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니혼뵤

이틀 동안 교토에 머물렀지만 교토 관광은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고야로 가기 전에 몇 군데 들러서 구경을 하면서 교토의 매력을 조금이라도 느껴보기로 했다. 교토에 대한 많은 책이 나왔고, 역사가 깊은 고도(古都), 가장 일본적인 도시, 역사와 전통의 도시 등 화려한 수식어들이 많지만, 의외로 다른 중소도시에 가느라 그저 환승을 위해 거쳐가는 정도에 그친 경우가 많았고, 교토에서 호텔을 예약하고 묵은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친구 집에서 한 번, 그리고 역시 친구가 예약해준 호스텔에서 하루를 묵기는 했지만, 내 주머니에서 돈이 나간 적은 없었으니.. 기껏해야 반나절 정도에 불과하겠지만 그 시간 동안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계획을 세웠다.


호텔에서 주는 아침밥을 먹었다.

아침식사용 플레이트와 테이블을 보면 어느 호텔인지 눈치를 채는 분들도 있을 듯하다.


방으로 돌아와서 짐을 챙겨 나와 체크아웃을 하면서 짐을 잠시 맡겨놓았다. 집에서 출발할 때는 가방 하나에 불과했지만, 면세점에서 가족 선물 및 부탁을 받아 구입한 것과 여러 이유로 회사에서 납품했다가 반품된 것도 있어서 백팩 외에도 양손 가득 짐이 생겨서, 모두 짊어지고 다니다가는 얼마 못가서 짐의 무게에 쓰러질 것 같아 일단 두고 가기로 했다.

키요미즈데라(清水寺)에 들렀다 긴카쿠지(銀閣寺.은각사)에 다녀오는 정도라면 서두르지 않고서 시간을 보내기에 큰 어려움은 없겠다 싶어 대충 지도 검색을 하면서 거리를 보았는데, 어제 하루 잘 쉰 덕분인지 조금 많이 걸어도 괜찮을 것 같아 교토 시가지 구경을 할 겸 슬슬 걸어다니면서 교토 지리를 익히기로 했다. 구글 맵으로 경로 검색을 해보니 키요미즈데라는 고죠도리(五条通り)를 따라 3.8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단다. 이번에도 구글 맵은 시속 5km의 속도로 도보 소요시간을 계산하여 45분 정도라고 예상하는데, 초행길이라 여기저기 둘러보면서 천천히 가다보면 조금 늦어질 터이고, 중간중간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신호를 기다리는 시간도 있을테니 한 시간 정도 걸릴 것이라 생각하고 갔다.

토요일 오전이라 그런지 시내의 차량은 많지 않고 조용한 편, 고죠도리는 교토에서 가장 번화한 상점가인 시죠도리(四条通り) 와는 달리 주거용 맨션이 많고, 간혹 오피스용 빌딩이 하나씩 있는 정도라서 대로변이지만 의외로 넓은 길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뜨거운 금요일 밤을 보내고 토요일 오전이 조용한 것은 어디든 다를 바 없나보다. 교토 시내이지만 거리에는 맥도날드 같은 패스트푸드점이나 편의점이 간혹 보이는 정도이고, 상점들이 별로 없어 이 곳은 토요일 오전이 아니라 해도 조용할 것 같은 느낌이다. 유량이 많지 않고 수심도 그다지 깊어 보이지는 않지만 카모가와(鴨川)라는 강이 장애물로 있는데, 친절하게도 큰 길마다 차량 및 보행자가 모두 지나갈 수 있는 다리가 있다. 고죠도리에 있으니 이 다리의 이름은 고죠오하시(五条大橋)일테고, 이 다리를 건너 슬슬 오르막이 시작되는 길을 따라 걷는데 조금이라고 하기는 부족하고 그렇다고 먼 것 같지는 않은데 꽤 걷다보니 오타니혼뵤(大谷本廟)라는 곳에 도착했다. 뵤(廟.한국에서는 '묘' 라고 읽는다)라는 글자에서 납골당 같은 곳이 아닐까 싶었는데, 시간 여유가 있으니 잠시 들어가보기로 하였다. 문득 호기심이 생겨서.


오타니혼뵤는 키요미즈데라로 가는 언덕길을 오르기 전에 있는데, 혹시 길을 헤맬까 싶어서 지도를 사진에 담아두었다.


현판을 보자 닛폰햄 파이터스의 투수 오타니 쇼헤이(大谷翔平)가 생각이 났다. 물론 관계없을 것 같지만..


납골당 같은 곳인데, 분위기는 사찰의 느낌이 난다.


깔끔하게 정돈된 모습을 보니 이른 아침부터 누군가는 청소하느라 애를 썼을 것 같다.


참배하는 사람들을 보니 젊은 사람들보다는 중장년층이, 남성보다는 여성들이 더 많았다. 아무래도 여성의 수명이 남성에 비해 더 길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한국에서도 납골당 같은 곳에 가면 찾는 사람들 중에는 여성이 많으니까.


지붕 양 끝이 잘리기는 했지만 뭐..

여기서 키요미즈데라까지 가는 길을 검색해보니 몇 가지 있다고 하는데, 오타니혼뵤에 처음 들어왔던 지점인 히가시야마고죠(東山五条)교차점까지 가서 언덕길인 고죠자카(五条坂)를 올라가다 오른쪽으로 난 키요미즈신미치(清水新道)를 거쳐서 가거나, 더 올라가서 마츠바라도리(松原通り)에서 우회전하는 두 가지 길의 거리가 비슷하고, 가장 가까운 듯하다. 나갈 때는 들어올 때와 다른 곳으로 나갔더니 납골당 방면으로 우회로가 있다고 하여 그 길을 따라서 갔다.


우회로라고 하는 길을 따라서 올라간다.

이렇게 납골이 많은 곳을 지나는데 날씨까지 흐려서 음습한 기분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가다보니 우회로가 호우로 인한 지반붕괴로 폐쇄되었다는 안내가 있었다. 그래도 우회로 가는 길이라는 표지판을 보고 온지라 긴가민가해서 조금 더 가보기로 했다. 멀리 키요미즈데라의 삼층탑이 보여서 어떻게든 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바닥에 붙어있는 화살표를 따라 가보았는데, 더 이상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호우로 인한 지반붕괴로 인하여 길이 끊어져 있다.

안내를 확실히 해놓았으면 좋았을텐데, 잘못 이해한 것인가 다시 보아도 우회로 안내하는 표지판이 있는가 하면, 키요미즈데라에 갈 수 없다는 안내도 있고 혼란스럽게 되어 있다. 우회로 안내 표지판은 길이 끊기기 전에 세워둔 것이고, 우회로 폐쇄 안내는 그 후에 세워둔 모양이다. 폐쇄한 길로 질러가는 얌체짓을 할 수는 없고, 다시 내려갔다가 고죠자카를 따라가다 키요미즈신미치를 따라서 올라갔다. 처음부터 남들이 지나다니는 평범한 길을 따라갔으면 시간 절약하고, 쓸데없이 힘을 낭비하지 않았을텐데 꼭 이렇게 뻘짓을 한다. 그렇지만 이런 뻘짓이 시간이 흐른 뒤 기억이 가물가물해질 때 그 때를 되새길 수 있는 추억거리가 되고, 그 시절을 떠올리면서 웃음짓게 만들기도 한다.

길 양쪽으로 늘어선 상점가 사이사이 토요일이라 관광객들이 많아서 길은 복잡하고 시끌시끌하지만, 뭐 나도 관광객 중의 한 명이니까 그러려니 하고 주변을 둘러보면서 올라갔다. 지난 이틀과 여기에 오기 전 며칠 간이 고된 시간이었기에 관광객 모드로의 전환이 쉽지는 않아서 계속 입을 굳게 다물고 다니기는 했지만..


드디어 키요미즈데라에 도착!

꽤 유명한 인왕문이 키요미즈데라에 오는 사람들을 맞이한다. 키요미즈데라는 7년 전인 2009년에 친구 나가타와 왔던 적이 있는데, 폐문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와서 구경하던 중 어두워져서 제대로 보지 못했던 기억이 있어서 다시 왔다. 일 때문에 바쁜 친구라 날을 맞추기 어렵고, 일본인답지 않게 일본에 온 외국인 친구라고 만날 때마다 밥과 술을 사는 것이 미안해서 연락을 하지 않았는데, 한 달 후에 결혼했다는 소식을 페이스북을 통해 뒤늦게 알게 되어 마음이 복잡해지기도 했다. 다음에 만날 때 작은 선물이라도 하나 준비해서 축하의 인사를 전해야 할 것 같다.


키요미즈데라에 온 기념으로 가방에 넣어둔 카메라를 꺼내서 첫 사진을 개시. 날씨도 좋고 참 좋은데 카메라에 메모리카드가 없어서 내장 메모리를 사용하다보니 몇 장 더 찍을 수 없단다. 계속 아이폰으로 사진을 찍어야 할 것 같은데, 아이폰 카메라 사용에 익숙하지 않아서 사진을 스퀘어로 놓고 찍어서 정사각형 모양의 사진이 나온 것을 나중에 사진을 옮기면서야 알았다.


뒤돌아보니 다양한 국적의 관광객들이 우르르 몰려오고 있다. 물론 대부분이 쭝꿔 언니오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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