윔블던 결승에서 빅토리아 아자렌카와 마리아 샤라포바의 스테레오 사운드는 듣지 못하게 되었다. 만약 이 두 선수가 윔블던 결승에 진출하고 비가 와서 센터 코트의 지붕을 닫았다면 사상 최고로 시끄러운 경기를 지켜보게 되었을 것이다. 윔블던 결승의 길목에서 맞붙은 아자렌카와 페트라 크비토바는 누가 결승에 올라가든 생애 첫 그랜드 슬램과 윔블던 결승 진출이라는 부담 속에서 승부를 펼쳐야 했고, 크비토바가 풀세트 매치 끝에 승리를 거두었다.


대회 10일째 (30일)

4강 제 1경기 페트라 크비토바 vs 빅토리아 아자렌카 (13:00 센터 코트)

생애 첫 그랜드 슬램 결승에 오른 페트라 크비토바 ⓒ AELTC / T. Hindley


빅토리아 아자렌카(21· 벨라루스, 세계 4위)는 이번 시즌 들어 그녀의 테니스 커리어 중에서 가장 빛나면서도 다른 어느 선수보다도 안정된 활약을 해왔다. 랭킹 포인트를 1500점 이상 쌓으면서 작년 연말 10위였던 랭킹도 4위까지 끌어 올렸고, 생애 첫 그랜드 슬램 단식 4강에도 올랐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 기존의 스타들에 가려져 주목을 받지 못했을 뿐 무서운 경기력을 보여주었던 페트라 크비토바(21· 체코, 세계 8위)와 맞붙게 되었다. 왼손잡이, 체코 출신으로 전설적 스타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의 재림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크비토바는 강력한 서브와 공격적인 플레이가 돋보이는 선수다.

경기 이전 두 선수의 상대 전적은 2승 2패로 팽팽하였지만, 윔블던에서 작년에도 4강에 올랐던 크비토바가 3라운드에서 2:0으로 이긴 것을 비롯하여 올해 마드리드에서도 승리를 추가하는 등 최근에는 크비토바의 우세였다. 그리고 4강까지 올라오는 과정에서 보여주었던 크비토바의 강력함은 대단했다. 비록 아자렌카가 경험이나 현재 랭킹에서도 더 높지만, 크비토바의 우세를 조금씩 점쳤던 것은 이런 여러 가지가 반영되었을 것이다.

큰 경기에 대한 부담 때문일까 크비토바는 자신의 서브로 시작한 1세트부터 브레이크 위기에 몰렸다. 그러나 간신히 듀스를 만들고 서브 에이스로 위기를 탈출했다. 1세트의 승부처는 크비토바가 2-1로 앞선 아자렌카의 서브 게임이었다. 크비토바는 시작부터 강한 리턴으로 맞서며 아자렌카를 압박해 40-15의 브레이크 포인트를 만들었고, 각이 큰 포어핸드로 사이드라인을 공략하는 위닝샷으로 게임을 따냈다. 승기를 잡은 크비토바는 두 개의 서브 에이스로 무력 시위를 했는데, 갑자기 경기장 내에서 장비 소음이 발생하여 몇 초간 경기가 중단되기도 하였다. 아자렌카는 인상을 크게 찌푸리며 상당히 신경에 거슬리는 모습이었는데, 자신의 괴성 역시 거슬리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은 아는지 모르는지. 소리가 멈추고 아자렌카는 분발하여 듀스를 만드는 데는 성공했지만 크비토바는 강한 백핸드 스트로크로 위닝샷을 날리며 4-1로 도망갔다. 크비토바는 완전히 경기를 지배하며 아자렌카를 압박하였다. 두 선수 모두 베이스라인에서 경기를 펼치는 스타일이어서 스트로크 싸움으로 경기가 이어졌지만 크비토바의 힘이 아자렌카를 무너뜨리고 있었다. 크비토바는 다시 아자렌카의 서브 게임을 브레이크하고, 서브 에이스 3개로 세트 포인트를 만들며 마지막 게임까지 따내 6-1로 1세트를 마쳤다.


자신감이 넘치는 크비토바 ⓒ AELTC / T. Hindley


크비토바의 강한 모습은 예상했지만 경기는 기대보다 더 일방적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나 아자렌카는 2세트에서 시작과 동시에 강력한 반격을 보여주었다. 2세트 시작과 동시에 연속으로 7개의 포인트를 얻어 자신의 서브 게임을 지키고 쓰리 브레이크 포인트로 크비토바의 서브 게임을 위협했다. 크비토바는 1세트와는 달리 실책이 연속되며 처음으로 서브 게임을 놓친 반면 아자렌카의 발놀림은 갈수록 좋아졌다. 크비토바는 이어진 아자렌카의 서브 게임에서 강력한 리턴으로 브레이크를 노려봤지만 아자렌카의 손쉬운 승리로 끝나며 0-3이 되었다. 크비토바는 2-4에서 포어핸드를 앞세워 브레이크를 노렸지만 실패하였고, 서브 게임을 서로 잘 지키며 3-6으로 아자렌카가 두 번째 세트를 가져갔다.

운명을 가르는 3세트가 시작되었다. 먼저 서브를 넣게 된 크비토바는 뭔가 어수선했던 2세트와 달리 강한 서브로 가볍게 게임을 선취하며 쉽게 경기를 풀어갔다. 그리고 기세를 몰아 경기의 승부처가 된 아자렌카의 서브 게임을 뺏으며 분위기를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크비토바가 서브 게임을 지키며 점수는 3-0으로 벌어졌고, 서로 두 번의 서브 게임에서 점수를 얻어 5-2에서 아자렌카의 서브로 이 날 경기의 마지막 게임에 돌입했다. 크비토바는 아자렌카의 서브를 포어핸드, 백핸드를 가리지 않고 강하고 깊은 리턴으로 괴롭혔고, 마침내 매치 포인트에 돌입했다. 부담을 이기지 못한 아자렌카는 더블 폴트로 허무하게 1시간 44분이 걸린 경기에서 패하고 말았다. 작년 준결승에서 서리나 윌리엄스에게 패하며 눈물을 흘렸던 크비토바는 두 번째 도전만에 윔블던 결승 진출이라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경기 요약 (출처 : 윔블던 공식 사이트)


경기 기록을 잠시 살펴보면 가장 빠른 서브는 크비토바 시속 181km(113mph), 아자렌카 시속 170km(106mph), 평균(첫 서브)은 각각 시속 164km(102mph), 158km(98mph)였는데 서브 에이스는 9-1로 크비토바가 압도적이었다. 두 선수 모두 첫 서브 성공률이 60%대로 좋지 않아서 두 번째 서브에서 상대의 공격적인 리턴을 허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힘에서 밀린 아자렌카는 수비적으로 경기에 임했는데, 안정보다는 모험을 택하고 공격적으로 나선 크비토바가 결국 경기에서 승리했다. 아자렌카는 실책이 7개로 적었지만 위너 역시 9개로 적었고, 크비토바는 14개의 실책을 했지만 40개에 달하는 위너가 승리에 절대적인 요인이었다.


경기 후 서로 안아주고 얼굴을 비비는 훈훈한 장면을 연출한 두 선수 ⓒ AELTC / N. Tingle

크비토바는 피론코바와의 8강 경기에서도 나타났듯이 1세트의 압도적인 경기력에 비해 2세트에서 집중력이 떨어지는 점을 보완하면 결승에서도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상대인 샤라포바가 베이스라인의 최강자이지만, 대회 내내 서브에서 애를 먹고 있어서 크비토바와의 경기는 접전이 되지 않을까 싶다.


* 4강 두 번째 경기인 마리아 샤라포바와 자비너 리지키의 경기는 다음 글에서 계속.

많은 이들이 기대하던 16년 전인 1995년 세계랭킹 1위부터 4위였던 안드레 애거시, 피트 샘프라스, 보리스 베커와 고란 이바노세비치가 함께 4강에 올라 우승을 다투던 일의 재현은 없었다. Big 4 중에서 가장 안정된 경기를 하면서 윔블던 정상 탈환의 가능성을 높였던 로저 페더러(29, 스위스, 세계랭킹 3위)가 예상을 깨고 두 세트를 먼저 따내고도 나머지 세트를 모두 잃은 믿기지 않는 패배를 당하며 탈락한 것이다.

2011 Wimbledon Gentlemen's Single Final 4 ⓒ AELTC

대회 9일째 (29일)

센터 코트에서 조-윌프레드 송가(26, 프랑스, 세계랭킹 19위, a.k.a. 총가, 쏭가)를 상대하는 페더러의 4강은 눈 앞에 있는 듯했다. 같은 시각 옆 경기장에서 노박 조코비치(24, 세르비아, 세계랭킹 2위)가 버나드 토믹(18, 호주, 세계랭킹 158위)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혀 2세트를 내주며 고전하고 있을 때 페더러는 2:0으로 앞선 상태에서 3세트를 맞이하고 있었다. 페더러는 두 세트를 먼저 따낸 후 토너먼트 경기에서 178승 무패의 신화적인 전적을 자랑하고 있었고, 그의 서브와 스트로크는 전성기에 못지않을 정도로 정확도를 자랑하고 있었다. 아마 그는 피트 샘프라스의 윔블던 7회 우승과 동률을 이루는 꿈을 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페더러의 그랜드 슬램 우승은 16회에서 멈추게 될 지도 모르겠다 ⓒ AELTC / N. Tingle

그러나 페더러는 3세트 1-1로 맞선 상황에서 자신의 서브게임을 어이없는 실수로 내주면서 위기를 맞이하였다. 0-30에서 누가 보아도 페더러의 득점이다 싶은 쉬운 스매시를 사이드라인 바깥으로 날리며 브레이크 포인트에 몰렸고, 15-40에서 이번에는 반대쪽 사이드라인으로 날린 스매시를 송가가 강력한 포어핸드 위너로 연결시키며 브레이크했다. 송가와 페더러는 각자 자신의 서브게임을 잃지 않으며 5-4에서 송가의 서브게임을 맞이했다. 페더러는 이 서브게임을 브레이크하여 세트를 더 끌고 가서 역전을 노렸고, 송가는 마무리 짓기 위해 치열한 다툼을 벌였다. 페더러는 30-0으로 앞서며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으나, 송가가 네트를 살짝 넘기는 드롭샷과 서브 에이스로 30-30을 만들었다. 송가의 서브 에이스는 더블 폴트로 판정되어 40-15로 브레이크 포인트에 몰리게 되었지만, 송가의 챌린지로 판독한 결과 라인 끝에 아주 살짝 걸친 것이 인정되어 30-30으로 정정되었다. 송가는 포어핸드로 40-30을 만들며 세트 포인트에 도달했지만 페더러 역시 포어핸드로 듀스를 만들며 격렬히 저항했다. 송가가 한 점을 내면 페더러는 기어이 다시 점수를 내면서 어드밴티지와 듀스가 다시 반복되었는데 페더러의 샷이 네트로 향하고 송가가 서브 에이스로 점수를 내면서 세트를 끝냈다.

벌처럼 날아오른 송가 ⓒ AELTC / M. Hangst

이때까지만 해도 페더러가 경기에 패할 것이라 예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4세트부터 페더러의 체력 고갈이 눈에 보였다. 발놀림이 둔해져 좌우로 흔드는 서브와 스트로크를 보면서도 따라가지 못하였고, 공격에서도 첫 두 세트에서 80%가 넘었던 첫 서브 성공률이 낮아졌다. 3세트와 마찬가지로 1-1로 맞선 상황에서 다시 브레이크를 당하며 끌려가는 경기를 하다가 다시 4-6으로 세트를 내주었다. 두 선수의 운명을 가르는 5세트 역시 페더러의 서브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첫 게임에서 송가에게 브레이크를 당하며 힘겨운 출발을 했고, 마지막까지 송가의 서브게임을 브레이크하지 못하면서 4-5로 뒤진 채 송가의 서브게임을 맞이하였다. 송가는 페더러를 거세게 밀어붙여 쓰리 매치 포인트를 만들었고 페더러는 이를 극복하지 못하며 패하였다. 두 세트를 먼저 이긴 경기의 무패 기록이 깨짐과 동시에 윔블던 7회 우승을 노리던 그의 목표가 좌절되는 순간이었다. 송가의 3-2(3-6 6-7 6-4 6-4 6-4) 승리. 페더러는 실책을 고작 11개밖에 하지 않았음에도 송가의 힘과 스피드를 당해내지 못하고 무너지고 말았다.

No.1 코트에서 No.1을 바라보는 조코비치의 포효 ⓒ AELTC / N. Tingle

페더러와 같은 시간에 No.1 코트에서 경기를 하였던 조코비치는 져도 잃을 것이 없는 토믹에게 고전을 하였다. 토믹의 서브로 시작한 1세트 첫 게임을 가볍게 브레이크하며 1세트를 6-2로 가볍게 이겼다. 토믹은 긴장한 티가 역력했고 조코비치는 한 수 가르친다는 듯 여유 있는 경기를 했다. 그러나 여유가 방심이 되었을까 토믹은 2세트를 6-3으로 따냈고 조코비치는 햇빛을 피하기 위해 쓴 모자를 벗고 경기를 하였다. 3세트 역시 토믹은 상승세를 이어가며 3-1로 앞서갔지만 여기서 조코비치는 3세트와 4세트 첫 게임까지 이어지는 여섯 게임을 연속해서 따내며 3세트를 이겼다. 그대로 무너질 것 같던 토믹은 4세트에서는 격렬히 저항하며 5-5까지 따라갔지만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하고 5-7로 패하였다. 조코비치의 3:1(6-2 3-6 6-3 7-5) 승리.

조코비치와 송가는 4강에서 맞붙게 되는데 이 경기에서 이길 경우 결승 결과는 상관없이 라파엘 나달(25, 스페인, 세계랭킹 1위)을 밀어내고 월드 넘버 원에 오르게 된다. 패하더라도 나달이 우승을 하지 못하는 경우 역시 세계랭킹 1위에 오르게 되어 나달이 수성을 위해서는 우승과 조코비치의 결승 진출 실패라는 두 가지 조건이 모두 만족되어야 하는 불리한 상황에 처했다. 조코비치와 송가의 상대 전적은 송가가 5승 2패로 앞서 있는데, 5세트 경기인 그랜드 슬램에서는 1승 1패로 팽팽하다.

나달, 윔블던 2연패를 향하여 ⓒ AELTC / S. Wake

나달은 조코비치가 승리를 거두고 떠난 No.1 코트에서 마디 피쉬(29, 미국, 세계랭킹 10위)와 4강 진출을 다투었다. 나달은 초반부터 거세게 몰아붙여 피쉬의 서브게임을 브레이크하면서 첫 게임을 따내 기선을 제압했다. 나달은 첫 서브 성공률이 50%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좋지 않았지만 나달의 주 무기는 서브가 아니었다. 4-2로 앞선 일곱 번째 게임에서 다시 브레이크를 하며 5-2로 달아나며 승기를 잡았고, 브레이크로 따라 붙는 피쉬를 브레이크로 맞불을 놓으며 1세트에서 승리했다. 2세트는 2-1로 근소한 리드를 유지하던 네 번째 게임에서 단 한 번의 브레이크로 승부의 향방을 바꾸었다. 피쉬는 3-5로 뒤진 아홉 번째 게임에서 15-0으로 앞서면서 저항하려 했으나 나달은 가볍게 연달아 네 포인트를 따내며 "Vamos" 를 외쳤다.

3세트는 서로 한 번씩 사이좋게 상대의 서브게임을 브레이크하면서 시작하더니 5-5까지 쫓고 쫓기는 랠리가 이어졌다. 피쉬는 40-15로 앞선 열한 번째 게임을 서브 에이스로 마무리하면서 6-5로 앞서갔고, 기어이 다음 게임까지 강력한 포어핸드 스트로크로 따내면서 집에 가지 않기 위한 저항을 하였다. 승부가 갈린 4세트에서 나달은 1-1에서 피쉬의 서브게임을 브레이크하면서 앞서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피쉬에게 큰 부담을 주었다. 피쉬는 0-30으로 뒤진 마지막 게임에서 포어핸드 스트로크가 벗어나 쓰리 매치 포인트에 몰렸고, 나달은 마지막 포인트를 백핸드 발리로 따내 6-4로 세트를 마감하며 경기의 승자가 되었다. 나달의 3:1(6-3 6-3 5-7 7-4) 승리.

3년 연속 윔블던 4강의 앤디 머리. 이번에도 여기가 끝인가 ⓒ AELTC / J. Buckle

나달이 피쉬를 상대하는 동안 센터 코트에서는 앤디 머리(24, 영국, 세계랭킹 4위)는 펠리시아노 로페스(29, 스페인, 세계랭킹 44위)의 경기는 가장 재미없는 8강 경기였다. 1세트에서 2-2로 팽팽하게 가면서도 머리의 일방적인 흐름으로 가는 듯했던 경기는 3-2 에서 맞은 로페스의 서브게임을 머리가 브레이크하면서 확실히 기울어졌다. 5-3으로 앞선 머리는 아홉 번째 게임 40-15에서 서브 에이스로 세트를 따냈다. 머리는 자신의 서브게임은 전혀 내주지 않으면서 2세트와 3세트에서도 한 번씩 로페스의 서브게임을 브레이크하며 단 세 번의 브레이크로 경기를 이기는 효율적인 경기를 했다. 광서버 앤디 로딕(미국)을 서브로 때려눕혔던 로페스였지만 서브 에이스는 고작 7개밖에 기록하지 못해 머리의 13개에 밀렸다. 머리는 첫 서브의 성공률이 56%에 그치는 서브의 부진이 아쉬웠지만 40개의 위너를 기록하면서 11개의 실책밖에 저지르지 않는 안정적인 스트로크가 돋보였다. 머리의 3:0(6-3 6-4 6-4) 완승.

나달은 머리와 4강에서 맞붙게 되었는데 두 선수의 상대전적은 11승 4패로 나달의 우세다. 특히 윔블던에서 나달이 우승한 2008년과 2010년 두 차례 맞붙어 두 번 모두 나달이 3:0으로 이긴 바 있다. 머리에게는 이번이 복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자 3년 연속 4강을 넘어 첫 결승 진출을 노려볼 때가 되었다. 반면에 나달은 머리를 이기면 항상 우승했던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어서 두 선수의 승부가 어떻게 펼쳐질 지 관심이 간다.

토믹은 어떤 선수로 성장할 것인가? ⓒ AELTC / S. Wake

2004년 혜성처럼 등장했던 17세 소녀가 윔블던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그녀는 곧 본업인 테니스 이외에도 패션과 섹시 아이콘으로 유명해지며,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입을 올리는 여자 운동 선수가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어깨 부상으로 수술과 재활의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했고, 다시 힘들게 2006년 이후 5년만에 윔블던 준결승에 올랐다. 그녀의 이름은 다름아닌 마리아 샤라포바(24, 러시아, 세계랭킹 6위)다.

2011 Ladies' Single Final Four ⓒ AELTC

대회 8일째 (28일)

4라운드까지는 남녀 단식이 함께 열렸지만, 이제부터는 하루씩 번갈아 가면서 경기를 치를 예정이다. 물론 비라는 변수가 있어서 지붕이 있는 센터 코트가 아닌 다른 코트에서 경기하는 선수들의 경기가 연기될 가능성이 있지만 한국 시간으로 오늘 밤에 펼쳐지는 남자 8강 단식 두 경기를 제외하면 준결승과 결승은 센터 코트에서 열리기에 예정대로 열리게 될 것 같다.

환호하는 리지키 ⓒ AELTC / N. Tingle

센터 코트에서는 자비너 리지키(21, 독일, 세계랭킹 62위)와 마리온 바르톨리(26, 프랑스, 세계랭킹 9위)의 경기가 열렸다. 리지키는 중국의 리나를, 바르톨리는 디펜딩 챔피언 서리나 윌리엄스를 탈락시키며 우승 후보를 집으로 보낸 선수들. 쉬운 승부가 되지 않을 것이라 보였는데 3세트까지 갔지만 리지키가 경기 대부분을 이끌어갔다. 리지키는 1세트를 6-4로 승리했고 2세트 역시 5-4로 앞선 채 자신의 서브게임을 맞았다. 40-0의 쓰리 매치 포인트, 그러나 백핸드와 멋진 로브가 네트에 걸렸고 포어핸드마저 실책을 저지르며 듀스에 돌입했고, 더블 폴트를 저지르며 5-5 동점을 허용하고 말았다. 한 게임씩 더 따내며 결국 타이브레이크에 돌입하였고, 리지키는 집중력 부족으로 4-7로 패했다. 그러나 이미 바르톨리는 코트 전체의 빈 곳을 찾아 샷을 무차별적으로 날려댄 리지키에 의해 지쳐 있었고, 여전히 팔팔한 리지키는 바르톨리의 게임을 연속으로 브레이크하며 6-1로 쉽게 마지막 세트를 따냈다. 리지키의 2:1(6-4 6-7 6-1) 승. 이 승리로 리지키는 1999년 슈테피 그라프 이후 첫 독일 출신의 윔블던 여자 4강 진출 선수가 되었다.

리지키는 178cm, 70kg의 탄탄한 체격에 여자 선수 중에는 가장 강력한 서브를 구사하는 선수 중의 하나이고, 2009년 8월 세계랭킹 22위까지 올랐던 실력파 선수다. 작년과 올해 초는 조금 부진했지만 프랑스오픈부터 조금씩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프랑스오픈 2라운드에서 3번 시드의 베라 즈보나레바(러시아)를 상대로 3세트를 5-2로 앞선 채 매치 포인트를 맞이했으나 믿을 수 없는 5-7 역전패를 당하며 무너졌다. 경기 후 울면서 쓰러져 부상을 호소해 들것에 실려 나가기도 하는 사건이 있기도 했다(연기였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이처럼 그녀의 가장 큰 단점은 경기 중에도 오르락 내리락하는 기복이 심하다는 점인데 윔블던 8강 바르톨리와의 경기에서도 2세트에 이런 모습이 잠시 보였다. 그러나 윔블던의 전초전 격인 애곤 인터내셔널에서 우승을 하면서 컨디션을 끌어올린 리지키는 와일드카드로 출전한 윔블던에서 첫 그랜드 슬램 4강 진출의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5년만의 윔블던 준결승 진출을 이룬 샤라포바 ⓒ AELTC / N. Tingle

센터 코트의 두 번째 경기는 마리아 샤라포바와 도미니카 치불코바(22, 슬로바키아, 세계랭킹 24위)의 경기. 3개월 전 마드리드에서 치불코바에게 패한 적이 있던 샤라포바였지만 이 날 그녀의 컨디션은 절정에 올라 있었다. 강력한 베이스라이너의 면모를 뽐내며 포어핸드와 백핸드를 가리지 않고 좌우로 치불코바를 흔들며 경기를 유리하게 끌고 갔다. 대부분의 점수가 사이드라인과 베이스라인을 찌르는 스트로크에서 나왔을 만큼 샤라포바의 스트로크는 완벽에 가까웠다. 불과 한 시간 만에 2:0(6-1 6-1)의 완승이었다. 위너 23-3, 실책 10-11에서 보이듯이 완벽한 샤라포바를 위한 샤라포바에 의한 샤라포바의 경기였다.

샤라포바와 치불코바의 키 차이는.. 역시 크긴 크다 ⓒ AELTC / N. Tingle

경기 중에 현지 캐스터들도 샤라포바의 강력함에 할 말을 잃고 별다른 말을 하지 못할 정도였는데, 흥미로운 것은 지난 2004년 윔블던에서의 모습과 현재 샤라포바의 서브에 대한 비교가 있었다. 샤라포바는 전성기 때 시속 180km 후반의 강력한 서브를 넣는 선수였는데 최근에는 어깨 부상과 오랜 재활로 인한 두려움 때문인지 테이크 백부터 서브의 스윙 동작이 작아졌다. 그 때문인지 최고 속도와 평균 속도 모두 약 시속 10km 정도 줄어들면서 위력이 감소했고 서브 에이스의 숫자도 줄어들었다. 비가 와서 지붕을 덮고 경기가 열렸는데 덕분에 샤라포바의 "아오~!' "악!" "워우!" 함성이 경기장 안에서 진동하여 관중들의 귀가 따가웠을 것 같다. 치불코바의 부진도 샤라포바의 괴성에 압도된 것이 아닌지.

생애 첫 그랜드 슬램 준결승 진출을 이룬 아자렌카 ⓒ AELTC / J. Buckle

빅토리아 아자렌카(21, 벨라루스, 세계랭킹 4위)가 오스트리아의 타미라 파스첵(20, 세계랭킹 80위)을 2:0(6-3 6-1)으로 간단히 제압하고 역시 생애 첫 그랜드 슬램 4강에 진출하는 영광을 누렸다. 대부분의 그랜드 슬램에서 단식과 복식 모두 출전하는 욕심쟁이였는데, 이번에는 단식에만 출전하는 것이 체력적으로 더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자렌카는 1세트 1-1에서 연속으로 두 게임을 브레이크를 포함해 실점 없이 연속으로 따내며 3-1로 앞서 나갔고, 역전을 허용하지 않고 깔끔하게 세트를 마감했다. 아자렌카의 코너를 공략하는 강력한 스트로크와 스윙 발리 앞에 파스첵은 속수무책이었다. 2세트는 더 간단히 1-0에서 파스첵의 서브 게임을 브레이크하고 자신의 서브 게임을 지키며 3-0으로 앞서며 파스첵의 추격을 따돌렸다.

이 경기는 원래 No. 1 코트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1세트 첫 게임만에 비로 인해 경기가 중단된 후 재개와 중단을 반복하다가 센터 코트로 옮겨 경기가 열렸다. 윔블던 역사에서 경기를 다른 코트로 옮겨 치르는 것은 처음인데, 아자렌카와 파스첵은 그 역사적 순간의 '감동적인(moving) 경기'에 이름을 올린 주인공들이 되었다. No.1 코트에서 조용히 비가 그치고 경기가 시작하기만을 기다리던 팬들도 센터 코트의 입장권으로 교환할 기회를 얻게 되어 기다린 대가를 충분히 보상받은 셈이다. 전통보다는 실리를 택한 윔블던 위원회의 결정이 선수들과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을 위한 현명한 선택이었다. 덕분에 센터 코트에서는 샤라포바에 이어 아자렌카의 함성이 울려 퍼지며 소음 공해에 몸살을 앓았을 듯하다. 아자렌카 역시 최근 꾸준히 세계 톱 랭킹에 있으면서도 그랜드 슬램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는데 이번이 좋은 기회가 되었다.

2년 연속 준결승 진출의 크비토바 ⓒ AELTC / M. Hangst

비가 그치고 코트가 정리되면서 No. 1 코트에서 예정되었던 여자 단식 8강 두 경기 중 하나인 페트라 크비토바(21, 체코, 세계랭킹 8위)와 츠베타나 피론코바(23, 불가리아, 세계랭킹 33위)의 경기는 그대로 같은 경기장에서 열렸다. 작년 4강 진출자들의 대결이 된 이 경기에서는 여성 해설자가 여자 델 포트로라고 할 정도로 183cm, 70kg의 큰 체격을 가진 크비토바가(사실 샤라포바가 키는 188cm로 더 크지만 공식 프로필 상 체중은 고작 59kg라고 알려져 있다) 강력한 스트로크를 앞세워 피론코바를 밀어붙였다. 즈보나레바와 비너스 윌리엄스를 무찌른 피론코바는 그동안의 경기와는 달리 크비토바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자신의 서브 게임을 연속으로 브레이크 당하는 등 1세트를 힘없이 내주고 말았다. 2세트 초반에는 피론코바가 크비토바의 서브 게임을 브레이크하며 앞서 나갔지만, 크비토바가 피론코바의 서브 게임을 브레이크하며 따라잡고 접전을 벌이다 타이브레이크로 이어졌다. 타이브레이크에서 크비토바는 연속 실책 세 개를 범하며 2세트를 내주었지만, 3세트에서 지친 피론코바를 몰아붙이며 쉬운 승리를 거두었다. 크비토바의 2:1(6-3 6-7 6-2) 승리.

크비토바 역시 이번 승리로 첫 그랜드 슬램 우승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되었다. 4강에 오른 선수 중에서 단 한 번이라도 윔블던을 포함한 그랜드 슬램에서 결승 진출이라도 한 선수는 샤라포바가 유일하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단판 승부로 벌어지는 테니스에서 준결승과 결승이 주는 부담감이 큰 것을 생각하면 유경험자 샤라포바가 심리적인 면에서는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는 듯하다.

한국 시간으로 오늘 밤 9시부터 남자 단식 8강이 시작하는데 라파엘 나달의 부상은 예상대로 경기를 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레벨이 높은 선수들과 상대하게 되기에 부상으로 인한 경기력 손실이 얼마나 경기에 영향을 미칠 것인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달콤한 하루 휴식을 갖고 두 번째 월요일을 맞은 선수들. 악명높은 비는 내리지 않아서 경기가 지연되거나 취소되지 않았지만 뜨거운 햇살이 선수들에게는 편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경기를 마지막으로 윔블던에서 떠나야 하는 이들에게는 잔인한 블랙 먼데이가 되었다.

대회 7일째 (27일)

남자부에서는 '월드 넘버 원' 라파엘 나달(스페인)과 '황제' 로저 페더러(스위스)를 비롯한 4강 후보로 꼽힌 선수들이 모두 무사히 8강에 안착했다. 그러나 다른 네 명의 얼굴은 사실 기대했던 것과는 달랐다.

2세트 중간 인저리 타임을 갖는 라파엘 나달 © AELTC / T. Hindley

나달은 아르헨티나의 후안 마르틴 델 포트로를 3:1(7-6 3-6 7-6 6-4)로 꺾으며 8강에 올랐다. 델 포트로는 2009년 US오픈에서 페더러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지만 작년에 부진에 빠지며 한때 4위까지 올라갔던 랭킹이 485위까지 떨어지는 급추락을 경험했다. 그래도 두 개의 투어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조금씩 기량 회복을 하고 있던 중이어서 나달과의 명승부를 기대할 만하였다. 1세트부터 왼쪽 발의 이상으로 메디컬 타임을 요청하였던 나달은 다리를 저는 불편한 모습이었지만 1세트와 3세트 두 번의 타이브레이크에서 승리한 것이 컸다. 나달의 발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한 상태로 전해지고 있는데 검진 결과에 따라 다음 경기에 출전하지 않을 수도 있다니 결과를 지켜보아야겠지만 경기를 하는 모습으로 보아서는 출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Low-Vak 조코비치 © AELTC / S. Wake

나달이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거나 자신이 결승에 오르기만 해도 다음 주 세계랭킹에서 1위 자리에 오르게 되는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는 미카엘 로드라(프랑스)를 3:0(6-3 6-3 6-3)으로 쉽게 이겼다. 전형적인 서브 앤 발리 플레이어인 로드라는 54%에 그친 첫 서브 성공률이 발목을 잡았다. 바그다티스와의 힘든 경기에서 이긴 후 조금 더 정신을 차리게 된 것인지 조코비치는 냉정하게 경기를 하면서 1시간 41분 만에 경기를 마치고 8강에 진출했다. 조코비치는 8강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호주의 버나드 토믹을 상대한다.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페더러에게도 해당되는 말인지도 © AELTC / N. Tingle

페더러는 미하일 유즈니(러시아)의 공세에 첫 세트를 타이브레이크 끝에 지면서 대회 무실 세트 승리 기록이 중단되었다. 타이브레이크에서 2-1로 앞서던 페더러는 유즈니가 더블 폴트 등으로 자신의 서브 기회를 잘 살리지 못하자 4-2로 점수 차이를 벌렸지만 스트로크 미스가 이어지며 세트를 내주고 말았다. 2세트 2-2로 맞설 때만 하여도 페더러가 덜미를 잡힐 수 있겠다 싶은 분위기였지만, 페더러가 첫 브레이크를 성공시키며 3-2로 앞서 분위기를 반전시키며 세트를 따내고 3세트의 첫 게임 0-40으로 밀린 브레이크 위기에서 역전승에 이은 브레이크로 결정타를 날렸다. 페더러의 3:1(6-7 6-3 6-3 6-3) 승리. 페더러는 첫 서브의 성공률이 62%로 낮고, 실책을 25개나 범하는 등 다소 부진한 경기 내용이었지만 다재다능한 능력을 살려 승부처에서 점수를 따내며 승리를 이끌어냈다. 8강에서 맞붙는 상대는 조 윌프레드 송가(프랑스, a.k.a 쏭가 or 총가).

이제 머레이 대신 머리라고 부르기로 했다 (원어민 발음 중심주의) © AELTC / M. Hangst

앤디 머리(영국)는 리샤르 가스케(프랑스)를 상대로 3:0(7-6 6-3 6-2)의 승리를 거두었다. 첫 세트는 타이브레이크까지 가는 접전이었지만, 이후 두 세트는 머리가 쉽게 따냈다. 두 선수는 이 경기 전까지 맞대결에서 2승 2패를 기록하고 있었고, 작년 프랑스오픈에서 풀세트 접전을 벌여 머리가 두 세트를 먼저 내준 후 세 세트를 따내며 역전승을 거둔 명승부를 하기도 했었다. 머리는 첫 서브 성공률이 60%에 그쳤지만, 14개의 에이스와 36개의 리턴 실패로 이어질 만큼 위력을 발휘했고, 44개의 위너를 기록하면서 10개의 실책만을 저지르는 안정된 경기를 하였다. 머리는 쨍쨍한 햇빛을 의식한 듯 대회 처음으로 모자를 쓰고 경기를 한 것이 조금은 색달랐던 점. 8강의 상대는 이미 한 명의 앤디를 집에 보낸 스페인의 펠리시아노 로페스.

프랑스의 자존심 쏭가! © AELTC / T. Hundley

나머지 4명의 8강 진출자를 보면, 미국의 마디 피쉬(세계랭킹 9위)가 작년 준우승자 토마스 베르디흐(체코, 세계랭킹 7위)를 3:0(7-6 6-4 6-4)으로 누르고 8강에서 나달과 맞붙게 되었다. 1981년생으로 테니스계에서는 노장에 속하는 피쉬는 최근 들어 경기력이 더 좋아진 모습이어서 자신의 랭킹을 끌어올리고 있다. 송가는 세계랭킹 6위 다비드 페레르(스페인)를 3:0(6-3 6-4 7-6)으로 이기고 작년에 이어 8강 진출에 성공했다. 16강에 세 명이나 되었던 프랑스 선수 중 유일하게 살아남으며 프랑스 테니스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3라운드에서 이변을 연출했던 로페스는 역시 3라운드에서 가엘 몽피스를 누르며 이변을 일으킨 루카스 쿠보트(폴란드)와 그야말로 피 터지는 접전을 벌여 3:2(3-6 7-6 6-7 7-5 7-5)의 대역전극을 펼쳤다. 그 혈전을 치르고 나서 로페스는 바로 다음 경기장으로 달려가 혼합 복식 경기를 뛰어 승리를 거두었으니 이 사람 철인인지도. 토믹은 벨기에의 하비에르 말리세를 3:0(6-1 7-5 6-4)으로 완파하며 돌풍을 이어갔다. 세계랭킹이 고작 158위어서 이번 대회에도 예선을 거쳐 진출한 토믹은 그랜드 슬램 첫 4라운드 진출에 이어 8강 진출이라는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호주 남자 선수가 윔블던 8강은 참 오래간만의 일이다. 버나드 토믹 © AELTC / C. Brunskill

그래도 빅4가 건재했던 남자부보다 더 심하게 진창이 된 것은 여자 단식이었다. 윌리엄스 시스터즈(미국)가 나란히 짐을 싸게 되었고, 첫 그랜드슬램에 도전하였던 세계랭킹 1위 카롤리네 보스니아키(덴마크)도 무너졌다.

작년의 한을 푼 피론코바 © AELTC / M. Hangst

3라운드에서 베라 즈보나레바(러시아)에게 성공적인 복수를 했던 불가리아의 츠베타나 피론코바(32번 시드)는 비너스 윌리엄스를 2:0(6-2 6-3)으로 간단히 제압했다. 냉정하게 보았을 때 비너스는 그랜드 슬램에서 정상에 오르기 힘들 정도로 전성기에 비해 기량이 많이 쇠퇴했다. 그럼에도 윔블던 5회 우승의 관록을 믿어볼 만하였으나 반응 속도가 많이 느려진 몸이 반응하지 못하며 피론코바의 공을 받아내지 못했다. 피론코바는 이번 대회에서 단식 외에도 복식 멀티를 하였는데 복식 2라운드에서 패배한 것이 단식에 집중하는 계기가 될 것 같다.

바르톨리의 환호 © AELTC / N. Tingle

9번 시드를 받았던 마리온 바르톨리(프랑스, 세계랭킹 9위)는 서리나 윌리엄스를 2:0(6-3 7-6)으로 눌렀다. 오랜 공백을 가진 터라 초반에 발동이 잘 걸리지 않는 서리나는 1세트를 쉽게 내준 후에야 거센 저항을 했으나 바르톨리에게 패하고 말았다. 서리나는 비록 패하기는 했지만 윔블던 이후 다시 경기력을 회복할 경우 충분히 세계 정상권에 머물 실력을 가지고 있는 듯하여 조금 더 두고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디펜딩 챔피언으로서 포인트를 지키지 못해 세계랭킹이 저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은 면치 못하게 되었다. 바르톨리는 8강에서 이번 대회에서 무서운 기세로 달리고 있는 자비너 리지키를 상대하게 되어 쉽지 않은 경기가 예상된다.

보스니아키의 꿈을 무너뜨린 치불코바 © AELTC / J. Buckle

보스니아키의 패배는 더욱 드라마틱했다. 보스니아키는 도미니카 치불코바(불가리아, 24번 시드)를 맞아 1세트를 6-1로 가볍게 이겼다. 보스니아키는 1세트에서 첫 서브의 성공률이 79%에 달했고, 치불코바의 서브를 모두 리턴하면서 수비 여왕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러나 2세트부터 살아난 치불코바의 공격은 보스니아키의 수비를 붕괴시키기 시작했고, 타이브레이크 끝에 승리를 거두었다. 무려 74분이나 걸린 3세트는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으나 5-5에서 치불코바가 보스니아키의 서브게임을 브레이크하면서 앞섰고, 경기를 7-5로 끝냈다. 치불코바의 2:1(1-6 7-6 7-5) 승리. 치불코바는 올해 초 시드니 메디뱅크 인터내셔널에서 보스니아키를 이긴 적이 있기는 했지만 호주오픈에서는 패했고, 상대 전적이 2승 6패로 밀리고 있었는데 메이저대회 우승이 간절했던 보스니아키에게 통쾌한 복수를 했다.

샤라포바의 아악~! 서브 © AELTC / J. Buckle

아무리 그래도 현역 선수 중 윔블던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선수는 마리아 샤라포바(러시아)다. 단 한 차례 우승이었지만 그것이 너무도 강렬했던 그녀는 7년 전의 영광을 다시 누릴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샤라포바는 계속 대진 운이 좋은 편이었는데 4라운드에서도 중국의 펑슈웨이(20번 시드)를 맞아 2:0(6-4 6-2)의 쉬운 승리를 거두었다. 샤라포바는 여전히 서브에서 고전하였지만 서브 이후 경기를 풀어나가는 능력이 좋았다. 펑슈웨이에 비해서 9개 많은 위너를 기록하면서도 실책은 7개 적게 기록한 것이 가장 큰 승인. 그러나 상대 전적 2승 2패로 팽팽히 맞선 치불코바와의 8강 승부는 쉽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특히 올해 포함 최근 승부에서 모두 패한 것이 샤라포바로서는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다.

이번에는 인상을 덜 찌푸린 아자렌카 © AELTC / T. Hindley

빅토리아 아자렌카(벨라루스, 4번 시드)는 나디아 페트로바(러시아)를 2:0(6-2 6-2)로 가볍게 이겼다. 아자렌카는 자신보다 세계랭킹이 높은 선수들은 모두 떨어져서 첫 그랜드 슬램 달성의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페트라 크비토바(체코, 8번 시드)는 야니나 위크마이어(벨기에, 19번 시드)를 2:0(6-0 6-2)로 더 쉽게 이겼다. 시드 배정자들끼리의 경기에서 한 게임도 내주지 않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데 크비토바가 작년 윔블던 4강 진출이 운이 아니었음을 보여줄 지도 모르겠다. 시드를 받지 못한 이들의 대결에서는 3라운드에서 리나를 누르고 파란을 일으킨 자비너 리지키(독일)와 타미라 파스첵(오스트리아)이 8강행 티켓을 손에 넣었다.

윔블던 8일째인 28일에는 남자 단식 선수들은 휴식을 취하고(복식과 혼합복식은 경기가 있다), 여자 단식 8강의 네 경기가 모두 열린다. 과연 125회 윔블던 4강은 어떤 선수들이 올라갈 지 두고 볼 일이다.

이 분들도 센터 코트의 경기를 관람하셨다. 누구는 태어날 때부터 왕자, 나는 엄마 아들 © AELTC / M. Hangst

자타가 공인하는 현재 최고의 투수 류현진이 지난주 일요일 통산 22번째이자 한국 프로야구 역대 최연소(24세 2개월 25일, 종전 주형광의 24세 3개월 14일), 최단 경기(153경기, 종전 정민철의 180경기) 1000탈삼진 기록을 수립했다. 탈삼진 1000개가 얼마나 대단한 기록인지 피부에 와닿지 않을 수 있지만, 30년 역사의 한국 프로야구에서 활약했던 그 많은 투수들 중에서 류현진을 제외한 고작 21명밖에 이 고지에 오르지 못한 어려운 기록임이 분명하다. 류현진은 가장 어린 나이에 그리고 가장 짧은 5년 2개월 여라는 시간만에 이 기록을 달성했고, 1000개의 탈삼진은 더 많은 기록을 세우는 과정의 일부이지 종착점이 아니라는 것이다.


탈삼진 1000개의 기록을 달성한 2011년 6월 19일 류현진의 역투 ⓒ 연합뉴스


류현진과 함께 최고 투수로 꼽히는 김광현이 525개, 윤석민이 643개에 그치고 있어 동 시대의 비슷한 연령대의 투수들이 이 기록을 깨기 위해서는 적어도 2~3년은 걸려야 할 것이다. 이들이 최연소라든가 최단 경기와는 거리가 먼 것은 당연하다. 단지 탈삼진만이 아니고 이들은 류현진만큼 데뷔하자마자 강력한 포스나 꾸준한 건강 상태와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류현진은 시즌 중에 피로가 누적되어 선발 로테이션을 건너뛰거나 이미 팀이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후 등판을 하지 않은 적이 있지만, 한창 순위 다툼을 하는 와중에 부진으로 2군으로 내려가거나 부상으로 이탈해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꾸준함 역시 프로야구 선수가 지녀야 할 하나의 덕목이기에 류현진의 가치는 더 빛날 수 밖에 없다.


고졸 출신 선수들의 데뷔 5년간 성적표 (자료출처 : www.istat.co.kr)


류현진은 프로야구 역사상 성공했던 고졸 출신 에이스들과 데뷔 후 5년간의 성적 비교에서도 전혀 밀리는 바가 없다. 투수 분업화가 자리 잡은 최근의 투수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많은 이닝을 던졌으며, 데뷔 이후 시즌 중간이나 말에 열린 국제대회에는 빠짐없이 참가하면서 오프 시즌에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역사상, 그리고 동시대의 경쟁자들에 비해 강한 내구력과 꾸준함으로 리그를 지배하는 투수로 활약하고 있다.

이번 시즌 초반 류현진은 부진한 투구 내용으로 혹사와 피로 누적으로 인한 기량 저하를 의심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류현진은 데뷔 첫 해부터 풀타임 선발투수로 활약하면서 5년 동안 가장 많은 공을 던진 선수 중의 하나였다. 과거 장명부, 최동원 등이 말도 안되는 이닝을 소화하였지만(이들은 결국 혹사로 인해 선수 생활을 일찍 접게 된다) 프로야구에 선수 보호에 대한 개념이 없던 시절의 일이었으니 제외한다면 류현진의 팔에 무리가 왔다는 걱정을 해도 큰 무리는 없었다. 더구나 고등학교 때 수술을 받은 적이 있는 팔꿈치는 류현진이 부진하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늘 염려되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류현진은 자신을 둘러싼 온갖 이야기들을 비웃듯 다시 예전의 무서운 기량을 보여주며 가장 강력한 투수로 돌아왔다. "앞으로는 세게 던질 것" 이라고 공언했던 류현진은 120개를 넘게 던져도 시속 150km의 강속구를 뿌리며 막판까지 타자를 힘으로 압도하였다. 벌써 세 번째 완투를 하였고, 다승 공동 4위(7승), 평균자책 10위(3.83), 투구 이닝 2위(96.1이닝), 탈삼진 1위(103개)를 기록하고 있다. 이미 시즌 절반이 지난 상황이어서 작년과 같은 1점대의 평균자책을 기록하기는 어렵겠지만 지난 주에 보여주었던 모습이 이어진다면 3점대 초반 아래로 내릴 가능성이 높고, 선두와 1승 차이로 따라붙은 다승 부문의 타이틀도 노려볼 수 있게 되었다. 5년 동안 단 한 번밖에 놓치지 않았던 탈삼진은 이닝 당 1개 이상의 삼진을 잡아내는 페이스로 보아 올해도 부상과 같은 큰 변수가 없다면 가장 강력한 수상 후보다.

류현진은 완투형 투수가 거의 사라진 요즘 유일하게 혼자서 경기를 마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투수다. 고독한 황태자의 윤학길의 100완투를 깨기는 어렵겠지만 26번의 완투로 현역 투수 중 이 부문 최다를 달리고 있다. 완투를 하는 것이 투수 자신에게 좋은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지만, 완투를 할 수 있는 투수가 있다는 것은 팀에 상당한 도움이 된다. 5일 쉬고 나오는 선발 투수가 5회를 막기도 힘들어 초반에 강판되고, 불펜 위주로 마운드 운용을 하면서 불펜 투수들에 과부하가 걸리는 현대 프로야구의 추세에서 한 경기를 스스로 끝내면서 불펜에 휴식을 가져다주는 것은 정말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류현진의 다른 기록으로는 정규이닝 최다 탈삼진을 들 수 있다. 류현진은 작년 5월 11일 청주구장에서 LG를 맞아 9이닝 동안 17탈삼진을 기록하며 완투승을 거두었다. 한 경기 최다 탈삼진은 선동열 삼성 운영위원이 해태 시절 빙그레를 상대로 13이닝 동안 18개의 탈삼진을 기록한 것이지만, 연장까지 가지 않은 정규이닝에서의 최다 기록은 최동원(당시 롯데)과 선동열, 그리고 이대진(당시 해태)이 기록했던 16개가 최다였다. 비록 탈삼진은 투수를 평가하는 척도 중의 일부라고는 하지만 최동원과 선동열이라는 누구나 인정할 프로야구의 대투수들을 넘은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이 기록과 함께 선발 타자 전원 탈삼진과 매 이닝 탈삼진(개인 통산 두 번째)의 기록도 함께 세웠으니 잊지 못할 기억을 남긴 날이었다.

최동원과 선동열의 활약상에 대해 평가절하할 의도는 없지만 투수에 대한 평가는 활동하는 시기의 타자들의 실력 역시 중요한 변수 중의 하나다. 수가 많지 않지만 외국인 타자나 해외 리그 경험을 가진 타자도 있고, 전반적으로 과거에 비해 타자들의 힘과 기량이 나아진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적게는 2점대에서 평균적으로 3점대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던 80년대의 야구에 비해 한두 팀을 제외하고 대부분 4~5점대의 평균자책을 기록하는 것은 투수의 기량에 비해 타자의 기량 발전 속도가 빠른 것을 의미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5년 동안 2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고 있는 류현진의 성적을 단지 숫자상의 비교만으로 그들보다 못한 투수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류현진이 지금과 같이 좋은 투수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입단 당시 류현진이 보고 배울 수 있는 훌륭한 노장 투수들이 있었다는 점을 꼽는 사람들이 많다. 타고난 재능이 있더라도 갈고 닦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법이듯이 어떻게 자기 관리를 하는가에 따라서 선수의 실력은 달라지게 된다. 류현진이 돌풍을 일으키며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면서 조금은 나태해지려고 할 때, 송진우, 구대성과 정민철 등 삼촌뻘의 고참 선수들이 지적을 하면서 야구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스스로 "구대성·송진우 선배님을 닮고 싶다" 고 밝힌 바 있듯이 프로 투수로서의 롤 모델로 삼고, 이를 넘어 더 큰 선수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목표를 세운 것이 지금의 류현진이 있기까지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모두 은퇴하고 갑자기 꼴찌팀 에이스가 된 류현진의 어깨는 무거워졌다. 류현진이 아무리 LG를 상대로 맹위를 떨쳤다고는 하나 팀타율 최하위인 소속팀 한화 타선을 상대하지 않았다는 점은 투수로서는 불리한 조건이었다. 미안하지만 꼴찌팀들은 대부분 타격과 투수력을 비롯한 수비력이 모두 다른 팀에 미치지 못한다. 부족한 공격력은 점수를 못 내는 만큼 점수를 내주지 않기 위한 부담을, 부족한 계투진과 수비는 혼자서 모든 것을 다 책임지고 경기를 끌어나가야 한다는 부담을 안겨준다. 이런 점에서 류현진이 만약 계투진과 타력이 강했던 삼성이나 두산에서 뛰었더라면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지 않았을까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류현진은 작년에 가공할만한 위력을 보여주었다. 1점대 평균자책점과 29경기 연속 퀄리티스타트라는 괴물같은 기록을 세우며 그가 한국 최고의 투수라는 것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었다. 다른 해와 달리 전년도 시즌을 마친 후 포스트시즌이나 국제대회가 없어서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 있었던 것이 류현진이 작년에 좋은 활약을 할 수 있었던 원인 중의 하나가 아닌가도 싶다.

류현진에 대한 찬사는 다른 곳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는 내용이니만큼 여기서 마치도록 하고, 글의 제목처럼 류현진의 탈삼진 기록에 도움을 준 사람들을 찾아보자. 대부분의 전문가들도 기대하지 않았던 신인 투수를 과감히 선발로 기용하는 믿음을 보여주었던 김인식 전 한화 감독이나, 바닥을 치는 팀 성적에도 고생하는 에이스의 등판 일정을 조절해주려고 애썼던 한대화 감독, 그리고 한용덕, 이상군, 정민철 등 한화의 전현직 투수코치들과 트레이너 등 여러 사람들을 빼놓을 수 없다. 이러니저러니 말이 많아도 류현진의 공을 묵묵히 받아왔던 포수 신경현 역시 그 기록의 동반자이자 공로자로 인정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은 1000개의 탈삼진 중에서 어떤 타자가 그리고 어떤 팀이 가장 많이 삼진을 당해서 그 기록 달성을 도왔는지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단 하나의 탈삼진이라도 반드시 누군가는 타석에서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오는 공을 가만히 보거나 헛스윙으로 삼진을 당해야 기록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류현진의 탈삼진 기록에 가장 큰 공헌을 한 팀과 선수들을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자. 우선 팀을 살펴보면 누구나 쉽게 류현진에게 약했던, 그리고 류현진 뿐만이 아닌 좌완 투수에게 절대적으로 약했던 LG트윈스를 떠올릴 것이다. 실제로 류현진은 '표적 등판' 이라고 할 정도로 LG를 상대로 등판한 적이 많았다. 데뷔 이후 현재까지 류현진은 LG전에 모두 31번 선발 등판을 하여 232이닝을 던졌다. 다음으로 많이 등판한 팀은 26경기의 삼성인데, 경기 수는 고작 다섯 경기 차이지만 투구이닝에서 거의 60이닝이 차이가 나고, 2.25라는 평균자책점에서 보이듯이 LG에는 상당히 강했음을 알 수 있다.


류현진의 통산 팀별 상대기록 (자료출처 : www.istat.co.kr)


류현진은 LG를 상대로 240개의 탈삼진을 기록했는데, 1003개의 탈삼진 중에서 무려 23.9%에 이르는 수치다. 경기마다 평균 7이닝 이상을 소화하면서 경기 당 8개에 가까운 탈삼진을 차곡차곡 쌓았다. 9이닝당 탈삼진 부문에서도 9.31개로 9.21개의 SK를 제치고 LG가 선두를 달리고 있다. 류현진은 데뷔전이었던 2006년 4월 12일 잠실 LG전에서 7.1이닝 동안 탈삼진 10개를 기록하며 첫 승을 거두었고, 작년 5월 11일 청주구장에서 다시 LG를 상대로 9이닝 동안 17개의 탈삼진을 잡아내며 LG를 상대로 탈삼진과 관련된 많은 기록을 만들었다. LG는 전통적으로 좌타자가 많아서 좌완 투수에게 약한 점이 있지만, 타자들의 선구안이 좋지 않아 볼넷은 적게 고르고 삼진은 많이 당하는 편이어서 류현진의 밥이 되고 말았다. 어쨌든 류현진의 탈삼진 기록이 있기까지는 그 누구보다도 LG의 공헌이 컸으니, LG 3D TV 한 대 정도는 사야하지 않을까 싶다.

 

둘이 합쳐 40개의 삼진을 당한 조인성과 박용택. 전체 탈삼진의 4%가까이 차지한다. ⓒ OSEN


류현진에게 가장 많은 삼진을 당한 타자 역시 LG에 두 명이나 있는데, 다른 팀의 선수도 같은 개수의 삼진을 당한 것이 눈에 띈다. 그 선수는 바로 삼성의 조동찬이다. 조동찬은 LG의 박용택, 조인성과 함께 20개의 삼진을 당해 류현진의 탈삼진 기록에 가장 큰 공헌을 하였는데 박용택과 조인성이 나란히 79타석에 들어서며 타석 당 0.253개의 삼진을 기록했다면, 조동찬은 46타석밖에 들어서지 않아 타석 당 0.435개의 삼진을 기록하고 있다. 조동찬은 10번 이상 타석에 들어선 타자들의 삼진율에서도 상위권을 달리고 있다. 조인성은 작년 류현진이 17탈삼진의 기록을 세우던 때 4연타석 삼진을 당하며 호구라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러나 조인성이 처음부터 류현진에게 약한 타자는 아니었다. 2006년에는 단 한 차례의 삼진도 당하지 않고 .308의 상대 타율을 기록하는 등 오히려 류현진에게 강했지만, 류현진과 자주 승부하면서 자연스럽게 삼진의 숫자가 늘어나고 타율이 떨어지면서 류현진의 기록 달성에 큰 도움을 주었다. 다음으로 18개의 삼진을 당한 LG의 박경수, 17개를 당한 이대형(LG), 이대호, 강민호(이상 롯데), 16개를 당한 강봉규(삼성), 15개를 당한 박재홍(SK), 김상현(KIA) 등이 뒤를 따르고 있다. 지금은 경찰청에서 군복무 중인 LG의 박용근은 26타석에 들어서서 12번 삼진을 당하면서 무려 46.15%의 삼진율을 기록하는 등 류현진의 탈삼진 리스트에서 LG 타자들의 이름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류현진의 연속 경기 퀄리티스타트를 23경기에서 마감시켰던 기록브레이커 넥센의 강귀태는 류현진에게 .320의 높은 상대 타율과 27번 승부를 하여 단 두 번밖에 삼진을 당하지 않는 강한 면모를 보였다. 지금은 같은 팀에서 뛰고 있는 강동우와 이대수는 이전에 각각 14타석과 22타석씩 류현진을 상대하면서 한 차례씩밖에 삼진을 당하지 않았는데 이들이 한화로 오면서 류현진의 탈삼진 행진에 더 도움을 주었을 수도 있다.

류현진이 현재 단 4명만이 달성한 1500탈삼진을 넘어 송진우의 2048탈삼진을 넘어설 수 있을 지는 장담할 수 없다. 예기치 않은 부상이나 부진이 찾아올 수 있고, 꾸준하게 기량을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류현진은 연평균 180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면서 큰 기복 없는 활약을 해왔고,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유리하지 않아도 꿋꿋이 이겨내고 싸워왔다. 어쩌면 류현진이 기록을 세우는 과정에서 가장 큰 고비는 해외진출 여부에 달렸다고 해야 할 것이다. 올해 6년차인 류현진은 소속팀 한화가 해외 진출을 허락한다면 다음 시즌 후부터 늦더라도 FA 자격을 획득하는 2014년 시즌 후에는 해외 진출이 유력해보인다. 선수의 입장에서는 연봉과 같은 금전적 처우를 무시할 수 없거니와 새로운 무대에 도전하면서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싶은 것이 당연한 일이다. 안타깝게도 일본이나 미국으로 가는 순간 류현진이 한국프로야구에서 세우던 탈삼진 기록은 잠시 멈추어 있을 수밖에 없기에 류현진이 큰 무대에서 뛰는 모습을 보고 싶으면서도 아쉬움이 남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더 규모가 큰 일본과 미국으로 선수가 유출되는 것을 막을 수도 없고, 탈삼진만이 아닌 모든 누적 기록에 있어서 새로운 기록을 기대하는 것은 힘든 일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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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 김광삼에게 봄은 오는가  (0) 2011.04.23

윔블던 3라운드가 끝나고 16강이 가려졌다. 4라운드까지는 무난히 진출하리라 예상되었던 선수들이 종종 탈락하면서 이변이 일어나고 있지만,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혔던 선수들은 여전히 안정된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어 갈수록 흥미진진한 승부가 이어질 것 같다. 여자부의 마리아 샤라포바(러시아)와 카롤리네 보스니아키(덴마크, a.k.a. 캐롤라인 워즈니아키) 등은 예정된 경기가 우천과 일몰로 취소되면서 하루 밀린 스케쥴을 소화하게 되었고, 남자부 경기에서도 여러 경기가 중단되면서 다음 날로 밀려서 선수들이 컨디션 조절이라는 다른 과제를 안게 되었다.

 

대회 5일째 (24일)

비가 와서 많은 경기들이 다음 날로 밀리며 많은 선수들이 고생을 해야했다. 톱시드를 받은 세계랭킹 1위 라파엘 나달도 비 앞에서는 경기를 할 수 없었다.

재빠르게 공을 향해 달리는 앤디 머레이 ⓒ AELTC / M. Hangst

앤디 머레이(영국)는 유일하게 지붕이 있는 경기장인 센터 코트에서 경기를 한 덕분에 예정대로 경기를 치를 수 있었다. 크로아티아의 이반 류비치치를 맞은 머레이는 1세트를 먼저 따냈지만 2세트에서 갑자기 흔들리며 세트 스코어 1:1을 허용하고 말았다. 경기가 풀리지 않을 때 순간적으로 페이스를 잃어버리는 고질적인 문제가 머레이의 발목을 잡으며 이미 탈락한 앤디 로딕(미국)에 이어 앤디들이 모두 탈락하는 듯했다. 그러나 3세트에서는 다시 자기 페이스를 찾으며 6-1로 쉽게 이기고, 4세트에서 타이 브레이크 끝에 7-6으로 마무리하면서 4라운드에 진출하였다. 류비치치는 최고 시속 224km(139mph)의 강서브를 앞세워 밀어붙였지만 스트로크의 정교함에서 머레이에 밀리며 경기를 내주었다.

 

세상에 아니 로페스에게 영원한 천적이란 없다 ⓒ AELTC / M. Hangst

이 날의 가장 큰 이변은 다른 앤디, 로딕의 탈락이었다. 로딕의 상대였던 스페인의 펠리시아노 로페스는 로딕과 일곱 번 맞붙어 단 한 번도 이긴 적이 없었기에 로딕의 낙승이 예상되었다. 로딕은 특기인 최고 시속 230km(143mph)의 광속 서브를 넣으며 로페스를 압박했지만 정확도가 떨어졌고, 로페스가 로딕의 코스를 잘 파악하고 대처하면서 힘든 경기를 하였다. 스트로크가 길게 이어질수록 단점이 많이 드러나는 로딕으로서는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1세트와 2세트에서 타이브레이크에서 패하고, 3세트에서 결정적인 브레이크를 당하며 로딕은 0:3의 완패를 당하고 말았다. 남자부의 톱 10 선수 중에서 첫 번째 탈락이었다.

굿바이 롸딕! ⓒ AELTC / M. Hangst

머레이에 밀려 센터 코트 대신 No.1 코트에서 경기를 하던 나달은 1세트를 7-6으로 따낸 후 경기가 비로 연기되었고, 후안 마르틴 델 포트로(아르헨티나), 가엘 몽피스(프랑스) 등도 역시 도중에 경기가 중단되었다.

샤라포바와 롭슨의 등장 ⓒ AELTC / N. Tingle

여자부에서는 전날 경기가 연기되어 치르지 못한 샤라포바와 보스니아키 등이 다른 선수들의 3라운드 경기에 앞서 2라운드 경기를 하였다. 샤라포바는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안은 17세 소녀 로라 롭슨에게 고전하며 1세트에서 1-4로 밀리며 첫 세트를 내주는 듯이 보였지만 익숙하지 않은 상대 파악이 완료되자 무섭게 점수를 따내며 타이브레이크까지 끌고 갔고, 타이브레이크에서도 2-4로 뒤지다가 다섯 점을 연속으로 내면서 승리했다. 1세트의 역전패의 충격이 컸을까 롭슨은 2세트에서는 큰 저항을 하지 못하며 경기는 샤라포바의 2:0(7-6 6-3) 승리로 끝났다.. 샤라포바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롭슨이 대단한 잠재력을 가졌다고 극찬하였다고. 보스니아키는 프랑스의 버지니 라자노를 1시간 6분만에 2:0(6-1 6-3)으로 제압하고 3라운드에 진출했다.

왜 아자렌카는 모두 인상을 쓴 사진만 있을까 ⓒ AELTC / M. Hangst

3라운드 경기에서는 빅토리아 아자렌카(벨라루스)가 다니엘라 한투코바(슬로바키아)와 풀세트 접전 끝에 2:1(6-3 3-6 6-2)로 이겼다. 한투코바는 2세트에서 무서운 집중력으로 아자렌카의 서브게임을 브레이크하며 3세트까지 경기를 끌고 갔지만 3세트 초반부터 발걸음이 무뎌지면서 패하고 말았다. 한투코바는 단식과 복식을 병행하고 있는데 적지 않은 나이에 많은 경기 때문인지 경기 후반으로 갈수록 조금씩 체력의 한계가 드러나는 듯하다. 샤라포바 못지 않게 경기 중에 괴성을 지르는 아자렌카는 음역대가 높아 경기를 볼 때 자연스럽게 음소거를 하게 된다.

2인자를 이긴 피론코바는 쩜오인가 ⓒ AELTC / T. Hindley

2번 시드, 세계랭킹 2위, 작년 준우승자 삼박자를 갖춘 2인자 베라 즈보나레바(러시아)는 불가리아의 스베타나 피론코바에게 덜미를 잡히며 탈락했다. 피론코바는 작년 준결승에서 즈보나레바에서 패하여 아쉽게 결승 진출에 실패했는데 그 빚을 제대로 갚았다. 어떻게 3라운드까지 올라오기는 했지만 뭔가 좋아보이지는 않았던 즈보나레바는 피론코바에 그냥 일방적으로 밀리며 졌다. 비너스 윌리엄스(미국)는 순식간에 마리아 호세 마르티네스 산체스를 이겼고, 프랑스의 마리온 바르톨리, 벨기에의 야니나 위크마이어, 체코의 페트라 크리토바 등도 승리를 거두며 4라운드에 진출했다.

 

대회 6일째 (25일)

포어핸드 스트로크 발사 준비 완료 ⓒ AELTC / M. Hangst

이 날의 일정은 밀린 경기의 재개부터 시작되었다. 나달은 룩셈부르크의 질레스 뮐러를 3:0(7-6 7-6 6-0)으로 물리치며 한 세트도 내주지 않고 승승장구하고 있다. 왼손잡이 선수끼리의 대결이어서 흥미있는 경기였는데 뮐러가 한 세트라도 타이브레이크에서 따냈더라면 나달을 조금 더 괴롭힐 수 있었겠지만, 아쉽게 두 세트를 내준 후 3세트에서는 전의를 상실하며 그냥 무너지고 말았다.

페더러의 원핸드 백핸드 스트로크는 정말.. ⓒ AELTC / J. Buckle

로저 페더러(스위스)는 아르헨티나의 다비드 날반디안을 3:0(6-4 6-2 6-4)으로 물리치며 1시간 46분만에 경기를 끝냈다. 그동안 애먹던 서브 성공률도 71%로 많이 올라왔고 최고 시속 209km(130mph)까지 나온 서브 속도 역시 지난 경기에 비해서 좋았다. 서브의 위력이 살아나자 경기를 유리하게 이끌어가면서 브레이크를 한 번만 허용하였고, 일곱 번의 브레이크 포인트에서 다섯 번 브레이크를 성공시키며 쉽게 경기를 이겼다.

공공의 적이 되어버린 조코비치 ⓒ AELTC / M. Hangst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는 사이프러스의 마르코스 바그다티스와의 접전을 3:1(6-4 4-6 6-3 6-4)로 승리하였다. 스코어처럼 조코비치가 우세한 경기를 했지만 바그다티스 또한 물러서지 않고 끈질기게 조코비치를 괴롭혔다. 각 세트마다 단 한 번씩만 브레이크가 있었는데, 세 번의 브레이크를 한 조코비치가 바그다티스를 눌렀다. 조코비치는 종종 날카로운 백핸드 스트로크를 보여주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실수가 많아서 경기를 어렵게 했다. 그러나 4세트에서 고비에서 서브 에이스를 기록하며 바그다티스를 압박하여 승리했다. 경기장 내에는 사이프러스 출신의 바그다티스의 팬도 많았고, 심지어 페더러를 응원하던 팬들까지도 잠재적 위협인 조코비치보다는 바그다티스를 응원하면서 조코비치는 공공의 적이 되는 듯싶었으나 관중들의 일방적인 응원도 잠재울만큼 조코비치의 기량이 한 수 위였다. 조코비치는 2세트 중반 랠리에서 샷을 미스한 후 라켓을 바닥에 세 번 치면서 부러뜨리는 모습을 연출하는 등 심한 감정 기복을 다시 보여주었다.

3년 전 바그다티스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그를 아저씨라 불렀다 ⓒ AELTC / T. Hindley

호주의 테니스 아이돌 버나드 토믹 ⓒ AELTC / T. Hindley

3라운드에서 호주의 레이튼 휴잇을 이겼던 5번 시드 로빈 소더링(스웨덴)은 호주의 버나드 토믹에게 0:3(1-6 4-6 5-7)로 힘없이 무너지며 탈락했다. 소더링은 휴잇과의 경기에서도 그다지 좋은 모습은 아니었는데 이 경기에서도 실망스러운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로딕에 이은 두 번째 톱10 선수의 탈락이 되었다. 휴잇으로 대표되던 호주 남자 테니스의 에이스 자리에 토믹이 세대교체를 선언하는 계기가 될지 관심이 간다. 휴잇의 패배로 상심했을 오지팬들이 다시 토믹의 이름을 외치며 경기장을 시끄럽게 할 것 같다. 그 외에 후안 마르틴 델 포트로(아르헨티나)와 다비드 페레르(스페인) 등이 역시 4라운드에 진출하며 16인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현지 캐스터는 캐롤라인 보스니아키라고 그녀를 부른다. 쳇! ⓒ AELTC / J. Buckle

하루 만에 경기를 다시 치르게 된 보스니아키는 호주의 자밀라 가조소바를 2:0(6-3 6-2)로 가볍게 이기고 4라운드에 진출했다. 이틀 연속 1시간 6분 만에 경기를 끝낼 정도로 좋은 몸 상태와 안정된 기량을 보여주고 있어서 생애 첫 메이저 대회 우승 가능성을 밝히고 있다. 가조소바는 예전에 자밀라 그로스라는 이름으로 뛰던 선수인데, 이혼을 하고 다시 결혼 전의 성으로 경기에 나서고 있다. 태생은 슬로바키아지만 호주 이중국적을 가지고 있어 호주 국적으로 경기에 출전하고 있다.

그녀는 마치 성난 암사자와 같았다 ⓒ AELTC / S. Wake

샤라포바와 서리나 윌리엄스(미국)도 한 수 위의 기량으로 모두 2:0 승리를 거두며 가볍게 4라운드에 진출했다. 샤라포바는 여전히 서브의 정확도에 문제를 드러내고 있지만 경기력이 안정 궤도에 올라 있는 상황이고, 서리나는 초반 두 경기에서는 코트가 낯선 듯 경기 중반부터 발동이 걸리는 모습이었지만 경기 감각을 차츰 회복해가는 것이 눈에 보인다. 이 두 선수는 경기를 치를수록 더 강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2라운드 최고의 이변을 일으켰던 자비너 리지키(독일)도 일본의 미사키 도이를 꺾고 4라운드에 합류했고, 아나 이바노비치는 체코의 페트라 세트코브스카에 가볍게 패하며 다시 짐을 싸게 되었다.

6일 동안의 일정을 마친 윔블던은 오늘 하루를 쉬고 내일 7일째 일정을 재개한다. 7일째에는 단식 4라운드 경기가 모두 열려 절반이 탈락하고 8강이 가려지게 된다. 과연 누가 남고 누가 집으로 돌아갈 것인가.

마지막 사진은 신데렐라가 될 뻔했던 롭순이로.. ⓒ AELTC / N. Tingle

테니스 경기를 대개 영어로 중계되는 방송을 통해 보면서 영어식으로 읽는 것에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출신 국가 고유의 발음이 있을 터이니 그렇게 부르고 읽어도 되는지 조금은 신경이 쓰였다. 여러 언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이 아닌지라 선수의 경기 장면을 짧게라도 보거나 가이드나 대회의 프로그램을 통해서 알게 된 선수 이름의 철자는 알아도 어떻게 읽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더군다나 서양에는 이민자 출신의 선수들도 많은데 이들의 이름은 모국의 방식으로 읽어야 하는지 새로 이민을 간 나라의 방식으로 읽어야 하는지 혼란스러울 따름이다. 자신의 이름에 대한 전통을 지키기 위해 그대로 이름 읽는 법을 고수하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새로 정착한 나라에 녹아들면서 사람들이 부르는대로 흘러가는 것을 좋아하는 선수가 있어서 어느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어야 할 지 모르겠다. 같은 나라에서 같은 스펠의 이름을 쓰면서도 사람마다 다르게 부르기도 혹은 다르게 부르라기도 하는 판이니 직접 선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을 들어보지 않으면 어느 것이 맞는지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라는 것.

 

호주에 있을 때 옐레나 도키치(Jelena Dokic)의 경기를 종종 보았는데, 실제 그녀의 경기를 로드 레이버에서 보기도 있었다. 도키치가 무서운 아이로 세계 테니스계에 등장해 마르티나 힝기스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던 당시에는 유고슬라비아 국적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후 호주로 이민을 와서 호주 국적으로 경기에 참가하고 있었다. 어쨌든 유고 출신 선수로 뛰던 시절에는 이 소녀의 이름을 영어식으로 도킥이라 불러야 할 지 아니면 태생지인 유고 지역에서 불리는대로 도키치라고 불러야 할 지 모든 언론들이 고민을 하였던 적이 있다. 도키치 자신은 "도킥이라 부르든 도키치라 부르든 네 멋대로 하세요" 라고 했는데 우리나라 언론에서도 도킥이라고 기재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있다. 그런데 2009년 호주오픈에서 부활하며 '호주의 희망' 으로 떠올랐던 도키치는 도키치라고 불러달라고 했던 것 같다. 반대로 크로아티아 출신의 호주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버나드 토믹(Bernard tomic)은 호주에서 성장해서인지 "토믹" 이라는 영어식 발음을 선호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선수의 이름을 사정을 모르는 제삼자가 부르기는 쉽지가 않다.

외래어 표기법이 있다고는 하지만 사실 잘 모르겠고, 개인적으로 이름과 지명은 최대한 소리나는 것과 가깝게 쓰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여기서는 이 방식을 최대한 고수해볼까 하는데 외국 선수의 이름을 한글로 옮기다보면 발음 나는대로 옮기기가 쉽지만은 않다. 영국의 앤디 머레이의 경우 머레이가 아닌 머리가 더 비슷한 발음인데 그냥 앤디 머리라고 쓰면 병신 취급을 받게 될 지도 모른다. 미국의 앤디 로딕만 하더라도 앤디 롸딕이라고 버터를 잔뜩 발라서 표기하면 재수없는 녀석이 되고 말 것이다. 이미 벨기에 국적을 가지고 있지만 프랑스계인 사람인 쥐스틴 에넹 역시 에넹이 아닌 에나와 가깝게 발음을 하는 것은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에넹이 사람들이 자신을 영어식으로 불러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점이다. 호주오픈에서 에넹이 승리를 거두자 인터뷰를 하는데(아마 짐 쿠리어였던 것 같지만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다) "저스틴~" 하고 아주 영어식으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고 에넹 역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연스럽게 인터뷰에 응했다. 어쩌면 도키치가 했던 말처럼 "네 멋대로 부르세요. 대신 나를 기억하세요"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폴란드계 덴마크인 캐롤라인 워즈니아키(Caroline Wozniacki) 역시 덴마크인은 '카롤리네 보스니아키' 라고 발음을 하고 어떻게 보면 핏줄이 닿은 폴란드식으로 불러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데 국제 무대에서 통용되는 발음은 영어식인 캐롤라인 워즈니아키다. WTA의 발음 가이드에도 보스니아키가 아닌 워즈니아키(woz-nee-AK-ee)라고 하는 것을 보면 이 경우도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테니스에서 영어가 대세이기에 굳이 자신의 이름을 원어로 불러달라기보다는 대세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냐고 혼자서 지레짐작을 해본다. 우리나라의 언론에서도 한때 보즈니아키라고 하다가 워즈니아키로 쓰는 것도 이런 지침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관련링크 : http://ko.forvo.com/word/caroline_wozniacki/ (덴마크인의 워즈니아키 이름 발음)

스위스 국적의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의 경우도 난감한 케이스다. 스위스는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와 스위스 고유어인 래토-로만어까지 네 가지의 언어가 공식 언어인데 같은 이름을 놓고도 발음하는 법이 서로 다르단다. 그러나 페더러의 이름 로저는 남아공 출신의 어머니가 지어준 영어 이름이라고. 알면 알수록 복잡하다. 아~

관련링크 : http://ko.forvo.com/word/roger_federer/ (로저 페더러 이름의 독일식, 프랑스식 발음 비교)

재미있는 것은 역시 폴란드 출신으로 캐나다로 이민을 간 Aleksandra Wozniak 이라는 선수가 있는데, WTA 가이드에는 이 선수를 영어식이 아닌 폴란드식으로 보즈니악(VOZ-nee-ak)이라고 부르라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미국에서는 영어식으로 워즈니악이라고 부른다는 것.

 


Predicto TV – Andy Roddick, Aleksandra Wozniak by Predicto_Mobile

 

ATP와 WTA에서 선수 이름 발음에 대한 가이드(Pronunciation Guide)를 발간한 적이 있다고 하는데 WTA의 가이드는 2011년 미디어 가이드에도 수록되어 있어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지만, ATP의 가이드는 떠돌았다는 말은 있는데 막상 구글링을 해봤는데 찾을 수가 없다. 그런데 이 가이드에 대한 평판도 좋지는 않으니 전부 믿을 것은 못 되는가보다.

 

위의 동영상은 각 나라 사람들이 자국 선수들의 이름을 읽어주는 것인데, 여기에도 발음이 틀렸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해당 언어를 모르니 어느 것이 잘못되었는지 쉽게 구할 수 있는 자료로는 가장 현실적인 것이 아닌가 싶다.

테니스 선수는 아니지만 성룡(成龍)의 경우를 보면 중국어 발음대로 하면 '청룽' 이라고 한다. 그런데 성룡이 우리나라에 오면 '안녕하세요. 성룡입니다.' 라면서 자신의 이름을 한국식으로 말을 한다. 자신의 나라에서 불리는 발음을 고집하지 않고 그 나라의 문화와 습성에 맞게 알아서 배려하는 모습이다. 성룡이라 부르든 청룽이라 부르든 크게 개의치 않듯이 테니스 선수들도 자신의 이름에 대해서 어떻게 부르든 개의치 않는다면 그냥 부르고 그렇게 읽어도 큰 지장이 없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앞으로는 어지간하면 그나마 확실한 물증이 있는 WTA의 가이드에 따라서 선수의 이름을 표기하려고 한다. 언젠가는 에넹 대신 에나라고 쓰게 될지도 모른다. ㅋ

첫 날의 우천으로 연기된 경기가 둘째 날 열리면서 둘째 날 경기가 또 하루 밀리는 일이 벌어져 2라운드와 함께 1라운드 경기가 열리기도 했다. 윔블던 2라운드에서도 큰 이변 없이 우승후보들이 순항하고 있는 가운데 남자부에서는 톱 랭커들이 무난하게 3라운드까지 진출한 반면, 여자부에서는 세계랭킹 4위로 아시아인으로서 첫 그랜드 슬램 우승을 차지했던 리나(중국)가 와일드카드로 대회에 참가한 독일의 자비너 리지키에게 덜미를 잡히는 이변이 발생했다.

무너진 리나 ⓒ AELTC / N. Tingle

 

대회 3일째 (22일)

나달의 강력한 포어핸드 스트로크 ⓒ AELTC / M. Hangst

라파엘 나달(스페인), 토마스 베르디흐(체코), 영국과 미국의 두 앤디 등 톱 랭커들이 무난하게 이기며 나란히 3회전에 진출했다. 나달은 1회전에 이어 미국 출신의 라이언 스위팅과 맞붙었는데 38개의 위너를 기록하면서 실수를 7개밖에 저지르지 않는 깔끔한 경기를 보여주며 가볍게 승리했다. 시도가 많았던 네트 어프로치의 성공률도 81%로 좋았고, 첫 번째 서브의 성공률은 70%, 평균 속도는 시속 184km(114mph)였고 첫 서브에서 득점은 78%였다. 나달의 3라운드 상대는 룩셈부르크의 질레스 뮐러.

 

베르디흐는 목이 마르다 ⓒ AELTC / N. Tingle

베르디흐는 첫 번째 서브 성공률이 58%에 그칠 정도로 부정확했지만 첫 서브를 성공시킨 후 득점률이 89%였다. 낮은 첫 서브 성공률에도 불구하고 더블 폴트는 단 한 차례밖에 저지르지 않는 놀라운 두 번째 서브의 정확도를 보여주었다. 리시빙 포인트가 무려 51%에 달하는 등 상대의 서브게임을 쉽게 브레이크하며 3:0(6-1 6-4 6-2)로 쉽게 이겼다. 서브 최고 속도는 시속 216km(134mph).

로딕이 백핸드샷의 정확도만 높인다면.. ⓒ AELTC / J. Buckle

나달에 이어 센터 코트에서 메인 이벤트를 장식한 앤디 로딕은 상대인 빅토르 하네스쿠(루마니아)의 최고 빠른 서브의 속도보다 더 빠른 평균 서브 속도인 시속 204km(127mph)의 광속 서브를 앞세워 승리했다. 에이스는 15개에 불과했지만 첫 번째 서브 후 93%, 두 번째 서브 후 74%를 득점으로 연결시키며 확실하게 서브게임을 지킨 것이 승리의 원동력이 되었다.

승리 후 코트에 드러누워 환호하는 머레이 ⓒ AELTC / N. Tingle

홈팬들의 성원을 업은 앤디 머레이(영국)는 독일의 토비아스 캄케를 3:0(6-3 6-3 7-5)으로 누르고 3라운드에 진출했다. 머레이는 첫 번째 서브의 성공률이 54%에 그치면서 다소 어려운 게임을 했으나 고비에서 집중력을 발휘해 상대의 서브게임을 브레이크를 하면서 승리를 거두었다. 강한 상대를 만나서도 계속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느냐가 머레이에게 주어진 가장 큰 과제인 듯하다.

베라 즈보나레바 ⓒ Getty Image / C. Mason

여자부에서는 베라 즈보나레바(러시아)가 같은 나라의 엘레나 베스니나를 2:0(6-1 7-5)으로 가볍게 누르고 3라운드에 진출했다. 세계랭킹 2위이자 작년 준우승자임에도 큰 주목을 받지 못하는 불쌍한 즈보나레바는 조용히 승리를 챙기며 조금씩 우승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비너스 윌리엄스(미국)는 노장 키미코 다테-크룸(일본)과 풀세트 접전을 벌여 마지막 세트를 힘겹게 따내며 2:1(6-7 6-3 8-6)으로 승리했고, 4번 시드의 빅토리아 아자렌카(벨라루스)는 51분만에 2:0(6-0 6-3)승리를 거두며 3라운드에 합류했다.

베라 즈보나레바. 이런 것은 굴욕 사진인가 ⓒ Getty Image / C. Mason

 

대회 넷째 날 (23일)

페더러의 여유로운 스트로크 ⓒ AELTC / N. Tingle

로저 페더러(스위스)는 한 수 위의 기량으로 상대를 압도하며 프랑스의 아드리안 만나리노를 3:0(6-2 6-3 6-2)로 88분만에 가볍게 제압했다. 현지에서는 이 날 센터 코트에서 열린 두 경기가 길었는데, 페더러가 저녁 시간을 위해 빠르게 경기를 끝냈다고 표현하기도. 특별히 경기의 승부처라고 볼 수 있는 장면이 없이 무난하게 경기를 앞서가며 쉽게 경기를 따냈다. 첫 번째 서브는 페더러의 다음 상대는 28번 시드를 받은 아르헨티나의 다비드 날반디안이다.

조코비치 승자의 여유 ⓒ AELTC / N. Tingle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는 남아공의 케빈 앤더슨을 3:0(6-3 6-4 6-2)으로 가볍게 이기며 3라운드에 진출했다. 조코비치는 74%의 첫 번째 서브 성공률과 75%의 첫 서브 후 득점 성공률을 보이며 안정적으로 경기를 했다. 첫 세트에서 연속 다섯 게임을 따내며 앞서던 조코비치는 브레이크를 당하며 연달아 게임을 내주었지만 잘 마무리했고, 앤더슨이 정신차리고 맞선 두 번째 세트에서도 3-3으로 맞선 일곱 번째 게임을 브레이크하며 세트를 가져오면서 쉽게 경기를 마무리했다. 첫 번째 서브의 속도가 최고 시속 200km(124mph), 평균 시속 183km(114mph)를 기록하는 등 평소보다 시속 10km 정도 느린 속도가 나왔는데 어느 정도 체력을 비축하려고 힘을 쓰지 않는 것인지도. 조코비치의 다음 상대는 사이프러스의 마르코스 바그다티스다.

지옥 끝에서 살아난 소더링 ⓒ AELTC / T. Hindley

로빈 소더링(스웨덴)은 왕년의 세계랭킹 1위인 호주의 레이튼 휴이트에게 먼저 두 세트를 내주며 궁지에 몰렸다가 연속으로 나머지 세트를 모조리 따내며 힘겹게 3라운드에 합류했다. 휴이트는 마지막 세트에서 4:5로 뒤지던 자신의 서브게임에서 자멸한 것이 두고두고 뼈아플 것 같다. 소더링은 러시아의 이고르 안드리에프와 호주의 버나드 토믹의 승자와 3라운드에서 대결하게 된다.

3시간 54분의 대혈투 끝에 패한 휴이트. 불쌍해서 사진 한 컷. ⓒ AELTC / T. Hindley

서리나의 힘은 살아있다 ⓒ AELTC / J. Buckle

작년 우승자 서리나 윌리엄스(미국)는 루마니아의 시모나 할렙에게 첫 세트를 먼저 내주며 고전하다가 뒤늦게 발동이 걸리며 2:1(3-6 6-2 6-1)로 승리하며 3라운드에 진출했다. 서리나는 첫 번째 서브 성공률이 52%에 그치는 등 고전했으나 어지간해서는 당해낼 수 없는 파워를 앞세워 역전승을 일구어냈다. 1년만에 코트로 돌아온 탓인지 경기력이 들쑥날쑥한 면이 있는데 계속 경기를 하면서 나아질 듯하다.

리지키의 환호 ⓒ AELTC / N. Tingle

그랜드 슬램 연속 우승을 노리던 리나는 독일의 자비너 리지키에게 발목을 잡히는 이변이 일어났다. 리나는 먼저 1세트를 따냈으나 연거푸 두 세트를 내주며 1:2(6-3 4-6 6-8)로 역전패를 당했다. 3세트 세트스코어 2-2에서 리지키의 서브게임을 브레이크를 하며 경기를 앞서 나갔지만 5-3으로 앞선 상황에서 두 게임을 내주며 5-5 동점을 허용했고, 서로 브레이크를 하며 팽팽히 맞선 6-6 상황에서 체력적인 열세를 보이며 무너졌다. 리지키는 패배 직전에서 최고 시속 200km(124mph)의 강서브를 앞세워 경기를 뒤집으며 3라운드에 진출했다. 리나는 4-17로 크게 밀린 서브의 위력 앞에 자신의 주무기인 구석을 찌르는 정교한 스트로크를 보여주지 못했다.

마리아 샤라포바(러시아)와 캐롤라인 워즈니아키(덴마크)의 2라운드 경기는 앞 경기가 비로 지연됨에 따라 다음 날로 연기되었다.

조용히 3라운드에 진출한 아나 이바노비치(세르비아) ⓒ AELTC / J. Buckle

 

*주 : Sabine Lisicki 의 이름을 "WTA Media Guide" 의 선수 이름 발음 기호에 따라 사빈 리시츠키에서 자비너 리지키로 수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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