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고야 복귀

2017. 3. 9. 01:53

호텔에 짐을 찾으러 갔는데 호텔 앞으로 배달시킨 물건 하나가 도착하지 않았다. 2월 초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해서 그 시점에 맞춰서 오기는 했는데 재수가 없어서인지 도착이 늦어지는 모양이었다. 대개 호텔 측에서 한 달 정도는 짐을 보관해주기에 조만간 다시 올 예정인데 묵을 날짜를 정하면 인터넷으로 예약 후에 확인 전화를 하면 어떻겠냐고 물어보았다. 같은 체인 호텔에 여러 차례 묵은 덕분인지, 능수능란하지는 않더라도 일본어로 대화가 되어서인지 한 달 안에 다시 올 일정이 정해지면 알려달라면서 순순히 승낙을 해서 마음 편히 나올 수 있었다. 조만간 이 곳에 다시 와야 한다는 것이 시간과 비용 모든 면에서 부담스럽지만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시기적으로 설날이라는 명절이 다가오고 있어서 교토에서 더 체류하기도 곤란한지라, 화장실에 들어가 X을 싸고 뒤를 안 닦고 바지를 올린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우선 나고야로 가기로 했다. 모든 것이 한 번에 끝났으면 좋았을텐데..

서둘러 오기는 했지만, 시간을 보니 바로 열차를 타고 가기는 어려울 듯했다. 어차피 나고야까지 가는 열차를 타려면 야마토야기에서 환승을 해야하고, 야기에서 나고야까지 가는 특급열차는 한 시간에 한 대 뿐이라서. 오사카에서 출발하는 것이었다면 어반라이너의 시간에 맞추어 움직였겠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하지 않던가.

예상대로 설렁설렁 걸어가다보니 야기에 정차하는 나고야행 특급열차 출발시각에 거의 맞추어 도착은 했는데, 밥이라도 먹고 가야할 것 같아서 한 시간 뒤의 열차 지정석을 예약하고, 남는 시간 동안 교토역 하치죠구치 방면의 식당가에서 밥 먹을 곳을 찾았다. 면이나 빵과 같은 밀가루 음식을 좋아하지만, 밀가루 음식을 많이 먹으면 위에 부담이 가는 편이라 조절을 하기도 하지만, 일본의 밥맛이 좋아서인지 밥을 주로 먹게 된다. 어디에 갈까 잠시 고민을 하다가 밥을 먹고 싶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쿠라마라는 역 식당가에 있는 가게에 들어갔다. 추운 날에 가끔 따끈한 국물이 있는 우동이나 소바를 먹기도 하지만..

코시히카리(한국에서는 고시히카리라고 불리고, 일본어 한글표기법으로도 고시히카리라고 하지만 실제 발음에 가깝게 쓸란다)의 품종이 좋은 것도 있지만, 질보다 양을 따지는 한국에서는 화학비료를 많이 사용하여 밥맛이 떨어진다는 것이 큰 이유라고 한다. 지금도 그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품종별로 분류하여 도정을 하는 것도 아니고 섞이는 경우가 태반이라 우수한 품종의 쌀의 맛이 유지되지 않는다는 것을 신문에서 본 기억이 있다. 한국의 벼 품종 개발 수준은 일본과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 오히려 식미 평가에서 앞서기도 한다는데 제대로 관리를 못하는 것이 큰 문제라고 한다. 쌀이 아니더라도 상품을 판매하는 것을 보면 주먹구구식인 것도 많고 사람들의 지갑을 열게 하는 기술은 일본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카이센오히츠젠(海鮮おひつ善)을 시켰다.

반찬에 닭고기도 있다.


일본이니까 해산물이 올라간 덮밥을 먹어야지.


음식은 남기지 않는 것이 예의라 하지 않던가.

열차 출발 시각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아서 수퍼마켓에 가서 열차 안과 저녁에 먹을 것을 조금 산 뒤, 개찰구 안으로 들어가 사람이 많지 않은 곳으로 가서 시간을 보냈다. 조금 오래 걸어다녔다고 피곤하고, 배가 부르니 잠이 슬슬 오는데 이번에는 열차를 놓치지 않겠다고 정신을 다잡는다.


이세시마라이너

이 열차도 탈 수는 있지만, 이것을 타면 중간에 내려서 한 번 더 갈아타야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이 때만 해도 킨테츠 레일패스에 특급권 3매가 포함되어 있어서 장거리 이동시 부담이 적었는데, 이제는 특급권을 따로 구입하게 되어서 제 값을 주고 타기는 조금 아까운 기분이 든다. 4년 전에 우지야마다에서 카시코지마까지 특급권을 사서 특급열차를 타고 다녀온 적이 있기는 하지만..


토요일 저녁 시간이라 그런지 평소 같으면 퇴근하는 회사원들로 북적일 열차에 빈 자리가 많았다. 어쩌다 한 번씩 타게 되는 관광객들보다는 업무나 통근 목적으로 열차를 정기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철도회사로서는 중요한 고객임은 분명하다. 어차피 빈자리에 한 명 더 싣고 가는 가난한 외국인 여행자는 일종의 부가 수입일 터이고.


킨테츠의 좌석은 좌석 번호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어서 좋다. 표준궤 열차라서 승차감도 나쁘지 않고..


야마토야기에서 환승시간이 단 2분(야기역 도착 후 다음 열차가 출발하기까지)이어서, 내리는 것부터 서둘러 움직여 열차에 올라탔다. 같은 플랫폼에서 환승이 아니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야 해서 짐을 가지고 있다면 꽤 부담스러운 시간이다. 역의 직원들도 이 시간이 굉장히 촉박하다는 것을 알아서 출발 전에 갈아타러 오는 사람이 있는지 여러차례 확인을 하기는 하지만, 적당히 자리잡고 열차의 아무 칸에 올라탄 후에 지정 좌석으로 움직이는 것이 좋다. 나고야에서 이미 열차를 한 번 놓쳤는데 또 놓쳐서 다음 열차를 타고 가게 되면 언제 자리 주인이 나타날 지도 모르고, 놓치지 않고 제대로 타더라도 나고야 도착 시간이 거의 밤 10시라서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예정대로라면 야기에서 나고야까지는 1시간 47분이 걸리는데, 몸은 피곤한데 잠은 쉽게 들지 않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한 잔 마신 맥주가 오히려 잠을 방해하는 것인지도..



일본에서 가장 이름이 짧은 역이자 미에현의 현청소재지이지만 행정 중심의 도시이고 츠보다는 욧카이치(四日市)가 조금 더 상업적으로 번화한 도시이다. 약 석 달 전에 츠에서 하루 묵었던 적이 있는데 그냥 잠만 자고 다시 오사카로 돌아갔던 적이 있다. 어반라이너가 정차하는 도시라 기대를 했건만 그냥 행정도시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급실망했다는..

이번에 예약한 호텔은 지하철 사카에역과는 조금 거리가 있고, 그 다음 역인 신사카에마치역이 가장 가까운 역인데 어느 출구로 나와서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를 제대로 확인을 안 해서 지하철역을 나와서 조금 헤매다가 호텔 간판이 멀리서 보여서 겨우 찾아서 갔다. 원래 저녁 8시 도착 예정으로 예약을 했는데, 그 시간에는 도착하지 못할 것 같아 10시 30분 도착으로 미리 변경을 해두었는데 그 시간에 딱 도착했다. 9년 전에 처음 나고야에 갔을 때는 가진 돈이 꽤 되었고, 3년 전 역시 저렴하게 비행기표를 구입해서 가서 나고야역 근처에서 숙박을 했는데, 사카에는 오래간만에 간 것 같다. 어차피 술집이나 유흥업소는 안 가니까 별 의미는 없겠지만.. 사카에에서 원정 성매매를 하던 한국 여성들이 강제로 추방당했다는 소문도 있었는데 그런 쪽에 별 관심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저녁을 먹고 난 뒤 사 온 구운 장어 초밥을 야식으로 먹고 잤다.

늦게 도착하면 배가 고플 것 같아서 하나 사들고 왔는데 300~400엔 정도였을 것 같다. 대개 영수증을 모아두는데 어디선가 잃어버렸는지 보이지 않아서 기억이 안 난다. 씻고 침대에 누워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졸려서 잤다. 이렇게 사흘째가 지나갔다.


저녁을 먹었던 쿠루마의 지도. 교토역 하치죠구치방면의 식당가에 있다.

어느덧 오후 4시가 다 되어가고 있어서 슬슬 짐을 맡겨둔 호텔로 돌아갈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호텔에 가서 짐을 찾는 시간을 6시 정도로 생각하고 있지만, 사람 일이라는 것이 모르는 것이라 중간에 길을 잃어버린다거나 뭔가 재미있는 것을 발견해서 거기에 빠져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있다가 늦을 수도 있으니.. 


히가시야마지역에서 헤매다가 정원처럼 생긴 공원에 다다르게 되었다. 이름하여 마루야마공원(円山公園, 마루야마코-엔). 처음에는 멋모르고 엔잔코엔이라고 읽었는데, 친구가 아니란다. 나무들이 앙상한 가지만 있어서 썩 아름답지는 않지만 따뜻한 봄날이라면 다를 것 같다. 일본식으로 잘 가꾸어 놓은 공원이라 깔끔하고 관리가 잘 된 것 같다.


사진에 보이는 사람들처럼 저 다리도 건너보고 한 바퀴를 설렁설렁 돌아봤다. 딱히 특별한 느낌은 안 드는데, 이 때가 2월 초니까 두 달 정도 지나면 이 공원도 지금은 앙상한 가지만 있는 나무들에 벚꽃이 만발하여 더 아름답게 변해 있을 것 같다.


새들이 있다.

저 세 녀석이 새라는 것만 알지 어떤 새인지는 모르겠다.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리 같은 녀석도 있는 것 같고..


벚나무는 아직 가지만 앙상하다. 한 달 반 정도 지나야 슬슬 꽃이 피기 시작하겠지.


사카모토 료마와 나카오카 신타로의 동상이 있다.

이들은 에도 막부 말기에 대정봉환과 메이지유신에 기여를 한 유명한 무사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 나카오카 신타로(中岡真太郎)는 그의 혁명 동지라고 할 수 있겠고. 막부 말의 대정봉환 이전의 역사는 거의 다 잊어버려서 기억이 잘 안 나서 첨언을 하려니 좀 생각나는 것이 별로 없다. 시바 료타로씨의 책을 다시 읽어야 하나..


그리고 피리부는 사나이도 계시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돈을 조금씩 내고 가는가 보다.

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도와달라는 것보다는 낫지 싶다.

조금 더 북쪽으로 가니 눈에 익은 곳이 등장했다. 두 달 전에 다녀온 적이 있는 치온인(知恩院)이었다. 조금씩 미련이 남아서 계속 북쪽으로 올라가고 있었는데 이제 여기서 발길을 돌려도 될 것 같다. 


치온인의 산몬은 멀리서 봐도 거대하다.


계속 걸어나와서 여기서부터 돌아가려면 대충 한 시간은 걸릴 것 같다. 기온에서 버스를 타면 20분 남짓이면 되지만, 이번에는 교토의 여기저기를 많이 가보고, 지리를 익히기 위해 조금 힘들더라도 계속 걸어가기로 했다. 일주일 정도 가만히 한 곳에 눌러 앉아서 슬슬 여기저기 둘러보면서 메모를 하고 나름대로 움직인 곳을 지도에 표시해가면서 동선을 그려놓으면 좋을텐데 그런 여유가 없어서 아쉽다.


글씨를 못 읽겠다... 뭐라고 써놓은 것일까.


이런 내용의 비석이라는 것 같다.


슬슬 매화가 피기 시작하는 것 같다. 

교토에서는 2월 말이면 매화축제가 열린다고 하는데, 확실히 따뜻하기는 따뜻한 모양이다.


시간이 지나면 이 나무들도 꽃이 만발하겠지. 그 모습은 보지 못하고 돌아가겠지만..


교토라는 도시가 바둑판처럼 되어 있기에 가려는 곳의 방향을 대충 알면 굳이 구글 지도가 알려주는 길이 아니더라도 갈 수 있어서 과감히 경로이탈을 했다. 호루몬, 야키니쿠 가게가 있어서 슬쩍 보았더니 가게 이름이 아재(アジェ)다. 야키니쿠 가게는 한국 사람들이 많이 하거니와, 이 '아재' 라는 상호는 가게 주인 분이 한국 출신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들어가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식당에서 고기를 혼자서 구워먹는 것은 어색한 일이라서 일본에서 고깃집은 가본 적이 없다. 일본 사람들은 혼자서도 고기를 잘 구워먹는다고 하더마는..


이 사진은 왜 찍은건지 잘 모르겠다. 찍을 때는 뭔가 생각이 있어서 그랬으려니 싶은데, 시간이 지나니까 기억이 안 난다. 내 머리 속에는 지우개가 있어서 잘 잊어버린다.. ㅠㅠ

일단 이 곳이 어디인지 감을 잡아야 하는 것이 과제다. 길을 잘 잃어버리는 특기를 가지고 있고, 두 달 전에 교토에 와서 치온인과 헤이안진구 등에 다녀오면서 교토 시내를 돌아다니기는 했지만 여전히 교토 시내의 지리는 잘 모르는데다, 방향이나 거리감 모두 어설픈지라 혹시라도 길을 잘못 든다면 어떻게 될 지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오후 9시 즈음에 교토역에서 열차를 타면 자정 이전에 킨테츠나고야역까지 갈 수 있기는 한데, 그러면 나고야 도착이 너무 늦으니 그보다는 두세 시간은 먼저 출발하려면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아서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비로 인해 토사가 쓸려나갔는지 이런 출입금지 표시가 있는데, 이런 안내를 아주 잘 따르는 말 잘 듣는 사람이어서 당연히 들어가지 않았다. 들어오지 말라는데 들어가는 사람들이 이상하지 않은가.. 주변에 자주 일어나는 사고 역시 평소에 하라는 것을 제대로 안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을 하다가 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본이라고 항상 원칙을 준수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보다는 많은 부분에서 나은 것은 사실이라 조금 안타깝다.


이 곳에도 리니어신칸센(츄오신칸센)을 교토에 유치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포스터를 붙여놓았다. 그러나 이 새로운 자기부상철도는 교토를 피해서 가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럼에도 아직 나고야-오사카 구간은 아직 착공조차 하지 않아 개통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서인지 결정을 번복하기 위한 교토의 상공인들이 애를 쓰고 있는 모양이다. 지금도 토카이도신칸센 노조미라면 토쿄에서 두 시간 남짓이면 오는데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싶은 생각이 든다. 츄오신칸센 개통 이후 50년 이상 휴식 없이 계속 운행해온 토카이도신칸센의 대대적인 정비 및 보수를 위하여 장기간 운행 중지를 계획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확실히 결정난 것은 아니지만 1차 개통구간인 시나가와-나고야 구간이므로, 나고야 이서 지역인 교토, 오사카까지는 나고야부터 특급열차로 오사카까지 수송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나고야 서쪽의 구간은 현재 계획만 발표되었지 2045년에 개통 예정이라고 하니 아직 30년 가까이 남았다. 그 때까지 살아있을 지도 모르겠네 뭐..


그런데 뭔가 눈에 띄는 것이 있어서 보니 불상이 있다. 크고 아름다워요. 웅장한 느낌이다.


안에 들어가면 입장료를 내야해서 그냥 밖에서 사진을 찍었다. 매표소의 직원이 보고 있어서 그냥 대충 한 장 찍고 말았다. 평소 종교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데다 절과 신사를 자주 다니다보니 별로 특별한 것도 못 느끼겠고, 입장료는 300엔이지만 시간이 여유있는 것도 아니고 들어가도 저 불상 말고는 특별히 볼 것이 없을 것 같아서 그냥 발길을 돌렸다. 역사와 문화재 구경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으로 밥먹고 사는 사람도 아니기도 해서 생소한 것은 그냥 건너뛰기도 한다.


저 관음상은 료젠칸논(霊山観音), 한국식으로는 영산관음이라고 한다. 이제 지겨울 정도로 반복하지만 종교에 대한 지식이나 이해가 부족해서 딱히 덧붙일 말도 없지만, 적어도 저 불상이 누구인지는 알려야 할 것 같아서. 홈페이지 주소는 http://www.ryozen-kwannon.jp 라고 한다. 료젠칸논인데 사이트 이름은 료젠-콴논으로 되어 있는 것이 이상하네..

스펙을 적어보자면,

높이:24m

얼굴:6m

눈썹:1m 10cm

눈:1m

코:1m 6cm

입:90cm

총중량:500t


어마어마하다.


저 그림을 보는 순간 달심이 떠올랐다. 죄송합니다.. ㅋ


뒤를 돌아보니 멀리 키요미즈데라가 보인다.


료젠칸논을 마지막으로 북쪽으로 방향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까지 계속 북쪽으로 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길치의 비애.. ㅠㅠ

그렇다고 당황하지는 않는다. 흔히 겪는 일이라서 아무렇지도 않다.


코다이지(高台寺) 종루


료젠칸논에서 북쪽으로 가면 코다이지가 있다. 이 절의 정식명칭은 코다이쥬쇼젠지(高台寿聖禅寺)로 토요토미 히데요시 사후 그의 부인이었던 키타노만도코로 네네(寧々)가 출가하여 코다이인코게츠니(高台院湖月尼)라는 칭호를 받고, 이 절에서 지내면서 가문의 영속을 기원하였다고 한다. 결국 토요토미 가문은 멸문하고 말았지만.. 교토의 유명한 절이 한두 곳이 아니라 주목받지 못하고 자주 거론되는 장소는 아니지만 중요문화재 여럿이 보존된 곳이라 들어가고 싶지만, 어느덧 오후 3시가 넘어가고 있어서 발길을 돌렸다. 코다이지는 히가시야마토로(야간에 등불을 밝히는 행사)의 지역이기도 한데, 갈 곳은 많으니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는 수밖에. 이래놓고 가지 않을 가능성도 상당히 높다... 

다음에 교토에 초청해주시면 제가 코다이지 방문하여 여기저기 둘러보면서 세세한 여행기를 쓰도록 하겠습니다..


사진을 찍는데 방해가 되는 차들이 있는데 주차장이라고 표시를 해두었으니 어쩔 수 없다.


코다이지

시간이 없어서지 돈이 없어서 들어가지 않은 것은 아니다..


두꺼운 겨울용 외투와 점퍼를 입어야하는 한국에 비해서는 따뜻해서 사람들의 옷차림이 가벼워 보인다.


이 사진을 보니 겨울에 한 번 와서 보고 싶은데, 어디에서 사진을 찍어야 저런 구도가 나올지 궁금해졌다.


네네노미치(ねねの道)로 가기 위해 내려갔다.

네네(寧寧)는 위에서 잠시 등장했던 히데요시의 정실 키타노만도코로의 본명인데, 히데요시 사후 네네는 19년을 코다이지에서 보내고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 이름을 따서 이 길을 네네노미치라고 명명했다고.



뭔가 특이한 탑이 하나 있는데..


특이하네..

나중에 찾아보니 다이운인(大雲院)이라는 절이고, 저 높은 누각은 기온카쿠(祇園閣)라는 누각이라고 한다.

 

하수도 맨홀 뚜껑의 무늬도 특이하다.

벚꽃과 단풍인가..


교토에 흔한 인력거

저걸 타면 편하기는 할텐데 혼자 타면 재미없을 것 같다.
그래서 안 탐..


여기는 키모노렌탈가게인 것 같다. 해당사항 없는 곳이므로 패스.


더 깊이 들어가면 다시 나와서 돌아가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서 적당히 멈추고 왼쪽을 살짝 보다가 뭔가 절 같은 것이 보이는 곳으로 방향을 바꾸어 가본다. 계속 가다가는 길을 잃어버리고 헤맬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더이상의 무모한 도전은 하지 않기로 했다.


오타니소뵤

이미 방향감각을 상실한 채 어느 절 같은 장소에 도착했다. 이 곳이 정확히 어디였는지 기억이 잘 안 나서, 동선을 보았을 때 소린지(雙林寺)라는 곳이 아니었던가 싶었는데, 구글에서 찾아보다가 겨우 비슷한 사진을 하나 찾아서 여기저기 찾아보니 오타니소뵤(大谷祖廟)라는 곳이다. 이 곳은 히가시혼간지에서 운영하는 납골당과 같은 장소인 것 같다. 그러고보니 처음에 키요미즈데라에 가기 전에 들렀던 곳이 오타니혼뵤라는 곳이었다는 생각이 났다.


혹시 몰라서 잠시 들어가보기는 했는데 예상대로 납골당 같은 곳. 이런 곳에는 용무가 없으니 들어가다가 발길을 돌렸다. 이제 엔잔공원쪽으로 갔다가 슬슬 호텔로 돌아가 짐을 챙겨 나고야로 떠날 차비를 해야할 것 같다. 지난 이틀 동안 너무 일에 매달려 있던 탓에 교토 구경을 제대로 하지 못한 아쉬움이 진하게 느껴졌다.


네네노미치(ねねの道)의 구글지도

교토 니넨자카(二年坂)

2017. 2. 25. 16:41


점심을 먹고 나오자마자 절에 있는 탑이 보인다. 역시 교토는 절과 신사의 도시. 이 절은 호칸지(法観寺. 한국식으로 읽으면 법관사)라는 곳이라고. 이 절은 고구려 도래인, 즉 일본으로 건너온 고구려인들이 지은 곳이라고 한다. 고구려가 보낸 사신인 이리지(伊利之)라는 분이 건너와서 일본 왕실로부터 야사카노미야츠코(八坂造)라는 성씨를 받았고, 이리지의 후손들이 대대로 신관을 이어 왔다고 한다. 지금은 후손들이 신관을 이어오지는 않지만, 고구려의 후손들이 이 신사를 세운 것이라는 것은 대부분 인정하고 있다고. 여름에 열리는 교토의 기온마츠리는 일본의 3대 마츠리 중의 하나인데, 이 야사카신사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한다.


야사카신사의 5층탑

안에 들어가볼까 했는데, 별로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이 곳이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곳이기는 한데, 굳이 들어가고 싶지는 않더라는.. 날이 우중충해서 기분도 별로고, 오래간만에 많이 걸었다고 피곤하기도 해서.


토요일이라 사람도 많고, 이 좁은 골목까지 인력거는 운행하고 있다.

물론 나는 오랜 시간 걸어다닐 수 있는 튼튼한 두 다리가 있어서 인력거를 탈 생각이 없지만..


좁은 골목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다.

역시 주말은 주말인가보다.


웅장함을 자랑하는 야사카신사의 5층탑

그냥 밖에서 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한다. 이것저것 다 들어가기도 그렇고, 무엇보다 문화재 보는 수준이 높지 않아서 크게 감동을 받는다거나 꼭 안에 들어가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고..


이번에는 니넨자카 방면으로 가본다. 


교토에는 여러 차례 왔지만, 거리 구석구석을 이렇게 걸어다니는 것은 처음인 것 같다. 7년 전에 친구와 버스를 타고 키요미즈데라와 금각사에 다녀온 것이나, 언젠가 다른 친구와 교토에서 잠깐 만나서 그냥 도심 상점가를 구경하다가 차 한 잔 마신 것이 전부라서. 아무래도 이 친구들과 다니다보면 말상대가 되어주니 좋은 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자신이 일본에 거주하는 일본인으로 외국의 방문객보다는 조금 더 잘 알고 있으니 뭐라도 안내를 해주려고 해서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없는 점도 있어서 불편한 점 역시 없지는 않다.


한국보다 따스하기는 해도 2월 초는 여기도 겨울이라서 사람들의 옷차림이 가볍지는 않다. 


니넨자카. 이렇게 사람이 많으니 다시는 올 때는 주말을 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舞妓를 마이코라 읽어야 할 지, 부키라고 읽어야 할 지 잘 모르겠는데 이 곳이 교토인 만큼 마이코로 읽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이런 차림을 하고 사진을 촬영하는 서비스도 있다고 한다. 카부키스튜디오에서 6장 촬영 플랜이 13,000엔, 12장 플랜은 15,000엔이라고 한다. 그 외에 옵션이 추가되는 경우는 가격이 꽤 올라가고, 이 업체의 스페셜은 33,000엔이라고 한다. 내가 가진 돈을 탈탈 털어도 스페셜 플랜은 할 수 없구나. 사진 촬영 후에 후보정까지 포함된 가격이겠지만. 어차피 데리고 온 아가씨도 없으니 뭐..


계속 가다보니 고양이 같이 생겼는데 고양이가 아니라는 녀석이 등장하는 음식점이 보였다. 헬로키티의 계절야채생파스타, 행복의 리본파스타, 친구들의 플레이트 등 헬로키티를 소재로 음식을 만들어 팔고 있는 모양이다. 처음 보았을 때는 한 두개 정도 키티 모형으로 음식같이 만들어 놓은 것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 이렇게 음식을 만들어 파는 모양이다.


키티모양의 유부초밥을 먹으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하다. 혹시 아이들은 귀여운 키티를 어떻게 먹냐면서 울고불고 난리치지 않을까 싶은데, 유부초밥은 유부초밥이니 그냥 먹고 말려나. 생각해보면 아이들도 귀여운 모양의 코알라노마치 같은 과자를 잘 먹던데..


식사류 이외에도 옷을 비롯한 잡화류 역시 판매하고 있다. 교토 한정 상품이라고 하니 키티덕후라면 키요미즈데라나 산넨자카보다 이 곳이 더 흥미롭고 즐거울 것 같다. 아마 딸이 있었다면 이 곳에서 점심을 먹지 않았을까 싶은데, 딸이 없는 것이 다행인가..


이 가게의 이름은 하로-키티챠료(はろうきてぃ茶寮), '헬로키티의 다실이 있는 장소' 정도의 의미일 듯하다. 여기서 판매하는 모든 제품이 헬로키티 관련 제품이고 이 곳에서만 판매하는 특별한 상품들이 많아서 키티빠들이 오면 좋아서 환장할 것 같다. 헬로키티는 고양이가 아니고 고양이를 닮은 영국 소녀라고 하는데..


헬로키티의 마수에서 벗어나 가던 길을 계속 걸어간다. 


여기서는 토토로가 등장하는 것 같다. 사실 난 토토로만 알지 내용은 잘 모른다. 지브리의 유명한 캐릭터이기는 하지만, 애니메이션에 별 관심이 없고 실존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드라마나 영화를 더 좋아하기에. 중학교였나 고등학교였나 어느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반딧불의 묘를 보여준 적이 있는데, 그 때 보다가 졸리다고 잠을 잤던 것 같다.


지브리가 이빠이 있다는 돈구리쿄-와코쿠(どんぐり共和国, 돈구리공화국)라는 곳. 인형과 각종 지브리 캐릭터를 파는 곳으로 보이는데, 애니메이션에 별로 관심이 없는지라 그냥 슬쩍 둘러본 뒤에 발길을 돌렸다. 많은 사람들이 애니메이션으로 시작해서 일본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는데, 만화 역시 아다치 미츠루의 작품 정도나 좋아할까 딱히 찾아보지 않아서 별 느낌이 없다. 그나마 좋아하는 배우인 이시하라 사토미가 나오는 드라마나 영화 역시 안 본 것도 많고, 볼 시간도 없어서 어떻게 의무적으로 다운로드 받은 파일도 열어보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라..


니넨자카를 지나와서 왔던 방향으로 뒤돌아 사진을 찍었는데 야사카신사의 5층탑이 멀리서도 우뚝 솟아있는 것이 보인다.


마지막으로 니넨자카에서 내려온 길 사진을 찍고 돌아갈 차비를 하였다. 저녁에 호텔로 돌아가서 짐을 찾아서 다시 나고야로 가야하는데 여기서 호텔까지 가려면 바로 가도 한 시간 정도는 걸릴 것 같은데 마냥 여기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나고야의 호텔 예약을 하였고, 설날 전에 돌아가려면 다른 방법이 없었다. 신칸센을 제 금액 주고 타기에는 부담스럽고, 킨테츠를 타고 돌아가야하니 계속 손목시계를 보면서 바쁘게 움직이는 수밖에.. 어제 하루를 그냥 날려버린 여파가 크다.

키모노[각주:1] 판매 및 렌탈가게

키요미즈데라 주변에는 키모노 렌탈 및 판매를 하는 가게들이 있는데 딱 보아도 남자보다는 여자 옷이 많고, 실제로 옷을 빌려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여자들이 많다. 이런 관광지가 아니더라도 평소에 키모노를 입은 중년 여성들을 거리나 역 등에서 종종 볼 수 있다. 여성용 키모노는 색상 및 디자인이 다양한데 반해 남성용은 종류가 적고 밋밋한 느낌이라서 여자들이 입고 다니는 것이 조금 더 어울리는 것 같아 보인다. 한국 아가씨들도 키모노를 빌려 입고 키요미즈데라에 올라가는 것을 보았는데, 관광지에 왔으니 이렇게 옷을 입어보고 기분을 내는 것도 좋지 않나 싶기도 있고, 아직 완전히 청산되었다고 말하기 어려운 역사적인 문제가 있으니 자제하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조금 복잡한 기분이다. 어찌되었든 이웃 나라와는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좋을텐데, 이웃과 사이가 좋으려면 일단 대등하게 맞설 수 있는 국력이 필요하겠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으니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 키요미즈데라 주변의 식당은 수많은 관광객으로 북적이고 있어서 조금 한가한 곳을 찾아서 내려와서 조용한 식당을 찾기로 했다. 우선 목이 마르니 음료수를 살만한 가게를 찾아서 계속 마츠바라도리를 따라서 골목으로 들어갔다. 키요미즈데라 주변이 관광지와 관광객들을 상대하는 상점 중심이라면 길 건너 있는 이 지역은 평범한 주택가인데 중간중간 상점과 음식점이 들어서 있는데 번잡하지 않고 조용한 분위기다.

"해피로쿠하라(ハッピー六原)"라는 식료품점이 있어 들어가서 세일 상품인 이토엔 호지차와 보스 블랙 커피 한 병씩 샀다. 이 매장에서"IGA"라는 로고가 함께 있는 것을 보았는데, 호주에서 종종 가던 곳이어서 반갑게 느껴졌다. 한국에도 "IGA" 로고가 달린 상점을 본 것 같아서 찾아보니 IGA가 International Grocer Alliance(국제소매인연합)의 약자라고 한다. 일본어를 잘 못하고, 그저 가이드북을 보고 안내대로 쫓아다니던 때에는 편의점을 주로 이용했는데, 어느 정도 익숙해진 뒤부터는 편의점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상품이 다양한 마트를 가는 편.

카메라 설정을 잘못 했는지 이 따위로 사진이 나왔다.

오른쪽은 마이코상인 것 같은데, 어떤 중년에서 노년의 단체들이 환영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말소리가 들리기는 하는데 조금 멀리 떨어져 있다보니 알아들을 수는 없고 종종 박수치는 소리만 들린다.

사진이 이렇게 나온 것은 폰카를 가지고 지나치게 줌을 해서인 것 같다.

인력거꾼은 부지런히 일하고 있다.

조금 더 걸으며 주변을 살펴보다가 이 부근은 평범한 주택가이고 별로 구경할 것이 없는 것 같아서 다시 키요미즈데라 방면으로 길을 건너갔다. 생각해보니 아직 밥을 안 먹어서 건너가서 식당을 찾아보기로 한다.

그릇을 만드는 레슨도 있고, 만들어진 그릇에 색을 입히는 레슨도 있다. 혼자 하기는 뻘쭘하니까 패스.

마이코 언니들과 기념촬영을 하는 것 같다.

무엇을 하는 중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몰려서 사진을 찍고 있길래 그 틈바구니에 끼어서 사진을 찍었다.

산넨자카일거야. 아마..

향을 판매하고 있는가보다.

이 사진은 앞의 머리가 벗겨진 아저씨를 찍으려고 한 것은 아니다.

산넨자카를 내려와 니넨자카로 가다가 왼쪽으로 난 길로 잠깐 들어왔는데, 혹시라도 길을 잃을까 싶어서 이런 방향표시를 찍었다. 예를 들면 대충 4분 정도 걸어갔는데, 니넨자카가 나오지 않으면 잘못 간 것이니까 다시 돌아오기 위해서라고나 할까. 니넨자카를 한자로 二年坂라고 쓰듯이, 산넨자카도 三年坂라고 쓸 것이라 생각했는데 産寧坂라고 써놓았다. 잘못된 것인가 찾아보았더니 뒤의 산넨자카(産寧坂)가 원래 이름이었는데, 니넨자카와 맞추기 위해서인지 三年坂라고도 쓴다고 한다.

다시 마츠바라도리로 와서 니넨자카로 가기 전에 산넨자카 사진을 제대로 찍기 위해 왔던 길을 되짚어 갔다. 아직 시간이야 많이 있으니까 큰 걱정 없고, 꼭 들러야 하는 관광지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여유를 부려본다.

이 두 마리의 개는 쌍둥이일까

이 녀석들 귀가 참 크다

작은 강아지 한 마리 키우고 싶은데 아파트라서 어려울 것 같고, 주인의 생활이 심히 불규칙한 것도 문제라서

자 산넨자카를 내려가봅니다. 

역시 토요일이라 사람이 많아서 미어터질 정도. 어제 방에서 뒹굴거리지 말고 올 것을 그랬나 싶다.참고로 산넨자카의 계단이 (직접 세어보지 않았지만 들은 바로는) 46개라고 하는데, 이 계단에서 넘어지면 3년 안에 죽는다는 속설이 있다고 한다. 이렇게 사람이 많을 때는 한 명이 넘어지면 그 사람만이 아니고 큰 사고가 벌어질 수 있으니 주의를 해야한다.

사람들을 먼저 보낸 뒤 조금 여유가 생기는 것 같아서 내려간다. 속설은 전혀 믿지 않지만 다치면 아프니까 조심해야지. 가뜩이나 요즘 상처나면 빨리 아물지도 않고 흉터가 생겨서 보기 싫던데. 처음 몇 계단은 조심해서 내려가다가 곧 잊어버리고 생각없이 막 내려간다.

향을 파는 가게인가보다.

지나가다 본 어느 상점의 메뉴.
외국인 관광객들을 위해 영어로 메뉴를 써놓는 친절함이 유독 돋보이는 메뉴인데, 사진 역시 먹음직스럽지만 관광지라 그런지 가격이 비싼 편이다.

처음 교토에 오자마자 이것저것 사서 먹었지만, 겨울에서 여름으로 넘어갈 즈음에는 속이 불편한 증상이 있어서 가급적 밀가루 음식을 피하는 편이라 밥과 국물이 있는 요리를 먹으려고 했는데, 다다미방만 있다고 해서 그냥 다른 곳에 가기로 한다. 혼자 밥 한 그릇 먹고 나오는데 신발을 벗고 들어가기 귀찮아서 그냥 발길을 옮겼다.

갑자기 구름이 끼면서 살짝 어두워지기도 한다.

걸어가다보면 니가츠도로 가는 갈림길이 나오는데, 상점가가 계속 이어지고 있어서 슬슬 구경할 겸해서 목조가옥들이 이어져 있는 길을 계속 걸어간다. 걷다보니 귀찮아서 사진도 잘 안 찍었다.

이렇게 도자기 만드는 외국인도 있는데, 예쁜 언니가 있었으면 들어갔겠지만 그렇지 않아서..

그냥 밥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왔다.

문 앞에서 메뉴를 보면서 고민하다가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음식인 유바오로시동(湯葉おろし丼)을 마음 속으로 정했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자 주인 또는 지배인 정도로 추정되는 남자가 맞이하였는데, 일본에서는 고객을 상대로 정해진 시간에만 주문을 받는 경우가 많아서 영업하는지를 먼저 물었다. 다행히 점심식사가 된다고 하여 2층으로 올라가 약간 구석지고 적당히 좋은 자리에 앉았다. 혹시나 해서 다시 메뉴판을 보는데, 처음 정한 유바오로시동을 그대로 시켰다.

점심시간이 지나서인지 사람이 별로 없다. 뭐 조용한 것이 더 좋으니 상관없지만.

이 식당의 이름은 쿄료리 쿄야사카(京料理京八坂).
키요미즈데라에서는 조금 거리가 있기는 하지만, 반대로 대중교통으로 키요미즈데라에 갈 때 접근성은 괜찮아보인다.

신선한 해산물이나 고기가 들어있지는 않지만 먹음직스럽게 생겼다.

나이가 들수록 밥을 먹을 때 국을 찾게 되는데 미소시루가 함께 있다.

클로즈업

나름대로 천천히 먹겠다고 했는데 재빨리 밥을 먹고 850엔을 내고 나왔다.

이제 니넨자카 쪽으로 가야지.

  1. 한글표기법에 따르면 '기모노' 가 맞는 표현이겠지만, 현지 발음을 들어보면 키모노에 가깝다. 가나의 か、た행의 발음은 거센소리에 가까우나, 한글표기법에서는 첫 음절의 거센소리는 예사소리로 표기를 하도록 하나 현지 발음에 가까운 것이 낫지 않을까 싶다. [본문으로]

이미 한 번 왔던 키요미즈데라의 재방문 목적은 아래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에 있다.

예전에 키요미즈데라의 본당을 이런 각도에서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해가 일찍 지는 겨울이었던 탓에 입장할 때부터 이미 해가 지고 있었고, 올라가니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할 무렵이기도 했거니와, 경내를 오가는 관람객들이 많아 지나가면서 셔터 한 번 누르고 말았는데, 흔들림도 있고 어두워서 낮에 다시 와야겠다 생각했는데, 6년 반이나 걸렸다. 


교토를 대표하는 관광지이자 랜드마크이고, 또 토요일이니 사람들이 많다. 이미 예상하고 있던 바라서 놀랍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많으면 귀찮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을 굳이 찾게 되니 이거 참 알 수 없다.


올라가다보니 즈이구도(髄求道)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외국인은 별로 없는 듯하고 일본인들이 여기에 와서 봉납을 하고 소원을 빌거나 기도를 하는 것 같은데,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


즈이구도의 맞은편에는 종루가 있다. 케이쵸(慶長) 12년(1607년)에 재건되어 헤이세이(平成) 11년(1999년)에 모모야마(桃山) 양식으로 채색을 다시 했다고 하며,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고 키요미즈데라 홈페이지에 적혀 있다. 모모야마 양식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옆에는 삼층탑이 있다. 아마 본당 다음으로 관심을 모으는 건물일 것 같은데, 키요미즈데라는 맨 위 사진 속의 본당이 가지는 의미가 크기 때문에 안타깝지만 그냥 지나치기로 한다.


카메라가 8년 전에 살 때는 꽤 괜찮은 녀석이었는데 좀 연식이 되어서 그런지 사진을 찍어놓으면 그다지 만족스럽지가 않다. 찍는 사람의 능력 부족도 중요한 원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즈이구도에 다시 가보았지만, 뭐 별 흥미있는 것은 없는 것 같다.


사람들이 많은데 종종 한국어도 들리고, 알아들을 수 없지만 중국어 같은 말이 계속 들린다. 일본인들은 가족, 연인이나 친구들끼리 온 것 같은데, 외국인의 수가 더 많은 것 같다. 혼자 온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아서 조금 쓸쓸한 기분이 든다.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매표소로 가는데 토도로키몬(轟門)을 해체수리한다고 이렇게 둘러 싸놓았다. 본당에는 들어갈 수 있다고 하지만, 이렇게 가림막을 쳐놓았으니 사진을 찍어도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 들어갈 필요가 없어졌다. '가는 날이 장날' 이라는 말이 이럴 때 쓰는 것인가 보다.


예전에 입장료는 300엔이었던 것 같은데, 그동안 물가 인상도 있었을 것이고, 소비세도 올라서인지 400엔이란다. 굳이 들어갈 생각은 없어서 그냥 사진 한 장 찍고 돌아서 나왔다.


나오면서 졸지에 주연이 되어버린 삼층탑 사진을 하나 더 찍고 왔던 길로 다시 나간다.


나가고 있음.

혹시나 해서 출구 쪽으로 살짝 가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지 살펴보았는데 가림막투성이인 것은 마찬가지라서 가볍게 포기하고 돌아서 나왔다.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상점가.

왔던 길인 마츠바라도리(松原通り)를 따라 내려간다. 키요미즈만쥬라는 것이 있는데, 개인차가 있겠지만 단 음식은 잘 먹지 않아서 화과자는 그다지 즐기지 않는 편이다. 일본식 과자라고 이해하면 될 화과자(和菓子)는 모치, 만쥬가 대표적인데, 차와 함께 먹는 음식이라 단 맛이 특징이다. 일본 음식의 단맛은 한국 음식에서 느껴지는 단맛과는 또 달라서 재작년에 히로시마의 모미지만쥬와, 오카야마의 키비당고를 사서 집에 가져간 적이 있는데, 단맛이 강해서 가족들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그 뒤로는 과자류는 잘 사지 않고, 가끔 어머니로부터 직장 동료들에게 줄 선물로 로이스 초콜릿이나 사오라는 부탁이 있을 때 공항에서 초콜릿 몇 상자만 사가는 편이다.

9년 전 일본에 처음 왔을 때는 원화 가치가 높아서 100엔에 700원 중후반대였고, 소비세도 5%라서 물가가 싼 편이어서 편의점에서 이것저것 군것질거리를 사고, 관광지에서 기념품을 사도 큰 돈을 쓴다는 느낌이 없었는데, 엔화 가치가 오르면서 확실히 소비에 있어서 주저함이 생기고, 꼭 필요한 것만 사게 된다.


일본제라는 접시와 그릇이 있는데, 그릇은 깨질 수 있으니 선물로 가져가기 번거롭고 받는 사람의 취향도 생각해야해서 그냥 넘어간다.

그릇을 잘 모르는 사람도 딱 보자마자 탐이 나는 다기는 무려 4백만원이 넘는다.


세상에.. 접시 하나 팔면 일본에서 6개월은 나름대로 잘 먹고 잘 쓰면서 지낼 수 있는 돈이 나올만한 가격이다.
그래도 사는 사람이 있으니 이렇게 팔고 있는 것이 아닐까.


좁은 길이 북적북적하다.

마츠바라도리를 따라서 가다보면 산넨자카(三年坂), 니넨자카(二年坂) 방면으로 향하는 길과 고조자카(五条坂)로 내려가는 길로 갈 수 있는 갈림길이 나오는데 산넨자카와 니넨자카 방면으로는 조금 후에 가보기로 하고, 일단 밑으로 내려가보기로 한다. 8년 전에 왔을 때는 그냥 나가타를 따라다니기 바빠서 여기저기 살필 여유도 없었기에 이 곳에 왔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계속 돌아다녔더니 목이 마르고, 점심을 먹어야 하니 일단 내려가기로 한다. 아무래도 키요미즈데라 가까운 곳은 관광객들이 많아서 기다려야 할 것 같고 사람이 많아서 여유있게 밥을 먹기 어려울 것 같으니 일단 큰 길로 나가서 시원한 녹차를 사고 조용한 음식점을 찾아보기로 한다.

이틀 동안 교토에 머물렀지만 교토 관광은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고야로 가기 전에 몇 군데 들러서 구경을 하면서 교토의 매력을 조금이라도 느껴보기로 했다. 교토에 대한 많은 책이 나왔고, 역사가 깊은 고도(古都), 가장 일본적인 도시, 역사와 전통의 도시 등 화려한 수식어들이 많지만, 의외로 다른 중소도시에 가느라 그저 환승을 위해 거쳐가는 정도에 그친 경우가 많았고, 교토에서 호텔을 예약하고 묵은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친구 집에서 한 번, 그리고 역시 친구가 예약해준 호스텔에서 하루를 묵기는 했지만, 내 주머니에서 돈이 나간 적은 없었으니.. 기껏해야 반나절 정도에 불과하겠지만 그 시간 동안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계획을 세웠다.


호텔에서 주는 아침밥을 먹었다.

아침식사용 플레이트와 테이블을 보면 어느 호텔인지 눈치를 채는 분들도 있을 듯하다.


방으로 돌아와서 짐을 챙겨 나와 체크아웃을 하면서 짐을 잠시 맡겨놓았다. 집에서 출발할 때는 가방 하나에 불과했지만, 면세점에서 가족 선물 및 부탁을 받아 구입한 것과 여러 이유로 회사에서 납품했다가 반품된 것도 있어서 백팩 외에도 양손 가득 짐이 생겨서, 모두 짊어지고 다니다가는 얼마 못가서 짐의 무게에 쓰러질 것 같아 일단 두고 가기로 했다.

키요미즈데라(清水寺)에 들렀다 긴카쿠지(銀閣寺.은각사)에 다녀오는 정도라면 서두르지 않고서 시간을 보내기에 큰 어려움은 없겠다 싶어 대충 지도 검색을 하면서 거리를 보았는데, 어제 하루 잘 쉰 덕분인지 조금 많이 걸어도 괜찮을 것 같아 교토 시가지 구경을 할 겸 슬슬 걸어다니면서 교토 지리를 익히기로 했다. 구글 맵으로 경로 검색을 해보니 키요미즈데라는 고죠도리(五条通り)를 따라 3.8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단다. 이번에도 구글 맵은 시속 5km의 속도로 도보 소요시간을 계산하여 45분 정도라고 예상하는데, 초행길이라 여기저기 둘러보면서 천천히 가다보면 조금 늦어질 터이고, 중간중간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신호를 기다리는 시간도 있을테니 한 시간 정도 걸릴 것이라 생각하고 갔다.

토요일 오전이라 그런지 시내의 차량은 많지 않고 조용한 편, 고죠도리는 교토에서 가장 번화한 상점가인 시죠도리(四条通り) 와는 달리 주거용 맨션이 많고, 간혹 오피스용 빌딩이 하나씩 있는 정도라서 대로변이지만 의외로 넓은 길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뜨거운 금요일 밤을 보내고 토요일 오전이 조용한 것은 어디든 다를 바 없나보다. 교토 시내이지만 거리에는 맥도날드 같은 패스트푸드점이나 편의점이 간혹 보이는 정도이고, 상점들이 별로 없어 이 곳은 토요일 오전이 아니라 해도 조용할 것 같은 느낌이다. 유량이 많지 않고 수심도 그다지 깊어 보이지는 않지만 카모가와(鴨川)라는 강이 장애물로 있는데, 친절하게도 큰 길마다 차량 및 보행자가 모두 지나갈 수 있는 다리가 있다. 고죠도리에 있으니 이 다리의 이름은 고죠오하시(五条大橋)일테고, 이 다리를 건너 슬슬 오르막이 시작되는 길을 따라 걷는데 조금이라고 하기는 부족하고 그렇다고 먼 것 같지는 않은데 꽤 걷다보니 오타니혼뵤(大谷本廟)라는 곳에 도착했다. 뵤(廟.한국에서는 '묘' 라고 읽는다)라는 글자에서 납골당 같은 곳이 아닐까 싶었는데, 시간 여유가 있으니 잠시 들어가보기로 하였다. 문득 호기심이 생겨서.


오타니혼뵤는 키요미즈데라로 가는 언덕길을 오르기 전에 있는데, 혹시 길을 헤맬까 싶어서 지도를 사진에 담아두었다.


현판을 보자 닛폰햄 파이터스의 투수 오타니 쇼헤이(大谷翔平)가 생각이 났다. 물론 관계없을 것 같지만..


납골당 같은 곳인데, 분위기는 사찰의 느낌이 난다.


깔끔하게 정돈된 모습을 보니 이른 아침부터 누군가는 청소하느라 애를 썼을 것 같다.


참배하는 사람들을 보니 젊은 사람들보다는 중장년층이, 남성보다는 여성들이 더 많았다. 아무래도 여성의 수명이 남성에 비해 더 길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한국에서도 납골당 같은 곳에 가면 찾는 사람들 중에는 여성이 많으니까.


지붕 양 끝이 잘리기는 했지만 뭐..

여기서 키요미즈데라까지 가는 길을 검색해보니 몇 가지 있다고 하는데, 오타니혼뵤에 처음 들어왔던 지점인 히가시야마고죠(東山五条)교차점까지 가서 언덕길인 고죠자카(五条坂)를 올라가다 오른쪽으로 난 키요미즈신미치(清水新道)를 거쳐서 가거나, 더 올라가서 마츠바라도리(松原通り)에서 우회전하는 두 가지 길의 거리가 비슷하고, 가장 가까운 듯하다. 나갈 때는 들어올 때와 다른 곳으로 나갔더니 납골당 방면으로 우회로가 있다고 하여 그 길을 따라서 갔다.


우회로라고 하는 길을 따라서 올라간다.

이렇게 납골이 많은 곳을 지나는데 날씨까지 흐려서 음습한 기분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가다보니 우회로가 호우로 인한 지반붕괴로 폐쇄되었다는 안내가 있었다. 그래도 우회로 가는 길이라는 표지판을 보고 온지라 긴가민가해서 조금 더 가보기로 했다. 멀리 키요미즈데라의 삼층탑이 보여서 어떻게든 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바닥에 붙어있는 화살표를 따라 가보았는데, 더 이상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호우로 인한 지반붕괴로 인하여 길이 끊어져 있다.

안내를 확실히 해놓았으면 좋았을텐데, 잘못 이해한 것인가 다시 보아도 우회로 안내하는 표지판이 있는가 하면, 키요미즈데라에 갈 수 없다는 안내도 있고 혼란스럽게 되어 있다. 우회로 안내 표지판은 길이 끊기기 전에 세워둔 것이고, 우회로 폐쇄 안내는 그 후에 세워둔 모양이다. 폐쇄한 길로 질러가는 얌체짓을 할 수는 없고, 다시 내려갔다가 고죠자카를 따라가다 키요미즈신미치를 따라서 올라갔다. 처음부터 남들이 지나다니는 평범한 길을 따라갔으면 시간 절약하고, 쓸데없이 힘을 낭비하지 않았을텐데 꼭 이렇게 뻘짓을 한다. 그렇지만 이런 뻘짓이 시간이 흐른 뒤 기억이 가물가물해질 때 그 때를 되새길 수 있는 추억거리가 되고, 그 시절을 떠올리면서 웃음짓게 만들기도 한다.

길 양쪽으로 늘어선 상점가 사이사이 토요일이라 관광객들이 많아서 길은 복잡하고 시끌시끌하지만, 뭐 나도 관광객 중의 한 명이니까 그러려니 하고 주변을 둘러보면서 올라갔다. 지난 이틀과 여기에 오기 전 며칠 간이 고된 시간이었기에 관광객 모드로의 전환이 쉽지는 않아서 계속 입을 굳게 다물고 다니기는 했지만..


드디어 키요미즈데라에 도착!

꽤 유명한 인왕문이 키요미즈데라에 오는 사람들을 맞이한다. 키요미즈데라는 7년 전인 2009년에 친구 나가타와 왔던 적이 있는데, 폐문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와서 구경하던 중 어두워져서 제대로 보지 못했던 기억이 있어서 다시 왔다. 일 때문에 바쁜 친구라 날을 맞추기 어렵고, 일본인답지 않게 일본에 온 외국인 친구라고 만날 때마다 밥과 술을 사는 것이 미안해서 연락을 하지 않았는데, 한 달 후에 결혼했다는 소식을 페이스북을 통해 뒤늦게 알게 되어 마음이 복잡해지기도 했다. 다음에 만날 때 작은 선물이라도 하나 준비해서 축하의 인사를 전해야 할 것 같다.


키요미즈데라에 온 기념으로 가방에 넣어둔 카메라를 꺼내서 첫 사진을 개시. 날씨도 좋고 참 좋은데 카메라에 메모리카드가 없어서 내장 메모리를 사용하다보니 몇 장 더 찍을 수 없단다. 계속 아이폰으로 사진을 찍어야 할 것 같은데, 아이폰 카메라 사용에 익숙하지 않아서 사진을 스퀘어로 놓고 찍어서 정사각형 모양의 사진이 나온 것을 나중에 사진을 옮기면서야 알았다.


뒤돌아보니 다양한 국적의 관광객들이 우르르 몰려오고 있다. 물론 대부분이 쭝꿔 언니오빠들..

얼마 전부터 가끔 잠이 오지 않을 때 술기운을 빌려 잠을 자려고 한 잔 정도 마신다거나, 식사 자리에서 상대방에 맞춰주기 위해서 함께 첫 잔을 마시는 것 외에는 가급적 술을 마시지 않는다. 가장 큰 이유는 갈수록 멍청해지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게 되어 다시 회복은 되지 않더라도 그 속도를 조금이나마 늦출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는데, 한동안 술을 마시지 않다보니 술 냄새가 싫어지고 거부감을 느끼게 되어 자연히 술을 멀리하게 되었다. 와인 한 잔씩 마시면 혈액순환에 좋고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하는데, 어떤 연구에서는 술이라는 자체가 한 잔도 좋지 않다는 이야기도 있으니 사람의 건강상태나 체질에 따라 괜찮거나 도움이 될 수도, 반대로 나쁘거나 위험할 수도 있지 않은가 싶다.

그런 의학적인 연구 내용이 아니더라도 과로로 인한 만성피로와 체력저하가 고질병처럼 되면서 마실 때는 괜찮은 것 같은데 쉽게 취하고 숙취로 다음 날이 괴로운 것이나 술자리에 함께 한 사람이 술에 취해 개가 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예전에는 저렇게 개가 되었구나 싶은 생각에 스스로를 단속하려는 뜻도 있고, 여러 이유에서 술을 멀리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 이래놓고 나서 언제 또 술 한 잔 마시다 취해서 멍멍이짓을 할 지는 모르겠지만, 여행이든 출장이든 말이 잘 통하지 않는 타국에 있는 순간에는 어느 정도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서 되도록 더 조심하고 주의한다. 그러다보니 저녁을 먹은 뒤에는 호텔 방 안에서 텔레비전을 본다거나, 인터넷 웹서핑을 한다거나 기껏해야 편의점에서 간식을 사다가 먹는 것 외에는 마땅히 할 일이 없다. 게임이나 뭐 그렇고 그런 것이라든지 할 일이야 많이 있겠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런 방면에 별로 흥미가 없어서, 북오프 같은 중고서점에 가서 싸고 괜찮은 책을 둘러보거나 쇼핑을 한다거나 가까운 온천을 찾아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오는 정도랄까.

오후 8시가 다 되어가니 멀리 갔다 올 수는 없고, 편도 한 시간 이내에 갈 수 있을 만한 곳에 내려서 잠시 구경하고 교토에 돌아오는 정도라면 괜찮을 것 같아 킨테츠교토역으로 갔다. 킨테츠교토역은 한 쪽이 막힌 역이어서 반대 방향으로 갈 염려는 없지만, 가는 도중 노선이 분기되어 목적지가 다른 열차가 종종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다만 특급을 포함한 모든 등급, 모든 방면의 열차가 정차하는[각주:1] 야마토사이다이지(大和西大寺)역에서 오사카와 나라, 카시하라진구마에(橿原神宮前) 방면으로 분기되니 이 역까지는 걱정하지 않고 갈 수 있다. 어차피 시간상 사이다이지까지 갔다가 돌아오면 10시가 훌쩍 넘을테고, 다음 날 체크아웃을 해야하니 늦잠을 잘 수 없어서 무리하지 않아야 한다.


교토선에는 주로 4량 편성인 경우가 많아 열차를 병결하여 운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두 열차의 열차 모델 및 연식이 다르다.

거리상 특급권을 쓰기 아까우니 특급열차 대신 19시 46분 발 카시하라진구마에 행 급행열차에 탔다. 배가 부르니 잠이 오고, 앉아서 가면 좋겠지만 이미 사람들이 많이 타 있어 서서 간다. 밖은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보면서 간다. 30여 분 걸려서 야마토사이다이지에 도착하자 꽤 많은 사람들이 내렸다. 오사카와 교토를 연결하는 철도 노선이 많지만, JR, 한큐(阪急)는 오사카 북부와 교토를 연결하고, 케이한(京阪) 역시 오사카 북동부 방면 중심으로 교토에 이어지는 노선이어서 교토에서 나라를 거쳐 오사카 남부를 바로 연결하는 노선은 킨테츠가 유일하다. 킨테츠의 통학 정기권의 가격이 다른 회사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저렴하다던데, 그래서인지 직장인 외에도 학생들도 꽤 있다. 그러고 보니 우지에 살던 친구 녀석도 몇 년 전에 오사카에 통학하느라고 킨테츠를 이용했던 것이 생각난다.

사이다이지역은 교토선, 카시하라선과 나라선이 교차하는 지점인데, 동쪽의 나라, 서쪽의 오사카, 남쪽의 카시하라진구마에, 북쪽의 교토로 가는 노선이 교차하니 사거리와 같은 곳이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 같다. 아주 서울의 신촌이나 대학로 정도 같이 번화한 동네는 아니지만 나라현에서는 꽤 비중이 있어 나라역 주변이 나라현의 중심이라면 이 곳은 현 내의 교통의 요지라고 할 수 있겠다. 예전에 이 역을 몇 번 지나간 적은 있지만, 사이다이지역 주변에 유명한 관광 명소가 있는 것은 아니어서 역사 바깥으로 나가는 것은 처음이다.

역 바깥에는 나라 패밀리라는 쇼핑센터가 있어 전문 상점이 들어서 있고, 같은 건물 북쪽에 킨테츠백화점과 이온몰(AEON MALL)이 자리하고 있다. 추측이지만 나라패밀리라는 건물의 일부를 킨테츠백화점과 이온몰이 임대하여 영업하고 있는 것 같다. 킨테츠백화점은 오후 8시까지만 영업을 하는지라 들어가지 못하고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다가 이온몰은 아직 영업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간식거리를 사러 들어갔다.


사진 출처 http://www.nara-kintetsu-chintai.jp
이미 한밤중이 되어 사진을 찍어도 잘 안 나와서 부득이하게 인터넷에서 검색을 했다.
사이다이지역 북쪽 출구로 나가면 오른쪽에 이 건물이 보여서 찾기 어렵지 않다.


아무래도 외지에 있다보면 밥은 잘 챙겨먹더라도 균형잡힌 식사를 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종종 의식적으로 마트나 편의점에 들러 쥬스라든가 껍질을 쉽게 벗겨 먹을 수 있는 과일을 조금씩 사먹는 편이다. 평소에는 영양성분 같은 것을 생각하며 음식을 먹지 않고 편식에 가까울 만큼 좋아하는 것만 먹지만, 외지에서 몸이 아프면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으니 주의하는 정도. 이온몰에는 대개 수퍼마켓이 있으니 쥬스와 과일을 사러 지하로 연결되는 입구를 찾아서 들어갔다.


발렌타이데이와 맥주가 무슨 상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뭐..

9년 전 처음 일본에 갔을 때 일본어를 거의 못해서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였지만, 그 당시에도 밸런타인데이 전이어서 상점에서 밸런타인데이 관련 상품으로 초콜릿과 주류를 파는 곳이 많았다. 그 때 이 나라의 상술은 참 뛰어나다고 감탄하기도 하였는데, 맥주까지 이렇게 밸런타인데이라고 포장을 특별히 만들어 파는 것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술 한 잔 마시면 더 쉽게 상대에게 친밀함을 느낄 수 있어서인가.

일본에서도 대부분의 마트에서는 폐점 시각이 다가오면 신선 식품이나 소비기한이 짧은 조리 식품 등을 할인가격에 파는데, 사람들이 다 사서 간 뒤라 식료품 코너에는 먹을만한 것이 없고, 과일도 꽤 비싸서 살까 말까 고민이 되었다. 딸기가 큼지막한 것이 맛있게 보이는데 몇 개 되지 않는 작은 포장이 6천원이 넘어서 망설이다가 포기하고 방울토마토를 샀다. 그리고 마시는 요거트도 하나 사서 쪽쪽 빨아마시고..


부족분의 식물섬유 마시는 요구르트 석류맛.

유제품 귀신인지라 맛있게 먹었다.

밖으로 나와서 동네 한 바퀴를 돌아보는데 생각했던 만큼 거리에 상점이 많지 않고, 갈만한 곳이 보이지 않는다. 맛있는 냄새라도 풍기면 들어가서 먹고 나올텐데 먹자골목이라 불릴 만한 곳은 없는지 거리가 썰렁하다. 역의 남쪽에는 수퍼마켓이 하나 있는 것 같은데, 건너가기 귀찮다. 그럼 그냥 돌아가야지 별 수 있나. 사이다이지역으로 돌아가서 교토행 열차를 기다린다. 이번에도 당연히 추가요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급행열차인데 갈 때와는 달리 빈 자리가 많아서 편히 앉아서 간다. 교토역이 종점이니 마음 편히 잠을 자도 괜찮은데, 이렇게 긴장감이 없으면 잠이 잘 오지 않는다. 이건 무슨 청개구리 심보냐.


사토미가 모델인 이온 영어회화 광고.

그렇지만 여기서 이 학원을 다닌다고 해도 이 아가씨 볼 일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다시 교토역에 도착한 뒤, 호텔에서 나올 때 길바닥에서 주운 버스 1일 승차권을 가지고 버스를 타고 호텔 앞에서 내렸다. 누가 잃어버린 것인지 아니면 버스 탈만큼 탔다고 버리고 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2월 5일 날짜가 찍혀 있는 승차권이라 혹시 몰라서 주워서 주머니에 넣어두었는데 유용하게 잘 썼다. 그게 없었더라면 20분 동안 걸으면서 궁시렁거렸을텐데, 역시 돈이 좋기는 좋다. 승차권 버리고 가신 분 복 받으실 거에요~~♪


그래도 움직였다고 배가 고프니 야식을 먹어야지.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야키우동과 야키토리를 데워서 먹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체크아웃을 해야하니 대충 짐을 싸둔 뒤 씻고 잠을 청했다.

  1. 심야시간에는 교토발 열차가 야마토사이다이지까지 운행하지 않고, 신타나베(新田辺)까지만 가는 열차가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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