9월 1일 삿포로-오타루-삿포로-이와미자와-아사히키와 구간에서 사용한 것만 나오지만, 이미 7월 30일에 하루 사용한 적이 있어서 남은 날은 3일분이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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