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슌쥬하치킷푸

아오이모리철도

2017. 11. 4. 04:16



지난 밤에 정신없이 넘어갔던 청춘18 승차권의 홋카이도옵션권을 사지 못하여 예상보다 2배가 넘는 돈을 지불하게 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생각하다가 순간 머릿 속을 스치듯이 갑자기 떠오른 것이 승차권의 판매기간이었다. 여름에 발매하는 이 승차권은 7월 20일부터 9월 10일까지 사용이 가능하지만, 승차권 판매기간은 이보다 빠른 7월 1일부터 8월 31일까지였다. 청춘18 승차권의 이용기간만 생각했지, 발매기간을 생각하지 않아서 이런 낭패를 보게 된 것이었다. 미리 알았더라면 도착해서 다음 날에 양을 보러 히츠지가오카전망대에 갔다 오면서 청춘18 옵션권을 살 것을 그랬다는 진한 아쉬움이 남았다. 어차피 하코다테 도착이 늦어서 오쿠츠가루이마베츠역에서 신칸센을 타야 하는 상황이기도 했지만, 이 경우라면 오쿠츠가루이마베츠에서 신아오모리까지 신칸센 요금만 내면 되니 절반에 조금 못 미치는 비용을 절약할 수 있었는데.. 어차피 되돌릴 수 있는 일도 아니고, 미리 살피지 않은 사람의 잘못이지만, 역무원이 판매기간이 지났다고 말했더라면 "아~ 그렇군요! 제가 바보였군요." 하고 넘어갔을텐데..

아오모리에서 토쿄까지 하루에 가는 경로는 오우본선을 타고 아키타를 경유해서 요코테역에서 키타카미선으로 환승하여 키타카미부터 토호쿠본선을 따라 남쪽으로 가는 여정인데, 오전 5시 42분이라는 말도 안 되는 시각에 아오모리에서 출발하는 열차를 타야하므로 일찌감치 포기했다. 혹시 모르는 일이라 5시와 5시 20분에 알람을 맞춰 놓고 자기는 했는데 알람이 울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알람을 꺼버린 것 같다. 7시 반 정도 되어서 일어나서 슬슬 아침을 먹으러 로비에 내려가서 밥을 먹다보니 8시가 되어서 다른 노선은 집어치우고 그냥 토호쿠본선과 토호쿠신칸센 신아오모리 연장 이후 제3섹터로 전환된 구 토호쿠본선 구간이었던 아오이모리철도와 IGR은하철도를 이용해 최단구간으로 가기로 마음을 바꿨다. 마음을 바꿨다기 보다는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이, 오우본선 경유로 가는 경우라면 5시 42분에 출발하는 열차를 타고 22시 39분에 토쿄역에 도착할 수 있는데, 그 다음 열차를 타면 당일에 갈 수 없고, 이미 열차는 두 시간 전에 떠나버린 뒤라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 

아침을 먹고 나서 방으로 돌아가 양치질을 하고 짐을 양어깨에는 백팩, 오른쪽 어깨에는 크로스백을 걸치고 왼손에는 캐리어, 오른손에는 상자 하나를 들고 프런트에 가서 체크아웃을 하고 영수증을 받아서 나왔다. 아오모리역에 들어가면서 마지막 칸이 빈 칸으로 남아있는 청춘18 승차권을 보여주고 9월 5일 도장을 받아서 아오이모리철도를 타는 2번 승강장으로 내려갔다. 

원래 JR승차권을 가지고 아오이모리철도를 탈 수는 없다. 그러나 아오이모리철도선 구간 중 JR과 환승이 되는 아오모리역과 노헤지역, 그리고 하치노헤역에서 중간에 내리지 않고 승하차를 하는 경우에 한하여 아오이모리철도의 운임을 내지 않고 이용할 수 있는 특례가 있다. 아오모리역은 JR의 츠가루선 및 오우본선과의 환승역, 노헤지역은 JR의 오미나토선과 환승역이고, 하치노헤역은 JR 하치노헤선과 환승역인데, 신칸센을 타지 않으면 철도로 이 역에 갈 수 없기 때문에 특례조항을 만들어 지정된 역에서 타고 내리는 경우에 한하여 JR패스나 청춘 18 승차권을 가지고 탄 경우 운임을 내지 않아도 된다.


아오이모리철도의 제복은 처음 보는 듯하다. 예전에 아오모리역에 왔을 때 봤을 수도 있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아오모리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아오모리베이브릿지가 살짝 보인다.


아오이모리철도 캐릭터는 꽤 귀엽다.

나중에 돈이 남을 때 인형이 있으면 하나 사오고 싶은데..


귀여운 여성 승무원이 밖에 서 있다. 이 언니는 아사무시온천역에서 내리더라는..


역명판 사진을 찍었는데 초점이 잘 맞지 않았다...


이 캐릭터의 이름은 모리(モーリー). 장음이니까 모-리- 라고 부르면 되겠다.


아오이모리철도는 제3섹터로 전환된 철도 노선이지만 생각보다 승객이 많았다. 제3섹터로 전환된 노선은 돈이 되지 않기 때문에 JR이 신칸센 개통과 함께 지방자치단체로 경영권을 떠넘기는 것인데, 혼슈의 토카이도본선, 산요본선, 토호쿠본선 등 수요가 많은 노선은 신칸센과 병행재래선을 함께 운영하고 있지만, 이용하는 사람이 적은 구간을 도마뱀이 꼬리 자르듯 잘라내서 "당신네 지역 사람들이 이용하는 노선이니 직접 맡아서 운영하시오." 라면서 선로와 열차 몇 량을 양도하면서 손을 털고 나가는 것이다. 이 회사들은 이미 민영화가 되어서 주주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상황이니 이들에게 계속해서 운영하라고 강제할 수는 없는 것이고..


토호쿠신칸센이 산에 터널을 뚫어 최대한 직선으로 하치노헤 방면으로 가는 반면, 아오이모리철도선(구 토호쿠본선)은 산을 피해 해안선 가까이로 돌아서 가는 경로라서 거리 면에서 조금 더 멀다. 


노나이역. 창밖으로 보이는 역 시간표를 보니 시간당 한 편 이상의 열차가 다니고 있고, 출퇴근, 통학시간대에는 배차가 더 많아지는 것 같다. 이 정도의 배차 시각을 보면 그럭저럭 철도 이용 수요가 완전히 바닥을 치는 것 같지는 않다. 아오모리현 역시 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데, 자연적인 이유도 있지만 도시지역으로 인구 유출이 계속되면서 생산가능인구가 갈수록 줄어드는 문제를 안고 있다고. 한국에서 인구의 수도권 집중이 문제가 되고 있듯이, 일본 역시 토쿄와 근교 카나가와현, 사이타마현, 치바현의 인구는 늘어나고, 칸사이지역의 오사카부, 쿄토부, 효고현 등은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이라고 한다. 언젠가 아오모리현에서 30년 후 상황을 예측한 자료를 본 적이 있는데, 현재보다 약 30% 이상 감소할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있다고.


출발하는 열차에서 노나이역 명판을 카메라에 담았다.


액화가스제조소가 있다.


다음 역은 아사무시온센(浅虫温泉)역.

일본 아니랄까봐 온천이 참 많고, 역 이름에 온천이 들어간 역도 많다.


온천이 있어서 이용하는 사람이 많은지 아오이모리철도에서 몇 안 되는 유인역이다.


마스코트인 모리의 이름을 딴 모리즈 카페가 역 안에 있다.


역무원이 상주하는 역이므로, 모처럼 운전수는 승차권이나 운임을 받지 않고, 역무원이 그 일을 맡아서 한다.


열차는 아오모리만(青森湾)과 무츠만(陸奥湾)을 지나는 등 한동안 해안선을 따라가다가 노헤지 부근부터 바다와 거리가 있는 내륙으로 달린다.


차창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이 간간이 눈부셨다.




니시히라이역. 사진을 굉장히 성의없이 찍었다.


열차 안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꽤 타고 있는데 청춘18킷푸를 가지고 탄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선로 작업을 하는 인부들도 보이고..


시미즈가와역이었던가..


역 명판에 희미하게 시미즈가와(清水川)라고 쓰여 있다.

카리바사와역


노헤지역. JR의 오미나토선과 환승할 수 있는 역이다. 토호쿠본선을 아오이모리철도로 이관하기 전인 JR역이었던 시절에는 이 역에 역무원이 있었는데, 지금은 JR역이 무인역이 되어 아오이모리철도에서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이야 제3섹터로 넘어갔지만, 토호쿠본선은 토카이도본선, 산요본선 등과 함께 일본의 주요 간선 중의 하나였기에 그냥 비워둘 수 없을 것 같다.


저 사람들은 아오모리 방면으로 가는 열차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노헤지역을 출발한다. 아오모리에서 출발했으니 노헤지면 대충 절반 정도 온 것 같다.


직장인보다 학생들이 많이 타서인지 열차 안에는 학교 광고가 붙어 있다.


보선반 직원인 것 같은데 저 분은 처음부터 끝까지 저기에 서서 간다. 한국에서는 철도회사 직원들이 지하철에 빈 자리가 생기면 승객이 서 있어도 앉아서 가던데..


과거 토호쿠본선이라는 주요간선 선로를 달리는 것이기에 선로 상태도 좋고, 속도도 제법 끌어올려 달려서 꽤 빠르게 가고 있다. 아오모리역에서 하치노헤역까지는 약 96km 거리라고 하는데 중간에 있는 모든 역에 정차하면서도 1시간 반 정도 걸려 도착하니 꽤 빠르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열차와 비교하면 수도권 전철의 경부선 용산-천안급행열차의 표정속도보다 조금 빠른 수준이다.


흔한 시골의 기찻길 옆의 논이다.


다음 역은 카미키타쵸란다. 하치노헤까지는 일곱 역이 남았다. 구름이 해를 가려서 그렇지 밝은 대낮인데 차내에 있다고 하지만 셔터스피드가 못 따라갈 정도로 열차는 빨리 달리고 있다.


운임은 무시무시하게 오르고 있다. 아오이모리철도의 승차권을 구입했다면 아오모리에서 하치노헤까지 2,280엔을 지불했어야 하는데, 아오이모리철도의 자비로운 방침이 참 고마웠다. 만약 이 돈을 내야한다면 그냥 깔끔하게 신아오모리에서 모리오카까지 신칸센을 타고 나중에 왜 그렇게 큰 돈을 질렀을까 후회할 수 있겠지만..


오가와라호(小川原湖, 오가와라코)를 지난다. 일본의 호수 중에서 11번째로 큰 곳이라고..


정기권을 구입하면 300엔 쿠폰을 준다고도 하는데 잠깐 왔다가 가는 외국인에게 그런 것이 필요할 리가 없고, 통근, 통학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광고 및 안내라고 봐야겠다.

 

미사와역. 이제 20분 정도 남았다. 크지 않은 시골 마을인 것 같다. 토와다 관광철도와 환승역이었는데, 영업수지 악화로 폐선되었다고 한다. 여기도 갈수록 사람들이 도시로 이주를 하기 때문에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은 지속적인 인구유출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저 멀리 신칸센이 다니는 고가가 보이는데 하치노헤역에서 만나게 되겠지.


시모다역. 이제 10분 정도 남은 것 같다. 벌써부터 지겨워지고 있다. 어우..

...

..

짐이 많은 관계로 미리 선반 위에 올려둔 백팩과 상자를 내리고 캐리어의 손잡이를 뽑아놓고 내릴 준비를 하고 하치노헤역에서 내렸다. 열차는 계속해서 메토키역까지 가지만, 하치노헤역을 지나는 순간 지금까지 타고 온 구간의 운임을 다 내야하기에 일단 내리는 것 외의 방법이 없다. 여기서 내려서 가장 저렴한 방법으로 모리오카까지 가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청춘18 승차권 4일째 분을 사용하는 날.

여유를 부리면서 아침을 먹고 원래 계획했던 것보다 조금 늦게 호텔에서 나왔다. 삿포로역에 조금 일찍 가서 토마코마이에 도착해서 열차를 기다리려고 했는데, 장거리 이동에 적합하게 짐을 다시 싸다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고, 호텔에서 체크아웃하기 전에 아오모리에서 토쿄까지 가는 열차 시각표를 인쇄하다가 또 시간을 보냈고, 짐이 많아서 이것을 다 질질 끌고 다닐 수도 없어 호텔의 송영버스를 타려고 기다리면서 시간을 보내느라 삿포로역 앞에 내리니 시간이 빠듯했다.

거리상으로 따지면 청춘18 여정의 마지막 날이 가장 길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이지만, 혼슈에서는 토쿄에 가까이 갈수록 열차의 빈도가 많아지고, 자정이 지나 마지막 열차가 다니는지라, 홋카이도처럼 이동 거리는 멀지만 열차 운행이 드물어서 중간에 허비하는 시간이 많은 곳이 더 힘들다. 삿포로에서 치토세나 토마코마이까지 다니는 치토세선은 그나마 열차가 자주 다니는 구간이지만, 토마코마이 이후로는 열차 운행 횟수가 현저히 줄어들기 때문에 열차를 기다리는 중간에 딴짓하다가 놓치면 하코다테까지 못 갈 수도 있는 위험이 있어서 주의해야 한다.


조금 늦은 출발을 만회하기 위하여 쾌속 에어포트를 타고 치토세역까지 왔는데 열차가 바로 있는 것은 아니고 11시 44분에 토마코마이행 열차가 있다고 한다. 예정대로 간다면 하코다테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태풍이 쓸고 간 뒤로 기상 및 철도 상황이 불안정해서 걱정을 지울 수 없었다. 


치토세역 정도면 그럭저럭 번화하다고 할 수 있는 곳인데 아무리 출근, 등교시간이 지났다고 해도 역이 너무 썰렁하다. 사람들이 다 점심 먹으러 간 것일까. 학생들이 집에 갈 때나 직장인들이 퇴근할 때는 사람이 꽤 많지만, 다른 시간에는 이렇게 한산한 모양이다. 이러니 홋카이도의 모든 노선이 다 적자일 수밖에..


열차가 도착한다는 안내가 나온다.


삿포로 근교 노선도

위의 노선도에 있는 역들이 삿포로 권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이상인 경우 삿포로까지 1시간 이상 걸리는 것은 물론, 열차 간격이 뜸해서 이동에 상당한 제약이 생긴다. 이 노선도에 있는 범위 정도만 거리와 소요시간 및 승차인원 등에서 삿포로 권역으로 설정해두고 있다.


아울렛 레라가 보이는 것을 보니 여기는 미나미치토세역


열차 문이 무식하게 생겼는데, 겨울이 길고 춥고 눈이 많이 내리는 곳이라 방한, 방풍을 위해 차량의 문을 이런 식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미나미치토세를 지나면 승객이 확 줄어서 빈 자리가 늘어나기 시작한다. 치토세역에서 열차에 탔을 때부터 빈 자리는 있었지만 종착역인 토마코마이가 가까워지면서 사람이 앉은 곳보다 빈 자리가 더 많아진다.


이용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곳에서는 문 옆에 있는 버튼을 눌러서 문을 열고 닫게 되어 있다. 한국의 전철, 지하철처럼 역에 도착하면 자동으로 문을 열어주지 않기도 하니 주의해야한다.


종착역인 토마코마이역에 도착. 내린 다음에 보니 731계 전동차를 타고 온 것 같다. 굳이 열차의 계열 같은 것을 알고 싶지는 않지만 써진 것을 보니 대충 알 수 있는 것 같다. 토마코마이역은 무로란본선과 히다카본선의 환승역이기도 하다. 엄밀하게 말하면 치토세선은 토마코마이역의 이전 역인 누마노하타(沼ノ端)역까지이지만, 이 역이 존재감이 없어서 치토세선 열차가 토마코마이까지 운행을 한다. 삿포로에서 치토세까지 갈 때도 삿포로에서 출발하여 나에보(苗穂), 시로이시(白石)역까지는 하코다테본선으로 가다가 시로이시역을 지나서 분기가 된다. 


곧 하코다테방면으로 가는 상행열차로 갈아타야 하고, 토마코마이역 주변에 별로 갈만한 곳도 없어서 그냥 역에서 기다렸다.


아마 저기에 세워져 있는 열차 같은 똥차가 들어올 것 같다.


토마코마이역 주변에는 메가돈키호테가 있고, 그 건물에 쇼핑센터 같은 곳이 있다. 특급 정차역이라고 해서 나름대로 사람이 많이 사는 도시가 아닐까 싶어서 몇 번 들러보았는데 매번 딱히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없었고, 뭐 그저 그랬다. 그렇다고 돈키호테가 다른 곳에 비해서 많이 싸다고 느낀 적도 없는 것 같다. 가끔 유통기한이 다 되어가는 식품류를 반값 이하에 싸게 팔기도 하지만 입맛에 맞지 않는 것들이어서.


역 근처에는 비즈니스 호텔 체인의 점포들이 줄지어 있다. 토마코마이시는 무로란시와 함께 홋카이도의 대표적인 공업도시인데, 제지산업이 유명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토마코마이역 주변에는 돈키호테가 있는 쇼핑센터 외에 눈에 띄는 상점이 별로 없고, 호텔들의 큰 간판만 보인다. 오히려 공항이 가까운 치토세에는 호텔 등의 숙박업소가 많지 않아서, 홋카이도의 성수기에는 삿포로나 오타루 등지에서 숙소를 구하지 못하면 토마코마이 정도가 대안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토마코마이에서 삿포로, 오타루에 다녀오려면 적지 않은 비용과 시간을 소비하게 되겠지만 홋카이도레일패스나 JR패스를 구입했다면 추가로 들어가는 비용이 없으니 길바닥에 시간 버리는 것 외에는 괜찮을 것 같다. 

맛집 같은 곳을 일부러 찾는 성격도 아니고, 백팩에 캐리어, 60사이즈를 넘는 무거운 상자 하나를 들고서 돌아다닐 엄두가 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약 20분 후에 들어올 열차를 놓치면 두 시간 후에 다음 열차가 오는지라 얌전히 플랫폼에서 오락가락하면서 열차를 기다렸다.

 

대부분은 단거리 이용객인 것 같지만, 청춘18 승차권이 9월 10일까지 유효하므로, 여름의 끝자락에서 보통열차로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대개 특정 지역에서 여행을 목적으로 온 사람들은 짐을 저렇게 가볍게 하고 다니지 않기에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저 사진의 사람처럼 백팩 하나 메고 음식을 사들고 타는 사람이면 그럴 가능성이 더 높다. 돈이 없어서 보통열차를 타는 것은 마찬가지이겠지만, 단기체재 자격의 외국인은 JR패스나 홋카이도레일패스를 살 수 있는 것에 반해, 내국인은 청춘18승차권 같은 기간한정의 패스 또는 홋카이도 내에서만 구입 및 사용이 가능한 '홋카이도프리패스' 라는 패스만 구입해서 사용할 수 있다. 그 가격이 7일간 26,230엔이므로 범위가 홋카이도내로 한정되고, 지정석 예약은 6회로 제한되며, 홋카이도신칸센을 탈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적은 금액은 아니다. 그런데 어떤 바보 멍청이는 돈 아끼겠다고 이렇게 사서 고생을 하고 있다...


기다리는 열차는 12시 29분 발 무로란행 보통열차. 이 열차의 종착역은 무로란이지만, 하코다테 방면 열차가 다니는 역은 히가시무로란이어서 중간에 내려서 환승해야 한다. 멍청하게 열차 안에서 졸다가 종점인 무로란까지 갈 수 있으니 잠도 마음대로 못 잔다. 

 

열차가 들어온다는 안내가 나왔다.


반대편 삿포로 방면으로는 특급열차 스즈란이 들어온다.


저런 열차를 타고 빠르고 편하게 가고 싶지만..


현실은 이런 똥차다.


무로란행 무로란본선 열차이지만, 히다카본선 일부구간이 운휴 중이라고 남는 열차를 빼돌려 이렇게 굴리고 있다. 행선지 표지판으로 가려보려고 하지만 히다카본선이라고 써진 것이 표지판 위로 보인다.


무로란까지는 전동차가 다닐 수 있지만, 이런 디젤 동차를 굴리고 있다. 역시 승무원은 운전수 혼자 승차하는 원맨열차로 열차 운전 및 요금 수납을 혼자서 처리해야 한다. 열차 운전하다가 중간에 요금을 받고, 다시 열차 운전을 하려면 적잖이 짜증이 나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별 수 있나 먹고 살려면 승객들에게 웃음지으면서 묵묵히 하는 수밖에. 보통 사람들의 삶은 다 거기서 거기 아니겠는가..


두 량짜리 열차의 자리를 모두 채울 만큼 사람들이 많지는 않아서 여유있게 천천히 올라타도 될 것 같아서 사진이나 찍고 마지막으로 열차에 올라탔다. 가장 선호하는 왼쪽 창가 좌석에 앉아서 간다.


뒤 쪽의 차량은 키하 150형 열차다. 이미 도입된 구형 열차와도 병결을 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2량의 차량 중 뒤편의 차량에 빈 자리가 많아서 자리에 앉아서 간다.


토마코마이에 왔을 때 왜 갈만한 곳이 없었는지 저 명소 안내 표지판을 보고 대충 알게 되었다. 우토나이 호수는 버스로 25분을 가야하고, 타루마에산은 자동차로 40분, 토마코마이항은 차로 10분, 그나마 슬슬 걸어서 다녀올 만한 곳은 하쿠쵸마리나라고 불리는 백조들이 있는 곳인데 그것도 도보 15분이란다. 그래서 아무 곳도 못 가고 그냥 역 안에 쳐박혀 있었다.


무로란본선과 히다카본선이 다니는 홋카이도 도내 열차 운행에서 큰 역할을 하는 곳이라 그런지 토마코마이 운전소도 있다. 키하 150형 열차도 보이고, 홋카이도에서는 흔히 보이는 키하 40계 똥차 역시 멀쩡히 잘 있다. 언제 히가시무로란까지 가나 싶은데, 거기가 끝이 아니니 오늘 중으로 홋카이도를 떠날 수 있을지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삿포로행 보통열차

2017. 10. 11. 02:55


제목은 삿포로행 보통열차이지만, 사실 저 열차는 이와미자와역 발, 오타루 착 열차로 중간에 삿포로에 정차하는 열차다. 




왓카나이에서 출발해서 삿포로에 가는 특급 사로베츠

이 열차는 특급열차라 청춘18승차권으로는 탈 수 없는, 제 돈을 줘야 탈 수 있는 열차이기도 하지만 이 시간에 특급열차를 탄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도 없고, 돈이 없어서 못 가는 하코다테까지 갈 것이 아니라면 별 의미가 없다. 그리고 특급열차를 돈 내고 탄다면 같은 가격에 조금 더 승차감이 좋은 카무이를 타고 말지..


아사히카와역에서 이와미자와역까지 가는 보통열차에 올라탔다. 하코다테본선을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누어서 하코다테-오샤만베, 오샤만베-오타루, 오타루-이와미자와, 이와미자와-아사히카와 구간으로 운행을 하기에 한 번에 삿포로까지 가는 보통열차는 없다. 하코다테본선의 종점인 아사히카와는 한반도의 최북단보다 위도상으로 더 북쪽에 있어서 여름이 지나면 금방 해가 진다. 9월 초이지만 오후 6시가 되면 슬슬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에베오츠역

다음 역은 타키카와.


타키카와역에 도착하고 있다. 

이틀 전에 아사히카와에 갈 때 지났던 역이다. 굳이 같은 경로를 택하지 않으려면 후라노에서 네무로본선을 이용하여 타키카와에 가는 방법이 있기는 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어차피 같은 경로인데다 이 경로를 택하면 짐을 계속 끌고 다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어서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고, 뭔가 다른 길을 찾는다면 신토쿠까지 가서 삿쇼선으로 돌아가는 방법이 있겠지만 이 부근이 며칠 전에 태풍 라이언록으로 인한 피해로 운행 중단이 되고, 일부 구간은 당장 복구할 수 없어서 운행이 중단된 상황이라서 그냥 왔던 길로 다시 가게 되었다. 역시 여행이라는 것은 때를 잘 맞춰야 하는데 꼭 뭔가 하나씩 어긋나는 것들이 생긴다.


이와미자와역에 도착


후라노에 다녀온 시간까지 합치면 대충 3시간 넘게 열차를 타고 있다. 2시간 정도 열차를 타면 슬슬 질리는 편이라서 - 그래서 철덕은 될 수 없는 것 같지만 - 일단은 내리자마자 먼저 역 바깥으로 탈출을 했다. 열차에 가만히 앉아서 가는 것만으로도 지치기도 하고, 삿포로에 가는 열차가 바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서 잠시 밖에 나가서 동네 구경이나 해볼까 싶어 밖으로 나갔다. 자정까지는 이 승차권으로 타고 내리는 것이 자유이기 때문에 개찰구에 가서 9월 3일 도장이 찍힌 승차권을 스윽 보여주고 짐을 끌고 나갔다.


이와미자와역 근처에는 자유의 여신상이 있다.

뉴욕에 가보지 않았지만, 그 자유의 여신상은 저것보다는 클 것 같다.


뉴욕은 머니까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비즈니스석에 타고 가고 싶은데, 빚만 늘고 있다.

 

이와미자와까지는 삿포로 근교라서인지 역도 새로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다.

이틀 전에는 개찰구 밖으로 나가보지 않아서 이런 곳인지 몰랐는데..


건너편에 있는 열차는 출발시각이 가까워졌는지 차장이 손목시계를 주시하고 있다.

 

차장이 맨 뒤로 타서 출발 전에 점검을 하는 것 같다.

 열차 출발까지는 약 6~7분 정도 남은 것 같아서 슬슬 짐을 끌고 3번 승강장으로 건너갔다.


삿포로, 오타루 방면은 하코다테본선, 오이와케, 유바리, 토마코마이는 무로란본선이 되겠다. 이 곳에 처음 오는 외국인이나 사전 정보 없이 홋카이도에 온 사람이라면 노선 이름을 백날 말해도 그 노선이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을테니 저렇게 역명으로 안내하는 것 같다.


보통열차이기는 하지만 꽤 먼 거리를 달리고, 중간에 몇몇 역에 정차하지 않고 구간쾌속으로 달리는 열차라서 그런지 롱시트가 아닌 크로스시트를 설치한 것 같다. 승객이 많지 않아서 빈 자리가 많이 보인다. 삿포로에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이 하나 둘씩 타다가 삿포로에서 많이 내리겠지만..


창밖을 보면서 커피만 줄창 마시고 있다. 혼자 다니다보니 말을 할 기회는 거의 없고 그냥 졸다가 깨면 그냥 멍하니 바깥을 쳐다보면서 이놈의 열차가 언제 도착하는가 생각 뿐이다.


도시에 접근하는 듯한 그런 느낌이 슬슬 든다.

 

놋포로역.

홋카이도에는 ~호로, ~보로, ~포로역이 많다. 

앞글자의 발음에 따라 보로, 포로역이 되는데 설마 호로X끼가 많은 것은 아니겠지..


오아사역

이 역은 삿포로에서 아사히카와에 갈 때도 역 명판 사진을 찍었던 것 같다.


썰렁한 분위기다..


오늘의 최종 목적지 삿포로에 도착했다.

 

시간상 조금 더 남쪽으로 더 가서 토마코마이 정도까지 갈 수도 있는데, 할 일도 있고, 배도 고프고, 씻고 싶기도 하고, 토마코마이에서는 별로 구경할 것이 없어서 삿포로에서 일정을 마감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이 열차는 삿포로에서 9분 동안 정차한 뒤 오타루까지 간다고 한다. 정차시간이 꽤 긴 것 같다.

 

사진이 흔들렸는데 열차를 병결해서 다닌다.


역에서 나와서 호텔 셔틀버스를 타고 호텔에 가서 체크인을 하고, 밥을 먹으러 나왔다. 셔틀버스 기사 아저씨는 여전히 라디오 야구 중계를 듣고 계신다. 여기는 홋카이도니까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를 응원하시는 것 같다.


저녁은 또 마츠야다.

이번에는 규메시 규야키니쿠단품을 더 시켰다. 

고기먹고 힘내야지!


밥을 먹고 일찍은 아니지만 호텔로 터벅터벅 걸어 돌아가서 내일의 고된 여정을 위해 잠자리에 들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청춘18 승차권 사용 3일째(이번에는 2일째부터 사용)인 2016년 9월 3일에 사용한 구간을 정리해보면


아사히카와 - 후라노 (후라노선) 1,070엔 54.8km

후라노 - 아사히카와 (후라노선) 1,070엔 54.8km

아사히카와 - 이와미자와 (하코다테본선) 1,840엔 96.2km

이와미자와 - 삿포로 (하코다테본선) 840엔 40.6km 

총 4,820엔, 246.4km 

이동시간은 대충 5시간 정도였던 것 같다.


1일분 가격 이상을 뽑아내기는 했는데, 기력도 뽑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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