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하40계



후라노에는 라벤더만 있는 것이 여러 꽃이 있고, 와이너리도 있고, 후라노가 아니면 그리 멀지 않은 비에이의 언덕과 해바라기도 있고, 여러가지 볼 것이 많겠지만, 이번에는 그냥 거쳐가는 곳일 뿐 방문하고자 하는 장소는 아니었다. 후라노역부터 네무로본선을 따라서 가면 도토지역의 중심 도시인 쿠시로에 가게 되는데, 특급열차는 쿠시로까지만 운행하고, 쿠시로 동쪽에 있는 네무로까지는 보통, 쾌속열차만 운행을 한다.


점심을 먹기는 하였지만, 아침을 안 먹었으니 늦은 아침을 먹은 셈으로 치고, 이제 늦은 점심을 먹어야 할 것 같다. 일단 수퍼마켓에 들러서 간식거리를 조금 사고, 시간이 좀 남길래 후라노 마르쉐에 있는 '푸치푸치버거' 라는 곳에서 햄버거를 하나 주문했다.


딱히 특별해보이지는 않지만..


꽤 맛있게 먹었다. 배가 고파서 그랬을 수도 있는데..


이 키하40계의 낡아빠진 열차가 히가시시카고에(東鹿越)역까지 데려다 줄 예정이다. 원래는 히가시시카고에를 지나 신토쿠까지 열차를 운행했으나 2016년 여름에 태풍 라이언록이 이 지역을 쓸고 가는 바람에 네무로본선이 작살이 나버렸다. JR홋카이도 입장에서는 네무로본선에 열차를 굴리면 굴릴수록 수익이 나지 않는 구간이어서 어쩌면 잘 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 보통열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통근 및 통학을 위한 것이라 장기간 운행을 중단할 수 없어서 열차 대신에 대행버스 운행 계획을 세워서 버스를 대신 투입하고 있다.


이 동네의 주요 관광지로는 후라노스키장, 후라노와인하우스, 텔레비전 드라마 '키타노쿠니카라' 의 로케이션 장소 등이 있다고 한다. 가본 곳은 라벤더 언덕 정도인가.. 몇 번 이 동네를 지나가기는 했는데, 주로 후라노와 비에이 정도만 갔던 것 같다.


열차가 출발하기도 전에 전광판에는 다음 열차 안내를 하고 있다. 쾌속 카리카치는 타키카와를 출발해 네무로본선 후라노, 신토쿠 등을 거쳐 오비히로를 지나 이케다역까지 운행한다. 철도 거리는 204.2km라고 하는데, 히가시시카고에역과 신토쿠역 사이는 열차 대신 대행버스로 대체운송을 하고 있어서 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 여기가 대도시이고,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면 철도회사에서 어떻게든 재빨리 복구를 하여 승객 운송을 하려고 할 터인데, JR홋카이도는 적자가 아닌 구간이 한 손에 꼽기도 어려울 정도로 경영상태가 좋지 않아서 어떻게든 적자노선은 운행 재개를 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일본의 수도권이나 칸사이권에서 열차 사고가 나면 어떻게든 재빨리 복구해서 운행을 하려고 달려드는 것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후라노역 바로 다음 역인 누노베역은 잘라먹고 그 다음 역인 야마베역.

이런 역이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


이 역에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내렸다.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많지 않으니 열차 운행 간격도 길고, 그 덕분에 어느 정도 자리를 채워서 다니고 있다. 사진 속의 책을 보는 여학생은 공부 열심히 하는 모범생인 것 같은데 저 학생 부모님이 좋아하시겠다. 나는 왜 학교 다닐 때 그렇게 잠만 쳐 잤던가..


히가시시카고에역부터 철도 운행이 중단되어서 열차에 탄 사람들 중 히가시시카고에가 목적지인 사람을 제외하고는 나머지는 내려서 버스로 갈아타고, 반대로 버스를 타고 왔던 사람들은 열차로 갈아타고 후라노 방면으로 간다. 학생들은 정기권을 보여주고 버스에 타는데, 그런 보통열차만 탈 수 있는 정기권이 아닌 JR패스를 꺼내서 버스기사 아저씨에게 보여드리고 올라탔다. 후라노에서 출발할 때는 열차에 빈 자리가 없었지만, 역을 하나 둘 지나면서 많이 내려서 셋 중에 둘 이상은 이미 내려서 집으로 간 것 같다.

 

버스는 JR홋카이도에서 대체수송 목적으로 계약한 전세버스인 것 같다. 후라노역에서 탔을 때나 자리가 없어서 서서 가는 학생들이 몇 있었지, 갈수록 하나둘 내리더니 대행버스를 탄 사람은 많지 않았다.


대행버스라고 해서 뭔가 특별한 것이 있는 것은 아니고 관광버스를 대절하여 열차운행 불통구간을 버스로 대신 운행하는 것 뿐이다. 주로 학생들이 많이 이용해서 이들이 주된 대상인데, 소요시간은 열차로 다닐 때보다 조금 더 걸리는 것 같다. 일본의 도로 자체가 대부분 제한속도가 낮은데다 도로에 있는 버스정류장이 아니고 역 앞까지 가서 버스를 세우고, 차를 돌려서 나오는 것도 시간을 더 잡아먹으니 이래저래 시간이 많이 걸릴 수 밖에.


슬슬 해가 지고 있고


이쿠토라역에 도착했다.


첫 일본여행에서도 이쿠토라역에 들른 적이 있었는데, 말도 잘 안 통하고,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면서도 열차를 타고 왔던 기억이 있다. 그 당시에는 뭐가 뭔지도 모르고 사진찍고 눈 속을 헤매면서 다녔는데.. 영화로도 제작된 철도원의 호로마이역의 배경이 이쿠토라역이었고, 아직까지 당시의 세트가 남아 있기는 한데, 겨울철에는 찾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서 앞으로 어떻게 될 지는 잘 모르겠다.


호로마이역 간판이 아직 남아 있구나.. 시간이 조금 더 있으면 여기서 내려서 구경을 하고 다음 버스를 타면 되겠지만, 이미 어두워지고 있어서 그냥 버스 안에서 사진만 찍었다.


이 때 히로스에 료코 참 예뻤는데.. 요즘에는 약에도 손을 대고 이래저래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고 한다.


다음은 오치아이역

어두워지고 있다.

그리고 신토쿠역.

신토쿠역에 도착할 때는 이미 주변이 다 어두워진 뒤였다. 보통열차는 네무로본선으로 다니지만, 특급열차는 세키쇼선으로 다니는 덕분에 운행에 별다른 차질이 없어 정상운행을 하고 있다. 다만, 여러가지 이유로 조금씩 열차가 늦어지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강풍이 불면 열차 운행에 지장이 있다고 속도를 늦추고, 눈이 많이 오면 눈이 많이 온다고 속도를 늦추고.. 대행버스를 운행하는 회사는 '후라노버스' 라는 회사라고 한다. 어디선가 본 것에 의하면 올해는 대행버스의 운행편수를 늘렸다고 하는 것 같던데.. 아닌가.


저 떵차를 타고 가는 것은 아니고, 특급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이런 떵차를 타는 사람들은 역시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사람이 별로 없는데 한 학생이 걸어온다.


키하 40계 똥차를 원없이 보고 있다.


오비히로까지만 간다면 보통열차라도 타고 갈텐데 쿠시로까지 가야하니 특급열차를 타야한다.


도시락을 사놓은 것이 있어서 이걸로 저녁을.

설마 상하지는 않았겠지..


청춘18 승차권 4일째 분을 사용하는 날.

여유를 부리면서 아침을 먹고 원래 계획했던 것보다 조금 늦게 호텔에서 나왔다. 삿포로역에 조금 일찍 가서 토마코마이에 도착해서 열차를 기다리려고 했는데, 장거리 이동에 적합하게 짐을 다시 싸다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고, 호텔에서 체크아웃하기 전에 아오모리에서 토쿄까지 가는 열차 시각표를 인쇄하다가 또 시간을 보냈고, 짐이 많아서 이것을 다 질질 끌고 다닐 수도 없어 호텔의 송영버스를 타려고 기다리면서 시간을 보내느라 삿포로역 앞에 내리니 시간이 빠듯했다.

거리상으로 따지면 청춘18 여정의 마지막 날이 가장 길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이지만, 혼슈에서는 토쿄에 가까이 갈수록 열차의 빈도가 많아지고, 자정이 지나 마지막 열차가 다니는지라, 홋카이도처럼 이동 거리는 멀지만 열차 운행이 드물어서 중간에 허비하는 시간이 많은 곳이 더 힘들다. 삿포로에서 치토세나 토마코마이까지 다니는 치토세선은 그나마 열차가 자주 다니는 구간이지만, 토마코마이 이후로는 열차 운행 횟수가 현저히 줄어들기 때문에 열차를 기다리는 중간에 딴짓하다가 놓치면 하코다테까지 못 갈 수도 있는 위험이 있어서 주의해야 한다.


조금 늦은 출발을 만회하기 위하여 쾌속 에어포트를 타고 치토세역까지 왔는데 열차가 바로 있는 것은 아니고 11시 44분에 토마코마이행 열차가 있다고 한다. 예정대로 간다면 하코다테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태풍이 쓸고 간 뒤로 기상 및 철도 상황이 불안정해서 걱정을 지울 수 없었다. 


치토세역 정도면 그럭저럭 번화하다고 할 수 있는 곳인데 아무리 출근, 등교시간이 지났다고 해도 역이 너무 썰렁하다. 사람들이 다 점심 먹으러 간 것일까. 학생들이 집에 갈 때나 직장인들이 퇴근할 때는 사람이 꽤 많지만, 다른 시간에는 이렇게 한산한 모양이다. 이러니 홋카이도의 모든 노선이 다 적자일 수밖에..


열차가 도착한다는 안내가 나온다.


삿포로 근교 노선도

위의 노선도에 있는 역들이 삿포로 권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이상인 경우 삿포로까지 1시간 이상 걸리는 것은 물론, 열차 간격이 뜸해서 이동에 상당한 제약이 생긴다. 이 노선도에 있는 범위 정도만 거리와 소요시간 및 승차인원 등에서 삿포로 권역으로 설정해두고 있다.


아울렛 레라가 보이는 것을 보니 여기는 미나미치토세역


열차 문이 무식하게 생겼는데, 겨울이 길고 춥고 눈이 많이 내리는 곳이라 방한, 방풍을 위해 차량의 문을 이런 식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미나미치토세를 지나면 승객이 확 줄어서 빈 자리가 늘어나기 시작한다. 치토세역에서 열차에 탔을 때부터 빈 자리는 있었지만 종착역인 토마코마이가 가까워지면서 사람이 앉은 곳보다 빈 자리가 더 많아진다.


이용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곳에서는 문 옆에 있는 버튼을 눌러서 문을 열고 닫게 되어 있다. 한국의 전철, 지하철처럼 역에 도착하면 자동으로 문을 열어주지 않기도 하니 주의해야한다.


종착역인 토마코마이역에 도착. 내린 다음에 보니 731계 전동차를 타고 온 것 같다. 굳이 열차의 계열 같은 것을 알고 싶지는 않지만 써진 것을 보니 대충 알 수 있는 것 같다. 토마코마이역은 무로란본선과 히다카본선의 환승역이기도 하다. 엄밀하게 말하면 치토세선은 토마코마이역의 이전 역인 누마노하타(沼ノ端)역까지이지만, 이 역이 존재감이 없어서 치토세선 열차가 토마코마이까지 운행을 한다. 삿포로에서 치토세까지 갈 때도 삿포로에서 출발하여 나에보(苗穂), 시로이시(白石)역까지는 하코다테본선으로 가다가 시로이시역을 지나서 분기가 된다. 


곧 하코다테방면으로 가는 상행열차로 갈아타야 하고, 토마코마이역 주변에 별로 갈만한 곳도 없어서 그냥 역에서 기다렸다.


아마 저기에 세워져 있는 열차 같은 똥차가 들어올 것 같다.


토마코마이역 주변에는 메가돈키호테가 있고, 그 건물에 쇼핑센터 같은 곳이 있다. 특급 정차역이라고 해서 나름대로 사람이 많이 사는 도시가 아닐까 싶어서 몇 번 들러보았는데 매번 딱히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없었고, 뭐 그저 그랬다. 그렇다고 돈키호테가 다른 곳에 비해서 많이 싸다고 느낀 적도 없는 것 같다. 가끔 유통기한이 다 되어가는 식품류를 반값 이하에 싸게 팔기도 하지만 입맛에 맞지 않는 것들이어서.


역 근처에는 비즈니스 호텔 체인의 점포들이 줄지어 있다. 토마코마이시는 무로란시와 함께 홋카이도의 대표적인 공업도시인데, 제지산업이 유명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토마코마이역 주변에는 돈키호테가 있는 쇼핑센터 외에 눈에 띄는 상점이 별로 없고, 호텔들의 큰 간판만 보인다. 오히려 공항이 가까운 치토세에는 호텔 등의 숙박업소가 많지 않아서, 홋카이도의 성수기에는 삿포로나 오타루 등지에서 숙소를 구하지 못하면 토마코마이 정도가 대안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토마코마이에서 삿포로, 오타루에 다녀오려면 적지 않은 비용과 시간을 소비하게 되겠지만 홋카이도레일패스나 JR패스를 구입했다면 추가로 들어가는 비용이 없으니 길바닥에 시간 버리는 것 외에는 괜찮을 것 같다. 

맛집 같은 곳을 일부러 찾는 성격도 아니고, 백팩에 캐리어, 60사이즈를 넘는 무거운 상자 하나를 들고서 돌아다닐 엄두가 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약 20분 후에 들어올 열차를 놓치면 두 시간 후에 다음 열차가 오는지라 얌전히 플랫폼에서 오락가락하면서 열차를 기다렸다.

 

대부분은 단거리 이용객인 것 같지만, 청춘18 승차권이 9월 10일까지 유효하므로, 여름의 끝자락에서 보통열차로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대개 특정 지역에서 여행을 목적으로 온 사람들은 짐을 저렇게 가볍게 하고 다니지 않기에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저 사진의 사람처럼 백팩 하나 메고 음식을 사들고 타는 사람이면 그럴 가능성이 더 높다. 돈이 없어서 보통열차를 타는 것은 마찬가지이겠지만, 단기체재 자격의 외국인은 JR패스나 홋카이도레일패스를 살 수 있는 것에 반해, 내국인은 청춘18승차권 같은 기간한정의 패스 또는 홋카이도 내에서만 구입 및 사용이 가능한 '홋카이도프리패스' 라는 패스만 구입해서 사용할 수 있다. 그 가격이 7일간 26,230엔이므로 범위가 홋카이도내로 한정되고, 지정석 예약은 6회로 제한되며, 홋카이도신칸센을 탈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적은 금액은 아니다. 그런데 어떤 바보 멍청이는 돈 아끼겠다고 이렇게 사서 고생을 하고 있다...


기다리는 열차는 12시 29분 발 무로란행 보통열차. 이 열차의 종착역은 무로란이지만, 하코다테 방면 열차가 다니는 역은 히가시무로란이어서 중간에 내려서 환승해야 한다. 멍청하게 열차 안에서 졸다가 종점인 무로란까지 갈 수 있으니 잠도 마음대로 못 잔다. 

 

열차가 들어온다는 안내가 나왔다.


반대편 삿포로 방면으로는 특급열차 스즈란이 들어온다.


저런 열차를 타고 빠르고 편하게 가고 싶지만..


현실은 이런 똥차다.


무로란행 무로란본선 열차이지만, 히다카본선 일부구간이 운휴 중이라고 남는 열차를 빼돌려 이렇게 굴리고 있다. 행선지 표지판으로 가려보려고 하지만 히다카본선이라고 써진 것이 표지판 위로 보인다.


무로란까지는 전동차가 다닐 수 있지만, 이런 디젤 동차를 굴리고 있다. 역시 승무원은 운전수 혼자 승차하는 원맨열차로 열차 운전 및 요금 수납을 혼자서 처리해야 한다. 열차 운전하다가 중간에 요금을 받고, 다시 열차 운전을 하려면 적잖이 짜증이 나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별 수 있나 먹고 살려면 승객들에게 웃음지으면서 묵묵히 하는 수밖에. 보통 사람들의 삶은 다 거기서 거기 아니겠는가..


두 량짜리 열차의 자리를 모두 채울 만큼 사람들이 많지는 않아서 여유있게 천천히 올라타도 될 것 같아서 사진이나 찍고 마지막으로 열차에 올라탔다. 가장 선호하는 왼쪽 창가 좌석에 앉아서 간다.


뒤 쪽의 차량은 키하 150형 열차다. 이미 도입된 구형 열차와도 병결을 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2량의 차량 중 뒤편의 차량에 빈 자리가 많아서 자리에 앉아서 간다.


토마코마이에 왔을 때 왜 갈만한 곳이 없었는지 저 명소 안내 표지판을 보고 대충 알게 되었다. 우토나이 호수는 버스로 25분을 가야하고, 타루마에산은 자동차로 40분, 토마코마이항은 차로 10분, 그나마 슬슬 걸어서 다녀올 만한 곳은 하쿠쵸마리나라고 불리는 백조들이 있는 곳인데 그것도 도보 15분이란다. 그래서 아무 곳도 못 가고 그냥 역 안에 쳐박혀 있었다.


무로란본선과 히다카본선이 다니는 홋카이도 도내 열차 운행에서 큰 역할을 하는 곳이라 그런지 토마코마이 운전소도 있다. 키하 150형 열차도 보이고, 홋카이도에서는 흔히 보이는 키하 40계 똥차 역시 멀쩡히 잘 있다. 언제 히가시무로란까지 가나 싶은데, 거기가 끝이 아니니 오늘 중으로 홋카이도를 떠날 수 있을지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드디어 청춘18 승차권의 세 번째 사용일이 되었다.[각주:1] 일정은 아사히카와를 출발하여 후라노에 도착 후 후라노역 주변을 돌아보고 다시 아사히카와로 돌아와서 짐을 챙긴 뒤에 삿포로에 돌아가는 것이었다. 이 날 하루 청춘18 승차권을 사용하면 단 이틀 분이 남는데, 다음 날은 삿포로에서 아오모리까지, 마지막 날은 아오모리에서 토쿄에 가는, 하루종일 열차를 타는 이틀이 되겠다.

지난 밤에 정리를 하면서 한국으로 가지고 갈 것을 대충 추려서 가방의 빈 자리에 넣고, 남는 것은 상자 하나에 모아서 따로 포장을 하여 체크아웃을 하면서 호텔에 맡겨두고 아사히카와역으로 갔다.


홋카이도의 흔한 열차 키하 40계


JR홋카이도의 철도 노선 중 삿포로 근교 지역과 하코다테에서 신하코다테호쿠토역 사이의 하코다테라이너가 다니는 구간만 전동차가 다니고, 다른 구간은 디젤 동차로 운행하고 있다. 그 덕분에 디젤 차량에 대해서는 다른 지역의 JR 여객철도회사보다 경험도 많고 전문적이라 할 수 있지만, 자신들의 전문이라고 이 열차를 굴리는 것이 아니라 비전화 구간에 새로이 가선을 설치할 만한 재정적 여력이 없고, 불행히도 전동차를 투입하기 위해 가선 건설비용이나 열차 교체 비용을 감수할 만큼 수요가 많지 않아서 계속해서 키하 40계를 사용하고 있다. 해외여행자들이 많이 찾는다 해도 그것은 일시적 수요에 불과하고, 정기적으로 철도를 이용하는 연선 인구는 감소 추세인 만큼 장기적인 관점에서 새로운 열차 증비라든가 시설 개선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오히려 수요 부족 구간에서 열차가 감편되고, 폐선이 되는 것이 요즘의 상황인지라 '인구의 감소 → 열차의 감소 → 교통의 불편 → 인구의 감소' 의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JR홋카이도는 지자체의 도움 없이 존속하기 어려운 노선을 추려서 발표하면서 각 지자체의 지원을 요청하였지만, 이 지역이 갑자기 인구가 늘어나거나 발전하는 곳이 아니고 쇠락하는 중이어서 재정적인 지원을 받는 것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조만간 수요 부족의 노선의 폐선과 함께 버스 등의 대체운송수단이 도입되지 않을까 싶은데, 줄어드는 인구를 다시 늘리는 것이 하루아침에 되는 쉬운 일도 아니고, 지속적으로 적지 않은 돈이 필요할텐데 땅파면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아사히카와역은 원래 지면에 지어진 역이었으나, 낡은 역 건물을 철거하고 새로 지으면서 고가화하였고, 지붕을 만들어 강우, 강설에 대비하였다고 한다. 2000년대 후반에 아사히카와역에 눈이 쌓여서 열차에서 내려 역을 나오다가 발이 다 젖어버려 가장 가까운 호텔로 들어가 말렸던 기억이 남아 있는데, 지금은 눈이 3~4층 높이까지 쌓이지 않는 한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아사히카와와 비에이를 오가는 원맨열차. 삿포로 근교 열차와 특급열차를 제외하고 홋카이도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키하 40계 디젤동차다. 이 열차를 타고 일단 비에이까지 간다.


비에이역에 도착해서 내려서 후라노행 열차를 기다린다.

쭝꿔로 추정되는 곳에서 온 것 같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여기서 갈아탈 열차는 후라노 비에이 노롯코열차. 노롯코라는 이름은 느리다, 더디다는 의미의 노로이(鈍い)와 차체의 윗부분이 열려 있어 개방된 차량에 여객을 수송할 수 있는 열차를 말하는 토롯코(トロッコ)를 합쳐서 만들어진 단어라고 한다. JR홋카이도에서는 이 닭장 열차 같은 열차를 여름동안 후라노 비에이 노롯코열차로 운행하고 있다. 6월 말부터 8월 20일 경까지는 매일, 이후에는 주말에 운행을 한다. 이 열차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는데 운이 따랐는지 토요일에 오게 되었고, 아침에 생각없이 나왔지만 어쩌다보니 시간이 맞아서 노롯코열차를 타게 되었다. 지정석은 지정석권을 따로 구입해야 하는데, 자유석은 추가요금이 필요하지 않아서 열차에 올라타서 빈 자리를 찾아서 앉았다.

 

비에이강을 건너고 있다


주말이지만 여름이 지나서인지 열차에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JR홋카이도의 직원은 검표를 하면서 승차기념으로 스탬프 용지를 나누어 주었던 것 같다. 스탬프를 찍어서 가져오기는 했는데, 막상 돌아오고 나면 그런 것을 잘 챙겨두지는 않아서 어디에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누군가 '이게 뭐야? 쓰레기네' 하면서 버렸을 수도 있고..


이 동네에서 언덕은 빠질 수 없는 주인공이다.


열차를 타고 가면서 제법 괜찮은 차창 밖 풍경을 볼 수 있다.


마을의 정경은 평화롭기 그지 없다.

 

올해는 이미 늦었고 언젠가 다시 홋카이도에 가게 된다면 비바우시역 주변과 파노라마로드를 보러 다녀오고 싶다.


저 홀로 덩그러니 있는 집에서 살면 어떤 기분일까 궁금하다.


비바우시역

비에이를 떠난 노롯코 열차는 비바우시역에 잠시 정차했다. 파노라마로드 코스를 완주하려면 거리가 길기 때문에 걸어서 다니기는 무리이고, 자전거를 타더라도 몇 시간이 필요하다고 들었다. 어차피 이 날은 처음부터 많이 걸어다니거나 자전거를 탈 생각이 없어서 그냥 열차 안에서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 감상만 할 생각이었다. 오후부터 상경의 대장정이 이어지므로 최대한 체력을 아끼는 것이 우선이었고, 일정을 빠듯하게 만들 생각은 없었다. 

비바우시역 가까이에 리버티유스호스텔이라는 곳이 보인다. 이 근방에는 호텔급의 숙소가 없으니 이 동네에서 묵으려면 게스트하우스나 유스호스텔, 펜션 등을 찾아보아야 한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민박집 같은 곳도 있다는 것으로 들었는데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


비에이역에서 비바우시역과, 비바우시역에서 카미후라노역 사이는 역간 거리가 길어서 걸어다니기에는 조금 멀다. 걸어간다면 2시간 정도 예상하고 걸어가면 되겠지만 별로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운동삼아 산책하는 기분 삼아서 여유있게 가면 괜찮을 듯하지만, 아쉽게도 시간이 빠듯한 상황이라서..


열차 내부는 이렇게 꾸며두었다.

주말을 맞아 찾아온 일본인들도 많고, 대륙과 섬에서 온 중국인들도 꽤 있었다. 이 시기라면 후라노에서 꽃구경을 하는 것은 어렵고, 비에이에서 해바라기 정도 볼 수 있을텐데..


카메라가 좋아보인다..


비바우시역을 출발하면 직선으로 쭉 뻗은 선로를 지나가게 된다. 창문이 있어서 초점이 잘 맞지 않아 뒤늦게 사진 한 장 찍었는데 끝에 곡선 구간이 사진에 담겼다. 조금 일찍 카메라를 꺼내서 사진을 찍었으면 좋았을텐데 아쉽다.


숲 속으로 선로가 있는데 이런 곳에서 가끔 야생동물들이 열차에 치이기도 해서 운행중단 또는 지연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선로 주위에 죄다 철조망을 설치하는 것은 벼룩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일이겠지 싶다.


열차는 시속 70km 정도로 달리고 있다.


후라노선은 지방교통선으로 선로의 등급이 낮아서 시속 85km로 속도가 제한되는데, 아사히카와에서 출발하여 갈수록 역간 거리가 길어져서 그럭저럭 속도를 내기는 하지만 표정속도가 그다지 빠르지는 않다. 전 구간 단선이라서 상하행 열차가 교행을 할 수 있도록 복선으로 선로가 설치된 교행역에서 2~5분 내외 정차를 하면서 시간을 까먹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가장 빠른 경우도 1시간 이상 걸리고 대개 1시간 10분~30분 정도 걸린다고 보면 된다. 


철도 건널목을 지나고

작은 교량도 지나고


이제 슬슬 후라노에 진입하고 있는 것 같다.


이 동네 역시 언덕이 많다.

지난 달에 이 곳에 왔을 때는 비가 와서 비를 쫄딱 맞고 다녔었는데..

 

농사지은 것을 수확하는 모양이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니..

 

카미후라노역에 정차

이름처럼 후라노시의 북쪽에 있는 지역이다.


학생 한 명이 보인다..


역 주변은 생각보다 관리를 잘 한 것 같다.

 

카미후라노역을 출발할 때 아무도 없는 차량 뒤편에 가서 사진을 찍었는데 타이밍이 조금 늦었다.

 

카미후라노역을 출발하여 니시나카역으로 향한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후라노는 평범한 시골 마을처럼 보인다.

이런 풍경은 한국에서도 볼 수 있는 평범한 농촌의 모습인데, 여름철이면 많은 관광객을 불러들이는 곳이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장기적인 관점을 가지고 사람들이 흥미를 가지고 찾아올 것을 발굴해내는 것도 필요하고, 어떻게 홍보하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모으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관광객들에게 터무니없는 바가지를 씌우지 않는 양심적인 자세가 중요한데, 한 철 장사라고 단기간에 뽕을 뽑으려는 사람들이 많아서 아예 쳐다보지도 않게 되는 것 같다.


카미후라노역을 출발해서 완만한 오른쪽 곡선 구간을 지나면, 다시 길게 쭉 뻗은 선로가 나온다. 니시나카, 나카후라노, 시카우치역까지 선로는 곧게 뻗어 있고, 시카우치역에서 가쿠덴역까지는 중간에 살짝 굽이가 있는 것을 제외하면 선로가 직선으로 놓여 있다. 철도 팬이라면 적당한 곳에서 자리잡고 지나가는 열차의 사진을 찍기에 좋은 장소일 듯하다.


수확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니시나카역에 도착 직전이다. 니시나카역 다음 역은 여름철 라벤더 시즌에 사람들이 많이 찾는 나카후라노역인데, 라벤더 시즌에는 니시나카역과 나카후라노역 사이에 라벤더바타케역이라는 간이역을 임시로 만들어 노롯코 열차만 정차한다. 상하행 3왕복에 불과하여 시간을 맞추는 것이 쉽지 않아서 나카후라노역까지 걸어갈 수 있는데, 약 20~25분 정도 걸린다.

 

라벤더는 이미 다 지기도 했고, 팜 토미타는 지난 달에 다녀와서 나카후라노에 내리지 않고 목적지인 후라노까지 계속 갔다. 라벤더시즌이 한창인 7월과 8월에는 니시나카역과 나카후라노역 사이에 라벤더바타케(ラベンダー畑)역이라는 간이역을 만들어 노롯코 열차가 정차하는데, 이미 라벤더 시즌은 끝나서 이 역은 폐쇄된 상태.


해가 쨍쨍 내리쬐는 맑은 날을 좋아하지만, 햇빛이 너무 강렬하면 피부가 금방 타서 딱 이 정도가 좋다. 구름이 적당히 햇빛을 막아주는 것이 다행이다 싶은데, 지난 달 후라노에서 보았던 아름다운 풍경을 생각하고 와서인지 조금은 실망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롯코열차는 후라노역에 도착했다.

분위기로 봐서는 사람이 석탄 넣고 불을 때서 달리는 열차일 것 같지만, 그냥 디젤 동차가 나머지 객차를 끌고 다니는 열차다. 석탄 넣어서 불을 때서 달리는 열차는 SL후유노시츠겐(冬の湿原)호라는 열차가 쿠시로에서 시베챠까지 겨울 한정으로 운행을 하고 있다.  


이제 이 열차는 다시 아사히카와까지 돌아갈 예정이라서 후라노역 밖으로 나가서 구경을 하다가 아사히카와에 돌아갈 때는 평범한 보통열차를 타야한다. 오후 10시 정도에는 삿포로에 도착해야 하니 아사히카와에는 늦어도 오후 5시 이전에 아사히카와로 가는 열차를 타야할 것 같다.

 

카와사키중공업에서 제작하고 아사히카와운전구에 소속된 열차인 것 같다.


객차는 이렇게 생겼다. 정원이 50명이란다.

이제 슬슬 후라노 시내를 구경하러 바깥으로 나가본다.

  1. 앞에서 9월 1일 삿포로-오타루-삿포로-이와미자와-아사히키와 구간에서 사용한 것만 나오지만, 이미 7월 30일에 하루 사용한 적이 있어서 남은 날은 3일분이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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