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끝난 제82회 전일본선수권대회는 스즈키 아키코가 역전 우승을 차지하며 막을 내렸다. 쇼트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했던 아사다 마오는 점프에서 넘어지며 3위로 내려앉고 말았다. 이와 함께 일본스케이트연맹은 소치 올림픽에 출전할 여자싱글 대표선수 3인을 선정했는데, 예상대로 아사다 마오, 스즈키 아키코, 그리고 무라카미 가나코였다. 현재의 모습만 보아서는 스즈키와 무라카미에 기대를 거는 것이 좋을텐데, 그래도 일본은 아사다를 에이스라고 밀겠지 싶다.

 

 

프리스케이팅 영상~

 

 

 

 

스즈키 아키코

 

 

무라카미 가나코

 

 

아사다 마오

 

 

미야하라 사토코

 

 

안도 미키

 

확실히 긴 공백기는 어찌할 수 없는가 보다. 점프에서도 실수가 잦았고, 스핀은 여전히..

 

 

 

 

 

그리고 이것은 일본 대표팀 선발 결과 발표.

남자 선수들은 관심없으니 설명은 생략.

 

 

 

 

 

비록 목표했던 바는 이루지 못햇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고 떠났다.

 

안녕~ 미키

 

건강하게 잘 살아.

 

아이에게 아버지는 꼭 찾아주고.

 

 

 

 

프리스케이팅이 열리기 전부터 화제가 되었던 것은 안도 미키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

본인도 이번 도전이 어렵다는 것을 감지한 모양이다.

쇼트프로그램은 상당히 잘했는데 경쟁자들이 만만치 않고

체력적, 기술적으로 아직 전성기와는 거리가 있음을 느꼈을테니..

 



 

(어설프게나마 번역을 해보면)

 

어제는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이하, 안도의 페이스북에서 인용합니다.

 

오늘이 딱 나의 선수로서의 마지막 스케이팅. 

날아갈 수 있도록...

마음을 담아 탈 수 있도록...

다녀오겠습니다!!! 

이렇게 선수로 돌아오는 선택을 이끌어 준 여러분의 응원에 감사!!

 

 


 



미키가 트위터에 사진과 글을 남겨두었다.

트위터에 들어가면 아침에 찍은 듯한 풍경사진과 함께 그녀의 글이 있다.



아직 공식채점표는 나오지 않았고 여기서 끝!




22일 열린 제82회 전일본선수권대회 여자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연기 중인 안도 미키.

예상대로 아사다 마오가 1위를 차지하고, 2위는 스즈키 아키코, 3위는 무라카미 가나코, 4위는 미야하라 사토코, 그리고 안도 미키가 5위. 미야하라의 경기는 보지 못해서 모르겠지만 개인적인 느낌이나 한국이나 일본 인터넷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참고해보면 안도 미키가 경기 내용에 비해서 점수를 짜게 받은 듯싶다. 이미 두 번의 실패와 그동안 일본스케이트연맹과 쌓인 앙금이 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참가 선수들이 이번 대회 직전에 참가했던 대회와 비교했을 때 흔히 예술 점수라고 부르는 프로그램 구성 점수가 상향되었는데, 유일하게 뒤로 밀린 선수가 안도 미키. 아무래도 자국 대회라서 높게 점수를 주는 편이라 고득점이 많이 나오는 대회인데 오히려 뒤로 밀리는 선수가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 클린 연기를 하고 기뻐하던 자신도 나온 점수를 보고 눈치를 챘는지 순위에 신경쓰지 않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으니, 유종의 미를 거두었으면 하는 바람. 이렇게 김연아 시대에 함께했던 선수 하나가 떠나가는구나 싶어서 좀 아쉽다.

참고로 이 선수들이 참가했던 금년 그랑프리시리즈와 이번 전일본선수권의 쇼트프로그램에서 받은 PCS를 비교해보면,

아사다 마오  
그랑프리 미국     34.33
그랑프리 일본     34.97
전일본선수권      35.28 

스즈키 아키코
그랑프리 캐나다  32.57
그랑프리 일본     33.35
전일본선수권      34.76

무라카미 가나코 
그랑프리 중국     28.80
그랑프리 러시아  27.43 
전일본선수권      31.84 

미야하라 사토코
그랑프리 일본     26.31
그랑프리 러시아  25.53
전일본선수권      28.44

안도 미키
골든 스핀           32.16
전일본선수권      30.44  

모든 선수가 상향되었는데 미키만 하향조정되었다.
이미 올림픽 출전선수는 정해져 있다!



 

아사다 마오

 


스즈키 아키코

 

 

무라카미 가나코

 

 

안도 미키




1위부터 5위까지의 채점표.


<2006-2007 부활>

 

3월에는 몬나 코치에게 점프에 대한 지도를 받았다. 미키가 피겨에 갓 입문하였을 무렵에 몬나 코치는 더블 악셀과 트리플 점프 등 점프의 기초를 가르쳐주었는데, 차차 나이가 들면서 다른 코치들에게 지도를 받으면서도 점프에 흔들릴 때는 몬나 코치를 찾아서 문제점을 찾고 개선하려는 노력을 하였다.

 

비록 올림픽에서 참담한 연기를 보였다고 하나 미키의 인기가 바로 식은 것은 아니었다. 의류업체 까르띠에의 이벤트에 참여하는가 하면, 도쿄에서 아이스쇼를 갖기도 했고, 졸업 후 고향인 나고야에서는 1일 경찰서장 행사에서 "비행방지 캠페인"에 나서기도 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도요타자동차에 입사하였고, 쥬쿄대에도 사회인 학생으로 입학하면서 어엿한 성인의 삶을 시작한다. 비록 "국민적 기대를 저버린 원죄"가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일본 피겨의 에이스였으며 간판스타였기에, 일부 언론의 편파 보도 및 악의성 보도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인기를 과시했다.

 

 

 


1일 경찰서장 미키


 

 

까르띠에 행사에 참여한 미키

 

한편 쥬쿄대에서는 도요타캠퍼스(아이치현에 위치한 도요타시에 위치. 도요타시는 나고야에서 약 30km 정도 떨어진 도시로, 이름처럼 자동차회사 도요타에서 시의 이름이 유래한 곳)에 미키와 아사다를 위한 전용 링크를 만들기로 했다는 계획을 공식 발표한다. 

 

 

 

"안도 미키와 아사다 마오를 위한" 이런 경기장이 건설된다고 발표를 했음.


5월 14일에 사이타마 수퍼아레나에서 "저팬 오픈"이라는 친선 대회에서 아사다와 함께 출전하여 여자부 우승을 차지하는데, 미키는 104.56점으로 4위에 그쳤으나 125.72의 최고점을 받은 아사다의 활약이 빛났다. 그리고 일본스케이트연맹의 특별강화선수에 다시 지정되며, 6월 10일자 닛칸 스포츠의 기혼 남성 800명을 대상으로 한 "미혼이라면 결혼하고 싶은 스포츠 선수는?" 이란 주제의 설문조사에서 프리스타일 스키선수 우에무라 아이코에 이어 2위에 오르면서 인기가 아직 식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이어 여름에는 일본 각지에서 아이스쇼에 아사다 자매, 아라카와 등과 함께 참가하고, 한국에 와서 현대카드 수퍼매치 아이스쇼에 참여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보여준다.

 

 

2006 드림 온 아이스 페스티벌에 참가한 미키 

 

 

 

아사다 자매와 미일피겨대항전에 참가하기도 하는데 왼쪽이 아사다 마오의 언니 아사다 마이(浅田舞)

마이가 미키와 동년배가 아니었더라면 어떤 결과를 낳았을까.

 

가장 큰 변화는 2006-2007시즌부터 코치를 문제의 그 사람, 니콜라이 모로조프로 바꾼 것. 모로조프는 기술적인 면 외에 안무와 표현력에 관한 부분에서 지도력을 인정받고 있는데, 과거에는 미셸 콴, 타라 리핀스키 등의 안무에도 참여했던 경력이 있다, 모로조프는 선수로서는 크게 빛을 보지 못하고 부상으로 은퇴한 후, 후일 아사다의 코치로 등장하는 "러시아의 대모" 타티아나 타라소바의 보조코치로 지도자로서 첫걸음을 내딛는다. 그러나 어느 정도 자신의 명성이 알려지자 타라소바와 결별하고 나와서 이미 수구리 후미에, 다카하시 다이스케 등을 지도했고, 아라카와가 예상치 못한 인생경기로 예상 밖의 금메달을 따는 모습을 옆에서 보았기에 그를 선택한 것이라 보인다. 


새로운 시즌에서 미키는 첫 그랑프리대회인 스케이트 아메리카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기분좋게 시작한다. 반면 함께 출전한 아사다는 3위에 그친다.




2006 스케이트 아메리카 우승을 차지한 미키




2006 스케이트 아메리카 프리스케이팅 장면




3위 아사다가 오른쪽에 있다.

 


2006 스케이트 아메리카 쇼트프로그램


2006 스케이트 아메리카 프리스케이팅

이어서 출전한 그랑프리 에릭 봉파르에서는 쇼트, 프리, 종합에서 모두 2위였는데, 이 대회의 우승자는 4년 후 밴쿠버 올림픽에서 우승하는 김연아였다. (김연아와 관련된 내용은 여기저기에 아~주 많으니 여기서는 생략) 다음 달에는 러시아 생트페테르부크르에서 그랑프리 파이널이 열리는데, 아사다가 쇼트에서 1위, 미키는 2위에 오른다. 그러나 프리에서 이 둘은 무너지면서 4위, 6위를 기록했고, 종합에서 아사다는 2위로 내려앉고, 미키는 6위로 시상대에도 오르지 못하고 만다. 파이널 우승자는 쇼트에서 3위에 그쳤지만, 프리에서 대역전극을 펼친 김연아. 


에릭 봉파르 쇼트프로그램 장면



에릭 봉파르 프리스케이팅 장면


2006 그랑프리 파이널 쇼트프로그램

고향인 나고야에서 열린 전일본선수권은 아사다가 압도적인 점수차로 미키를 누르고 우승을 차지한다. 수준급의 선수들이 즐비한 전일본선수권은 세계선수권에 출전할 선수 선발전을 겸하고 있어 경쟁이 치열했는데, 쇼트에서 아사다가 71.14, 미키가 69.50으로 큰 차이는 없었지만, 프리에서 아사다가 거의 완벽한 연기를 펼친 반면, 미키는 점프에서 실수를 하면서 격차가 벌어지는데 아사다가 프리에서 받은 점수는 140.62로 총점 211.76이었고, 미키는 프리 116.15, 총점 185.65. 3위는 나카노가 차지하면서 이 세 선수가 3개월 후 도쿄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에 참가하게 된다. 이 대회에서 미키는 쇼트와 프리에서 모두 2위였음에도 우승을 차지하게 되는데, 쇼트 1위였던 김연아는 프리에서 부진으로 3위로 밀려났고, 쇼트 5위였던 아사다가 프리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으며 2위로 올라섰다.


<점프의 교정, 그리고 부상>

올림픽의 실패 다음 시즌을 비교적 잘 마쳤음에도 미키에게는 다른 고민이 있었다. 큰 문제가 없이 점프를 하고 연기를 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받아든 채점표에는 회전수 부족, 잘못된 엣지 사용 등 점프에서 여러 가지 잘못된 습관들로 인해 감점을 당하고 있음을 자각하게 된 것이다. 이에 미키는 시즌 중임에도 불구하고 플립 점프를 교정하기로 한다. 플립 점프는 전진하다가 반 바퀴를 돌아 회전 추진력을 얻어 뛰어오르는 점프인데, 이 때 왼쪽 발의 스케이트 인엣지와 오른쪽 발끝을 사용해서 도약을 해야하는데, 미키는 습관적으로 아웃엣지를 사용했다. 그러나 아웃엣지를 사용하는 것은 점프를 할 때 다리의 바깥쪽 근육에 힘이 들어가게 되는데, 반대로 안쪽 근육을 사용하여 인엣지로 점프를 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반 사람들도 평소에 쓰지 않던 근육을 사용하게 되면 근육통에 시달리고 심한 경우 큰 부상을 입게 되는데, 피겨를 시작하여 10년 정도 사용해온 점프 방식을 바꾸는 것은 무모함에 가까운 일이었다. 코치인 모로조프는 무모한 일이라고 이를 강하게 반대하였지만, 선수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고.

피겨스케이팅은 짧은 연기 시간 동안 모든 힘을 다 쏟아내는 경기인데, 빙판을 지쳐 가속을 하여 얻어낸 에너지를 바탕으로 수직으로 뛰어오름과 동시에 회전을 해야 하는 점프는 훈련을 받은 재능이 있는 선수들만이 할 수 있는 종목이다. 발목은 물론 무릎, 그리고 고관절 등에 엄청난 하중이 가해지는데 이와 같은 일이 반복됨에 따라 선수들은 고질적인 부상을 안고 경기에 임하게 된다. 휴식과 재활 등을 통해 상태를 호전시켜 가능한 최고의 상태를 유지하려는 것이지, 운동을 그만두지 않는 한 완벽한 몸상태를 만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에도 미키는 자신의 점프 기술에 문제가 있음을 알고, 더 좋은 연기를 위해 제대로 된 기술을 사용하려는 용기있는 결정을 내린다. (참고로 아사다는 여전히 야매 수준의 트리플 악셀을 고집하고 있음과 비교하면 참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덕분에 미키의 2007-2008시즌은 세계무대 등장 이후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게 된다. 에지를 교정 중인 트리플 플립의 성공률 뚝 떨어졌고, 그 과정에서 러츠마저 흔들려버리면서 자신의 3회전 연속 기술이던 트리플 러츠-트리플 루프 기술의 사용도 주저하게 되었다. 그랑프리시리즈 스케이트아메리카에서 2위를 기록했지만, NHK트로피 프리에서 점프 시도 후 세 번이나 착지에 실패하면서 다케다 나나(武田菜也)에게도 밀린 4위에 그쳐 그랑프리 파이널 진출에 실패한다. 프리에서 얻은 85.29라는 점수는 세계정상권의 선수의 점수와는 너무도 먼 저조한 기록이었다.

그럼에도 그랑프리시리즈 이상의 경쟁이 벌어지는 전일본선수권에서는 아사다에 총점 1.15점 뒤진 204.18로 2위에 오른다. 프리의 연기는 트리플 러츠-더블 루프-더블 루프 3연속 점프에서 감점을 당한 것 외에는 깔끔한 연기를 펼쳤으나, 쇼트에서의 점수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역전에는 실패한다. 이 대회에서 미키는 오른쪽 어깨의 



전일본선수권 2위에 오른 미키, 아사다, 나카노



안도 미키의 전일본선수권 프리스케이팅 (2007)

전일본선수권에 이어 다음해 2월 고양에서 열린 4대륙선수권에서도 아사다와 캐나다의 조애니 로세트에 이어 3위에 오르지만, 시즌을 마무리하는 세계선수권에서 우려했던 일이 벌어진다. 부상으로 경기 중에 연기를 멈추고 기권을 하고 만 것. 쇼트프로그램에서도 8위에 그치는 좋지 않은 모습이었는데, 프리스케이팅에서도 점프에서 점프를 실패하는 등 고전하다가 스스로 연기를 중단하고 기권 의사를 밝히며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링크를 빠져나왔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당시 미키는 왼쪽 종아리 근육 파열로 정상적인 연기는 물론, 스케이팅이 어려운 상태였다고 한다. 모로조프는 이대로 경기를 하다가 부상이 심해지면 수개월 간 스케이트를 탈 수 없다며 미키에게 불참을 권유했는데, 미키는 출전을 고집했다고 전해진다. 



2008 세계선수권에서 부상으로 연기를 멈추고 기권하는 미키

점프 교정으로 인한 연기의 불안정성과 부상 여파 등으로 2008-2009시즌에서도 미키는 단 한 번의 우승을 차지하지 못한 채 시즌을 마치게 된다. 반면 고관절 부상으로 인해 4대륙선수권에서 불참하고, 세계선수권에서도 3위에 그쳤던 김연아가 정상적인 모습으로 돌아오며 아사다와 라이벌 구도가 만들어짐에 따라 양국의 미디어와 일반 대중은 김연아-아사다의 대결에 초점을 맞추게 되고, 미키에 대한 관심은 조금씩 사라져가기 시작한다. 특히 이 시즌에 김연아는 아사다에게 밀려 2위에 그친 그랑프리 파이널을 제외한 출전한 모든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피겨에 대해서는 적어도 아시아에서는 최고" 라는 일본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게 되고, 그 강력한 대항마로 아사다에 강력한 푸시를 하게 된다. 이 시즌의 미키의 성적을 정리하면, 그랑프리시리즈 스케이트아메리카 3위, 그랑프리시리즈 컵 오브 차이나 2위,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는 최하위인 6위, 전일본대회와 세계선수권 3위, 2009 ISU 월드 팀 트로피 여자싱글 5위였다. 반면 아사다는 그랑프리시리즈에서 우승과 준우승, 그랑프리 파이널 우승, 전일본대회 우승, 월드 팀 트로피 여자싱글 우승 등 네 차례 우승과 한 차례 준우승, 그리고 4대륙선수권 3위, 세계선수권 4위로 단연 일본을 대표하는 선수로 자리매김한다.



2008 전일본선수권대회 



2009 세계선수권 프리스케이팅

부진했던 2년 동안 일본 언론을 비롯한 세간의 관심이 줄어들기도 했지만 악질성의 안티도 늘었다. 가십 전문 주간지 등에서는 훈련 중인 미키의 치부가 드러나는 사진이나 경기 중에 넘어지거나 점프를 하면서 잔뜩 찡그린 표정이 담긴 사진을 게재하면서 괴롭혔고, 안티팬들에 의한 놀림감이 되었다. 능숙하지 못한 언론 대응 역시 미키에게는 좋지 않은 반응을 가져오게 되는데, 토리노 올림픽 전후에 있었던 사건들로 기자 및 언론에 대하여 감정이 좋지도 않았거니와 계속되는 부진 속에서 그 이유를 캐묻는 사람들에게 조곤조곤 자신의 상황과 기분을 설명하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 일. 사소한 말 한 마디에도 걸고 넘어지면서 핑계를 댄다는 반응이 나왔는데, 2008년 전일본선수권 공식 연습에서 수구리와 부딪치는 사고가 발생하여 작은 부상을 입었는데, 아사다와 수구리에 이어 3위로 대회를 마친 후 인터뷰에서 "내가 부상을 당해서 다행이다" 라고 한 말을 성적에 대한 핑계 또는 상대를 탓하는 뉘앙스로 보도가 되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단다. 


그냥 내보내면 음란물로 걸릴 것 같아서 부득이하게 모자이크 처리를 했다. ㅋ



연습 중에 수구리와 충돌한 장면

때마침 미키와 코치 모로조프의 동거설이 터지면서 그녀에 대한 여론은 더 악화되었다. 마침 성적이 좋지 않았던 때라 올림픽이 1년도 남지 않았는데 훈련은 하지 않고 연애질만 하고 있냐는 반응이 대세였다. 그러나 코치와 같은 숙소를 사용하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남녀 사이에서 동거의 의미는 다른 것이므로 그런 관계였는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두 사람 사이가 일반적인 사제관계를 넘어서 연애를 한다는 것은 기정 사실로 받아들여졌기에..


선수와 코치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친근한 이 모습. ㅋ


<두 번째 올림픽>

올림픽이 열리는 2009-2010시즌, 두 시즌 동안 무관에 그친 미키는 올림픽 출전의 의지를 다지며 새로운 시즌을 맞이한다. 미키는 역사에만 남은 4회전 점프를 더이상 할 수 없었음에도 계속 미련을 떨치지 못하였는데, 모로조프는 클린 연기가 우선이라면서 4회전 점프 대신 다른 점프의 안정성을 높이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미키는 그랑프리시리즈 모스텔레콤컵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부활을 알렸는데, 같이 대회에 참가한 아사다가 5위에 그치는 부진을 보이며 일본 피겨에 위기감이 감돌게 되었다. 1주일 앞서 아사다는 그랑프리시리즈 트로피 에릭 봉파르에서 2위에 올랐지만 내용을 보면 김연아에게 40점 가까운 차이가 나는 참패를 당한 직후였기에 그 충격은 더했다. 미키는 11월에 열린 그랑프리시리즈 NHK트로피에서는 쇼트와 프리에서 각각 2위에 그쳤지만 종합에서는 최고점을 기록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아사다의 부진과 비교되는 미키의 연속 우승은 주목할 만했지만, 이 대회에서 올림픽 메달 후보로 꼽히는 선수들이 출전하지 않았고, 합계 160점대 초반의 점수로 간신히 이긴 덕분인지 조용히 넘어가게 된다. 



12월이 되고, 아사다가 탈락한 가운데(절대 불참이 아님) 도쿄에서 열린 그랑프리 파이널 쇼트프로그램에서 미키는 김연아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하는 이변을 일으킨다. 김연아의 프로그램 구성점수가 더 높았지만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에서 토루프의 회전 부족과 트리플 플립의 실수로 감점을 받으며 2위가 된 것. 반대로 미키는 토리노 올림픽 이후 열린 국제경기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좋은 성적을 내지만 프리스케이팅에서 김연아에게 역전당하면서 첫 그랑프리 파이널 우승을 놓치고 만다. 그러나 이러한 성적 덕분에 밴쿠버 올림픽 진출권을 사실상 획득하게 되면서 착실히 올림픽 준비를 할 수 있게 된다.


미키의 2009년 그랑프리 파이널 프리스케이팅

그랑프리파이널 3주 후 열린 전일본선수권에서는 아사다, 스즈키 아키코(鈴木明子), 그리고 수구리에 이어 4위에 오른다. 그렇지만 기존에 다른 국내, 국제대회의 성적 역시 대표 선발 평가 요소이기에 아사다, 스즈키와 함께 밴쿠버 올림픽 대표 선수로 선발되면서 두 번째 올림픽에 참가하게 된다.

밴쿠버 올림픽에서는 미키가 아닌 아사다가 에이스이자 인기 스타였기에 미키에 대한 관심과 기대는 크지 않았다. 아사다와 김연아의 대결로 대중의 관심이 쏠렸지만 일부에서는 혹시 모를 잭팟이 터져, 4년 전의 아라카와처럼 미키의 인생경기가 펼쳐질 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했다고도 한다. 미키는 좋은 경기를 하기는 했지만 메달권에 든 선수들 모두가 인생경기를 펼치는 바람에 빛이 퇴색하고 말았다. 냉정히 말해서 미키의 프로그램 구성과 그것을 연기하는 능력을 보았을 때, 다른 선수들의 부진 혹은 심판들의 호의적인 판정이 없이 우승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것이 사실. 




밴쿠버에서 아사다, 스즈키, 그리고 미키.



2010 밴쿠버올림픽 쇼트프로그램



모로조프 코치와 함께 점수를 기다리는 미키



프리스케이팅에서의 의상은 참 독특했다.



뭔가 이집트 같은 분위기도 나고 로마 시대 느낌도 나는 듯하고 그렇다.


 

미키의 2010년 밴쿠버올림픽 쇼트프로그램(프리스케이팅은 영상을 찾지 못해서 ㅠ.ㅠ)

 

미키는 쇼트와 프리에서 큰 실수 없이 경기를 마치기는 하지만, 모든 출전 선수들이 개인 최고 기록을 넘어 세계기록까지 세우는 깔끔한 연기를 펼치는 바람에 5위에 머무르고 만다. 일본은 에이스인 아사다가 쇼트에서 73.78이라는 고득점을 기록하며 두 대회 연속 금메달을 획득하는 꿈을 꾸게 되지만, 바로 다음에 나온 김연아가 78.50이라는 세계신기록을 세운데 이어, 이튿날에 열린 프리에서는 아사다보다 먼저 나와서 150.06의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사실상 확정지으면서 꿈을 접게 된다. 아사다는 트리플 악셀 3회 작렬을 앞세워 총점 205.50의 자신의 최고 점수로 분전했지만 2위에 만족해야 했다.

 

 

 

2010년 3월 토리노 세계선수권 프리스케이팅

 

3월에 토리노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는 4년 전의 악몽이 떠올라서였을까 쇼트에서 11위에 그치는 부진으로 프리에서 좋은 연기를 펼치고도 4위에 그치고 만다. 3위를 차지한 핀란드의 라우라 레피스토와는 불과 0.8점차였다.

 

김연아가 금메달 이후 선수 생활을 계속할 것인지 고민에 빠지며 휴업을 하고, 아사다가 올림픽 후유증과 약점으로 지적된 스핀과 스텝의 기본기를 다지느라 2010-2011시즌에서 존재감을 잃어버린 가운데, 미키는 '호랑이 없는 굴에 토끼가 왕' 이라고 베이징에서 열린 그랑프리 파이널을 제외한 나머지 그랑프리시리즈 두 대회와 전일본선수권, 4대륙선수권, 세계선수권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하며 적어도 이 시즌에서만큼은 피겨퀸이 된다.

 

 

<휴식. 그리고 들끓는 열애설>

 

그러나 2011-2012시즌을 앞두고 미키는 일본스케이트연맹을 통해 "코치, 관계자들과 상의한 결과, 2014년 소치올림픽을 목표로 하는데 있어 이번 시즌은 충전기간으로 삼겠다" 면서 시즌 불참을 선언하게 한다.그랑프리시리즈 불참을 선언한다. 시니어 데뷔 이후 가장 화려한 성적을 올리며 전성기를 누리는 와중에 갑자기 경기에 출전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공식적으로 밝혀진 바는 없지만, 일본 언론의 추측 혹은 보도에 따르면(대개 정보원은 피겨 관계자라고) 모로조프 코치와의 결별이 큰 충격을 주었다는 것이다. 모로조프는 이미 자신이 지도하던 선수와 두 차례의 공식적인 결혼을 한 바 있고, 이에 앞서 동갑내기 선수와 깊은 관계를 가졌던 전력이 있는지라 미키와 함께하는 시간 동안에도 두 사람의 관계가 일반적인 선수와 코치의 관계가 아니었다는 것이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다만 이에 대해 두 사람은 단 한 차례도 이러한 점을 시인하지 않았다). 여러 목격담에 의하면 미키가 역시 모로조프가 다른 여자 선수를 지도할 때마다 링크를 한쪽에서 지켜보고 있었다고 하는데, 그의 여성 편력이 화려한데다, 쭉쭉 잘 빠진 러시아 미녀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으니 신경이 쓰일 법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처음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열애설, 동거설 등을 퍼뜨렸던 언론이 속칭 "찌라시"인 일본의 가십 전문지들이고, 러시아에서도 악명 높은 타블로이드판 신문에서나 보도되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사실무근일 가능성도 없지 않지만,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도 있을 것이고 여러 이유에서 쉬쉬하며 보도하지 않는 것들도 많으니 그 중에서 몇 가지 신빙성이 있어 보이는 것들만 추려서 소개를 한다.

 

모스크바에서 열린 세계선수권 이후 미키와 모로조프의 결혼설이 터졌는데, 일본매체 주간 아사히는 역시 피겨 관계자의 말을 빌려 "작년 대회장에서 미키가 '이 사람과 결혼한다'며 미소를 띠고 있었고 가까운 친척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모로조프를 소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친척이 "미키가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좋은 것 아니냐"며 교제를 허락하고 있었다" 고 전했다. 모로조프 역시 미키와 함께 미키의 모친을 직접 만나는 등 두 사람의 관계는 결혼에 임박한 것으로 보였으나, 정작 당사자인 모로조프는 결혼에 대해서는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이미 여러 차례의 과거가 있는데다 미모를 자랑하는 많은 여자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었기에 자신을 속박하는 결혼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에 미키가 속앓이를 하다가 모로조프와의 관계를 청산하기로 마음먹었다는 것이 결별설의 요체.

 

5월 무렵에 미키와 모로조프가 결별을 했는데, 미키는 연인 사이는 끝이 나더라도 선수와 코치로서의 관계로는 계속 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모로조프가 인터뷰에서 밝힌 바로는(역시 출처가 찌라시이기에 신뢰도가 그다지 높지는 않지만) 이미 연인 사이가 끝나서 인간 관계가 파탄난 가운데, 제대로 코칭을 할 수 없어서 거절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 당시 미키는 올림픽 이후 계속 아마추어 선수 생활을 이어가면서 올림픽에 재도전할 것인지, 부담이 적은 프로 선수로 전향하여 아이스쇼를 주로 하면서 경쟁의 압박에서 벗어난 생활을 할 지 계속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 모로조프는 관심을 받을 수 없는 프로스케이터를 지도하는 것을 꺼렸고, 현역선수를 지도하면서 명성을 쌓고 싶은 바람이 있었기에 미키의 코치를 맡는 것도 거절했다고 전해진다. 

 

 

 

미키와 난리 야스하루 (안도 미키 트위터)

 

이후 미키의 트위터에 남자 피겨스케이터 난리 야스하루(南里康晴)와 함께 찍은 사진들이 올라오면서 미키와 난리의 교제설이 새롭게 등장한다. 주간 여성지 세븐은 "모로조프와 헤어진 뒤 상심하던 미키가 난리와 만나게 되었다. 안도 미키와 난리 야스하루는 주니어 피겨선수 시절부터 사이가 좋았고 가족끼리도 친하다. 난리 야스하루가 올해 프로선수로 전향하면서 안도미키와 장래 문제 및 연애문제를 상담하며 가까워졌고 자연스럽게 연인사이로 이어졌다" 고 보도한다. 이에 미키와 난리의 열애설은 (역시 당사자들은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기정 사실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그리고 난리는 올해 초 미키가 낳은 딸의 친부로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꼽힌다.

 

 

 

 

인터뷰 기사에 실린 안도 미키

 

그렇게 한 시즌을 날린 미키는 2012-2013시즌에는 복귀를 준비하지만 결국 다시 불참을 선언하게 된다. 지난 시즌 불참 때문에 그랑프리시리즈 출전을 위해 ISU에 서약서까지 제출한 상태였지만, 코치를 구하지 못한 것이 결정적인 원인이었다고 한다. 닛칸스포츠의 단독 인터뷰에 따르면 미키는 모로조프에게 다시 코치 요청을 하였지만, 모로조프는 이에 응하지 않았고, 다른 코치를 선임하려고 했지만 모로조프만한 인물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이에 코치가 없는 상태에서 연습을 할 수밖에 없었고, 기술적인 면이나 정신적인 면에서 조정이 이루어지지 않아 경기를 치를 수 없는 상태라고 말한다. 내년 시즌, 즉 2013-2014시즌을 마지막 시즌으로 삼아 지금까지 응원해준 팬들을 위해 부끄럽지 않은 연기를 하고 싶은 희망을 밝힌다. ISU에 그랑프리 출전에 대한 서약서를 제출한 후, 부상 이외의 이유로 대회에 불참하는 경우 ISU주최의 국제 대회 출전 정지 등의 제재를 받게 되지만, 지금의 상태로는 팬들에게 실망을 주고 다른 선수들에게도 실례가 될 것이라면서, 국제대회가 아닌 국내의 소규모의 대회일지라도 괜찮다면서 팬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마지막 무대를 선보이겠다는 의지를 밝힌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한 시즌이 아닌 두 시즌 연속으로 피겨를 쉬는 것과 여전히 코치 선임에 대한 문제, 그리고 일본스케이트연맹과의 좋지 않은 관계 등으로 인해 사실상 현역 은퇴의 수순으로 받아들여졌고, 그녀에게 남아 있던 관심조차 다른 선수들로 향하게 된다.

 

 

<미혼모 스케이터의 도전>

 

올림픽 직후 극심한 슬럼프에 빠졌던 아사다는 미키가 불참을 선언한 두 시즌 동안 부활에 성공하며, 단연 일본 최고의 선수로 인정받게 된다. 그리고 꾸준히 5위 이내에 랭크되는 스즈키와, 1994년생 신예 무라카미 가나코(村上佳奈子)가 새로운 기대주로 떠오르면서, 아사다의 원톱 체제에 스즈키와 무라카미가 뒤를 받치는 체제로 바뀐다. 주목할 점이라면 여자 피겨선수라면 환갑을 지나 칠순이라고 할 수 있는 28살의 노장이라는 것.

 

피겨 선수들이 휴식기를 갖는 7월 충격적인 사건이 터졌으니, 미키의 출산 소식이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출산에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밝힐 수 없다는 것.

 

 

 

 

TV에 보도된 미키와 그녀의 딸 히마와리

 

 

언론과 대중은 이 결혼도 하지 않은 처자의 아이 아버지가 누구인가를 밝히는데 불을 켜고 달려들었는데, 두 사람이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었다. 미키와 연인 관계였던(혹은 그렇다고 여겨지던) 코치 모로조프와 그 이후 연인 관계로 알려진(혹은 그렇다고 여겨지던) 난리였다. 아이의 이름인 히마와리(向日葵)가 러시아의 국화라는 이유로 모로조프의 아이가 아닌가 의심을 받았는데, 이에 모로조프는 자신이 아버지가 아니라고 강력히 부인하였고, 나중에 가십성 보도에 능한 매체(속칭 찌라시)에 의하면 출산을 한 병원 관계자가 "혼혈은 아니었다" 고 말했다고 하여 난리에게 혐의가 있다고 여기는 듯하다.

 

사람들은 이제 아이까지 낳은 미키가 더이상 피겨선수로서 활약을 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이미 다른 선수들이 잘하고 있기에 그녀의 복귀를 기다리지도 않는 상황이라서 이렇게 미키의 피겨스케이터로서의 커리어가 끝나는 듯이 보였다. 출산이 알려지기 이전, 5월 30일 도쿄 요요기 국립경기장 특설아이스링크에서 열린 '아트 온 아이스 2013 재팬' 기자회견에서 안도 미키가 "새로운 시즌에는 선수로 빙판에 나서고 싶다" 면사 소치 올림픽에 도전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는 했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미적지근했다. 그러나 출산 사실을 알린 이후, 미키는 "피겨와 아이 모두 끌어안고 싶다. 올림픽까지 치른 뒤 명예롭게 은퇴할 것" 이라며 포부를 밝힌다. 그리고 나중에 밝혀진 사실인데 1월에 도요타자동차를 퇴사했다고. 도요타에서는 만류하였지만 자신과 관련된 이야기들로 인하여 회사에 누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단다.


복귀 이후 미키의 첫 대회는 독일에서 열린 네벨혼 트로피, ISU의 시즌 캘린더에 포함된 국제대회이기는 하지만 정상급 선수들이 출전하는 그랑프리시리즈보다 레벨이 낮은 대회. 과거 전성기의 미키라면 출전하지 않았을 대회이지만 그랑프리시리즈에 출전이 불가능한 상태이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대회 1주일 전에 발터 리조를 임시 코치로 선임하여 출전하였는데, 미키는 쇼트 2위, 프리 4위, 종합 2위에 입상한다. 출전하는 선수들이 대부분 어리거나 클래스가 낮기에 순위보다는 점수에 비중을 두어야 하는데 59.79/103.07/162.86 으로 평범한 점수였지만 일단 올림픽 출전을 위한 최소 기술점수는 넘기는데 성공한다. 2년의 공백기와 출산 후 복귀임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다고 할 수 있으나, 내용 면에서도 점프의 높이와 회전, 스케이팅 속도, 스핀의 질과 속도 등 모든 면에서 많이 모자라서 남은 기간 동안 기량을 끌어올릴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네벨혼 트로피 쇼트프로그램


네벨혼 트로피 프리스케이팅


리조 코치의 지도와 그와의 호흡이 만족스러웠는지 미키는 그를 올림픽까지 함께할 정식 코치로 선임한다.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수도 있지만..그러나 올림픽 출전기준 점수를 통과하였다고 하더라도, 더 중요한 것은 일본대표로 선발되는가의 여부였다. 일본스케이트연맹은 세 장의 출전권 중에서 한 장을 전일본선수권 우승자에게 배당할 예정인데(다른 두 장은 그랑프리시리즈에서의 최우수자 등 국제대회 성적을 기준으로 선발), 국제대회에 출전하지 못하는 미키는 이것만이 희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2년 동안의 휴식으로 아무런 실적이 없기에 전일본선수권 본선 출전권을 얻기 위한 작은 국내 대회에 출전해야 했다. 10월에는 1차 관문인 관동선수권에 나가서 56.25/91.05/147.30으로 1위로 동일본선수권진출권을 획득한다. 트리플 루프의 회전 부족과 스핀의 감점은 옥에 티. 

 

 

 관동선수권 쇼트프로그램 영상

 

 

11월에 열린 동일본선수권에서는 상위 5명에게 전일본선수권 출전 자격이 주어진다. 그러나 미키는 쇼트에서 연속된 점프 실수와 스텝, 스핀에서도 모두 감점을 받으며 41.97로 출전 선수 26명 중 14위에 그친다. 소치 올림픽을 향한 꿈이 여기서 끝나는가 싶었지만, 다음날 프리에서 105.21점을 받아 1위를 차지하며, 종합 2위로 전일본선수권 출전권을 획득했다.

 

미키는 2주 후 오스트리아 그라츠에서 열린 아이스챌린지에 출전하여 56.78/94.12/150.90으로 2위를 차지한다. 쇼트에서는 선전했지만, 프리에서 점프 등에서 실수를 거푸 하면서 여전히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아이스챌린지 쇼트프로그램

 

 

아이스챌린지 프리스케이팅

 

그러던 미키가 복귀 이후 최고의 경기를 펼친 것이 2주 후, 김연아와 함께 출전한 골든스핀 오브 자그레브였다. 처음으로 쇼트에서 60점대를 기록했고, 프리에서도 110점을 넘겼다. 176.82의 합계 역시 150점 전후를 기록하던 것에 비해서 크게 나아진 모습.

 

이미 26세가 된 미키에게는 소치올림픽은 마지막 기회다. 딸에게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고 싶다는 미키, 과연 그 꿈을 이룰 수 있을지. 올림픽을 향한 마지막 도전이 여기에서 끝날 것인지, 아니면 생애 세 번째 올림픽에 나갈 수 있을지 오늘 그리고 내일 그녀의 운명을 가를 경기가 펼쳐진다. 그녀의 선전을 기대해본다.

 

 

 

 

전일본선수권 연습 중인 안도 미키.

얼마 전 김연아가 2013 골든 스핀 오브 자그레브 대회 여자 싱글에서 우승했다. 냉정히 말하자면 대회가 비중이 큰 대회가 아니어서 김연아가 출전하지 않았더라면 별로 관심조차 갖지 않았겠지만, '여왕의 귀환' 덕분에 생중계도 되고,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고 지켜보기도 했다. 일본 후쿠오카에서 열린 ISU 그랑프리 파이널과 시기가 겹친 덕분에 이 대회에 출전한 아사다 마오의 성적과 비교를 하기도 했는데, 참가 선수들의 수준도 차이가 있었지만 심사위원들의 면면도 다른 대회였기에 점수를 놓고 비교하는 것에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다. 


이제 약 두 달 후에 소치 올림픽이 열리는데 여자 피겨 싱글 부문에서는 김연아와 아사다의 대결로 압축되는 분위기지만, 이 두 선수의 틈바구니에서 적지 않은 존재감을 과시해왔던 안도 미키에 대한 글을 하나 써볼까 한다. 피겨에 많은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안도 미키에 대해서 속속들이 아는 것도 아니지만 "아이에게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고 싶다" 면서 다시 스케이트화를 신고 빙판 위에서 연기를 펼치는 그녀의 말에 애잔함을 느끼며, 안도 미키의 굴곡진 피겨 인생을 잠시 살펴볼까 한다. 분량이 적지 않을 듯한 관계로 두 번에 나누어 글을 쓰려고 하는데 1편은 '피겨 신동에서 추락한 아이돌이 되기까지' 로 미키의 피겨 시작부터 토리노 올림픽 이후까지, 2편은 '반복되는 고난과 마지막 도전' 으로 주인공에서 멀어졌지만 꿋꿋이 버틴 선수 생활과 유종의 미를 꿈꾸는 현재의 모습을 담아볼까 한다. 자료를 수집하고 검토하고 순서대로 배열하다보니 아무래도 시간이 걸려서 미키에게는 운명의 시간이 될 전일본선수권(12월 22-23일)이 끝나기 전까지 글을 쓸 수 있을지 장담은 못하겠지만 가급적 빨리 마무리를 짓도록 노력하려고 한다.

 

 

 

 

그리고 이 사진 때문에 참 욕을 많이 먹었다지. (사진 : 안도 미키 트위터)

 

 

 

 

 



安藤美姫

안도 미키


생년월일 : 1987년 12월 18일(25세. 곧 26세가 된다)

출생지 : 아이치현 나고야시

신장 : 162cm

체중 : 47kg

출신교 : 쥬쿄대학부속 쥬코고등학교 - 쥬쿄대학 졸업

가족관계 : 어머니, 딸

애칭 : 미키티




김연아가 본격적으로 시니어 무대에 출전한 이래, 안도 미키는 일본에서 2인자로 여겨지는 선수. 2인자의 설움은 어디에든 있는 법이지만 안도 미키는 단지 2인자라서가 아닌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에서 저평가를 넘어서 지나칠 정도의 많은 안티 세력을 갖고 있기도 하다. 심지어 미키(美姫)라는 이름에서 姫라는 글자가 일본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재일한국인이 아닌가 하는 근거 없는 소문까지 나돌 정도. (미키라는 이름이 일본에서 흔한 이름이지만 한자로 쓰는 이름자는 美貴, 美喜, 美希, 美紀, 美樹 등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외모를 보면 아무리 보아도 일본인이다.

 

 

 

 

이런 멀쩡한 사진이 있음에도 구글링을 조금만 해보면 온갖 굴욕 사진을 찾을 수 있고, 악의적으로 합성한 사진도 적지 않다. (사진 : 마이니치)

 

 

 

 

어릴 적 사진 같은데 안티팬들이 자주 사용하는 사진 중의 하나.

국내 언론에서도 이와 관련된 사진을 기사로 낸 적이 있다.

 

 

 

심지어 이렇게 괴상망측하게 합성한 사진도 떠돌아다닌다.

이런 짓을 하면 즐거울까?

 

 

 

<피겨 신동의 유년기와 주니어시절>

 

친구를 따라 8세 때 스케이트에 입문하였는데,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를 잃고 만다. 당시 배우던 코치의 추천으로 몬나 유코(門奈裕子)코치에게 가르침을 받으면서 다음 해에 더블 악셀을, 그다음 해에는 트리플 살코와 트리플 토루프를 익힌다. 11세가 된 1998년, '아이치현 지사상 쟁탈 대회'라는 작은 대회에서 우승하며 자신감을 얻고 전국 무대에로 진출한다. 이어지는 1998-1999시즌에 전일본노비스선수권 B클래스에서 3위를 차지하고, 1999-2000시즌에는 다이에 OAC 컵 대회에서 우승, 노비스 선수권 A 클래스 우승하고, 12세가 되기를 며칠 앞두고 열린 전일본피겨스케이트주니어선수권에서 7위를 차지하며 피겨 신동으로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한다. 2000년부터는 요코하마의 사토 노부오(佐藤信夫) 코치에게 지도를 받으며, 3회전 러츠-3회전 루프를 익히고 노비스 선수권 2연패에 성공하고, 전일본피겨스케이트주니어선수권에서 3위에 입상한다. 당시 미키(일본인의 이름을 줄여서 부를 때 성을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여기서는 친숙하게 이름을 부르기로 함)의 나이는 만 13세가 되기 20일 정도 남겨둔 때였다. 그 밖에도 여러 대회에서 우승 혹은 상위권 입상의 호성적을 남기며 13세가 된 2001년 4월, 미키는 일본 스케이트 연맹 주니어 강화 선수로 선발된다. 이미 악셀을 제외한 3회전 점프 5종(러츠, 플립, 토루프, 루프, 살코)를 모두 익힌 재능을 눈여겨보고 기대주로 점찍은 것. 

 

2001-2002시즌부터 미키는 놀라운 활약을 보여주는데, 2001년 9월 체코 오스트라바에서 열린 ISU 주니어그랑프리에서 쇼트 3위, 프리 1위, 종합 1위로 우승컵을 차지한데 이어 11월에는 스웨덴 말뫼에서 열린 ISU 주니어그랑프리에서는 쇼트, 프리, 종합 모두 1위를 차지하며 일본을 넘어 세계 무대에서도 통하는 기대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3주 후에 열린 전일본주니어선수권에서 쇼트, 프리, 종합 1위를 석권, 12월에는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쇼트 2위, 프리 1위, 종합 1위로 우승하며 출전한 그랑프리대회를 모두 우승으로 마감하는 괴력을 선보인다. 제70회 전일본피겨스케이트선수권대회에서는 3위를 차지하는데 1위는 미키보다 7살 연상의 와세다대학 소속 대학생이었던 수구리 후미에(村主章枝), 2위 역시 같은 와세다대학의 선수이자 2006년 토리노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6살 연상의 아라카와 시즈카(荒川静香)였다. 참고로 4위는 종종 국제 경기에서도 볼 수 있는 당시 16세의 스즈키 아키코(鈴木明子), 5위는 스즈키와 동갑내기 나카노 유카리(中野友加里)였다. 이 대회는 일본 전역에 TV로 중계되면서 미키가 전국적인 스타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된다. 2012년 2월, 전국 중학생 피겨선수권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3월에는 노르웨이 하마르에서 열린 ISU 주니어 피겨스케이팅챔피언십(세계 주니어선수권)에 출전하여 3위에 입상한다. 많은 기대가 부담이 되었던 것인지, 경기 전날 열이 오르는 등 컨디션 조절에 실패했다고 한다. 이 대회의 우승자는 한국계 입양아라는 미국의 앤 패트리스 맥도너, 2위는 나카노 유카리. 

 


2002 세계 주니어선수권 쇼트프로그램


2002 세계 주니어선수권 프리스케이팅
꽈당~!

 

2002-2003시즌에는 미키의 전매특허이자 결국 선수생활 커리어에 있어 자신의 발목을 잡게 된 4회전 점프를 선보이게 된다. 우선 2002년 4월, 미키는 주니어만이 아닌 시니어 부문에서의 강화 선수로도 선발된다. 당시 14세 4개월의 나이라서 시니어 자격이 주어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연맹이 좋게 말하면 초유망주의 집중 관리에 나선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설레발을 친 것이다. 과거에도 주니어와 시니어 강화 선수로 중복 선정된 경우가 있다고 하나 최연소 케이스이며, 아직까지 이 기록을 깨는 선수는 없다고 한다. 미키는 이미 오래 전에 트리플 5종을 습득하고 트리플 악셀까지 익힌 상태여서 이 점프를 더 연마하여 성공률을 높이고 연기를 가다듬을 필요가 있었는데, 여기에 그치지 않고 더 강력한 점프를 익히게 된다. 이른바 4회전 점프, 쿼드러플 살코와 쿼드러플 루프를 익혔단다. 2002년 9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ISU주니어그랑프리에서 쇼트 3위, 프리 1위, 종합 1위로 우승을 차지한다. 시즌을 준비하면서 프리스케이팅에서 4회전 점프가 프로그램에 들어가 있었지만, 쇼트에서 3위에 머물러 부담감이 큰 탓에 프리에서 4회전 점프를 3회전으로 바꾸어 출전했고 클린 연기를 펼치며 역전 우승에 성공한다. 10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ISU주니어그랑프리에서는 쇼트 2위, 프리 1위, 종합 1위로 역시 우승. 이 대회에서는 과감하게 프리에서 쿼드러플 살코를 시도했지만 착지에 실패하였다. 그러나 이에 앞서 더블 악셀과 트리플 러츠-트리플 루프에 이어 트리플 플립을 성공시키며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11월에는 서일본 주니어 선수권과 전일본 주니어 선수권에서 전 부문 1위로 연속 우승을 차지한다. 12월에는 일본스케이트연맹의 요청에 따라 ISU 그랑프리 NHK 트로피에서 본대회가 아닌 홍보를 위해 전시성으로 나와서 쿼드러플 살코를 성공시키기도 했다.

 

 

 

 

NHK트로피 (번외)에서 쿼드 살코를 성공시킨 미키.

당시 프로그램 구성은 2A , 4S , CoSp , 3Lz +3 Lo , 3Lo , SpSq , CCoSp (소요 시간 : 3 분 15 초)

 

그러나 이런 행사에 참여한 부작용이었을까 곧이어 참가한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오타 유키나(太田由希奈)와 캐롤라인 코스트너(이탈리아)에게 밀려 3위에 그치고 만다. 이 대회의 유일한 수확이라면 여자 최초의 4회전 점프를 공인받은 것인데, 프리스케이팅에서 쿼드러플 살코를 성공시켜 여자 싱글 사상 최초이자 (현재까지는)최후의 4회전 점프를 인정받았다. 다음 주에 열린 전일본선수권에서는 전년보다 두 계단 하락한 5위에 그치고, 2003년에 체코 오스트라바에서 열린 ISU주니어챔피언쉽에서도 오타 유키나에게 밀려 전년보다 한 단계 상승한 2위를 차지하는데 만족하게 된다. 그러나 전무후무한 4회전 점프를 보여주면서 일약 전국적인 스타로 떠오르게 된다. 모닝구무스메의 후지모토 미키(藤本美貴)의 애칭이었던 "미키티(ミキティ)”가 안도 미키에게도 따라붙게 된다. (얘들 말고도 미키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에게 미키티라고 부르기도 하더라만..)


2003-2004시즌은 주니어 대회를 평정하고 시니어 대회에도 발을 내딛기 시작한 시기였다. 9월 멕시코시티, 10월 일본 오카야시에서 열린 ISU주니어그랑프리에서 우승을 차지한데 이어, 11월에 전일본주니어선수권에서 쿼드러플 살코를 앞세워 3연패를 달성한다. 12월에는 스웨덴 말뫼에서 열린 그랑프리 파이널까지 우승하며 2년 만에 정상의 자리에 오른데 이어, 전일본선수권마저 우승을 차지하며 시니어 대회에서 첫 우승(쇼트 2위, 프리 1위, 종합 1위)을 차지한다. 이 대회에서 프리스케이팅에서 쿼드러플 살코, 트리플 러츠-트리플 루프, 트리플 토루프-트리플 토 루프의 1쿼드 6트리플 구성을 완벽하게 성공시키며 절정에 오른 기량을 자랑한다. 2004년 3월에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ISU 주니어챔피언십에서 드디어 우승을 차지하고, 전일본선수권 우승자의 자격으로 참여한 ISU세계피겨챔피언십(세계선수권)에서 4위에 오른다. 이 대회의 우승자는 아라카와 시즈카, 2위는 샤샤 코헨(미국), 3위는 미셸 콴(미국). 

 

 

 

주니어 그랑프리파이널 (2003.12)

 

 

 

전일본선수권대회 (2003.12)

 

 

세계선수권 (2004.3) 쇼트프로그램

 

 

세계선수권 (2004.3) 프리스케이팅

 

 

 

마샬스 세계 스케이팅 챌린지(2004.4) 프리스케이팅


세계선수권 이후 미국의 마샬스 세계 스케이팅 챌린지에도 출전하는데, 이 대회에서도 코헨, 아라카와, 콴에 이어서 4위를 차지한다. 경험이 일천한 미키가 두 대회 연속으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콴과 일본의 백전노장 아라카와, 그리고 미국의 최고 선수였던 코헨에 이은 4위라는 성적은 자신감을 가질 만큼 큰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본격적인 시니어무대 활약>


16세가 된 2004-2005시즌부터는 주니어 대회는 제쳐두고 시니어 대회에 출전하게 된다. 이미 경쟁자가 없는 주니어 대회에 참가하는 것은 시간 낭비에 불과한 것이나 다름없는데다 2006년에 토리노 올림픽이 열리기에 시니어 대회의 적응이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결과만 놓고 본다면 이 시즌에서 우승은 국내 대회인 전일본선수권이 유일했다. 

 

그랑프리시리즈에 앞서 현지 적응 겸 경험을 위해 출전한 캠벨스 인터내셔널 클래식에서 콴, 아라카와, 코헨에 이어 4위를 차지한다. 그랑프리시리즈에서는 첫 대회였던 미국 피츠버그에서 열린 스케이트 아메리카에서 3위에 오른 것자국에서 열린 NHK 트로피에서 아라카와 시즈카에 이어 2위에 오른 것을 제외하면 메달권 입상에 실패하고 말았다. (세 번째로 참여한 그랑프리시리즈의 중국 대회에서는 4위에 그친다)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도 4위에 그쳤고, 전년도에 4위에 올랐던 세계선수권에서도 6위로 뒷걸음을 치고 만다. 그러나 시니어 무대에서의 첫 시즌이었음을 감안하면 선전했다고 볼 수 있는데, 특히 NHK 트로피의 프리스케이팅에서 자국민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이 컸다. 쇼트에서 1위였던 아라카와에 13.3점이나 뒤진 3위에 그쳤던 미키는 프리에서 119.46점을 기록하며 최고점을 기록하며 2위로 뛰어오르게 된다. 3회전 러츠-3회전 루프-2회전 토루프라는 최고 난이도의 3단 콤보를 성공시키며 GOE 15.2점을 기록했는데 이것은 여자 피겨에서 한 번의 점프에서 기록한 점수 중에서 최고점이라고 한다. 

 

 


캠벨스 인터내셔널 클래식 프리스케이팅 (2004.10)


스케이트 아메리카 쇼트프로그램 (2004.10)
쇼트에서는 좋은 연기로 1위를 차지하지만 프리에서 망치면서 종합 3위에 그친다.


NHK트로피 프리스케이팅 (2004.11)



세계선수권 쇼트프로그램. 7위를 기록한다 (2005.3)



세계선수권 프리스케이팅. 역시 7위를 기록하는데 종합에서 6위가 되었다 (2005.3)


유일하게 우승을 차지한 전일본선수권에서 미키에 이어 2위를 차지한 선수는 당시 만 15세의 아사다 마오(浅田真央)였다. 아사다 역시 이미 일본 피겨계가 주목하던 초우량 유망주였는데 미키가 자리를 비운 주니어 대회에 출전하면서 그랑프리시리즈를 2회 우승하는 등 착실히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3년 전 전일본대회 우승자였던 수구리는 젊은 피에게 밀려 간신히 3위에 그치고 말았다는.



2004년 미키는 표현력을 높이기 위해 아이스쇼에 종종 참가를 한다. 



대부분의 쇼에서 같은 의상을 입고 출전하는데 



2005년 1월 2일 스타즈 온 아이스쇼



이것도 같은 곳에서.


올림픽이 1년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미키가 어느 정도의 관심을 받고 있었는지는 당시 스포츠지의 기사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미키가 세계선수권에서 예선 3위로 본선에 오른 소식이 스포츠신문의 톱기사로 가득 채워졌다.
이 대회 전부터 일본 언론들은 4회전 점프를 앞세운 미키가 향상된 표현력으로 우승에 도전한다고 난리를 치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는.. 

그럼에도 여전히 미키는 여전히 최고의 스타였는데, 아사다 마오의 언니로 더 유명한 아사다 마이(浅田舞)가 연예계 진출을 한다는 기사가 나왔는데 마이를 수식하는 어구가 "안도 미키의 라이벌" 이었다고. 귀국 인터뷰에서 미키는 거리를 보통 때처럼 걷고 싶다는 말을 했는데,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었음을 뜻한다. 귀국 이후 계속적으로 미키의 사생활 등의 가십거리를 주제로 한 기사가 계속 나오고 언론의 취재가 과열되자 일본스케이트연맹은 잡지 협회에 공식적으로 미키에 대한 과열 취재 자제 요청을 할 정도에까지 이른다.




4월 1일에는 일본 최고의 인기구단인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도쿄돔 홈경기에서 시구를 맡았다.
특급 아이돌 수준의 인기였다고 하면 될 것 같다.





시구에 이어서 피겨스케이팅에서 관중에게 하는 답례의 인사도 하는 미키


<기대와 실망의 토리노 올림픽>

일본 전역의 많은 관심과 기대 속에서 미키는 토리노 올림픽을 위한 준비에 나선다. 분위기 전환을 위해 그동안 함께 해왔던 사토 노부오 코치 대신 새로운 코치를 찾았고,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인 캐롤 젠킨스 코치를 새 코치로 맞이하게 된다. 이 당시 미키에게는 고민이 있었는데 2003년 전일본선수권 이후 실전에서 4회전 점프를 하지 못한 것이었다. 신체의 성장에 따라 몸이 무거워지면서 예전처럼 점프를 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이에 일본스케이트연맹은 올림픽 메달 획득을 목표로 미키의 코치를 새로 선임하기로 한다. 마이니치신문은 "안도 미키 17세, 토리노 올림픽에" 라는 주제로 20회 연속 기사를 내기로 할 정도로 미키에 대한 관심과 인기는 여전하였다.








미키의 새 안무가는 김연아의 안무가로도 유명한 데이비드 윌슨. 그와 함께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어간다. 



6월 20일에는 미키를 비롯한 토리노 올림픽을 목표로 한 특별 강화선수 5명을 담은 사진집이 출간되면서 열기는 더욱 달아오른다.

고등학교 3학년인 미키의 쥬쿄대 진학 희망과 함께, 미키와 마오를 위한 40인 체제 프로젝트를 가동한다고 일본에서는 난리가 난다. 우연하게도 미키와 마오는 나고야 동향 출신으로 나고야 소재의 쥬쿄대는 부속 중고등학교부터 우수한 피겨선수를 보유한 곳이기도 하다. 그런 가운데 미키는 미국 전지훈련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국내의 바쁜 일정을 소화한다.



미키는 아라카와, 수구리 등과 함께 아이스쇼에 참가하였는데 만원 사례를 이루었다고.



토리노 올림픽 선수단 공식단복 모델로 등장

8월 2일, 토리노 올림픽에서 선수단이 입을 공식 단복 발표회에서 미키는 모델로 선발되어 이 행사에 참여한다. 아직 올림픽에 출전할 선수가 결정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누구도 미키가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할 것이라고 의심하지 않았다. 미키는 인터뷰에서 "너무 예쁘다. 실전에서 입으면 기쁠 것 같다" 는 소감을 밝혔다. 올림픽이 약 6개월 정도 남은 시점에서 롯데 가나초콜릿의 모델로 미키와 아라카와, 수구리가 출연하는 광고가 공식 발표되었다. 이미 6월부터 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전해졌는데, 아직 이 세 명이 올림픽 출전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임에도 그만큼 이들의 인기가 좋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미키는 훈련을 위해 다시 미국으로 떠나 토리노 올림픽을 위한 준비를 한다.



10월에 열린 저팬 인터내셔널 챌린지대회 모습



2005년 10월, 저팬 인터내셔널 챌린지에서 미키는 3위에 입상한다. 쇼트 없이 프리스케이팅으로만 구성된 대회였는데 1위는 러시아의 이리나 슬루츠카야, 2위는 아라카와였다. 소녀의 티를 벗고 제법 여인의 모습으로 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경기장 밖 노상에서 훈련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혀 기사에 실리기도 했다.
사진 찍히는 것을 의식하지 않고 훈련에 집중하고 있었다고.

11월에는 미키가 도요타자동차에 입사 내정이라는 기사가 발표되는데, 스폰서가 아닌 사원으로 피겨 경기를 하는 것이라고. 이에 미키는 "희망하던 지역 회사에 들어가는 것이 결정되어 좋다. 사회인으로서의 자각을 가지고 열심히 하겠다" 는  소감을 밝힌다. 주쿄대 40인 프로젝트 어쩌고는 어딘가로 날아가 버린 모양. 도요타 관계자에 따르면 미키는 쥬쿄대에 사회인 신분으로 입학 것 역시 희망하고 있어서 학업과 일, 그리고 스케이트를 병행하고자 한다고. 하나라도 잘하기 힘들지 않나 싶지만.



그리고 11월 18일, 공식 웹사이트를 오픈했는데 이 날 접속이 폭주하여 사이트가 먹통이 되었다고 한다. 트윙클 밴드를 판매하여 수익금을 유니세프에 기부하는 자선 활동도 하였다고. 그러나 지금은 이 사이트는 사라져버렸다.



토리노 올림픽을 맞이하여 미키 등 일본 대표선수들을 모델로 한 조지아 커피 특별판이 나오기도 했다.

드디어 미키는 토리노 올림픽의 전초전이 될 그랑프리시리즈에 출전하게 된다. 미키는 1~4차 대회에 불참하고, 5차 대회인 컵 오브 러시아와 6차 대회인 NHK 트로피에 출전하기로 되어 있었다. 러시아컵에서 미키는 쇼트, 프리, 종합에서 모두 슬루츠카야에게 뒤진 2위를 기록하는데 점수차는 적지 않았다. 3위 역시 일본 선수인 온다 요시에(恩田美栄)가 차지했는데, 슬루츠카야와 미키의 차이 이상으로 2위와 3위의 점수 차가 커서 별로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무엇보다 이 대회에서 미키는 필살기인 쿼드 살코를 시도하지 않았는데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미키가 쿼드 살코를 성공하면..' 하는 기대를 계속 품게 된다.


2005년 컵 오브 러시아 쇼트프로그램




그랑프리 5차 컵 오브 러시아 대회에서의 안도 미키 (2005.11)

마침내 미키는 마지막 그랑프리 시리즈 출전을 위해 일본으로 귀국한다. 여전히 일본의 언론과 팬들의 관심은 미키가 4회전 점프를 프리스케이팅 프로그램에 넣을 것인가 하는 점이었는데, 이에 관해 미키는 이전의 인터뷰에서 연습 중에 단독으로 4회전 점프를 했을 때 성공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대회 프로그램에 넣을지는 망설이고 있었다. 점프의 성공시 얻을 이점은 확실하지만, 반대로 1~2점 차이에서 순위가 갈릴 수 있는 올림픽에서 반드시 모험을 할 필요는 없는 것이었다. 단순히 점프 한 번 시도하는 것과 3분 30초의 시간 동안 연기를 이어서 해야 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었다.




오사카에서 열리는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간사이공항으로 입국한 미키를 에스코트하는 모습.




NHK 트로피를 앞두고 연습 중인 미키

NHK 트로피에서 미키는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살려 좋은 활약이 기대되었지만, 의외로 부진한 모습을 보인다. 전체적으로 몸놀림이 가벼워보이지는 않았는데, 점프는 그럭저럭 무난하게 마쳤지만 스핀에서 무너져버리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고 만 것. 쇼트를 4위로 마친 후 미키 스스로 "오늘의 평가는 마이너스다. 피로로 몸이 딱딱하고, 생각처럼 탈 수 없었다. 연전이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 최초의 순서에서 점수가 나오기 힘든 것도 신경이 쓰여 부정적으로 생각한 면이 많았다."고 말할 정도였다.



2005년 NHK 트로피 쇼트프로그램

미키는 대체로 쇼트에서는 부진하지만 프리에서 점수를 만회하여 성적을 끌어올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에는 그렇지도 않았다. 프리에서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4위에 그치고 만 것. 결국 종합 4위로 포인트 5점 획득에 그치고 마는데, 미키가 출전하지 않았던 다른 그랑프리시리즈에서 두 번의 우승을 차지한 아사다와는 크게 비교가 되는 성적이었다. 2주 후에 장소만 도쿄로 바꾸어 열리는 그랑프리 파이널에서의 활약이 기대되었지만 아사다가 러시아의 슬루츠카야를 누르고 쇼트, 프리, 종합 모두에서 1위로 우승을 차지한데 반해, 미키는 쇼트 3위, 프리 4위의 부진과 함께 종합 4위에 머무르고 만다.

다음 주에는 토리노 올림픽 대표 선발을 겸한 전일본 선수권대회가 열렸는데, 수구리, 아사다, 아라카와가 1,2,3위를 차지한 가운데 온다와 나카노에게까지 밀리며 6위에 그치고 말았다. 쇼트나 프리 둘 중 하나에서 임팩트를 주다가 실수로 하나를 망친 것도 아니고 둘 다 6위를 차지한 평범한 성적이었다. 이 중에서 아사다는 만 15세로 애초부터 대회가 개최되는 해의 7월 1일까지 만 16세가 되어야 한다는 규정에 걸려 올림픽 출전이 불가능했기에 논외로 치더라도, 올림픽을 두 달도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갑자기 부진한 모습을 보이는 미키가 대표로 선발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커졌다. 다행히도 규정이 올림픽 직전 두 시즌의 성적을 토대로 선발하는 것이었기에 미키는 쌓아둔 실적 덕분에 토리노행 티켓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미키는 대표 선발 직후 "전일본대회에서는 분하다고 생각했는데 대표가 되어 기쁘지만, 더 열심히 해야겠다. 토리노까지 더 한층 커지고 노력하겠다" 고 선발 소감을 말했다.

드디어 해가 바뀌고 올림픽이 열리는 2006년, 미키와 수구리, 아라카와는 남자대표 다카하시 다이스케와 함께 토리노에서 경기를 하게 될 경기장을 직접 방문하여 5일간 합숙을 하고 돌아온다. 1월 10일 자신이 재학 중인 나고야의 쥬쿄대 부속 쥬쿄고등학교의 개학에 맞춰 학교를 방문한 미키는 자신이 발가락 골절상을 입은 사실을 밝힌다. 사람들은 이에 대해 놀라고 안타까워하면서도 그런 몸으로 올림픽에 나가서 활약할 수 있겠냐고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미키는 앞으로 2주 후면 완치가 될 것이고, 미국으로 가서 점프 훈련을 늘려서 대회에 대비하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1월 12일 아이치현 지사를 만나서 올림픽에서 4회전 점프를 하겠다는 약속을 했다는데.. 





미키는 올림픽 쇼트프로그램을 32일 남긴 1월 21일 미국으로 출발한다. 머리를 산뜻하게 자르고 등장한 미키는 인터뷰에서 "프로그램을 바꿔서 시간이 부족하다. 라스트 스퍼트를 하겠다" 는 말을 하는데, 올림픽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의 프로그램 변경은 예고된 재앙이었음을 이 때는 알지 못했다.




훈련을 위해 미국으로 향하는 미키


여론조사에서 미키에게 메달을 기대한다는 반응이 36%가 나왔다는 기사가 보도되는가 하면, 일본 야후 웹사이트의 올림픽 특집 세션의 메인에 미키가 등장한다. 그 뿐이랴, 롯데가나가 조사한 결과 발렌타인데이에 초콜릿을 받고 싶은 올림픽 선수를 묻는 조사에서 미키가 37.5%를 차지해 1위에 올랐다고 하는 이야기도 나온다.



야후 저팬의 토리노 올림픽 섹션 배너.
최고 인기 선수가 모델인 것은 당연하기는 한데.. 쩝.

쇼트프로그램 1주일 전인 2월 14일, 미국에서 훈련을 하던 미키는 토리노에 도착한다. 외국에도 미키의 팬이 있었다고 일본 언론은 호들갑을 떨고, 이틀 후의 기자회견에서 실패하더라도 4회전 점프를 넣고 싶고, 하겠다는 의지를 밝힌다. 미키와 관련된 기사는 인터넷 상에서 조회수 상위 랭킹에 오르고, 그녀에 대한 기대는 갈수록 커져만 갔다. 그런데 일본 언론에서 사고를 뻥 터뜨리는데, 대회 직전 선수 인터뷰 말미에 어떤 기자가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어떤 맹세를 가지고 뛰고 싶은가?" 는 질문을 한다. 약간은 들뜬 분위기였던 미키는 이 질문을 받자마자 눈물을 흘리며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간신히 "개인적인 질문이므로 대답할 수 없다"고 대답하기는 하였지만 계속 울어버렸고 다른 선수들의 분위기까지 안 좋아지고 말았단다. 이 질문을 한 기자는 정확히 확인되지는 않았는데 NHK소속 기자 혹은 찌라시를 내는 주간지 기자일 것이라고 추측된다고 한다.



나쁘지 않은 분위기였으나


아버지에 대한 질문을 받고 울음을 터뜨리는 미키



미키를 달래는 젠킨스 할머니

드디어 쇼트프로그램이 열리는 날, 미키는 일본 선수 중 가장 먼저인 14번째로 출전할 예정이었다. 트리플 러츠-트리플 루프에서 마지막 점프의 착지가 불안정하여 손을 짚은 것을 빼고는 크게 눈에 띄는 실수는 없었지만, 전반적으로 '덤벼든다', '가다듬어지지 않았다' 는 느낌을 주는 연기로 지켜보는 사람이 불안한 경기를 했다. 쇼트 성적은 56.0점으로 8위였는데, 1위 코헨, 2위 슬루츠카야, 3위 아라카와와는 10점 이상 차이가 나서 메달권에 진입은 어려워보였다. 당시 1위와 3위의 점수차가 0.71점에 불과하여 이 세 선수가 메달의 색깔을 놓고 프리스케이팅에서 승부를 벌이게 되었다. 수구리는 1위와 약 5점 정도 차이로 4위였는데, 프리 결과에 따라 메달권 진입을 바라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미키의 토리노 올림픽 쇼트프로그램

미키는 프리스케이팅에서 오랫동안 봉인해왔던 쿼드 살코를 시도하기로 한 프로그램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결과는 너무도 처참했다. 쿼드 살코를 포함한 점프에서 네 번의 실수를 저지르며 완전히 무너져버리고 만다. 


전설의 미키의 프리스케이팅.
이것은 퍼니스트 비디오가 아니다.



채점을 기다리는데 이미 정신줄은 나가 있다.

결국 미키는 프리 16위로 종합 15위로 내려앉고 마는 대참사를 겪고 만다. 반면 쇼트 3위였던 아라카와는 '인생경기'를 펼치며 역전 우승을 차지하면서 모든 관심은 그녀에게로 쏠리게 되었다. 더군다나 아라카와의 금메달은 올림픽에서 일본 대표팀이 전 종목에 걸쳐 유일하게 따낸 메달이었다. 아라카와는 올림픽의 주역이었고, 아라카와가 곧 올림픽을 뜻하는 것이었다.



목마를 탄 채 폐막식에 참가하는 아라카와, 밑에 미키가 보인다.

올림픽에서 미키가 자신의 팬을 비롯한 많은 일본인들에게 실망을 준 것은 사실이었지만, 일본이 자부하는 아라카와가 여자 피겨에서 금메달을 땄기에 미키에 대한 비난 혹은 비판이 어느 정도 줄어들 여지는 있었다. 그러나 아라카와 역시 올림픽 직후의 짧은 기간 동안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을 뿐, 곧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져간 소위 "스타성이 크지 않은 선수"였다. 이에 대해서 아라카와의 선수 생활 커리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라카와 역시 미키처럼 초등학생 때 3회전 5종 점프를 익히고, 전일본선수권을 제패하면서 주목을 받은 "천재 소녀" 였다. 1998년 어린 나이인 16세에 자국에서 열린 나가노 올림픽에 출전하게 되었다. 많은 자국민들의 기대 속에서 출전한 아라카와의 첫 올림픽은 8년 후의 미키처럼 기대와는 동떨어진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쇼트에서는 플립 점프의 다운그레이드 등으로 14위, 프리에서는 미키처럼 완전히 무너진 것은 아니었지만 마지막의 점프 실수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14위, 종합 13위에 그치고 말았다. (당시에는 기술 점수와 예술 점수의 비중이 5:5으로 고난이도 기술만이 아닌 예술적인 표현력이 중요했던 시기이기도 했거니와, 유럽과 미국이 피겨를 양분하고 있던 시기었기에 다소 짜게 평가를 받은 점도 없지는 않았다.) 올림픽에서 실패를 겪은 후, 아라카와는 부진을 겪기도 하고 정신을 차릴 무렵에는 온다와 수구리에 밀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 출전조차 하지 못했는데 이 대회에 출전했던 수구리는 5위에 오르며, 이토 미도리의 은메달 이후 최고의 성적을 기록했다. 그러나 아라카와는 이후 4년 동안 절치부심해서 출전하는 그랑프리시리즈 및 세계선수권 등에서 줄곧 메달권에 입상하는 호성적을 거두며 올림픽 진출 자격을 획득하게 된다. 2004년부터 시행된 신채점제는 기술점수의 비중이 커지면서 연기와 표현 등의 예술성이 떨어지더라도 난이도 높은 기술을 정확히 구사하는 선수들에게 유리해지게 되었는데(덕분에 고난이도 기술보다는 예전 방식의 우아하고 아름다운 피겨를 지향하던 미국의 피겨는 서서히 몰락하여 최근에는 국제무대에 명함도 내밀지 못할 지경이 되었다), 점프에 목을 매는 일본 피겨 선수들이 기술점수 면에서 혜택을 받게 된 셈이었다. 아라카와는 프리에서 트리플 러츠-트리플 루프 연속점프의 뒤의 루프가 더블로 다운그레이드된 것 이외의 실수를 저지르지 않으며, 위의 표현대로 '인생경기' 를 치르면서 자신의 역대 최고 점수 및 성적을 내게 된다. 당시 그녀의 나이 24세로 피겨선수로는 환갑을 지난 나이였고(이것은 올림픽 피겨 여자 싱글 최고령 금메달 기록을 세운다), 올림픽 직후 프로 전향을 하면서 경쟁 무대에서 은퇴하게 된다. 따라서 올림픽 직후 "올림픽 유일 메달 획득 선수", "피겨여왕" 등의 칭호로 개선 행사 및 몇 차례의 TV프로그램 게스트 출연 등을 제외하고 더이상 매스컴이 그녀를 붙잡을 이유가 없어졌다. 아이돌로 떠받들 선수도 아니었으며, 기껏해야 나가노 올림픽 이후 8년 동안 절치부심하면서 칼을 갈아오던 노장 선수에 불과했던 것이다.



아라카와 시즈카의 인생경기 2006 토리노 올림픽 프리스케이팅

반면 미키는 계속해서 선수생활을 이어가야 하는 상황이었고, 다음 올림픽에서는 아라카와가 한 일을 자신이 이루고 싶다고 밝혔다. 그러나 언론은 미키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도착 직후 공항에서부터 올림픽에서의 부진을 물고 늘어지면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다시 언급하는 추악한 행태도 있었다(미키는 올림픽에서 연기한 쇼트프로그램이 돌아가신 아버지께 바치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런 연기를 했냐고 비난이 거셌다고 한다). 대표 선발이 결정되기 전에 부상 사실을 알리지 않았던 것도 비난받을 수밖에 없었고, 그녀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기에 미키 자신도 어느 정도의 비판은 감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언론의 등돌림의 본질은 그것이 아니었다. 아라카와가 그러했듯이 어린 나이에 출전한 올림픽에서 실패를 맛보았더라도 경험을 쌓고 다음 기회에 더 좋은 성적을 올릴 가능성이 있음에도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언론에서는 늘 화제거리를 찾고, 그 화제거리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켜 자신들의 매체의 판매율 혹은 구독률을 올리는 것에 목적이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모을 "스타"가 필요한데 '미키가 여전히 그 스타성을 가지고 있는가' 에 대해서 누구도 자신할 수 없었다. 더이상 미키로는 장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그녀에게 등을 돌린 것이다.

아라카와 이전, 일본 선수 중에서 올림픽 피겨 여자 싱글 부문에서 입상은 이토 미도리 뿐이었는데, 이토는 여자 선수로는 고난이도인 트리플 악셀(피겨를 잘 모르고 관심도 없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은 들었을 단어. 그렇다. 아사다가 하느니 마느니 떠드는 그 기술이다)을 앞세워 은메달을 따냈다. 피겨의 연기에서 팔과 다리가 짧은 아시아권 선수들은 서양 선수들과 같은 아름다운 동작이 어려운 체형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고 대체로 표현력이 부족한 단점을 가지고 있어 예술적인 면에서 떨어지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그런 면에서 김연아의 긴 팔과 다리, 그리고 뛰어난 표현력은 정말 대단한 축복이다). 그것을 극복하고 우위를 내세울 수 있는 것은 다른 서양의 선수들이 구사하지 못하는 고난도 기술을 선보이는 것이었다. 아라카와는 이토조차 얻지 못했던 금메달을 획득의 과업을 이루었지만 결정적으로 "이토 미도리 = 트리플 악셀" 이란 등식처럼 아라카와 시즈카에게는 마땅히 내세울 만한 것이 없었다. 일본은 "기술"이라는 것을 대단히 중시하는 사회이며, 기술을 바탕으로, 기술을 중심으로 사회 모든 것이 발전해왔다. 전자회사, 자동차회사 모두 일본의 기술을 자랑하며, 심지어 작은 필기구까지도 기술을 내세워 광고하고 자랑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일본의 기술" 에 대해 무한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단지 산업 뿐만이 아닌 스포츠 경기에서도 기술의 우위를 자랑하는 것이 그들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자기만족의 방식이었다. 그들이 바라던 것은 "세계의 어느 누구보다 위대한 기술을 가진 일본인 선수" 라고 치켜세울 수 있는 영웅이었고, 미키를 주목하고 응원하는 것을 넘어 국민적 아이돌처럼 만들어간 것은 올림픽 무대에서 그 누구도 아직까지 하지 못한 쿼드 살코를 성공시키는 새로운 일본인 스타 탄생에 대한 바람이었다. 

그러나 언론은 미키가 더이상 쿼드 살코를 뛸 수 없음을 깨달아버렸다. 자연히 미키에 대한 언급이 줄어들고, 그녀에게 쏠린 관심을 돌릴 다른 대상을 찾기 시작한다. 미키티를 대체할 새로운 아이돌을 찾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미 새로운 아이돌은 그것은 "트리플 악셀"이라는 비장의 무기를 가진 아사다 마오였다. 일본인이 좋아하는 둥근 얼굴형에 동그랗고 큰 눈, 차분한 말투와 성실한 연습 태도, 그리고 재능까지 갖춘 소녀, 그리고 그녀에게는 국민적인 감정을 끌어내기 좋은 한국의 동갑내기 라이벌도 있었다. 이제 미키티의 존재는 거추장스러울 뿐이었다. 한 하늘에 태양이 둘이 있을 수 없듯이 미키티에 대한 관심은 식어갈 수밖에 없었다.


호주의 사만다 스토서(10위)가 예상을 깨고 대회 네 번째 우승에 도전하던 서리나 윌리엄스(미국·27위)를 격침시키고 2011 US오픈 여자 단식에서 우승하면서 생애 첫 그랜드슬램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2011 US오픈 여자 단식 우승자 사만다 스토서 ⓒ Philip Hall/USTA

스토서가 세계 무대에 이름이 알려지게 된 것은 2009년 프랑스오픈이었다. 아무리 영국의 영향을 받아 테니스가 보급되고 발전하였다고 하나 인구가 적고 남반구에 동떨어진 호주가 세계 테니스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20세기 테니스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선수들이 많았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그러나 최근 호주 테니스는 스타 부재 속에 남녀 모두 부진한 성적으로 애를 태우고 있다가 롤랑 가로에서 스토서의 깜짝 4강으로 모든 신문들이 1면 머릿기사로 낼 만큼 화제가 되었다.

사실 스토서는 단식보다는 복식에 더 치중하는 선수였고, 복식에서는 나름대로 성적을 내오던 터라 호주에서는 스토서의 활약을 비중있게 보도하면서도 반신반의하던 것이 없지 않았다. 단식에서는 크게 유명하지 않았지만 복식에서는 이미 2005년에 US오픈 우승을 경험한 것을 비롯하여 그랜드슬램에서 우승 2회와 준우승 5회를 차지하였고, 연말 챔피언쉽에서도 두 차례의 우승 경험을 비롯하여 23회의 WTA투어 우승을 거둔 실력자였다. 스토서는 프랑스오픈 이후 복식보다는 단식에 포커스를 맞추기 시작했는데 윔블던과 US오픈에서는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하며 관심이 살짝 사그러들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에서 열린 HP오픈에서 WTA 투어 단식 첫 우승을 차지하였고, 작년에 패밀리 서클 컵 우승에 이어 프랑스오픈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호주를 대표하는 선수로서 자리매김을 확실히 하였다.

 

대회 14일째 (9월 11일, 현지시간)

<여자 단식 결승>

사만다 스토서(호주, 9번 시드) 2 : 0 (6-2 6-3) 서리나 윌리엄스(미국, 28번 시드)

경기 전 긴장된 사진 촬영 ⓒ Philip Hall/USTA

서리나는 이번 대회에서 전현직 세계 1위 선수들을 가볍게 완파하며 결승에 진출하면서 부상 복귀 후 16연승을 이어가는 중이었다. 경기의 내용을 보더라도 단 한 세트도 내주지 않으며 범접할 수 없는 위용을 보여주었고, 빅토리아 아자렌카, 아나 이바노비치, 아나스타샤 파블류첸코바에 이어 카롤리네 보스니아키까지 무릎을 꿇고 말았다. 서리나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하면 매번 같은 말을 하여 미안하지만 여자 선수로서는 믿기지 않을 만큼의 강력한 파워다. 서브는 언니인 비너스에 비하여 대략 10km/h 정도 느린 편이지만, 단단한 근육질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묵직한 스트로크로 베이스라인을 공략하여 상대를 꼼짝하지 못하게 하는 단순하지만 치명적인 플레이를 한다. 이번 대회에서 수비라고 하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이바노비치와 보스니아키를 손쉽게 때려눕힌 것만 보아도 서리나는 전성기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다시 세계 최강의 자리에 올라설 수 있을 만큼의 기량이 회복되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이미 US오픈 3회 우승과 함께 그랜드슬램 13회 우승이라는 현역 최고의 경험 역시 결승전이라는 부담스러운 경기에서 중요한 자산이었다.

강서버 서리나 윌리엄스 ⓒ Philip Hall/USTA

이에 맞서는 스토서는 작년 프랑스오픈 이후 두 번째 그랜드슬램 결승이었는데(단식), 이번 대회에서 가장 치열한 경기를 통해 결승에 올라왔다. 나디아 페트로바와 마리아 키릴렌코 등 러시아 선수들과 대회 최장 시간 경기와 타이브레이크 최다 스코어의 기록을 세우면서 올라왔고, 준결승에서도 안젤리크 케르베르와 풀세트 경기를 하여 승리를 하였다. 남자 선수를 연상시키는 근육질 몸매와 기계와도 같은 무표정한 얼굴의 그녀가 비록 파워는 밀리지만 기동력이 현저히 떨어진 서리나의 약점을 공략할 수 있을 것인지가 경기의 승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였다.

근육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스토서 ⓒ Philip Hall/USTA

스토서는 1-1로 맞선 세 번째 게임에서 이변의 시작을 알렸다. 15-15에서 서리나는 스토서를 좌우로 흔들어 만든 기회에서 회심의 포핸드가 벗어났지만 서브 에이스를 날리며 30-30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어진 랠리에서 스토서의 백핸드 발리가 네트를 맞고 넘어가 코트에 떨어지면서 브레이크 포인트가 되었고, 스토서가 서리나를 오른쪽으로 몰아놓고 왼쪽 베이스라인으로 날린 스트로크를 서리나가 받아낸 공이 라인을 벗어나며 2-1로 앞서게 되었다. 스토서는 차분히 서브 게임을 지키고 이어진 서리나의 서브 게임도 다시 브레이크 포인트에 도달하였지만 두 번의 듀스 끝에 아쉽게 내주며 3-2로 리드를 이어갔다. 여기서부터 2세트 첫 게임 15-0까지 스토서의 놀라운 13연속 포인트가 나오는데 스토서는 가볍게 서브 게임을 러브 게임으로 이기며 4-2를 만들었다. 서리나는 반격이 필요한 시점이었지만 스토서의 날카로운 서브 리턴과 실책이 이어지며 한 점도 내지 못하고 두 번째 브레이크를 허용했고, 다음 게임에서도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1세트를 31분만에 6-2로 내주었다.

스토서는 서리나의 서브를 효과적으로 공략하여 재미를 보았다 ⓒ Philip Hall/USTA

스토서는 2세트 시작을 브레이크로 장식하며 서리나를 강하게 압박했다. 이 브레이크는 스토서에게 정말 운이 따르는 것이었는데, 15-15에서 스토서에게 스매시와 강한 포핸드 서브 리턴을 맞고 더블 브레이크 포인트에 몰린 서리나는 서브 에이스로 40-30을 만들고 이어진 랠리에서 듀스로 가는 포핸드 위너를 날렸다. 스토서는 미처 따라가지 못하여 받아내지 못하였지만, 주심 에바 애스더라키는 서리나가 샷을 날린 후 스토서의 플레이가 종료되기 전 "컴온" 을 외쳐 방해하였다면서 스토서의 포인트를 인정하면서 서리나는 서브 게임을 잃고 말았다. 그러나 독오른 서리나는 스토서의 서브 게임을 빼앗으며 동점을 만들었고, 서브 게임을 잘 지켜내면서 3-2로 리드를 잡았다.

서리나의 "컴온" 과 심판과의 언쟁

고전하는 서리나 ⓒ Philip Hall/USTA

서리나가 슬슬 회복하는 듯하였던 경기는 스토서의 놀랄 만한 4게임 연속 승리로 싱겁게 끝이 나버렸다. 스토서는 30-30에서 서리나의 포핸드 실책과 포핸드 위너로 승리하며 3-3 동점을 만들었고, 이어진 게임도 서리나의 세컨드 서브를 공략하여 포핸드 위너와 서리나의 연속된 백핸드 실책을 묶어 승리하면서 4-3으로 역전에 성공했다. 서브 게임을 지키며 5-3으로 달아난 스토서는 경기의 마지막 게임이 된 아홉 번째 게임을 맞이했다. 15-15에서 연속으로 백핸드를 네트와 밖으로 날려버리며 더블 매치 포인트에 몰린 서리나는 스매시와 포핸드 공격으로 간신히 듀스를 만들며 위기에서 탈출했다. 여기서 빛이 난 것은 더블 매치 포인트를 잃었지만 침착함을 잃지 않은 스토서였다. 스토서는 두 번의 포핸드 위너를 연속하여 서리나의 왼쪽으로 날리며 자신의 첫 US오픈과 그랜드슬램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이다! ⓒ Philip Hall/USTA

스토서는 우승 직후 가족들이 있는 응원석으로 올라가 함께 기쁨을 나누기도 ⓒ Philip Hall/USTA

준우승자와 우승자 ⓒ Philip Hall/USTA

스토서의 우승은 이본 굴라공 코울리가 1980년 윔블던 여자 단식 우승을 차지한 이후 31년만의 호주 선수의 그랜드슬램 우승이며, US오픈에서는 1973년 마거릿 코트 이후 38년만이다. 남자 선수까지 포함한다면 2001년 레이튼 휴잇의 US오픈 우승 이후 10년만이다. 서리나는 경기 패배 후 스토서에게 축하 인사를 하였지만, 심판과 악수를 하지 않으면서 이 장면이 중계 카메라에 잡히며 뒤끝을 보여주었다. 서리나의 잘못이라고 보여지지만, 과거 심판들과의 악연이 있었기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았나 싶다. 아쉽게 복귀 후 연승을 마감하게 되었지만 다시 그랜드슬램에서 결승까지 오르는 저력을 보여주며 앞으로 남은 시즌과 내년에 더 좋은 활약을 기대하게 하였다.

 

로저 페더러(스위스·3위)는 다시 세월의 무상함을 느꼈을 경기였다. 먼저 두 세트를 따내고도, 더블 매치 포인트에서 단 한 점을 내지 못하며 내리 네 게임을 내주고 다 잡았던 결승행 티켓을 놓치고 말았다. 페더러는 2년 연속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1위)에게 US오픈 준결승에서 패하면서 올해 그랜드슬램 무관으로 시즌을 마치게 되었고, 2003년 이래 매년 최소 한 개 이상의 그랜드슬램 우승을 하던 기록이 중단되었다. 윔블던에서 조코비치에게 패하며 타이틀 방어에 실패했던 디펜딩 챔피언 라파엘 나달(스페인·2위)은 다시 챔피언 자리를 놓고 조코비치와 다시 맞붙게 되었다.

페더러와 동갑내기인 서리나 윌리엄스(미국·27위)는 세계 1위인 카롤리네 보스니아키(덴마크)를 맞아 승리하며 통산 네 번째 우승에 도전하게 되었는데, 페더러는 먼저 두 세트를 이기면 결승에 진출하는 여자 경기를 보면서 그랜드슬램 남자 단식이 5세트 경기인 것을 원망할지도 모를 일이다.

 

조코비치의 환호 ⓒ Getty lmages

대회 13일째 (9월 10일, 현지시간)

<남자 준결승>

정상적인 대회 진행이 이루어졌다면 토요일(10일) 오후에 여자 결승, 그리고 일요일(11일) 오후에 남자 결승이 열리면서 대회가 끝났겠지만, 이틀 간의 우천으로 인해 대개 하루씩 먼저 열리는 여자 준결승이 남자 준결승과 같은 날에 열리고, 결승전은 하루씩 밀리는 새로운 일정이 발표되었다.

빅4의 전원 생존으로 최고의 카드가 만들어진 남자 준결승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페더러의 행보에 모든 관심이 쏠렸다. 윔블던부터 대회 직전까지 부진했지만 이번 대회만을 노린 듯이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것도 있고, 그냥 페더러의 경기 내용에 따라 우승자가 달라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조코비치가 페더러를 이기면 우승은 그의 차지가 될 것이고, 페더러가 이기면 나달이 우승을 할 것이라는 페더러 팬들에게는 미안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페더러가 조코비치와 나달에게 밀리는 것은 그 지겨운 한 손 백핸드의 고질적인 약점은 뒤로 하더라도 스피드와 체력적인 면의 열세가 가장 크기에 두 선수를 상대로 긴 랠리를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이 경기에서 이길 것이라 믿었을 페더러 ⓒ Philip Hall/USTA

전성기에는 상대를 압도하는 기량으로 굳이 풀세트 접전을 치를 필요가 없던 페더러였지만, 이제 그의 기량이 쇠퇴하고 그를 밀어낼 만큼 성장한 어린 선수들과의 상대하면서 경기가 길어질수록 고전하는 일이 많아졌고, 최근 풀세트 경기에서의 저조한 승률은 현재 그가 처한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하고 있다. 이를 의식한 페더러는 초반부터 우세를 잡기 위한 노력을 했고, 1세트를 타이브레이크 끝에 따내고 2세트마저 조코비치의 갑작스런 난조를 놓치지 않고 서브 게임을 브레이크하여 승리하며 결승까지는 단 한 세트만을 남겨두었다. 그러나 3,4세트에서 페더러의 움직임은 급격이 둔해졌지만 조코비치의 샷은 페더러를 계속 움직이게 하면서 괴롭혔다. 페더러의 실책은 갑자기 늘어나기 시작했고 3세트에 이어 4세트마저 일찌감치 승부가 난 듯하자 5세트에 총력을 다하기 위하여 힘을 아끼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러나 점점 어두워진다 ⓒ Philip Hall/USTA

결국 승부를 가른 것은 5세트였다. 페더러는 4-3에서 조코비치의 서브 게임을 브레이크하며 5-3으로 앞서며 서브 게임을 맞아 경기를 끝낼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조코비치의 강력한 포핸드 리턴 득점에 이어 페더러의 포핸드가 네트를 맞고 튀면서 옆으로 나가면서 듀스가 되었고 결국 페더러는 이 게임을 더블 폴트로 조코비치에게 내주고 말았다. 끝낼 기회를 놓친 페더러에게 남은 것은 지옥과도 같았을 4연속 게임 패배와 함께 믿기지 않는 역전패였다. 전성기 시절 워낙 압도적인 경기를 해서일까 페더러는 이런 긴장된 승부처에서는 약해지는 모습이 있는 듯하다. 듀스가 되었더라도 페더러는 여전히 유리한 상황이었고, 게임을 브레이크 당한 후에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는 너무 힘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조코비치의 3:2(6(7)-7 4-6 6-3 6-2 7-5) 대역전승.

조코비치가 기사회생한 5세트 페더러의 더블 매치 포인트

 

조코비치 날다 ⓒ Andrew Ong/USTA

앤디 머리의 팬에게는 참 미안한 이야기지만 여전히 머리는 빅4라고 불리면서도 다른 세 선수와 자신과 사이에 보이지 않는(어쩌면 뚜렷하게 보이는 것일수도 있다) 그 벽을 넘어서지 못하며 나달에게 다시 패하며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개인적으로는 우승을 한 번 하고 나면 더 발전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랜드슬램 준결승에서 계속 나달을 만나는 것이 불운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동갑내기인 조코비치가 이미 페더러-나달의 시대를 마감하고 자신의 시대를 열어가는데 반하여 여전히 라이벌들을 빛나게 해주는 명품 조연의 역할에 그치고 있다.

어찌보면 참 불쌍한 앤디 머리 ⓒ Philip Hall/USTA

이 중요한 경기에서도 경기 내용이 들쑥날쑥한 고질적인 문제는 나아지지 않아서 톱 랭커들과의 승부에서 늘 고배를 들 수밖에 없는 그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고 말았다. 1세트 2-1로 앞선 나달은 네 번째 게임에서 더블 브레이크 포인트의 기회를 잡았지만 리턴 실패와 머리의 발리로 듀스를 허용했고 다시 서브 리턴에 실패하면서 머리에게 어드밴티지를 허용했다. 그러나 백핸드 실책으로 다시 듀스로 돌아간 머리는 서브로 득점하며 다시 게임을 이길 기회를 잡았지만 또 백핸드 실책으로 듀스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두 번의 기회를 놓친 머리에게 세 번째 기회는 없었는데 더블 폴트와 포핸드 실책으로 게임을 내주면서 3-1로 뒤지게 되었다. 이 한 번의 브레이크가 1세트의 승부를 갈랐고 6-4로 나달이 승리하였다. 2세트는 머리의 고질병인 집중력 부족이 드러나며 힘도 써보지 못한 채 나달이 6-2로 승리했다.

나달의 환호 ⓒ Philip Hall/USTA

나달의 쉬운 승리로 끝나기에는 팬들에게 미안했는지 머리는 3세트에서 분발하여 나달과의 스트로크 대결에서 밀리지 않으며 6-3으로 이기며 4세트에 돌입하게 되었다. 4세트 초반에는 경기가 팽팽하게 진행되면서 5세트까지 경기가 이어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네 번째 게임에서 나달은 결정적인 브레이크를 하며 머리에게 넘어갔던 경기 주도권을 빼앗아왔다. 1세트 나달의 브레이크와 마찬가지로 나달의 더블 브레이크 포인트에서 듀스 2회의 접전을 거친 후 더블 폴트와 포핸드 실책으로 머리가 서브 게임을 내주면서 3-1이 되었다. 나달은 서브 게임을 지키며 리드를 4-1로 벌렸고 머리는 3세트에서처럼 나달의 백핸드를 공략하면서 기습적으로 포핸드를 노리던 전술이 나오지 않으면서 무너지고 말았다. 나달의 3:1(6-4 6-2 3-6 6-2) 승리. 4세트 경기였지만 두 선수의 랠리가 길게 이어지며 경기 시간은 3시간 24분이나 걸렸다. 이로써 조코비치와 나달은 윔블던에 이어서 그랜드슬램 두 대회 연속으로 결승에서 맞붙게 되었다.

 나달의 서브 ⓒ Philip Hall/USTA

<여자 준결승>

No.1 보스니아키의 가장 큰 장점은 안정된 수비력이다. 공격은 컨디션에 따라 기복이 심하지만 안정된 수비는 지지 않는 경기의 바탕이 되기에 보스니아키가 시즌 내내 경기를 치르면서 그랜드슬램에서 변변찮은 성적을 거둠에도 압도적인 랭킹 1위를 달릴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는 창이 방패를 뚫을 만큼 날카롭지 못할 때에나 가능한 일이지 이 날처럼 서리나가 강력한 서브를 퍼부으면서 경기를 주도하는 날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랜드슬램은 정녕 그녀에게 인연이 아닌가 ⓒ Philip Hall/USTA

1세트는 2-1로 앞서던 서리나가 연속으로 보스니아키의 서브 게임을 브레이크하면서 5-1로 앞서면서 손쉬운 승리를 챙겼다. 네 번째 게임에서 트리플 브레이크 포인트에 몰렸던 보스니아키는 친절한 서리나의 3연속 라인을 벗어나는 실책으로 듀스를 만들며 기사회생했지만 세 번의 어드밴티지를 살리지 못하고 서브 게임을 내주었다. 2세트에서도 보스니아키는 2-1에서 서리나의 발리와 포핸드에 30-0으로 밀리더니 빗맞은 포핸드가 로브같이 들어가면서 서리나에게 사이드라인 근처로 떨어지는 포핸드 위너를 맞으며 트리플 브레이크 포인트에 몰렸다. 여기가 승부처임을 직감했을까 보스니아키는 더블 폴트로 게임을 내주며 1세트의 악몽을 되풀이하는가 싶었다. 그러나 서브 게임을 잘 지키면서 반격의 여지를 마련한 보스니아키는 5-3으로 뒤진 아홉 번째 게임에서 중요한 브레이크를 하면서 패배의 위기에서 일단 벗어났다. 서리나는 서브 에이스로 깔끔한 출발을 보였지만 더블 폴트로 동점이 되었다. 강서브에 이은 스매시로 30-15로 앞서며 경기를 끝낼 듯하였지만, 포핸드가 베이스라인을 벗어나고 네트에 걸리며 브레이크 포인트에 몰렸고 다시 더블 폴트를 범하며 게임을 내주며 5-4로 쫓겼다. 기사회생한 보스니아키는 서리나의 포핸드가 사이드라인을 벗어나며 기분 좋은 출발을 하였지만, 서리나의 포핸드를 두 번이나 맛을 본 다음 백핸드가 네트에 걸리며 매치포인트에 몰렸다. 보스니아키의 첫 서브가 폴트가 되면서 세컨드 서브를 잔뜩 노리고 기다리던 서리나는 강력한 백핸드 리턴을 날렸고, 보스니아키가 받아 친 공이 네트에 걸리며 경기는 끝났다. 2:0(6-2 6-4)으로 서리나가 승리하면서 통산 네 번째 우승에 단 1승만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

30대의 힘 서리나 윌리엄스 ⓒ Don Starr/USTA

다른 준결승 세 경기가 메인 경기장인 아더 애쉬 스타디움에서 열린 반면 상대적으로 인기가 적었던 사만다 스토서(호주·10위)와 안젤리크 케르베르(독일·92위)의 경기는 그랜드스탠드에서 열렸다. 앞의 세 경기를 보느라 직접 보지는 못하였는데 스토서가 2:1(6-3 2-6 6-2)로 케르베르를 이기고 생애 처음으로 대회 결승에 진출했다. 경기 결과를 놓고 보면 네트 플레이로 얻은 점수에서 스토서가 27-9로 압도적으로 많은데 스토서의 많은 복식 경기 경험이 큰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다.

기뻐하는 스토서 ⓒ Don Starr/USTA

비로 인해 연기된 단식 경기들이 전날 모두 열리면서 대회 종료를 하루 늦추어 잔여 경기를 치르는 것으로 일정상의 문제는 조절이 될 듯한 가운데 아직 8강 경기를 하지 못한 남자 선수 4명의 경기가 열렸다. 여자 선수들은 하루 휴식을 취하는 가운데 그동안 연기된 경기를 소화하는 일정에서도 단식 경기에 밀려있던 복식과 주니어 경기 등이 진행되었다.

남자 4강 나머지 두 장의 티켓은 라파엘 나달(스페인·2위)과 앤디 머리(영국·4위)에게 돌아가면서 남자 단식은 상위 4명의 시드 배정자가 4강에서 맞붙는 최상의 대진을 이루어지면서 프랑스오픈에 이어 두 번째 "꿈의 4강"이 이루어졌다. 대진은 지난 번과 마찬가지로 조코비치-페더러와 나달-머리의 승자가 결승에서 맞붙게 된다.

이번 시즌 두 번째 빅 4의 드림 세미파이널이 열린다

 

대회 12일째 (9월 9일, 현지시간 기준)

<남자 8강>

유럽파의 나달과 머리가 각각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안은 미국의 앤디 로딕(21위)과 존 이스너(22위)와 대결하게 되었다. 랭킹과 그동안의 경기 전적으로 보나 최근의 경기력으로 보나 쉽게 예상이 가능한 경기였으나 워낙 강력한 서브를 넣는 선수들이라는 점이 희박하지만 혹시나 하는 조금의 기대를 갖게 하였다.

준결승에 진출한 앤디 머리 ⓒ Getty Images

머리와 이스너의 경기는 그런 기대를 어느 정도 충족시켰는데 이스너는 경기 내내 첫 서브의 평균 속도가 어지간한 선수들의 최고 속도와 맞먹는 125mph를 기록할 정도로 강한 서브를 앞세워 서브 게임만큼은 지켜나가는 경기를 하였다. 그러나 1세트 막판 균형이 깨지고 마는데 5-5에서 머리가 경기 첫 브레이크를 기록하면서 역전에 성공했다. 이스너는 머리에게 포핸드 위너를 두 번 허용하며 30-15로 뒤진 상황에서 더블 폴트를 저지르며 브레이크 포인트에 몰렸다. 당황한 이스너는 발리에서 실수를 저지르며 게임을 내주었고, 머리가 서브 게임을 지키면서 7-5로 승리하였다. 2세트 역시 단 한 번의 브레이크가 승부를 갈랐다. 첫 게임에서 이스너는 연속해서 포핸드 실책을 범하며 30-0으로 밀렸고 머리는 이스너의 스매시를 받아낸 후 포핸드 위너를 날리며 트리플 브레이크 포인트로 압박했다. 이스너는 압박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네트에 공을 꽂으며 게임을 내주었다. 이 게임에서 밀린 이스너는 끝까지 회복하지 못하고 6-4로 두 번째 세트 역시 내주었다.

비록 졌지만 가능성을 보여준 강서버 이스너 ⓒ Philip Hall/USTA

그러나 이스너는 3세트 두 번째 게임을 머리의 실책에 힘입어 세 번의 듀스 끝에 브레이크하면서 리드를 잡았다. 역시 브레이크 하나가 세트의 승패를 좌우하면서 6-3으로 이스너가 승리했다. 4세트는 두 선수 모두 서브 게임을 지키며 6-6까지 팽팽한 승부가 이어졌고, 타이브레이크에서 집중력이 높았던 머리가 승리하였다. 머리는 백핸드 드롭샷으로 먼저 점수를 낸 후, 이스너의 서브를 받아내지 못하며 동점을 허용했으나 이스너가 더블 폴트를 저지르며 2-1로 리드를 잡았다. 서브를 가져온 머리는 이스너의 좋지 않은 리턴을 받아쳐 포핸드 위너를 날렸고 다음 랠리에서는 날카로운 백핸드를 사이드라인에 떨어뜨리며 4-1로 점수차를 벌렸다. 이스너는 머리의 어정쩡한 리턴을 포핸드 위너로 한 점을 따라붙었지만 발리와 포핸드 드롭이 연속으로 네트에 걸리며 6-1 매치포인트에 몰렸다. 부담감이 컸을까 이스너는 머리의 서브를 라인 밖으로 받아치면서 경기는 머리의 3:1(7-5 6-4 3-6 7-6(1)) 승리로 끝났다.

윔블던에 이어 다시 머리와 준결승에서 겨루게 된 디펜딩 챔피언 나달 ⓒ Philip Hall/USTA

이스너는 어느 정도 자신의 경기를 하다가 실책으로 무너졌다지만 이어진 경기의 로딕은 나달이 가지고 놀았다는 표현이 적당할 정도로 처참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서브에 의존하는 로딕의 첫 서브 성공률이 60%를 밑돌면서 나달은 세컨드 서브를 반격하여 리시브의 절반을 득점으로 연결했다. 스트로크 랠리가 이어질 경우 불리한 로딕은 서브 앤 발리를 위해 네트로 달려들었지만 나달은 로딕의 움직임을 읽고 빈 곳을 노려 공략하였다. 움직임이 느린 로딕은 속수무책으로 지켜보기만 하였고 발리도 실책이 이어지며 서브 게임을 지키는 것조차 어려웠다. 나달은 1시간 53분만에 3:0(6-2 6-1 6-3)으로 완승을 거두었다.

나달은 로딕의 약점인 백핸드를 집중 공략하여 그의 공격을 철저히 봉쇄했다 ⓒ Andrew Ong/USTA

준결승에서 프랑스오픈과 같은 매치업이 이루어졌는데 나달과 조코비치의 리턴 매치 혹은 최고의 흥행카드인 나달-페더러의 경기 등 어떤 대진이 나오더라도 재미있는 경기가 될 것 같다. 페더러나 조코비치나 나달이 떨어지기를 바라고 있을 것 같지만.

대회 9일째와 10일째인 9월 6일과 7일 비로 인해 모든 경기가 취소되거나 중단되면서 US오픈 경기 일정에 큰 지장을 초래하였다. 9일째는 남자 4라운드와 여자 8강 경기, 그리고 10일째는 남녀 8강 경기가 열릴 예정이었으나 일정이 꼬이면서 대회 기간이 늘어나는 것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하루 정도의 경기 취소는 다음 날에 경기를 나누어 소화할 수 있겠지만 이틀이나 경기가 열리지 못해 경기를 제 때 치르지 못한 선수들의 경우 컨디션 조절도 큰 변수가 될 것 같다.

송가를 누르고 준결승에 진출한 로저 페더러 ⓒ Rob Loud/USTA

 

대회 11일째 (9월 8일, 현지시간 기준)

<남자 4라운드>

여심을 사로잡는다는 나달의 상의 탈의 ⓒ Philip Hall/USTA

비로 인해 이틀 동안 경기를 하지 못한 8명의 선수들이 8강 진출을 위한 대결을 펼쳤다. 라파엘 나달(스페인·2위)은 질레스 뮐러(룩셈부르크·68위)와 윔블던에 이어 다시 맞붙었는데, 7일 경기를 하다가 1세트에서 뮐러가 3-0으로 앞선 상황에서 비로 중단된 경기를 재개하였다. 경기 연기가 큰 도움이 되었는지 나달은 재개된 경기에서의 첫 게임인 네 번째 게임을 러브 게임으로 따내며 추격에 나섰다. 이어진 게임에서 뮐러 역시 지지 않고 서브 에이스 두 개를 포함하여 러브 게임으로 이기며 4-1로 앞서 나갔는데, 여기서부터 뮐러의 실책쇼와 나달의 환상적인 스트로크가 터지기 시작했다. 나달은 연달아 세 게임을 따내며 4-4 동점을 만들었고 6-6에서 타이브레이크에 돌입한 후 상대의 허를 찌르는 날카로운 포핸드 스트로크로 뮐러를 단 1점으로 묶어놓으며 1세트를 이겼다. 왼손잡이끼리의 대결이어서 흥미로웠으나 나달은 발빠른 움직임으로 백핸드로 받을 것도 포핸드로 받아치며 공격적으로 나섰고, 집요하리만큼 상대의 백핸드 코스로 공을 보내어 묶어놓은 후 반대쪽 사이드라인과 베이스라인을 노려 스트로크를 날리며 경기를 압도했다. 2세트부터는 완벽한 나달의 일방적인 게임으로 진행되었고 3:0(7-6(1) 6-1 6-2) 나달의 승리로 끝났다.

늘 2% 부족했던 머리가 이번에는 그 부족함을 채울 수 있을지 ⓒ Andrew Ong/USTA

앤디 머리(영국·4위)는 도날드 영(미국·84위)의 돌풍을 잠재우며 8강에 진출했다. 머리는 자신은 지금까지 영이 상대해왔던 선수들과 급이 다른 선수임을 보여주려는 듯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머리는 서브에서 난조를 보였음에도 강하고 정확한 스트로크로 영을 괴롭혔고, 영은 그의 뜻대로 실책을 남발하며 졌다. 머리의 3:0(6-2 6-3 6-3) 완승.

볼에 바람을 넣어 풍선을 만드는 특이한 취미의 소유자 로딕 ⓒ Andrew Ong/USTA

앤디 로딕(미국·21위)은 비로 인해 루이 암스트롱 스타디움 대신 13번 코트에서 펼쳐진 경기에서 다비드 페레르(스페인·5위)를 누르고 3년만의 8강 진출에 성공했다. 로딕은 2:1로 앞선 4세트에서 2-2로 팽팽히 맞서다 서브 게임을 브레이크당하며 위기에 빠졌다. 그러나 이어진 게임에서 40-15로 앞서던 페레르가 갑자기 포핸드와 백핸드 실책을 연속으로 저지르며 듀스에 접어들었고, 로딕은 경기에서 자주 보기 힘든 백핸드 위너와 페레르의 실책을 묶어 게임을 따내며 3-3 동점을 만들었다. 기세가 오른 로딕은 강한 서브를 넣으며 지친 페레르를 압박했고, 페레르는 중요한 순간에서 실책을 잇달아 저지르며 내리 세 게임을 모두 지고 말았다. 로딕의 3:1(6-3 6-4 3-6 6-3) 승리. 로딕은 경기 후 13번 코트 관중석 주변을 한 바퀴 돌면서 자신을 응원하는 팬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이번 대회에서 이스너는 놀랄만한 기량을 보여주었는데 반짝이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 ⓒ Philip Hall/USTA

존 이스너(미국·22위)는 질레스 시몬(프랑스·12위)과의 경기에서 세 번의 타이브레이크를 승리로 이끌며 3:1(7-6(2) 3-6 7-6(2) 7-6(4)) 승리를 거두고 8강에 합류했다. 이스너의 그랜드슬램 8강 진출은 이번이 처음이다.

<남자 8강>

전날 예정되어 있던 남자 8강 경기 중 두 경기 역시 열렸다. 친한 친구 사이인 두 세르비아 선수의 맞대결인 노박 조코비치(1위)와 얀코 팁세라비치(20위)의 경기와 윔블던 8강의 리벤지 매치인 로저 페더러(스위스·3위)와 조-윌프리드 송가(프랑스·11위)의 경기였다.

"내가 제일 잘 나가" 의 조코비치 ⓒ Andrew Ong/USTA

조코비치는 팁세라비치를 맞아 이번 대회에서 가장 어려운 경기를 펼쳤다. 1세트와 2세트는 모두 타이브레이크까지 가는 접전 끝에 서로 한 세트씩 나누어 갖고 3세트를 맞이했다. 그런데 팁세라비치의 움직임이 둔해지면서 공격이 무뎌지고 수비가 느슨해지자 팽팽했던 경기의 양상이 조코비치의 압도적인 경기로 바뀌었다. 조코비치는 3세트를 6-0에 이어 4세트에서 연달아 세 게임을 이기며 아홉 게임을 연속으로 이기며 경기를 지배했다. 이 때 왼쪽 허벅지 햄스트링을 느낀 팁세라비치가 기권하면서 경기는 싱겁게 끝이 났다. 조코비치 입장에서는 팁세라비치가 조금 빨리 포기하기를 바랐겠지만, 모처럼 조코비치와 좋은 승부를 펼친 팁세라비치의 아쉬움도 클 것 같다.

멋있지만 치명적 단점이 되어버린 페더러의 한 손 백핸드 ⓒ Don Starr/USTA

조코비치가 찜찜한 기권승으로 준결승에 진출한 반면 페더러는 송가를 3:0(6-4 6-3 6-3)으로 제압하며 화끈한 복수전을 펼쳐 주목을 받았다. 페더러는 1세트에서 먼저 송가의 서브 게임을 잡아내며 3-1로 달아났지만 실책에 발목이 잡히며 연속으로 세 게임을 내주며 3-4로 밀리는 처지가 되었다. 그러나 서브 게임을 챙기며 동점을 만든 페더러는 송가의 연속된 실책 세 개를 놓치지 않고 밀어붙여 5-4로 재역전시킨 후 마지막 게임을 러브 게임으로 잡아내며 이겼다. 윔블던에서 3세트 이후 체력이 떨어지며 송가의 공세를 견디지 못했던 것과는 달리 페더러는 꾸준히 페이스를 유지하며 경기를 쉽게 이기면서 조코비치와 결승행을 놓고 다투게 되었다. 올해 페더러와 조코비치는 호주오픈과 프랑스오픈에 이어 그랜드슬램 준결승에서 세 번째 맞붙는데 지난 두 번의 승부에서는 1승 1패로 호각을 이루고 있다.

 

<여자 8강>

이틀로 나뉘어 열릴 예정이던 경기가 모두 비로 연기되면서 하루에 모두 열렸다. 이대로라면 여자 결승의 경우 예정되었던 10일(토요일 오후)에 열리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

생각에 잠긴 서리나 ⓒ Philip Hall/USTA

최근 미국 남녀 선수들의 동반 부진 속에 서리나 윌리엄스(27위)의 화려한 부활은 대회가 열리는 미국에서 가뭄 속의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10살 어린 아나스타샤 파블류첸코바(러시아·16위)를 맞아 2:0(7-5 6-1) 완승을 거두며 4강에 올랐다. 비로 인한 이틀 간의 휴식이 독이 되었는지 두 선수는 시작부터 실책을 많이 저지르며 상대의 서브 게임을 계속 브레이크하며 3-3으로 팽팽한 흐름을 이어갔다. 서리나가 일곱 번째 게임만에 서브 게임을 지킨 후로는 두 선수 모두 상대에게 브레이크를 허용하지 않아 5-4에서 파블류첸코바의 서브 게임을 맞이했다. 파블류첸코바는 연속으로 더블 폴트를 저지르며 30-0으로 뒤지면서 위기를 맞이했지만 침착하게 네 포인트를 따내며 벗어났고, 6-5로 서리나가 앞선 채 경기의 승부처가 된 열두 번째 게임에 돌입했다. 서리나는 상대 실책과 백핸드로 30-0으로 앞섰지만 실책과 파블류첸코바의 포핸드에 동점을 허용했다. 서리나가 백핸드 위너로 먼저 세트 포인트에 도달했지만, 파블류첸코바 역시 백핸드로 듀스를 만들며 다시 위기를 벗어났고 서브를 서리나가 받아내지 못하며 파블류첸코바의 어드밴티지가 되었다. 그러나 서리나는 12번의 긴 랠리 끝에 파블류첸코바의 포핸드 실책으로 다시 듀스를 만들더니 연속으로 두 포인트를 더해 1세트를 이겼다. 2세트는 서리나의 일방적인 흐름이었는데 파블류첸코바가 더블 폴트로 자멸하면서 손쉬운 승리를 헌납하였다.

무관의 여제 캐로 ⓒ Philip Hall/USTA

로딕과 페레르의 경기와 마찬가지로 13번 코트로 옮겨 열린 카롤리네 보스니아키(덴마크·1위)와 안드레아 펫코비치(독일·10위)의 경기는 2:0(6-1 7-6(5)) 보스니아키의 승리로 끝났다. 수비 불안과 실책으로 허무하게 1세트를 내준 펫코비치는 2세트에서는 각성한 듯 보스니아키와 치열한 접전을 벌였다. 캐로가 2-1로 앞선 네 번째 게임에서 펫코비치는 4연속 실책으로 서브 게임을 내주며 위기를 맞이했지만, 네트플레이를 앞세워 캐로의 서브 게임을 브레이크하고, 듀스 접전 끝에 서브 게임을 지켜내면서 3-3 동점을 만들었다. 그러나 펫코비치는 다시 한 번 서브 게임을 빼앗기며 5-3으로 뒤져 위기를 맞이했는데. 캐로의 더블 폴트와 백핸드로 브레이크하며 숨을 돌리고 서브 게임을 지켜내며 5-5 동점을 만들었다. 두 선수 모두 서브 게임을 지키며 맞이한 타이브레이크는 3-3 이후 승부가 갈렸다. 펫코비치는 3연속 실책이 이어지며 순식간에 트리플 매치 포인트에 몰렸고, 연속해서 발리로 점수를 내며 6-5까지 추격했지만 백핸드 샷이 베이스라인을 벗어나며 패하고 말았다. 보스니아키는 서리나와 결승 티켓을 놓고 다투게 된다.

소리 없이 준결승에 오른 스토서 ⓒ Andrew Ong/USTA

사만다 스토서(호주·9위)는 의외로 베라 즈보나레바(러시아·2위)를 2:0(6-3 6-3)으로 쉽게 이기며 4강에 진출했다. 1세트에서 3-2까지는 서로 서브 게임을 지키며 팽팽한 분위기였으나 즈보나레바가 더블 폴트와 실책 연발로 게임을 내준 후 스토서가 5-2로 달아나면서 경기가 급격히 스토서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스토서는 1세트 마지막 게임부터 2세트 두 번째 게임까지 12연속 포인트를 기록하면서 즈보나레바의 기를 완벽히 꺾었고, 잡은 리드를 놓치지 않고 2세트 5-3으로 앞선 상황에서 즈보나레바의 서브 게임을 맞이했다. 즈보나레바는 30-30에서 통한의 더블 폴트를 저지르며 매치 포인트를 내주었고 스토서는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즈보나레바는 스토서를 좌우로 흔들며 랠리를 주도했지만 20번의 스트로크가 오가는 랠리 다음의 즈보나레바의 백핸드 샷이 네트에 걸리며 눈물을 삼켰다.

이변의 주인공 케르베르 ⓒ Andrew Ong/USTA

조금 관심이 덜했던(역시 마찬가지라서 경기를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그랜드슬램 4라운드 이상 진출 경험도 없는 안젤리크 케르베르(독일·92위)와 플라비아 페네타(이탈리아·25위)의 경기에서는 케르베르가 풀세트 접전 끝에 2:1(6-4 4-6 6-3)의 승리를 거두며 준결승에 올라 스토서와 4강에서 맞붙게 되었다. 케르베르는 한 경기 한 경기가 자신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셈.

 

<Player of the Day>

질레스 시몽을 누르고 첫 그랜드슬램 8강 진출에 성공한 이스너 ⓒ Philip Hall/US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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